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10. 치명타를 입다 (1)

오늘의 쉼터 2014. 12. 5. 16:59

10. 치명타를 입다 (1) 

 

 

 

 

 

김원국은 눈을 부릅뜨고 앞에 앉은 강만철과 김칠성,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맑게 개인 날씨였고 반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몰려 들어왔다.

바다 냄새와 함께 얼음이 풀린 땅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방안의 분위기는 아직 얼어 붙어 있었다.

창가의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 한 마리가 퍼덕이는 날개 소리와 함께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이윽고 강만철이 머골를 들었다.
"형님,면목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지키기에는 능력이 부족 했던 것 같습니다. "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는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머리를 숙였다.

그의 가느다란 한숨 소리가 들려 왔다.
"경찰이 저하고 칠성이를 잡으려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사건이 원체 크게 벌어져서‥‥‥‥
그의 시선이 내려진 탁자 위에는 대서특필된 조간 신문이 펼쳐져 있었다.

'김원국 조직의 보복 살인'이라는 주먹만한 제목 아래 버스 안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이철우의 가족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누구라도 그것을 보면 치를 떨 만한 내용이었다.
"저희들은 꼼짝없이 덫에 걸렸숨니다.

더욱이 현장에 경찰청의 유혁근 경감이 있었어요.

그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
강만철의 말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잔인한 놈들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부모나 처자식까지 제물로 바치는 놈들입니다. "
"형님, 섬으로 돌아가시지요.

저는 여기 남아 있다가 기어코 놈들을
"형님이 여기 계신 줄 알면 형님까지 연루됩니다. 어서 떠나선야 합니다. "
강만철이 이맛살을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턱의 다부진 선은 그대로 있었으나볼 부분은 눈에 띄게 패여 있었다.

김원국은 머리를 돌려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제수씨에 대해서는 연락이 없냐?"
"네, 형님 ."
침을 삼킨 김칠성이 헛기침을 했다.
"저도 이젠 단념했습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 구차하게, 저도 놈들한테 보여 주면 됩니다. "
"뭘 보여 준단 말이냐?"
김원국이 그렇게 묻자 세 사내가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확실하게 보일 때까지 쓸데없는 짓은 안된다. 기다져."
"이제 너희들이 빠져 나와조직은 무주공산이 되었다. 병원에 있는 조웅남이만 빼고."
"놈들은 우리 업체들을 접수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대리인을 내세우겠지."
"만철이하고 칠성이는 만탄 섬으로 들어가 있는 게 낫겠다.

함마를 대신 불러올테니까."
"못 자니다,저는."
갑자기 김칠성이 말했으므로 백동혁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김칠성이 벌개진 얼굴을 들었다.
"형님, 제발 저를 남겨 주십시오. 저는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
"그 섬은 사유지이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너희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그 섬에 발을 디딜 수가 없어.

나는 너희들이 그곳에 있다고 놈들에게 알려 줄 작정이다. "
"혐님 ."
김칠성이 다시 그를 불렀으나 김원국은 말을 이었다.
"그러면 놈들은 제수씨를 가지고 더이상 흥정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너는 네 처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 될테니까."
"형님!"
"놈들은 우리 업체들을마음놓고 인수해 가겠지 그때 내가칠 것이다.

그때에는 너희들을 다시 부른다. "
김칠성이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으며 머리를 숙였다.
"형님, 저는 어털습니까?"
조심스럽게 강만철이 묻자 김원국이 머리를 저었다.
"네가 숨어서 얼굴을 내민다면 경찰이나 고위충의 화만 돋우게 돼. 너도 섬으로 가."
"형님도 마찬가지이실렌데요."
"그들은 아직 내가 여기 있는 줄을 모른다. "
자르듯 말한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네가 일 잘한다고 들었다. "
"네, 형님."
이마에 진땀이 배인 백동혈이 머리를 숙였다.
"어젯밤 잡은 놈은 부동산 회사원이ㄹf?"
"네, 형님. 일당을 받고 고용된 자입니다. "
"너를 만나서 네 이름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전화만 하는 값으로 백만 원을 받았다구?"
"네, 형님 ."
"대한일보 이 기자와 호텔의 흥보실 직원이 있었다고 했지?"
"fl, 형님 ."
"비밀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
"네, 형님 ."
백동혁은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손바딕으로 썬어내었다.

