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7. 허물어지는 제국 (2)

오늘의 쉼터 2014. 12. 5. 16:55

7. 허물어지는 제국 (2) 

 

 

 

"놈들은 어떻게든 사건을 덮으려고 하단 말이오.
우리는 사건을 퍼뜨려야 하고 그래야 손발이 맞소."

 

"어젯밤 사건을 아는 업체들이 몇 개 되지 않았소.
우리가 신문에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단 말이오."


"그건 안 상무가 애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구만."


박용근이 나섰다.

그는 얼굴을 굳힌 안재일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건 우리 경비 용역 회사의 필요성을 선전하는 것으로도 생각될테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나?"


"그렇습리다, 사장님 ."


마지못한 듯 안재일이 대답하자 이철우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박용근이 떠들썩한 목청으로 말했다.


"자네들은 내 왼팔 오른팔이야. 우철우 좌재일이라고 할까? 누가 했던 것처럼 말이야."


이중섭은 한동안 시선을 책상 위로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안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인왕산의 가파른 바위 절벽이 보이는 집무실 안으로 유리창을 통해

따스한 햇볕이 흘러 들어왔다.
이윽고 대통령은 머리를 들었다.


"벌써 석 달째 이런 소동이 계속되는데 경찰은 손을 못 쓰고 있다
D, 한심한 노릇이야.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겠나?"


강한석이 머리를 떨어또렸다.

대통령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청와대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뵙고 나자 짐작했던 것 이상이어서 당황한 것이다.
"언론이 쉴새없이 떠드는데 도대체 경찰은 언론의 뒤만 쫓아다니는 것 같단 말이야 안 그런가?"


"네, 각·하."


머리를 깊게 숙이며 강한석이 한숨과 함께 말소리를 내었다.


"일부 언론의 추측 기사도 있었습니다만, 언론들이 앞서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


"나는 자네한테 보고를 받기 전에 신문을 보고 내막을 알게 된단 말이야."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낸 강한석은 이마에 배인 땀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사회가 이렬게 뒤숭숭해지면 안돼 올해는 경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란 말이야.

바이어들이 물건을 사러 한국에 몰려와야 된단 말이야."


"네, 각하.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 경찰력을 투입해 ff ‥‥‥‥


"어허, 이 사람."


이증섭이 혀를 찼으므로 강한석은 놀라 말을 멈추었다.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로 강한석은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에도 그런 말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점점 밤거리는 상황이 나빠지고 있어.

유흥업소의 주도권 싸움인지 뭔지는 몰라도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치안의 부재를 나타내는 거야."


대통령의 말소리가 집무실 안을 울렸다.

집무실 안에서 대통령과 독대하게 되었으므로 정국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총리는 청와대에서 나고는 대로 총리실에 들러 달라고 연락이 왔었고

아침에 청와대로 들어오기 직전에는 당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내일 점심 약속을 한 것이다.

이중섭 대통령의 쨍쨍한 말소리가 다시 방의 정적을 깨었다.
"치안의 책임 부서인 내무부는 언제나 조직 폭력배를 발본색원한 다고만 하고 있는데

이걸 읽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T3다는지 알 수가 없어."
이중섭이 손바닥으로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가리켰다.


"김원국의 조직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누구란 말인가? 어떤 집단이of"


"각하,밤의 세계에는 수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김원국에게 장악되어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이맛살을 찌푸린 이중섭이 머리를 저었다.


"시민들이 밤거리를 자유롭게 나다녀야 돼.

술마시고 싶으면 술집에도 가고. 하지만

요즘은 유흥업소들이 장사가 안된다고 야단이골지 않는가?

무서워서 손님들이 안 오는 거야. 그렇지 않은가?"


"네,각하."


"그러면 시민들이 내무부 장관인 강한석을 욕할까? 아니야.

괜히 경제 부흥이네 어쩌네 하면서 치안을 그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나를 욕한단 말이야."


"도대체 내무부의 보고는 알맹이가 없어. 사건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단 말이야."


