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3장 충돌기 9

오늘의 쉼터 2014. 12. 17. 11:19

제3장 충돌기 9

 

 

 “박 과장 언제 이런 데는 알아놨어?”


차 실장이 창 밖을 내다봤다.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차 실장의 차로 양지쪽으로 왔던 것이다.

 

“다 접대를 위해 미리미리 알아 놓은 겁니다.”

 

차 실장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 집에는 야근 때문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미리 전화를 해둔 터였다.

 

대리운전 기사는 차를 차고에 집어넣었다.

 

네 사람이 찾아간 곳은 사람이 없는 무인 시스템의 모텔이었다.

 

주차를 시키고 주차장의 셔터를 내리면 차량 번호도 알아낼 수 없는,

 

그런 완벽하게 독립된 구조의 모텔이었다.

 

“오늘 어떻게 할건가?”

 

“실장님이 일 끝내시고 나오시면 다시 대리 불러서 나가야죠. 애들은 택시 태워서 보내구요.”

 

박 과장 곁에는 러시아 여자가 착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눈치로 때려잡은 일이지만 두 여자는 이런 경험이 이미 여러 차례 있는 듯했다.

 

차 실장은 박 과장과 헤어져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계단 입구에 서서 문을 열자 바로 방으로 이어지는 현관이 나왔다.

 

정말로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 현관 왼편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이 곳으로 돈을 넣어주세요.’

 

차 실장은 그제야 시스템이 이해가 되었다.

 

사람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실내 인테리어도 제법 그럴 듯하게 꾸며놓았다.

 

모텔 방이라기 보다 안방 같은 분위기였다.

 

“오빠, 나 씻어.”

 

나타샤는 그제야 차 실장의 팔에서 떨어졌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졌다.

 

속옷마저도 거침없이 벗었다.

 

벗은 몸을 보니 더 길어 보였다.

 

나타샤가 욕실로 들어간 뒤 차 실장은 침대 위로 벌렁 누웠다.

 

‘콘돔은 있나?’

 

차 실장은 문득 그 생각이 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바로 윗서랍에 열 개짜리 콘돔 박스가 들어 있었다.

 

차 실장은 콘돔을 꺼내 들고 욕실 쪽을 바라보았다.

 

‘러시아 개방된 후에 급속도로 에이즈 환자가 늘었다는데 저 년은 괜찮은가 모르겠네.’

 

그런 걱정이 앞섰다.

 

언젠가 ‘코지’의 러시아 진출 문제가 거론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러시아 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부를 했는데 그때 자료를 통해 읽었던 것이다.

 

10년쯤 전의 자료였다.

 

‘그때 저년이 아홉 살이었으니까 깨끗하겠지.’

 

차 실장은 콘돔 박스를 침대 위에 던졌다.

 

잠시 후 나타샤가 나왔고 차 실장이 욕실로 들어갔다.

 

차 실장이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와 보니 나타샤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차 실장도 알몸이었다.

 

“어서 와.”

 

나타샤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섹시한 몸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차 실장의 물건이 하늘을 향해 벌떡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나타샤가 깔깔거렸다.

 

차 실장은 걱정이나 염려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듯 나타샤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몸을 던지듯 뛰어 들었다.

 

박 과장은 여자 몸 위에서 내려왔다.


“왜 그래?”

 

여자도 일어나 앉으며 박 과장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무 크다.”

 

박 과장은 도무지 섹스를 하고 있는 맛이 나지 않아 포기를 한 것이었다.

 

처음엔 발기했던 물건도 축 늘어져 버렸다.

 

“과장, 니가 작은 거 아냐?”

 

그녀는 차 실장이 데리고 간 나타샤보다 한국말을 더 잘했다.

 

 박 과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한국 남자에겐 한국 여자가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자.”

 

“끝장을 봐야지.”

 

“혼자 해라.”

 

박 과장은 그 말을 남기고 욕실로 들어갔다.

