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치명타를 입다 (2)
장관 회의실이 었으나 타원형의 긴 탁자와 십여 개의 의자외에는
장식물이 없어서 소박하다기보다 황량한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강 한석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는 곳이었다.
그는 필요없는 가구나 인물은 그냥 두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그는 일을 벌여서 잘못한 책임은 자신이 지고 공은 대통령에게 돌린다는
확고한 의지와 충성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면서 장관이 들어서자 이찬형을 제외한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찬형은 허리만 비틀어 그에게 목례를 보냈다.
"이거 늦어서 미안합니다. 각하께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어졌습니다. "
이찬형을 향해 말하며 강한석이 자리에 앉았다.
3공에서 5공깐지의 시절만 해도 안기부는 권부의 핵이었으나 이제는 장관급으로 격하가 되었다.
이찬형이 머리를 끄덕였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는 서열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러한 성품을 존경하는 부하들도 있었지만
안타까워하는 부하도 있었다.
고성섭이 힐끗 자신의 상관인 이찬형의 눈치를 살핀 것은 그가 후자의 범주에 든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일 것이다.
"저어, 회의를 하기 전에 먼저 각하께서 내리신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강한석이 갖고 들어온 노트를 펼쳤다.
"우선 김원국의 조직을 원천적으로 뿌리 뽑아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잔인한 만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 이셨고."
노트에서 머리를 든 강한석이 이찬형을 바라보았다.
"이철우에 대한 조사는 중지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십니다.
여러가지 정황도 있고, 또 이번의 가족 살해 사건으로 여론도 만만치 않아요."
이찬형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는데 알았다는 표시인지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강한석은 말을 이었다.
"이제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가 그 방법른인데, 우선 국세청으로
하여금 그들 조직의 세무 조사를 일제히 실시해서 일차적으로 걸러 내는 방법이 있숱니다.
아마 그들 조직 소유의 업체들 반 이상이 세금을 얻어맞으면 국가로 귀속이 되겠는데."
모두들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까지 대통령의 말씀 이냐고 물어 보는 사람은 없다.
강한석이 다시 노트를 펼쳤다.
"나머지 업체들은 다시 재조사를 실시하면 배겨날 업체는 없습니다. "
"조웅남은 병원에 있으니까 빼놓고, 강만철,김칠성이 살인 교사 혐의로 이미 수배중이니까
조직은 곧 와해되겠지요."
강한석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문나는 사항이나 보완할 사항이 있습니까?"
"저어‥‥‥‥
제3차장인 고성섭이 상체를 바로 세웠다. 이찬형은 앞쪽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하께서 이미 결정하신 사항이긴 합니다만 만일의 경우가 생겨
각하께 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요."
그는 머리를 박동호에게 돌렸다.
"우리는 수사 내용을 자세히 모르는페, 김칠성의 부하들이 자백했습니까?"
"했습니다. "
박동호가 커다랗게 머리를 』I덕였다.
"잡혀 온 열 명 중에서 세 명이 자백했습니다.
나머지는모르겠다고 하고. 그건 김칠성이 따로 불러서 지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
"고태석이는 뭐라고 합니까?"
"모르겠다고 합니다. "
검찰총장인 이인영이 헛기침을 했으므로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증거는 충분합니다. 더구나 현역 경찰청 요원 세 명이 증인이 되어 있어요.
빠져 나갈 수가 없숩니다. "
머리를 끄덕이는 강한석의 시선이 이찬형에게서 머물렀다.
"부장께서는 하실 말씀이,"
"국가에서 압류할 김원국의 업체들 말씀인데요."
이찬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백억 아니 현 시가로 따지면 수천억이 될 재산입니다.
그걸 공매 처분 하시겠단 말입니까?"
"그것은 그들 조직이 업체 주인들로부터 강탈해 간 검은 돈으로
세운 것들 아닙니까? 아마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공매 처분을 하든 기증을 하든간에."
