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4. 귀향하는사람들

오늘의 쉼터 2014. 12. 6. 08:27

4. 귀향하는사람들 

 

 

 

김선주가 방으로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있던 안정태가 머리를 들었다.
"어서 오시오."
그가 이를'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
"아녜요."
책상 앞에 선 김선주의 시선이 철끗 방안을 스치고 지났다.
책상 위에 놓인 꽃병이나 벽에 붙여진 책장,책상 앞의 소파까지
모두 그대로였지만 사람만은 바뀌었다.

이곳은 김칠성이 쓰던 방인 것이다.
"여기 앉읍시다. "
책상에서 일어난 안정태가소파로 다가오며 말했다.

다부진 몸매 였고 회사 안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예비역 장교였다.
김선주는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조웅남이 구찌 클럽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지명 수배를 당하고 나서 리즈 호텔은

일주일 후에 고용만이라는 사람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조웅남의 위임을 받은 이수종이라는 사람이 명의를 옮겨 주었다는데

김선주로서는 이수종이나 고용만 두 사람 모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호텔의 홍보 업무를 맡고 계신다는데 ."
앞자리에 앉은 안정태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얼굴에는 부드러운
표정이 남아 있었지만·번뜩이는 눈빛과 굳게 닫힌 않은 입술이

만만치 않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네, 하지만 요즘은 제대로 일을 못했습니다, 잘 아시했지만."
"이해합니다. "
안정태가 머리를 끄적였다.
"요즘 시끄러웠지요, 이곳뿐만이 아니라 나라가.

그렇지만 이제 끝났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힐끗 그를 바라본 김선주가 머리를 끄덕였다.

소유권을 옮겨 받은 사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호델은 안정태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우나와 나이트 클럽, 오락실과 카지노는 영업이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이제 주인만 바뀌었을 뿐 호텔의 영업은 예전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안정태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몇 가지 해결되지 않은 것도 있어요,

김선주씨도 잘 아시겠지만."
"펄데요?"
"전의 관리자들 말입니다 사장부터 부사장, 영업부장, 이 사람들
"모조리 도망쳐 버렸지 않습니까? 경찰이 수배중이기는 하지만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아니어서."
안정태가 않은 입술을 비틀어 올리면서 옷었다.
"깡패 조직이었지요, 원조가.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김선주씨는 전 영업부장 백동혁이를 잘 아신다던 01."
갑자기 부른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으므로 김선주는 머리를 들었다.
"그래서요? 잘 안다는 표현은 첫하지만 저한데 무엇을 바라시는 거죠?"
"허어,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과연 듣던 대로 당돌하시구만."
"그 따위로 말하지, 말아요. 난 이런 곳에 더이상 미련이 없으니까요."
김선주는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더이상 리즈 호텔에 출근
할 생각이 없던 참이다. 호델을 비열하게 강탈한 무리가 떤떤스럽게
도 조웅남 등을 매도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백동혁의 이야기를 끄
집어낸 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백동혁씨하고 제가 어떤 사이건간에 이젠 상관할 일이 안되겠죠?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말예요."
자리에서 일어선 김선주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안정태의 얼굴에는
이미 웃음기가 가셔져 있었다. 가늘고 끝이 위쪽으로 치켜진 눈이 찬
찬히 김선주를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그가 잇사이로 말을 뱉자 김선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가 막혀서, 당신 말대로 난 깡패 조직 속에서 생활한 사람이야.
그렇게 하면 웃음만 나온다구."
안정태의 시선이 퍼뜩이며 김선주의 뒤쪽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돌아봤다.
바람을 내며 몸을 돌린 김선주가 문 쪽으로 두 걸음을 떼었을 때
안정태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눈을 치켜뜬 김선주가 머리를 돌렸다.
"이거 놔!"
그 순간 김선주는 옆구리에 격심한 충격을 받고는 방바닥에 무를을 끊었다.

두 손으로 옆구리를 움켜쥔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정태는 몸을 돌려 방문으로 다가가더니 재빨리 안에서 자물쇠를
채웠다.
눈을 한껏 치켜뜨고 반쯤 입을 벌린 김선주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깡패 새끼들은 여자한테 어떻게 매하는지 모르지만 난 이렇다. "
그녀 앞으로 다가선 안정태의 발끝이 또 다시 김선주의 아랫배를 崙다.
"아악!"
고통으로 숨이 막힌 김선주가 아랫배를 움켜쥔 채 방바닥 위에

로 쓰러졌다.
"난 철저한사람이야.네년이 백동혁의 애인이라면 그놈이

날 찾아오게 만들어 주마. 내가 찾아낼 필요 없이 말이다 "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안정태가 웃었다.
김선주는 눈앞에 흘러 떨어지는 안정태의 바지를 보았다.

고통으로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숨조차 제대로 결 수가 없다.
바지를 벗어 던진 안정태가 방바닥에 무출을끊더니

김선주의 스커트를 두 손으로 쥐었다.
김선주는 두 손을 들어 안정태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시 아랫배에 충격이 왔으므로 팔을 떨어뜨렀다.
흐랫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그녀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스커트가 종아리를 스처 내려지는 것이 느껴겼다.

사내의 찬손이 아랫배에 닿자

그녀는 몸을 뒤틀었다가 고통으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멋진 몸이군 그놈한테는 아까운 몸이야."
안정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정태를 리즈 호델의 관리자로 둘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어 "
차에서 내린 박용근이 델듯이 말하자 안재일이 잠자코 시선을 돌 했다.
하바나 클럽의 현관 앞에 지배인과 영업부장, 십여 명의 종업원들
이 두 줄로 늘어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의 일행도 그만콤은 되었으므로 한동안 현관 앞은 정장 차림

사내들도 가득 차 있었다.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클럽의 복도를
철던 박용근이 머리를 돌려 옆을 따르는 안재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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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백화집을 우리가 장악하게는 되었지만 그것도 마음 놓을 수가 없다. "
몇 발짝 앞에 지배인이 걷고 있어서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들
은 안쪽에 있는 밀실에 들어가 앉았다.
하바나 클럽은 역삼동의 번화가에 있는 룸살롱이었다. 김원국 조
직의 소유였던 것을 박용근이 인수하고 나서 보조 웨이터까지 모조
리 자기 사람으로 바꿔 놓아서 박용근이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
는 곳 중의 하나였다. 지배인이 밖으로 물러나자 방에는 그들 둘만이
남게 되었다.
"용 꼬리보다는 밝 대가리가 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대기업의
이인자보다는 소기업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거야, 내말은."
박용근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안재일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되면 너도 분가해 나가라. 업체를 떼어 줄테니까."
"사장넘, 저는 아직 ."
"너도 때가 되면 나같이 된다. "
안재일이 팔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7시 반이었다.
"도무지 이무섭이 무슨 꿈꿍이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단
말이야. 하는 짓을 보면 이것으로 끝낼 것 같지가 않아."
박용근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본래의 계획은 밤의 조직을 장악하는 것이었는데, 다 끝났지 않아?"
"그렇지요, 사장넘 ."
안재일이 커다랄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유흥업소들은 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다.

