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타는 섬
눈을 뜬 조웅남은 두어 번 눈을 껌택이고 나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김경지를 알아보았다.
"워여? 워 허고 있어?"
그러자 김경지가 살짝 웃었다.
"템날 생각 하고 있었어요. 제가 다쳤을 때, 당신이 매일 찾아오셨표."
'끙' 소리와 함께 조웅남은 다시 눈을 감았다.
이맛살이 조금 찌푸려져 있었다.
이제 가습에 감은붕대는 거의 다풀려 있었다.
오른쪽 및구리의 꿰맨 부분이 헐어서 소독을 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일주일 후면 퇴원해도 좋다는 것이다
"저, 신문 읽어 드려요?"
김경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렀다.
그녀의 숨결이 얼굴의 피부를 스쳤고 익은 과일 같은 승냄새가 났다.
그가 잠자코 있자 부스럭대는 종이 소리가 들려 왔다.
"세무 감사는 내일까지 끝날 예정이래요.
하지만 업체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있어서 공매 처분 당할 확률이 커요."
신문의 내용과 그녀가 들은 정보를 합성해서 이야기 식으로 말해 주는 것이었는데
언젠가 신을을 그대로 읽다가조웅남이 베개를 집어 던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즈 호텔은 그냥 운영되고 있어요.
나이트 클럽하고 사우나, 오락실은 문을 닫았지만, 당신이 회복중이라고 신문에 책어 있네요.
하지만‥‥‥‥
"하지만 워?"
눈을 감은 채 조웅남이 불쪽 물었다.
"세금을 얻어맞으면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세금을 안는 조건으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공매 처분 당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다음. "
"기존 업체들 증 70퍼센트는 위임장을 가진 사람들이 세금을 안는 조건으로 업체를 넘겼어요."
"개자식들, 두고 보자. 다음."
"아주일보의 사설인데요,
'김원국의 기업체를 이렇게 청산해도 좋은가'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
조웅남이 실눈을 뜨고 김경지를 바라보았다.
"공권력을 동원해서 법에도 없는 조처를 하고 있다고 썼어요."
"이름이 누구여?"
눈을 뜬 조웅남이 묻자 김경지가 머리를 한쪽으로 눕혔다.
"이건 사설인데."
"그려도 쓴 사람이 있을 거 아녀?"
"알아볼게요."
"이름 알어 놔. 쪽쪽헌 사람여. "
김경지가 신문을 접었다.
짧은 머리를 귀밑에서 살짝 웨이브가 지도록 했으므로 랫되어 보이는 모습이다.
"씨벌놈들허고 쪽쪽헌 사람들허고 잘 구분혀 놓으란 말여.
신세도 갚고 웬수도 갚을텡게로, 차곡차곡."
그러는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유혁근이 들어서고 있었다.
"어이구, 사모넘이 오늘도 계시네요."
떠들씩한 목소리로 김경지를 향해 아는 체하며 유혁근이
의자를 끌어당겨 조웅남의 옆에 앉았다.
"어떠십니까?"
"그저 그렇지, 쥐 . 나한터 조사헐 것이 있소?"
"조사는 뭘, 그냥 문병차 들른 것이지."
그러면서 유혁근의 시선은 분주하게 방안을 臺었다.
옆에 앉은 김경지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퇴원하실텐데, 집에서 당분간 쉬시겠지요?"
유혁근이 묻자 조웅남이 풀액 웃었다.
"그러은 그렇지, 나한티 그 말 헐라고 왔고만, 유 경감넘이."
"조 사장님 생각해서 말씀 드리는 건데."
"괭이가 쥐 생각 허는고만."
"여보."
김경지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돼요?유 경감님이 생각해서 말씀하신다는 Dl . "
"호델을 누구헌티 넘기라고 헐 거여, 책끔 있으은."
유혁근이 입맛을 다셨다.
"사회 분위기가 안 좋아요. 여론이 그렇고."
"지기미 좇까지 말라고 그려.
여론 좋아허네 어디 내 앞에서 입 벌려 보라고 혀 주딩이를 및어 놓을팅게. "
조웅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뒤에서 됫소리 허는 것이 여론이 아녀.
돈 멕여서 표 많이 나오는 것이 진짜 여론이라는 거여,
그렁게로 그 따우 여론은 필요을어."
"어허, 이 』반이 ‥‥‥‥
"당신, 나가. 귀역질이 나올라고 헝게. 어이, 얼릉 문열어, 이 사람 나가게, "
퍼뜩 유혁근의 얼굴을 들여다본 김경지가 머리를 돌렸다.
머리를 끄덕인 유혁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손을 별어 조웅남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이거 물아내니까 할수없구만. 그럼 가했습니다. 제 말 잘 생각하시고‥‥‥‥
"생각은 무신, "
그들은 여전히 큰 소리로 주고받고 있었으나 김경지는 조웅남이 주먹 안에 쥐고 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다른 손에 옮겨 쥐는 것을 보았다.
유혁근은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럼 수고하세요."
문 앞에서 몸을 돌린 유혁근이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템긋 웃었다.
"이 새끼 독종이구만. 아직도 이렇게 기가 살아 있어, 죽었다 살아난 놈이."
박용근이 정그린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퇴원하자마자 바로 보내 버려, 골치 아픈 놈이야."
"위에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쳤습니까? 이 테이프를 보내신 걸 보면."
"위라니?"
"아니, 저는 그냥."
안재일이 머리를 숙였으나 어깨의 힘은 살아 있었다.
에제는 이무섭을 자주 만나는 형편이어서 안재일은 힘의 향방에 대한 분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근은 어금니를 물고 자신의 방안을 臺어 보다가 머리를 들었다.
이무섭은 조웅남의 입원실에 녹음 장치를 설치해 놓은 것처럼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러자 약삭빠른 안재일이 이무섭을 왕처럼 '위'라고 칭하는 것이 이해는 갔다.
"정기욱이가 리즈 호텔을 노리고 있다는데,영동의 클럽 몇 개하고 말야."
박용근이 말머리를 돌렸다.
"이거 밥 다 해놓으니까 엉뚱한 놈이 수저 들고 달려드는 꼴이 아니겠어? 창피하기도 하고 말이야."
이제 그들도 정기욱의 유통 회사가 이무섭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놈들을 대놓고 짜부수지는 못하고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다.
또한 이무섭이 도청 장치를 통해 그의 불평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다.
"정기욱의 졸개들이 아예 리즈 호텔 근처에 진을 치고 있다는군요.
조웅남이가 나오면 볼만하겠습니다. "
"그까것 놈 나온다고 해도 이제 사또 행차 뒤의 나팔이야, 별것은 없지만."
