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평양으로 16
한편 매소홀의 천성에서 쫓겨 간 설인귀는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도망가서
절치부심 설욕할 기회를 엿보다가 이듬해인 병자년(676년) 11월,
5천 명의 수군 결사대를 조직하여 당나루(당진) 해안을 급습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무모한 짓이었지만 궁지에 몰린 설인귀는 이미 균형과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는 천성에서 쫓겨 간 뒤로 하룻밤도 편히 잠을 자본 일이 없었다.
눈만 감으면 황제의 격분한 얼굴이 보이고 꾸짖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딱하게도 그는 계림을 토벌하기 전에는 결코 낙양으로 돌아가지 못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설인귀는 등주를 출발하기에 앞서 낙양의 부여융에게 공격하기 좋은 곳을 편지로써 물어보았는데,
부여융이 지도를 그려 가르쳐준 곳이 바로 당나루였다.
그는 먼저 당나루를 습격해 웅진만이라도 차지한 뒤 황제에게 원병을 청해 체면을 세워보리라
결심하고 필사의 각오로 배를 띄웠다.
그런데 설인귀가 택한 당나루 해역은 공교롭게도 유신의 서자 시득이 지키던 곳이었다.
시득은 태수 대관의 예전과는 다른 각별한 보살핌 덕에 한동안 남들보다 편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공허한 느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했다.
그는 원술이 매초성에서 큰 공을 세워 임금에게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제 일처럼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방에 걸어놓은 유신의 보검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할 시득 혼자만의 마음이었다.
병자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이제 더 이상 당군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풍설마저 나도니
이러다간 공다운 공도 한번 세우지 못하고 전란이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서운하고 조급한 마음까지 생겨났다. 그랬거나 말거나 시득은 철마다 가림군에 살던
신라인과 백제 유민들을 동수로 징발하여 수군을 훈련시키고 기벌포(技伐浦:장항)에 나와
꾸준히 배를 만들었다.
하루는 대관이 해안을 둘러보러 와서,
“적당히 하소. 난세는 가고 태평 지절이 왔다고들 난리인데 무얼 그토록 열심이오.”
하며 만류한 일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시득이 장래를 걱정하며 맡은 바를 조금도 소홀히 아니하자
대관이 감찰을 나온 외사정의 관리에게,
“내 밑에 소수로 있는 내마 시득은 예삿사람이 아니오.”
하고서,
“지난번에 죽은 철천의 후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거든 임금께 말해 시득으로 하여금
서해의 수비를 맡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며 제안하였다. 대관은 시득이 가림군 한 곳에서만 수군과 물자를 징발하느니
차라리 그 지위를 높여 여러 주군에서 마음껏 뜻을 펴도록 꺼낸 말이었으나
시득이 누군지를 알지 못하던 외사정은,
“기껏 내마에 불과한 자에게 어찌 서해를 통째로 맡긴단 말이오?”
하며 코웃음을 쳤다. 이에 대관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 말은 절대로 파설하지 마오. 만일 그랬다가는 큰 곡경을 치를 지도 모르오.”
단단히 오금을 박고서 비로소 시득이 유신의 서자임을 귀엣말로 일렀다.
외사정이 깜짝 놀라며,
“그게 사실이오?”
거푸 몇 번이나 반문한 뒤에 급히 임금에게 장계를 올려 들은 소리를 글로써 아뢰니
법민 역시 장계를 읽어보고 크게 놀라 당장 시득을 대궐로 불러들였다.
법민이 시득을 대면해 이것저것 물어볼 것을 물어본 연후에,
“가야국 원군(元君:시조 대왕 수로)은 나에게 14대 시조(始祖)이고 가락국은 나의 모태다.
