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배후의 조종자
임종휘는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들어 이무섭을 바라보았다
안경 속의 날카로운 눈매가 똑바로 이쪽을 향하자
이무섭은 긴장한 듯 온 몸을 굳혔다.
"기무사의 황인규 대령이라고 있어 군수 참모인데,요즘 패 바쁘게 돌아다닌다는데 ."
임종휘의 말소리는 낮고 느렸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명령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의 버롯이다.
토론이나 격의 없는 대화에서 이런 식의 말투를 썼다가는 말이 중간에서 잘리거나 큰 소리에
묻혀 버릴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는 주위가 조용해져야만 하고 끝까지 들어야만 한다는 것에 본인이나
주위의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었다
"황인규는 안기부의 고성섭과 맥을 통하고 있어. 고성섭은 김원국과‥‥‥‥
임종휘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찻잔을 들고 한모금 홍차를 삼켰다.
무플 위에 두 손을 얼은 이무섭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임종휘는 한때 대통령 다음으로 군을 좌지우지하던 국방 담당 보좌관이었다.
그의 손에 의해 슬한 별이 태어났거나 유성처럼 떨어져 갔다.
그는 5년 동안 실제로 군을 통솔한 사람이었다.
임종휘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령관한테 말해 놓았어. 곧 전방 사단으로 전출될 거야.
하지만 그 친구가 이제까지 알아 놓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각하,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이무섭이 입을 열자 임종휘가 보일듯 말들 머리를 저었다.
"기무사 참모여서 그 친구가 어떤 보안 장치를 해놓았는지도 알 수 없어.
서툰 행동은 안돼, 이 대령 ."
"그 친구는 자네와 비슷한 점이 많아. 훌름한 군인이야.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배경이 없다는 것인데."
"배경이 없어야만 출세하는 세상이 되었어, 요즘은. 그래서 제 각각이라 통솔이 안된단 말이야."
말이 자꾸 비약해 가고 있었으므로 이무섭은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임종휘는 새로운 정권 아래서 떨어져 나간 별들의 대부였다.
그는 지금 이태원의 별장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미국의 국방부 고위급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귄에서도 그를 함부로 취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손을 통해 』년 동안 한국에 들여온 군수품과 병기는 그 액수가 천문학적이었다.
그러나 임종휘는 직접 감사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난 자네를 신뢰하고 있네. 자네는 내 오른팔이야. 다만‥‥‥‥
임종휘가 안경 속의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의 불만을 알았고, 그것을 계기로 자네를 내 사람으로 했지만,
내가 지금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자네가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
"각하, 말씀 안하셔도 알고 있습니다. "
이무섭이 번책 머리를 들었다.
"저는 제 행동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사내입니다. 저는 권력과 금력에 집착이 있고 각하를 만나 그 기회를 얻었습니다. "
그의 말소리가 넓은 응접실을 울렀다.
"저는 이제 그 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것은 제가 표면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고 있지 않나? 그렇지?"
"그렇습니다. "
"강한석 장관이 다음달에 당 대표 후보로 나설 거야. 대의원 선거를 거치겠는데
지금 당 대표인 한영수씨와 경합하게 돼. 자네도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
"나는 강한석씨를 밀어 줄 생각이야. 그도 내 힘을 필요로 할 것이고.
"그 힘의 원천은 이제 자네에게 있네 비록 밤 세계의 힘이지만 우리는 추상적인 힘이 아니라
실제로 힘을 쥐게 되었어."
임종휘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거기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체제도 보다 새로워져야 하고 군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돼."
"그렇습니다. "
"이제 자네의 총알받이로 내세웠던 울타리들을 치워 버릴 때가 되 었어.
오래 놔두면 성가셔질테니까."
"박용근이가 밤 세계의 건달들을 모으고 있더군. 자신의 위치에 불안감을 느끼는 모양이야."
임종휘는 국가의 모든 정보 기관을 통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빠른 정보만이 현대전의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말해 왔고 지금도 그는 고급의 정보를
언제나 빠르게 쥐고 있었다.
"약삭빠론 사람이지. 군의 생리도 아는 사람이고. 조심해야 할 거야. "
"염려하지 마십시오, 각하."
"정기욱이가 요즘 얌전히 지내고 있는데, 김동천이가 행방불명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지?"
"김동천이는 김원국의 조직에 잡혀갔습니다. 그후로 겁이 난 것 같습니다. "
"애초에 바람막이로 썼지 그 이상은 기대하지도 않았어."
"업체를 일곱 개 직접 경영하는 데다가 몇 개 지역을 떼어 달라고 합니다. "
"업체들의 소유주는 다른 사람으로 등기 이전 했겠지?"
"물론입니다. "
임종휘가 슬책 머리를 들어 이무섭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이윽고 이무섭이 머리를 숙였다.
창 밖에서 새울음 소리가 났다.
서울 시내의 한복판이지만 대지가 500평이 넘는 데다가 정원 한쪽은 곁은 숲이어서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철우가 불씨를 던져 놓고 돌아봤어."
문득 임종휘가 입을 열어 방안의 정적을 깨었다.
"김원국의 처자식을 죽이고 강만철을 죽였으니,
놈이 잠자코 있지 않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각하."
"놈이 섬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가 째 오래 되었다는 거야.
놈이 서울에 와 있을지도 몰라."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놈이 그놈이야. 놈은 이제 거리를 활보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찾아내야 돼."
"염려하지 마십시오."
"씨를 없애야 돼.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야. 조그만 불씨도 남겨 두어선 안돼."
임종휘의 목소리가 단호해겼다.
똑바로 이무섭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勢은 입은 야무지게 닫혀져 있다.
이무섭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숙였다.
임종휘가 말을 이었다.
"이철우가 김칠성의 처를 풀어 준 것도 유감이야. 큰일을 맡길 인물이 못돼, 그놈은."
"각하,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
"진작 처리되었어야 했어, 그 여자."
"자네라도 손을 썼어야지."
"각하, 집에 사람을 보냈습니다만 어느 틈에 피신을 해버리고 없었습니다. "
"그것봐. "
임종휘의 이맛살이 제푸려졌다.
"제 남편한테 털어놓을 거야, 그 여자. 제 남편한테로 도망친 거야. "
문이 열리는 기척에 한세라는 머리를 돌렀다.