이찬형이 퍼뜩 눈을 들어 강한석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돌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렇게 되면 당장에 실업자가 몇천 명 생깁니다. 그 여파로 유홍업체 둥의
경기가 폭락하면 그것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난 정권 때에도‥‥‥‥
강한석이 손을 저으며 웃는 얼굴을 보였으므로 이찬형이 말을 멈추었다.
부장님, 그건 내무장관인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유흥업체의 영업시간 단축제도를 철폐할 생각입니다.
밤의 세계에 폭력 조직이 없어진 마당에 시민이 제한없이 즐기도록 해야지요.
아마 유흥업체의 경기는 올라갈 겁니다. "
이찬형이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강한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헛기침을 한 하석재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김원국조직의 업체들주변에 경찰을 배치하도록 하지요.
이왕 시작할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진행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다른 업체들에게는 배치시키지 않겠습니다.
망하게 하려면 빨리 망해야 후유증이 적습니다. "
박동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의 조직력은 아직도 막강합니다.
중간 보스급이 몇 명 살아 남아 있는데 그들의 행동을 면밀히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악적인 행동으로 나올지 모르니까요."
강한석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김원국이가 지금은 인도네시아의 섬에 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모릅니다.
직원을 몇 명 출장 보내서 밀착 감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
이찬형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고 강한석은 그를 향해 머리를 」1덕였다.
"그렇군요. 박 국장이 주도해서 일을 진행하세요. 만사를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
고성섭이 소리 죽여 숨을 내쉬었으므로 이찬형이 힐끗 그를 보았다
시선을 느긴 고성섭이 머리를 돌렸을 때는 이미 이찬형의 시선은 벽을 향해 옳겨진 후였다.
식당을 나온 이재영은 코트의 깃을 세우고는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요즘 들어 흔하게 생긴 대형 음식점이어서 주차장도 넓었으나 승용차들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몇 번이시지요?"
주차장 관리인인 젊은 사내가 다가왔다.
"5228번요. 횐색 엘란트라."
사내는 말없이 몸을 돌리더니 주차장의 한쪽 구석으로 향했는데
1쪽에 자신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밤 9시 반이면 음식점이나 술집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지금도 음식점 안에는 사회부 기자들의 술 파티가 계속 되고 있었다.
오늘은 사회부 회식이 있는 날이다.
승용차가 앞으로 굴러오더니 멈춰 섰다.
사내가 내리더니 그녀의 옆에서 주춤거렸다
이재영은 모른 척 그의 옆을 지나 운전석에 올랐다.
이곳에서까지 팁을 뿌릴 생각은 없다.
갈비값은 턱도 없이 비싼 데다가 설탕만 많이 넣어서 고기는 달기만 했고
됫맛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재영은 음식점의 입구를 천천히 빠져 나와서는 큰길로 들어섰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쉴 생각이었다.
매일 철야 근무를 하다시피 해서 남자들은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모앙이었으나
그녀는 잠으로 해결할 작정인 것이다.
이재영은 차에 속력을 내었다.
아파트가 바라보이는 사거리에서 붉은 신호등에 차를 세운 이재영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0시 반이 되어 있었다.
이제 좌회전하여 이차선의 도로를 200미터쯤 가다가 우회전하면 아파트의 입구가 나온다.
좌측 신호가 켜졌으므로 이재영은 차를 좌측으로 회전시켰다.
맨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참이라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가속기를 밟아 차에 속력을 내었다.
200미터를 곧장 달려 다시 우측으로 회전해 들어가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커다란 충격이 오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핸들을 움켜쥔 이재영은 무의식중에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는데 뒤쪽에서 다시 충격이 왔다.
승용차는 타이어의 마찰음을 내면서 길가에 멈추어 섰다.
이재영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뒤차 운전석에서도 사내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9인승의 승합차였고 모자를 눌러 쓴 작업복 차림의 사내였는데 짜증난 듯
자신의 승합차 앞부분을 살펴보고는 이재영의 승용차 됫부분으로 머리를 돌린다.
"이것 봐요, 당신 음주 운전이에요?"
허리에 팔을 댄 이재영이 날카롭게 소리치자 사내가 퍼뜩 시선을 들었다.
"차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바짝 따라와 받다니, 당신‥‥‥‥
그러다가 이재영은 생각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가의 상점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있다.