그 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장례를 지낸 묘는 남아 있어 과인이 즉위하자마자
종묘에 합하여 계속 제사를 모시도록 하고 사당 가까이 상상전(上上田:제일 좋은 밭) 30경(頃)을
공양 밑천으로 삼아 효사(孝祀)가 끊이지 않게 한 일이 있거니와, 돌아보면 한때 나라에서
가야국 유민들을 까닭 없이 배척하고 무시하는 일이 있어 그대의 양친과 같은 애틋한 봉별이 생겼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이런 중에도 고인께서는 실로 향기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세간의 미담으로 남기고 가셨으니
과인이 그 뒤를 약간 더 다듬어보리라.”
하고는 당석에서 벼슬을 높여 내관의 중책을 맡기려 하였다.
하지만 어인 일로 시득은 조금도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성은이 태산과 같으나 신은 지난 석문벌 싸움에서 패하여 공은 없고
오직 허물만 있는 몸인데 어찌 만인이 수긍하지 못할 벼슬을 받으 오리까.
만일 그렇게 되면 이는 저의 벼슬이 아니라 돌아가신 선친의 벼슬을 대신 사는 것으로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옵니다.
그저 지금처럼 서해의 한 직책을 맡기셨다가 훗날 공을 세우거든 다시 불러주옵소서.”
시득이 떨리는 목소리로 완강히 고사하자 법민도 하는 수가 없었다.
그는 간곡하게 아뢰는 시득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큰 외숙의 자제답다.
그러잖아도 철천의 후임을 아직 정하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그 자리는 늘 배를 타고 살아야 하는 고달픈 자리다.
네가 이 일을 맡아 서해를 철벽같이 지켜보겠느냐?”
시득도 그제야 안색이 밝아졌다.
“대왕의 은혜가 백골난망 이올습니다!”
그런데 법민이 서해의 수군을 통솔하자면 내마 벼슬로는 어렵다 하고,
“너에게 사찬 벼슬을 제수하니 이는 유신 장군을 보고 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직무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하므로 그제야 시득도 임금의 뜻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가림군으로 돌아온 시득은 당항성에 수군 본영을 설치하는 한편 남으로 당나루와 기벌포,
북으로 매소홀과 칠중하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수군 진채를 설치하고 크고 작은 병선과
수중 망루를 세우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 바람에 해변에 인접한 주군의 관리 중에는,
“시득이 지나치다.”
“농사 끝나니 낫 들고 덤비는 격이다.”
하며 더러 유별나다고 불평하고 흉보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설인귀가 당나루에 나타난 것은 시득이 서해를 맡고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이때 설인귀가 끌고 온 크고 작은 병선들은 전날 천성을 공략했던 바로 그 배들로,
대략 3백 척쯤 되었다.
수중 망루에서 당나라 병선의 출현을 알리는 급보가 전해오자
전쟁이 끝났다고 믿은 대부분의 신라인들은 크게 놀라고 당황했지만
시득의 얼굴에는 오히려 희색이 감돌았다.
“아아, 하늘이 이 시득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당성항 본영에서 보고를 받은 시득의 반응은 그러했다.
그는 즉각 휘하의 부장들을 불러 침착하게 군령을 내렸다.
“어설프게 적을 무찔러서는 이와 같은 일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풀이될 게 뻔하다.
비록 시일이 걸리더라도 적을 완전히 섬멸해 살아서 돌아가는 자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드디어 베개를 높이고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시득은 먼저 대사 덕수(德秀)와 강무(剛武)를 불러 말했다.
“지난번에 철천이 매소홀에서 대패한 것은 해역의 지형지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백 척이나 되는 적선을 일시에 격파하려다간 오히려 역습을 당하기 쉽다.
너희는 각각 병선 50척씩을 이끌고 당나루 해역으로 나가 싸우되 배와 배가 서로 엉키거든
덕수는 이곳으로 적선을 유인하고, 강무는 도망가는 척하며 시일을 끌어 내일 아침까지 기벌포로 오라.”
두 장수가 군령을 받고 물러나자 시득은 길사 대선(大仙)과 은파(殷波)를 불렀다.