그리고는눈을 치켜 뜨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김칠성이 들어와 등뒤로 문을 닫았다.
"당신 . "
한세라의 두 눈에 금방 물기가 고였다.
"나, 어첫밤에 왔는데, 와보지도 않구."
잠자코 다가온 김칠성이 그녀의 앞에 멈추어 싫다.
한세라는 팔을 벌려 그의 상반신을 안았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 한세라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어느 사이에 김칠성의 두 팔이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
귓가에 김칠성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런데, 놈들이 보내 주었어?"
한세라가 상체를 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두 눈이 크게 뜨여져 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그럼 도방쳐 온 거냐?"
"응. "
한세라가 머리를 끄덕이며 눈물 젖은 얼굴을 김칠성의 가슴에 밖았다.
"도망쳐 나봤어요, 감시하는 사람들 몰래 ."
"어딘데?"
"모르겠어, 밤에 도망쳐 와서."
"어느 부근인지는 알 것 아냐?"
"기억이 안 나. 택시를 타고 오면서 쓰러져 業으니까. 내려 보니까
집이야."
김칠성이 두 손으로 그녀의 양쪽 팔을 움켜쥐고는 물끄러미 내려 다보았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 파리하게 야위어 있었다.
한세라가 입을 열었다.
"영옥이가 날 몰라봐. 여기 데리고 오는데 막 울었어요."
"당신도 야위었어. 나 때문에 그했어요?"
김칠성의 두 눈에 금방 물기가 그득 고이더니 당황한 그가 얼굴을 치켜들었으나
두 줄기의 눈물이 콧날 좌우로 흘러내렸다.
아랫글술을 깨문 한세라가 딸꾹질을 하더니 다시 그의 가습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소리내어 울었다.
"이것봐, 그쳐 ."
한세라의 어깨를 잡아 상반신을 떼어낸 김칠성이 눈을 부릅됐다.
"난 형님 생각을 하고 울었어, 이것아,"
"너는 살아 와서 다행이야. 나는 그것이 고맙지만 미안하단 말이다. "
그는 이를 악물었으나 목구멍에서 웅웅거리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잔소리 말고 이곳에 있어, 입다물고. 살아 왔다고 유세하지 말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김칠성이 및하자 한세라가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선뜻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칠성이 현관으로 다가가는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머리를 돌리자 이재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웅남의 조치로 이재영도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한 손에 노랑색 대형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외출복 차림이었다.
"저, 큰형님한테 가시면 저도 데려다 주세요."
"오라고 하십디까?"
"네, 허락받았어요."
할수없다는 듯이 김칠성은 입맛을 다시고는 앞장을 셨다.
차 안에:들어가 앉아서도 둘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저, 축하 드려요. 사모님이 돌아모셔서 ‥‥‥‥
승용차가 바다를 끼고 국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아재영이 입을 열었다
"기쁘시겠어요."
"이쪽으로 피해 오신 것도 잘하셨어요.언론에서 내버려 두지 않을테니까요."
"피해 온 것이 아냐. 어느 놈이 미리 그렇게 일러 주었어."
김칠성이 뱉듯이 말하고는 이채영을 美아보았다.
"저 여편네는도망쳐 나온 것이 아냐. 그럴 리가 없어.놈들이 풀어 주었어."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놈들이 왜 풀어 주었는가를 말이야.
여편네는 도망쳐 왔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고."
이재영이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편네는 날 속이고 있어."
"오해하고 계시는지도 몰라요."
"그했으면 좋겠구만. "
김칠성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의 찌푸린 얼굴에 시선을 주었던 이재영도 잠자코 앞쪽을 바라보았다.
8개월 가랄게 납치되어 있던 아내의 무사한 모습을 보게 된 것에 대한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리즈 호텔에서 근무하던 김선주라는 직원이 있었어요.
저희 심부를도 해주던 직원이었는데 요즘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
이재영의 말에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말은 능선 위의 숲속이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아래쪽의 별장이 보였다.
그리고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오후의 랫살을 받아 빛을 반사하는 잔잔한 바다였다.
"그들은 이쪽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면 내버려두지를 않는군요."
이재영은 그가 앉아 있는 바위 아래쪽의 평평한 부뿐에 엉덩이를 걸쳤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이름 모를 활엽수의 커다란 나못 잎이 휴지처럼 땅바닥에 깔려
바람에 부스럭거렸다.
"저, 제가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썼는데요,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읽어 주시겠어요?"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대형 봉투를 바라보던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발표하게 되겠지. 그것이 신문 기사로건 책으로건간네."
"강 사장넘이 섬에서 습격을 받아 돌아가신 것은 이철우씨의 복수극이라고 썼습니다. "
"어떤 면에서 보면 이철우씨도 희생자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가족이 모두 이무섭씨가 보낸 사람들에게 살해당했지 않아요?"
이재영이 머리를 들어 김원국을 올려다보았다.
스웨터에 바지 차림의 그는 바다를 내려다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저, 밖에 나가지를 못해서 사회 분위기도 알 수 없고, 정보를 얻데도 한계가'있어서요."
이재영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았다.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제가 자초한 일인데요, 뭐 . 하지만 정보가 적어서 답답해요."
"이제 놈들은 밤 세계를 거의 장악했어.부산,대구 등
대도시의 조직들과 급속히 연계 작업을 하고 있지.
부산의 최충식은 일본으로 몸을 피한 모양이야."
음을 돌려 이재영을 내려다본 김원국이 말을 이었다.
"내가 소유했던 업체들은 모조리 공매 처분을 당해 박용근의 하수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거나 그전에 넘겨졌어. 난 이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조직원은 모두 사분오열이 되어서 뿔뿔히 를어졌고 움직일 수 있는 부하들은
채 백 명도 되지 않아."
"하지만‥‥‥‥
이재영이 머리를 들자 김원국이 입술의 한쪽 끝을 올렀다.
"보스급들도 타격을 많이 받았지. 조웅남은 총상을 입었었고
고태석이는 항소를 했지만 적어도 10년은 살게 될 것 같아.
거기에다 강만철이는 그렇게 되었고."
