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8. 인질 교환 (1)

오늘의 쉼터 2014. 12. 5. 16:56

8. 인질 교환 (1) 

 

 코트의 깃을 세운 박동호는 번화한 강남역 사거리를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제과점과 커피점이 즐비한 거리였고 대형 유리창 안에는 젊은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인도는 사람들로 메워져서 걸어가기에도 불편할 정도였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일단의 청년들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박동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왼쪽의 샛길로 들어섰다.

곧장 가면 나이트 클럽과 디스코 클럽, 살롱이 즐비한 거리가 나온다.

그러나 샛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인적이 뚝 끊겼다.

샛길의 가에 두어 군데의 포장마차가 있었으나 그것에도 주인과 한두 명의 손님만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다.

길가의 벽 쪽에 서너 명의 전경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저쪽에도 한무리의 전경이 있다.
그들이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느꼈으나 박동호는 내쳐 걸었다.

정초부터 유흥업체를 중심으로 연달아 터지는 폭력 사건이 손님들의 발을 끊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이 지난주에 있었던 구찌 클럽의 습격 사건이다.

언론은 폭력조직간의 칼부림을 생생하게 보도했고 경찰은 그것이 김원국의 조직과

그에 반발한 새로운 조직과의 싸움이라고 공식 발표를 했다.
샛길을 나오자 제법 큰 도로가 나왔고 그곳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박동호는 시계를 내려다보면서 음식점의 거리를 걸었다.

차도고 인도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어서 차들은 천천히 사람을 헤쳐 나가고 있다.

그가 마악 일식집 앞을 지나는데 옆쪽으로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짙은 색상의 유리를 붙여서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가 안쪽으로 비켜 가려는데 유리창이 열리더니 이무섭의 얼굴이드러났다.
"타세요."
박동호는 재빠르게 승용차의 문을 열고 안에 올라탔다.

승용차는 경적을 울리면서 사람들을 헤치더니 곧장 우회전하고는 큰길로 들어 섰다.
"이렇게 만나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전화는 도청이 신경 쓰여서."
이무섭이 박동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앞으로는 이런 식의 간첩 접선하는 방식은 쓰지 않겠습니다.
박동호가 잠자코 머리를 』1덕였다.
"그래, 무슨 일이오?"
"이제 준비는 되었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무르익었고,

우리에게 보호세를 낸 업체는 우리가 통보한 슷a)의 비율로 보면 71퍼센트가 됩니다

그중 15퍼센트가 조웅남, 강만철, 김칠성의 직영 업체니까
놈들의 업체를 빼면 10퍼센트가 보호세를 안 낸 셈이오."
이무섭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호세로 걷힌 돈이 35억이 됩니다. "
박동호의 얼굴을 들여다본 이무섭이 싱긋 웃었다
"놀라셨습니까? 이것은 약과입니다. 본격적으로 영업이 되고, 보
호세를 받는다면 현재의 업체들 기준으로 연간 400억 정도가 되지요.

그것도 이익금의 5퍼센트 정도만 받는 경우에요."
"김원국이는 그 이상을 챙겼을 겁니다. 그것도 몇 년치이나.

그놈의 업체들은 모두 그런 돈으로 소유하게 된 것이지요."
"날 만나자고 한 이유나 말해 줘요."
이무섭이 웃는 얼굴로 머리를 11덕였다.
"돈 문제로 신경을 거슬리게 해드렸습니다.

강만철이와 김칠성이를 이번에 체포해 주셨으면 해서요."
주름진 얼굴로 이무섭을 바라본 채 박동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동기는 만들어 드립니다. 아마 그것으로 치안감께서는 명예를 얻으실 수가 있을 겁니다. "
박동호의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웃음이 떠을랐다.
"금방 내 명예라고 그랬소? 당신 날 비웃고 있구만 그래."
처음부터 여유가 넘쳤던 이무섭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해졌다.
"아니, 치안감님. 무슨 그런 말씀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을 만큼 내가 바보같이 보이오?

나는 지금 직무 유기나 직권 남용, 사기, 횡령 그 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나는 지금 반역을 하고 있어."
박동호의 말소리가 차 안을 올렸다.

앞자리에 타고 있던 사내가 힐끗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당신들은 내 불만을 알고 나에게 접근했고 난 받아들였어.

조웅남이나 강만철 조직을 제거하고 당신들이 자리잡70다는 것을 말이오.