문득 박용근은 조웅남과 정기욱이 싸우다가 두 놈 다 골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즈 호텔은 덩어리가 큰 업체여서 어지간한 클럽 백 개를 합친 것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박용근은 지금까지 25개의 클럽과 카페, 음식점을 인수한 상태였다.
강만철의 국제 백화점도 이제 며칠 후면 그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250여억 원의 세금을추징당했으니 배겨날도리가 없을 것이다.
강만철의 위임인인 김대훈은 겁에 질려 있어서 곧 도장을 찍을 것이고 은행은 백화점을 담보로
세금 액수만큼 돈을 빌려 주기로 미리 합의도 해놓았다.
김대훈이 그렇게 했다가는은행의 식당에 있는 쥐새끼도 옷을 것이다
한때 김동천의 행방 불명으로 발소리도 조심스럽게 내던 박용근이었다.
그것이 불과 한달 전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기백을 되찾고 있었다.
김원국의 조직은 완전히 궤멸된 것이다.
김원국은 섬에서 두문불출이었고 강만철과 김칠성은 가족을 평개치고
김원국이 있는 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더욱 고무시킨 것은 사회의 분위기였다.
정부는 모든 공권력을 동원하여 김원국의 조직과 업체들을 해체시키려 했고
국민들은 그것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유흥업소의 경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업소의 시간 규제를 철폐해 주어서
그들은 이제 1970년도 후반과 같은 황금기를 다시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맞고 있는 것은 박용근이었다.
수천의 유흥업소와 오락장, 호텔, 백화점들은 금방 힘의 흐름을 알아차렸고
그들이 내는 세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었다.
앞으로는 소유하게 된 업체들의 수입보다 업체에서 거두게 되는
세금이 몇십 배 더 많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제각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무섭이 머리를 들어 박동호를 바라보았다.
일식 요정 '반자이'의 밀실 안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박동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안영찬 준장은 천정을 바라본 채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강한석 장관은 이번 일로 각하의 신임을 더욱 굳게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 양반한테는 전화 위복이 된 셈이지."
이무섭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사건을 해결한 사람은 박 국장이 아님니까?
일은 박 국장이 해놓고 공은 경찰청장한테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난 그런 것 관심 없습니다. "
박동호가 정색을 한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생태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나서 봤자 옷음거리가 되기 십상이
"장관은 각하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얼마쯤 그 자리에 더 있다가 당 대표로 가고,
그러면 나머지 2년 동안 후계자로 기반을 잡을 수 있지요."
"글레, 저는 잘‥‥‥‥
"경찰청장 하석재씨는 내무장관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결격 사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지. 다만 여자 문제 하나만을 빼고."
박동호가 퍼뜩 시선을 들어올렸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팔장을 핀 자세로 안영찬은 아직도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
창백한 얼굴에 크고 검은 눈을 가진 미남형의 사내였으나
그에게는 음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가 기무사의 참모장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무섭이 뜸을 들이려는 듯 컵을 들어 한모금 엽차를 삼켰다.
"대치동의 한성 아파트에 여자 하나를 들여앉혀 놓았지요.
5년쯤 되었는데 네 살 난 딸아이가 하나 있어요."
"호적에는 제 엄마 성씨를 따서 이씨로 올려놓았더구만.
그렇지만 하석재의 딸이오.
하석재가 달마다 생활비를 300만 원씩 보내 주고 있어요."
박동호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엽차잔의 끝 부분을 가법게 두드리고 있었는데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으실 줄은 아는데,
그리고 우리하고 일하는 성격도 다를 줄도 압니다.
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압니다. 그럼 경찰청장을 어떻게 할 작정이a?"
"청와대에 투서를 보내지요. 신빙성을 주기 위해서 이정숙씨가 직접 하는 것으로 하고
언론사 대여섯 군데에도 동시에 사본을 보낼 작정입니다 "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할까요?"
힐끗 안영찬에게 시선을 주었던 박동호가 이무섭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으나 열중한 표정이었다.
"그럴 펼요도 없습니다. "
이무섭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여자의 필적을 위조해서 보내는 것이니까요.
기자들이 몰려들면 그런 일이 없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딸아이가 하석재씨의 혈육이고,
한동안 동거했다는 것을 숨기지는 못할 겁니다.
증거와 증인이 있으니까."
"이제까지 박 국장께서 불안해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는 가끔 야속하게도 보였습니다. "
"그거야‥‥‥
박동호가 머리를 들어 이무섭과 시선을 마주쳤다가 내렸다.
이무섭이 말을 이었다.
"경찰청장이 되셔야 합니다.
일년쯤 지나면 강한석 장관의 후임이 되셔야 하고. 그것으로 우리도 보람을 찾을 겁니다. "
"50만 공무원을 장악하는 세력을 갖게 되지요.
강한석씨는 차기 대권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안영찬이 갑자기 헛기침을 했으므로 이무섭이 말을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안영찬이 상체를 곧게 세웠다.
이무섭이 배후의 사내를 데려온 것은 처음이어서 박동흐는 아까부터 긴장하고 있던 참이다.
"박 국장께 정치론이나 또는 현 사회의 부조리나 부패 등을 말씀 드려서
우리와 함께 목표 의식을 갖도록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그러나‥‥‥‥
잠깐 말을 멈춘 안영찬이 눈꼬리에 주름을 잡으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단위 사건이나 해결책, 조금 더 나아가서의 상황만 설명해 드리기로 한 것은
국장께 부담을 덜어 드리려는 의도였습니다. "
"저희보다 연배가 높으시니 경험도 많으실 것이고,
나름대로의 정치관도 있으실 것이어서 저희들의 설명이 설득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
"일국의 경찰청장, 나아가서는 내무장관, 거기까지는 굳혀진 셈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만 말씀 드리지요.
그리고 우리가 반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써야 합니다. "
박동호가 힐끗 이무섭을 바라보았다
안영찬은 이무섭의 배후 인물로서 나이로 보나 계급으로 보아도
상관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핵심은 아니다.
그는 이무섭이 보고하는 직속 상관일 것이다.
"나는 이미 발을 깊게 디딘 입장이오.
이 지경에서 꽁무니를 빼거나 책임 회피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
박동호가 입을 열었다.
"물론 내 명예욕,또는 권력지향적인 성격이 당신들에 의해 파악이 되고,
당신들의 제의를 수락한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나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시작이야 어떻든간에 난 꼭두각시 노룻은 하지 않을 생각이오."