산등성이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 마른 나뭇잎들이 그들의 몸에 부및치며 떨어졌다.
"조웅남이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며칠 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사기가 떨어져 있어."
김원국이 머리를 들고 이재영을 바라보았다.
"놈들은 아마 날 잡고 싶겠지. 뿌리를 뽑으면 끝난다고 생각할데 니 까."
"그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놈들의 목표는 밤의 세계만이 아냐. 그것을 기반으로 보다 큰 것을 노리고 있어."
"그렇게 써. 우리도 놈들의 뿌리를 파헤쳐서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이야."
바위에서 일어선 김원국이 앞쪽으로 다가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그렇지, 아무것도 없는 지금이 시작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잃을 것도 없으니까."
따라서 몸을 일으킨 이재영이 그의 됫모습을 바라보았다.
"저,섬에는 누가 계신가요?"
이재영이 묻자 김원국이 몸을 돌렸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눈을 치켜뜬 얼굴이어서 이재영은 시선을 내렸다.
"모두 이쪽으로 오셨는데, 그쪽은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요."
"위험하지 않아."
바다를 등지고 선 김원국이 똑바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젠, 하나도."
"형님은 산에 가셨냐?"
조응남이 묻자 오함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예, 곧 내려오실 건데요. 그런데 만나시려구요?"
188 밤의 대통령 제2부 -ll
"만나기는 월, 맨날 보는디 "
그는 두리번거리며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외출복 차림이어서 오함마는 소파에서 일어졌다.
"형님은 어밀 가시는데요?"
"나도 바람 책러, "
"그러니까 어털 가시냐구요?"
걸음을 멈춘 조웅남이 머리만을 돌렸다.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뚜렷이 드러났다.
"지기미 씨발놈이 웬 간섭이여, 간섭이?"
"간섭이 아님니다, 형님, 큰형님 명령이라구요."
오함마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성큼 걸어 조웅남의 앞에 와 셨다.
"외출하실 때는 허락을 받고 가셔야 해요. 제가 혼납니다. "
"그러은 니가 흔나라."
"글쎄, 형님 ."
그러자 옆방문이 열리면서 김칠성이 밖으로 나았다.
바깥의 소란 을 듣고 나온 것이다.
현관 근처에 서 있던 두어 명의 부하들이 굳어진 얼굴로 이쪽저쪽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형님, 어털 가시든 큰형님께 말씀이나 하고 가세요.
저하고 같이 갑시다. "
김칠성이 다가와오함마의 옆에 서자조웅남의 얼굴이 차층붉게 달아올랐다.
수염을 玲지 않아서 길고 짧은 털들이 얼굴 전체에 지저분하게 깔려 있었고 입에서는
숨을 별을 때마다 역한 술냄새가 새어 나왔다.
"이런 씨발놈들이 인자는 ◎거지로 나서는고만. 절로 안 비켜?"
"형님, 제발." 어깨를 세우 오함마가 사정하며 주춤 한걸음 다가딘다가
조웅남이 면서 주먹을 취자 다시 한걸음 물러났다.
-좋은 말 헐 때 비켜나, 이 시키들아."
"형님, 정말 이러실 거요?"
한마디하며 앞으로 한걸음 다가선 것은 김칠성이다.
그는 두 눈을 부릅를 데다가 블까지 부풀리고 있어서 마악 싸울 것 랄은 험한 얼굴이었다.
"얼라? 이 시키 봐라? 어메?"
조웅남이 김칠성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목을 부러뜨려 죽인 적도 있는 무서운 악력이다.
그러나 김칠성도 잠자코 있지만은 않았다.
두 손으로 조웅남의 팔을 움켜쥐고 힘을 쓰자 잡힌 목이 조금 풀려났다.
"이 씨발놈이!"
더욱 분기가 치솟아 오른 조웅남이 주먹을 쳐들어 단숨에 김칠성의 면상을 칠 것 같은
자세를 취하자 이제는 오함마가 달려들어 그의 다른 쪽 팔을 쥐었다.
"안 놔! 이거 안 놓을텨!"
집안이 들색이도록 고함을 치던 조웅남이 그 자세로 현관을 항핸 두 걸음쯤 때었다.
김칠성과 오함마가 질질 끌려 왔으나 조웅남은 더 이상 나가지는 못했다.
"느그들 죽을티 여?"
다시 조웅남이 악을 쓰자 겨우 조웅남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김칠성이 따라서 소리쳤다.
"죽이쇼, 차라리 ! 나도 살 생각 없시다, 인제는."
조웅남이 김칠성을 향해 다시 덮쳐 가자 오함마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안았다.
"형님, 정말 이러실 거요?"
등에 매달린 오함마가 소리치자 김칠성이 조웅남을 노려보았다.
"마음은 형님만 아픈지 아시오? 어린애처럼 이러지 말란 말입니다. "
"첫이여? 내가 언내라고?"
마침내 조웅남의 주먹이 김칠성을 향해 날았으나 빗나가는 바람에 벽을 쳤다.
조웅남은 몸을 세차게 흔들어 등에 붙어 있는 오함마를 떼어냈다
"난 얼매 동안 안 들어을 거여."
현관문을 밀어 젖히면서 조웅남이 소리치듯 말했다.
"날 찾지 말어. 나도 죽었다고 생각혀 ."
"형님!"
오함마가 버럭 고함을 쳤으나 김칠성은 허리에 두 손을 댄 채로 조웅남을 쓰아보았다.
문이 세차게 닫히고 조웅남이 현관 밖으로 사라지자 오함마와 김칠성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형님한테 보고해야했어 "
오함마가 서두르듯 말하자 김칠성이 머리를 저었다.
여전히 눈을 부릅몰 얼굴이다.
"내버려 둬, 제 멋대로 하라고."
힐끗 김칠성에 시선을 준 오함마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김칠성은 셔츠의 깃을 세우면서 소파로 돌아봤다.
밖에서 승용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석이 탄 승용차가 움직이자 박동호는 몸을 돌렸다.
현관 앞에 나와 서 있던 경찰청의 간부들도 제각기 안쪽으로 흩어져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 이 과장, 나 즘 봅시다. "
박동호가 그들을 향해 말하자 이정환이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와 졌다.
"나하고 이야기 즘 합시다. "
"알겠습니다, 청장넘 ."