왜냐하면 그들이나 당신들이나 같은 부류로 보았기 때문인데, "
말을 멈춘 박동호가 이무섭을 쏘아보았다.
"나는 이미 발을 디딘 몸, 이건 알고 있어야겠소.도대체 당신의 배후는 누굽니까?"
이무섭이 그의 시선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내가 먼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반역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시는 이유는 뭡니까?"
"당신들의 언론 공작, 조직을 분열시키는 정보 공작, 그리고 잔인성,

또 한가지는 나 같은 불만세력을 이용할 줄 아는 작전 능력이오."
이무섭이 머리를 끄덕였다.
"과연 명성이 헛말이 아닙니다. 감탄했습니다. "
"나 잘은 현직 공무원이 몇 명이나 있숨니까? 물론 현직 군인도 있을 것이고."
"제가 말씀 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실텐데요.

위로보다도 오히려 더 불안해지실 겁니다. 만일 있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이무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동호가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이 대답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 싫었을 뿐이오.

그것이 선이건 악이건간에."
"아실 때가 옵니다. "
"그때가 시기에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난 언제나 시기를 놓쳤소.속된 말로 기회라는 것을."
승용차는 성남의 한적한 길을 속력을 내어 달려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승용차의 라이트가 곧장 뻗어 나갔는데 길가의 시커먼 가로수들이

불빛을 받아 검은 벽처럼 보였다.

박동호가 생각난 듯 이무섭을 바라보았다.
"자, 들어 봅시다, 그 동기라는 것을. 강만철이나 김칠성이를 잡을 동기 말이오."
김칠성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무실에는 지금 누가 있어?"
"오덕호가 있습니다, 형님."
후줄근한 코트의 단추를 잠그면서 백동혁이 그를 바라보았다.
"녹음기도 준비해 놓았으니까, 연락만 오면‥‥‥‥
"그게 아녀, 임마."
김칠성이 눈을 부률떴다.
"네가 올라가 앉아 있어. 사우나탕에 너까지 따라을 건 없단 굴이다. "
"fl, 형님."
김칠성이 몸을 돌리자 백동혁은 뒤에 서 있던 이강일에게 눈짓을 했다.

이강일이 부하들을 이끌고 김칠성의 뒤를 따르자 백동혁은 층계를 걸어 올랐다.

오늘 아침의 대한일보에 조금 이상한 광고가 난 것을 아는 사람은 회사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백동혁의 부하인 오덕호는 전화통을 끌어안고 앉아 있어야 하는
책임을 맡고 기다렸으나 오후 3시가 되도록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
다. 김원국의 지시로 이철우의 가족과 한세라가 교환되어야 하는 것
이다.
층계를 올라 3충의 복도로 들어서는데 앞쪽에서 김선주가 걸어오
는 것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백동혁은 머리를 돌렸다.
마침 머리를 돌린 쪽에 화장실이 있었으므로 그는 몸까지 돌려 화장
실로 들어섰다. 화장실에서 손을 정성껏 씻고 휴지로 깨끗이 닦고 나
오던 백동혈은 갑자기 턱을 치켜들었다.
김선주가 문 앞에 서 있먼다.
"저, 이야기 좀 해요."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조용한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난 시간이 없어서‥‥‥‥
"그럼 여기서 할까요?"
눈꺼풀을 쳐들며 그녀를 노려보던 백동혁이 몸을돌렸다. 그들은
층계 옆의 회의실로 쓰이는 빈방으로 들어섰다. 나무 탁자와 대여섯
개의 의자가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는 방이었다.
백동혁이 잠자코 탁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그녀를 바라보
았다. 김선주도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이쪽을 노려볼 뿐 선뜻 입을
몌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며?"
참다 못한 백동혁이 물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해."
"나아 참, 기가 막혀서."
"뭐ㄹf?"
"기가 막히다고 했어요, 왜?"
"이런 젠장 "
탁자에서 엉덩이를 텐 백동혁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허리춤에는 목검을 찌르고 있었는데 바바리로 가리기는 했다.

당장에 이마 위로 목검을 날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기가 막히건 구멍이 막히건 그건 네 사정이고, 난 바뻐."
"잠간. "
마악 몸을 돌리려던 백동혁에게 김선주가 소리쳤다.
"나하고 고태석씨를 못 만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죠?"
백동혁이 눈을 갭벅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다고 내가 당신을 좋아할 것 같아요?주제도 모르고서."
"이 여자가 미쳤군."
"미친 건 당신이야, 이 개백정. "
눈을 치켜뜬 백동혁의 손이 저절로 허리춤의 목검에 닿았다.

그러나 빼들 수는 없는 노룻이다.

그리고 왜 그러냐고 물을 만큼 정신 상태가 안정되어 있지도 않다.
"내가 너를 좋아하다니, 이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이야기야?