여자가 운전하는 차만 골라서 사고를 일으키고 금품을 갈취한다는 무리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저씨,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사고 났다구요."
이재영이 가게를 향해 소리치자 안면이 있는 과일 가게 주인이 몸을 돌려 가게로 들어갔다.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요, 똥차라."
모자를 벗어 손에 쥔 사내가 짜증난 얼굴로 말했다.
"지난번에도 몇 번 혼이 났는데 기어이 일 났네, 젠장."
승용차의 됫부분은 범퍼가 아래쪽으로 휘어져 내려온 데다가 트렁크 부분이
안으로 쭈그러들었고 뚜껑은 구부러져서 열려 있는 상태였다.
"저, 견적내면 수리해 드릴게요. 보험에 들어 있으니까요."
사내가 이재영을 바라보았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순박한 얼굴의 사내였다.
"배달이 바빠서 속력을 내었는데 모두 제 잘못입니다.
수리해 드릴테니까‥‥‥‥
경찰에 신고해서 귀찮게 하지는 말아 달라는 말이었다.
이재영은 입맛을 다시며 시계를 보았다.
10시 40분이었고 시간이 아까웠다.
구경꾼들은 이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좋아요,저기 건너편에 자동차 수리 공장이 있는데 지금도 문을 열고 있는지 모르겠네."
마지못한 이재영이 아파트 옆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재수가 없지만 차는 고쳐야 하는 것이다.
"가까운 곳이면 아무 곳이나 상관 없습니다. "
사내가 모자를 눌러 쓰더니 운전석에 올랐으므로 이재영은 몸을 돌렸다.
가게 주인이 다가왔다.
"차 번호하고 운전자 이름을 알아 놓으라는데요.
지금은 올 수가 없대요, 사람이 없어서."
"됐어요. 지금은 수리소로 가니까 내버려 두세요. 고마워요, 아저01, "
"잘 해결되었어_5.?"
사람 좋아 보이는 가게 주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저 사람이 변상해 준대요, 자기 잘못이라고."
"그럼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도 받아 봐요. 후유증이라는 것도 있다고 합디다. "
"고맙습니다. "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이재영이 건성으로 웃어 보이고는 차에 을랐다.
수리 공장은 아파트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재영이 자주 들르는 곳이어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곳이다.
아파트를 지나 수리 공장으로 향하는 좌측길로 접어들자 뒤에서 따라오던 승합차가
속력을 내어 그녀의 차를 스치고 지나더니 앞을 가로막고 멈추어 섰다.
하마터면 승합차의 됫부분을 들이받을 뻔한 이재영이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승합차에서 사내가 내려 이쪽으로 다가찼다.
수리 공장은 이제 2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왜 =1래_3.?"
짜증이 난 이재영이 다가온 사내에게 소리쳐 물었으나 At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퍼뜩 얼굴을 굳힌 이재영이 손을 뻗어 기어를 쥐었을 때
사내의 손이 차 안으로 들어와 키를 뽑아내었다.
엔진이 멈추었고 사내는 차의 문을 열었다.
"당신 왜 이래?"
이재영이 소리치듯 물었으나 긴장했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조용히 따라와.소리쳐 봤자 소용없어."
사내가 이재영의 옷깃을 움켜쥐고 끌어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두 명의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운전자 외에는 아무도 타고 있는 것같지 않던 승합차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이재영의 좌우에 붙어서 각각 한쪽 팔을 끼었다.
좁은 길이었고 한쪽은 아파트의 담인 데다가 다른 한쪽은 빌딩 공사를 시작하고 있는
어두운 옹사장이다.
이재영은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큰길에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으로 꺾여져 들어오는 불빛은 없다.
"사람 살려!"
몸부림을 치면서 이재영이 공포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자 앞서가던 사내가 몸을 돌리더니
주먹으로 배를 쳤다. .
은몸을 굽힌 이재영은 쓰고 신 위액이 역류되어 입안에 가득 고이는 것을 느꼈다.
