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번데기 3
다섯 사람은 병달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병달의 오피스텔은 잡다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어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죄송해요. 워낙 청소할 시간이 없어서.”
병달이 부리나케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진국은 병달의 방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면이 책으로 채워져 있을 만큼 책이 많았다.
특히 세로로 두 칸 정도는 대부분 중국에 관한 서적이었다.
봉수는 방안을 둘러보는 진국을 의구심 가득찬 눈으로 쳐다봤다.
‘대학 다닐 때 소설 쓰겠다는 놈이 언제 그런 무술은 배운 거지?
일본에서도 느닷없이 모델 같은 여자를 데려오질 않나,
인부들을 끌고 오지를 않나, 아무튼 뭔가 뒤에 숨겨져 있는 게 많은 놈이야.’
봉수는 진국과 눈이 마주치자 다른 곳을 쳐다보며 딴청을 부렸다.
“앉으세요.”
대충 다섯 사람이 앉을 공간이 마련되었다.
인화를 고개를 푹 떨군 채 들 줄 몰랐다.
“갈 데는 있습니까?”
병달이 인화에게 측은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까지는 어디서 묵었어요?”
“식당요.”
병달이 재떨이를 사람들 가운데로 가져왔다.
“담배 태우세요.”
병달이 진국과 봉수를 바라보았다.
“담배 필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인화 씨야.”
진국이 농담을 한다고 말했는데 썰렁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겁니까? 오늘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잖아요.”
“모르겠어요.
식당을 그만 두고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고 나왔는데 갑자기 아까 그 사람들이 나타난 거예요.
그러더니 저를 막 끌고 가잖아요.”
“숨어서 들으니까 식당에서 받은 월급으로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던 거 같던데.”
인화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가 받은 월급으로 한국 건너올 때 든 비용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한푼도 못 받았다고….”
인화가 끝내 흐느꼈다.
“식당 주인 아저씨는 매달 꼬박꼬박 잘 넣었다고 그랬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도 아마 아까 그 남자들 패거리였던 거 같아요.”
“왜들 그렇게 사는 지 모르겠어.”
애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한테 어떻게 전화를 한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 밥 먹으러 가고 없을 때 어떤 남자가 와서 빨리 전화번호를 부르라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전화번호가 병달씨 것밖에 없어서….
그 남자는 어떻게 됐나 모르겠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애란의 말대로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런 나쁜 놈들 중에 착한 놈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정말로 독한 놈은 몇 안돼요.
조직원들 중엔 파리 한 마리 죽여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봉수는 병달의 입과 진국의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에이, 사람 잡아다가 팔아 먹는 놈들이 착한 놈, 좋은 놈이 어딨어요?”
애란은 인화의 손을 잡아 쥐었다. 인화의 울음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모르시는 말입니다. 요즘은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상해나 북경 같은 도시로 올라온
사람이 할 일이 없어 삼합회 조직원으로 들어가는 수가 많거든요.
나쁜 일이긴 하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자기 가족들은 굶어 죽지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앞으론 어떻게 하죠?”
애란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냥 저 필리핀이나 홍콩 같은 데로 팔려가는 게 나을 뻔했어요.”
인화는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엉뚱한 말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병달이 격앙된 얼굴로 인화를 쳐다봤다.
“길림성에 있는 엄마 아빠랑 동생한테 분명 해꼬지를 할 거예요.”
중국에서 가장 무서운 조직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었다.
봉수는 괜히 벌집을 쑤셔 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럼 그런 놈들한테 끝없이 굴복 당합니다. 그럴 순 없어요. 가족들 한국으로 데려와요.”
진국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봉수와 병달, 애란 심지어 인화까지 놀란 눈으로 진국을 쳐다봤다.
“아무리 너를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봉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뭐가요?”
애란이 인화의 손을 잡은 채 눈을 반짝였다.
인화 역시 눈물을 훔치고 진국을 쳐다봤다.
진국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뭐가?”
“아니 어쨌든 그 놈들은 네 명 아니었냐? 그렇다고 우리가 뭐 도와준 일도 없고 말야.
너 혼자 네 명을 다 상대한다는 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얘기지. 그런데 이번엔…. ”
애란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인화가 목례를 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냥 택견 좀 배운 거야.”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단 말야. 대학 다녀야지, 졸업하곤 취업 공부했지.