차라리 미아리에 가서 여자를 사고 말지 "
"그럼 왜 태석씨를 만나려면 부하들을 시켜서 방해하는 거야?"
"내가?"
백동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방해를 해? 어떻게?"
인질 교환 255
"며칠 전에는 왜 태석씨 집에 못 들어가게 했어?"
"내가?"
"당신 부하가."
"태석씨한테 이야기하니짜 당신한테 물어 보랬어. 그건 당신이 한짓이라는 것이지 뭐야?"
"이런 개자식이‥‥‥‥
고태석은 말하기 거북했으므로 그렬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김선주가 오해할 만은 했다.

형님들한테서 여자 때문에 사이가 나쁘냐는 추궁을 받았는데 그것은 고태석으로서도

치명적이 될 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여자 때문에 신세를 망칠 수는 없다.

만일 김선주와의 관계를 지속한다면 형님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너 같은 기집애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백동혁이 늘어진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하고 싸운 기억밖에 없는데, 애들 시켜서 널 철저히 경호하라고 한적밖에 없는데,

도대체 내가 왜."
그러다가 백동혁은 눈을 부릅떴다.
"한번만 이 따위로 날 잡았다가는 개잡듯이 때려 쥑일테니까 알아
서 해, 이년아.나도 더이상은 못 참는다. "
이제 김주는 눈을 껄벅이며 서 있었으므로 백동혁은 서둘러 방
을 나왔다.
"이걸 어디서 얻었다구?"
서류를 움켜쥔 안청준이 이재영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주름진 얼굴로 두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있었다
"제 사서함에 들어 있었어요.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
"이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이?이건 엄청난 폭로성 기사야.아니,
기사라고 내가 말했나, 지금? 기사가 될 수 없어. 이것은 추측이야. 가정이라구."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청준이 손에 쥔 서류를 흔들면서 책상 주위를 돌았다.
"이철우가 군 출실이라고 해서 그의 군 시절의 상관들까지 연루시 킨다는 것도 그렇고,

우선 이철우가 주모자라는 확중도 없어.

최아무 갠가 하는 놈은 이철우를 말한 적도 없다고 한단 말이야."
"이무섭씨는 지금 6개월째 행방 불명이 되어 있어요.

이 기사가 나가면 나와서 해명하라고 하지요.명예 훼손으로 고발하라고 하지요. "
"뭐라고? 이 기자 미쳤구만. 누굴 고발한단 말이야?당신을?"
"그 사람들의 조직, 자금력, 그리고 철저한 정보 운용은 밤거리의 건달들이 아녜요.

가능성이 많숩니다, 부장림."
"가능성을 가지고 신문 보도를 해? 이 기자 이제까지 헛배웠구만."
안청준이 책상에 두 팔을 짚고는 이재영을 쏘아보았다.
"일단 참고로 하지. 이철우, 이무섭, 그리고 그 주변으로 예상되는 예비역 장성들의 명단,

이것은 내가 맡아 두TH어. 아무래도 이것은 강만철 조직에서 보냈겠군. 그렇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부장님. 하지만 이제까지 우리 기사는 김원국씨나 강만철씨 등의

조직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당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김원국의 조직은 실재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사건도 그들 중심으로 일어났고."
"중심이 아니죠. 피해자죠, 그들은."
"우리가 피해자를 파헤치기만 했단 말인가?"
"우리는 순화된 밤의 조직을 새삼스럽게 부각시켰다고 봅니다.

사건만 확대 보도해서 사회 분위기를 흔란시켰고 결국은 부장님 말씀 대로 실재하고 있는

김원국의 조직이 표적이 되게만 했어요."
안청준이 찌푸린 얼굴로 이재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팔짱을 끼고 선 채 이재영도 그의 시선을 맞받고 있다.
이윽고 안청준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뭘 몰라."
"알 만큼은 압니다. "
"나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 중의 하나야. 그것을 명심하라구."
"그 정책을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제가 맞출 것 아닙니까?"
"당신은 쓰라는 것만 쓰면 돼."
안청준이 몸을 돌려 책상으로 돌아갔다.
"언론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어.

그렇다고 정권의 홍보지 노룻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겠다는 명분으로 천방지축 떠들어도 안돼 ."
의자에 앉은 안청준이 이재영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은 말해 주지. 밤의 조직은 절대로 선이 아니다.

 이것을 미화시켜서는 안돼. 김원국이건, 또는 어떤 테러 조직이건간에,

그렇다고 추측 기사로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켜서도 안돼. 이상이야."
이재영은 팔짱을 풀고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저 , 돌아가도 되죠?"
"좋아, 이 서류는 내가 보관하고 있을테니까."
"괜찮아요,복사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요."
몸을 돌린 이재영은 부장의 책상에서 물러났다. 자리로 돌아가자
책상 위에 한수영이 걸터앉아 있었다.
"어딜 갔다 오는 거야? 이거한테?"
한수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였다.