박용근은 대부분의 주요 업체들을 장악했고 소유하지 않은 곳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그의 부하들은 경비 용역의 마크가 붙은 승용차를 몰고 밤거리를 누비고 다였는

그로 인해 마치 밤만 되면 경찰권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박용근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이무섭의 하수인에 불과한 허울좋은 통치자였다.
업체들로부터 거둬 들이는 엄청난 액수의 세금은 이무섭에 의해서 만 통제를 받는 것이다.

조직의 성패는 오직 힘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아무리 계획이 치밀하다고 해도 힘이 없으면 헛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무섭은 양쪽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보력과
함께 기획력이 있었고 이철우와 안정태에 의해 움직이는 기백 명의
행동 집단이 있다.
그리고 박용근을 제일 두렵게 만드는 것이 이무섭의 배후였다.

무섭은 자신의 배후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박용근이 추측하기에 군과 경찰, 그리고 언론과 정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이무섭의 배경을 생각하면 그는 절로 위축이 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지낼 수만은 없는 노를이다.

박용근은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냥이 끝난 후의 사냥개 신세는 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힘이

없으면 없을수록 값어치가줄어들 것이라는 것쯤은 아는 사람이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지배인 이 들어싫다.
"저, 최 사장넘이 오싫습니다. "
"들어오라고 해 "
안재일이 말하자 그가 몸을 돌렀다.

지배인과 엇갈리듯 들어선 30대 후반의 사내가 방안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여어, 최 사장, 어서 오시오."
자리에서 일어선 안재일이 웃음을 띄었다.
"우리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
박용근이 무거운 몸을 의자에서 엉거주춤 들어올렸다.
"사정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 최장수입니다. "
사내는 박용근이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작 축하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기회
가 없었습니다. "
"괜찰소. 나도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기매요."
"말씀 낮추십시오, 사장님."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때를 맞춘 듯 술과 안주 접시들이 날라
져 왔다.
"여자는 필요없다. "
지배인을 향해 박용근이 자르듯 말했다.
지배인이 물러나자박용근은 술병을 들어 최장수의 잔에 술을 따
랐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 전무한테서 들었을테고. 그래, 해보겠는가?"
이제 그는 말을 낮추고 있었다.
"예, 사장님 ."
술잔을 쥔 채 최장수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
"애들은 몇 명이나 모을 수 있겠어?"
"그거야 얼마든지 모을 수 있습니다만 어떤 일정한 목표를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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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는 것이 딘겠습니다. 이를테면 업체 몇 개의 경비에 펼요한 인원
이라든가 하시면 ."
"난 내 직속의 행동대가 필요해. 일이 생기떤 즉시로 투입될 수 있
는 행동대 말이야."
"OtOt,01. "
최장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사장넘 정도의 신분이라면 백 명종 잡아도 됩니다. "
"난 실전에 강한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내 행동대에 관한 것은 비
밀로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인원은 200명쯤이 낫겠군. 모을 수 있
겠나?"
"돈만 있으면 됩니다. "
"어떤 사람들인가?"
"전과자나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마약쟁이들도 아니고, 규을이
잡혀 있는 놈들입니다. 김원국씨의 조직만 대한민국에 있었던 것이
아넘니다. "
박용근이 힐끗 안재일을 마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최장수는
오래전부터 신촌을 근거지로 세력을 겼던 사내였다. 그가 거느렀던
조직은 강만철에 의해 순식간에 붕괴되어 떠돌이 신세가 되었는데
그는 강만철의 동생이 되기를 거절하고 호주로 이민을 갔던 것이다.
안재일이 조사한 대로라면 그는 밤의 세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내였다. 고집과 배장이 있었고 실력도 뛰어났으므로 부하
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던 인물이다.
"그럼 자네에게 내 목숨을 맡기겠어.자네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
겠는가?"
귀향하는 사람들 141
박용근이 부리부리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최장수의 얼굴
은 굳어 있었다.
최장수가 상체를 세우고는 그의 시선을 받았다.
"저는 김원국씨가 몰락한 마당에 제 나름대로의 세력을 잡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그것이 아니더군요. 저로서는 감당
못할 세력이었습니다. "
최장수가 말을 이었다.
"안형한테서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습니다.
강한 조직이 있고, 얼마든지 부하를 모을 수가 있는 입장인데 저같이
옛날놈을 만나려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었지요. 하지만 듣고 보니 그
것이 아니더군요."
"나도 마찬가지야. 잘나갈 때 오는 놈들은 편하게 놀고 먹겠다는
심보밖에 없어. 사내라면 힘을 들여 쟁취하는 보람이 있어야 돼."
"제가 손발이 되겠습니다. "
"잡은 것을 굳게 다지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형님."
"나에게 자네는 여기 안 전무와 함께 이인자야. 안 전무는 머리이
고 자네는 내 손발이 되는 거야."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
"나도 이미 목을 내놓았네. 이 일이 알려지면 나도 위험해져."
"그렇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형님."
"자아, 이제 술들을 한잔씩 하시지요."
열띤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듯 안재일이 손에 술병을 들고 그들
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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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여자들을 부를까요?"
"필요없다. "
상기된 얼굴로 박용근이 머리를 저었다.
"분위기를 흐리게 하니까 그만둬라."
승용차는 올림픽 대로를 벗어나 오른쪽 셋길로 들어싫다. 길은 왼
쪽으로 반원을 만들면서 회전하여 대로의 밑을 뚫은 지하 차도를 통
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 차도를 빠져 나오자 앞쪽에 수백 개의
붉은 등을 매단 선착장이 보였다. 속력을 줄인 승용차는 선착장 및의
주차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넓은 주차장에는 십여 대의 차들이 제각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쪽에서 들어선 두 대의 승용차는 강 쪽을 향해 나란히 멈추어 싫
다. 이무섭은 괄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침과 분침은 1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운전사와 옆자리에 타고 있던 부하들이 차문을 열고 딴으로 나가
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이무섭은 강가의 계단에서 이쪽
으로 다가오는 한사내를 보았다. 어둠에 덮인 깊은 밤이어서 아직
사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승용차
의 앞쪽에 서 있던 부하들도 그를 발견한모양으로 긴장한듯 몸을
굳히고 있다.
이철우였다.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걸음걸이만 보아
도 이무섭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의 윤곽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났
다. 선착장의 등불에 비친 이철우는 짙은 색 양복에 흰 셔츠를 받쳐
입은 단정한 차림이었다 
그는 곧장 이쪽을 향해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히는 부하들에게 가법게 끄덕여 보이고는

차문을 열고 이무섭의 옆자리에 앉았다. 신선한 바깥 공기가 차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이철우가 머리를 숙여 보이며 말하자 이무섭이 빙그레 웃었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서 말이야."
"죄송합니다. "
"자네가 잠시 쉬겠다고 했지만 난 믿지 않았어. 홍콩의 황가한테서 연락이 왔더구만."
이철우는 표정 없는 얼굴로 잠자코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 결과는?"
"김원국의 처자식과 강만철을 처치했습니다.