"그래서 오늘 제가 왔지 않습니까? 실체를 하나씩 보시고 있습니다. "
안영찬이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나름대로 부담을 덜어 드리면서 국장님을 주역으로 부상시키려는 노력을
우리들이 하고 있는 겁니다. "
옆에 앉은 박동호가 머리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박동호가 이철우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를 감시하고 있지만 전혀 꼬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
고성섭이 서류를 접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눈을 점덕이며 이찬형을 바라보았는데 피로한 얼굴이었다.
"베테랑 수사관 출신이어서요.
우리 요원들이 그 사람한테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이찬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크리스틴 호텔에서 인질 교환이 있다는 제보가 이정환 총경과 박동호 치안감 양쪽에
전달되었다는데, 이건 모양새는 그럴 듯하게 갖추었지만 믿기지가 않아.
제보자가 치안감한테까지 전화를 한 것01 "
"그렇지요.
보통 제보자라면 해당 파출소에나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아니면 경찰서에 하거나."
"박동호가 직접 지시를 해서 유혁근 경감을 현장에 보냈어.
이정환은 그쪽 경찰서에 연락해서 형사들을 보내려고 했는데."
"확실한증인이 필요했으니까요.
경찰청 경감이 증인이 되어 버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이찬형이 입맛을 다시고는 의자를 돌려 當았다.
이렇게 탁상 공론만 하는 것에 짜증이 난 몸짓이었다.
"이철우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고 이무섭도 마찬가지야, 도대체."
"부장넘, 기무사의 참모로 있는 황인규 대령이 제 후배가 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후배인데, 그 친구한테 부탁은 해놓았습니다. "
고성섭의 말에 이찬형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번 저희들의 협조 의뢰 공문을 누가 어떤 식으로 처리했는지,
그리고 이무섭의 주변을 알려달라고요."
"믿을 만한 사람인가?"
"솔직히 모험을 했습니다.
그 친주가 곧고 군인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압니다.
그래서‥‥‥‥
"저희가 불의라면 부탁하지 못했을 것이고 받아들일 친구도 아님니다.
저는 그것만은 믿습니다. "
입맛을 다신 이찬형이 조그맣게 머리를 저었다.
"내가 경솔했어 각하께 보고할 때 조금 더 신중하게 증거를 갖추어서 했어야 되는데,
각하가 그것을 내무장관한테 흘린 모양이야."
"박동호의 이야기를 말씀 드리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지.
만일 그했었다면 그놈들의 역공을 받았을 거야."
"어했든 각하께서도 이철우나 이무섭,
그리고 그 주변의 군 조직에 관해서 염두에 두셨지 않을까요?"
이찬형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내 생각은 각하는 사건이 일단락된 것으로 알고 계셔 .
강 장관이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고."
"박용근이가 이무섭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
그것으로 이무섭의 배후설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요?"
"우리야 그렇지만 박용근이는 군납업자 출신이라 모르는 실력자 들이 없어.
이무섭도 그중 한 명일 뿐이야."
"김원국씨 기업들을 인수한 자금도 철저히 준비해 둔 것이라면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야. 이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 "
"유혁근 경감하고 이정환 총경이 있지 않습니까?
유혁근씨는 우습게도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증인이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
"박동호가 중간에서 누르고 있을데니
그들 보고는 경찰청장한테 까지 올라가지도 않을 거야."
입맛을 다신 고성섭이 머리를 들었다.
"정기욱이가 이무섭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는 증거는 어떻게 합니까?"
"김동천인가 하는 놈의 자백 녹음만 가지고는 안돼.
더구나 그놈은 지금 병신이 되어 있다니 그것도 불리하고."
"이무섭이가, 아니 그의 배후가 밤의 세계를 장악하게 되었어,
테러와 공작으로. 김원국의 조직은 허무하게 허물어져 버렀고."
"수십 년 동안 전쟁 기술을 밖아 온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비교하
면 김원국의 조직은 순진한 셈이지요."
이찬형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우두커니 고성섭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고성섭이 머리를 돌렸다.
어됐든 사회가 당분간은 평온을 찾았다는 안도감 뒤에는 이번 일
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강한석 장관만이라도 이무섭이 관계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해 주었더라면
그들의 의도를 지연시키거나 또는 좌절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한석은 이찬형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묵살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것은 검찰이나 경찰의 보고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또 하나, 대통령은 국민의 시선이 밤의 조직간의 폭력 사건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것이 강한척을 서두르게 만든 것이다.
경제 부흥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거기에 이철우와 이무섭 등 예비역 군인이 개입된 사건의 뿌리를 찾다 보면
나중에는 엄청난 것이 돌출될지도 모른다.
이찬형은 강한석이 그것을 겁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사회 문제의 전문가인 강한석은 각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사회문제연구소를
차려 헌신해 왔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왔을 터였다.
그는 이 시점에서 군인 세력의 뿌리를 캐느니보다 김원국을 궤멸시켜 우선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찬형은 머리를 들었다.
"경찰이 이철우의 수배를 해제시켰다면서?"
"네, 그놈은 이제 우리 앞에 나타나도 하루 이틀이면 풀려 나갈 겁니다. "
고성섭이 뱉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
태양이 수평선 위에 걸쳐지자 바다색은 검푸른 색으로 바뀌었다.
랫살은 바다를 평행으로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흔적을 내면서 바다
위를 지나는 것 같았다.
통나무 어선 서너 척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몸은 검게 빛났고 그들의 배가 태양의 벗살 속으로 들어서면서 파도
끝의 반사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철우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모래 속에 쑤셔 넣고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5시가조금 넘어 있었다.
태양의 위치로 보아 6시면 어두워질 것이다.
야자수 밑에 앉아 있던 서대식이 몸을 일으키더니 이쪽으로 다가 왔다.
손에는 통조림 깡통이 쥐어져 있다.
"조금 드시지요, 점심도 거르셨는데."
그가 내민 쇠고기 통조림을 받아 든 이철우가 야자수 숲 쪽을 바라핀았다.
"애들은 자나?"
"6시까지 쉬라고 했습니다. "
서대식이 모래사장 위에 털씩 주저앉았다.
"於1 10분에 출발하면 7시 반까지는 도착합니다. "
쇠고기를 우물거리며 셉던 이철우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서두를 것 없다. 도망칠 데도 없을테니까.
작전 시간은 9시 정도가 적당해. 잠들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고."
"대장넘, 공격 대상을 분명히 말씀해 주셔야‥‥‥
목표는 김원국, 강만철, 김칠성입니까?"
이철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한국놈들은 모두. 오함마라고 보스급이 한 놈 더 있을 것이다. "
"김원국 조직은 이제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
서대식이 이를 드러내며 옷었다.
