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4장 번데기 7

오늘의 쉼터 2014. 12. 23. 15:48

제4장 번데기 7

 

 

선배가 자리를 떠난 뒤 한동안 분위기가 침울했다.


“결혼도 안한 사람들이 왜 그래요?”

 

채연은 풀이 죽어 있는 사람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잔을 들었다.

 

“사실 선배나 형수의 잘못이 아니지. 뭔가 근본부터 변화가 와야 하는 거 아닐까?”

 

봉수가 잔을 들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근본부터 무슨 변화?”

 

진국이 말을 받았다.

 

“변해야죠.

 

저도 한때는 우리 나라 입시 제도를 정말 증오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자살할 생각을 하기도 했죠.”

 

애란의 입에서 ‘자살’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자살을 생각했다는 거지, 자살을 했던 건 아니에요.”

 

그녀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애란 선배 같은 커리어 우먼이 자살했으면 우리나란 커다란 손실입니다.

 

선배님들 안 그렇습니까?”

 

병달이 애란의 잔에 자신의 잔을 세게 부딪혔다.

 

“그럼, 애란 선배가 우리 해외 2팀을 먹여 살리는데.”

 

우울한 분위기를 풀어버리기 위해 진국은 농담조로 말했다.

 

“자, 자. 우울한 분위기를 깨버리자는 뜻에서 건배!”

 

봉수가 잔을 높이 들었다.

 

마침 무대위에는 직장인 밴드가 ‘행진’이라는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해외 2팀의 영원한 안락을 위해서!”

 

병달이 선창했다.

 

“야, 그런데 뭔가 구호가 좀 그렇다. 안락이 뭐냐? 장례식장에서 건배하는 기분인데.”

 

“아, 선배님들. 앞으로 또 1년간 짤리지 말고 무사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요.”

 

병달이 고개를 잽싸게 돌리고 술을 단숨에 비웠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그의 뒷통수를 노려보기만 했다.

 

“왜들 안 마시세요? 인화씨가 만들어 온 안주가 맛이 별론가요?”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젓가락을 일일이 들어 손에 쥐어 주며 능청을 떨었다.

 

사람들은 기어이 웃고 말았다.

 

하지만 봉수는 술에 취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선배형의 얼굴이 눈에 밟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어느새 이인화가 와서 합석을 했다.

 

그녀의 얼굴은 예전 가리봉동의 식당에서 일할 때처럼 밝아 보였다.

 

봉수는 잠깐 진국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국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이인화가 진국을 바라보는 눈 속엔 존경의 빛이 가득했다.

 

봉수의 짐작이긴 하지만 아마 이인화의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잘된 일이지, 그런데 나는 왜 우울하지?’

 

봉수는 웃고 떠드는 그들 몰래 홀짝 잔을 비웠다.

 

다시 새해가 밝았다.

 

봉수는 건너편 거울로 된 벽면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아직도 월세 작업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뚜렷한 흔적도 남긴 게 없었다.

 

이제 겨우 중고차 한 대 장만해서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정말 사람의 운명이라는 건 정해져 있는 걸까?’

 

봉수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봉수의 사념을 깨기라도 하듯 봉수의 휴대폰이 울었다.

 

“내일 몇 시 어디에서 만나?”

 

송화였다.

 

 ‘코지’의 사장 차몽현.

 

그는 성북동의 성채와 같은 집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그는 평소 운전기사를 부리지 않았다.

 

남에게 대접받는 일이 아직도 익숙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차에서 내려 대문 앞에 서자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대문이 열렸다.

 

차몽현이 슬쩍 대문 왼쪽 모서리에 매달려 있는 감시 카메라를 쳐다봤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현관까지 이어진 길을 바라보았다.

 

그 길이 그 어떤 길보다 길게만 느껴졌다.

 

차몽현은 빠른 걸음으로 현관까지 다다랐다.

 

“어서 와.”

 

새 어머니였다.

