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2. 권부의 암투

오늘의 쉼터 2014. 12. 6. 08:18

  2. 권부의 암투

 

 

 

대통령의 의자는 베이지색 양탄자가 깔린 응접실의 중앙에 놓여 있었다.

등받이가 넓고 높은 데다가 봉황을 수놓은 흰 시트가 책워진 가죽 의자였다.

그 의자의 좌우로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두 개씩 길게 놓여 있어서

방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그 소파 사이로 윤기가 흐르는 나무 탁자가 놓여 있는 것이 전부인 이 방은

대통령이 은밀한 회담을 할 때만 사용하는 곳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강한석은 다시 시선을 문 쪽으로 주었다.

10분즘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곳에서 각하를 만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서 대통령은 청와대의 여러 장소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선은 대회의실과 소회의실이 있고 비서실장이 자동으로 참석하는 접견실도 있다.

대통령의 집무실에서도 각료들을 만나지만 집무실 옆의 응접실을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강한석이 알기로는 당 대표인 한영수씨와 두 번 정도 응접실을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가 다시 시선을 들었을 때 문이 열리며 대통령이 들어싫다
"어, 기다렸나?"
"아님니다, 각하 "
자리에서 일어선 강한석에게 이중섭이 옷어 보였다.
"세상 이야기나 할까 하고 불렀어."
자리에 랄은 이중섭이 앞쪽에 앉은 강한석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사건들이 줄어들어서 다행이야. 밤거리가 많이 정화된 것 같아. "
"네, 각하, 모두 각하께서 ‥‥‥‥
"이봐, 그 따위 소리 듣기 싫어 날 왕처럼 대하지 말란 말이야."
이중섭이 가법게 나무라자 강한석이 머리를 숙였다.
"전처럼 날 대하게나. 입바른 소리도 좀 하고. 나라고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각하,그럴 수는 없습니다. "
강한석이 머리를 들었다.
"지금은 대통령과 내무장관의 관계입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흥, 내가 대통령을 그만두어야 자네하고 이야기가 되겠구만 그래."
의자에 등을 기댄 이중섭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강한석을 바라보았다.
"이봐, 어제 저녁에 김동진 장관이 다녀갔어,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
이중섭의 말에 강한석의 얼굴이 굳어겼다.

김동진은 국방장관으로 참모총장 출신이었다.

그는 지난 정권 아래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는데 능력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사람을 쓰는

이중섭에 의해 파격적으로 발탁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 이야기가 군의 사기는 걱정할 것 없다는 거야.

복지 문제도 향상시켜 가고 있는 데다가 이젠 국방 의무에만 충실하도록

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각하. 이젠 군도 정상을 되찾는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예비역 군인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건,아직 해결되지 않았지?"
"네, 각하 "
이중섭의 이야기가 본론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으므로 강한석은 긴장했다.
"하지만 이모라는 예비역 소령은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모라는 사내는 이제 이모 소령의 이름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는군요."
이중섭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강한석이 말을 이었다.
"이모 대령의 이름도 나왔습니다만, 그 진원지를 알아보니까

김원국의 조직에서 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정보입니다. "
"그 두 사람 모두 행방을 알 수 없다면서?"
"네, 각하. 이모 소령은 가족이 그렇게 되어서 자살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습니다만."
"지금 김원국의 업체들을 인수한 사람 중 하나는 군납업자였다면서?"
"네, 각하. 그렇지만 지금은 경비 용역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김동진 장관이 보고를 했다면 기무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강한석과 시선이 마주친 이중섭이 머리를 끄덕였다
"국방장관한테는 현역의 장성이나 장교의 동향을 잘 살피라고 말 했어.

어느 사회나 불평분자는 있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예비역은 자네가 맡아야 하네.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돼."
"네, 각하."
"하지만 안기부의 보고는 조금 달라. 이철우, 이무섭 등을 요주의 인물로 하고

그 배후에 무엇이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를 않아."
강한석의 머리에 이찬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각하,물론 안기부의 역할이나 기능을 모르는 것이 아넘니다만,
저는 모처럼 진정되어 가는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
상체를 반듯이 세운 강한석이 이중섭을 향해 말을 이었다.
"증거도 확실치 않는 사건에 그 사람들을 연루시키고, 거기에다
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인다면 이것은‥‥‥‥
"김 장관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구만.그런 식으로 하면 현역까지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했어 "
"물론 그래야겠지요."
"군이 술렁거리게 되면 안돼. 지휘관은 안정된 위치에 있어야 돼."
"물론입니다, 각하."
이중섭은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유자차를 따랐다.
"자네도 한잔 들겠는가?"
"네, 각하."
유자차를 따라 주면서 이중섭이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만일에 예비역 군인들이 밤의 조직을 접수해서 운영해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자네 그런 생각 해보았나?"
"각하, 저는 도저히 ‥‥‥‥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거지?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거야.

어떻게 될 것 같나?"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각하.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들도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요."
"흠. "
유자차를 한모금 마신 이중섭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김 장관도 자네와 거의 같은 의견이더군.

그 사람은 조금 더 강경했어. 군인의 자존심까지 이야기를 하더구만."
"하지만 이 부장의 의견은 조금 달라.

그때에는 현역에 있는 불평 세력과 쉽게 결탁이 될 수 있다는 거였어.

밤의 조직도 어떻게 보면 군사 조직과 비슷하니까."
"이건 야당이나 노조 집단과는 다른 양상의 행동 집단이 된다는 거야.

그들은 얼마든지 우리 사회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고도 하더구만."
"각하, 그런 일이 ‥‥‥‥

"예를 들어서 그들 집단은 밤의 사회를 쉽게 공포에 빠뜨리고 민심을 흉흥하게 만들 수가 있지.

