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25장 격동의 한반도 [5]
(521) 25장 격동의 한반도 <9>
전용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9시 반이다. 한국 측의 배려로 전용기는 서울과 가까운 김포에 착륙했다. 지난 나흘 동안 평양에서 벌어진 일을 한국언론이 모르고 있을 리는 없다. 언론 통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인 터라 한국에서는 사흘 전부터 ‘북한 쿠데타’가 연일 특집으로 보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 내부는 통제되고 있어서 정보가 거의 새나가지 못했지만 신의주로 추방당한 수백 명의 쿠데타 세력까지 한국과 세계 언론이 놓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언론보도 타이틀은 대부분 이렇게 전개되었다. 사실처럼 느껴졌다. 엄청난 오보를 내뿜고 있었는데도 책임진 적이 거의 없는 터라 마구잡이 수준이었다. 그 이유가 있다. 신의주로 추방당한 오대우, 최성일 세력이 하나같이 김동일 위원장을 찬양했기 때문이다. 언론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극력 피했지만 그들 주변에서 퍼진 소문은 모두 김동일 위원장의 측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동일 세력이 쿠데타에 밀려 신의주로 추방당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의주가 어디인가? 바닥은 북한령이다. 신의주에서 김동일을 비난했다가는 하룻밤 새에 몰살당한다. 언론이 간과했던 내막이다. 김동일을 경쟁적으로 찬양하니 김동일 세력이 쫓겨 나왔다고 믿었고 정치 평론가들은 너도나도 빨리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공항 활주로에는 청와대에서 보낸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서동수는 바로 차에 올랐다. 놀랍게도 국정원장 박기출이 마중 나와 있다. 승합차에는 서동수와 박기출, 안종관과 조기택까지 탔다. 가는 중에 이야기를 하려고 박기출이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 언론도 계속해서 오보를 내보내는 중이다.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씨를 뿌렸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 것이다. 곧 박기출과 보좌관은 안종관이 넘겨준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북한의 새 지도부와 개편된 조직을 보는 것이다. 국정원 역사상 북한에 대한 이런 거대한 정보를 한꺼번에 받은 적은 없다. 박기출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여러 번 냈다. 이윽고 머리를 든 박기출이 물었다. “신의주를 개방시키면서 북한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지요. 이것은 독일보다도 더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 남북한은 신의주라는 충격 흡수장치가 있는 것이다. 차가 청와대 입구로 들어설 때 서동수가 박기출에게 말했다. 내일 정부의 공식 발표를 말하는 것인데, 본래 계획은 서동수가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국정원장에게 양보한다는 것이다. (522) 25장 격동의 한반도 <10>
대통령은 서동수의 이야기를 듣더니 감동한 것 같았다. 북한의 쿠데타를 무마시킨 주인공이 서동수인 것이다. 그것을 서동수는 이번 발표에서 자신이 관련됐다는 사실을 빼달라고 했던 것이다. 김동일이 발표를 허락한 사항인데도 다른 사람에게 미뤘으니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이윽고 대통령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신의주는 중립지역이거든요.” 청와대를 나왔을 때는 밤 11시 반이다. 이제는 승합차에 신의주 식구들만 타고 시내로 나오면서 서동수가 말했다. 신의주장관이 서울에 왔다는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유병선은 물론이고 안중관, 조기택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모두 서동수가 뒤로 물러난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서동수의 눈짓을 받은 유병선이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쥐고 말했다. 차례로 나눠주었다. 안종관과 조기택도 어색해 하면서도 봉투를 받았는데
마침내 조기택이 참지 못하고 유병선에게 물었다. 깐깐한 조기택은 참지 못했다. 봉투를 열어본 조기택은 숨을 삼켰다. 5억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든 조기택이 서동수를 보았지만 시선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서동수가 창밖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유병선이 헛기침을 했다. 조기택은 5억이지만 안종관은 10억, 유병선도 10억을 받았다. 최성갑은 1억, 보좌관들도 각각 1억씩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뇌물이 아니다. 고생한 대가인 것이다. 모두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으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아는 터라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가족에게 돌아가 그 돈을 건네줄 생각을 하자 모두 행복해졌다. 서동수는 외면하고 있었지만 검은 유리창에 비친 행복한 모습들을 보면서 만족했다. 이것이 베푼 자의 기쁨이다.
‘김 씨 정권, 마침내 3대째에 몰락.’
‘김동일의 행방은?’
‘북한의 지배자는 누구인가?’
하루 종일 종편의 평론가들은 이것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했는데 말이 빠른 사람의 의견이
“언론이 한참 빗나가서 내일은 대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박기출이 쓴웃음을 짓더니 금방 정색하고 서동수를 보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고생하셨습니다. 장관께서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 동안 평양에서 수시로 연락을 한 터라 정부 고위층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지요.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럼 앞으로 북한은 개방이 가속화되겠습니다, 장관님.”
서동수가 자신있게 말했다.
“내일 발표는 국정원장이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박기출이 몸을 굳혔고 차 안의 시선이 모여졌다.
“다른 사람들은 없는 일도 만들어서 제 피알을 하고 방송을 타려고 야단인데 서 장관은 특별하십니다.”
“국가 급변 사태니까 이것은 당연히 정보기관장이 발표해야지요.”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조정 역할을 했다는 것도 신의주 장관 입장에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허허.”
마침내 대통령이 짧게 웃었다.
“당연한 말이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군요. 내가 너무 오염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서동수가 대통령의 말에 감동을 받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오랜만엔 고향에 왔으니까 내일까지 휴가를 갖도록 합시다.”
지금부터 서울에서 할 일은 없는 것이다.
“이건 장관께서 사비로 만들어주신 금일봉이오.”
유병선이 봉투를 안종관과 조기택, 그리고 평양에서부터 따라온 보좌관들과 경호원까지
“평양에서 바로 서울로 왔는데 도대체 어느 겨를에 이걸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을 받은 유병선이 힐끗 서동수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말했다.
“평양에서 서울로 연락을 했지요. 그러고 나서 청와대에서 받은 겁니다.”
안종관은 점잖게 봉투를 가슴주머니에 넣고 서동수를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지만
“그 돈은 청탁을 위한 뇌물이 아니니까 받으셔도 될 거요, 조 비서관.”
차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놀란 서동수가 꺼내 들었다.
발신자는 청와대 비서실장 양용식이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서동수가 응답했을 때 양용식이 말했다.
“대통령께서 차기를 맡기고 싶으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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