두 팔이 사내들에게 들려 두 다리를 질질 끌리던 그녀의 몸은 열려진 승합차 안으로
던져지듯 넣어졌다.
입안에 고인 위액을 차 바닥에 겨우 뱉은 이재영은 두 손으로 의자를 움켜쥐고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힘을 썼다.
그러나 배의 고통으로 아직도 하반신이 말을 듣지 않는다.
승합차의 문이 닫히고 사내들이 들어서자 이재영은 가늘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사내에게 멱살을 잡힌 순간부터 사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짐작이 갔다.
이제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기만 하고 실체를 보이지 않던 조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의자를 움켜쥔 이재영은 기를 쓰고 몸을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사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승합차는 수리 공장을 지나 이제 큰길로 향하는 중이었다.
"받아라, 앞바퀴를 받아 버려, 그게 낫다. "
이강일이 손잡이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빨리 밟아, 이 새끼야!"
핸들을 잡은 오덕호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면서 차를 반대편 차선으로 집어 넣었다.
이제 50미터만 더 가면 큰길인데 승합차는 5미터 앞쪽에 있다.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달려온다면 정면 충돌을 할 판이었으나 이쪽 길로 들어서는 차량은 없다.
술집의 대리운전사 경력이 2년이나 있는 오덕호였다.
중형 승용차는 탄력을 받아승합차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고 조금 앓서가는가 하는 순간
오덕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와락 꺾었다.
눈을 부릅뜬 이강일은 숭용차의 범퍼가 정확하게 승합차의 앞바퀴에 부딪치는 것을 보았다.
강한 충격이 왔고 됫좌석에 타고 있던 부하들이 그 충격으로 앞쪽 좌석에 몸을 부딪쳤다.
승합차는 됫부분을 빙글 회전하면서 수리 공장의 담벼락에 뒤쪽의 한부분을 부딪치더니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멈추어 섰다.
승용차도 충돌과 동시에 오른쪽 몸통을 승합차에 부딪치면서 승합차와 함께 돌았으므로
이제는 모두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고 멈춰 서게 되었다.
차체가 승합차에 붙여져 있어서 문을 열 틈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강일은
오덕호가 빠져 나간 운전석으로 몸을 굴렸다.
차를 빠져 나간 부하들이 승합차에 달라붙어 있었다.
승합차의 운전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가 부하가 휘두른 야구 방망이에 어깨를 얻어맞고는
땅바닥에a준저앉았다.
부하 두 명이 승합차의 문을 열어 젖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야구 방망이를 움켜쥔 부하 한 명이 두어 걸음 됫걸음질을 쳤고
나머지 부하 한 명이 이미 열려진 문 쪽으로 와락 다가갔다.
그의 손에 쥔 긴 작대기 같은 것이 보였는데 공기총이다.
"퍽, 퍽, 퍽, 퍽."
불쑥 총구를 차 안으로 들이민 부하가 쏘아대는 공기총의 발사음이 들렸다.
반대편의 창가로 오덕호가 다가가더니 차의 유리창을 공기총의 개머리판으로
깨뜨리고는 총구를 집어 렇었다.
"퍽,퍽."
그가 두어 방 쏘아 대자 안에서 사내들의 비명 소리가 났다.
"쏘지 말아요!쏘지 말아요!"
갑자기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으므로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재영은 차가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뒤쪽의 의자 사이에 굴러가 있다가
총소리에 놀라 겨우 정신을 차린 참이었다.
이제 앞자리로 굴러가 있던 사내들이 의자에 엎드려 신음 소리를 뱉고 있는 중이다
열려진 문으로 사내들이 뛰쳐 들어왔다.
그들은 사내들을 차 밖으로 서둘러 끌어내리고 있다.
그러자 사내 한 명이 그들 사이로 몸을 내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기자님, 어서요, 어서 내리세요."
낯선 얼굴이었으나 그들이 누구인지를 이재영은 금방 알아차렸다.
경찰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조직은 단 하나밖에 언는 것이다.
이맛살을 찌푸린 유혁근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꺼 입에 물었다.