간부들이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으므로 이정환의 얼굴이 범및해 졌다.
보름 전에 신병을 이유로 사퇴한 하석재의 후임으로 박동호는 경찰청장에 임명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장의 집무실인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복도를 걸어 집무실 안에 들어설 때까지 박동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마른 얼굴을 치켜들고는 결은 눈으로 어느 한곳만을 딘아볼 뿐이어서 이정환은 점점 긴장이
되었다.
하석재에게 밀려 치안감을 끝으로 곧 퇴직할 줄 알았던 박동호였다.
연초부터 시작되었던 밤 세계의 격변이 그에게는 출세의 기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가 내무장관 강한석의 강력한 추천으로 청장이 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차장으로 있던 조동철을 젖히고 청장으로 승진하면서 직급도 치안총감이 된 것이다.
"거기 앉아요."
굵은 목청으로 박동호가 앞쪽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정환은 자리에 앉았다.
청장의 집무실은 이정환에게는 자주 들어을 기회가 없다.
번들거리는 목제 가구와 책장, 그리고 넓은 면적은 경찰총수의 집무실로서 손색이 없었다.
"내가 당신한테 몇 가지 지시할 일이 있어서 불렀는데."
박동호가 다시 말을 내렀다.
"네, 청장넘 ."
상체를 반듯이 세운 이정환이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경찰청이나 언론은 이번의 사건을 '김원국 조직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김원국 사건을 맡은 실무 책임자로서 이정환은 박동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고 볼 수는 없다.
덮어 두려고 했고, 본질을 캐려고 하지 않는 그의 지시를 어겼을 때도 많았던 것이다
"정보에 의하면 김원국이 한국에 잠입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거야.
이 과장,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박동호가 검은 눈을 들어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못 들었습니다, 청장넘."
"이건 고급 정보일세. 그리고 김원국은 잠자코 성에 눌러앉아 있을 놈이 아냐.그렇지 않은가?"
"네, 그것은‥‥‥‥
"사회에 이롭지 않은 자지.해가 되는 사내란 말이야.
그자를 찾게. 전 수사력을 동원해서."
"잘 알겠습니다, 청장넘 "
"어차피 이 사건은 처음부터 자네의 소관이었어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볼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지레가 마무리짓는 것이 자네를 위해서도 딘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감사합니다, 청장넘 ."
"이것은 조금 전에 장관께서도 특별 지시를 하고 가신 일이야. 책임감을 느껴 야 하네 ."
"알겠습니다, 청장넘 ."
"그것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니까, 장관이나 나는 기대가 크네."
"알겠습니다, 청장넘."
"시끄럽게 수사하면 안돼.은밀하게,그렇지만 전력을 다해서 수사해야 하네. 내 말 알아듣겠지?"
"네 , 청장넘 ."
이런 식의 분위기면 사건이 해결되면 경무관 승진은 맡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안기부의 정보 협조는 받을 필요가 없어.지난번에 해보 았지만 혼선이 심해서 위에서
꾸중만 들었어."
이정환이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국내 사건에 관한 일이야 앞으로는 우리 단독으로 처리하네,펼요한 정보는 내가 가져다 줄테니까."
"네, 청장넘."
"그리고 대한일보의 사회부 기자였던 이재영이라는 여자가 있어.
요즘은 휴가원을 내고 쉬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
"신문사고위층에서 연락이 왔는데 집에도 없고 친지한테도카지 않았다는 거야.
그 여자, 김원국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였어. 그 여자도 함께 찾게, 은밀하게 "
"01. "
"내가 최대한으로 협조하겠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날 찾게 ."
"감사합니다. "
박동호가 머리를 』1덕여 보였으므로 이정환은 자리에서 일어셨다.
방으로 들어선 이정환은 눈을 크게 뜨고는 얼굴에 웃음을 책었다.
"어, 출장이 일찍 끝난 모양이구만."
유혁근이 의자에서 일어났으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우리, 또 마빠지겠어. 한동안 잠잠한가 싶었더니 말이야."
자리에 앉은 이정한이 입맛을 다시며 유혁근을 바라보았다.
"금방 청장실에 불려갔다 왔어. 우리더러 김원국씨를 찾아내라는 거야, 이재영 기자하고."
"조웅남, 김칠성, 강만철 등은 수배중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은밀하게 진행하라는데, 전 수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골치 아프게 생겼어."
"전 아넘니다. "
유혁근이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전 10철 1일자로 영등포 경찰서 방범과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
"무엇이?"
이정환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리고 상체를 굽혔다.
"아니, 내가 아무 통보도 받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제가 사건에 너무 접근해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니,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이정환이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에 손을 뻗자 바로 유혁근의 손이 그의 손을 눌렀다.
"과장넘, 이러시면 안됩니다. 과장님은 초연해지셔야 합니다. "
얼굴이 달아오른 이정환의 두들한 턱이 가늘게 떨렸다.
유혁근이 말을 이었다.
"제 후임으로는 최순태 경감이 온다고 하더군요."
최순태라면 형사국에 있는 박동호의 심복이다.
이정환은 입을 꾹 다문 채 유혁근을 바라보았다.
"과장넘,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외람됩니다만 진정하셔야 합니다
저는 이철우의 가족에 대한 경비를 소홀히 한 책임을 지게 된 겁니다.
그렇게 아시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이정환은 유혁근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음을 느졌다.
"하지만 전 이 새로운 밤의 조직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비록 지역 경찰서로 밀려났지만 저는 끝까지‥‥‥‥
이정환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이놈들,테러뿐만이 아니라 대낮에 사무실에서 여직원을 강간하는 놈들입니다.
더구나 보스급이라는 놈이 ."
유혁근의 말소리가 방안을 다시 울렸다.
책을 덮은 김선주는 현관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D4l. "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라구요?"
문 앞에서 소리치듯 묻자 바깥에서는 잠시 대답이 없다.
그러자 김선주의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어이, 거기 김선주씨 맞지? 문열어 ."
바깥에서 다시 사내가 말했다. 김선주는 문의 자물쇠를 풀었다.
백동혁이 곁은 색 양복 차림으로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
그녀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따라서 인사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
현관에 선 그가 집안을 둘러보았다.