"놈들은 우리가 여기까지 찾아왔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요. "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
서대식이 일어나 엉덩이에 붙은 모래를 털었다.
"선장은 자카르타까지 데려가실 생각입니까?"
"아니, 자카르타가 보이면 바다에 던져. 그때까지만‥‥‥
감시는 잘 해야 돼."
"알았습니다. "
서대식이 야자수 출 쪽으로 몸을 돌리자 이철우는 모래사장 위에
눕혀 놓았던 M-16을 세워 들고는 노리쇠를 당겨 보았다.
태양열에 총신이 달아올라 있었으나 묵직한 중량감만큼 든든한 무기였다.
그는 카키색 전투복으로 바쥐 입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양쪽 가슴에 매달고 있는 두 발의 수류탄과 허리춤에 찬 30발들이 탄창 네 개,
그리고 오른쪽 허리춤에는 권총을 崙고 원쪽 종아리에는 대검을 찌르고 있다.
서대식을 비롯한 네 명의 부하들도 모두 비슷한 무장이었는데
이 정도의 화력이면 섬 전체를 쓸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홍콩의 무기 상인 후안은 자신의 배로 무기를 자카르타까지 날라 주었는데
이철우는 그에게 운임을 포함하여 10만 달러를 지불했던 것이다.
그가 앉아 있는 모래사장 뒤쪽의 잡목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하들이 다가왔다.
모두 그와 비슷한 차림으로 바짝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그들로부터 두어 발짝 떨어져서 배의 선장이 따라왔는데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힐끗거리며 이쪽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태양은 수평선 끝 꼭분에 머리끝을 내보인 채 이제는 끓은 기운을 하늘로 뿜어내었다.
검푸른 바다 위의 빛줄기는 툴은색으로 바뀌었고 바랄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태양을 따라 멀어져 가는 중이었다.
부하들은 이철우의 앞에 가로로 정렬해 졌다. 모두 십여 년 군대
밥을 먹은 하사관 출신이어서 시키지 않아도 규을이 잡히는 것이다.
"목표는 만탐 섬 중앙에 있는 이충 건물이니까 쉽게 찾을 수 있다. "
이철우가 입을 열었다.
"저택은 선착장에서 약 500미터쯤 떨어진 언덕 위에 있고 특별한 경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돼."
선장이 및모습을보인 채 비스듬히 서 있었는데 발을떼기에도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를 내리고는 저택의 측면 지점으로 올라간다.
원주민은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건물 안에 있는 한국인들만 공격하면 된다. "
"저 ‥‥‥‥
우측 끝에 서 있던 하일수가 입을 열었다.
증사로 제대한 30대 초반의 사내였다.
"김원국, 김칠성, 강만철, 오함마가 있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원국의 처자식이 있을텐데요."
이철우가 1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리자 서대식의 시선과 부딪쳤다.
"상관할 것 없다. "
이철우가 짧게 말했다.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제거한다. "
모두들 잠자코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이철우도 그들에게 더이상 설명할 철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이철우가 몸을 돌려 바딘가에 정박시킨 배를 향해 다가가자 부하들은 묵묵히 뒤를 따랐다.
태훈이를 안은 강만철이 이충의 응접실로 들어서자 김칠성이 소파에서 일어싫다.
"이 자식이 날 꽤 따른단 말이야. 나하고 놀자는데 "
강만철이 내려놓자 태훈이는 베란다 쪽으로 달려나갔다.
"어, 저 자식이 ‥‥‥‥
들아 나간 강만철이 태훈이를 안고 돌아왔다.
"형님, 난 방에 올라가서 잘테요."
"아니, 8시밖에 안되었는데 별써 잔단 말이냐
32 밤의 대통령 제2부-ll
"그럼 자지 않으면 뭘 합니까?"
"오늘은 술마시지 않았으니 나하고 이야기나 하자."
"할 이야기 없어요. 담답하기만 하고."
"자빠져 자는 것보다는 낫다. "
몸을 돌린 김칠성이 강만철과 태훈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태훈이를 아래층에 데려다 주고 와요, 번거로우니까."
"번 거롭다니 ?"
"아, 글쎄, 번거롭지 않구요?"
김칠성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므로 강만철이 이맛살을 찌푸렀다.
"너, 영옥이 생각나서 그러는구나?"
"지금은 처자식이 웬수요."
"바보 같은 놈."
"형님은 자식이 없으니까 모릅니다. "
한세라가 납치되고 나서부터 강만철은 김칠성의 언행을 한수 접어주고 있는 편이었다.
그가 태훈이를 아래충에 내려놓고 을라왔을 때
김칠성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형님, 큰형님은 우리더러 이곳에서 기다리라고만 하시는데,
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
그의 얼굴은 핼쪽하게 야위어 있었는데 밤낮으로 위스키를 퍼마신 때문이다.
실핏줄이 이리저리 엉켜 있는눈을부릅떠 강만철을 바라 보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걸 알아 주는 사람이
나 있습니까?우리가 잠자코 있을수록 매도당하지 않습니까?"
"이봐,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길 하면 월 해?조금만 기다려 봐 "
"죽든 살든 한국에 있었어야 했어요."
"그래, 이철우란 놈을 잡으러 애들 몰고 다닌다면 그 상황에서 네가 온전했겠다.
너나 나나 크리스틴 호텔 사건으로 지금도 지명 수배 중이야."
"정기욱이를 잡았어야 해요."
"그놈은 경찰들이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어. 경찰들하고 싸운다면 끝장이다.
우린 한국에 두번 다시 발을 못 붙여."
"이미 끝장났다는 것을 모르시는구만.우린 이제 발을 붙일 곳도 없단 말입니다. "
김칠성이 상기된 얼굴을 들었다.
충혈된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기다려, 형님한테서 연락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는 연락, 이팬 듣기도 싫어요."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냐. 일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야."
김칠성이 일어나 벽 쪽으로 다가갔다.
선반 위에 놓인 위스키 병을 집어 든 그는 병을 기울여 서너 모금을 삼켰다
"형님, 지난 6개월 동안 딘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
선반에 등을 기댄 김칠성이 강만철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누라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도움이 안되었단 말입니다. "
"글쎄, 그것이 ‥‥‥‥
"차라리 둘 중의 하나가 죽어 버렸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
"‥‥‥
"이유야 어떻든 나만 살겠다고 이렇게 도망쳐 나온 것이 분해요,
부끄럽고."
김칠성이 손에 철 술병을 내려다보았으나 반쯤 들어올리다가 도로내렸다.
