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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평양으로 17

오늘의 쉼터 2014. 12. 5. 12:38

제36장 평양으로 17 

 

 

 

한편 시득은 위사원이 거느린 당선 1백 척과 싸우며 여러 번을 패주하는 척하여

당군의 사기를 한껏 올려놓았다.

 

그런 뒤에 들 물에 맞춰 백강 연안의 해만으로 들어와 적당한 곳에 배를 숨기고 기다렸다.

당나루는 본래 굴곡이 심하고 육지로 휘어 들어온 만(灣)과 곶이 도처에 있어

배를 숨길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시득의 배를 추격해온 위사원은 백강 입구에서 갑자기 신라배가 보이지 않자

그대로 진격하여 틀무시와 밀두리 사이의 사읍천까지 쫓아갔다.

이를 본 시득은 자신의 부하 한 사람을 불러 말했다.

“서해는 본래 조차가 극심하여 들 물과 날물 때의 지형이 판이하다.

당군이 들어간 사읍천은 특히 바위여(숨은바위)가 많은 곳으로 지금은 들 물이라

바다 위에 배가 떠 있지만 내일 새벽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뱃바닥은 여지없이 돌에 덩그러니

들어 얹힐 것이다.

너는 화급을 다투어 소부리주 총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고 날물 때를 맞춰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와 배에 갇힌 당군을 모조리 소탕하라 이르라.”

지시를 마치고 그는 육로를 통해 기벌포로 달려갔다.

기벌포는 시득이 가림군의 소수로 있을 때 늘 나와 살던 곳으로 그곳의 지형지세는

눈을 감고도 찾아갈 만큼 익숙했다.

그는 금강 상류로 가서 소수 시절부터 휘하에 있던 충복 사미보(沙彌保)를 만났다.

백제 장수 사미보는 시득이 보낸 은파의 전갈을 받자 기벌포의 선박 70여 척을 이끌고

이미 강 상류에 은둔해 있었다. 시득은 은파에게 말했다.

“백강 연안에 가면 내가 숨겨놓은 우리 배가 있을 것이다.

너는 이들을 거느리고 내일 날이 밝거든 해상으로 나와 당성항에서 쫓겨 오는 적선을 막아라.

덕수와 대선도 너를 도우러 나타날 것이지만 나도 기벌포에서 적을 소탕하는 즉시 당나루로 달려가마.”

은파가 명령을 받고 물러나자 시득은 사미보를 불렀다.

“배를 몰 수부와 화살은 충분하느냐?”

그러자 사미보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리께서 당항성 본영으로 떠나신 뒤 수부들은 전쟁이 없을 거라 믿고 대부분 훈련에 나오지 않아

지금 남아 있는 군사는 모두 합해야 2백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화살도 나리가 가림군에 계실 때 만들어놓은 2, 3천 개가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나는 기벌포에서 적을 모조리 섬멸할 계획을 세웠는데 수부와 화살이 없다면 무엇으로 싸운단 말이냐?”

사미보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신이 가림군에 가서 일문의 장정들을 끌어 모은다면 약간의 군사는 급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림성 일대엔 예로부터 백제 팔성 가운데 하나인 거대문중 사씨(沙氏)들의 집성촌이 있었다.

시득이 전날 가림군에서 소수를 지낼 때 사미보를 발탁해 부장을 삼고 길사 벼슬을 품신한 것도

바로 그 지역의 인심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시득은 사미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군사들이 뜻대로 모이지 않거든 사사(沙使) 어른의 댁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아라.”

“알겠습니다.”

시득의 말뜻을 알아차린 사미보가 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화살은 태수 대관을 만나 부탁해보아라.

일전에 가림군을 떠나며 내가 말해둔 게 있으니

어쩌면 그가 화살을 만들어놓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사미보는 잽싸게 말을 달려 먼저 문중의 집성촌으로 갔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장정들을 불러내니

술시까지 제 발로 걸어 나오는 자가 1백여 명에 불과했다.

사미보는 할 수 없이 시득이 말한 사사의 집을 찾아갔다.

사사는 아달성에서 죽은 소나의 장인이었다.

소나는 아달성으로 떠날 때 가림군 양가의 딸인 아내를 백성군에 두고 혼자서만 갔는데,

소나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 그 아내는 울면서 말하기를,

“내 남편은 평소에 장부가 마땅히 싸움터에서 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과연 그의 뜻과 같이 되어 다행입니다.”

하니 그 소리를 전해들은 법민은 눈물로 용포를 적시며 소나에게 잡찬 벼슬을 추증했다.

그 뒤 소나의 처는 가림군 친정 근처에 와서 지냈으므로 일문에서는 이를 자랑으로 여겨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옷깃을 여미곤 했다.

소나의 장인 사사가 집으로 찾아온 사미보의 말을 듣자,

“이제야 내 사위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는 연로한 몸으로 친히 나서서 문중의 장정들을 끌어 모으니

열일을 제쳐두고 뛰어나온 사람이 다시 6백 명이나 되었다.

이는 사씨 문중의 남자라는 남자는 성동(成童)에서부터 노인까지 모두 합한 숫자였다.

사미보는 이들을 시득이 기다리는 곳으로 보낸 다음 말을 달려 태수 대관을 찾아갔다.

대관이 잠결에 일어나 시득의 전갈을 듣자,

“그러잖아도 기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네.

헤아려보지 않아서 얼마나 되는가는 모르겠지만 관아의 창고가 죄 화살일세.”

말을 마치자 화살뿐 아니라 군의 군사 1백여 명까지 함께 내어주었다.