강한석이 머리를 들었다. 어제 저녁에 대통령이 안기부장인 이찬형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제는 한달에 한번 씰 있는 정례 보고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의 수사는 안기부와 기무사의 협조를 받고 있지만 주무 부서는 내무부이다.

내무부가 수사방향과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측에서 사건을 독자적으로 분석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각하, 제가 보고받은 바로는 이 사건은 산발적인 사건들인데 언론이

구독률을 높이려는 의도로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과장된 느낌이 있숩니다.

앞으로는전 경찰력을투입하여 이런 테러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3숩니다. "
강한석의 말투에는 열기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언론에도 협조 요청을 할 생각입니다.

요즘 언론들은 사회에 대해 무책임한 경우가 많습니다. "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중섭과 강한석이었다.

이중섭은 한동안 물끄러미 강한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이철우라는 사람, 못 잡았지?"


"01, 긱·31. "


깜짝 놀란 강한석이 머리를 들었다.

이철우는 아직 확실한 주모자라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보고서에도 적어 놓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한성이라는 범인 중의 하나가 붙잡혀 이철우의 이름을 대었지만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는 다시 번복을 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이철우는 전혀 모르는 시람이라고 하고 있었으나 기관에서는

이철우에 대해서 모든 자료를 뽐아 놓고 있다.


"그 사람을 잡으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하던데."


이중섭이 강한석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예비역 소령이라는데, 특공대 출신이고."


강한석은 다시 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찬형이 어젯밤 보고를 한 것이다.

강한석은 사태의 심각성에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만일 자신과 이중섭의 길고 긴 관계가 없었더라면 이것은 끔젝한 결과가 될 것이었다.


"각하, 저회들도 기무사의 협조를 받아 이철우의 교우 관계와 행동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다가는 자칫 ‥‥‥‥


강한석이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그래, 자칫, 뭔가?"


이중섭이 부드러운 얼굴이 되어 물었다.


"계속해 보게."


"현 정권에 대한 저항 세력, 그것이 조직 폭력배가 아닌 군 출신의
사람을 중심으로, 그런 전제 아래서 수사를 진행시킬 수는 없습니다. "


"그렇게 되면 언론이 미친 듯 날뛸 것이고 민심은 민심대로 흥흥해집니다.

또한 저항 세력이 다시 깊숙히 숨거나 결속하게 할 기회를 줍니다. "


 

"저는 그래서 이철우의 보고를 내무부 선에서 잘랐던 것입니다.
수사는 철저하게 시키고 찾으면 기필코 배경을 캐어 보겠습니다.

지만 각하에게까지 보고 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


"장관하고 안기부장하고 틀린 점이 있기는 있군."


흔잣소리처럼 이중섭이 말하며 머리를 돌렸다.

그는 창 밖의 인왕산을 바라보았다.


"다른 방법도 있네, 강 장관."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로 이중섭이 입을 열었다.


"상대가 있으니까 싸우는 것 아닌가?

아예 싸울 상대들을 내쫓는 거야,

그쪽 세상에서. 그러면 일이 일어나지도 않Tf지,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각하. 저희들은 어느 쪽에도 법의 적용에 경중을 두지는 않습니다.

다만 김원국의 조직은 밤세계를 많이 정화시킨 공로가 있숩니다. "


"그건 알고 있어. 김원국이는‥‥‥‥


이중섭이 머리를 돌리며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지금 인도네시아의 섬에 있다는데, 그 사람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구만."


응접실은 30평쯤 되는 직사각형의 방으로 햇볕이 잘 들어오는 남향이었다.

대리석 바닥 위에 양탄자를 깔았고 중앙에는 타원형의 두꺼운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남쪽의 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오후의 햇볕을 받아 물결 끝이 반짝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였다.바다가에 지어진 집이어서 창문에서 몇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위 위에 갈매기 서너 마리가

앉아 날개깃을 부리로 쪼고 있었다.

원탁의 의자에 앉아 있던 김칠성이 강만철을 바라보았다.