"친구는 어디 있어?"
"직장에서 아직 안 돌아왔어요."
20평형의 다가구 주택이어서 방 두 개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백동혁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더니
곧장 주방 옆에 놓여진 빈 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선주가 다가가 그의 옆쪽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냥 찾아왔어 ."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요?"
"그냥 알게 되었어."
이맛살을 찌푸린 백동혁이 집안을 둘러보는 시능을 했다
"이곳에 있으면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았나?"
"누가요?"
"내가. "
"난 당신한테서 도망친 것이 아녜요."
"그렇다면 안정태라는 그놈인가?"
"당신이 대학 동창중에서 이정희라는 여자하고 친하게 지냈다는 것은
조금만 신경쓰면 알아낼 수 있어. 그 여자가 수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것도."
"안정태가 당신을 찾아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도 금방이야. "
"...
"그놈은 내가 접근해 오는 것을 기다리고-있어. 간이 큰놈인 모양 인데 ."
"여기 오신 이유는 뭐예요?"
그러자 백동혁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서울로 돌아가, 이런 데서 숨어 지내지 말고."
"싫어요. 난 여기가 좋아요."
"그까것 일 아무것도 아니야. 그, 뭐냐, 한강에 배 지나간 것 하고 같어 ."
김선주가 퍼뜩 눈을 치켜됐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더니
금방 하얗게 굳어지면서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래서 그 말 해주려고. 그리고 나 때문에 그놈한테 당한 것 같아서 말이야."
백동혁은 템범해진 목을 좌우로 두어 번 젓고는 어깨에 힘을 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까지 여자한테 마음 준 일이 없어. 그런데‥‥‥‥
"나가 주세요, 이제 그만."
김선주가 조그맣게 말했으나 백동혁은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이젠 내가 보호해 줄테니까 걱정하지 마 집에 있기 싫으면 다른 곳에 있어도 되고 말이야."
"필요없어요. 나가기만 해줘요."
"내가 원수도 갚아 줄테니까, 시원하게."
"내 말은, 내가 보호자가 돼주했다는 말인데,
그까짓것 가지고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나는‥‥‥‥
김선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백동혁은 눈 깜짝할사이에 팔을 뻗어 그녀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놀란 김선주가 눈을 치켜뜨고 입을 딱 벌렀다.
"이년아, 난 널 좋아한단 말이다. "
백동혁이 잇사이로 으르렁대듯 말을 텔었다.
"내가 그것이 문제라는 것도 잘 알아.
고태석이처럼 미끌미끌하지도 않고 어느 놈처럼 우격다짐도 못해.
그저 어중간해서 내가 생각해도 분통이 터져 ."
김선주는 그의 이마에 배어 있는 조그만 땀방울을 보았다.
아래쪽 으로 처진 눈두덩을 한껏 치켜올리고 있었으나 눈동자는 반쯤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 여자 하나는 어떻게든 간수하겠어,
내 목숨을 바쳐서 라도. 너를 위해서라면 그것도 아랄지 않을 것 같아. 어혀냐?
이런 남자가 어디 있어?"
"그래서 널 데려가려고 온 거야.
난 말장난은 싫으니까 네가 싫다면 끌고라도 가겠어 왜냐하면 너는 지금 나밖에 ‥‥‥‥
"팔 놓아요. 팔 아파."
갑자기 김선주가 입을 열었으므로 백동혁이 얼른 팔을 떼었다.
"짐 꾸리는 것 도와줘요. 박스가 있어야 하는데."
팔을 주무르며 그녀가 말하자 다시 백동혁이 컴기듯이 일어셨다.
"차 가져왔어, 애들도 있고."
"사람들까지는 필요없어요. 박스 세 개면 되는데 , "
"문제없어 "
옷자락을 날리며 백동혁이 현관으로 몸을 돌렀고 김선주는 방으로 들어셨다.
술잔을 내려놓은 황인규는 팔을 밀어 여자의 허리를 안았다.
"이봐, 2차 갈 때 네 집으로 가자. 설마 기둥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없어요."
여자가 그의 가습에 어깨를 붙여 왔는데 진한 향수 냄새가 풍겨 왔다.
"하지만 집이 멀어요, 시흥인데."
"시흥?그것 잘됐다. 내가 대림동이거든. 이거 우리는 한 시간쯤 시간을 벌었다. "
황인규는 비어 있는 손을 들어 여자의 가슴을 더듬었다.
"참모넘, 여기 잔 받으시지요."
김안선 소령이 위스키 병을 들고 말했다.
그의 긴 얼굴도 崙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도 더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내년 초에는 전방 부대로 전출시켜 달라고 하겠습니다. "
"경솔한 짓 하지 말어."
잔을 들어 한모금에 삼킨 황인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라도 부대에 남아 있어야 돼. 그래야 내가 돌아가는 사정이라도 알 것 아닌가?"
"아시면 뭐합니까?위에서 탁 막혀 있는데요."
김안선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는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참모님, 우리는 물먹은 겁니다. 아마 참모장이나 사령관이 눈치 채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황인규가 힐끗 옆에 앉은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젖가승을 그에게 맡긴 채로 젓가락을 들어
안주를 집어 먹고 있는 중이다.
진홍색 립스틱을 칠한 입술의 안쪽은 이미 살이 드러나 있었다.
김포에 있는 조그만 카페였고 우연히 들른 곳이다.
황인규는 여자의 젖가습에서 손을 빼고는 술잔을 쥐었다.
여자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에 술을 채줬다.
"눈치채고 있더라도 어쩌지는 못해, "
"참모님은 전방으로 전출당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린 핵심에서 멀어진 겁니다. "
"흥. "
황인규가 잠자코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독한 위스키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자 입에서 더운 김이 뿜어 나왔다.
김안선과 위스키를 세 병패 마시고 있었지만 좀체로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다.
앞쪽에 앉은 김안선의 얼굴은 근육의 긴장이 풀어진 상태였다.
그는 부대 내에서 단 한명의 믿을 만한 부하였다. 기무사에 전입 해 오기 전에 전방 사단에서
중대장과 소대장으로 갈이 근무한 인연이 있는 것이다.