김칠성과 오함마는 장례식에 나타났는데 김원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한동안 이철우의 및모습을 바라보던 이무섭이 입을 열었다.
"김원국이 섬에 없었다는 이야긴가?"
"그건 모릅니다 "
"죽은 사람은 어떻게 확인했나?"
"경찰을 매수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
"김원국, 김칠성, 오함마, 이 세 놈도 곧 제거하겠습니다. "
이철우에게서 시선을 뗀 이무섭이 강쪽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조웅남이가 날 습격했어.내 거처를 안기부에서 알려 주었어.

난 안기부 요원 두 놈을 처치하고 산을 넘어 도망쳐 나왔다
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후환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김원국이가 서울에 잠입해 있을 가능성이 있구만 그래 , "
"김칠성과 오함마도 서울로 올 겁니다. "
머리를 돌린 이무섭은 입술 끝을 올려 옷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번적였다.
"벌집을 건드리고 왔어, 자네는."
"어차피 잘 되었습니다. 치러 갈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요."
"안정태를 리즈 호텔의 관리자로 임명했네, 알고 있나?"
"오늘 아침에 들었습니다. "
"네 명 데리고 갔던데 "
"세 명이 당했습니다. "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문 이무섭은 불을 붙이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다시 조직을 맡을 수 있했지?"
이무섭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묻었다.

이철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맡겠습니다. "
"조직원의 반 정도는 안정태의 직할로 맡겨 두었어,"
"알고 있습니다. "
"어차피 자네와 나는 표면에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해."
"김원국의 목표는 제가 됩니다. 단장님께 피해가 가도록 하지는 않겠습니다. "
담배를 빨아 들이며 이무섭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용차의 앞쪽에 서 있는 두 명의 부하가 이쪽을 힐끗거렀다.
"옆차에 박한일이가 타고 있어. 그가 자넬 안내할 거야. 조직의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어."
이무섭이 턱으로 옆에 세워 둔 승용차를 가리켰다.
"타고 가.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
"자네가 원기를 다시 찾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그런 말은 안해도 돼 , 그리고, 참 "
마악문의 손잡이를 움켜쥔 이철우가 머리를 돌려 이무섭을 바라보았다.
"이제 김칠성의 부인을 숙소에서 만나게 될텐데,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생각인가?"
"풀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서 자네에게 물어 보는 거야."
"풀어 준다고 약속을 하다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야?"
"제 상대는 부녀자가 아님니다. 그리고 인질로 잡기는 했지만 이제는 이용 가치가 없습니다. "
"이용 가치 문제가 아냐. 풀려 나갔을 때의 경우를 생각해 봐, "
"입을 다물 겁니다 그런 여잡니다. "
이무섭이 머리를 저었다.
"자네는 요증 이상해졌어. 옛날의 철저하고 냉정한 이철우 같지가 않아."
"단장님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 "
머리를 든 이철우의 시선이 이무섭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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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템날 그대로입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 목표 의식이나 충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이무섭이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으므로 이철우는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한세라는 눈을 뜨고 창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둠이 한겹씩 허물을 벗고 詞은 색 속살을 내보이듯

창 밖으로 회색빛 하늘과 검정색 나뭇가지가 뚜릿이 보였다.

유리창에 물줄기가 어지럽게 흘러내렸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는 것이다.

한동안 유리창의 물줄기를 바라보던 한세라의 눈에 조금씩 물기가 고였다.

오늘까지 7개월하고 이틀째였다.

계산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가 문득 날짜를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발을 굴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눈의 물기를 손바닥으로 셋어내면서 한세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으로 옮긴 지 20일이 되었지만 어딘지 알 수가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숙소는 군대의 막사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주방의 구석에 군대용 수저가 떨어져 있는 것도 그렇다.

대충 옷을 걸친 그녀가주방으로들어셨을 때는 아침 6시 반이 되어 있었다.

가스불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성기가 몸을 돌렀다.

이번주의 주방당번 중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내였다.
"누넘, 아침에 특식을 준비해야 돼요. 대장넘이 오셨어."
"대장넘이라니? 누구?"
그들은 주로 밤에 이동을 하는데 아침이 되면 습자가 늘어나 있거나 줄어들 때로 있다.

그러나 특식을 준비하는 대장은 두 명밖에 없다.

이철우와 안정태였다.

이철우가 사라진 20여 일 동안 안정태가 대장이었고 지금은 그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반 정도의 인원과 함께 떠난 것이다.
"본래 대장넘 말이오."

한세라는 움직임을 멈추고 김성기를 바라보았다.

본래 대장이란 이철우를 말하는 것이다.

을뚜껑을 열고 물을 부어 셋으면서 한세라는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줬다.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한세라의 신경은 내내 주방의 입구 쪽으로

쓸려 있었다.

주방 당번들이 일손을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는 긴장이 풀린 한세라도

어깨를 늘어뜨리고 멍한 얼굴로 그들의 농담을 듣고 있었다.
그때 주방의 문이 열리더니 조장급인 이상욱이 들어졌다.
"아줌마, 잠관만."
퍼뜩 머리를 치켜든 한세라가 그를 바라보았다.
"대장님이 부르십니다. "
주방의 잡담이 그쳤다.

사내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한세라는 잠자코 이상욱을 따라 복도로 나갔다.
건물은 단층이었는데 기다란 직시긱형의 구조였다.

숙소와 사무실, 회의실, 주방, 목욕탕 등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숙소의 규모로 보면 어림잡아 200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고,

건물의 면적은 아마 500평도 넘을 것같이 보였다.

이상욱의 뒤를 따라 한세라는 기다란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서 지나치던 사내들이 그들을 힐끗거렸고 그녀에게 옷어 보이는사내도 있었다.

회의실의 옆쪽에 있는문 앞에 선 이상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판 여기서 기다려요."
노크를 하고 난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곧 나봤다.
"들어오시 랍니다. "
한세라가 방안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이철우가 일어싫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랄으시오, 거기."
이철우가 손으로 가리킨 앞자리에 랄은 한세라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주방에서 불려졌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으나

한새라는 어금니를 물고는 어깨에 힘을 주었다.
"당신을 살려 보내면 우리의 조직이나 위치가 탄로날 것이 떤합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오."
이철우가 입을 열었다.
"내 목숨은 버릴 수가 있어요, 조직과 목표를 위해서는.