“은파는 지금 기벌포로 가서 사미보(沙彌譜)에게 배를 10여 척만 남기고 모두 강(금강) 상류에 숨긴 뒤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 일러라. 대선은 이곳의 배를 해안에 늘여 세우고 배마다 수백 개의 깃발을
달아 적들로 하여금 두려운 생각을 갖도록 허세를 부리되 만일 적이 물러가지 않거든
밤에 일제히 깃발을 내리도록 하라.
그럼 이튿날 적은 반드시 물러갈 것이다.”
그러자 대선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덕수와 강무가 1백 척이나 되는 배를 끌고 나가면 당성항의 병선이라고 해봐야
기껏 30척 정도가 남을 뿐인데 만일 깃발을 내린다면 오히려 적의 침략을 받지 않겠습니까?”
시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의심하지 말고 반드시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다만 덕수와 대선은 당선이 물러가고 나면 곧 뒤를 추격하여 당나루로 내려오라.”
명령을 내린 시득은 재빨리 당나루 수채(水寨)로 달려갔다.
그는 당나루 해안의 선박 50여 척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설인귀의 병선과 맞닥뜨렸다.
설인귀는 선단을 횡렬로 늘여 세우고 지난번 철천을 무찌른 것과 같이 사방에서 포위하는 전술을 썼다. 양측 선단이 어우러져 한바탕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시득의 명을 받은 덕수와 강무가
1백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북방에 나타났다.
설인귀는 북방에 나타난 배가 고작 백 척에 불과하자 가소로운 듯 코웃음을 쳤다.
“신라 배는 다해야 우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는 거선이요 저쪽은 가랑잎과 같은 쪽배이니
차제에 계림의 수군은 아주 씨를 말려야겠다.”
그는 선단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은 병선 2백 척으로 덕수와 강무의 배를 상대했다.
덕수와 강무는 배와 배가 서로 엉키기를 기다렸다가 짐짓 뱃머리를 돌려 양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용기백배한 설인귀는 다시 선단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은 북쪽으로 도망가는 덕수의 배를 뒤쫓았다.
한동안의 추격전에서 당군은 뒤에 처진 신라 선박 몇 척을 부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그 바람에 3백 척을 헤아리던 당나라 배는 세 방향으로 분산되었다.
설인귀는 덕수를 뒤쫓아 당성항 해역에 이르렀다.
그런데 저만치 해안에 무수한 깃발을 펄럭인 채 정박한 선단을 발견하자
설인귀는 크게 놀라 추격을 멈추도록 지시했다.
“대체 저 배들이 얼마나 된단 말이냐?”
설인귀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선단의 규모를 확인하려 하였지만
현란한 깃발에 가린 탓으로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다.
설상가상 짧은 겨울 해가 어느 틈에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있어 시야가 더욱 희미했다.
“어쨌거나 이는 유인책이 틀림없습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 더 어둡기 전에 위사원이 기다리는 당나루로 가야 합니다.”
충복 조양지의 말이 아니더라도 설인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쫓겨 오는 아군을 보고도 정박한 배들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저것은 어느 바보가 딴에는 계책을 쓴답시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쫓겨 오는 제 나라 군사를 보고서도 미동도 하지 않는단 말이냐?”
조양지도 듣고 보니 그런 느낌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계책일 수도 있을 듯했다.
“어쩌면 우리를 해안으로 유인하려고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자 설인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밤을 새도록 하자.
내일 아침에도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더 의심할 것이 없다.”
이리하여 설인귀는 해상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여러 날에 걸친 항해로 군사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서로 언 몸을 부둥켜안고 손발을 비벼가며 추위를 참아냈지만
이미 동상에 걸린 자까지 생겨난 판이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설인귀는 절도선 갑판에 나와 다시 해안을 관찰했다.
그런데 어제 현란하게 펄럭이던 수백 개의 깃발은 온데간데없고 해안에는
나룻배처럼 뵈는 작은 목선 몇 척만 물살을 따라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본 설인귀는 돌연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렇구나. 네 말을 듣지 않았으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그는 자신을 만류한 조양지를 칭찬한 다음 그대로 배를 돌려 당성항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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