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장 선전포고 5
어스름 달빛 아래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패의 군마가 나타나더니
앞선 장수가 대뜸 손에 든 장광도를 휘두르며,
“이 눔, 흑치상지야!”
우레 같은 고함을 질렀다.
죽지가 이미 그를 한눈에 알아보고,
“날세, 이 사람!”
하자 씩씩거리던 그가 비로소 약간 겸연쩍은 어투로,
“뉘시오? 형님이오?”
소리를 낮춰 묻고는,
“괜찮소? 어디 다친 데는 없소?”
가까이 다가와서 사람을 아래위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죽지가 껄껄 웃으며,
“아닌 밤중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시치미를 떼고 물으니 흠돌이,
“흑치가 유돈을 죽이고 그를 잡으러 간 형님마저 오지 않는다 하여
혹시 무슨 변고나 당했나 싶어 오는 길이오.”
하고서,
“아무려면 우리 형님이 흑치한테 당하기야 하려구!
그래, 흑치 그 놈의 머리통은 어디에 있소?”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죽지가 그런 흠돌을 돌려세우며,
“흑치상지는 벌써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으로 나갔네.
내가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왔지 뭔가.”
거짓으로 둘러대니 흠돌이 분하다는 듯 장광도를 도로 칼집에 꽂고서,
“진작에 올 걸 그랬소!
그 잘난 놈의 창 솜씨를 내가 반드시 꺾어 천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놓으려 했더니.”
부성으로 돌아올 때까지 몇 번이나 그 소리를 되풀이하였다.
어쨌거나 이로써 백제땅에 세운 당나라 도독부는 그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었고,
신라는 백제의 사직을 멸한 지 12년 만에 드디어 그 토지와 백성을 모두 차지하는
남역 평정의 대숙원을 이룩하였다.
웅진도독부를 멸한 직후인 그해 7월,
고구려 내지에서 활약하던 다물군의 일패가 당군이 만들어놓은 해자와 높은 보루를 건너
신라로 투항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투항한 다물군의 장수는 고연무와 백포정 이었는데,
이들의 휘하에는 전날 설오유를 따라갔던 신라 군사 다수가 섞여 있었다.
의주와 압록수에서 다물군을 지휘하던 고연무는 형세가 불리해지자
잠시 백산(백두산)으로 달아나서 말갈의 한 변방에 몸을 의탁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는 동모산 으로 건너간 뒤에 유민들을 끌어 모아 따로 한 나라를 세우자는
대중상과 고은우의 뜻에 반감을 품고 있다가 마침 묘향산 일대에서 다물군이 맹위를 떨친다는
소문을 듣고 설오유와 살아남은 신라군 4천여 명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고연무가 묘향산에 와서 보니 다물군의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백포정 이었다.
안승이 떠난 뒤 해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백포정은 그의 고향인 묘향산 서편에서
장정들을 모아 다물군을 조직하였는데 그 숫자가 4, 5천을 헤아렸다.
고연무는 백포정을 통해 안승과 검모잠이 신라로 망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묘향산을 근거로 당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한때는
그 위세가 평양의 설인귀를 위협할 정도로 크게 창성했다.
이에 고간은 당군 1만을 이끌고 평양으로 달려왔고,
이근행도 거란과 말갈족으로 구성된 3만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에 이르러
여덟 개의 군영을 짓고 주둔하다가 일시에 다물군을 공격했다.
달장이나 계속된 이 싸움에서 대패한 고연무는 마침내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안승이 있는 신라에 몸을 의탁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이 당군에게 쫓겨 다급하게 신라의 국경을 두드렸을 때는 한때 1만을 헤아렸던 군사가
1천에 지나지 않았으며, 왕명을 받고 이태 동안이나 고구려의 구토를 누볐던
신라 장수 설오유도 고국의 지척에서 목숨을 잃고 난 뒤였다.
소식에 접한 법민은 고연무 일행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사신을 보내
안승이 거처하는 금마저에 가서 살도록 허락했다.