아무리 기를 써도 그의 눈빛을 받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눈에 강하거나독한 기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잔잔한눈빛이었는데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바라보아도 금방 이쪽이 꺾인다.
"유혁근 경감이 크리스틴 호텔에 나타난 것도 그렇다.

놈들이 정보를 주었거나 우리 쪽에서 흘러 나갔거나 둘 중의 하나다. "
김원국이 김칠성과 강만철을 향해 말했으므로 백동혁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소를 때려 잡는 것보다 더 힘든 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고태석이는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고 가족들은 칼로 당해서 고태석의 혐의는

나중에 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만철이 말을 그치고 입맛을 다셨다
누가 보아도 인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쪽에서 칼침을 놓았다고
믿을 것이다. 그것을 시킨 것은 강만철과 김칠성이 된다.
"그쪽은 숫자가 4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 연장을 가
지고 있어서. 하지만 형사들까지 쫓아갔는데 한놈도 잡지 못해서 분 합니다. "
"저어‥‥‥‥
헛기침을 하고 난 백동혁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래, 말해 보아라."
김원국이 말하자 백동혁은 침을 삼켰다.
"저, 김진수라고 크리스틴 호텔에 갔던 애가 있습니다.

걔가 아는 얼굴을 하나 보았다고 해서 ‥‥‥‥
강만철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고 김칠성은 머리를 들고 눈을 꿈벅였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저하고 만나서 같이 가보기로 했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잡아오너라."

김원국이 자르듯 말하고는 강만철과 김칠성을 힐끗 바라보았다.
"네 형들이 잠시 피해 있는 동안 네가 내 손발이 돼줘야겠다. "
"01, 형님,"
얼굴이 벌개진 백동혁이 머리를 쑥였다.

보통때 같았으면 더할 나위 없는 광영이」3지만 분위기가 그것을 나타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불안하기도 했다. 김원국은 김칠성과 강만철과는 다른 사내였다.

격도 달랐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사래였다.
"대한일보에서 오셨다구요?"
유혁근이 다가와 앞에 앉으며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이재영의 아래위를 훌어보는 시선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경찰청 담당이 고 기자펀가?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온 것이 아녜요. 저는 사적으로, 사건에 대해서 조금
"아하, 그러시다면 내 소관이 아닙니다. 민원실 담당 이 경감을 찾으시든가 하시오."
유혁근이 마악 엉덩이를 들 기색이었으므로 이재영이 눈을 치켜떴다.
"뭐요?"
그러면서도 유혁근은 엉덩이를 굳혔다. 그러고 보니 기자치고는 빼어난 미인이다.

그러다가 얼핏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한세라의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한 대한일보의 기자가 여자였던 것 같다.
"댁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지요?"
유혁근이 차분한 기세가 되어 묻자 이재영이 가방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
"이것부터 보세요. 사진이에요."
"무슨사진?"
그러다가 유혁근은 자신이 여자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머리를 들었다.
"이것 보세요. 사진이건 뭐건간에 용건부터 들읍시다. 난 한가한 사람이 아니오."
"엊그제 으리스틴 호텔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사진이에요.

난 그때 한세라씨의 아파트 앞에 있었거든요."
이재영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시간을 정확히 재었는데 이 사진이 찍힌 시간은 오후 8시 2분이에요.

저는 철장에 있었숩니다. 유 경감님이 아파트 주차장 앞에 계셨던 것처럼요."
이재영을 찬찬히 바라보던 유혁근이 봉투 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그가 사진을 살피는 동안 이재영은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구내 식당이어서 장식도 없이 샐렁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오전 10시 반의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손님은 그들 둘밖에 없다.
유혁근이 머리를 들었다.
"이건 백동혁인지는 알겠는데, 그가 잡은 놈은 모르겠고,"
"부동산 회사 사원이래요. 돈 백만 원을 받고 심부름을 했다더군요.

지금이라도 경감님이 만나실 수 있어요."
"부동산 회사?"
"네,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인질 교환을 하지 않으려고 한 거죠."
이재영이 손가락으로 됫부분만 보이는 앞쪽 차를 가리켰다.
"아마 앞 차에 그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 거예요.