김안선은 지난해에 소령으로 진급하고 나서 기무사의 정보 참모 보좌관으로 전입되었는데
그것은 황인규의 추천 때문이었다.
"아아, 빌어먹을."
김안선이 주먹으로 탁자를 쳤다.
그의 붉은 눈에는 물기가 가득 고여 있었다.
"억울합니다, 우리가 왜?"
"우리가 아냐, 나야, 자네는 아니고."
김안선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음모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음모를 파헤쳐야 합니다. "
"이봐, 너희들 나가 있어. 내가 부를 때 들어와."
황인규가 여자들을 향해 말하자 지겨웠던 참이었던지 그들은 재빨리 방을 빠져 나갔다.
"이봐, 함부로 그런 소리 하다가 큰일난다. "
이맛살을 찌푸린 황인규가 말하자 김안선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이무섭과 참모장, 사령관이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덮어 두실 겁니까?"
"어떻게 말이야? 익명으로 투서를 해? 장관한테?"
황인규가 머리를 저었다.
"믿지도 않을 것이고 장핀의 손에 전달될지도 확신할 수 없어."
"증거가 확실하면 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안기부의 협조 공문이 번번이 참모장의 손에서 보류되었다든가, 또‥‥‥‥
"참모장이 안가에서 신원이 확인 안된 사내들과두 시간동안 밀담을 나눈 일."
"그것 가지고는 부족해."
"이철우에 대한 기록이 처음에 분실되었다가 다시 나타난 일, 그것도‥‥‥‥
"이무섭의 기록은 아예 새것으로 바피 놓았습니다.
우리 요원들이 아니면 식별할 수도 없지요."
"참모님, 분합니다.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내가 할 일을 말입니다. "
"없어."
황인규가 머리를 저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술잔을 들고 잔에 든 술을 내려다보던 황인규는 술잔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가자. "
"그냥 가시게요?"
"무슨 소리야?오늘은 꽤 근사할 것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선 황인규가 김안선을 향해 웃었다
"작전중에는 그것이 열흘이건 한달이건 계속 서거든 이상하지만 내 그것은 그런 버롯이 있어."
샤워를 마친 여자는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로 다가왔다.
화장실로 가기 전에 제 손으로 붉은색의 조그만 전구만 켜놓아서 그녀의 온몸이 붉게 보였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납작한 젖가슴을 가진 여자였다
"어머나, 벗지도 않으시고."
여자가 머리에 두른 수컨을 벗으며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날려 황인규의 얼굴에 튀었다.
"넌 이 집에 산 지 오래 되었어?"
황인규가 묻자 여자는 손을 뻗어 그의 바지 지퍼를 끌어내렸다.
"일년이 조금 넘어요."
그래서인지 세간살이들이 제법 규모있게 자리잡혀 있다.
침대의 발치에는 25인치 텔레비전 세트와 비디오가 놓여져 있고 옷장과 경대,냉장고와 세탁기가
10평쯤 되는 오피스텔에 빈틀없이 장만되어 있었다.
여자의 손이 차가웠으므로 황인규가 하반신을 비틀었다.
"벗지 않으실 거예요?"
"너, 하고 싶어?"
"아저씬 하고 싶지 않아요?"
황인규는 팬티 속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손을 때내었다.
"나는 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돈은 낼테니까 조금 쉬었다 가도 되겠지?"
"마음대로 하세요."
여자가 손을 뻗어 스위치를 잡아당겨 전등을 켰다.
갑자기 방안이 환해졌으므로 황인규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저씨,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어요?"
상반신을 세운 여자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없어 ."
"제가 싫으면 그냥 나가셔도 되는데."
"그것도 아니다. "
취하지는 않았으나 머리가 半셔 왔으므로 황인규도 침대 받침에 등을 대고 앉았다.
저고리만 벗은 셔츠 차림이었다.
"아저씨, 입으로 해드려요?"
여자의 얼굴은 진지했다. 스물 넷이나 다섯쯤은 되었을 것이다.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경력이 3년쯤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1, 2년쯤 하다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이 틀림없다.
황인규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피스텔에 들어온 지 3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그럴 것 없다. 정식으로 하자."
"정식이 아니어도 좋아요."
"여자가 송곳니를 내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이미 황인규의 그것은 발기하고 있는 지 오래였다.
여자도 그것을 알고 있는 터여서 그의 몸과 말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여자는 서두르듯 황인규의 바지를 끌어내렸고 팬티를 벗겼다.
그리고는 그의 하반신에 엎드렀다.
"아니, 내가‥‥‥‥
황인규가 그녀의 머리칼에 손을 대자 여자는 입에 가득 그것을 물고는 머리를 저었다
여자의 가는 어깨뼈와 부드럽게 패인 등의 곡선이 보였다
황인규는 여자의 어깨를 장아 일으키고는 침대에 눕혔다.
물기가 묻은 입을 벌린 채 여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이마를 덮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010). "
황인규의 남성이 진입해 들어가자 여자가 커다람게 신음 소리를 뱉으며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it는 점점 행위에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반사적으로 허리를 오무리 거나
발을 들어 허공을 내지르기도 했다.
여자의 몸은 땀이 배어 끈적였고 황인규의 얼굴에서도 땀방울이 흘러 떨어 졌다.
"아저씨, 아저씨."
여자가 헛소리처럼 그를 부르며 그의 허리를 안았다가 엉덩이를 눌렀다.
이제 황인규도 그녀에게로 집중하기 시좌했다.
집중할수록 부딪치고 미끄러지는 피부의 촉감과 말초신경의 쾌감이 배가되었고
그녀 또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주는 동작으로 바뀌어 갔다.
거친 숨소리와 끈끈한 공기로 가득 業던 방안에서 길고 목메인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이윽고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저씨, 근사해요 정말로."
헐떡이며 여자가 황인규의 허리를 감짜 안았던 두 팔을 침대 위로 떨어뜨렀다.
"아저씨 같은 사람 처음이야."
그녀에게서 몸을 뗀 황인규는 벽시계를 올려다보고는 화장실로 들어싫다.
그가 대충 샤워를 하고 나와 바지를 입자 쯤짝하지 않고 누워 있던 여자가
눈길만 내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갈 거야?"
"그래, 시간 되었어."