"형님, 제 처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


머리를 든 강만철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는 이 rl식아, 잠자코 있어 결정은 형님이 내리실테니까 "


"글쎄, 나는 말이오‥‥‥‥

 

상체를 세운 김칠성이 상기된 얼굴로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김원국이 들어섰다.

스웨터에 바지 차림으로 그들에게 다가온 김원국은 의자에 앉았다.

햇볕에 그으른 피부가 반들거리며 윤이 났다.


"이철우의 가족, 어디에 두었지?"


김원국이 강만철에게 묻자 김칠성이 헛기침을 했다.


"형닝, 제가 양수리의 아는 집에 맡겨 두었습니다. "


머리를 』1덕인 김원국이 김칠성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제수씨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겠다. "


"아넙니다, 형님, "


"딸애는 처가에 맡겨 두었다면서?"


"01."


"두 살이라면 엄마를 왜 찾을텐데."


"형님 ."


강만철이 김원국을 향해 머리를 들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저쪽 놈들한테 인질을 교환하자고 연락을 할까 합니다. "


"놈들하고 연락은 되나?"


"안됩니다. 요즘은 전혀 연락이 없어요."


머리를 끄덕인 김원국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내가 연락을 해놓았다.

대한일보의 내일 아침 조간 신문에 기사가 나갈 거야. 이철우가 보게 될 거다. "


"형님, 어떻게 하시려고?"


김칠성을 힐끗 바라본 강만철이 물었다.


"어떻게 하긴, 제수씨와 이철우의 가족을 바꾸는 것이지.

아마 너희들한테 연락이 갈테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라."


· "신문에는 어떻게 내실 생각이십니까?

너희 가족은 우리가 데리고 있다 하고 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강만철의 말에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그래서 지난번 여기자한테 방법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맡아서 해주겠다고 했다. "


"그 여자를 믿을 수가 있을까요?"


"믿는다. 내가 힘이 있는 한."


자르듯 말을 맺은 김원국이 입을 다물고 한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바깥의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목을 울리며 끼륵댔다.


"내가 어제 안기부장을 만났다. "


문득 김원국이 입을 열자 그들은 일제히 몸을 굳혔다.


"안기부장을 말입니까?"


강만철이 확인하듯 묻자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못 만날 이유도 없지. 내가 범법자도 아니고."


"형님 혼자서요?"


"그래 , 흔자였다. 그쪽도 흔자였고."


"이철우는 특공대 출신이라고 했는데 실은 특공대 산하의 교육대장도 5년 가깝게 했어.

최한성이도 거기에서 만났을 것이다. "


강만철과 김칠성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김원국은 안기부장인 이찬형에게서 정보를 얻어 온 것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철우는 이무섭 대령의 심복이었다.

이무섭은 작년 초에 별을 못 달고 예편이 되었지.

사조직에 관련이 되었기 때문인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어.

모두들 아까워했다고 한다. "


"이철우는 이무섭이 예편당하자 좌절감에 빠졌다는 거야.

그리고는 한 달쯤 후에 자진 예편을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도 군에서 배겨나기 힘들었을 거라는군 "


"형님, 그렇다면."


강만철이 탁자 위로 상체를 기울이자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 부장의 추측은 이철우의 배후에 이무섭이 있고또 그배후에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군의 조직적인 힘을 바탕으로 밤세계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물론 예비역이겠지만."


"물론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이 있어.

이철우나 이무섭의 재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무섭은 집 한 채밖에 없는 자야."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김칠성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추측이라 하더라도 잡아서 족쳐 봅시다, 형님."


김원국이 머리를 저었다.


"그자도 사라졌다. "


"사라』요?"


"집에는 처자식만 있고 작년 여름부터 행방을 감추었어. 가끔씩 전화만 하고."


"이 부장은 이철우의 측근, 이무섭의 인간 관계, 예비역 직업 군인들의 명단을 뽑고 있는데

너무 방대하다는 거야.

 대한민국 남자 중 예비역 아닌 자가 없고, 특공대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특수 부대는

두 교육대를 거쳐 갔기 때문에."