 

차몽현 보다 다섯 살쯤 많은 여자였지만 보기엔 그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차몽현은 엷게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했다.

 

차몽현의 눈길이 저절로 그녀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앞가슴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세간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던 육체파 배우였다.

 

나이가 들었으나 몸매는 여전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이가 아침부터 안 온다고 성화였는데.”

 

차몽현은 살갑게 구는 그녀가 달갑지 않았다.

 

그녀가 오성그룹 회장의 후처로 들어온 건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소문만 그렇게 났던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다 늙은 회장을 사랑 때문에 남편으로 삼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녀가 앞서서 차몽현을 서재에 딸린 응접실로 안내를 했다.

 

“아줌마, 여기 차 좀 내오세요.”

 

그녀는 주방 쪽을 향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차몽현은 등골을 타고 솟아나는 소름을 느꼈다.

오성그룹의 회장 차상경의 서재는 천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았다.

 

서재 전체를 가득 메운 책들과 엔틱 풍의 가구들이 적당히 어울려 서재에 들어서면

 

유럽의 오래된 고성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 들었다.

 

당구 게임을 좋아하는 회장은 응접실로 향하는 쪽에 두 대의 당구대를 놓고 가끔 큐대를 잡았다.

 

하나는 나인 볼이고 하나는 일반적인 포볼 게임을 할 수 있는 당구대였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나인 볼, 나쁠 때는 포볼쪽에 섰다.

 

‘당구 속에 사업과 인생의 묘미가 다 녹아 있다’는 게 회장의 생각이었다.

 

오성 그룹 차원에서 당구 선수들을 육성하는 것도 회장의 취미가 남다른 탓도 있지만

 

그런 신념 탓이기도 했다.

 

“막내 아드님 오셨어요.”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이 일제히 차몽현을 쳐다봤다.

 

그는 응접실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각 계열사의 사장들은 물론 힘께나 쓴다는 정재계 사람들까지 십 여명 남짓 모여 있었다.

 

차몽현이 제 자리에 서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차몽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상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차상경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했다.

 

차몽현은 어리둥절했다.

 

차상경이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다른 손님들 앞에서 더 이상 무안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차몽현은 말석에 앉았다.

 

“왔는가? 이런 자리에선 회장님이라고 불러야지.”

 

차 실장이었다. 그가 속삭이듯 조용하게 차몽현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다.

 

 차몽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처음엔 그를 보지 못했다.

 

그의 앞에는 화려한 비단 보자기에 싸인 상자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둘러보니 대부분 크고 작은 선물 상자들이 보였다.

 

차몽현은 갑자기 자신의 손이 부끄러웠다.

 

“정말인가?”


차상경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내민 선물을 받았을 땐 시큰둥했는데

 

차 실장이 건넨 상자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장님도 여러 차례 드셔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놈은 그야말로 진품입니다.”

 

응접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차 실장의 상자에게 쏠렸다.

 

차상경은 의자에 단단히 엉덩이를 붙이고 눈으로만 상자를 힐금 쳐다봤다.

 

그리곤 낮게 헛기침을 했다.

 

차 실장이 보자기를 풀기 시작했다.

 

나무 상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차 실장이 뚜껑을 열자 몇 사람이 절로 침을 삼켰다.

 

뚜껑을 열자 삽시간에 삼 냄새가 응접실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보십시오. 영락없이 아이의 모습 아닙니까?”

 

차 실장이 조심스럽게 삼을 들고 사람들에게 구경시켰다.

 

“허, 차 실장 정말 귀한 걸 구했네. 차 회장,

 

나도 저런 놈을 하나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 봤는데 도통 있어야 구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데 저 놈은 족히 백년은 넘었을 겁니다.”

 

“백년!”

 

차상경은 그제야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자네가 그런 걸 어디서 구했나? 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을 텐데.”

 

차상경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차 실장을 바라보았다.

 

“회장님, 건강을 위한 일인데 이쯤이 일이겠습니까?