언제 택견을 배웠냐 이 말이야. 그것도 아주 수준급인데. 일본 일도 수상하고.”
“그게 말이야.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말해줄게.
아무튼 어려서부터 그냥 호신용으로 배운 거야.”
진국은 얼버무렸다.
지금 이 자리가 진국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문제는 진국이 꺼낸 말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북경에서 탈북자들 돕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에게 연락을 하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밤 안으로 연락을 취해 볼게요.”
봉수는 더 이상 그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인화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진국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그냥 ‘코지’ 직원일 뿐입니다.”
봉수는 진국을 쳐다보며 그가 ‘대부’라는 영화에 나온 그 대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철저하게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이었다.
친구로선 그만이었다.
봉수는 시계 바늘이 여섯 시를 가리키기 무섭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퇴근하시게요?”
병달이 봉수를 쳐다봤다.
“오늘 시골에서 어머님이 올라오시거든.”
“고성에서요?”
“모처럼 올라오시는데 저녁이라도 대접해 드려야지.”
봉수는 진국과 애란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봉수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봉수는 주차장 출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한잔을 다 마시고 다시 한잔을 리필할 즈음 진국의 흰색 아반떼가 주차장 출구로 빠져 나왔다.
‘6362, 진국이 차 맞네.’
봉수는 차량 번호까지 확인한 뒤 부리나케 뛰어내려갔다.
진국의 차가 막 카페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다행이 진국의 차가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정지했다.
봉수는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저기 흰색 아반떼 보이시죠? 6362번 말이에요.”
“보입니다.”
“저 차 뒤를 놓치지 말고 쫓아가 주실 수 있겠죠?”
“형사분이세요?”
“그런 건 묻지 말고 쫓아가 주실 수 있죠?”
“말이다 뿐입니까? 제가 이래뵈도 총알 출신입니다.”
총알 택시를 몰았다는 말일 터였다.
“적당히 거리를 두셔야 돼요.”
“아따 기본이죠.”
택시 기사도 적당히 신이 난 모양이었다.
진국은 차를 몰고 안국동 쪽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경험자인 듯 진국의 차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진국은 조형미술관 부근의 주차장에 차를 정차 시켰다.
봉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 일당은 책임져 드릴 테니 기다려 줄 수 있죠?”
봉수는 택시 기사에게 부탁했다.
“미터기 켜 놓고 기다립니다.”
“알겠습니다.”
봉수도 차에서 내렸다.
진국은 조형미술관 뒷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봉수는 멀리서 그의 뒤를 밟았다.
날이 추워진 덕에 코트를 꺼내 입었는데 깃을 세우니 요긴하게 얼굴을 가릴 수 있어 좋았다.
진국은 어느 5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과 2층은 전시실이었고 3층부터는 일반 사무실인 듯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진국이 어디를 찾아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봉수는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간판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간판이 하나 있었다.
‘동북아문제연구소’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진국이 들어갔을 법한 곳은 ‘동북아문제연구소’ 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이인화의 가족들을 데려올 계획을 짜는 모양이었다.
‘혼자 저렇게 날뛴다고 될 일인가?’
봉수는 진국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의심스러웠다.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였다.
봉수는 건물 입구가 보이는 골목에 서서 진국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봉수의 목적은 진국이 사는 집을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날은 이미 깜깜했다.
봉수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진국이 건물로 들어간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이렇게 추운 날씨에 내가 뭔 짓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할 즈음 진국이 건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사내가 진국을 배웅했다.
그는 진국에게 매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진국보다 족히 열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사내였다.
진국이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봉수도 택시에 올라탔다.
진국의 차는 광화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봉수는 택시의 요금기를 슬쩍 훔쳐보았다.
3만원이 훌쩍 넘고 있었다.
‘젠장,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진국이 실체를 알아서 뭘 어쩌겠다고.’
봉수는 괜한 회의가 일었다.
“북촌 쪽으로 향하는 데요.”
택시 기사가 진국의 차가 가는 방향을 보고 말했다.
진국의 차는 경복궁 담장을 끼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북촌, 조선시대 높은 양반들이 모여 사는 동네.