하지만 내 실수로 인해서 조직에 해가 끼쳐지면 안되지요."
"당신 남편 김칠성씨는 인도네시아의 섬에 있었는데 다시 서울로 올 것 같습니다. "
머리를 든 한세라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약속할 수 있습리까? 나나 또는 내 부하들, 그리고 여기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당신 남편인 김철성씨한테도 말이오,"
이철우가 턱을 내리고는 눈을 치켜었으므로 한세라를 노려보는 형상이 되었다.
"대답해 봐요, 한세라씨."
"약속하겠어요."
침을 삼킨 한세라가 그의 시선을 받았다.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약속합니다. "
"당신 남편은 어떻게든 날 찾으려고 할 겁니다.

아마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날 찾아낼 거요."
"말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
"모른다고 하겠어요."
"믿지 않을 겁니다. "
한세라가 입술 끝으로만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 남편은 날 믿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이철우를 스치고 지났다.
"여자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녜요."
"남편의 생의 목표가 날 찾는 것인데도 그대로 놔둘 수가 있을까요?"
"난 아이가 보고 싶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렀으므로 한세라는 황급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쳤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일이에요. 난 내 일이 또 있어요."
"그리고 남편은 날 의지하는 사람이 아녜요.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고 잊을 사람이에요."
이철우의 눈길이 힐끗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려 옆모습을 보인 그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눈을 깜박이며 한세라는 그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깜박일 때마다 스냅 영사기의 화면처럼 김칠성의 모습이 보였다가 이철우로 바뀌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서울로 오는 모양이었다.

다시 눈을 깜박이자 굳어진 김칠성의 얼굴이 보였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굳게 다문 김칠성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랄바람이 뒤쪽에서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날렸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0킬로미터증 떨어진 이곳은곡물을하역하는 곳이었다.

김칠성은 한번도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다가왔고 그의 뒤쪽으로 오함마의 모습도 보였다.
김원국의 뒤쪽에 서 있던 백동혁이 주춤거리며 옆쪽으로 다가딘다가 다시 서너 걸음 옆으로

떨어져 싫다 김칠성이 김원국의 앞에 와 셨다.

그리고는 목젖을 커다랄게 움직여 침을 삼켰다.
"형님 ."
그의 목소리는 바랄과 파도 소리에 청쓸려 가늘게 들렀다.
머리를 끄덕인 김원국이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내려놓았다.

시선은 날카로웠으나 얼굴의 표정은 생긴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다.
"수고했다, 가자."
오함마가 다가와 머리를 숙이자 머리를 끄덕여 보인 김원국이 몸을 돌렸다.
오후 5시밖에 되지 않았으나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듯 어두웠고

습기를 가득 품은 바닷바람이 그들의 옷자락과 머리칼을 날렸다.
그들은 곡물 창고 뒤죽에 대기시켜 놓은 승용차에 올랐다.
"형님."
차가 창고 옆을 지나 국도로 들어서자 옆자리에 앉은 김칠성이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형님, 뵐 낮이 없습니다. 차라리 제가 죽었어야 하는데 ‥‥‥‥
앞자리에 앉았던 오함마가 머리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눈을 치켜뜨고 있었으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형님, 제가 기어코 원수를‥‥‥‥
"그만해 둬라."
김원국이 앞쪽을 바라본 채 낮게 말했다.
"만철이가 안됐다. "
"형님, 형수넘과 태훈이는·
"이야기 들었다. "
"만철 형님이 꼭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통없이 돌아가셨다고."
"마보 같은 놈."
이맛살을 찌푸린 김원국의 시선이 힐끗 김칠성의 얼굴을 스쳤다.
"할 일이 산처럼 장여 있는데 제 머리를 美다니, 책임감이 없는 놈이다. "
"형님 ."
"너희들에게 말해 둘 일이 있다. "
김원국의 말에 오함마가 다시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만철이 일은 어차피 제수씨한테 알려 주어야 하겠으니 할수없고,
내 가족 이야기는‥‥‥‥
잠시 말을 멈춘 김원국이 창 밖으로 머리를 돌렸다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일절 금한다. 부하들에게 단단히 일러 두고 발설하는 자는 내버려 두지 않겠다. "
눈을 크게 치켜뜬 김원국이 오함마와 김칠성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가족은 지금도 만탄 섬에 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 알겠느냐?"
"네, 형님 "
오함마가 붉어진 얼굴로 대답하였으나 김칠성은 이를 악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명심해 둬라."
김원국이 맺듯이 말하고 시선을 돌리자 차 안에는 엔진 소리만 들려 올 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어느덧 부슬비가 내리는 창 밖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차창에 쉴새없이 그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던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이무섭은 다시 종적을 감추었어.경찰의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 확실하다.

이찬형씨나 유혁근씨로는 역부족이야."
김칠성과 오함마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김칠성은 멍한 얼굴이었고 오함마는 열심히 눈을 껌벅이고 있다.
"안기부장도 마찬가지다. 수사권이 없는 입장이니까

요원 두 명이 희생당한 것이 노출될까 봐 오히려 움츠러 든 상황이야."
"강한석 장관이나 박동호 치안감,이 사람들이 이무섭의 배후 세력인지,

아니면 놀아나는지 그것도 알아내야 한다. "
"안정태라고, 이번에 리즈 호텔의 총지배인 겸 부사장에 취임한 사내가 있어.

전직 대위인데 이철우와 군 시절에 같이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사내야.

이놈이 업체들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명색은 박용근이나 정기욱이를 지원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업체에 파견된 안정태의 부하들이 실세 노릇을 한다. "
김원국이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놈들의 조직은 상관에 대한 절대 복종, 맹목적인 충성으로 가득 찬 집단이다.

그 순자는 처음에는 300여 명으로 추정했었는데 이제
공식적으로 업체들을 인수하고 나자 매일 늘어나고 있어.

안기부 고 차장의 집계로는 2천 명이 넘는다. "
김칠성과 오함마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간부급 대부분이 군 출신인데 정부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별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

대한민국 남자들 중 군 출신 아닌 사람이 없으니까. "
빗발이 조금 약해졌으므로 김원국은 차창을 조금 열었다.
바랄가를 달리는 승용차 안으로 비리고 판 바다 냄새가 몰려 들어왔다.
"정부 각료 중 내가 믿고 있는 사람은 안기부장 하나밖에 없다.

른 사람들은 모두‥‥‥‥
창 밖으로 시선을 준 채 김원국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창 밖은 어느 사이에 어두워져 있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방으로 들어선 고성섭이 조심스럽게 묻자 이찬형이 한쪽 입 끝을 올리면서 웃었다.
"그저 다녀왔을 뿐이야. 본론은 꺼내지도 못했어."
그의 앞자리에 앉은 고성섭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부장님, 이렇게 시간만 보내다가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
"글쎄, 그걸 누가 모르나?"
"각하께서 듣지도 않으셨단 말입니까?"
"서류를 놓고 가라고 해서 놓고 왔을 뿐이야. 그리고 상황을 말씀÷렸고. "
"어떻게 말씀입니까?"
"밤의 세계가 평온해진 것같이 보이지만 절대 아니다,

불씨가 가까이 있는 화약고다 하는 상황을 말씀 드렀어.