그는 지갑에서 집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방을 나온 황인규는팅 빈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추어 셨다.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주위를 잠시 둘러본 그는 '내림'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재빨리 몸을 돌린 황인규는 다가오는 사내들을 美아보았다.
두 명의 사내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과시선이 마주 치자 앞장선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옷었다.
"황인규 대령넘이시지요?"
"그렇소."
황인규의 두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져 있었다.
사내들이 그의 앞에 싫다.
"저희들은 연락을 받고 왔는데요."
"누구 말이오?"
"모릅니다, 그것은. 저희들도 지시만 받았으니까요, 대령넘을 보호해 드리라고."
"그럼 당신들은 안기부 사람인가?"
그러자 사내즐이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아님니다, 저희들은.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클럽의 지배인이 었는데요."
"저기,오피스텔 옆쪽 골목에 검정색 승용차가한대 세워져 있었어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권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엘리베이터가 멈추고는 문이 열렀다.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싫으므로 황인규도 끌려가는 듯 들어셨다.
"저희들이 모두 잡아 놓았습니다.
그놈들, 독종이어서 두 놈은 크게 다쳤고 저희들도 한 명이 다쳤어요."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으나 황인규는 잠자코 숫자판을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세 놈 모두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으니까 어떤 놈들인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 "
클럽의 지배인이었다는 사내의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을 다시 울렀다.
"놈들은 박용근의 부하도, 정기욱의 부하들도 아넘니다.
악착같이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고성섭의 말에 이찬형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안정태의 조직에서 나온 놈이겠군."
"이무섭이 직접 보낸 놈인지도 모르지요."
이찬형이 다시 발을 떼었다
한낮의 랫별이 넓은 잔디밭 위에 포근하게 내리쪼이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어서 잔디밭의 이곳저곳에는 직원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잔디밭은 남산의 산자락과 이어져 있었는데 곁은 숲은 이미 윤기를 잃기 시작했고
진홍색 단풍잎만 생기를 피었다.
이찬형은 잔디밭 끝쪽의 나무 벤치에 랄았다.
"황인규 대령을 전방으로 전출시키는 것도 불안했던 모앙이군.
죽 이려고 했다니 ."
그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황 대령이 저한테 전화하지 않았었다면 당했을 겁니다. "
고성섭이 그의 옆에 앉았다.
"그가 심복으로 믿고 있었던 놈이 배신을 한 것이지요.
놈은 황 대령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를 확인했던 것입니다. "
"그렇다면 그놈, 김 소령인가 하는 놈한테서 나온 정보도 있을텐데, 그걸 믿을 수가 있을까?"
"황 대령의 이야기로는 그가 최근에 변절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마 참모장이 설득이나 협박을 했을 겁니다. "
"하긴 우리나 황 대령의 입장이 지금의 정권에 거슬리는 입장일 테니까."
이찬형은 물끄러미 앞쪽을 바라보았다. 잔디밭 건너편은 3층의 회색 빌딩이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정보를 총괄하는 곳이었다
"어제는 무사히 넘겼지만 황 대령은 조심해야겠어. 전방으로 가면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할텐데."
"그는 군인입니다. 기개가 있는 친구지요. 오늘 아침에 87사단으로 떠났습니다. "
고성섭도 그와 함께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도 이찬형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10월로 접어들었고 다음주에는 국회가 열리게 된다.
그때에는 대대적인 정계 개편이 있을 것이었다.
"경찰청의 수사관 이름이 뭐였지? 그 사람도 지역 경찰서로 좌천이 되었다면서?"
이찬형이 입을 열었다.
"네, 유혁근 경감이라고, 지난번 사건의 책임 수사관이었지요.
아마 황 대령과 같은 경우가 될 겹니다 "
"다음은 내 차례로군."
"않아서 기다리지는 않을 겹니다. "
이찬형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강상현이라고 아주일보의 편집국장이 운동권 출신이지요.
다리를 저는데 옛날에 끌려가서 맞았기 때문이랍니다. "
무슨 엉뚱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듯 이찬형이 입맛을 다셨다.
"지난번 김원국씨 업체들을 공매 처분하기 시작했을 때 아주일보가 째 신랄하게 비판했지요.
기억하십니까?"
"읽었어. 정부의 횡포라고 했더군. 의흑에 싸인 사건이라고도 했고. 하지만 곧 잠잠해졌지?"
"압력이 들어갔으니까요. 그리고 크리스틴 호델의 사건으로 여론을 거스를 수가 없었지요.
증거도 없었습니다. "
"아주일보에 기사를 주겠습니다. 강상현이는 실을 겁니다.
이철우의 계보,이무섭의 행동,그리고 김원국 조직의 대응 방법까지
아주 소상하게 쓴 넌픽션이 있습니다 "
"김원국측 이야기까지 말인가? 그건 누가 썼는데?"
"대한일보의 사회부 기자였던 이재영이라고,
그 여자가 김원국씨 조직과 함께 있거든요.
내일쯤 넘겨 받기로 김원국씨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
"그래, 그 여자가 이철우측의 공격을 받았다가 겨우 구출되었다고 했지 "
"그 여자는 저희들이 조사한 자료를 경찰청이나 대한일보에 넘겨 주었는데,
그것을 안 이철우가 습격했던 것이지요."
이찬형이 팔장을 끼고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고성섭이 말을 이었다.
"부장넘,그것이 실리게 되면 대통령 각하께서도 읽게 되실 겁니다.
우리의 보고서를 신문 지상을 통해 읽게 되시는 거지요.
아마 각하께서도 놀라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
"기사가 안되면 광고라도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 여기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내게 해달라고 합니다만."
"그것, 당찬 여자로군."
"그렇게 되면 한바탕 정국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재조사를 시킬지도 모르고 야당도 들고 일어날 겁니다. "
"안길중씨를 생각할 겨를도 없겠지요.
부장넘은 자리를 떠나실 펼요가 없습니다. "
"이봐, 내가 이 자리에 미련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나?"
"아님니다 필요한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
"강만철씨까지 죽어서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김원국씨 조직도 기운을 찾겠지요."
"김원국씨는 처자식을 잃었어, 눈이 뒤집혀 있을 거야."