"형님, 난 더이상 이곳에서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 배로 떠날 작정이오.
가서 죽는 것이 차라리 딘습니다. "
"쓸데없는 소리 말어."
강만철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있는 한 안돼."
"가서 큰형님을 만날 거요. 설마 쫓아내지는 않으실 겁니다. "
"이 자식이, 잔소리 말고 내 말을 들어!"
"이제까지 잘 들어 왔어요, 형님."
"이 자식이 듣자 듣자 하니까 정말‥‥‥‥
두 눈을 치켜뜬 강만철이 상체를 반쯤 세우고는 김칠성을 노려보았다.
"꼬박꼬박 말대꾸하지 마라! 건방진 놈 같으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
김칠성이 술병을 들고는 다시 서너 모금을 삼켰다.
"지금 우리가 나졌다가는 겨우 몇 개 버티고 있는 우리 기반마저 송두리째 날아간단 말이다.
놈들은 남아 있는 우리애들까지 샅샅이 가려내어서 집어 넣을 거다.
우리가 이쪽으로 피해 온 것은 놈들의 기세를 잠판 동안 죽인 셈이 돼.
알아듣겠어?"
김칠성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것을 모르고 있던 것이 아니다.
"랄데없는 짓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응접실을 나서는 그를 향해 감만철이 다시 소리쳤다
탐탐은 열두살이었으나 또래의 아이들보다 성숙한 편이었다.
고기 바구니를 어깨에 걸친 그는 알몸에 반바지 차림으로 뛰듯이
저택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아버지인 하무드는 어선의 선장이었고 그의 심부름으로
오늘 잡은 고기 및 마리를 저택으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어두운 야자수 숲에 밤바람이 부딪치자 나뭇잎들이 부스럭대었고
그 소리에 놀란 새의 날개첫 소리도 들려 왔다.
탐탐은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저택의 불빛이 환하게 사방을 비치고 있었으나 출길은 어두웠다.
이제 야자수 숲속을 조금만 더 빠져
나가면 평평한 잔디밭이 나온다. 잔디밭 끝까지 불빛이 닿아 있어서
그곳에 닿으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탐탐은 허리를 조금 숙인 자세로 샛길을 날렵하게 달려 올라갔으나 숨소리도 크지 않았고
맨발에 밟히는 발자국 소리도 짐승의 그것 처럼 가벼웠다
숲에는 몇 마리의 토끼와도마템 둥이 살고 있을뿐 큰 짐승은 없다.
탐탐이 조금 겁내는 것은 주술사의 무범이 있는 중턱의 묘지였으나 이미 그곳은 지나쳤다.
내려갈 때에는 저택의 정문에서 곧장 壽려 있는 큰길로 가면 될 것이었다.
그가 셋길 가에 있는 야자수 숲을 뛰어 지나쳤을 때 오른쪽의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렀다. 머리를 돌린 탐탐은 나무 둥치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보았다.
거리는 20미터 정도였는데 사내들은 자신들을 나무로 보아 주기를 바라는 듯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탐탐은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어 달려나갔다.
그러자 뒤쪽에서 거칠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는 두런거리는 말소리도 섞여 들렸다.
주술사의 혼령이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온몸에 땀을 홀리면서 탐탐은 잔디밭으로 뛰처 들어셨다.
고기 바구니를 덜렁이며 탐탐이 저택의 잔디밭을 건너 안쪽의 주방으로 뛰어들자
주방의 식탁에 앉아 있던 후마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탐탐, 오늘은 늦었구나."
"후마,승속에 주술사가 있어요,그 친구들하고."
점템이 헐떡이며 소리치자 후마가 붉은 입을 벌리고 옷었다.
"이놈이 샛길로 오다가 첫것을 보았구만. 꾀부리는 놈들한테는 주술사가 나타나는 법이지."
"후마, 그들의 말소리도 들었어요. 날 보고 놀라서 서 있었다구요, 나무처럼. "
후마가 물잔을 내려놓고 탐탐을 바라보았다.
주방일을 하는 엔자가 접시에 케이크를 담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탐탐, 케이크 먹어라. 어디 고기 즘 보자."
그러자 후마가 자리에서 일어싫다.
"어느 쪽이냐?"
"벼락 맞은 나무가 있는 쪽."
"탐탐, 아래층에 가서 사람들을 불러라, 어서."
탐탐이 주방에서 뛰쳐 나가자 엔자가 바구니에서 고기를 끄집어내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비대한 몸집의 중년 여자였는데 후마와는 친척이었다.
"후마, 애가 헛것을 봤는지도 모르잖아?"
"주인님이 조심하라고 했어요. 수상한 사람을 들여놓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수상한 사람이 올 리가 없어, 이곳에."
그러자 서너 명의 사내들이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강만철이 들어싫다.
"무슨 일이야?"
위층에 있다가 탐탐의 소란에 사내들을 따라온 것이다.
영어가 통하는 것은 후마와 엔자밖에 없다.
"저 애가 출속에서 사람을 보았다고 해서요.
헛것을 榮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한번 나가 보아야 할 것 같아서."
"밖에는 아무도 없나?"
"네, 선생넘."
"이런 병신 같은."
강만철이 한국어로 셉어 연듯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서 밖으로 나가 봐. 그런데 손에는 아무것도 없나?"
"총을 가지고 나갑니까?"
"당연하지. 그럼 맨손으로 무얼 한단 말이야?"
후마가 빠르게 사내들을 향해 지껄이자 다시 사내들이 주방을 뛰쳐 나갔다.
탐탐이 구석에 서서 눈을 껌백이며 강만철을 바라보았다.
"몇 명을 보았니? 둘?셋?"
강만철이 손가락을 펴 보이며 묻자 탐탐이 엔자를 돌아보았다.
엔자가 탐탐에게 원주민어로 되묻고는 강만철을 바라보았다.
"둘인지 셋인지는 잘 모르겠답니다. 켰다고 합니다, 선생님."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마을 사람들은 밤에 숲속에 가지 않습니다 "
"왜?"
"밤에는 숲이 쉬는 시간입니다.
우리도 쉬고요. 저택에 오는 일 외에는 숲에 있을 사람이 없습니다. "
강만철이 눈을 치켜뜨더니 몸을 돌렸다.
탐탐이 불안한 듯 머리를 돌려 엔자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우리를 보았는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그게 원체 토끼 새끼 같아서."
서대식이 저택을 바라보면서 소근거렸다
"하지만 이거 담도 없고, 경비하는 놈 하나 없군요."