그리고 지난번의 혼란상태를 일으킨 것은 김원국의 조직이 아니라

지금 세력을 잡고 있는 무리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고성섭이 상체를 앞쪽으로 굽혔다.
"그했더니요?"
"강한석이가 이번에도 먼저 선수를 친 모양이야.

아무 말 안하시고 머리만 끄덕이시더군."

"그러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어 열심히 살려고 하는 제대 군인들을 도와 주어야 할 것이라고.

이것은 지금 밤의 세계의 권력을 잡은 그놈들을 인정하시는 것 같은 말씀으로 들렸어 "
"날 보고 요증 신경이 예민해진 것이 아니냐고 물으셨어. 자네도 내가 그렇게 보이나?"
고성섭이 시선을 내렸다가 들어올렸다.
"각하께서는 나름대로 정보 분석을 하고 계십니다.

어첫밤에는 김동진 국방장관을 일식집 '대판'에서 만나셨습니다. "
"무엇이?"
이찬형이 눈샙을 치켜올렸다.
"그걸 왜 지금에야 보고하나?"
"저도 한 시간 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경호실에서 철저하게 보안을 하는 통에 저희 요원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
"각하께서 그 말씀은 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입맛을 다신 이찬형이 입술로만 웃었다
"고 차장, 요증 내가 곁돌고 있어. 아니, 내가 각하 말씀처럼 예민해겼는지도 모르지.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고성섭이 굳어진 얼굴로 이찬형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첫째는 각하께서 너무 서두르고 계십니다. 그건 성격 탓인데 경제에만 집중하시다 보니까

다른 사건이나 문제점들은 거추장스럽게 만 생각하시는 겁니다. "
"둘째는 각하의 인맥입니다.

정치권이나 군,하다못해 행정 분야에 이르기까지 깊고 넓은 인맥이 없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지원이 없이는추진하는 일이

겉치레로 끝나고 말 겁니다. "
"각하도 그걸 알고 계셔 ."
"성격 탓이라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각하는 단승에 일을 끝낼 수 있는 줄로 아십니다.

정적이나 불만 세력이 힘을 잃게 되면 잊으 십니다. "
"셋째는 각하의 임기가 이제 2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각하는 점점 더 조급해지시고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주의 깊게 보시지 않고,

그리고 주변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각하와 나라 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
"난 능력이 닿지 않는 모양이야."
"부장넘 입장이 되시면 어떤 능력이 있더라도그 이상은할수 없었을 겁니다. "
"이것도 오늘 오후에 들은 정보입니다만,

강한석 장관의 대학 동창으로 통일원 차관을 하다가 지금 국제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안길중씨가 며칠 전에 청와대에 다녀왔습니다. "
"안길중이라면 나도 알지. 그런데 그가 왜?"
고성섭이 시선을 내렸다.
"제 생각입니다만 부장넘의 후임 물망에 오른 것 같습니다. "
"잘됐군."
이찬형이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고성섭을 향해 얼굴을 펴고 웃어 보였다.
"그렇게 되면 내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겠구만.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니까. "
"그러고 보니 각하의 태도가오늘은 달랐어.북한의 동향만 물어 보시더라니까."
"부장넘, 안길중씨가 어떤 인물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고성섭이 정색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으므로 이찬형이 입맛을 다시 며 머리를 돌렸다.
"고 차장, 난 최선을 다했어. 명령에 따를 뿐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없네 "
"안길중씨가 부장님 자리에 앉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가 강한석씨와 동창이라는 이유 때문인가?"
"지난번 남북한 특사 교환으로 평양에 갔을 때 대표였던 외무부장관과 불화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
이것은 안기부의 고위층과 그 당시의 대통령 오대영을 비롯한몇 사람만 알고 있는 일이다.

안길중은 부대표로 평양의 회담에 참석했었는데 이산 가족의 교류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될

기미가 보이자 안기부에 전문을 보내 함정이라고 외쳐 대었었다.

대표인 이한영 외무부 장관이 일일 보고를 할 때마다 안길중은 따로 전문을 보내어 함정인 것을

강조한 덕분에 본국 정부는 회담을 지연시키라고 결정을 내렀다.
이것은 나중에 발견되었지만 전문 발송의 시기 문제로 왈가왈부하다가 흐지부지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고성섭과 이찬형은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이산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안길중은 쳐죽여도 모자랄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공명을 시기하여 국사를 그르친 역신이다.

선조 시대에 일본의 풍신수길을 만나고 와서 그가 조선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고 거꾸로 말한

반역자가 400년 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아직 딘개월의 시간이 있습니다,부장넘, 찐월의 정기 국회 기간에 당직 개편이 있을 것이고

그때에 강한석이 중용된다는정보가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부장님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
고성섭이 눈을 치켜뜨고 이찬형을 바라보았다.
"부장넘은 이놈들의 마각이 드러날 때까지 계셔야 합니다.

아니 드러나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부장님과 같이 그만두겠습니다. "
한동안 고성섭을 바라보던 이친형이 문득 물었다.
"자넨 딸이 하나 있지?"
"네, 지금 대학 3학년입니다. "
"다 켰군."
"일년만 가르치면 됩니다. 제 집을 팔아서 혼수감 대고, 저는 시골에 가서 낚시나 하겠습니다. "
"이제는 시골 저수지도 오염이 되어서 ‥‥‥‥
"희망을 걸 곳은 김원국밖에 없습니다, 묘한 해결책입니다만."
고성섭을 바라보던 이찬형이 이윽고 가병게 머리를 』1덕였다.
"우리, 그저 이름없는 신하가 되세, 직분만을 다하는."
"압니다, 부장님. 저는 낚시 못해도 됩니다. "
고성섭이 따라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리즈호텔의 안정태를 감시해야겠는데요."
"조심해. 그놈은 철저하게 보호망을 치고 있어. 거물급 변호사들이 상담억이 되어 있다지 않아?"
"이철우의 심복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배후가 모습을 나타낼 시기가 되었지요.

박용근이나 정기욱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고성섭의 말에 열기가 섞여 있었다.
리즈 호텔은 전과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줬다.

나이트 클럽의 정문에는 저녁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붉은색 정복을 입은

웨이터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영업이 잘되면 종업원들도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들을 한다.
승용차의 됫자리에 앉은 백동혁은 한동안 우두커니 호텔의 현관쪽을 바라브았다.

주인만 바뀌었을 뿐으로 호텔은 끄떡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호텔의 현관을 나서는 사내 한 명이 보였다.

강인만이다. 장우길의 부하로 얼굴이 팔리지 않은 녀석이었다.