시간을 맞추어 크리스틴 호텔 앞으로 이철우씨 가족들이 오게끔 유도한 거라고 생각해요. "
머리를 든 이재영이 유혁근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차 안에 한세라씨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크리스틴호텔 앞에 차가 멈추도록

했습니다.

제가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이 부동산 회사 사원은 차에서 내려서 백동혁씨한테 이름을 물어 확인을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차에 타고 도망치려다가 잡힌 거죠."
유혁근이 입맛을 다시고는 머리를 저었다.
"글쎄, 인질을 빼앗으려면 그럴 수도 있」R지."
"이쪽은 빼앗을 생각이 아니었어요. 교환할 생각이었습니다. "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한세라씨는 없고, 인질만 빼앗길 것 같으니까 칼로 해치웠겠지."
"그렇지 야았습니다. "
이재영의 다부진 말에 유혁근이 입술 끝으로 웃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그렇게 자신하시오?"
"경감님은 어텅게 해서 크리스틴 호텔에 가게 되셨지요?

저는 그 것이 먼저 궁금해요."
"전 그쪽 회사의 여직원한레서 들었어요. 한세라씨는 아파트로,
이철우씨 가족은 크리스틴 호텔로 동시에 도착하도록 한다는 약속이 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세라씨를 찍으러 갔지요. 이철우씨 가족은 기사 가치가 적었으니까요."
"경감님한테 그런 장면을 보여 드린 의도가 있다고 생각돼요."
"이봐요, 기자 아가씨."
"이재영 기자fl_5.."
"무슨 기자건, 도대체 당신은‥‥‥‥
"이것은 음모예요, 커다란, 난 경감님이 앙심적이고 업무에 충실 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요."
유혁근이 머리를 돌리고는 입맛을 다셨다.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진 얼굴이었다.

이재영은 커다란 가죽 가방 안에서 다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로 밀어 놓았다.
"이건 이철우씨의 배후에 대한 가능성 있는 인물들의 내역이에요.
이 원본을 우리 부장한테 주었더니 질색을 하더군요.

시치 분위기가 어떻구 하면서요.

유 경감님도 한번 보세요.

저한테 익명으로 보내진 것이니까요."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적신 유혁근이 한동안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집어 들었다.

첫장을 넘기던 유혁근은 이것이 이정환이 피해 가져던 수렁인 줄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렇게 세밀하고 광범위하게 조사 할 수 있는 기관은 안기부와 기무사밖에 없다.

그러나 기무사는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유혁근은 서류를 봉투에 집어 넣었다.
이재영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그녀의 입술 끝이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이재영이 물었다.
"참고하실래요?아니면 제가 도로 가져갈까요?"
"두고 가시오."
"그러실 줄 믿었어요."
이재영은 가방을 집어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1녀를 멍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던 유혁근이 말했다.
"아가씨, 아니, 이 기자. 조심하시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돌아서서 식당을 나가는 그녀의 됫모습을 유혁근은 한동안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마당 위에 내리쪼이고 있었고 아직 검은 빛을 띠고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렀다.

시선을 내리자 창 밑에 심어진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담 밑에도 풀잎의 싹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반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이철우는 창틀에 두 팔을 짚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틀이 낮았으므로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자세였다.

이무섭과 박용근이 어두운 방안에 앉아 그의 됫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례는 잘 치렀으니까 마음을 놓게."
이무섭의 목소리가 한동안의 정적을 깨었다.

이철우의 등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 내가 사람을 잘못 쓴 것이 이렇게 되었어. 할말이 없네."
박용근이 조그맣게 헛기침을 했다.
#그렇더라도 놈들이 그렇게 잔인한 놈들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놈들에게 우리도 피맛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
이무섭이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무안한 듯 입맛을 다셨다.

창밖을 바라보고 선 이철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H이 소령, 기운을 내. 우리는 어차피 한번은 죽는다.

일찍 가고 늦게 가는가가 다를 뿐이다. "
이무섭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조금 힘이 실려 있었다.
H죽는 이유에 따라 마음의 상처도 다르지만 자네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이철우가 창틀에서 손을 떼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제는 허리를 창틀에 붙이고 선 자세가 되었다.