"도대체 그놈들이 우리에게 덤벼서 어쩌자는 겁니까?

우리가 그놈들한테 무슨 원수진 일이라도 있습니까?"


김칠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묻자 김원국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선 우리가 호락호락하게 보일 것이다.

밤의 사회만큼 힘에 의해서 좌우되는 곳이 없으니까.

놈들의 적성에도 맞을 것이고."


"개새끼들, 그래서 총을 들고 대들었군요."


"우선 밤의 세계를 장악하게 되면 또 다른 욕심을 부릴지도 모르지.

이 부장과 혜어지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김원국이 손바닥으로 햇볕에 탄 볼을 쓸었다.


"난 밤의 사회를 장악하고 나서 업체들을 모두 양성화시켰고 동생들을 납세자로 만들었다.

낮의 세계에 투항한 것이랄까,

응화된 것이지.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


김원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낮세계에 법이 있듯이 밤의 조직에도 법이 있지.

오히려 더 강하고 결집력이 있는 법이다.

밤의 세계가 그런 조직에게 장악이 된다면 그때에는 낮히 밤에게 홉수될지도 모른다. "


"그것,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김칠성이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한쪽으로 눕혔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낮에는 경찰도 있고 군대도 있는데."


그러다가 자신의 말에 놀란 듯 김칠성은 입을 다물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
"우선 하나씩 처리해야 한다.

우리편이 누구인가를 확인해내고 놈들의 끄나풀이 누구인가도 가려내야 돼."


김원국의 말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조직 내에도 놈들의 끄나풀이 있는지도 모른다. 조심하도록."


강만철과 김칠성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김원국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들은 어느 틈엔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비포장 도로를 승용차는 덜컹거리며 달려나갔다.

길에는 인적도 없는 데다가 오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길가에는 녹지 않은 눈더미가 누렇게 먼지에 덮여 있었고 마른 풀잎은 바람에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승용차가 산의 줄기를 따라 우측으로 꼬부라져 들어가자

도로의 앞쪽에 이층의 회색 시멘트 건물이 보였다.

대문의 위쪽으로 타원형의 양철 간판이 걸려 있고 검정색 페인트로

'용인정신교육원'이라고 씌어 있다.

승용차가 정문 앞으로 다가가자 대문이 안쪽으로 활짝 열렸다.

사내가 안쪽에서 문을 연 것이다.

현관 앞에서 승용차가 멈추자 이철우는 차에서 내렸다.

서너 명의 부하들이 그에게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머리를 끄덕여 보인 이철우는 건물의 안으로 들어섰다.

시멘트 건물이어서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으나 복도를 오가는

사내들의 모습은 활기에 차 있었다.

본래가 정신박약자나 알콜중독자들을 수용하던 사설 수용소였다.

자식에게서 버림받은 노인이나 노망기가 있는 노인들을 돈을 받고

수용해 주기도 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철우의 행둥대가 사용하고 있다.
이철우는 복도를 걸어 우측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행동대의 감독관격인 안정태가 따라 들어왔다.

예비역 대위 출신으로 격투기의 달인이었다.

그의 실전용 육박전 교습은 미군의 특수 부대에서도 혼련을 받고 갈 만큼 유명했던 것이다.
"대장님, 오늘 아침에 열다섯 명을 보냈습니다.

이제까지 보낸 것이 모두 서른다섯 명이 됩니다. "


안정태가 소파 옆에 반듯이 서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초리가 매섭고 얄팍한 입술이 잔인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철우는 머리를 」1덕이며 소파에 앉았다.

방은 20평쯤 되는 정사각형의 구조였다.

이철우가 이곳에 올 때에만 사용하는 곳이어서

파와 책상, 벽 쪽에 침대 하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철우가 손으로 앞쪽을 가리키자 안정태는 자리에 앉았다.


"서른다섯 명을 그쪽에 보냈으니 현재 인원은 몇 명인가?"


"현재 인원은 121명입니다.

부상 셋이 포함되었고 포로 세 명은 제외시켰습니다. "

 

안정태는 막힘없이 군대식으로 대답했다.