그는 지난번의 사건 이후로 자주 이재영을 찾아와서 기웃거리다가 간다.
"왜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책상에 앉아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재영이 이윽고 머리를 저었다.
"한 기자님도 나나 마찬가지예요. 우린 기사나 쓰고 사진이나 찍어 가면 돼요.

보도가 되는 건 데스크에서 결정할 일이고."
"날 열받게 해서 이용할 일 있어?"
"사서함으로 익명의 사람이 보내 온 자료를 발았어요.

이번 조직간의 테러에 관한 자료인데,이철우의 배경에는막강한조직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전직 군인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한수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그는눈을꿈벅이며 그녀를 내려자보았다.
"그 자료, 어디 있어?"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부장님이 가져갔어요. 물론 사본은 내가 가지고 있고."
"당신 폭탄을 가지고 있구만."
이맛살을 찌푸린 한수영이 책상에서 엉덩이를 내렸다.
"군인과 관계된 것이라고 했지? 당신 위험해."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재영은 그가 자료의 내용을 물어 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건에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전쟁터를 돌아다닌 한수영은 위험한 일에 민감했다
"이철우가 특공대 출신이라는 기사가 나가고 나서 부장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

내가 듣기로는 기관에서 여러 차례 연락이 왔어. 불려 가기도 했고."
"요즘 세상에 ."
"요즘 세상 옛날 세상 하지 말라구.

아직도 옛날 사람들이 높은 자리는 거의 차지하고 있으니까."
"부장은 지난 정권 때 청와대 공보관으로 내정이 되었다가

결국은 못 가게 되었었어,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물먹은 것이지.

이건 몇 사람만 알고 있는 거야."
"도대체 그 자료, 당신 같은 신참에게 보낸 이유를 알아?

그놈들이 당신을 선택한 이유를 말이야."
"내가 이번 사건 기사를 썼지 않아요? 김칠성씨 부인 납치 사건이라든가."
"왜 부장한테 직접 보내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았어?

놈들은 부장을 못 믿기 때문이야.

우리들의 기사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야."
"누가 말예요?"
마른침을 삼키면서 이재영이 묻자

한수영이 어깨를 한차례 치켜을렸다.
"누군 누구야? 강만철 일당이지. 그놈들이 보낸 거야. 당신이 만만하게 보인 것이지."
"만만하게 본 것은 그쪽뿐만이 아녜요.

오히려 이쪽은 날 철저히 이용했어요. 호텔로 보내고, 또."
"하긴 테러한 자식들도 이재영씨를 이용했구만.

어쨌든 당신은 사건의 한복판에 있구만 그래 .

태풍의 핵이야. 당신 주변으로 사건들이 벌어지는군."
아랫입술을 깨문 이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거칠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 백동혁은 부하가 들고 있는 전화기를 빼앗듯이 쥐었다.
"여보세요."
"당신은 누구야?"
저쪽에서 짜증난 듯 물었다.
"난 백동혁이라고."
"아, 알았어."
저쪽은 백동혁의 다음 말을 잘랐다.
"백동혁이라면 됐어. 그럼 간단히 말하겠다. 교환을 하자.

우린 한세라를 아파트로 데려가겠다.

너희들은 박미옥씨와 어머니, 한호, 병호를 장안동에 있는 크리스틴 호텔로 데려와라.

시간은 오늘 저녁 8시다. "
사내가 빠른 말투로 말했다.

그가 숨을 돌리는 것을 기다려 백동혁이 물었다.
"야야,천천히 말해.너희들이 데려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한단 말이냐?"
"멍청한 놈."
사내가 커다랗게 말했으므로 백동혁은 얼굴이 상기되었다.

수화기를 힘주어 귀에 붙인 백동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강일과 서너 명의 부하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한세라를 그 자리에서 죽일 만한 인원이 간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일 것 아닌가?

8시 정각에 호텔 앞과 아파트 앞에 도착하면 서로 확인이 될 것이고 그때 물러나면 된다.

서툰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
"좋아.크리스틴 호텔, 8시라고 했겠다.

8시 정각에 아파트 앞에 형수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알겠지?"
"너희나 약속을 지켜, 이 새끼야."
"이런 개자식이 ."
"개백정 놈이라 개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군."
전화가 끊겼으므로 백동혁은 벌개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강일이 한걸음 다가섰다.
"형님."
"뭐 ?"
백동혁이 사납게 눈꺼풀을 쳐들자 이강일이 입맛을 다셨다.
"나 형님한테 보고하고 오겠다. "
백동혁이 몸을 돌리다가 멈추어 섰다.
"이건 너희들만 알고 있어 입에다 테이프 붙이란 말이다. 알았어?"
서둘러 방을 나간 백동혁은 복도 끝쪽에 있는 김칠성의 방을 향해 걸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복도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왜 많았고 그들을스쳐 지나는데 옆쪽의 방문이 열리더니

김선주가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서류철을 들고 있는 것이 결재를 받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으나 제각기 머리들을 돌렸고 백동혁은 김칠성의 방문을 열었다.
김칠성은 이쪽으로 등을 보인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는 쏘는 듯한 시선으로 백동혁을 보았다.
"형님,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저녁 8시에 교환을 하잡니다. "
책상 앞에 선 백동혁이 숨가쁘게 말했다.
"8시에 형수님을 아파트로 모시고 가3a답니다.