국민들은 정부를 탓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말을 멈춘 이중섭이 입맛을 다셨다.
"이건 내가 이 부장한테 물어 본 최악의 시나리오야."
"각하, 그런 일은 없습니다. "
몸을 굳힌 강한석이 단언하듯 말하자 이중섭이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겠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넌 어치코 여그 왔냐?"
조웅남이 묻자 백동혁이 주충대며 다가왔다.
"형님 퇴원하신 것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
조웅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려? 별일은 없고?"
‥‥‥‥01 "
백동혁은 조웅남의 앞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오늘은 조웅남이 퇴원하여 리즈 호텔의 사장실에 첫출근을 한 날이다.
그러나 조웅남의 표정은 어두웠다.

세무 조사 끝에 訓0억 가까운 세금을 추징당했으므로 공매 처분을 당하기 전에

인수해 갈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0억이란 거금이 있을 리가 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조웅남이 어금니를 물고는 주먹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쳤다.
"나는 여그서 죽을텡게 느그덜은 그렇게 알고 있어라."
"어디 나를 물아내 보라고 혀."
"형님 저 ‥‥‥‥
백동혁이 상체를 세우자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쳤다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행동이었다.

뚜맥이며 방문 앞으로 다가간 조웅남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턱을 조금 들어 따라 나오라는 시농을 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조웅남은 복도의 벽에 등을 기댄 자세로 서 있었다
"씨발놈들이 도청 장치를 혀놓았을 거다. 그리서 그런 거여."
다가선 백동혁에게 그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복도를 지나던 직원들이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려, 형님은 안넘허시쟝
"네, 형님."
"칠성이랑 만철이는 섬에서 잘 있고?"
‥‥‥‥네, 형님 ."
"그 동안 일은 어치코 되어 가냐
"큰형님이 조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조사는 맨날 무신 조사. 정기욱인가 뭔가 허는 놈허고,

첫이냐 박가라는 놈, 그놈들을 잡어 족쳐야 헌다. 그러은 되는 거여."
소리가 조금 커졌으므로 백동혁이 그에게 다가섰다.
"큰형님도 알고 계십니다, 형님 그래서‥‥‥‥
"그래서 뭘?"
"형님은 당분간 움직이지 마시라고 큰형님이 당부하셨습니다. "
"당부는 무신."
권부의 암투 61
조웅남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내가 앉어만 있을 줄 알었다은 잘못 생각헌 거여. 인자 나 혼자 남었는디 "
"큰형님 말씀입니다, 형님."
백동혁이 머리를 들어 조웅남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큰형님이 다시 연락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만이라도."
‥‥‥‥알겄다. "
이윽고 시선을 돌린 조웅남이 말했다.

그는 손을 별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허지만 돌아가는 거 봐서 내가 언지 뛰쳐 나갈지 모른다고 전해라. 참는 디도 한도가 있는 거여."
조웅남이 방으로 들어딘고 문이 닫혔다.

어깨를 늘어뜨린 백동혁이 몸을 돌리자 앞쪽에서 김선주가 다가왔다

아마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장넘께 인사하러 들어가도 되겠죠? 보고할 것도 있고요."
백동혁이 대꾸없이 한쪽으로 비켜 서자그녀가 그의 앞에 멈추어졌다.
"요증 어떻게 지내세요? 연락도 안 주시고."
"바빴어."
"이재영 언니는 잘 있어요?"
"잘 있어."
"제가 안부 전하더라고 해주세요."
"그러지."
김선주가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것봐, 안에 들어가서 블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라."
백동혁의 말에 김선주가 퍼뜩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선뜻 입을 열지는 않았다.
"도청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
"알았어요."
"조심하란 말이야."
"글째 알았다니까요!"
백동혁이 팔을 별어 그녀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맨살이어서 말랑한 감촉이 손바학에 전달되어 왔다.
"왜 이래요?"
김선주가 팔을 잡아 빼려고 몸을 비틀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눈주위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놈들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놈들이라구."
"그걸 누구 모르나? 어했든 이 팔이나 놓아요."
지나치던 직원들이 애써 외떤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백동혁은 그녀의 팔을 놓았다.
"딴놈들은 눈치 봐가면서 아직 인사를 오지도 않는데 당신이 워라고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난 겁나는 것 없어요. 누구도 무섭지 않아요."
잡쳤던 부분을 주무르며 김선주가 그를 쏘아보았다.
"언제는 날 시켜 먹구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이래요?"
김선주는 그를 스쳐 조웅남의 방 앞으로 다가했다.
며칠간 내리던 비가 그치자 하늘은 파랗게 개어 있었다.

대기중에 떠 있던 온갖 불순물이 빗발에 의해 셋긴 듯이

하늘은 밝았고 및살을 받은 바다는 하얗게 빛났다.

바다 쪽에서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베란다를 스치고 지나자

한쪽에 세워 둔 난의 길다란 잎이 출렁이며 흔들렸다.

김원국은 한 시간이 넘도록 베란다의 등의자에 앉아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가 깜박이는 순간에 바다 쪽으로 내려졌지만

몸은 나무 토막처럼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오함마는 새벽에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그는 김칠성과 함께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

장민애와 그의 아들 김태훈, 그리고 강만철은 인도네시아의 조그만 섬에 묻히게 된다.
김원국은손을 델어 탁자위에 놓인 담배를 집어 입에 물었다

또 다시 장민애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섬에서 살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자식과 함께 그긋에 묻히게 되었다.

그녀와 태훈이는 고통없이 숨이 끊어겼다고 김칠성이 말해 주었는데 현장을 본 것은

강만철인 모양이었다.
김원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었다.

강만철이 자신의 머리를 쓴 것은 장민애와 태훈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가승에 두 발의 총상을 입었지만 그런 식으로 목숨을 버릴 사내가 아니다
흥성철은 마약과의 싸움에서 조직의 명예를 지키려고 목숨을 끊었으나 강만철은

개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쓴 것이다.
김원국은 두 눈을 치켜뜨고 수평선 끝을 바라보았다.

바다 건너편은 중국 땅이다 남지나해를 지난 인도네시아의 만탄 섬은 수천 킬로
미터 떨어져 있고 그곳에서 장민애와 태훈이는 영문도모른 채 총에 맞아 죽었다.
김원국의 머리속에서는 장민애와 태훈이, 강만철의 영상이 끓임없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갈매기 한마리가 거친 날개첫을 하며 바위 위에 내려않았다.

