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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선전포고 7

오늘의 쉼터 2014. 12. 4. 13:53

제35장 선전포고 7

 

 

 

당군들이 물러간 뒤인 이듬해(673년) 정월,

법민은 문무 백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모든 공로가 강수의 머리에서 나왔음을 크게 칭찬하였다.

아울러 유사에 명하여 강수에게 사찬 벼슬을 내리고 해마다 벼 2백 석을 주기로 하는 전대미문의

특전을 베풀었다.

2백 석이나 되는 벼도 놀라운 것이었으나 계림의 역사 7백 년에 5두품으로 사찬 벼슬에 오른 이가

강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편 전쟁이 끝난 직후 고구려왕 안승은 법민왕을 알현하고자

금성에 사람을 보내어 뜻을 물었으나 왕의 사신이 와서 참전한 공로를 치하하고

금마저로 새 백성들을 데려가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성지를 전했다.

이때 법민이 안승의 접견을 피한 것은 부여융을 잃은 백제 유민들의 마음을 헤아린 때문이었다.

안승이 애운한 표정을 짓자 사신이 말하기를,

“이는 딴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대왕께서 의례를 갖추어 대궐로 청하시겠다는 뜻이올시다.”

넌지시 귀띔을 하므로 안승도 그제야 불안한 마음을 거두고 밝은 낯 이 되어 금마저로 돌아갔다.

그러나 안승을 제외한 나머지 고구려 장수들은 신라군과 함께 모두 대궐로 청해 일일이 노고를

치하하며 재물을 하사한 뒤에,

“그대들은 하늘의 해가 빛을 다할 때까지 주군을 섬기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만일 이를 어긴다면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고서 특히 검모잠을 보고는 친히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등을 어루만지며,

“장군의 충절은 과인이 이미 여러 차례 찬탄한 바일세.

조만간 난리가 평정되고 나면 조정에 벼슬과 직책을 따로 정하고 금성에 집을 마련하여 부를 테니

그때까지는 비록 변방의 향리일망정 금마군에 한 고을을 이루어 살며 위로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 유민들을 보살펴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오.”

하고 당부하니 검모잠은 감격해 홀연 눈물이 글썽하고,

이를 바라보던 고연무와 백포정도 덩달아 콧날이 시큰하였다.

계림의 큰 별은 마침내 떨어지고

먼저 당군이 아직 무이령 서쪽에 둔거하고 있을 9월 어름에 하루는 금성 북천(北天)에

혜성이 무려 일곱 번이나 출몰한 일이 있었다.

그 바람에 첨성대에서 천문을 살피던 일관들이 범을 만난 듯이 난리를 치고 수선을 떨었다.

법민은 일관들을 크게 꾸짖고,

“본시 변화무쌍한 것이 하늘의 별자리인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그따위 일로 민심을 어지럽히려 하느냐?

만일 이 일을 파설하는 자가 있다면 다른 저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엄벌과 중형으로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알라!”

하며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법민 자신도 늘 마음 한편이 께름칙하고

과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튿날 강수가 왔을 때 법민이 넌지시 이 말을 전하니 강수가 웃으며,

“은(殷)나라의 주왕이 망할 때는 길조로 이름난 적작(赤雀)이 다투어 날아들었고,

노(魯)나라는 기린을 잡았지만 곧 쇠약해졌습니다.

신도 간밤에 북천의 혜성을 보았으나 이는 우주의 일일 뿐 사람의 일은 아닙니다.

어찌 성신의 이변을 두려워하오리까?”

하고 대답했는데,

실은 그처럼 태연하던 강수도 신라의 국운이 아직 당과 맞설 때가 아님을 깨닫고

낙양에 사죄사를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다.

한데 그 일을 필두로 신라에서는 우려할 만한 괴변과 불길한 조짐들이 잇달았다.

남산에서는 밤마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곡을 하다 사라진다는 풍설이 일고,

선왕(김춘추)이 묻힌 선도산 부근에서도 수시로 누군가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데,

그 음성이 선왕의 생전 육성을 닮았다는 말이 돌았다.

멀쩡하던 불상의 목이 부러진 것은 흥륜사에서 일어난 일이요,

만노군(진천)의 고산(高山)과 삽량주(양산)의 취산(鷲山)에서는 아무 까닭도 없이

계곡 물이 붉게 변하기도 했다.

강수는 이들 대부분을 친당 세력들이 임금의 뜻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지어 퍼뜨린 낭설로 여겼다.

따라서 당군들이 물러가고 나면 자연히 흉문도 사그라질 줄 알았지만 시일이 흐를수록 괴소문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어 가뜩이나 뒤숭숭하던 민심을 더욱 교란시켰다.