어두운 방안이었고 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그의 표정은 읽을 수가·없다.

 박용근과 이무섭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u강만철과 김칠성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입술만을 달싹여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으나 두 사람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지금 도피중이야.

경찰이 전국에 지명 수배를 했어.

외국으로 나갔다는 소문도 있고."
이무섭이 대답하자 박용근이 말을 이었다.
" 놈들의 조직은 공중분해되기 직전이야.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했어.

국민 여론도 흥분 상태라 놈들은 이제 끝장났어."
"그거야 어쨌든 내가 면목이 없네.

우리 조직을 움직였다가 혹시 놈들에게 한두 명 잡힐까

걱정이 되어서 그놈들을 깼는데 한발 늦었어."
어깨를 늘어뜨린 이무섭이 머리를 돌리고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자네 식구에게 손을 댄 놈들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처치했다고는 하지만

내 작전이 무리였다는 것을 시인하네.

놈들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어."
"저한테 사과하실 건 없습니다. 일단 그 일은 끝난 일이니까요."
창틀에서 몸을 뗀 이철우가 다가와 그들을 바라보고 앉았다.
"실의에 빠지거나 업무를 포기할 이철우는 아닙니다. "
"알고 있어, 이 소령 "
이무섭은 그에게 군 시절의 계급을 불러 주고 있었는데 다분히 의식적인 것이었다.
"자네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넬 돕겠다. 약속하겠어."
한동안 이무섭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철우가 조그맣게 머리를 끄덕였다.

양볼이 움푹 패어 있었고 며칠 동안 깎지 않은 뻣뻣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으나 물기가 많은 두 눈은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 가족의 희생으로 상황이 급진전되었습니다.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느낍니다. "
어금니를 굳게 문 얼굴로 이무섭이 머리를 돌렸고 박용근은 헛기 침을 했다.
"그러면 부탁이 있습니다. "
이철우의 말에 긴장한 그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 일에 관련된 것은모두제가처리하겠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맡기겠네."
선뜻 대답한 이무섭이 박용근을 바라보았다.
"박사장,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부가 있습니까? 난 이미 모든 일을 맡겨 놓은 상태입니다. "
머리를 끄덕인 이무섭이 이철우를 바라보았다.
"이 분위기를 몰아 자네의 결백을 입증시킬 준비가 되어 있네.

자넨 얼마 동안만 참으면 떳떳하게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있어.

밤의 조직을 장악하게 되면 보스는 표면에 나타나야 할 때가 많은 법이야."
그들을 방에 남겨 두고 이철우는 복도로 나왔다.

이무섭의 이층 양옥은 지하실을 포함하여 건평이 200평이 넘었다.
복도에 서 있던 부하두 명이 온몸을 굳히면서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을 스쳐 지나던 이철우는 그들의 힐끗거리는 눈동자를 옆얼굴로 느끼고는

와락 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곧은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끝 쪽에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서 있던 부하가 황급히옆으로 몸을 비켰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철우는 등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한세라가 일어서고 있었다.

눈을 커다랗게 치켜뜬 얼굴이었고 메마른 입술은 조금 벌어져 있다
이철우는 방 복판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가죽으로 만든 고급 소파였고 침대는 장식이 우아한 새것이었다.

벽 쪽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린 경대가 붙여져 있는 데다가

옆에는 번쩍이는 옷장이 놓여 있다.
일류 호텔의 시설에 비교될 만한 방이었다.

이철우가 손바닥으로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란 얼굴을 쓸면서 턱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요."
한세라가 잠자코 그의 앞에 앉았다.

시선은 자석에 붙은 쇠붙이처럼 이철우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걱정하실까 봐서 찾아왔는데."
f간의 경대 위에는 25인치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두 종류의 일간신문을 방으로 들여놓아 준다.

사내가 식사를 날라왔지만 세 끼 식사는 반찬과 그 솜씨가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철우의 가족이 어떻게 죽었고 상황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세라는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철우가 말했다.
"한세라씨를 어떻게 하지는 않겠숩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려보내 드리지요. 내가 약속해 드립니다. "
그를 바라보던 한세라의 두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두 줄기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시선은 아직 그대로 였고 얼굴의 표정도 변한 것이 없다.