그 시간에 이철우의 가족들을 장안동의 크리스틴 호텔로 데려다 놓으랍니다. "
"BAIf1?"
목이 쉰 듯한 낮은 목소리로 김칠성이 묻자 백동혁이 활기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 형님. 저희들은 그 가족들을 크리스틴 호텔 앞에 데리고 있다가 형수님이

아파트 앞에 내리셨다는 연락을 받으면 풀어 주면 됩니다. "
"그쪽도 그러겠지."
"그렇지요, 형님 ."
"놈들이 쓰잘 데 없는 짓을 한다면 그놈 처자식들을 개잡듯이 쳐죽이면 됩니다, 형님."
"이런 망할 자식이."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으나 백동혁은 내쳐 말했다.
"형님, 애들 몇 명에게 공기총을 사 주었습니다.

요즘 공기총은 성능이 좋아서 50미터 거리면 사람도 문제가 없습니다.

더구나 연발총이어서 ."
김칠성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턱을 들었다.
"공기총?"
"네, 형님. 놈들이 권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까?그래서 우리도
"이런 망할!"
김칠성이 눈을 치켜떴으나 백동혁은 내친 김이었다.
"총포 소지 허가까지 모두 받았숱니다.

그리고 놈들이 총을 쓸 때만 쓰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
"처박아 둬, 알았어? 가지고 다니지 말란 말이다. 알아들었어?"
김칠성이 손가락으로 백동혁을 겨누었다.
"너, 이 자식 . 괜한 일로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란 말이다.

그놈의 언론이 우리가 총을 가지고 다닌다면 어떻게 나오73어?"
"공기총인데요, 형님 ."
"공기총이건 가스총이건, 이 자식아!"
김칠성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처박아 두란 말이다! 알았어?"
"01,형님 "
백동혁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검도의 대련을 할 때 상대방의 기합 소리를

수없이 들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김칠성의 호통에 별로 겁을 먹지 쟈았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님."
머리를 숙여 보인 백동혁은 문을 열고 나서다가 다시 김선주와 마주쳤다.
김선주가 와락 머리를 돌리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는데

그제야 백동혁도 눈꺼풀을 반쯤 내리면서 입술을 비틀었다.

이년은 고태석을 만나지 못하게 되니까

발정을 풀지 못해 안달난 암캐처럼 지랄을 하는 것이다.

스쳐 지나는그녀에게서 향기가전해져 왔는데 그것이 백동혁에게는 암내처럼 느껴졌다.
빨래를 널던 한세라는주방 쪽의 문이 열리면서 김동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뒤에는 처음 보는 사내 한 명이 따르고 있다.
"아줌마, 빨래는 놓아 두시고 이 사람을 따라가 보세요,"
다가선 김동만이 그녀 손에서 빨래를 앗아 통에 넣었다.

그는 그녀를 감시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왜요? 이것 마저 널고 가면 안돼요?"
한세라가 김동만을 바라보며 묻자 뒤에 서 있던 사내가 한걸음 나섰다.
"오라면 오지 웬 잔소리가 많아?"
인질 교환 265
서른서넛은 될 성싶은 검게 탄 얼굴의 사내였다.

작은 눈에 콧날도 작았으나 턱과 입이 두툼해서 무지스러워 보이는 얼굴이다.

한세라가 고무 장갑을 벗으면서 김동만을 향해 웃었다.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자한테 막되게 구는 남자치고 쓸 만한 남자 없다고 했지요?"
"이줌마."
김동만이 난처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걸음 다가섰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가 봅니다. 어서‥‥‥‥
"너도 이 자식아, 뼈가 흐늘흐늘해졌단 말이다. 군기가 빠졌어."
낯선 사내가 김동만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차마 한세라한테는 어쩌지 못해 그에게 분풀이하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왜 지랄이야, 씨발놈이?"
김동만이 와락 턱을 내밀며 상대방을 쏘아보았다.
"씨발놈아, 내가 군기 빠진 것이 뭐냐? 뚝뚝거리는 것이 군기 잡힌 거냐?"
당장에 주먹이 오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만, 나 때문에 싸우겠어."
한세라가 행주치마를 벗으면서 소리쳤다.
"갈게요. 내가 따라가면 뤘지 뭘. 친구끼리 싸우시면 돼요?"
"넌 닥쳐!"
검은 얼굴의 사내가 소리치자 한세라의 얼굴도 굳어졌다.
"당신, 정말 병신 같아. 난 당신들 포로야, 인질이라구.