 

여자가 욕실까지 따라왔다.

 

받은 돈 때문인지 잘 하려고 애를 썼다.

 

술집에서 차 실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한 여자에게 백만원씩 건넸다.

 

두 여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델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돈은 그녀들에게도 큰돈이었다.

 

여자가 거품 타월에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박 과장의 몸에 비누칠을 해주기 시작했다.

 

여자는 박 과장의 양물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졌다.

 

박 과장의 물건이 다시 서서히 발기를 했다.

 

“입으로 해줘?”

 

상식 밖의 돈을 지불하게 되면 상대방은 때론 종이 될 수도 있다.

 

뇌물이 적정한 금액이면 모르겠지만 뇌물을 받는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전달하면 그건 명령이 되는 이치와 비슷했다.

 

여자는 박 과장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물을 뿌려 비눗물을 씻어낸 뒤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 느낌은 그녀의 몸을 올라탔을 때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흥분 지수도 높았고, 조이는 맛도 환상적이었다.

 

웹 서핑 중 찾아낸 짜릿한 포르노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박 과장은 금방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박 과장이 욕실에서 나와 담배를 꺼내 물 때 차 실장의 방에서 전화가 왔다.

 

“다 끝났는가?”

 

“네.”

 

“그럼, 가지.”

 

“대리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애들은 택시 태워 보내구요.”

 

박 과장은 양복 윗저고리에서 수첩을 꺼냈다.

 

위성 택시를 먼저 부르고 대리 기사를 불렀다.

 

여기 온 지 두 시간 남짓 흘렀다.

 

‘하, 두 시간에 백만원짜리 여자라.’

 

박 과장은 욕실에서 나오는 여자의 몸을 다시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평생을 살아야 저런 몸매의 외국인과 잠자리를 가질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박 과장은 왠지 씁쓸했다.

 

택시로부터 호출이 왔다.

 

박 과장은 차 실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박 과장도 택시비를 주며 여자를 보낸 뒤 차 실장의 방으로 건너갔다.

 

“어떠셨어요?”

 

“너무 싱거워.”

 

“커서 그렇겠죠.”

 

“그러게 말야. 잔뜩 기대를 했는데,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차 실장은 갈비를 뜯고 막 식당에서 나온 듯 입맛을 다셨다.

 

차 실장의 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박 과장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새벽 3시.


‘마누라 또 잔소리하겠네.’

 

박 과장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개봉동이오.”

 

택시 뒷좌석에 앉자 삽시간에 피곤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어진 때문인 듯했다.

 

박 과장은 맥없이 흘러가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머잖아, 정리 해고가 있을 텐데. 차 실장을 믿고 따라도 되는 건지.’

 

박 과장의 요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정리해고였다.

 

사십 대 초반의 나이에 정리해고를 당한다면 뭘 할 수 있을 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위로금이라고 해야 삼천 만원 내외라는 소문이 돌았다.

 

박 과장은 차라리 퇴직금이 있던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 연봉제로 바뀐 뒤 한몫에 손에 쥘 수 있는 돈으로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할 게 없었다.

 

“요즘 힘드시죠?”

 

택시기사가 룸미러로 뒤를 쳐다보며 뜬금없이 물었다.

 

택시 기사의 뒷머리를 보니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힘들죠. 정말 경기도 안 좋죠.

 

실력 좋고 빠릿빠릿한 신입사원들 끝없이 들어오죠.

 

위에서 정리해고 한다고 하죠.

 

요즘은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라니까요.”

 

박 과장은 진실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면 가야 할 직장이 사라져 버리고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일 때도 있었다.

 

“저도 택시 몰기 전에 대기업에 있었습니다.

 

좆 빠지게 일했는데 어느 날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퇴직금은 많이 받았거든요.

 

그 돈으로 체인 분식점을 차렸는데 네 달쯤 전에 다 말아 먹고 택시 몰러 나온 겁니다.