정문을 빠져나온 강인만은 곧장 횡단 보도 쪽으로 다가오더니 신호에 걸려 멈춰섰다.
이쪽은 길 건너편 문구점 앞이어서 그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부하가 브레이크를 풀자 승용차는 천천히 차
도로 내려가 멈추어 딘다. 신호가 바뀌자 강인만이 횡단 보도를 건너 이쪽으로 다가왔다.
긴장한 듯 두 눈을 힘주어 뜨고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다가온 강인만이 앞자리에 오르자 승용차는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강인만이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형님,사람들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관리부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일반 직원들도 거의 새사람입니다. "
알고 있는 일이어서 백동혁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기관실 고 주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홍보실의 김선주씨는 얼마 전부터 사무실에 나오지 않는답니다. "
강인만이 힐끗 시선을 들었다가 내렸다.
"호텔 안에 소문이 좌악 퍼겼다고 하는데요,

김선주씨가 총지배인실에 들어갔다가 당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
"그날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데요."
승용차는 빠른 속도로 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오후 3시여서 교통이 한가한 시간이었다.

리즈 호텔의 사정도 알아볼 겸 김선주의 소식을 들으려고 나온 길이었다.

그녀는 호텔에 출근하지 않았고 집에 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김선주가 휴가를 갔다고만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왜 당했다고 하더냐?"
백동혁이 묻자 강인만이 눈을 껌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저, 김선주씨가‥‥‥‥
"들은 대로 말해!"
"형님하고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안정태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호텔 웨이터가그날새옷을가지고총지배인실에 갔더니 김선주씨가‥‥‥‥
"옷이 및긴 채 소파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
"병신 같은 놈."
제가 욕을 먹은 줄로 생각한 강인만이 얼굴을 첫및하게 굳히고는 시선을 내렸다.
"그놈은 변태로구만, 사무실에서 그첫을 하다니. 호텔 방이 바로 옆인데."
시선을 든 강인만이 눈을 꿈백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내가 알기로는 그 여자, 숱하게 떡방아를 템었어.

한두 놈이 아녀."
"그런 일로 회사를 안 나오다니, 기집애들 심보를 알 수가 없어."
"형님, 안정태는 사무직원들 증에서 우리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것같이 보이는 사람은

모조리 잘랐다고 합니다.

김선주씨도 아마 그래서 ‥‥‥‥
백동혁이 입맛을 다셨다.
"그건 그렇고 김선주가 어디 있다는 소문은 없더냐?"
"연락도 없는 모양입니다. "
"망할 년이 우리한테는 연락을 해주었어야지.

안가놈의 그 맛을 보고는 쇼크를 먹은 모양이구만."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오덕호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형님, 어디로 갈까요?"
백등혁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천호동 삼락옥으로 가자.아마 개가몇 마리 있을 거야.

오늘은 개피 냄새라도 맡아야겠다. "
"너희들, 보신탕 잘 허지?"
"네, 형님 ."
일제히 대답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얼굴은 탐탁한 표정이 아니었다.

백동혁이 머리를 돌려 강인만을 바라보았다
"아마 3분도 안되어서 끝났을 거야."
"f1?"
덕을 치켜들었던 강인만이 황급히 눈을 깜박이며 시선을 내렸다.
"그 여자는 모기한테 한방 물린 거다. 근지럽기만 했을 거야."
백동혁이 이를 드러내며 그를 향해 옷어 보였다.

승용차는시내의 중심가를 빠져 나가 강변도로로 들어셨다.
열려진 차창으로 눅눅한 바람이 몰려 들어왔다.
"강변도로에 있습니다. 곧 반포대교가 나옵니다. "
휴대폰을 쥔 이정문이 앞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동혁의 승용차가 차량 두 대를 지나쳐 달리고 있다.

차량들이 강변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퇴근 시간이어서 속력은 시속 40킬로 미터 정도였다.
"아마 영동 쪽으로 갈 것 같은데요."
강변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대부분은 한강에 걸런 다리 중의 하나 를 건너 영동으로 빠져 나간다.

이정문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앞쪽을 노려보았다.
호텔 주변에 감시원을 깔아 놓았었는데 백동혁이 문구점 앞에 차를 세줬을 때부터

문구점 건물의 3층에 있던 이쪽 감시원에게 발견이 되었다.
안정태는 근처 건물에 빈틀없이 감시원을 깔아 놓아서 수상하게 보이는 사람은

즉각 알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어? 형님, 저놈이 지하 차도로 가는데요? 시내로 들어갈 모양입니다. "
앞자리에 앉아 있던 김오덕이 상체를 세우고 말했다. 삼차선을 달리던 백동혁의 승용차는

대교를 건너는 우측길을 지나 시내로 들어 가는 지하 차도 안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조웅남이 벌컥 방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김칠성과 오함마가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배타고 왔다은서?"
응접실에 조웅남의 말소리가 울렸다.
김원국은 2층으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있으므로 그들은 조웅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앉자 조웅남이 눈동자를 굴려 앞에 맞은 그들을 둘러보았다.
"말렀는디, 두 놈 다. 근디, 함마 너는 왜 왔다갔다허냐? 진득허니
한군디 있을 것이지. 그러고, 만철이는 왜 안 와?"
"형님, 말씀 드릴 일이‥‥‥‥
오함마가 첫기침을 하고 상체를 세우자 김칠성이 옆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첫이여?"
조웅남의 이맛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몸집은 크지만 뛰기로 마음 먹으면 날렵해서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 조웅남이다.

그만큼 본능적인 육감이 발달되어 있는 것이다.
"첫이여? 이 시키야?"
오함마가 우물거리자 조웅남이 버럭 소리를 쳤다.

이제 그의 눈은 독기를 품은 템의 눈처럼 번들거리고 있다.
"형님 ."
오함마는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 소매로 눈물을 첫었다.
"이런 지기미 씨발놈이 "
조웅남의 얼굴이 금방 시텔겋게 달아올랐다.

눈을 부릅떠 김칠성과 오함마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깨를 들먹여 거칠게 숨을 쉬었다.
"빨리 말 안혀?"
"형님, 제가‥‥‥‥
김칠성이 어깨를 치켜세우고는 조웅남을 쪽바로 바라보았다
"만철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
눈을 꿈택이며 조웅남이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어느 사이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저하고 같이 계셨었는데, 놈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가승에 총을 맞고, 그래서 가망이 없다고 하면서 머리에 총을 美아서‥‥‥‥
"세 발인가를 맞았지요. 가망이 없었습니다. "
김칠성이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밖았다.
"놈들은 이철우의 부하들이었어요.