"최한성의 보증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들 알고 있TR지?"


"알고 있습니다. 반장급들이 이야기를 퍼뜨렸으니까요."


"불행한 일이야,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을 죽인다는 건. 비져한 놈0171. "


"죄송합니다. 저는 놈이 그런 버룻이 있는지도 모르고‥‥‥‥


"한번 일어난 일이야.

그리고 사람마다 약점은 있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방심하면 안되는 거였어."


"직원들한테 수당은 나눠 주었나?"


"네, 대장님 ."


"대장이 뭐야, 이 사람아."


"죄송합니다, 형님, "


이철우가 입술 끝으로 웃자 안정태가 따라 웃었다.
"세 명이 잡힌 것 말인데, 다행히 경찰이 김칠성이한테서 빼내 오기는 했지만

놈들한테 잡혀 있던 시간이 여섯 시간이 넘어."


"대, 아니 형님은 그애들이 불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그럴 리가 없습니다. "


안정태가 머리를 저었다.


"차라리 자신이 죽고 말지 제 어머니나 처, 또는 자식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애들은 최한성의 마누라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잠자코 안정태를 바라보던 이철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 여자는 별일없지?"


"네, 형님."


"요즘도 일하면서 노래를 불러?"


안정태가 힐끗 1를 바라보았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


"그 여자 지금 어디 있어?"


"주방이나 세탁장에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철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그쪽으로 가 볼까?"


이철우와 안정태는 방을 나와 복도 끝의 문을 열고 됫마당으로 나왔다.
됫마당에는 지난주에 내린 눈이 아직도 쌓여 있었는데

마당 건너 편에 시멘트 단층 건물이 보였다.

주방과 식당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그들이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식당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던 부하 두 명이 몸을 굳혔다.
주위를 둘러보던 안정태가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옳겼다.

주방에서 그룻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자의 말소리와 함께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이철우는 주방으로 들어서려는 안정태의 어깨에 손을 얹어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식기가 나오는 구멍으로 머리를 숙이고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세라가 그릇을 닦으면서 부하 두 명과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하들의 얼굴이 보였는데 즐거운 듯 얼굴에 웃음을 띄고 있다.
이윽고 한세라가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진바지에 헐렁한 스웨터 차림이었고 허리에는 커다란 행주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긴 머리를 뒤로 감아 올렸으므로 긴 목이 드러났다.

그녀가 다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활짝 웃었다.

횐 이가 드러난 밝은 웃음이었다.
이철우가 허리를 펴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안정태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잠자코 몸을 돌렸다.
응접실의 소파에 앉은 이재영은 재킷의 깃을 곧게 세우고는

아래 쪽을 밑으로 잡아당겨 가슴의 선을 폈다.

스커트를 무릎 쪽으로 당겨 보았으나 원래가 짧은 옷이어서 위로 다시 밀려 올라왔다.

그녀는 허리를 세우고는 들고 온 가죽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응접실은 장식이 별로 없어서 져게 보였다.

아침부터 서둘러 왔기 때문에 시간은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기척이 들렸으므로 그녀는 머리를 들었다.

김원국이 들어서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이쪽에서는 얼굴에 웃음을 띄워 보였으나

그는 보일듯 말듯 머리만 끄덕이고는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잠자코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무릎을 붙인 이재영은 가방을 열고 광고지의 견본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짧은 치마를 입고 온 것을 후회했다.


"광고 견본을 가져왔어요.

저쪽에서 알기만 하면 되니까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 "


이재영이 손가락으로 광고 견본을 가리켰다.

살색의 매니큐어를 칠한 보기 좋은 손톱이었다.


"구석에 박미옥 여사와 한호, 병호의 사진만 실으면 이철우씨는 금방 알아볼 거예요.

구석에 전화 번호 하나만 적어 놓고. 5단의 통 광고니까요."

김원국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이재영이 머리를 들었다.

검은 눈이 창에서 흘러 들어온 빛을 받아 반짝였다.