부리가 휘어진 추한 모습이었다.
길게 담배 연기를 뱉어낸 김원국은 담배를 천천히 재떨이 위에 내려놓았다.

갈매기가 머리를 들어 힐끗 그를 바라보다가 날개 속을 부리로 더듬기 시작했다.
그때 베란다의 유리문이 소리를 내며 안쪽에서 열렀다.

놀란 갈매기가 요란하게 날개를 치혀 아래쪽으로 날아갔고 이강일이 다가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 큰형님, 전화가 왔습니다. 급한 일이라고 해서."
"이 부장님이십니다. "
자리에서 일어선 김원국은 응접실로 들어싫다.

탁자 위에 내려놓은 전화기가 보였다.

소파에 談은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이찬형은 그의 전화 번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외부인인 것이다.
"여보세요."
"아, 김 사장님, 접니다. "
이찬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것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선뜻 판단할 수는 없군요.
하지만 수사에 진전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아, 네."
"역시 우리 예측이 맞습니다. 문제의 인물 이무섭을 포착했어요."
권부의 암주 61
"그 장소가 어딘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천 근처에 있는 산속의 양옥집이오.

그를 찾아낸 것은 우연이었지요."
"김 사장넘, 듣고 계십니까?"
"네, 듣고 있습니다. "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넘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장넘."
"그렇다고 그를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감시를 하는 수밖rT . "
"공식적으로 그에게는 어떤 혐의도 없습니다.

잘못하면 인권 침해나 명에 훼손으로 내 목이 날아갈수도 있어요.

이철우도 수배자 명단에서 빠진 상황이라."
"이무섭을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감시나 하는 수밖에 "
"이해합니다. "
"서울의 사업가로 부근 주민들한테 알려져 있는데 사흘 걸러 하루쯤 와서 묵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집에 처박혀 있기도 한답니다. 가끔 손넘이 찾아을 때도 있고."
"그 손넘이라는 인물들이 우리에겐 관심거리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김 사장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
김원국은 상체를 세우고는 머리를 들었다.

응접실의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랫살로 방안은 환했으나 부연 먼지가  빗줄기 속에 떠 있었다.
"김 사장님, 기운내시오, 이건 개인적으로 말씀 드린 겁니다만."
그러다가 전화기를 타고 그의 낮은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아니,처음부터 이 일은 개인적인 것이었지,공식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난 정치적인 분위기에 둔한 편입니다 그것이 그분한테 좋게 보였던 모양인데

지금은 그분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부장넘이 업무에 소신을 갖고 계신 점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
"아직 선악이 확실하게 구별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냥 덮어 버리려는 분위기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고,

사건의 친상을 명확하게 알아내고 그것을 각하께 보고 드리는 것,

난 그것으로 일을 마칩니다 결정은 그분이 하실테니까 "
"부장넘은 내가 선 쪽에 있다는 확신이 있으신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사적인 협조를 해주시는 거죠."
그 말에 이찬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원국은 한동안 탁자 위를 내려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랫고동 소리가 들려 왔고 정문 쪽에서는 자갈을 밟는 소리도 들렸다.

이제까지 귀에 들려 오지 않았던 소리들이었다.

응접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그는 머리를 들었다.
이재영이 들어서고 있었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 싱싱하게 반들 거렸고 횐색 바지에 하늘색 셔츠 차림이었다.
김원국은 낮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오늘은 시내에 즘 나갔다 오겠어요.물건 살 것들이 많습니다. "
이재영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납치 사건 이후로 이곳에 손넘으로 머물고 있었는데

신문사에는 휴직원을 제출해 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사회부장인 안청준에게 건네 준 이철우와 이무섭에 대한
자료는 현역과 예비역을 포함한 가능성 있는 모든 인물들을 망라한 보고서였다.

그것은 안기부의 고성섭이 자신의 정보 조직을 활용하여 작성한 것이었는데

무고한사람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충격적인 보고서였다.
이찬형은 후유증을 생각하여 그 보고서의 일부분만을 각하에게 귀◎했지만

그 전문을 보고했다면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재영은 자신이 처한 입장을 잘 알고 있어서 외출도 삼가는 편이었다.
"필요하신 것 없으세요?"
그녀가 한발짝 다가서면서 소파의 등받이에 허택지를 대었다.

허리춤의 단추가 정면으로 보였고 그것이 호흡에 맞춰 가법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원국이 잠자코 머리를 돌렸으므로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던 이재영도 몸을 돌렸다.
장우길이 흘 안으로 들언서자 몰려 서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형님."
사내 한 명이 그를 부르며 다가왔고 그의 뒤를 서너 명의 사내들이 따라와 장우길을 둘러쌌다.
"형님, 우리 모두 오늘자로 그만 두랍니다. 이건 약속이‥‥‥‥
"야, 개떡 같은 소리 말어,"
뒤쪽에서 버럭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다가왔다.

앞장선 사내는 안면이 있다.

지난주에 콜럽을 접수한 사장 측에서 고용한 영업부장이었다.

그는 사내들을 헤치고 장우길의 앞에 서서 두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두 손을 옆구리에 대었으므로 신병을 교육시키는 하사관 같은 자세가 되었다.
"이것봐, 정신들 차려 .-너희들이 이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구찌클럽의 모든 재산을 접수한 건 우리란 말이야.

너희들이 된다 안된다 하고 소동을 부릴 이유가 없단 말이다. "
그의 목소리가 찌렁찌렁 빈 흘을울렀다.

아직 한낮이어서 영업을 시작할 때까지는 째 시간이 남아 있었다.
사내가 우람한 체구에 비해서 작은 머리동을 흔들면서 다시 소리 치듯 말했다.
"우리 사장께서는 특별히 사정을 봐주셔서 너희들에게 보름간의 일당을 지불하시겠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도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있단 말이야."
30대 후반의 이 사내는 천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는데 장우길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조직사회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내였고 그렇다고 전과자도 아니다.