그들은 잔디밭 끝 쪽에 엎드려서 저택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환하게 불을 밝힌 목조 저택과의 거리는 60미터쯤되었다
아래층의 창가에서 어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였다.
"수류탄 몇 발이면 끝나겠습니다. "
이철우는 서대식의 옆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세 명의 부하들이 5미터쯤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넌 한 명을 데리고 뒤쪽으로 돌아라 난 현관으로 들어간다. "
시계를 내려다본 이철우가 말했다.
야광 시계는 방 9시 반을 가리 키고 있었다.
그들이 마악 잔디밭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을 때
건물의 오른쪽 모통이에 나 있는 문이 활짝 열렀다.
그리고는 원주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꼬마놈이 말했구니"
이철우가 잇사이로 말하면서 총을 고처 쥐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우선 저놈들을 처치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
철거덕거리며 총의 노리쇠를 당겼다가 놓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모조리 없애라."
사내들은 랄렵한 몸놀림으로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그들은 제각기 길고 짧은 총기를 쥐고 있었는데 아직 이쪽을 발견한 것 같지는 않다.
이철우는 앞장선 사내를 향해 방아적를 당겼다
"타타타탕!"
갑자기 총성이 울려 퍼지더니
곧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연속 사격음이 들려 왔다.
강만철은 한걸음에 응접실을 건너뛰어 거실로 달려갔다.
"형수넘! 형수넘!"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강만철이 소리치자 곧 문이 열리더니
장민애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형수님, 어서, 시간이 없습니다 태훈이를 데리고 어서 피하세요."
밖의 총성에 장민애는 사태를 알아차린 듯 새파량게 질린 얼굴로 몸을 돌렸다.
"형님, 무슨 일이오?"
계단 위에서 김칠성이 소리쳐 물었다.
"몰라서 물어? 너도 어서 준비해!"
"뭘 말이오?"
"이 자식아, 놈들이 쳐들어온단 말이다!"
"형님이나 서두르지 마시오."
계단의 난간을 훌적 뛰어넘은 김칠성이 달려가는 곳은 아래층 웅접실이었다.
응접실의 벽장에는 총기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다.
태훈이를 품에 앉은 장민애가 밖으로 나왔다.
총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는데 강만철에게는 그것이 더욱 불안했다.
"칠성아, 현관을 맡아라! 나는 형수넘 모시고 됫문으로 간다. "
"염려 마시오."
저택의 1층은 현관과 로비가 犯평증 되었고 오른쪽은 응접실이었다.
김칠성은 응접실의 유리장 안에서 손에 익은 M-16을 꺼내어 탄창을 채워 넣고는
현관을 바라보고 셨다.
장민애의 앞장을 서서 강민철이 뒤쪽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현관문이 활짝 열리고 사내 한 명이 몸을 굴리면서 로비로 들어왔다.
전투에 익숙한 몸짓이었다.
서너 번 몸을 굴린 사내가 두 손으로 총을 움켜쥐면서 튕기듯이 일어셨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던 김칠성의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타타타탕!"
사내가 두 팔과 다리를 제멋대로 흔들면서 서너 결음을 됫걸음질 치더니
현관 옆쪽의 벽에 몸을 부및치면서 주저 앉았다.
벽에 두어 개의 첫줄기가 사내의 몸을 파라 천천히 그어졌다.
그러자 현관의 유리창을 깨뜨리면서 돌맹이 한 개가 로비에 떨어 지더니
대여섯 번을 튕기면서 안쪽으로 굴러 들어왔다.
수류탄이다.
김칠성이 벽 쪽으로 몸을 숨기자 귀청을 要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나못조각과 파편들이 응접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타타타탕!"
총성이 뒤쪽에서 들려 온 것 같았으므로 김칠성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에 로비에 수류탄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로비의 한쪽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는데 아직 심하지는 않다. 김칠
성은 상반신의 반쪽만을 내놓고 현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벽에
기대 앉아 있는사내의 시체가보였다. 놀란듯 커다랄게 눈을 치켜
뜬 사내의 얼굴은 말레이족이 아닌 한국인이었다. 다시 총알이 현관
의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김칠성은 상체를 구부리고는 튕기듯이 로비의 끝쪽으로 달려나갔다.
강만철과 장민애가 빠져 나간 됫문 쪽이었다.
총알이 로비로 쏟아져 들어왔고 바랄 허백지 근처에서 뜨거운 것이 스치고 지나는 느낌이 왔다.
김칠성은 문을 박차고 로비를 뛰쳐 나갔다.
그가 뛰어든 곳은 대기실이었지만 창고로도 쓰이고 있는 곳이다.
방안은 물건이 가득 쌓여 있어서 발을 딛기에도 힘이 들었다.
이제 바깥 쪽 문만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강만철과 장민애는 이미 이곳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갔을 것이므로 따라붙을 생각이었다.
다시 수류탄이 터졌는데 안쪽까지 굴러 와 폭발하면서 문짝의 파편이 날아와 김칠성의 등을 쳤다.
총소리가 어지럽게 들렀으나 뒤쪽인지 앞쪽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김칠성은 한쪽 어깨로 문짝을 ◎어낼 듯이 부딪치면서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밖의 어둠 속에 떠 있는 순간 김칠성은 서너 발짝 앞으로 내랄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사내는 뒷문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는데 김칠성이 갑자기 뛰쳐 나오자 주춤 발을 멈추었다.
사내가 총구를 아래쪽으로 겨눈 것과 김칠성의 몸이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김칠성은 땅에 떨어지는 순간손에 쥐었던 총의 방아쇠를 당기면서 몸을 굴렀지만
제대로 조준할 수도 없었고 맞추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사내가 있던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사내가 눈에 띄었다.
저택은 이제 불길이 치솟고 있었으므로 사내의 상체에 불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있는 얼굴이었다.
김칠성은 상체를 세우면서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5미터도 안되는 거리였다.
사내는 벌떡 상체를 뒤로 눕혔다가 두어 번 몸이 튕겨지듯 치솟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김칠성은 두 팔을 휘저으며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됫마당은 잔디밭이었지만 폭은 20미터도 되지 않는다
단숨에 잔디밭을 넘어 잡목 숲으로 들어서려던 김칠성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사내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네 찰개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사내의 얼굴이 불길에 얼첫 드러났다.
눈을 부릅뜬 사내는 죽어 있었다.
몸을 돌린 김칠성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잡목 숲의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대고 禁은 사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형님 !"
메마른 소리로 외치며 그가 허둥지둥 달려들자 강만철이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밀었다.
"저리 비켜 , 이 자식아."
"형님!"
강만철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나, 맞았다, 가승에."