역시 무표정한 얼굴의 이철우가 말을 이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지금 보고 계시니까 되었고,

사람 시켜서 요즘 나온 책을 들여 보내 드리지요.

마음 놓고 지내시기 바랍니다. "
이철우가 양팔을 소파의 팔걸이에 짚고는 상체를 들어올렸을 때
한세라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그이는 죄없는 가족을 해칠 사람이 아닙니다. "
이철우가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믿고 싶으시겠지.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면 자신할 수 없을 겁니다. "
"그렇게 지시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한세라가 손등으로 볼의 눈물 줄기를 지웠다.
"저를 죽이시더라도 원망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어요."
아직도 물기가 가득 찬 눈을 힘껏 치켜뜬 한세라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를 죽이셔서 그 보상이 된다면 저는 지금이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숩니다. "
이철우가 입술 끝을 을리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김칠성이는 행복한 사내입니다.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대단한 여자요,

한세라씨. 하지만 나는 죽을 각오를 한 여자에게 손을 대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당신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테니 각오를 하고 있을 거란 말이오."
이철우는 고개를 가로저 었다.
"당신은 돌려보내 드리지요.

물론 잘 아시겠지만 내가 인정에 끌려서 이러는 것이 아니오, "
"나는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
몸을 돌린 이철우가 뚜벅이며 방을 가로질러서는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한세라는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훔쳤다.


"아, 아, 아‥‥‥‥
여자는 김동천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입을 쩍 벌리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다리, 다리를 올려."
헐떡이며 김동천이 소리치자

여자는 천정을 향해 한껏 다리를 을렸다가 이내 그의 허리를 감았다.
"01,01,01‥‥‥‥
비맞은 듯 얼굴에 땀을 쏟으며 김동천이 더욱 세차게 허리를 움직이자

여자는 이제 방안이 떠나갈 듯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는 김동천과의 성교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가 곧 방출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 어, 어이구."
격렬하게 움직이던 허리가 감자기 움직임을 멈추면서 김동천이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에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대던 여자가 팔다리로 그의 온몸을 끌어안았다.
"그냥 있어요, 그냥."
여자가 가쁘게 숨을 뱉으면서 말하자

사지를 늘어뜨린 김동천은 움직이지 않았다.

온돌방이어서 이부자리가 펴져 있었지만 1들은 요를 아랫목으로 밀어 젖힌 채

윗목으로 밀려 나와 있었다.

베개가 여자의 허리에 받쳐져 있어서 여자의 하반신은 공중에 떠 있는 꼴이 었지만

알몸의 두 남녀는 한동안 그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 정말 세네, 나 죽는 것 같았어."
두 다리를 풀면서 여자가 말하자

김동천은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상체를 몌었다.
"이년아, 소리만 냅다 지르지 말라고 그랬잖아? 호흡을 맞추란 말이다, 호흡을."
몸을 굴려 맨 방바닥에 네 활개를 펴고 누운 김동천이 아직도 가쁜 숨을 쉬며 말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해? 좋으면 됐지 윌."
여자가 요를 끌어당겨 아래만 가리면서 종알거렸다.

요 위로 옮겨 가기도 귀찮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실버 클럽의 종업원인 미스 양이었다.

생긴 것이 오동통해서 귀엽게 생긴 데다가 말하는 것도 붙임성이 있었고

특히 잠자리의 기교가 서툴어서 김동천의 마음에 든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길들여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물 좀 주라."
갈증이 난 그가 머리만 들고 말했을 때 벨이 울렸다.

와락 이맛살을 찌푸린 김동천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어떤 씨팔놈이야? 누구야?"
버럭 밖을 향해 고함을 치자 문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들리지 않는 모양으로 다시 벨이 울렸다.

 미스 양이 알몸으로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옷가지를 찾아내고 있었다.
김동천은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바깥 쪽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는 것이다.

문 밖에는 두 명의 부하가 있을 것이고 한 걸음 앞쪽의 방에는 부하 네 명이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냐?"
김동천이 다시 버럭 고함을 치자 이제 밖에서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임검입니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
"이런 젠장할."
몸을 돌린 김동천은 방으로 들어와 팬티와 바지를 찾아 입었다.
미스 양이 옷을 가슴에 안고 그를 스쳐 지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셔츠를 입으면서 김동천은 문 앞을 바라보며 풀썩 웃었다.