 

실은 오래 전부터 제가 지리산하고 태백산 설악산 등지의 심마니들에게 부탁을 해놓았던 것입니다.

 

그게 벌써 한 오년 전 일일 겁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 한 심마니가 눈밭에서 이 놈을 발견했다고 연락을 해온 겁니다.”

 

“눈밭!”

 

누군가 후렴 하듯 외쳤고 그 말에 다들 감탄을 했다.

 

차몽현도 차 실장이 들고 온 산삼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제가 이미 전문가들에게 검증을 모두 마친 상탭니다.

 

이 정도면 적어도…”

 

“한 1억쯤 나가겠지.”

 

누군가 차 실장의 말을 마침 거들어주었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차 실장의 얼굴엔 신명이 가득 붙었다.

 

“허, 동생 덕에 내가 장수하게 생겼군.

 

내가 동생 하나는 정말 잘 뒀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차상경이 최상의 기분일 때 자신과의 친족관계에 따른 호칭으로 상대를 불렀다.

 

그건 영원히 자신의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경우가 드물었다.

 

그만큼 차 실장에 대한 신뢰가 한 순간에 단단해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속옷 홈쇼핑 쪽 일은 괜찮은가?”

 

“어떻게 제가 맡은 일까지 신경을 다 써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슨 섭섭한 소린가? 아, 우리 동생이 하는 일인데 모르다니. 그래 어떤가?”

 

“저는 매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 전에 언젠가 자네 기획 덕에 속옷 판매가 폭발적이었던 때가 있었지, 아마?”

 

“회장님께서 그걸 어떻게…”

 

“허~, 이 사람이 나를 늙은이로 아나,

 

나는 우리 회사 일은 십원 짜리 하나 나가는 것도 다 꿰고 있는 사람 아닌가.”

 

사람들이 물러갔다. 차 실장과 차몽현만 남았다.

 

세 사람은 거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차상경의 집엔 일식, 중식, 양식, 한식으로 식당이 네 개나 되었다.

 

일반적인 주방도 따로 하나 있었다.


세 사람은 한식 식당으로 들어갔다.

 

“신년이니 한식으로 하시게요?”

 

차상경의 젊은 부인이 쫓아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허, 참. 당신도 잠깐 들어오지.”

 

차상경이 한 식당으로 들어서자 일꾼들의 손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보, 글쎄 말이야. 우리 동생이 내 건강을 생각해서 산삼을 가져오지 않았겠어.”

 

차상경은 서재 응접실에서 차 실장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낱낱이

 

자신의 젊은 부인에게 이야기했다.

 

차몽현은 경직된 자세로 앉아 두 사람을 밋밋한 눈길로 쳐다봤다.

 

젊은 여자가 들어온 뒤 확실히 아버지는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정말 우리 회장님 생각해 주시는 분은 차 실장님 밖에 없어요.”

 

젊은 어머니가 차 실장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의당 제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다른 자제분들이야 워낙 바쁘시니까

 

회장님 건강 챙겨 드릴 시간이 없으실 테고 저라도 챙겨 드려야지요.

 

두 놈이니까 같이 드시죠.”

 

테이블 위로 속속 음식들이 올라왔다.

 

“어떻게 제가 먹겠어요. 저야 젊고 건강한데요.”

 

“여자분들의 미용이나 피부에도 아주 그만이랍니다.

 

노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아마.”

 

“정말이에요?”

 

젊은 어머니의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산삼이니까 그렇겠지.

 

그래, 동생 말대로 한 뿌리는 당신이 들지. 오래오래 해로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

 

“고마워요, 여봉!”

 

그녀가 코맹맹한 소리를 내며 차상경의 품에 안기다시피 했다.

 

차상경이 차몽현과 차 실장의 눈치를 봤다.

 

“저는 그럼 서재에 가볼게요.

 

사업 이야기도 하셔야 할테고 저는 아무래도 빠지는 게.”

 

“그래, 내가 당신의 그 눈치 빠른 것에 홀렸지 뭐야.”