긴 머리 몇 가닥이 이마 위로 흘러내린 것을 그녀는 손을 들어 옆쪽으로 쓸어 넘겼다.


"광고 내용은 음주 운전을 하지 말자는 공익 광고니까 의심받지는 않을 거예요.

광고주는 손해보험협회로 하고. 그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하겠지만."


"수고했군."


그러자 이재영이 이를 드러내며 운었다.


"광고비는 지멸에 따라 틀리지만 1면 기준으로 하면 1,500만 원이에요.

현금으로 지불하면 10퍼센트 할인이 됩니다. "


김원국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수표 한 장을 매내었다.


"여기 2천만 원이 있어."


이재영이 잠자코 수표를 받아 핸드백에 넣었다.


"지금 거스름돈이 없으니까 다음에 영수증하고 같이 드리겠어 _5.. "


머리를 끄덕인 김원국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쪽 데스크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어떻게 생각하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이재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입견이나 또는 정부나 기관의 어떤 요청이라든지,

그런 것이 있을 것 아닌가?"


"저는 그런 것 잘 몰라요."


이재영이 머리를 저었다.


"기사를 쓰면 데스크가 결정을 하니까요,실을 것인가 아닌가를."


"어떤 방향으로, 또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서 철재하라고 할 것 아닌가?"


입을 꾹 다문 이재영이 그를 건너다보았다.

눈동자는 정지된 것같이 보였으나 찬찬히 들여다보자 조그맣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이번 조직은 언론기관에도 줄이 닿는 것 같아서 그래.

언론도 조종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김원국의 말에 그녀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럼 우리 부장도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그들이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지간한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에요."


"대한일보는 처음에는 사건들을 대서특필하더군.

세세한 부분까지도 말이야. 물론 이재영씨의 역할이 컸었지만."


"전에도 말씀 드렸지요. 사건 직후에 제보가 들어온다고.

그것을 싣지 않을 신문사는 얼어요.

그리고 국제신문도 우리와 비슷하게 제보를 받고 있어요."


김원국은 머리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맑게 개인 하늘이었다.
햇살은 비스듬히 물결 끝을 비추어 바다는 유리 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그렇다면 내가 특종감을 하나 주지."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재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세우고는 조그맣게 침을 삼켰다.

종 기사 때문은 아니다.

이제는 그따위 것에 놀라지 않게 단련되어 있었다.

김원국은 선뜻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것이다.

명 높은 사내여서 처음 만났을 때 그가보통 사람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이런 시선을 보면 다시 선뜻해지는 것이다.


"이철우의 주변이 있어.그리고 배경이 있어.그것을 기사로 실어 봐. "


김원국의 시선은 그녀를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놈들은 조직력을 갖춘 훌릉한 집단이지.

예비역 군인이 곧 밤의 군대가 될 가능성이 있단 말이야."


김원국은 소파의 한쪽에 놓인 노란색 서류 봉투를 집어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서류 안에 내가 조사한 것들이 있어. 대한일보에서 특종을 내보 77'. "


서류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꺼내어 읽어 보던 이재영이 머리를 들었다.

눈을 치켜뜬 얼굴에 입술은 반쯤 벌어져 있었다.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자 김원국이 빙그레 웃었다.


"자, 당신이 나와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그쪽 데스크가 어떤 행동으로 나갈 것인가 두고 보겠어."


"이건 추측 기사예요.

그리고 사회에 파문을‥‥‥ 우리는 도저히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부장한테 가져다 보이도록 해 사서함에 던져진 것이라고 하고."


김원국의 시선에 부딪친 이재영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돌렸다.

가슴이 울렁거렸으나 입에서 더이상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생각은 이제까지 언론이 놈들에게 놀아났거나 한통속이 되어 있었어.

사회에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김원국의 조직을 다시 밤의 세계로 끌어들였어.

우리를 피해자가 아니라 놈들과 동등한 밤의 무리로 만들어 버렸단 말이야."


김원국의 말소리가 방을 울렸다.


"자, 이제는 누군가 우리 일을 해주어야 할 때야, 이재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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