그녀의 구두가 얌전히 놓여져 있는 것이다.
다시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잠깐 기다려요."
짜증이 난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벽을 바라보던 시선을 굳혔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다이얼을 두들겨 프런트와 교환을 찾았으나 모두 통화중이다.

짜증이 난 그는 수화기를 내던졌다.

문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나간다니까 그러네 !"
저고리까지 걸친 김동천은 문 앞에 놓인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는 한걸음쉐 방을 건너뛰어 유리창 문을 열었다.

2충이었고 아래쪽은 주차장이었는데 시멘트 바닥이다.

다행히 낙하 지점에는 차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창문에 상반신을 걸친 그는 두 발을 창틀에 대자마자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면서 중심을 잡은 그는 시멘트 바닥에 두 발이 닿는 순간

유도의 회전 낙법처럼 한바귀를 굴러서 다시 섰다.
전과 여섯 번을 거치면서 시간만 죽인 것이 아니다.

몸이 빠른 만큼 신경이 예민했고 분위기 파악이 재빠른 김동천이었다.

새벽 2시에 임검이 온다는 것도 그렇고 부하들이 연락을 안한 것도 그렇다.
그리고 여관내의 통신이 끊겨 있었는데 임검 경찰은그런 짓을하지 않는 것이다.

몸을 세운 김동천이 두어 걸음 걸어 주차장의 입구로 다가가는데 벽의 어둠 속에서

사내 한 명이 불쑥 나타나 그를 가로막고 섰다.

바로 한발짝 앞이었으므로 어지간한 김동천도 숨을 들이마시며 한걸음 물러섰다.

사내는 앞으로 그만큼 다가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자

사내는 왜소한 체격에 바바리 코트 차림이었다.
e네가 쥐새끼처럼 잘 빠져 나간다고 해서 난 여기서 기다렸다. "
사내의 말소리가 차갑게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넌, 백동혁이 ."
걸레조각 같은 바바리 코트를 입고 허리춤에 개잡는 목검을 찌르고 다니는

백동혁을 모르는 건달은 없다.

그러나 김동천으로서는 처음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다.
김동천이 온몸을 굳히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상황이었다.

발바닥이 땅에 닿기도 전에 김동천의 한 손은 바지의 뒤쪽 혁띠에 차고 있는

권총집에 닿았고 권총의 손잡이를 움켜 쥐었다.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은 그는 백동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 보았다.

듣기보다 더 못생긴 얼굴이었다.

자다가 금방 일어난 듯 두 눈은 감긴 것 같았고 입술도 늘어져 있다.

더욱이 그는 두 손을 늘어 뜨리고 있는 것이다.

김동천은 움켜쥐었던 권총을 휘익 잡아 빼었다.
오른쪽 팔이 앞쪽으로 튕기듯 튀어 나왔고 벌써 둘째손가락은 방아 쇠에 걸려져 있다.

이제 총구만 앞쪽으로 세우고 방아쇠만 당기면 되었다.
그와 비슷한 순간에 백동혁은 한발짝 앞으로 다가가면서 허리춤에 꽃은 목검을 쥐었고

그것을 쥐자마자 옆으로 후려쳤다.

팔에 묵직한 느낌이 온 것을 느긴 백동혁은 그 자세로 그대로 서 있었다.

잠간 동안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그림처럼 섰다.

이윽고 한쪽의 몸뚱이가 허물어지면서 침묵도 요란하게 깨졌다.
"아이고, 내 팔뚝!"
밤거리가 떠들썩하게 울릴 만한 고함 소리였다.

김동천은 팔목의 중간이 기역자로 부러져서 힘살에 의지한 손이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아이고!"
그 순간 백동혁의 목검이 가볍게 이마를 치자 김동천은 두 눈동자가 머리속으로 뒤집혀

들어가면서 정신을 쓸었다.
김동천이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방안이었다.

그는 우선 자신의 몸이 의자에 앉혀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방안은 텅 비어 있었는데 벽 쪽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김동천은 자신의 오른쪽 팔로 시선을 주었다.