밤이 깊어서 줄이 쳐진 현장 근처를 지나는 행인들은 없었지만
수리 공장의 공원 서너 명은 아예 팔짱을 끼고 서서 이쪽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강 형사가 비닐 봉지 하나를 손에 들고 다가왔다.
"탄피를 하나 찾았습니다. 주민 신고가 맞기는 맞는 모양인데,
권총 탄피 같습니다. "
다가선 그가 봉지를 넘겨 주자 유혁근은 끄덕이며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차가 충돌하고 총소리가 났고 사내들이 싸웠다는 신고를 받은 파출소는
아예 경찰서에 보고부터 했던 것이고 경찰서는 경찰청에 즉각 보고했는데
요즘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물거리며 보고를 늦추다가는 어떤 벼락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유혁근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신고 후 한 시간 반쯤이 지났을 때였는데
엄명을 받은 파출소와 경찰서의 담당 경찰들은 주변을 통제만 하고 현장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워서 내일 해가 뜨고 나야 더 자세히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숨니다. "
강 형사가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새벽 2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좋아, 여길 통제하고,내일 아침까지 경비를 서게 하라구
우린 그 동안 차 번호를 조회해 보도록 하지 "
유혁근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5뭘이 되어 있었지만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계장림, 그렇다면 저쪽에 부서진 채 서 있는 엘란트라도 조사를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형사가 턱으로 수리 공장 쪽을 가리켰는데 작업복 차림의 청년한 명이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가까운 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저, 아저씨. 내가 저쪽 엘라트라 주인을 아는데요."
"어, 그래?그게 누구여?"
강 형사가 턱을 들고는 건성으로 물었다.
"저, 대한일보 기잡니다. 여자 기자인데, 키도 크고 예쁩니다. 젊고요. "
수리 공장 공원은 나름대로의 추측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혁근의 눈깹이 치켜올라갔다 그가 한걸음 다가가자 사내는 침을 삼켰다.
"이름이 누군지는 아시오?"
"저, 이름은 모르지만 성이 이씨라는 것은 압니다. 이 기자라고 하던데요."
유혁근이 눈을 치켜떴다.
"이 근처에 삽니까?"
"네, 저기 아파트에."
몸을 돌린 유혁근이 강 형사를 바라보았다.
"대한일보의 이재영 기자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서 집에다 연락을 해봐,
지금 당장. 사회부 기자야."
"이재영 기자라고 하셨숨니까?"
"그렇다니까!"
유혁근의 기세에 놀란 듯 강형사가 서둘러 몸을 돌렸다.
주변에서 있던 수리 공장의 직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더니 공장 쪽으로 사라져 갔다.
파출소에서 파견된 순경 한 명이 현장 둘레에 쳐진 줄을 고쳐 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 두 명은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다.
유혁근은 수리 공장 쪽의 좁은 길과 이쪽의 부서진 차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놈들이 이재영을 총까지 쏘면서 납치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전화를 하려고 승용차에 돌아갔던 강 형사가 서둘러 다가오고 있었다.
"계장님, 집이 이쪽 아파트 맞습니다. 차도 횐색 엘란트라 맞구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1시쯤오겠다고 연락이 왔었다는데요."
퍼뜩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던 유혁근은 발을 어 자신의 승용차로 다가갔다.
차 안에서 무선 전화기를 집어 든 유혁근이 다이얼을 누르면서 뱉듯이 중얼거렸다.
"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다, 이놈들이."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냐, 아무것도."
저쪽으로 신호가 갔으므로 유혁근은 전화기를 힘주어 잡았다.
"나,유 계장이야."
"네 , 계장님 ."
치명타를 입다 331
본부의 일직 형사는 유혁근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서울을 빠져 나가는 모든 도로의 검문을 강화해라.
이것은 B급 경계야.납치되써 가는 여자를 찾아야 한다.
여자의 이름은 이재영. 신분은 대한일보 기자다.
그리고 신장은 165센티미터 정도, 용모는 미인형이다. "
"언제부터 발령입니까?"
다소 느긋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으므로 유혁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알았습니다. "
스위치를 끈 유혁근에게 강 형사가 한걸음 다가왔다.