내 신분을 내가 잘 알고 있어. 소리 좀 지르지 마라, 이 병신아."
"무엇이?"
사내가 마악 주먹을 날릴 듯이 한걸음 다가섰다.

작은 눈이 번들거렸는데 마치 짐승의 눈빛이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한세라가 다시 말했다.
"그래,칠래?난 너희들이 전직 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너 같은 자식은 밤거리의 건달보다도 못해. 넌 쓰레기야."
그리고는 아예 턱을 내밀고는 눈을 반쯤 감는데 아무 소리가 없다.

그리고는 기척도 없었으므로 한세라는 턱을 내리고 눈을 떴다.
사내들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져 있었는데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까 자신의 뒤쪽이다.

한세라는 몸을 돌렸다.

짧게 깎은 머리에 다부진 인상의 사내가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그의 몸에서는 찬 냉기가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따라오시지요."
자석에 끌리듯 한세라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을 몌자

사내가 머리를 들고 사내들 쪽을 바라보았다.

번들거리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사내는 두어 번 눈을 갈박여 약하게 하고는 몸을 돌렸다.
긴 복도를 한세라는 사내의 뒤를 따라 타박이며 걸었다.

그녀는 사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름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이 집안의 대장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는 식당에도 오지 않았으므로 먼발치에서만 두어 번 보았을 뿐 그와는 말을 해본 적도 없다.

사내들은 그를 철저히 따르고 복종하고 있었다.

한세라는 그를 따라 복도 왼쪽의 방으로 들어섰다.
책상 한 개와 철제 의자 세 개가 석유 난로를 중심으로 놓여 있는 방이었다.

벽 쪽에는 젖혀진 커튼 사이로 잘 정돈된 침대가 보였다.
대장이 기거하는 방인 모양이었다.
"거기 앉아요."
의자에 앉으면서 이철우가 앞쪽의 의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과연 보스의 부인다우십니다. "
얼굴의 표정을 흐트리지 않은 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자에 앉은 한세라는 그를 바라덛 채 대답하지 않았다.

몇 년간 밀수로 가족들을 먹여 살린 그녀였다.

단련된 그녀의 육감이 모든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시켜 놓고 있었다.
"내 가족들을 당신 남편이 인질로 잡고 있어요.

처와 두 자식, 그리고 어머니까지 모두 네 명인데."
한세라가 퍼뜩 머리를 들었다.

억양 없는 목소리로 이철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에 교환하자고 했는데, 나에게 문제가 좀 있어서
"석 달 가깥게 되었지요?당신은 언제나 자은 표정이었지요.

저 바보 같은 놈들 중에는 당신을 연모하는 녀석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당신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슷자가 몇 명인지,

어떻게 훈련을 받고 무엇이 목적이라는 것까지 대충 알고 있다고 봅니다. H
이철우는 붉게 달아오른 석유 곤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들었다.
"당신을 돌려 보내고 내 가족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에는 우리 조직이 완전히 노출되어 버립니다. "
"제 약속 같은 것은 믿지도 않으시3a지요."
한세라의 말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
"저한테 바라는 것이 있으세요?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려고 부른 것은 아닐텐데요."
"난 당신을 진작에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내 가족이 흥정의 대상이 안되었을텐데 ."
"제 생각에는 저한테 하신 것하고 똑같이 제 남편이 했을 거예요.
그쪽도 흥정을 할 필요도 없이 ."
"남편을 단단히 믿고 계시는군요."
"믿어요. 그이를 생각하면 기운이 나요. 그이가 화를 낼 것을 상상하면 기뻐요."
"김칠성씨가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가족을 버리고 조직을 살렸을까요?

아니면 조직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가족을 살렸을까요?"
이철우를 찬찬히 바라보던 한세라가 이윽고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우리 남편은 둔해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 지금쯤 죽을 생각만 하고 있을 거예요.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펄지만."
"그것을 생각하면 행복해요. 그이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철우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입에 물었으나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한세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전 각오를 하고 있었어요. 잡혀 왔을 때부터요."
응접실에는 김원국과 강만철, 김칠성이 둘러앉아 있었으나

오늘은 의외의 사람이 한 명 마악 끼어 앉은 참이었다.

그것은 긴장으로 온 몸을 굳히고 있는 이재영이었다.

 아마 보스들의 회의에 조직원도 아닌 여자가 끼어 앉기는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었다.

강만철과 김칠성은 의외라는 듯 제각기 눈을 치켜떴으나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다.