아직도 예전의 권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집들이 꽤 모여 있는 동네였다.
상민들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지나 다녔다는 동네였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고 청와대 부근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사복차림의 의경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국은 어느 가로등 아래에 차를 멈추었다.
그리곤 차를 주차 시켰다.
“여기가 끝인 듯 합니다. 차 대는 폼이 주차는 폼인데요.”
봉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진국은 약간 언덕진 길을 올라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벗어나자 진국의 모습이 사라졌다.
봉수는 이왕에 온 길이니 사는 곳이라도 정확하게 알아두자고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다음 가로등이 나타나는 지점까지 쫓아 올라갔지만 진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은 사거리를 비추고 있었는데 어느 방향에도 진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사거리를 중심으로 담 높이가 족히 2m는 되는 집들이 즐비했다.
‘이 집들 중 하나?’
봉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 집의 담이 이편에서 저편의 골목까지 이어질 만큼 큰집들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머리가 짧은 사내 2명이 봉수 앞에 불쑥 나타났다.
“뭐, 뭡니까?”
봉수는 잔뜩 경계를 하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신분증 좀 보여 주십시오.”
“당신들이 뭔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그럽니까?”
“경찰입니다.”
사내 중 한 명이 품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냈다.
봉수는 하는 수없이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신분증을 받은 사내는 무전기로 봉수의 신원을 조회했다.
“이 동네 사시는 분도 아니면서 여긴 어쩐 일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를 가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봉수는 화를 벌컥 냈다.
그리곤 사내의 손에서 신분증을 나꿔채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괜한 짓을 했다 싶었다.
진국이 어떤 인물이든 간에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괜한 시기요, 질투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봉수는 씁쓸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 뭐해?”
오랜만에 듣는 송화의 목소리였다.
울컥 그녀가 보고 싶었다.
봉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송화가 말한 곳으로 달려갔다.
송화 곁엔 수영과 또래의 남자 두 명, 그리고 여자 한 명이 같이 있었다.
“진국 오빠는 연락이 안 되더라.”
수영의 얼굴이 뽀로통했다.
“바빠서 그럴 거야.”
봉수는 조금 전까지 진국을 쫓아다닌 걸 생각하곤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아니다, 아무 것도. 참 친구들이야?”
봉수가 송화와 수영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봉수의 말에 한 사람씩 자신을 소개했다.
“실은 말야…”
송화가 봉수에게 가깝게 다가들며 팔짱을 꼈다.
“술값 모자라는구나.”
“어머, 어떻게 알았어?”
“입에서 애교 냄새가 폴폴 나는데.”
“역시 우리 오빤 짱이야.”
일본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이런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봉수는 그들이 마신 술값을 계산하고 나와 모두를 참치 집으로 데려갔다.
일본에서 모델 노릇을 해주었는데도 회사에선 공식적인 어떤 수고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 동안 중경은 대리로 진급을 했는데 봉수와 진국만은 아직 일반 사원이었다.
“오빠, 진국 오빠 이상한 거 알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봉수가 동지를 만나듯 반갑게 말했다.
“오빠 그치?”
수영이 정색을 하고 나오자 봉수는 아차 싶었다.
“농담이나 슬슬 하고 치마만 둘렀다 하면 침 흘리고.”
봉수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게 아냐.”
송화와 친구들은 봉수와 수영의 이야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참치를 먹으며 떠들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 뭐가 이상한데?”
봉수는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진국 오빠 말야. 우리랑은 뭔가 다른 사람 같아.”
“다르긴 뭐가 달라.”
“아무튼 특이한 사람이야. 남들은 그냥 넘기는 일도 꼭 참견한다니까.”
봉수는 이인화의 일이 떠올랐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게다가 중국의 삼합회라는 무시무시한 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도 다칠 수 잇는 일이었다.
“그것도 꼭 돈 안 되는 일, 남 좋은 일 그런 것만 말야.”
“그거 좋은 거 아니냐?”
봉수는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해 놓고 생각하니
오늘 저녁에 진국의 뒤를 쫓았던 일이 부끄러워졌다.
봉수는 진국이 오성그룹의 숨겨진 막내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이 다르긴 하지만 그건 다른 내막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국 오빤 바쁜가 봐? 보고 싶은데.”
“전화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