다섯 놈인가 여섯 놈이 왔는데 세 놈을 잡았습니다. 나머지는 도망을 쳤고."
"갑자기 집으로 습격해 와서."
"그냥 죽었냐?"
및템해진 얼굴에서 입술만을 달작여 조웅남이 물었다.
"그 시키, 죽으은서 암 말도 안허데?"
"예? 예, 하더군요, 하셨습니다. "
김칠성이 상체를 세우면서 어깨를 치궈올렸다.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셨습니다‥‥‥회고 형님한테도 안부를
전해 달라고 쳤고, 큰형님한테도‥‥‥‥
"그 시키, 말도 드럽게 많이 혔네 "
"f1?"
"지 각시 얘기는 안허고?"
"예? 예, 그것도, 여러가지‥‥‥‥
"죽는 놈이 폼잡고 노가리 業고만, 옛날 영화맹키로."
"형수넘은 편찮여?"
가라앉은 조웅남의 목소리가 다시 방안을 울렸다. 그러자 오함마가 번적 머리를 들었다.
"네, 형수넘은 괜찮아요."
다행이고만."
"긍게 너는 장사 치르려고 갔다 왔고만."
"til . "
오함마가 불안한 듯 여러 차례 눈을 깜박였다.

말소리가 한없이 잦아들어 가고는 있지만 언제 무슨 발작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조웅남이다.
"긍게로 너는 형님허고 둘이 나를 속였고만. 만철이가 죽었는디 ."
"그려, 내가 알은 미친 놈이 되았을 거여. 이해헌다. 다 나를 생각 혀서 그렀을 거여."
김칠성과 오함마가 마악 대결을 앞둔 싸움꾼처럼 조웅남을 노려보았다.

조웅남이 부스럭거리며 소파에서 엉덩이를 들자그들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방에 들어갈팅게, 느그들도 피곤헐틴디 쉬어라."
김칠성과 오함마는 대답하지 않고 들어질 듯 그를 바라보았다.

몸을 돌린 조웅남이 휘적이며 방을 나가자 어깨를 늘어뜨린 오함마가 김칠성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거, 아무래도 정점하다. "
김칠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저것, 위험한 증세야. 조심해야 돼."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랄은 김칠성이 머리를 떨구고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차라리 몇 대 두들기면서 난리를 피웠으면 속이 풀릴텐데, "
오함마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 팔이나 하나씩 부러뜨려 준다면 우리도 더 ‥‥‥‥
그러다가 목이 메인 오함마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렀다.
승용차는 큰길 입구에 세워 두었으므로 그들은 북적대는 사람들을 헤치고 첫길로 걸어 들어갔다.

2미터도 되지 않는 셋길이었지만 길 양쪽에는 양복점에서 만화가게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번잡한 곳이었다.

 이정문은 백동혁의 일행이 다시 오른쪽의 골목길로 꺾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쳤다. 은근히 불안해진 것이다.

앞장을 서서 골목길의 입구에 다다른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 자식, 개백정 소문이 정말이로구만, 캐 잡으러 왔어, 저기에."
이정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들의 차가 세워진 앞쪽의 골목 끝에 '삼락옥'이라고 최워진 간판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뚜렷하게 보였다.
골목 끝에 있는 집이어서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집 앞에는 서너 마리의 똥개가 줄에

묶여 있었다.

개도 잡고 보신탕도 해주는 모양으로 집안의 평상 위에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것도 보였다.
"막다른 집이야, 놈은 제 욧자리로 들어간 거다. "
이정문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허름한 주택가였고 큰길에서 백미터즘이나 안쪽으로 들어온 골목이다.

그가 서 있는 좌우에는 비디오 가게와 철물점, 조그만 설렁탕집이 늘어서 있었는데

저넉 무렵 이어서 오가는 행인들로 번잡했다.
중년 사내 한 명이 삼락옥에서 나오더니 개들을 바라보았다.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내리더니 땅바닥으로 몸을 낮추었다.

이윽고 그는 제일 큼직한 놈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놈이 개를 잡을 모양이구만, "
이정문이 혼잣소리처럼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어 다이얼을 눌렀다.
그들은 골목의 입구에 몰려 서 있었지만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다.
구멍가게 앞에는 아이들이 몰려서서 뽑기를 하느라고 소란스러웠고 골목 입구의 오락실에서는

귀를 울리는 전자음이 쉴새없이 터져나봤다.
"들어가자."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이정문이 머리를 들었다.
"오덕이,너는세 명 데리고문 앞에 지켜 서라

나오는놈이 있으면 쳐, 나는 너, 너, 너, 세 명 데리고 안으로 간다. "
둘러선 사내들을 눈으로 찍으며 이정문이 다부진 얼굴로 말했다.
"개백정놈이 작대기로 어떻게 하는가 보자."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고 골목안은 음식 냄새와 지린 듯한 냄새가 섞여 있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들의 옆을 술에 취한 중년 사내 세 명이 온몸으로 고기냄새를 풍기면서 지나갔다.

이정문은 앞장을 서서 골목 끝쪽의 삼락옥으로 다가갔다.

거리는 30미터밖에 안되었지만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한가 하게 길에 나와 있는

동네 사람들 때문에 곧장 다가갈 수는 없었다.
삼락옥 안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왔고 먹음직한 개고기 냄새도 풍겨왔다.
이정문은 허리춤에 철러 넣은 권총의 손잡이를 쥐었다. 소음기까지 끼워진 묵직한 콜트가

손에 잡히자 가슴이 든든해졌다.

목표는 백동혁이다.

삼락옥 안으로 들어간 백동혁의 일행은 모두 네 명이었지만 조무래기들은 젖혀 두고

백동혁의 명줄만 끓을 작정이었다.
삼락옥의 대문을 뛰어들면서 이정문은 권총을 때어 들고는 내부를 재빠르게 臺어보았다.

평상에 앉아 있던 손넘들이 놀라 일어서는 통에 술상이 뒤엎어졌고 부엌에서 나오던

여자가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한옥의 구조여서 마당의 평상과 열려진 안방, 건년방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그러나 방에는 백동혁이 없다.

이정문은 부및 옆의 뒷마당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의 뒤쪽으로 사내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았고 부하들이 지르는 고함 소리도 섞여 들렀다.

이정문은 단숨에 부엌을 돌아 됫마당으로 달려들었다.

집안으로 뛰어들고 나서 5초도 되지 않았다.
백동혁은 됫마당에서 개를 잡고 있을 것이고 분위기에 놀라

이쪽을 맞을 준비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그의 시선이 됫마당을 번책이며 臺었을 때 두 명의 중년 남자와
그사이에 서 있는 백동혁이 보였다.

그는손에 말로만들었던 검정색 목검을 쥐고 있었다.

놀란 중년 사내 한명이 땅바닥에 엉덩이를 핀으며 주저않았고 다른 사내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외마디 고함을 질 했다.
이정문은 달려드는 속력을 줄이면서 백동혁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거리는 5미터 정도였다.

눈을 감고도 놈의 심장을 딘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백동혁이 두 손에 움켜쥔 목검을 하늘로 번책 치켜드는 것이 보였 카.둘이의 시선이 마주쳤고

이정문의 둘째손가락은 방아쇠를 잡아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 순간 이정문은 머리 꼭대기에서 쏟마지는 물줄기를 느줬다.