 

그 체인점 새끼들은 돈만 받아먹고 ‘나 몰라라’해 항의하러 찾아갔더니

 

아예 본사는 없어져 버리고.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박 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해고를 당한다면 앞이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자식들 얼굴이 떠올랐다.

 

큰놈이 중학생, 둘째 놈이 초등학생인데,

 

앞으로 두 놈을 어떻게 키워야 할 지 자신이 없었다.

 

“우리도 조만간에 정리해고를 한답니다.

 

그래서 술 먹다 보니 이렇게 늦었군요.”

 

“그렇죠. 술이 몸에 나쁘다지만 스트레스는 더 나빠요.

 

술로 스트레스라도 풀어야죠.”

 

“그게 아니라 접대성이 있는 술을 마시느라 늦었다구요.

 

뭐든 붙잡고 있어야 안심이 될 게 아닙니까.

 

그래서 나 짤리지 않으려고 아부하다가 이렇게 늦게 들어가는 겁니다.”

 

“나라가 어쩌다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요. 아이엠에프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지금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장만했었는데 죽을 맛입니다.

 

그 놈의 이자 때문에 말입니다.

 

1억을 융자받아 아파트를 장만하고 1년인가 있다가 해고를 당했는데 생각해 보십시오.

 

1억이면 이자가 한달에 60만원을 넘습니다.

 

그걸 두 달 세 달씩 밀리고 압류하네 마네하고. 집은 내놨는데 팔리지는 않고.”

 

박 과장은 그의 이야기가 콕콕 가슴을 찔렀다.

 

자신이라도 해야 별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커지면서 좀 넓은 평수로 집을 옮기느라

 

5천만원 융자를 받아 전셋집을 늘렸는데 내년이면

 

또 전세금을 올려줘야 할 판이었다.

 

아니면 월세로 전환을 해야만 했다.

 

이자에 월세에 아이들 사교육비에 월중 행사들에…. 골이 지끈거렸다.

 

“나도 언제 짤릴 지 모릅니다.”

 

택시가 어느새 개봉 고가를 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 일 말입니다.”


택시 기사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택시가 멈춘 곳에 마침 포장마차가 있었고 차고지가 광명인 터라

 

이래저래 두 사람이 죽이 맞았던 것이다.

 

“저 정말 뼈빠지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한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저도 회사 다니고 있지만 뭘 하며 살았나 싶을 정돕니다.”

 

박 과장이 꼼장어를 입에 넣고 와드득 씹어댔다.

 

“박 형, 하루에 몇 명이나 자살하는 지 아십니까?”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있어야죠.”

 

“공식적으로 사십 명 가까이 자살을 한답니다.”

 

“한 달에요?”

 

“박 형도 참 순진하시네. 하루에 말입니다. 하루에.”

 

박 과장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공식적인 발표가 그렇다는 거지. 비공식적으론

 

그 두 배에 이른다고 하더라구요.

 

그 자살하는 사람들 누구겠습니까? 다 우리 같은 가장들일 겁니다.”

 

택시 기사가 화가 난 듯 술잔을 들어 입에 부었다.

 

“박 형, 내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 마누라는 지급 노래방 도우미 생활하고 있수다.

 

그 짓도 찾는 사람이 있어야 도우미를 하든 지랄을 하든 할텐데

 

이젠 사람들이 아예 노래방엘 가지 않으니까 찾는 사람이 없지 뭡니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도무지 길이 안 보여요.”

 

박 과장은 그를 보며 적잖이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도 택시 기사는 퇴직금을 많이 받아 나온 편이었다.

 

박 과장이 지금 해고당하면 정말로 막막할 터였다.

 

‘내가 이러면 안되지. 정신 차려야 해. 내일, 벌써 오늘이네. 영어학원도 나가야 하는데.’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포장마차 주인이 영업 끝났다고 재촉한 후에야 박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벌써 거리는 희붐하게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술 취한 택시를 몰고 새벽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박 과장은 택시 기사와 헤어져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이라고 해봐야 아파트도 아니고 다가구 주택이었다.