그러나 턱을 쳐들고 말하는 태도나 몸첫이 오랫동안 단련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장우길은 머리를 들었다.
"당신 사장이 인수할 때 나한테 그했는데, 종업원은 그대로 두겠다고. 영업은 전처럼 하겠다고."
사내가큼직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주위에 서 있던 사내들도 따라 웃었다.
"그건 사장넘이 모르시고 한 말씀이지. 앞으로 관리하는 것은 나다. 이 천일준이가 한단 말이다. "
"그래서 우리더러 모두 나가라는 거요?"
"그래, 형님벨이 되어서 그런지, 잘 알아듣는군. 웨이터 보조와 마담,

주방에 있는 애들은 우리가 계속 쓸 거야."
"그렇다면 웨이터급하고 영업부 직원들만‥‥‥
"그렇지, 이해가 빠르구만."
장우길은 어깨를 올리면서 숨을 길게 들이쉬었고 그 순간에 마음을 정했다.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숨을 천천히 뱉은 장우길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씨발놈아, 왜 말을 놓는 거냐?"
천일준의 조흐만 머리가 뒤로 조금 젖혀졌고 두 눈이 번적 크게 뜨여졌다.

그순간장우길의 오른발이 럭비의 편트킥을 하는 것처럼 천일준의 사타구니에 있는

두 개의 볼에 적중했다.
"헉!"
목구멍에서 짧게 쇳소리를 뱉으면서 천일준의 얼굴이

금방 하얀 휴지색이 되었고 허리는 90도로 앞쪽으로 겪어졌다.

그러나 얼굴은 턱을 치켜든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감발 그가
다리를 X자로 꼬는 것을 보면서 장우길은 다시 발끝으로 그의 턱을 차 올렸다.
"이 새끼들 모두 죽여라!"
장우길의 고함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부하들은 제각기 사내들에게 달려들었으므로

금세 흘은 난장판이 되었다.
"한놈도 살려 보내지 말어!"
그러자 부하 두어 명이 문 쪽으로 달려갔다.

숫자는 십여 명씩으로 비슷하였지만 이쪽은 악에 받쳐 있는 상황이다.

이제까지 궁지에 몰리고 몰려서 개라도 호랑이에게 덤빌 판국이었는데

상대는 흐랑이도 아니고 이쪽도 개가 아니다.

그리고 이쪽은 싸움에 단련되어 있기도 했다.

홀 안에 구르고 있는 병을 요령있게 깨어 피른다든가 어느 탁자의 받침대가 잘 빠진다든가,

이곳의 지형에 익숙한 것이다.
곧 이곳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봤다 저쪽은 천일준이 방울이 터져 기절해 버리면서

중심이 흔들렸고 순식간에 기세를 잃었기 때문이다.
장우길은 옆쪽으로 지나가는 사내 한 명의 옷깃을 잡아채면서 주먹을 날렀다.

서두르는 바람에 양미간을 친다는 것이 정통으로 입을 때려서 주먹에 통증이 왔으나

사내의 입은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다
머리를 숙이면서 사내가 피와 함께 여남은 개의 이빨들을 별어내었다.

부하 한 명이 탁자 받침대로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곧장 달려갔다.
이제 흘은 들고 雲기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7,8명의 사내들이 흘 안에 쓰러져 있었는데 출어보자

이쪽은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았다.

한두 명이 절름거리거나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악을 쓰며 놈들을 쫓고 있는 것이다.

사내들은 출입구가 봉쇄당해 있어서 안으로만 들겨 다니고 있었다.
장우길은 탁자에서 굵직한 받침 기둥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움켜쥐고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모두 척여라!"
"이제는 그놈들이 발악을 하는 모양이군, 정말 야단이야."
이맛살을 찌푸린 박동호가 혀를 業다.
"열네 명이 중상을 입었다면 큰 사건인데. 그래, 가해자측은 한 놈도 잡지 못했단 말인가?"
"네, 흘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싸운 모양입니다.

사건의 신고도 늦었고 그때는 모두 도망친 후여서‥‥‥‥
이정환의 얼굴도 찌푸려져 있었는데 택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자세여서

턱의 군살이 더욱 두드러졌다.
"열네 명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면 아마 저쪽은 50,60명은 되었겠구만.

그 이상일 수도 있고. 문을 걸어 잠그고 그했다니 계획적이야. 그렇지 않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박동호가 턱을 들었다.
"그밖에 어떤 가정이 있겠느냔 말이야.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다니 ."
"제가 확실히 본 것도 아니어서요. 우선 피해자의 증언도 들어 보OIOt‥‥‥‥
"조웅남이가 퇴원해 나오니까 놈들이 기세를 올린 거야.

아니, 조웅남이가 시켰는지도 모르지 ."
"한동안 잠잠하더니 조웅남이가 퇴원하고 나니까 즉각 시작되는 군."
서류철을 접은 박동호가 손을 델어 인터폰의 스위치를 눌렀다.
"네, 청장님 비서실입니다. "
마이크에서 여비서의 밝은 목소리가 홀러 나봤다.
"나, 박 국장인데, 청장넘 계신가?"
"저어, 오늘은 몸이 아프셔서요‥‥‥‥
주저하는 듯한 비서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동호가 입맛을 다셨다.
"어제도 편찮으시더니, 다른 연락 온 것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국장님."
"알았어."
스위치를 끈 박동호가 머리를 들어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장관께 직접 보고해야 될 것 같아.

자네는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 무순 말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국장님 ."
"아직 어떻게 결정이 될지 모르니까 언론에 단단히 말해 두게.

이쪽에서 이야기를 할 때까지 절대 보도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
 "매를 맞는 것은 우리야. 어서 나가 보게 나가서 언론사의 입막음을 해놔."
자리에서 일어선 이정환은 국장실을 나와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봤다.

