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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25장 격동의 한반도 [8]

오늘의 쉼터 2014. 12. 17. 15:33

<266> 25장 격동의 한반도 [8]

 

 

(527) 25장 격동의 한반도 <15>

 

 

 

 

“나오미 씨입니다.”

전화기를 내밀면서 전영주가 말했다.

 

잠자코 손을 내밀어 전화기를 받는 그 짧은 순간에 생각의 줄거리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오미는 신의주 행정청장관 비서실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비서실 직원이 비서실장 유병선에게 보고를 했고,

 

장관에게 연결하기로 결정을 한 유병선이 전영주에게 시킨 것이다.

 

걸린 시간은 1분쯤 되었을까?

“아, 나오미 씨.”

전영주가 옆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공식 통화일 것이므로 서동수가 영어를 썼다.

 

그때 나오미도 영어로 말했다.

“장관님, 요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시간 내주실 수 있습니까?

 

총리의 메시지도 전해드리고 현황에 대한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중 양국에 현황 설명을 드리려고 했는데 일본이 먼저 연락을 해오셨군요.”

서동수의 시선이 옆에 선 전영주의 허리춤에 머물었다가 엉덩이와 다리로 내려갔다.

 

전영주가 비스듬히 서 있었지만 시선을 느낀 듯이 발을 조금 움직였다.

 

검정 단화를 신은 발뒤꿈치의 선이 육감적이다.

 

그때 나오미의 웃음 띤 목소리가 울렸다.

“그럼 언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저녁 식사를 같이 하시면서 이야기하십시다. 오늘 저녁 7시에 어때요?”

“좋습니다, 장관님.”

“그럼 다시 연락을 드리지요.”

종료 버튼을 누른 서동수가 전영주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장소를 정해. 우리 쪽은 안 특보하고 조 비서관까지 셋이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전영주는 이번에 북한에서 격변을 함께 겪은 후에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

 

자다가 깬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아이 어머니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돌아서 가는 전영주의 뒷모습을 보면서 서동수는 저절로 숨을 들이켰다.

 

안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고 그것이 숨을 들이켜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그날 저녁 7시 정각에 서동수는 한국계 호텔인 ‘사비성’의 한식당으로 들어섰다.

 

수행원은 안종관과 조기택. 밀실에서 기다리던 일본 측 인사들이 그들을 맞았는데

 

나오미와 총리특사 자격으로 온 도쿠가와다.

 

인사를 마치고 원탁에 둘러앉았을 때 서동수가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북한의 반(反) 개혁세력은 모두 신의주로 추방당했고

 

앞으로 북한의 개방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미 원탁에는 한정식 상이 차려져 있었으므로 젓가락만 들면 되었다.

 

서동수의 시선이 도쿠가와에게로 옮겨졌다.

 

도쿠가와가 총리실 소속의 정보책임자라는 것을 안다.

“따라서 신의주는 점진적으로 북한을 대리해서 수출입 및 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일·미 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랍니다.”

긴장한 도쿠가와가 상반신을 세웠고 나오미는 몸을 굳혔다.

 

그렇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내세워 온갖 경제활동을 할 수가 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장관님,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가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립니다.”

당황했는지 도쿠가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우방국들과 먼저 협의를 하시고 결정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북한과 신의주 정부는 이미 합의했습니다.”

서동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방국들도 이해하겠지요.”

 

 

 

 

(528) 25장 격동의 한반도 <16>

 

 

 

밤 10시 반, 사비성 호텔의 특실 방 안이다.

 

방 안에는 서동수와 나오미가 소파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아래층 한식당에서의 식사는 9시쯤에 끝났다.

 

그러고는 헤어졌다가 조금 전에 이 방으로 나오미가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는 서동수가 방을 잡아 놓고 나오미를 불러냈다.

 

그것도 개인 휴대폰을 썼으므로 비서를 거치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위스키병과 맥주, 마른안주와 잔들이 놓였는데 서동수가 준비한 것이다.

 

맥주잔에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서동수가 잔을 들면서 말했다.

“특사가 놀란 것 같더군. 하지만 신의주가 성장하면서 그렇게 될 것은 모두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서동수는 한국어를 한다. 한 모금 폭탄주를 삼킨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시기가 문제였지. 미·일 측도 그것에 대한 염려를 공론화시키기도 했지 않아?”

“하지만 핵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정색한 나오미가 위스키 잔을 들고 말했다.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서 스커트 밑의 흰 허벅지가 드러났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벌컥 잔을 비우고는 내려놨다.

“곧 한국 정부의 특사가 미·일·중 정부에 파견될 거야.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는 협조를 부탁하겠지.”

“그럼 우리가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라인가요?”

“한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한 모금에 위스키를 삼킨 나오미가 지그시 서동수를 보았다.

 

특사 도쿠가와는 아베 총리의 전언을 구두로 전해주었다.

 

신의주 당국과의 친선, 절대적 협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민족과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서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먼저 서동수로부터 신의주가 북한 경제활동을 대리한다는 선언을 듣더니

 

김이 빠진 것 같았다.

 

다시 잔에 위스키를 붓는 서동수에게 나오미가 물었다.

 

“왜 자꾸 술을 마셔요?”

“평양 쿠데타 이후로 처음 마음 놓고 술 마시는 거야.”

그러자 나오미가 꼬았던 다리를 풀고 다가가 앉았다.

 

불빛에 반사된 눈이 반짝였고 입술은 물기에 젖어 반들거린다.

“쿠데타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려고 했어.”

“그럼 술 그만 마셔요.”

“좀 씻어야겠는데.”

그 순간 나오미가 이를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엉덩이를 돌려 앉으면서 나오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대사, 유혹하는 건가요?”

“그렇게 들어도 돼.”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나오미를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나오는 대로 말했을 뿐이니까.”

욕실로 들어간 서동수가 씻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는 20분쯤 후였다.

 

서동수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방 안의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침대 옆 스탠드의 불만 켜져 있었는데 목 밑까지 시트를 끌어 올린 채 누워 있는 나오미가 보였다.

 

침대로 다가오는 서동수를 향해 나오미가 말했다.

“과정을 생략했어요.”

“신의주의 북한 경제활동 대리 역할도 그런 거야.”

시트를 들치고 나오미의 옆으로 누운 서동수가 다시 웃었다.

“과정을 생략할 바엔 이것도 벗고 있지 그랬어?”

나오미는 가운을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오미가 서동수의 어깨를 당겨 안으면서 눈을 감았다.

 

키스를 기다리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