"일직이 과장님께 연락을 할 겁니다. "
"나도 과장한테 할 것이야. 걱정 말어."
"그 기자라는 여자, 납치당했는지 어쩐지 본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글쎄, 이 사람이 오늘따라 웬 잔소리가 이렇게 딴아?"
유혁근이 버럭 소리를 치자 강 형사가 입맛을 다셨다.
경찰서 근무를 할 때부터 손발을 맞춰 온 부하인 강 형사였다.
이제까지 사건의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그에게 상의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요즘의 유혁근의 태도는 강 형사에게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것이다.
유혁근이 전화기를 들고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는 것도 그렇다.
강 형사는 다시 입맛을 다시면서 몸을 돌렸다.
어쨌든 이쪽도 유혁근과 손발을 맞추어야 했다.
파출소 순경이 들고 있는 무전기로 각 경찰서에 연락을 해서
B급 경계를 확인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재영은 자신이 타고 있는 승용차가 바닷가를 달려 우측의 얕은
능선을 끼고 꺾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밖은 검정 페인트를 뒤집어 씌운 것 같은 짙은 어둠 속이었지만
전조둥이 비치는 길가의 지형이 낯익었다.
승용차는 김원국의 저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온몸이 쑤셨고 아직도 몸을 움직이면 뱃가죽이 아파 왔으나
이재영은 팔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다 왔습니다. "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이강일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디로 간다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이재영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그녀도 생각하고 있었다
오빠와 언니는 결흔하여 분가해 나갔으므로 정년 퇴직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그녀 셋이 살고 있는 집이다.
놈들은 가차없이 집으로 찾아을 것이고 집에 있다가는 부모님에게 누가 될지도 몰랐다.
승용차는 낮은 언덕을 넘어 대문 쪽으로 다가갔다.
뒤쪽에서 따라 오던 차가 회전하면서 대문 근처를 불빛이 휘익 훌고 지났는데
나무 기둥처럼 어둠 속에 서 있는 사내들이 드러났다.
짙은 숲에 싸여 한쪽은 바다를 내려다보도록 만들어진 별장이다.
밤과 숲,그리고 정적에 싸여서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내들의
분위기는 차갑고 날카로웠으나 이재영의 가슴은 반대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갔다.
승용차는 건물의 현관 앞에 멈추었고 이강일이 뛰어나가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는 낯익은 백동혁이 다가왔다.
집안이어서인지 걸레같이 보였던 바바리 코트는 벗고 산뜻한 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저, 오늘은 피곤하실테니까 큰형님께서 주무시라고 하셨습니다. 저, 이쪽으로."
싸움에는 선수일지 몰라도 접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몸짓이었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백동혈이 휘적이며 앞장을 섰다.
그의 뒤를 따르던 이재영의 머리에 문득 김선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이 남자를 증오한다고도 했는데 그 반대의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증오와 애정은 손바닥과손둥처럼 언제 어떻게 내밀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기 이 방입니다. "
잔뜩 예의를 차린다는 표현으로 백동혁이 방 앞에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재영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치켜떴다.
"큰형님께서는 편찮은 곳이 있으시냐고 물어 보라고 하셨는데."
"괜찮아요, 이젠."
칭을 삼킨 그녀가 억눌린 소리로 말하자 백동혁은 허리를 숙였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처음에는 그의 달라진 태도에 다소 당황했던 이재영은
자신이 김원국의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맙습니다. "
그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이재영은 방안으로 들어섰다.
스무 평도 넘어 보이는 아늑한 방이었다.
사각형의 방에 소파와 침대, 옷장과 화장실의 입구가 삼면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가구는 신품이었고 색깔은 밝았다.
바닥에는 크림빛 양탄자가 깔려 있어서 포근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소파에 앉은 이재영은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온 몸의 힘이 풀려 나가면서 뼈마디가 저려 왔다.
승합차가 충돌하였을 때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에 유혁근과 안청준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서류를 보여 준 것은 그들 둘밖에 없다.
안청준의 긴장한 얼굴이 크게 떠올랐고
이제는 유혁근이 몸조심하라고 말하던 때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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