방에는 유혁근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가 일어졌다.
"다녀오셨습니까?"
"다녀왔지,그럼 놀다 온 줄 아나?"
이정환이 美아 붙이듯이 말하자 유혁근이 입술 끝으로만 옷었다.
"청장은 사흘째 출근하지 않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청와대에 투서가 들어가 조사를 받고 있다고도 합니다‥‥‥
저고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던 이정환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어떻게 그런 일을 잘 아나? 그래, 내 됫소문은 뭐라고 그러던가?"
"피징심,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시끄러. 난 어서 퇴직해 가지고는 연금이나 받고 싶어, 낮시나 가고."
"붕어한테 영장 발급하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안 잡히면 답답하실텐데 ."
"아니, 이놈이 ."
이정환의 얼굴이 벌곁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호흡이 맞는사이라도 오늘 같은 분위기에서는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따라 웬 수작이냐? 건방지게,"
그가 눈을 부릅뜨자 유혁근이 손을 들어 됫머리를 쓸었다.
"용서하십시오. 기분 좋아서 그했습니다. "
"첫이 어째? 기분 좋은 일이 뭐가 있다는 거야?"
"그농들, 속이 후련하게 작살이 났지 않습니까?

그 대장격인 한놈 은 방울이 터겼다고 하더군요."
이정환이 눈을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았으나 유혁근은 말을 이었다.
"이제까지 당하기만 하다가 폭발해 버린 거죠.

이제 때앗길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경비 용역 회사측은 겁이 난 모양입니다.

아직 경찰서에 진정을 해오거나 언를사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
이정환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유혁근은 밝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구찌 클럽의 장우길이라는 놈이 주모자일 겁니다.

지난번에 당한 박기섭의 심복 부하지요.

박기섭이는 백동혁의 동생벨이고,

아마 장우길은 박기섭의 앙갚음을 한 것 같습니다. "
"박 국장은 조웅남을 지목하고 있어. 그가 시켰다는 거야."
"조웅남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손을 보려면 아마 직접 나졌을 겁니다. "
"그걸 누가 믿나? 어차피 같은 조직인데 말이야."
입맛을 다신 유혁근이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과장님, 제 생각에는 청장이 곧 물러날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는 박 국장이 승진하게 되겠구요."
"무슨 소문이야? 도대체? 청와대 조사라니?"
턱을 치켜든 이정환이 거칠게 묻자 유혁근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여자 관계람니다.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는군요.

아이까지 낳은 젊은 여자가 있다고 합니다 "
"빌어먹을, 어떤 놈이."
"청장이 결근한 첫날부터 본부 청사 안에 소문이 좌악 퍼져 나갔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더군요."
"음모로군."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
"어떤 놈의 짓인가 알 것 같구만."
"하지만 어철 수 없는 일이지요."
"박 국장은 우리더러 언론을 단단히 단속하래.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로 발표하면 안된다는 거야."
"사건이 보도되면 각하가 진노하실테니까요. 장관이 문책을 당할 겁니』 "
이정환이 물끄러미 유혁근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일을 당한 저쪽 놈들이 언론사에 달려가지 않는 것도
그것 때문인가? 전에는 경찰보다 언론사에 먼저 정보를 주었는데 말이야."
"장관이 그들과 맥을 통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
유혁근이 그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그저 책임지기 싫어하는 성격, 조급하게 공을 세우려는 생각, 아마 그런 것들 때문일 겁니다. "
"이런 일은 수습되어도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일어나면 골치만 아프니까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더구나 강한석씨는 남 한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치안 문제에 안기부나 다른 기관이 간섭하면 자신의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믿을 겁니다. "
"박 국장이 장관과 호흡을 잘 맞추어 갈 것 같군요."
"이봐,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마라."
"과장넘은 퇴직하는 날만 기다리신다면서요?"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제각기 이맛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돌렸다.
정길한테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김칠성이나 강만철, 조웅남 또는 김원국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저씨나 선생넘 같았고

김원국의 경우에는 만난 적도 없는 관계로 대통령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무서운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바로 그 밑의 비서실장이나 장관,

즘더 내려와서 차관급의 높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조직의 소두목격인 장우길이 제일 겁내는 인물은 직속 형님델인 개백정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헛기침을 하고 나서 쓸데없이 목청을 가다들고는 옷차점을 내려다보았다.

새옷으로 갈아 입었으므로 검정색 정장은 구김 한줄 없이 말장했다.

그는 가법게 방물을 두드리고는 문을 열었다

이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백동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허리를 끈었다.
"어서 들어와."
백동혁의 던지는 듯한 말투가 다시 온몸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거기 랄어 ."
"네, 형님."
"내가 식사 시켜 놓았어. 먹어라."
바랄가에 있는 중국집이었는데 갖가지 요리 접시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그러나 무조건 젓가락을 들 수도 없고 입맛도 없다.
백동혁은 첫가락으로 탕수육을 한점 집더니 어적이고 셉었다.

구찌 클럽에서 놈들을 박살낸 장우길이 클럽을 뛰쳐 나와

제일 먼저한 일은 백동혁을 찾는 일이었다.

명령도 없이 놈들을 쳤으므로 그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었다.

초직이 전쟁을 만들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리즈호텔에 있던 백동혁과 연락이 되었고

그의 지시로 부하들을 끌고 인천 바랄가의 중국집에 도착한 것이다
"애들은 어디 있어?"
문득 백동혁이 물었으므로 장우길이 머리를 들었다.
"저 아래층 흘에 있습니다, 형님 "
"애들 든든히 먹여라."
"먹고 있습니다, 형님 "
"너 때문에 웅남 형님이 곤란하게 되었어.

경찰에서는 웅남 형님이 시킨 일로 알 것이 틀림없거든."
장우길이 상체를 반듯이 세웠다.
"저, 지금 당장 경찰에 자수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
"않어, 앉어 ."
마악 일어서려는 몸짓을 보이는 장우길에게 백동혁이 젓가락을 든 손을 저었다.
"네 덕뿐에 리즈 호텔에 버티고 계시겠다던 웅남 형님이 엉덩이를 들었다.