신년(673년) 정월에는 큰 별이 황룡사와 궁성의 중간에 떨어졌고, 2월에는 요성(妖星)이 나타났으며,

3월에는 금성 일대에 경미한 지진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애써 초연해하던 법민도 걱정이 되어 밤잠을 설치고 강수 또한 당에 맞서지 말라는

천지신명의 계시가 아닐까 홀로 근심하는 일이 잦았다.

지진이 나고 얼마 아니 있어 하루는 법민이 설핏 잠이 들었는데,

꿈에 거대한 청룡 한 마리가 푸른 동해 바다를 가르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뜬 그는 꿈에 본 용의 창해보다 푸른 비늘과 그 꿈틀거리던 자태에

한동안 넋을 잃고 앉았다가 문득 한기를 느끼고 살펴보니 옷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뒷날 왕후에게 이 말을 전하자 자의 왕후(慈儀王后)는 되레 좋은 일이 생길 길조라고 말했다.

“용이 승천하는 꿈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길몽을 꾸고 나서도 마음이 쾌하지 않고

몸마저 무거우니 아무래도 수상하오.

동해는 예로부터 계림의 수호신이 사는 곳인데,

그곳에서 용이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갔으니

혹 우리나라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길 조짐은 아니겠소?”

“신첩의 소견에 승천하는 용꿈은 분명한 길몽입니다.

더욱이 꿈에 보신 바다가 동해라 하셨으니

우리나라에 좋은 일이 생겼으면 생겼지 흉사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대왕의 옥체가 무거우신 것은 웅진의 일로 지나치게 기력을 소진하신 탓이니

허약해진 심신을 돌보시는 것이 좋겠나이다.”

왕후는 곧장 어의를 불러 탕제를 지어 올리도록 했다.

길몽인지 흉몽인지 모를 용꿈을 꾸고 며칠 지나지 않은 때에 법민이 공무를 마치고

막 왕정에 나와 한가로이 기화요초를 구경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늠름한 장수가

궐문을 지나더니 성큼성큼 걸어 편전으로 향하는지라,

“저 장수가 누군지 알아보고 오라.”

시립한 내관에게 말했다.

내관이 부리나케 달려갔다가 곧 안색이 벌게져서 나타났다.

“태대각간 김유신 장군께서 입궐하셨다 하옵니다!”

내관의 고하는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법민은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참말이냐? 그 소리가 틀림없는 참말이렷다?”

이어 그는 내관도 팽개친 채 부랴부랴 편전으로 달려갔다.

법민이 임금의 체통도 잊고 희색이 만면한 채 요란하게 팔을 흔들며 가는데

그 마음이 꿈인지 생신지 모를 정도로 기뻤다.

그때까지 길흉을 의심하던 용꿈이 바로 이런 날을 보려는 길몽 이었구나 여겨진 것도 그 순간이었다.

법민이 손수 편전 문을 밀치고 허겁지겁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유신이 풍병 앓기 전의

건장한 모습으로 섰다가,

“전하, 그간 옥체 만강하시옵니까?

신 태대각간 유신, 천성이 게으르고 불충하와 오랫동안 문후를 여쭙지 못하였나이다.”

하며 이마를 땅에 조아렸다.

법민이 유신의 앞으로 왈칵 달려들어 무릎을 꿇고 앉으며,

“천지신명의 보살핌이 과인과 계림의 사직에 있어 드디어 외숙께서 회도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녕 꿈은 아니겠지요?

내어드린 수레와 지팡이도 쓰지 않으시고 입궐을 하시다니,

세상에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고는 홀연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글썽였다.

유신이 그런 법민의 손을 따뜻이 맞잡고 시선을 맞춰 희미하게 웃으며

손등을 두어 번 어루만지고 나서,

“어서 용상으로 옮겨 앉으시지요. 사람들이 볼까 두렵습니다.”

하니 법민이 사방을 둘러보며,

“대신들은 모두 퇴궐하고 외숙과 저 둘밖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서 자리를 옮기지 않으려 하였다.

유신이 그런 법민을 나무라며,

“군신의 법도가 따로 있습니다.”

하자 법민이 그제야 마지못한 기색으로 손을 놓고 일어섰다.

임금이 용상에 앉자마자 유신이 말했다.