"형님, 형수씨는! 태훈이는!"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 "
저택은 이제 불길에 싸여 있었다.
아래쪽에서 수십 정의 총소리가 들려 왔고 북소리와 함께 합성 소리도 들렀다.
원주민들이 저택으로 몰려오는 모양이 었다.
"형님 !"
강만철의 어깨를 움켜쥐고 사납게 흔들던 김칠성이 온몸을 굳혔다.
바로 옆쪽의 풀숲에 가려져 있는 물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둘다 고통없이 죽었어. 정말이야. 내가 확인했다. "
억앙 없는 목소리로 강만철이 중얼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숨이 끓어졌어. 내가 보았어."
"이, 이, 이런, 어어 !"
강만철의 어깨를 움켜쥔 김칠성이 비명인지 신음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어이고, 이, 이 !"
이가 딱딱 부딪쳐 왔으므로 김칠성은 이를 악물고 온몸을 떨었다.
땀과 함케 눈물이 랄아져 내렸다.
"형님한테 내가 죽음으로 사죄한다고 전해라.
그리고 넌 어서 형님한테 돌아가. 내 몫까지 원수를 갚아라."
"어어어어 ‥‥‥‥
부들부들 떠는 김칠성의 얼굴을 바라보던 강만철이 손을 들어
김칠성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 자식아, 정신차려 ."
그리고는 김칠성의 얼굴을 밀고는 권총을 들어 자신의 귀 위에다 대었다.
"형 , 형님 !"
김칠성이 부르젖자 강만철이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어서 돌아가."
그리고는 잡목 숲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원국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고성섭이 자리에서 일어싫다.
그의 옆자리에 當아 있던 다부진 몸집의 사내도 그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
그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인 김원국이 다가가자 고성섭이 팔을 들어 사내를 가리켰다.
"이 친구가 제 후배인 황인규 대령입니다. 기무사 참모로 있지요."
"처음 뵙습니다. "
황인규가 머리를 숙이며 김원국이 내민 손을 잡았다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고성섭에게서 귀띔을 받았던 터여서 김원국은 그를 향해 옷어 보였다.
첫별에 그으른 얼굴에 두 눈이 생기있게 반짝이는 40대 초반의 사내였다.
그들은 원형의 탁자에 둘러앉았다.
영동의 주택가에 위치한 이 이층 양옥집은 안기부에서 사용하는 안가의 하나였다.
방음 장치가 되어 있는지 바깥의 소음은 아무것도 들려 오지 않았다.
"이렇게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원국이 황인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사회에 물의가 일어났는데 여러가지로 부끄럽습니다. "
"천만에요.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황인규의 목소리는 굵었고 뱃속으로 기합을 넣고 뱉는 것같이 힘이 실려 있었다
"저는 안기부에서 그런 협조 요청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군수 업무라서요."
고성섭이 잠자코 앞에 놓인 엽차잔을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이미 들은 눈치였다
황인규가 말을 이었다.
"안기부의 협조 요청은 정보과에서 참모장한테 넘겨졌고
참모장은 시정관에게 즉각 보고했습니다
정보과장은 홍정수 대령으로 유능한 장교지요."
김원국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며 고성섭을 바라보았다.
눈치를 챈 고성섭이 황인규 쪽으로 몸을 돌렀다.
"김 사장께 아는 대로 모두 말씀 드려.어차피 우린 같이 일해야 할테니까."
"참, 선배넘도."
황인규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건 민군 합동 작전도 아니고 비공식 모임인 데다가 을모의 성격을 떤 회합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눈으로 보면 역모를 하는 것이지요."
"그 상대방이라는 것이 반역하는 도당일 가능성이 많단 말이야.
그래서 자네가 우리에게 협조해 주는 것이 아니겠나?"
황인규가 머리를 돌려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참모장과 사령관은 맥이 통하는 사이입니다.
십년 가깝게 같이 지내 왔으니까요.
그 전에는 사단장과 사단 참모장으로 같이 있었고,
그 전에는 연대장과 대대장 사이였지요."
"사령관 선에서 어떤 명령이 떨어겼을 겁니다.
그래서 이무섭에 대한 자료가 넘어가지 않았겠지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조사를 했어 . 자네들보다는 못하지만, "
고성섭의 말에 황인규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무섭과 안영찬 참모장, 그리고 오성국 시정관과는 군 시절의 인연이 없습니다.
이무섭은 대령으로 예편했지만 그의 동기들 중 몇몇은 아직도 군에 남아 있지요.
별을 단 사람도 서너 명 있고."
"예편된 그의 동기들 명단도 가지고 있어 . 같이 근무했던 상관들의 명단도."
"저도 조사해 보았는데 으스스해지더군요. 삼성 장군, 사성 장군 들이어서 , "
황인규가 조그맣게 머리를 저었다.
"이무섭씨하고 같이 근무를 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이상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조사를 할 수도 없고."
"우리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았지만 성과가 없었어 "
"도대체 이무섭이나 그의 배후,그가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밤의 세궤를 장악해서 돈을 벌려는 것일까요?"
황인규의 시선이 고성섭을 지나 김원국에게 머물렀다.
"하긴 현재까지만 해도 몇백억이 넘는 업체들을 제3자 명의로 바뀌 놓았더군요.
엄청난 이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밤의 세계에도 명예가 있습니다 오히려 낮보다도 더 강하고 엄한 규을이 있지요.
그것이 그들의 체질에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
"그렇다고 및떳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입장 아넘니까?
돈 때문이라면 몰라도 조직의 보스가 되려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더 큰 야망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일단 자금과 조직을 갖추고 나면 그들의 지원 세력과 손발을 맞출테니까."
김원국의 말에 황인규가 고성섭을 돌아보았다.
딱딱한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김원국이 말을 이었다.
"군 계통의 배후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찰청이나 언론에는
그들의 지원 세력이 있습니다.
당신의 상관인 오성국 소장이나 안영찬 준장은 내 생각에는 동조 세력이오.
배후의 주모자는 따로 있습니다. "
황인규는 잠자코 탁자 위로 시선을 주었다. 만일 군을 수사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오리라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당사자들을 소환하거나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조사한다면
그들의 반발이 어떻게 확대될지 모르는 것이다.
위기감을느핀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일으킬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정부측에서 서둘러 이 사건을 김원국의 조직을 분쇄하는 것으로
뚜껑을 달으려고 한 것도 더이상 확대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황인규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무사는 그들을 가려낼 책임이 있는 군 조직이다.
그러나 분위기를 보면 사령관과 참모장은 이미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다행인 것은 황대령 같은분이 있다는것이지요.