큰 싸움을 작은 싸움으로 막았다고 큰형님이 말씀하시더구만. "
"네 ?"
"잘 쳤다. 나도 속이 시원하다. "
장우길이 입안에 고인 침을 소리내어 삼키자 백동혁이 음식을 가리켰다.
"먹어라. 어서 먹어."
"네, 형님 ."
"앞으로는 네멋대로 움직이지 마라."
"네, 헝넘 "
"당분간 애들하고 어디 숨어 있어야 하는데, 한곳 알아 놓았다. "
젓가락만 손에 쥔 채 장우길이 그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백동혁이 머리를 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많아, 나하고 네가. 형님들이 돌아오실 때까지 말이다. "
"네, 형님. 제가 죽을 때까지‥‥‥‥
"나도 그래, "
젓가락을 내려놓은 백동혁이 장우길을 노려보았다.
"나도 그렇단 말이다. 난, 몸이 떨려서 ‥‥‥‥
장우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않았고 얼굴이 나무 점질처럼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악문 백동혁이 이쪽을 딘아보고 있었는데 부릅 뜬 눈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백동혁은 소매를 들어 얼굴을 밖았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들어 음식 그릇을 가리켰다.
"먹어라. 이건 큰형님이 내시는 거다. "
장우길이 눈을 껌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박용근이 눈을 번득이며 안재일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병신 같은 놈들, 한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당하다니.

내가 이런 놈들을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긴단 말이냐?"
승용차가 다리의 난간 근처를 지나면서 덜컹거렸다.
"이거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니겠나?"
"놈들은 계획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들어 봤는데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는군요.

우리 애들을 안으로 몰아넣고 공격해 온 것입니다. "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박용근이 비대한 몸을 들씩여 안재일 쪽으로 돌아앉았다.
"1, 천일준이는 거시기가 터겼다면서?"
"네, 중태입니다. "
병원에 다녀온 참이어서 안재일은 찌푸린 얼굴로 시선을 돌렀다.
천일준이 퇴원해도 기동하기에 불편한몸이 될 것이라고 하면

박용근의 혈압은 더 오를 것이다.
"병신같이."
혼잣소리처럼 투덜대던 박용근이 머리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졸 몇 개하고 저쪽의 차나 포를 바꾼 셈이 되었으니까.

조웅남이가 걸렀는데 이번 일을 시킨 주모자로 수배가 되었으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게 일을 만들어 버린 셈이 되었어요."
안재일이 생기있게 대답했다
"이젠 저쪽은 보스급이 한놈도 없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우습게 보면 안된단 말이다. "
"물론이지요, 사장넘 ."
그것의 대상이 이무섭인지 김원국의 잔존 세력인지 또는 정기욱의 세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안재일이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철저히 무장하고 나설테니까요."
"이철우는 아직 소식이 없나?"
"네, 아직."
"이무섭씨도 그농 행방을 모르는 모양이야.

잠시 쉬겠다면서 연락을 끓었다는데 ,"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겠지요."
박용근은 머리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리에 하나 둘씩 불이 켜지고 있었다.
"앞으로는 이철우의 부하들을 앞에 내세워야 돼.

이무섭씨는 그놈들을 보냈다면 그렇게 담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어 "
"안정태라고, 너도 한번 보았지?

 눈초리가 맵고, 입술이 않은 놈 그놈이 우리 일을 도울 거야."
"이철우 대신입니까?"
"이철우가 돌아을 때까지라고 하던데, 이철우의 부하인 모양이야. "
박용근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業으면서 팔장을 끼었다.

그들은 차란이라 도청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무섭씨한테야 우리를 떤하게 아는 사람이니까 부끄러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기욱이라는 작자는 좋아할 것 같군요."
안재일이 입을 열자 박용근이 입맛을 다셨다.
"이제 곧 정리가 되겠지. 우리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그 사람도 알고 있을테니까."
박용근이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난 솔직히 이무섭씨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

만일 그런다면 정기욱이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사장넘, 이무섭씨는 이미 두 개의 조직을 운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어및게 될 것인가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지."
"사장님,우리는 이철우의 지원이 없으면 어제 같은 일을 당하게 됩니다

애들이 총을 잘 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싸움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
"차라리 라니?"
박용근이 이맛살을 제푸리며 묻자 안재일이 침을 삼켰다.
"정기욱의 조직이 막돼먹은 전과자 집단이지만 그런 능력은 우리보다 낫습니다. "
"이무섭씨는 우리 얼굴을 필요로 했지만 힘을 키워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이철우가 지휘하는 용병 집단을 빌려 주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힘인 줄로 잠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
‥‥‥‥
"사장넘, 이 기회에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합니다.

김원국이한테 밀려난 조직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놈들을 포섭해 나감시다. "
안재일이 곁은 눈셉 밑의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물기에 젖은 듯 번들거리고 있었다.
"김원국의 조직이 넘어진 상황이라 그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겁니다.

밤의 세계가 어떻게 정리되어 가는가를 잘 알고 있겠지요.

그들에게 우리는 막강한 배경을 가진 조직입니다. "
"이 기회에 그놈들을 끌어들이잔 말이지?"
낮은 목소리로 박용근이 물었지만 그는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래패도 자존심이 있는 조직입니다.

정기욱의 밑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
"이무섭씨가 알면 좋아하지 않을텐데."
안계일이 차 안을 둘러보는 시늘을 하더니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대형 승용차는 됫좌석과 앞좌석이 유리 칸막이로 가려져 있어서
앞쪽에서는 뒤쪽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우리도 이철우의 용병 집단처럼 조직을 키우는 것이죠.

어제 일에 대한 자구책이라고 말해도 좋겠지요."
"말할 필요는 없다. "
박용근이 의자에서 상체를 세워 똑바로 랄았다.

얼굴의 표정이 나무 껍질처럼 굳어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야. 그 다음이 알량한 권위지.