그러나 물이라고 느껴진 것은 순간이다.

그 다음 순간 그는 온몸으로 껑충 뛰어오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악!"
뜨겁다는 표현보다 피부가 벗겨지는 듯이 선뜻하면서 온몸이 오그라지는 것 같은 고통이 왔다.

그리고 두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이정문은 앞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졌다.
"적, 퍽 , 적 ."
그러자 다음 순간 그는 머리가 둘로 梁개진다는 의식을 끝으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그의 옆에는 방금 때려잡은 개 한 마리가 머리가 똑같이 갈라진 채 눕혀져 있었다.
백동혁은 목검을 곧추세우고는 안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이정문을 뒤따라 들어서던 부하 한 명은 이미 됫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몽둥이에 허리를 맞고는 주저앉아 눈동자만 희번덕거리고 있다.
앞마당의 소란도 끝나 있었다.

부하들이 으로 치고 나간 모앙이었다.

평상 옆에 엎어져서 사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이정문의 부하가 보였다.
담밑에 旻그리고 랄은 또 한 명의 사내는 무릎을 움켜안고 연신 높은 비명을 질러대는 중이다.

술을 마시던 손넘들은 모두 안방 쪽에 몰려서 있었는데 이제는 한사람도 입을 열지 않는다

두 눈을 치켜 뜨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여자는 부및으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문 밖으로 나간 백동혁은 놀란 개들 사이에 자빠져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보았다.

모두 저쪽 놈들이었는데 한 놈은 머리가 피투성이었고 다른 한 놈은 허리를 움켜쥐고

연신 땅바닥을 맴돌고 있다.
"가자. "
백동혁이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예, 형님 . "
오덕호가 쇠뭉치를 옆구리에 끼면서 다가봤다.

개 삶는 물을 이정문에게 끼엄은 장본인이다.

그놈은 됫마당의 가마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던 오덕호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부및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물론이다.
"오늘은 기분이 괜찮구만, 개하고 사람하고 같이 잡았다. "
백동혁이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 목검을 밖으며 만족한듯 말했다.
골목 안은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순대국집 아주머니도 행주치마를 두른 채 뛰어나봤고 오락실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사람들을 헤치고 골목의 입구로 나오자 이강일이 부하들과 함께 그를 향해 뛰어왔다.
"형님, 두 놈은 놓쳤습니다. "
"상관없어, 대가리 한 놈을 잡았으니까."
그들은 서둘러 큰길로 다가갔다.
"오늘은 기분이 썩 좋구만, 골통이 부서지는 촉감이 오늘따라 상쾌했어."
백동혁이 좌우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으나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중 아무도 막대기로 개나사람의 골통을 부숴 본 사람이 없을 뿐더러

오늘 따라 백동혁이 들떠 있기 때문이었다.
응접실로 들어선 김칠성이 부하로부터 휴대폰을 받아 쥐었다.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에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겨왔다.
"여보세요."
소파에 몸을 던지듯이 談으면서 그가 통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접니다. 김춘수올습니다. "
"그래, 웬일이냐?"
직속 부하는 아니지만 영동의 켄트 클럽에서 지배인을 맡고 있던 사내였다.

그도 이번에 켄트 클럽의 소유권이 박용근의 대리인에게 넘어가자 직장을 잃었던 것이다.
"형님, 형수넘이, 형수님이 돌아오셨습니다. "
다급한 듯 김춘수가 커다랄게 말했다.
"형님, 듣고 계십니까?"
김칠성이 눈을 부릅뜨고 덕을 치켜들었다.
"듣고 있어, "
"지금 댁에 계십니다. 저, 어머넘 댁에 ."
"네가 어떻게 알게 되었어?"
"예, 형님, 그것이 ‥‥‥‥
‥‥‥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클럽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는데, 집으로 전玲‥‥‥
"누구한테서?"
"글레, 그것이‥‥‥ 형수님이 돌아오셨으니까 확인해 보라고만 해서요, 어머님 댁에요."
"그래서 전화를 했지요.그했더니, 진짜 어머넘 댁에 계셨습니다.
도착하신 지 몇 시간밖에 안된다고."
"그 사람 말이, 언론이 알연 시끄러울테니까 어서 조용한 곳으로 모시라고."
"그 사람이 누구야?"
"누군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님."
"알았다, 수고했다. "
"형님, 제가 어떻게 ‥‥‥‥
"너는 입 다물고 있어라.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입 다물겠습니다, 형님."
스위치를 끈 김칠성이 첫발선 눈을 들어 문 쪽에 서 있는 부하를 바라보았다.
"동혁이한테 연락해라. 내 처갓집에 가서 영옥이 엄마를 확인하고, 그리고‥‥‥‥
말을 멈춘 그는 침을 삼켰다.
"미행 조심하고 저쪽 아랫집으로 데려오라고."
"예 , 형님 . "
온몸을 첫뻣하게 긴장시킨 부하가 서둘러 휴대폰을 받아 쥐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칠성이 마악 응접실을 나서는데 이층의 계단을 김원국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오함마가 따르고 있다.
"형님, 말씀 드릴 일이 ‥‥‥‥
김칠성이 다가가자 김원국이 그의 앞에서 걸음을 멈켰다.
"저, 영옥이 엄마가 집에 와 있답니다, 금방 연락이 왔는데요."
김원국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고 오함마가 입을 따악 벌렸다가 닫았다.
"그런데 조금 걸리는 것이 어떤 놈이 제 부하한테 그것을 알려주었답니다.

그리고 언른이 알면 시끄러울테니까 어서 피신시키라고 했다는데 ‥‥‥‥
시선이 마주치자 머리를 숙인 김칠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동혁이를 시켜서 미행 조심하고 아랫집으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
"잘했다. "
머리를 끄덕인 김원국이 가법게 말했다.
"제수씨가 돌아왔으니까 어떻게든 모셔와야 한다. "
"그렇지만, 형님."
오함마가 머리를 들자 김원국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렇지, 함마. 너도 애들 데리고 나가 보아라.

동혁이 뒤를 받쳐줘라, 어서."
"예, 형님 ."
오함마가 서둘러 현관으로 다가가자 김칠성이 잠자코 머리를 들었다.

첫발선 두 눈이 더욱 붉어져 보였다.
"웅남이가 어제부터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 만철이 때문에 충격이 클 것이다. "
김원국이 쪽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방에 들어가지는 말아라. 내버려둬 . 하지만 잘 살펴봐야 한다. 눈을 떼지 말란 말이다. "
"예, 형님 "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고 난 김칠성이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김원국은 그를 지나 현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봤다.

밤 하늘에 가물거리는 별이 떠 있었고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피부에 와 닿았다.

하늘을 향해 심호홉을 하고 난 김원국은 두어 번 발을 땅에 구른 다음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탈 밑은 인적 없는 모래사장이다.

오늘도 지칠 때까지 모래 위를 달릴 작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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