경찰청 1나 안기부의 여러분이 있어서 든든하긴 합니다. "
"이무섭은 이철우와의 관계로 심증만 가는 인물이어서 각하께 보고 드릴 때에도
우리 부장이 신중하게 말씀 드렸숩니다.
그것이 내무부 장관에 의해 가법게 처리된 것이지요."
고성섭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강한석 장관은 얼른 사건을 덮어 두고 싶었을 겁니다. 치안 문제는 그 사람 책임이니까 "
그는 탁자 위에서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어했든 정기욱의 유통 회사가 전에 드러났고,
이제 박용근의 경비 용역 회사가 놈들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그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오."
김원국이 황인규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황 대령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나에겐 큰 힘입니다. "
"천만에요."
머리를 든 황인규가 김원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 김 사장심을 위해서도, 그리고 고 차장넘을 위해서도 일하는 것이 아님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
"알고 있어요."
머리를 끄적인 김원국이 눈가를 좁히면서 웃었다.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더욱 힘이 납니다. "
이틀째 비가 내리는 7월 말의 오후였다.
숲속의 나무 둥치는 물기에 젖어 어두운 색깔로 번들거렀고 풀잎들은 비바람에 를려 누워 있다.
회색 구름으로 덮인 흐린 하늘에서 빗줄기가 바람에 날려 끊임없이 휘몰려 오고 있었다.
숲속의 길은 벌색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백동혁은 현관의 처마 아래서 한걸음 앞으로 나싫다.
비바람이 상반신을 금방 적셨다.
"야, 정문의 불을 켜라 "
백동혁이 정문을 향해 소리치자 철문의 양쪽 기등 끝에 붙여진 전등이 켜겼다.
벗줄기는 더욱 거칠어진 것 같았고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김원국이 인천의 톨게이트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 한 시간 전이었다.
빗길에 속력을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10분쯤 후에는 그가 도착할 것이었다.
"형님, 전화 왔습니다. "
현관문이 열리더니 부하가 소리치듯 말했다.
"형님한테서 왔습니다. "
"누구?"
"김칠성 형님입니다. "
백동혁은 부하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응접실의 탁자 위에 내려놓은 수화기가 보였다.
"큰형님을 찾으셔서 안 계시다고 했더니 ‥‥‥‥
부하가 뒤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백동혁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형님, 백동혁입니다. "
소리치듯 그가 말하자 저쪽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동혁이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었다.
"형님, 백동혁입니다. "
"그래, 큰형님 어디 가셨냐
전화의 감이 먼 모양으로 김칠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서울 가셨는데 곧 오십니다. "
"알았다. "
저쪽에서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백동혁은 수화기를 든 채 눈을 껍백이며 서 있었다.
"동혁아, 큰형님한테 전해라."
김칠성의 희미한 목소리가 다시 귀에 들어왔다.
"네, 형님, 말씀하십시오."
"어젯밤, 10시쯤, 이곳 섬에서‥‥‥ 우리는 놈들의 공격을 받았다. "
백동혁이 턱을 내밀고 눈을 치켜했다.
"그래서 만철 형님이 돌아가셨고, 그리고‥‥‥
형수넘하고 태훈이도‥‥‥
손을 들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밖은 백동혁이 입을 벌린 채 벽을 딘아보았다.
김칠성이 말을 이었다.
"모두 죽었다.
놈들은 한국놈이었고, 다섯 놈이 왔는데 두 놈이 도망쳤다.
형님한테 그렇게 전해라."
‥‥‥‥네, 형님 "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형님한테 ‥‥‥‥
김칠성의 말이 끓겼으나 백동혁은수화기를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전해, 내가 기다린다고."
이윽고 중얼거리듯 말한 김칠성은 전화를 끊었다.
백동혁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허리를 펴자 응접실의 입구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부하와 시선이 마주했다.
"형님, 큰형님께서 곧 도착하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백동혁은 그를 스쳐 현관으로 다가갔다.
신발을 찾아 신고 문을 열자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때렸다.
그는 온몸에 비를 맞으며 정문으로 다가갔다.
정문의 바깥 쪽에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숲길은 어두졌으므로 전조등을 켠 승용차가 구부러진 길을 끈어 들어오고 있었다.
정문의 막사 안에서 부하두 명이 뛰쳐 나가철문을 양쪽으로 열어 젖히자
두 대의 승용차는 곧장 현관 쪽으로 다가왔다
걸음을 멈추었던 백동혁은 몸을 돌려 차보다 앞질러 현관에 도착하려는 듯 서너 발짝을 떼었다.
승용차가 그를 스치면서 지나 현관 앞에 셨다.
김원국이 차에서 내리면서 비에 젖은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앞좌석에서 내린 오함마가 그의 어깨를 잡아 현관의 지붕 밑으로 끌었다.
"웬일이냐? 이렇게 비를 맞고."
"큰형님에게 연락을‥‥‥
비에 흠백 젖어 물이 흐르는 얼굴로 백동혁이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김원국이 다가와 그의 앞에 쳤다.
"무슨 연락이냐?"
"네, 형님 ."
그러다가 목이 메인 백동혁이 침을 삼키고는 턱을 들어올렀다.
오함마가 다가와 그의 옆에 싫고 김원국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큰형님, 저 ‥‥‥
칠성이 형님한테서 방금 연락이‥‥‥‥
눈을 부릅뜬 오함마가 한걸음 다가왔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백동혁은 이를 악물었으나 온몸이 떨렸다.
"저 ‥‥‥ 만철 형님이 돌아가셨답니다. "
"뭐라고?"
버럭 고함을 지른 것은 오함마였다.
그가 손을 델쳐 세차게 어깨를 움켜쥐었으므로 백동혁의 시선에 초점이 잡혔다.
김원국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눈법을 치켜올린 채 굳게 입을 다물고는 이쪽을 美아 보고 있었다
"자세히 이야기해 봐, 이 자식아!"
오함마가 그의 어깨를 흔들자 백동혁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국 사람들이 습격해 왔다고 했습니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도망쳤고,
만철 형님은 돌아가셨다고‥‥‥‥
"그리고 큰형수넘과 태훈이가·
김원국이 어깨를 부풀리는 듯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함마의 손이 슬그머니 백동혁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돌아가싫다고 했습니다. "
"어이구!"
비명 같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른 오함마가 현관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김원국의 시선이 백동혁의 얼굴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언제냐?"
빗소리에 섞여 들려 오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첫밤 10시쯤입니다, 형님."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린 김원국이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백동혁은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머리를 숙였다.
빗발이 마구 휘몰려 와서는 그의 등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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