 

차상경이 껄껄 웃었다.

 

테이블 위엔 이미 수십 가지 찬과 밥, 국이 올라와 있었다.

 

세 사람은 한동안 묵묵히 밥만 먹었다.

 

차상경은 늙어서도 먹성이 좋은 편이었다.

 

젊은 사람 못지 않은 먹성을 보였다.

 

그가 밥을 다 먹고 젓가락을 놓자 차 실장도 차몽현도 같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차 사장!”

 

차상경이 차몽현을 사무적으로 부를 때 쓰는 호칭이었다.

 

“네, 회장님.”

 

“왜 자네 회사만 가만히 있는 건가?”

 

차몽현은 차상경의 눈길에 몸이 바짝 조여지는 기분이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여느 다른 계열사들과 달리 우린 목표의 세 배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왜 감원을 해야 합니까?

 

어떤 명분으로 감원을 한단 말입니까?”

 

차몽현의 목소리는 적잖이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니 놈이 사업을 못한다는 거야!”


차상경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회장님 화내시는 건 건강에 좋지 않으십니다.”

 

차 실장이 두 사람의 신경전을 즐기듯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니 놈 회사가 매출 목표보다 세배나 올린 건 내수 경기가 하락해서

 

목표치를 작게 잡아서 올린 거잖아.”

 

“그래봐야 지난해의 90%로 목표치를 잡았던 겁니다.

 

겨우 10%로 줄인 겁니다.”

 

“진정한 사업가는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냐.”

 

차상경은 앞에 놓인 찻잔을 금방이라도 내던질 태세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를 해놔야 미래가 더 단단해 질 게 아니냔 말이다.”

 

“지금 이대로만 나가면 우린 단단해 질 수 있습니다.”

 

차상경은 금방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너만 감원을 못하겠다 이거냐?”

 

“지금 회사 직원들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원할 수 없습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경기가 안 좋은데 그 사람들이 나가서 뭘 해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희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감원 대상자들에게 위로금을 줄 돈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상당수가 여기로 흘러오니까요.

 

만약 감원을 꼭 해야 한다면 그네들이 먹고 살 수 있게끔 해 준 뒤에 감원을 해야 한다는 게….”

 

차상경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니 놈이 뭘 안다고 나한테 훈계 따위를 해.

 

니 놈이 사업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어?

 

대학을 다닐 때부터 문학이니 뭐니 까불어서 속옷 회사를 하나 차려줬더니

 

이제 와서 아버지 말을 안 듣겠다? 니 놈이 이룬 게 뭐가 있어?”

 

“그래서 저는 사업 안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차몽현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비라는 이미 중국 시장을 휩쓸고 있어.

 

그런데 너는 뭐냐? 유럽하고 일본쪽에 천 쪼가리 몇 장 팔았다고 기고만장한 거냐?

 

그래 좋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감원하지 마라. 대신 조건이 있다.”

 

차 실장과 차몽현이 놀란 눈으로 빤히 차상경을 바라보았다.

 

사업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는 그이기 때문이었다.

 

“올해 상반기까지 중국에 코지 총판 20개를 만들어라.

 

그러면 코지에 관한 한 네 뜻에 맡기마.”

 

총판 20개, 총판이 20개면 중국의 웬만한 도시엔

 

코지 대리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차몽현은 곤혼스러웠다.

 

하지만 그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인원을 25% 감원한다는 조건이다.

 

한번 도전해 볼만하지 않냐?”

 

차상경이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차몽현은 고개를 떨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해보겠습니다.”

 

차몽현이 고개를 번쩍 들고 차상경을 쳐다봤다.

 

“해보겠다?”

 

차상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차 실장의 얼굴이 조금씩 경직되었다.

 

‘이거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생겼네.

 

중국에 총판 20개를 세우려면 다들 힘들어질텐데.’

 

차 실장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혀 빛났다.

 

차 실장은 그런 차몽현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 피곤해지겠구나.’

 

차 실장은 그 생각으로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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