나무를 대고 붕대를 찬찬히 감았는데 왜 익숙한 솜씨딸다.

그러자 머리와 팔에서 고통이 전달되어 왔다.

왼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만져 보았다.

이마에도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방은 열 평쯤 되어 보였으나 창문은 없었고 그가 앉아 있는 곳에서

정면으로 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김동천은 두 발에 힘을 주어 의자에서 일어섰다.
가슴이 세차게 고동을 치고 늘어져 있는 팔이 뽑혀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이 왔다.

한 손으로 팔을 들어올려 받치고 문 쪽으로 두 걸음쯤 발을 몌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백동혁이 들어섰다.
저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선 김동천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뒤를 따라 장신의 거한이 들어섰는데 부리부리한 눈과 굵은 콧날,

굳게 다문 입술을 보자 가슴이 위장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김칠성이었다.

=1를 언젠가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
백동혁이 던지듯이 말을 뱉자 김동천은 저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나 의자에 도로 앉았다.

구석에 놓인 의자로 다가가 한 손으로 집어든 백동혁은 그것을 김동천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김칠성을 돌아보자 김칠성이 잠자코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없다. 누가 그 짓을 시켰는가만 말해라."
김칠성의 옆에 선 백동혁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릴 잘 알겠지만 넌 그냥은 못 나간다.

죽어서 바닷속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사실을 불든지 둘 중의 하나야. 말해라."
김동천이 숨을 힘껏 들이마시려고 어깨를 올렸으나 가슴이 뛰는 바람에 도중에서 그쳤다.

우선 급한 것은 놈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했다.

÷I는 번쩍 머리를 들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술먹고 오입한 것도 죄가 된단 말이야?
그짓을 해도 이젠 당신들한테 신고를 해야 돼?"
백동혁이 힐끗 김칠성을 내려다보았다가 그가 잠자코 있자 반걸음쯤 다가섰다.

그의 입술 끝이 비틀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 쥐새끼 같은 놈. 잔머리 굴리지 마라. "
백동혁의 손이 갑자기 코트의 주머니에 들어가자 김동천은 흠칫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가 목검을 빼어서 두들기는 솜씨는 말로만 듣다가 오늘 새벽에 체험을 했다.

백동혁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주먹 꺼내어 김동천의 무릎 위로 떨어뜨렸다.

과자나 사탕 같았지만 조금 무거운 것들이 무릎과 허벅지를 때리며 굴러 떨어졌다.

시선을 내려 무릎 위를 바라본 김동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손가락 두어 개가 허벅지 위에 떨어져 있었다.

두어 개는 의자의 귀퉁이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 크리스틴 호텔에 갔던 안막수의 손가락이다.

그 놈은 손가락 여덟 개를 1분 간격으로 S분 만에 잃어 버렸지.

두 개를 남겨 놓고 8분 만에 불었다. "
백동혁의 낮은 말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넌 몇 분 견디는가 보자. 손가락 다음에는 발가락,
그 다음에 코,
f, 그리고 네 가운데 다리다. 마지막에는 목을 쳐줄테니까."
백동혁이 팔목시계를 내런다보았다.
"자, 묻는다. 누가 네놈들을 시켰지?"
"그건 자세히 몰라, 난 사장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야."
1분 안에 답을 맞춰야 하는 퀴즈에 나온 사람같이 김동천이 서둘러 대답했다.

머리 회전이 재빠른 그는튕겨서 득될 것이 없다고 즉각 판단한 것이다.
시계를 내려다본 채 백동혁은 머리를 들지 않았고 입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김동천을 조급하게 하는 것은 김칠성이었다.

그는 이쪽에 시선을 준 채로 이제까지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장이 애들 서른다섯 명만 추려서 크리스틴 호텔로 가라고 했어.

8시에 당신들이 이철우 가족을 데리고 오는데 치고 빼앗으라고 한 거야."
백동혁이 머리를 들었다.
"이철우 가족을 죽인 것은 누구야?"
"말도 안되는 소리 말어! 우리가 왜 그 사람들을 죽인단 말이야?"
목에 핏줄을 내보이면서 김동천이 눈을 치켜떴다.
"찾아오려고 갔는데 죽일 리가 있어? 너희들이 한 짓이지."
"무조건 대답만 해도 안돼, 이 쥐새끼 같은 놈아."
그러면서 백동혁이 코트의 주머니에서 꺼내 든 것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정원용 가위였다.