사미보가 군사들과 수레에 화살을 실어보니 대략 2만 개는 되지 싶었다.

시득은 사미보가 밤새 구해온 수부와 화살을 배마다 나눠 싣고 갑판에 강노를 설치해

깃발로 가린 다음 이튿날 동이 틀 무렵 물길을 따라 기벌포로 향했다.


한편 앞서 당성항에서 시득의 명을 받은 강무의 배는 밤새 추격하는 당군과 혹은 싸우고

혹은 달아나기를 거듭하며 시간을 끌다가 뒷날 해가 어디만큼 솟아오르자 기벌포로 뱃머리를 돌렸다.

당군들은 강무와 벌인 싸움에서 10여 척의 배를 부수는 전과를 올렸으므로 그것이 계략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도망가는 강무의 후미를 쫓아 잔뜩 기세를 올리며 막 기벌포 해역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바다 한쪽이 북소리로 소란스러워지며 강물과 바다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수십 척의 선단이

나타나더니 미처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갑판 위에서 수백 개의 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함정이다!”

“유인책에 걸려들고 말았다!”

당군 수부들은 목청을 돋우어 소리치며 뱃머리를 돌리려 했으나 이미 적선의 포위망에 걸려든 뒤였다. 시득이 병선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당선을 에워싸고 기름 먹인 불화살을 날려대자

달아나던 강무의 배도 즉시 선머리를 돌려 역공을 취해왔다.

목숨을 건 양측의 해전은 그로부터 중식 때까지 이어졌지만 그 반나절은

당의 병선들이 불에 타고 견디다 못한 군사들이 물로 뛰어드는 데 걸린 시간일 뿐이었다.

기벌포 해전을 대승으로 이끈 시득은 병선을 거느리고 서둘러 당나루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가 당나루 해역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바다 한복판에 나타난 것은

자신이 백강 어귀에 숨겨두고 온 신라선 들이었다.

짐작대로라면 그때쯤 그 배들은 당나라의 마지막 남은 병선들과 싸우고 있어야 옳았다.

시득은 일이 틀어진 줄 알고 크게 놀랐다.

곧 절도선에 뱃머리를 갖다대고 은파를 찾으니 은파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시득이 다급하게 묻자 은파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장군의 말씀대로 해가 뜨고 나서 즉시 해상으로 나갔지만 이미 당선들은

우리 선박에 둘러싸여 절반 이상이 궤멸을 당한 터라 제가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은파의 말에 시득은 일순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덕수와 대선이 뜻하지 않게 선전한 모양이구나?”

그러자 은파가 말했다.

“덕수와 대선도 공이 크지만 칠중하 북방의 우리 배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와 있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음직이 왔구나……”

시득의 탄성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은파의 배 뒤로 새카맣게 나타난 것은 해포 근해의

옛 고구려 병선들이었다.

신라가 평양성을 함락시킨 뒤에 법민왕은 고구려 수군들로 하여금 북방 해역의 방비를

맡아보게 하였는데, 그 책임자로 선발된 이가 바로 해포 사람 음직이었다.

음직은 난리 통에 산 곡간을 유랑하며 용케 목숨을 부지하였다가 안승과 검모잠이

평양성을 진무할 때 나타나 신라 벼슬을 살고 있었다.

시득은 음직을 만나 그 노고를 크게 치하하고 함께 당성항으로 개선했다.

조금 있으려니 도망가는 설인귀의 배를 쫓아갔던 덕수와 대선이 돌아와,

“신 등이 퇴주하는 잔적들을 뒤쫓아 대부분 고기밥을 만들었으나

다만 두세 척의 배가 끝까지 추격을 따돌리고 달아났을 뿐입니다.”

하며 애석해했다. 설인귀는 바로 그 도망간 두세 척의 배에 타고 있었다.

이때 서해를 침범한 당군 5천 가운데 물에 빠져 죽거나 당나루 해만에 갇혀 목이 떨어진 자가

4천을 넘고 3백 척의 병선도 거의 물 위에 뜬 나뭇조각이 되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으니

근고에 보기 힘든 해상대첩이 아닐 수 없었다.

지루하게 끌어오던 나당 8년 전쟁은 유신의 서자 시득이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고

그 이후 당은 신라에 군사를 내지 않았다.

따라서 신라가 사실상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것은 시득이 기벌포에서

설인귀의 수군을 통렬히 물리친 병자년(676년)을 원년으로 삼는 게 역사의 정설이다.

구사일생 목숨을 얻어 도망간 설인귀는 스스로 몸을 결박하고 낙양에 입조하여 죄를 빌었고,

크게 노한 이치는 곧 군사를 모집해 대대적인 계림 정벌을 계획했다.

그러나 부쩍 극렬해진 거란과 돌궐, 토번 등의 불복과 노략질로 외환을 겪던 당의 형편상

사방으로 군사를 낸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치가 신라 토벌을 계획하고 군사를 소집하자

당조의 많은 신하들은 목숨을 걸고 이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특히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던 재상 문관(張文瓘)은 아픈 몸을 수레에 싣고 대궐로 달려가 고하기를,

“근래에 토번이 서쪽 변경을 침범해 군대를 상시 국경에 주둔시키고 걸핏하면 노략질을 합니다.

신라는 비록 순종치 않으나 그 군사가 당나라 영토를 침범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동서(東西)를 함께 정벌한다면 신은 우리 백성들이 그 폐해를 견디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용병을 멈추시고 안으로 덕을 닦아 백성을 편하게 하도록 청하나이다.”

하니 이치도 끝내는 그 말을 좇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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