분위기에 끌려든 이찬형이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김원국이 원고를 내려놓고 머리를 들자 터재영이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됐어. 과연 이것이 신문에 실리 될지 안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고차찰이 진행시켜 준다고 했으니까."
김칠성과 오함마가 머리를 들었다가 내렸다.
그들은 아직 읽는 것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우리 쪽을 미화시키지 않았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이 정도면 됐어 ."
"그렇지만 형님, "
김칠성이 원고에서 시선을 들었다.
"이왕 실릴 바에는 만탄 섬의 사건 전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번적 머리를 든 오함마가 김원국을 바라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안돼. 그럴 필요는 없다. "
김원국의 눈및이 강해졌으므로 김칠성은 시선을 내렸다.
"이대로만 해."
"네, 형님 ."
대신 대답한 오함마가 헛기침을 했다.
"형님, 이번 사건도 집어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황 대령의 습격 미수 사건 말입니다. "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이재영이 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오늘중으로 자백을 받아낼 수가 있습니다만."
"우선 자백부터 받아라 신문에 실을지는 이재영씨가 판단할테니까. 증거만 확보해 놓아라."
"알겠습니다, 형님 ."
"저, 그 사건이란 것은 뭐죠?"
이재영이 그즐을 향해 묻자 김원국이 머리를 끄격였다.
"황인규 대령을 습격하려던 놈들이 있었어. 황 대령이 눈치를 채고 안기부의 고 차장한테
연락을 했는데 대신 우리가 가서 놈들을 잡아온 사건이지 ."
"황 대령이 전방으로 전출된 일이나 유혁근 경감이 지역 경찰서로 좌천된 것은 놈들이
우리의 지원 세력을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야."
"전출도 부족해서.황 대령을 제거하려고 했군요?"
"유혁근씨보다 그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겠지. 배후에 가장 깊게 접근했을지도 몰라 "
자리에서 일어선 김원국이 원고를 이재영에게 건네 주었다.
오늘 들은 이야기를 보완해서 쓰려면 써 ."
김원국이 응접실을 나가자 그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저도 그 사람들 볼 수 없을까요?"
이재영이 김칠성과 오함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참고가 될 것 같아서요."
"좋시다. "
오함마가 머리를 끄덕였으나 김칠성은 잠자코 몸을 돌렸다.
그들은 응접실을 나와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부 사장넘, 아까 만탄 섬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김칠성의 등을 내려다보면서 이재영이 입을 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도 있나요?"
걸음을 멈춘 김칠성이 눈을 치켜뜨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없어 ."
그의 말소리가 거칠었으므로 이재영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니까 신경쓰지 마시오."
"알겠어요."
굳어진 얼굴을 애써 펴면서 이재영이 머리를 끄적였다.
"신경 안 쓸게요."
김칠성이나 조웅남 등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다는 것은 이재영도 잘 알고 있었다
업체들을 모두 잃고 바닷가의 이곳에서 감옥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리고 친형제와 같았면 강만철을 잃은 것이다.
그들은 지하실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졌다.
지하실은 삼중으로 되어 있어서 철문을 열자 안락 의자에 않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벌떡 일어싫다.
그 방을 지나 다시 나무문을 열자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던 백동혁의 얼굴도 보였다.
백동혁이 그들의 앞장을서서 다시 안쪽의 문을 열었다.
방의 벽 쪽에 붙여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가 우선 이재영의 눈에 띄었다.
두 팔이 의자 뒤로 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묶여 있는 모양이었다.
김칠성과 오함마는 그에게로 다가가 앞쪽에 놓인 의자에 않았다.
그들이 이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므로 이재영은 의자 하나를 끌어 당겨 조금 뒤쪽에 않았다.
사내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코에서 홀러내린 피가 말라서 코밑에 시커먼 딱지가 붙어 있었으나 두 눈을 번들거리며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아, 말해라."
먼저 입을 연 것은 백동혁이다. 그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옆꼭에서 있었다.
"네 처는 지금 우리가 데리고 있어. 확인시켜 주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백동혁이 다이얼을 누르고는 귀에 갖다 대었다.
"응, 나다. 그 여자 바뀌라 "
백동혁이 잠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당신 남편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잠판만요."
사내는 눈을 부릅뜨고 백동혁을 바라보다가 그가 귀에 대어 준 휴대폰 쪽으로 머리를 눕혔다.
"응, 나야. 별일 없지?"
그리고는 선뜻 머리를 든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으므로 이재영은 시선을 돌렀다.
"응, 나도 별일 없어. 곧 갈게."
백동혁이 휴대폰을 떼어 내고는 스위치를 내렀다.
"자, 말해."
사내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날 처와 함께 외국으로 보내 주시오."
"좋아, 생활비도 주마."
대답한 것은 김칠성이다.
그는 턱을 들고 사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허틀 수작 할 때는 너는 당장 이곳에서 죽을 것이고 네 처도 갈갈이 및어죽일 것이다. "
이재영이 침을 삼켰다.
사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난 이철우 소령의 부하요. 이름은 조동구, 군번 3802454, 계급은 중사, 작년 초에 전역했소."
모두들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난 명령을 받고 조장인 이금택, 조원인 장필성과 함께 은마 오피스텔 1208호에서 나오는
황인규 대령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
소리치듯 그의 말소리가 방을 울렸다.
"사고로 위장해야 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로 깔아 버릴 생각이었습니다. "
"명령은 이철우한테서 직접 받았나?"
오함마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세 명이 함께 들었습니다. "
"이철우는 누구한테서 지시를 받지?"
"그건 모릅니다. 다만‥‥‥‥
"다만이라니 ?"
"우리는 우리의 배경이 막강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배신하면 죽습니다. "
"그래서 밀고하거나 비밀을 누설했을 때는 처자식이 대신 처형된단 말이지?"
"비열한 놈들이다, 너희들의 배후는."
이재영은 참아 왔던 숨을 조금씩 내뱉으면서 어깨의 힘을 풀었다.
'소설방 > 밤의 대통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수송 작전 (0) | 2014.12.06 |
---|---|
6. 세 여인 (0) | 2014.12.06 |
4. 귀향하는사람들 (0) | 2014.12.06 |
3. 도마템의 꼬리 (0) | 2014.12.06 |
2. 권부의 암투 (0) | 2014.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