그것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가 있을 것이다. 포섭해라."
"은밀하게 진행시키겠습니다. "
안재일이 생기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박용근이 머리를 끄덕였다.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아."
"그건 우리 돈도 아니니까요."
"이철우의 용병들처럼 일단은 표면에 나타나게 하지 말고."
"물론입니다. "
"더이상 꼭두각시 노롯은 하지 않겠다. "
"적절한 시기에 결정하신 겁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때입니다. "
박용근이 잠자코 앞쪽으로 머리를 돌렸고 안재일도 길게 숨을 내 쉬며

그와 같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승용차는 어둠이 깔린 국립묘지 앞을 지나는 중이 었다.
실내복으로 갈아 입은 정기욱이 응접실로 나와 머리의 물기를 두 손으로 어지럽게 털었다.
"아이, 물 떨어져요. 화장실 안에서 말리고 나오지 밖에서‥‥‥‥
주방에 있던 박주현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화장실에 수건 있잖아요? 왜 꼭 밖에서 물 털어요?"
"이런 빌어먹을."
정기욱이 손을 멈추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망할 년이 사처건건 시비를 걸고 있어. 주둥이를 그냥."
"저봐, 또 욕해. 특하면 욕질이야, 몰상식하게."
"첫이 어째?"
젖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정기욱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롯바닥이 쿵쿵 울렸다.
"이 쌍년이 요즘 패 이렇게 앙탈이야? 너, 죽고 싶어?"
기세에 눌린 박주현이 몸을 돌렀으나 정기욱은 와락 어깨를 움켜쥐었다.
"너, 왜 말끝마다 시비냐
박주현이 머리를 들었다.
"나, 집에 갈테야. 내보내 줘요, 제발."
"네맘대로?"
"나, 이렇게는 못살아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이건 감옥살이야."
주먹으로 한두 대 두들길 것 같았던 정기욱의 어깨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제 박주현은 두 눈에 가득 눈물을 담고 있었다.
"내보내 줘요,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어쩌려고?"
움켜쥐었던 어깨에서 손을 뗀 정기욱이 턱을 들고 물었다.
"네가 내 손에서 벗어날 것 같으냐?"
"차라리 날 죽여요."
박주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렀다.
"나 이렇게 짐승처럼 살기 싫어."
"망할 년이 호강에 겨워서."
몸을 돌린 정기욱은 응접실의 소파로 다가갔다.
"술시중 들고 구멍 팔아 사는 것보단 낫지, 뭘. 옛날 생각을 해봐,
이년아."
"정 없이 살기 싫단 말이아."
소파에 앉으려던 정기욱이 주춤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돈이고 패물이고 다 싫어. 날 내보내 주기만 해요."
"안돼, 이년아 "
정기욱은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고는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펼쳐들었다.

실버 클럽에서 만난 박주현에게 아파트를 얻어 주고

그녀와 동거 생활을 시작한 것이 석 달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정기욱으로서는 여자와살림을 차런 것이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이제 막 재미를 알아 가는 참이다.
그러나 박주현은 이제까지 네 번의 동거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대리 운전을 하는 김상민과 6개월 같이 산 것이 제일 길었다.

도무지 한 남자와 석 달이 넘어 가면 그 남자가 홍콩의 배우라도 싫증을 내는 성격이었다.
그런데다가 정기욱은 외출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시장에 갈 때도 두 명의 부하가 따라오는 것이어서 이제는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박주현이 응접실로 들어와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왜 날 못 나가게 하는 거예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그녀의 표정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그녀를 향해 신문을 펼쳐 든 정기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바람 필까 봐서요?딴 남자 만날까 봐?"
"흥, 지랄허고 있네."
"친구도 마음대로 못 만나고 집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어요.

내가 무슨 죄인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하고 섹스하는 것만으로 살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친 년, 저도 좋아하면서."
아랫입술을 깨문 박주현이 그를 美아보았다.
"도대체 뭐가 겁나서 이래요?"
"겁나?내가?"
정기욱이 신문을 옆쪽으로 집어 던졌다.
"이년아,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짓이야.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나 알아?"
그러자 박주현이 피식 웃었다.
"당신이 높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요. 그런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 ffolfl.a.?"
"상관이 없다니?"
"나 당신 부인도 아니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녜요.

동거하기로 계약만 했을 뿐이지, "
"당신은 나한데 같이 살자고 했을 때 이런 말은 안했어요.

난 이제 싫어요. 떠날테야."
"죽어서 송장이 되면 나가."
요즘 들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박주현은 자주 짜증을 내었고 말끝마다 떠난다고 했는데 그럴수록 정기욱은 단호해졌다. 
여태까지 그녀에 대한 감정이 확실하게 잡혀 있지 않았던 것이

자극을 받아 반사 작용을 일으쳤는지도 모른다.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보던 정기욱이 입을 열었다.
"너 이놈의 기집애, 네가 자꾸 이렇게 나오면 아예 없애버릴 거야. 알아들었어?"
"조금만 기다리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단 말이야,이년아.
그때는 네맘대로 쇼핑도 가고 놀러도 가게 돼."
"빌어먹을, 돈 달라는 것 이상으로 주었겠다, 한밑천 잡았을델데
조금만 기다리라는 것도 참지 못하고."
박주현이 머리를 들꺼 힐끗 정기욱을 바라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입맛을 다신 정기욱은 다시 신문을 집어 들었다.
마을의 증심을 통과하는 일차선의 포장 도로는 마을 끝의 공회당에서 끓겨 있었다.

가구푸 20여 호의 일천 마을은산골이었다.

뒤쪽에 낮기는 하지만 두 집의 산맥이 마을을 감싸안듯이 웅크리고 있어서

산 너머로 가려면 하루에 두 차례씩 오는 시외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산맥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았다.

공회당에서 포장되지 않은 샛길이 산맥 사이로 뻗어 있는 것이다
패어진 바퀴 자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잡초에 덮여 있어서

얼첫 보면 두 줄기의 도랑 같은 샛길이었다

샛길은 산속 깊숙히 들어 가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그끝에 이충 양옥집이 세워져 있다는 것은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병원을 크게 한다는 사람이 늙은 부친을 위해 양옥집을 지을 적에

마을의 남자들은 대부분 일당을 받고 일했던 것이다.
여든 가까이 된 병원장의 부친은 이곳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었다.

마을의 노인들도 서울 노인 덕에 처음 구경하는 양주나 조미료 선물 세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3년쯤 후에 서울 노인이 세상을 떠나자 양옥집은 으스스한 빈집이 되었다.