강만철이 물끄러미 김원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치 이재영을 참석시킨 이유를

말해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김원국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이 기자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너희들도 함께 들어야 할 것 같아서."
강만철과 김칠성의 시선이 쏟아졌으므로 이재영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김원국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기자는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상대방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증인이 되어 줄 거야.

나는 그런 뜻으로 이 기자를 오늘 회의에 참석시켰다. "
이재영이 침을 삼키고는 탁자 위로 시선을 주었다.

얼굴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았으나 손을 을릴 수는 없다.
강만철이 헛기침을 하고는 상체를 세웠다.
"형님, 인질 교환시에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없다. 그저 제수씨를 받는 것으로 그친다. 미행하지도 말고 부딪치지도 말아라."
"형님 ."
김칠성이 입을 열었다.
"동혁이가 부하들에게 공기총을 사서 나눠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단쳐서 처박아 두라고 했습니다만 만약에 놈들이 다시 총기를 쓰면
저희들은‥‥‥‥
"총을 쓸 기회를 안 주면 된다. 백동혁이 같은 놈은 나무 막대기로 잘 하지 않더냐?"
이재영이 사내들을 재빨리 둘러보았으나 표정이 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만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유흥업소의 태반이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일부 업소에서는
이 상황이 오래 갈 것으로 보고 가게를 내놓은 곳도 있숩니다. "
김원국이 머리를 」I덕였다.
"당연하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아?

그렇게 해서 업소를 헐값에 인수하고 기반을 굳히려고 했었지, "
"정기욱의 유통 회사가 부쩍 커갑니다.

소문으로는 그놈들이 업체들을 장악할 것이라고 하고 놈들도 그렇게 떠들고 다닙니다 "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놈들은 노출되어 있어서 일을 벌일 형편이 못돼."
"배경이 든든하다고 합니다만."
"전과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의도여서 정부가 승인해 준 거야.

하지만 자금원은 지금 추적하고 있다. "
김원국의 시선이 힐끗 이재영을 스쳤다.
"문제는 이철우를 앞에 내세운 조직이야.

그놈들은 아직 윤곽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야 하는데.자,이 기자,

말해 볼까? 이철우 배경에 대한 자료를 내가 건네주었었지. 그것이 어떻게 되었지?"
가볍게 헛기침을 한 이재영이 침을 삼켰다.
"대한일보에서 보도할 수는 없었어요.

그것은 추측 기사일 뿐이고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시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재영은 어깨를 세우고는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뱉어내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이제까지의 언론의 보도 내용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외부의 압력이나 어떤 의도적인 분위기가 있는가를 주요 일간지를 대상으로 살펴보았어요."
모두들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리칼을 쓸어 올린 이재영이 말을 이었다.
"언론은 저희 대한일보도 그렇지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저쪽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경찰보다 빠르고 정확해서 언론이 경찰을 언제나 앞질렀지요."
김원국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며 계속하라는 듯 이재영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민들은 밤세계의 폭력에 대해서 만성이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가 이제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도 두어 달 전만 해도 특종으로 실을 것을 지금은 2단이나 3단으로 싣고 있어요.

모두 면역이 되어 버린 것이죠."
"저희가 여론을 조사한 것이 있는데요."
이재영이 힐끗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조직 세계와 김원국씨에 대한 인상은 아주 나쁘게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언론이 보이지 않는 이철우의 조직에 대한 것은 흐리게
보도하고 김원국씨 조직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죠.

이철우의 기사를 싣는 것을 언론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그것은 그가 군 출신이었기 때문이고 잘못하면 무고한 군 전체의
명예를 더럽힐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데 이것은 전부터 내려온 금기 사항입니다. "
"흥, 따지고 보면 나도 군 출신이야. 대한민국 남자치고 군인 아니었던 사람 있어?"
강만철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으나 공허하게 들렸다. 이재영이 말을 이었다.
"결국 언론은 지금까지 세뇌 작업을 해왔다고 볼 수가 있어요.

밤의 조직, 김원국, 그리고 피투성이의 싸움, 보호세, 인질, 이렇게 해서

김원국의 조직은 독자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
"조작한 것이군. 그래, 어떤 놈이야? 이제 결론을 말해 봐."
강만철이 답답하다는 듯 상체를 뻣뻣하게 세우고 이재영을 바라보았다.
"제 생각은 언론의 몇몇 간부들이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누군지는 아직‥‥‥ 왜냐하면 저는 말단 기자여서요."
"당신이 내 처의 납치 기사를 쓸 적에 내가 놈들하고 무슨 거래를
했다는 식의 기사를 썼는데, 그것도 위에서 쓴 건가?"
김칠성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눈빛이 차가웠다.
"저는 그 쪽지를 그대로 옳겨 썼을 뿐예요.