그는 손을 뻗어 김동천의 한 팔을 움켜쥐어 올렸다.

무의식중에 다른 팔로 그의 손을 떨어내려던 김동천은 비명을 질렀다.

부러진 팔에 극심한 통증이 왔던 것이다.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백동혁은 가위를 김동천의 주먹 끝에 대었다.

손가락을 잡히지 않으려고 김동천이 주먹을 쥐었기 때문인데 가위가 활짝 날을 벌리자
그것은 손가락 두어 개를 한꺼번에 삼킬 수 있는 크기였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잘라 주마. 과연 두목이라 다르구만."
백동혁이 가위에 지그시 힘을'주자 금방 손가락 끝에서 피가 배어 나왔는데

가위가 물고 있는 상황을 보면 새끼손가락과 넷째, 셋째손 가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난 알 수가 없어 . 나는 절대로, 으아악!"
반쯤 몸을 일으킨 김동천이 온 얼굴에 땀을 쏟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가위는 이미 깊숙히 물려져 있어서 손둥으로 피가 흘러 나왔다.
"가족들을,가족들을 인수해 간다고 세 명이 따라왔었어! 그후로 그놈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
김동천이 비명처럼 소리치자 가위의 힘이 조금 약해졌다.
"세 놈이라니? 누가 보낸 놈이야?"
팽팽한 목소리로 백동혁이 다그쳐 묻자 손가락을 내려다본 채 김
동천이 서둘러 말했다.
"그것은 몰라. 나도 처음 보는 놈들이었는데 호텔에서 만났으니까. "
백동혁이 힐끗 김칠성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김동천의 시선도 김칠성 쪽으로 돌려졌다.
"나는 놈들을 모릅니다, 형님. 그놈들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그놈들은 인수해 가는 놈들이었고."
"그놈들은 어디 있어?"
김칠성은 입을 열지 않았고 백동혁이 다시 물었다.
"몰라, 호텔 앞에서 헤어져 버렸으니까."
"도망치면서 그중 한놈한테 얼핏 들었는데 버스에 들어가니까

가족들은 이미 죽어 있더라고, 당신들 부하들이 미리 해치웠더라고."
김칠성이 al리에서 일어섰으므로 김동천은 눈을 부릅떴다.

시선이 마주치자 땀에 범벅이 된 온몸의 피부가 냉기를 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김칠성은 시선을 거두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방을 나가자 김동천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 이야기했어. 난 우리 사장의 지시만 받았을 뿐이야.

그러니까‥‥‥‥
김동천의 시선이 자신의 왼손으로 옮겨졌다 정원용 가위는손가락 세 개를-

나뭇가지처럼 물고 있는 것이다.
"내 별명이 개백정이야. 너, 알고 있지?"
백동혁의 말소리에 김동천이 얼굴을굳혔다.

반쯤 입을벌리고눈을 치켜뜬 얼굴로 그는 백동혁을 을려다보았다.
"나는 이제까지 개를 설잡아 본 적이 없어."
"이, 이것봐. 난 다 불었어. 약속을 지키란 말이다!"
"개한테 약속한 적도 없단 말이다. "
백동혁이 와락 가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손가락 두 개가 나뭇가지처럼 떨어져 나갔다.

가운뎃손가락은 거죽이 다 잘리지 않아서 손
바닥에 매달려 있다.
"으으으악!"
방안이 떠나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김동천이 의자에 주저앉았으나

조준을 잘못했으므로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아이고! 아이고! 내 손가락!"
손을 흔들자 가운뎃손가락이 대롱거리며 흔들렸다.

백동혁이 입맛을 다시며 잠자코 그를 내려다보면서 서 있었다.
탁자 위로 담배 연기가 부옇게 떠 있었다.

회의실에 앉은 사내들은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츠나

가끔씩 눈을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상석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사내는 안기부장 이찬형이었고

그의 옆에는 제3차장인 고성섭이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옆쪽에 앉은 사내는 치안감 박동호였고 앞쪽에는 경찰청장인 하석재,

그의 옆에는 검찰총장인 이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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