 

그마저도 전세였다.

 

현관문에 키를 꽂아 여는 순간 박 과장은 맥이 빠졌다.

 

아내는 깨어 있었다.

 

“당신 도대체 지금 몇신 줄 알고나 다니는 거예요?”

 

박 과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여섯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 출근 안 해요?”

 

“오늘? 해야지.”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기나 했어요? 휴대폰은 왜 꺼놔요.”

 

박 과장은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무의식중에 휴대폰을 끈 모양이었다.

 

“여보, 나 몹시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저녁에 얘기하자.”

 

“얼굴을 봐야 얘기를 할 거 아니에요.”

 

아내가 발끈하며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애들이 깨든 말든 문을 거칠게 닫았다.

 

잠시 후 다시 안방 문이 열렸다.

 

“오늘 내 생일인 거 알고 있었어요?”

 

안방 문이 다시 거칠게 쾅 닫혔다.

 

“여보, 오늘 저녁 외식하자.”


박 과장은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북어국이 시원했다.

 

“내가 앓느니 죽지.”

 

“낸들 술 마시고 싶어 술 마시나.”

 

“아니 그렇게 충성한다고 회사가 알아주길 해요,

 

상사들이 알아주길 해요.”

 

아내가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었다.

 

아이들 키우느라 단둘이 외식하는 일이 없었는데 이번 생일만큼은

 

단둘이서 외식을 하자고 약속했던 말이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떠올랐다.

 

그래도 아내의 바가지가 서럽기만 했다.

 

“그만해.”

 

박 과장이 국그릇을 들고 훌훌 들이마셨다.

 

“정말 지긋지긋해.”

 

“그만하라고 했잖아. 나도 어쩔 수 없단 말야.”

 

“와이프 생일이라 일찍 가야 한다고 하면 누가 바보 취급한답니까?”

 

박 과장은 그 점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아내는 새벽부터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해.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내 생일 못 챙겨준 게 속상해서 그러는 게 아냐.”

 

박 과장은 바지를 입고 선 채로 양말을 신었다.

 

지금 나가면 겨우겨우 지각은 면할 듯했다.

 

가뜩이나 정리해고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판국에 지각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리 집 가장이 그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다니는데 걱정이 안 되겠어요?

 

앞 집 찬우네 아빠는 요령 있게 술자리도 잘 빠져 나온다는 데 당신은 그런 요령도 없어요?”

 

박 과장은 아내의 이야기를 귓등으로만 들었다.

 

서류 가방을 챙기고 넥타이를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여보, 제발 술 좀 작작 마셔요. 당신 쓰러지면 나 못살아요.”

 

아내의 말투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현관문 밖으로 나왔을 때 아내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내 생일 같은 건 안 챙겨줘도 좋아요. 제발 당신 건강이나 챙겨요.”

 

아내는 그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닫았다.

 

박 과장은 전철을 타기 위해 역사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역사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개찰구를 지나고 전철에 올라탔지만

 

왜 그런지 문득 쓸쓸하고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과장은 전동차 유리창에 되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 무슨 꿈을 꾸었었나 싶었다.

 

유리창엔 지치고 피곤한 사십대의 남자가 추레한 몰골로

 

전동차의 흔들거림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왜 사는 거지?’

 

박 과장은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긴 사는 거 같은데 도무지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이번에 정차할 역은 신촌 신촌 역입니다. 내리실 문을 왼쪽입니다.”

 

박 과장은 사람들을 비집고 전동차에서 내렸다.

 

다시 또 마을 버스를 타야 했다.

 

마을 버스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의미도 없이 살아도 되는 걸까?”

 

박 과장은 출근을 하느라 버스며 거리 등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넋두리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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