마을에서 1킬로미터쯤의 거리였고 근처에는 맡도 없었으므로

아무도 찾지 않는 폐가가 되었는데 6개월쯤 지나자

이번에는 서울의 사업가가 집 주인이 되어 찾아 온 것이다.

그는 서너 명의 직원들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직원 두어 명은 매일이다시피 승용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왔기 때문에

두 줄기의 도랑은 그 때문에 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구멍 가게에 들러 무엇을 살 적에도 돈만 내고 물건을 집을 뿐

입이 근질 거리는 아줌마에게 말 한마디 던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패는 마을 사람들이 양옥집에 있는 사내들이 간첩일지 모른다는
공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4킬로미터쯤 떨어진 지서 순경이 양옥집을 다녀간 후로 그 공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순경은 가게에 들러 콜라를 마시면서 집 주인은 높은 사람이라고 한마디만 하고 떠났는데

텔레비전을 밤늦게까지 보는 마을 사람들은 금방 알아 차린 것이다.
그들은 한때 무서웠던 사람들이 지금은 힘을 잃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비록 힘을 잃은 그들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이런 마을쯤이야
단숨에 절단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게 주인 임씨는 문지방에 걸터앉아 부채로 가습에 바람을 활활 부쳐 넣으면서

공회당 쪽을 바라 보았다.
30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군에서 나봤다는산림청의 직원이었다.

그들은모두세 명으로 어제부터 공회당을 숙소로 하고 일을 하는 중이었다.

다가오던 사내가 임씨와 시선이 마주치자 템긋 웃었다

그들은 인사성이 밝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아주머니, 라면 열 개만 주십시오."
"아이고, 예."
서둘러 일어난 임씨는 라면 박스를 선반에서 내렸다.

그들은 이제 마을에서 제일 손이 큰 고객이었다.
"콜라도 시원한 것으로 세 병만 주시구요."
"병에 든 것밖에 없는데 ."
"괜찮습니다. "
사내는 가게 앞의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땡볕이 내리 쪼이는오후 2시경이어서 마을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마을 안쪽의 나무 위에서 매미가 느릿느릿 울었다.
"나머지 두 분은 산에 가셨수?"
비닐 봉투에 라면과 콜라를 넣으며 임씨가 묻자 사내는 머리를 끄덕였다.
"네, 저쪽 용두산에 누가 벌목을 한다고 해서."
"용두산이면 아마 안평 마을 사람들일 게요.

그 마을 사람들은 독해. 면 사무소하고 맨날 싸운다우."
"그래요?"
그러나 사내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 듯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물건값을 치렀다.
"그 키큰 양반 있지요?눈이 크고‥‥‥‥
임씨가 얼굴에 웃음을 띄고 묻자 돌아서려던 사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네, 그런데요?"
"어제 통조림 사가면서 2천 원을 달아놓고 갔는데,오늘 준다고."
"그래요?내가 치르지요."
사내는 지감에서 돈을 꺼내 임씨에게 건네었다
"에이구 이 더운 날에 산에 가서 고생하시는구만."
미안한 듯 임씨가 말하자 사내가 머리를 』1덕였다.
"할수없지요, 직업인데."
숲속은 마람 한점 불어오지 않아서 마치 쓱 사우나에 들어앉은 것 같았다.
지한영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셔츠 자락으로 랄고는 나웃잎 사이로 보이는

양옥집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직사긱헝의 이층 양옥은 아래위충 합해서 건평이 70평은 되어 보였다.

아래 충의 대형 유리창이 반쯤 열려 있는 곳이 응접실이고 그 오른쪽이 침실일 것이다.

잡초가 무성한 앞마당의 나무 그늘에 승용차 두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승용차에 물을 뿌리던 사내가 허리를 펴고 손바닥으로 얼굴의 땀을 딱았다.
"이봐, 지형, 집에 있는 놈은 모두 네 놈이야.

정문 옆의 나무 그늘에 한 놈, 그리고 두 놈은 집안에 있어."
옆쪽에서 잡초를 헤치며 이동화가 다가왔다.

검게 탄 그의 얼굴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역시 이 자리가 제일 낫구만."
이동화가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올리더니 차를 밖는 사내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차를 밖는 걸 보면 어디 나갈 작정인가?"
지한영이 머리를 저었다.
"아냐, 어제도 차만 밖았지 나가지 않았어."
백맥하게 들어찬 잡목과 풀숲으로 앉을 자리도 마땅하지 않은 데 다가

공기가 흐르지 않아서 숨을 들이결 때마다 독하고 비런 숨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네 놈은 모두 찍었으니까 이무섭이만 한방 찍으면 해방이야."
이동화가 이쪽저쪽으로 카메라의 랜즈를 조준하면서 중얼거렸다.
양옥집과의 거리는 脚미터밖에 안되었으나 이쪽은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제기, 우라질놈, 더럽게 나타나지 않는구만, 방구석에 자빠져서 낮잠을 자코 있는 모양인데,"
이쪽은 양옥집을 비스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각도여서 옆면과 정면,

그리고 부분이기는 하지만 됫면까지 보였다.

보이지 않는 한쪽 옆면에는 이층 창 한 개만 있을 뿐으로 출입구가 없다.

이무섭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11시쯤 잠판 마당으로 나와 옆모습을 보였다
가 들어갔는데 이동화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정문의 사내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돌아선

그 사내가 이무섭이라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이무섭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의 사내가 있었다.

네 명의 사내는 정문 근처에서, 차를 밖는 모습을,

그리고 옥상에서 빨래를 너는 장면을 모두 찍어 놓았지만 가장 중요한

중년 사내를 찍지 못한 것이다.
"어이구, 우라지게 덤구만."
얼굴의 땀을 밖으면서 이동화가 다시 투덜거렸다.

이무섭의 사진만 찍으면 일단은 마을로 돌아가 쉴 수가 있었다.
마을의 입구를 막아 놓고 있으면 이놈들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지한영은 팔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3시 반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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