“일전에 신의 미돈인 원술이 왕명을 욕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훈(家訓)의 엄격함을 저버렸사오니 참형으로 다스려달라는 소망을 인편에 아뢴 일이 있었는데,

이제 소문을 듣자오니 원술이 참형은커녕 무사 방면되었다 하므로 신은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지난 성대에 우리 진흥 대왕께서 나라에 풍월도(화랑도)를 여시고 법사 원광(圓光)이 오계를 지어

가르친 이래로 풍류황권(화랑도의 명부)에 그 이름을 올리는 것은 개인의 영예요

누대에 걸친 가문의 자랑이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신의 일문으로 말하면 금관국 왕실의 후예로

신의 조부인 무력(武力) 장군은 전장에서 싸우다 죽을지언정 금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가훈을 세워 자손들을 엄히 훈육한 바가 있습니다.

원광의 오계에 이미 임전무퇴가 있고, 신의 집 가훈에 또한 유사한 가르침이 있사온데

원술과 같이 고약한 것이 생겨나서 이를 모두 허망하게 하였사오니

어찌 그를 사람의 자식이라 하오리까?

청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이제라도 그를 붙잡아 참형으로 다스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이 이 말씀을 전하러 왔나이다.”

법민이 유신의 말을 들으며 찬찬히 살펴보니

복두 밑으로는 아직 흰 띠가 둘러져 있고,

눈가에는 여전히 병색이 완연했으며,

단호한 말투와는 달리 목소리에 어딘지 훈과 기가 빠져 있는 듯하여 가슴이 아팠다.

“큰 외숙께서 사정을 몰라 그렇지 지난 석문에서 패한 장수는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을 다 벌한다면 계림에 남아날 장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술은 한낱 비장인데,

유독 그에게만 중형을 내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저 패주한 장수를 엄벌로 다스려 군율과 국기를 칼날같이 세우지 않고서는

나라가 온전할 수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신이 생각하기에 장차 계림은 노소를 불문하고

손에 무기를 들고 나가 싸워야 할 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원술과 같은 것을 방면하고서는 나라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재삼 청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인정의 유혹에서 벗어나

이 늙은 것의 소망을 가납하소서.”

법민은 유신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원술을 용서하는 데는 털끝만큼의 사사로움도 없었으니 안심하십시오.

상장군인 의복과 춘장을 다 벌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 아래 비장을 불러 목을 치겠습니까?”

그는 유신에게 석문의 전황을 아는 대로 소상히 설명해주면서 오히려 원술을 용서하라고

유신을 설득했다.

유신은 못내 개운찮은 얼굴로 묵묵히 앉았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원술이 천금과 같은 죽을 자리를 얻었으나 피하여 달아난 것이 비록 전하와 나라에는

용납이 되었을지언정 신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그를 할보(割譜)한 지 이미 오랩니다.”

유신이 편전에서 법민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뇌성이 일더니 내관 하나가 뛰어들며 대궐에 벼락이 떨어졌다고 아뢰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뇌성이 울고 벼락까지 떨어지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나이다.”

내관의 말에 법민이 걱정을 하며 최근에 부쩍 괴변과 흉문이 나도는 것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유신이 대답했다.

“근자에 잇달아 생기는 나라의 변괴는 그 액(厄)이 노신에게 있는 것이지

나라의 재난은 아니오니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과히 근심하지 마십시오.”

법민은 그 말을 듣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만일 그렇다면 나라엔 그보다 심한 액이 없고, 저에게는 그보다 더한 걱정이 없습니다!”

그는 유신이 피곤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내관에게 수레를 대령하라고 일렀다.

유신이 팔을 휘저으며,

“올 때에도 혼자 왔으니 갈 적에도 혼자 가겠습니다.”

하고는 일어나 절한 뒤에,

“신의 몸이 기동에 불편이 없으면 가끔 대왕을 찾아와 오늘처럼 문후를 여쭙겠나이다.”

하므로 법민이 그러면 궐문까지만 부축을 하겠노라 말하고 미리 거절할 것을 짐작하여,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하자 유신이 법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신이 체구가 커서 쉽잖을 겝니다.”

빙긋 웃으며 한쪽 팔을 내맡겼다.

유신이 대궐을 다녀간 뒤에 법민은 변괴의 액이 자신에게 있다던 유신의 말이 자꾸 떠올라

유사에 명하여 경사의 모든 사찰과 사당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다.

태대각간의 쾌유와 면액은 국사 중에서도 으뜸이니 신명께 빌고 기도하는 일에

한 치의 부정함과 소홀함도 섞이지 않도록 하라.

만일 이를 어기는 자가 있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엄벌할 것이다!”

추상 같은 다짐을 둔 뒤 스스로도 틈이 날 적마다 궐 밖 대찰과 사당으로 행차해

일변 제사를 감독하고 일변 치성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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