그런데 위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려고 그랬는지 그곳에 초점을 맞추어 크게 낸 거예요."
"수고했어."
김원국이 입을 열었으므로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싸우기 위해서는 우선 적을 알아야 한다. 이 기자가 앞으로도 많이 도와줘야겠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이제까지 만난 어떤 조직보다 강하고 교활하며

모든 수단을 응용할 수 있는 놈들을 만나고 있다.

그놈들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보다 더 강해지고 조직력을 갖추어야 한다. "
이재영은 그의 시선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자 온몸에 전류가 흐르 것 같았다.
"무엇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싸움이다. "
김원국의 말소리가 방을 울렸다.
"솔직히 이것은 밤의 조직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과장님. 이러다가는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됩니다. "
유혁근이 수저를 들고 말했다.
"아철우예 대한 수사 지시를 일반 용의자와 똑같이 취급하라는 본부 방침은 무언가 잘못되었어요."
"이봐, 어서 식사나 해,"
국물을 떠 입에 넣은 이정환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본부 방침이 잘못된 것은 없어. 분위기를 자즉시키지도 않고,

"신빙성도 없는 증언으로 군을 모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지요."
불쑥 가로채어 대신 말하자 이정환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점심 시간이어서 본부의 구내 식당은 제복과 사복 차림의 경찰들로 만원이었다.

벽 쪽에 앉은 그들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철우줴 대한 수사 지시를 일반 용의자로 정정 지시한 것이 일선 경찰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시TR지요?

그들은 이미 사건에서 손을 었을 겁니다.

그 사람들도 민감하다구요. 이것, 잡을 필요가 없구나 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상체를 식탁 위로 숙인 유혁근이 말소리를 죽였다.
"잡아도 그렇지, 잡아서 배경을 캘 수 있을 것 같나? 순진한 생각이야, 그것은."
밥맛이 떨어진 듯 이정환:I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렁탕은 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모두 위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니까혼자 떠들지 말라구,처자식 생각해서."
"요즘 세상에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밥 굻기지는 않아요."
"이 사람 미쳤구만, 곧 진급할 사람이. 내년 승진 인사에 자넨 포함이 될 거야."
유혁근이 물끄러미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과장님, 이철우의 가족과 한세라치가 교환이 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인질 교환이죠,"
소근대듯 말한 유혁근의 말을 못 들었는지 이정환은 눈을 꿈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유혁근은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신문 조각을 그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며칠 전 대한일보에 난 광고예요. 그쪽 아래를 보십시오.

난데없는 사람의 얼굴 사진이 있어서 자세히 보다가 행여나 하고

이철우의 가족 사진을 펼쳐 보았지요.

그것이 이철우의 부인과 두 자식입니다. "
이정환이 머리를 들었다.

주름살의 골이 더욱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럼 교환을 하겠구만?"
"하겠지요. 하지만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
"교환하라고 해 .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유혁근은 신문지를 집어 다시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결론은 잡아도 골치가 아프단 말씀이군요?그것이 상부의 생각이지요?"
"이봐, 우리는 할 만큼은 했어. 아니,그 이상으로 노력을 했단 말이야. "
"이철우 가족의 은신처는 알려 주었지만 김칠성이 비운었을 겁니다. "
"망할 자식, 비웃을테면 비웃으라고 해. 그놈들이 우리 입장을 어떻게 알아?"
이정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손에 쥐고 있던 이쑤시개를 식탁 위에 내던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유혁근이 시치미를 뗀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본부의 앞마당은 잔디밭이었다.

이른봄의 따스한 햇살이 노랗게 시든 잔디 위를 내리쬐고 있었다.

아직 푸른 새싹이 보이지 않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그들은 호젓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박 국장 이야기로는 경찰청장과 장관의 지시였다는 거야.

사건이 더이상 확대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는구만."
시선을 잔디밭에 준 채 이정환이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각하가 경제 부흥에 전력투구하는 마당인데

그런 것으로 골치 아프게 만들어 드리면 안된다구."
"글쎄 그11)‥‥‥‥
유혁근이 입을 열자 이정환이 찌푸린 얼굴을 돌렸다.

입맛을 다신 유혁근이 말을 멈추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안기부 제3차장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밤에 조용히 만나자고 해서 안가에서 만나 한잔했는데."
긴장을 한 유혁근이 엉덩이를 끌어 바짝 다가앉았다.
"날더러 이철우에 대한 보고를 상부에 했느냐고 묻더구만.

그래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지, 그놈이 초점이라는 것까지."
"안기부가 지금은 그렇지만 정보력은 대단한 곳이야.

고 차장 그 사람 간간한 사람이야.

내가 5년쯤 전 경정 시절에 같이 일한 적 있어."
"그래서_5.?"
"그래서요라니?"
그러자 유혁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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