이 사실은 곧 당주의 귀에 이르렀고, 이치는 크게 노하여 고간과 이근행에게
신라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간과 이근행은 휘하의 정병 2만을 추려 배에 태우고 평양을 출발해
백제의 옛 땅인 무주의 굴내(屈奈:함평)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파죽지세로 동진하며 신라의 한시성(韓始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단숨에 마읍성(馬邑城)까지 차지한 뒤 백수성(白水城)에서
5백 보쯤 떨어진 곳에 병영을 설치하고 신라군과 대치하였다.
백수성은 섬진강변의 토성으로 그곳이 무너지면 거열주(거창)와 거타주(진주)가 두루 위험하였다.
이에 도독부를 멸한 뒤 줄곧 웅진에 머물며 유민들을 진무하던 무수와 인수 형제가 백금서당과
장창당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갔고, 금성에서도 죽지와 흠돌을 상장군으로 삼아 원군을 급파했으며,
금마저의 안승도 친히 검모잠과 고연무, 다식 등을 거느리고 와서 신라군과 합세하였다.
백수성 싸움에서 신라군과 고구려군은 한 덩어리가 되어 당군을 상대로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전장에서 취한 적군의 수급만도 물경 4천여 두에 달했고, 노획한 말과 병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로지 대승으로만 끝날 뻔한 이 싸움의 말미에 또다시 이상한 일 한 가지가 일어났으니,
바로 퇴주하는 적을 전멸시킬 수도 있었던 석문(石門)에서 별안간 당군의 역습을 받아
신라 장수 여러 명이 오히려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백수성에서 쫓긴 적들이 달아날 길은 동쪽의 석문곡과 서쪽의 못 골이라 불리던 커다란 늪지였다.
당초 신라 장수들이 백수성에 모여 계책을 낼 때 적이 어느 쪽으로 달아날지 알 수가 없으니
미리 약간의 군사를 양쪽에 숨겨두었다가 적이 나타나면 불을 피워 신호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석문에서 실낱같은 불길이 점점이 피어올랐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던 신라군들은 당연히 아무런 의심 없이 석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신라군이 맹렬한 기세로 석문곡을 들이쳤을 때 그곳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횃불이 솟아오르며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지더니
수백 명의 활을 든 궁수들이 일제히 나타나 비 오듯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었다.
이 바람에 목숨을 잃은 신라의 장수로는 죽지의 부장인 아찬 능신과 사찬 산세,
남원 태수 두선(豆善) 등이 있었고, 흠돌을 따라다니며 여러 차례 무공을 세운 양신도
수십 개의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계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일은 죽지와 흠돌이 눈에 불을 켜고 당군과 싸워 고간의 편장인
본열주 장사(本烈州長史) 왕익(王益)을 생포함으로써 사단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아군의 계책을 적에게 알려준 자는 마읍성 성주로 있던 급찬 원천(原川)이란 자였다.
원천은 의관의 아우인 달관의 처족이요,
흥원의 사위였는데, 그 자신 본래부터 당과 대항하려는 법민왕의 정책에 반감을 가진
친당파이기도 했지만 변변히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채 맡은 성을 잃고 나자
문책을 당할 일이 두려웠다.
게다가 그는 백수성 성주인 내마 김시득(金施得)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원천은 시득이 백수성에 부임해오자 사람을 보내 몇 번이나 주연에 청하였는데,
그때마다 시득이 갖가지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자 드디어는 불같이 역정을 내었다.
“제 놈이 기껏해야 6두품 내마 주제로 내 쪽에서 청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부임 인사를 와야 도리거늘
어찌 이리도 무례하단 말인가!”
진골인 원천은 이때부터 시득에게 버릇을 가르쳐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시득은 대체 어떤 자이냐?”
원천이 시득의 뒤를 적간하기로 결심하고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그 출신이며 가계를 묻고 다녔으나 좀처럼 아는 사람이 없어 더욱 무시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는 시득이 성민들에게 사역을 부과하고 강물을 끌어들여 해자를 파는 공역을 일으키면서
도움을 청하자,
“미친놈이다.
양적이 이미 망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해자를 판단 말이더냐?
보나마나 그놈은 쓸데없는 수고로 공을 탐하는 작자가 틀림없다.”
하고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원군 태수에게 시득이 함부로 성민들을 괴롭히고
명분 없는 역사를 일으킨다고 고발하니 태수 두선이 시득에게 문서를 보내
해자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한 일도 있었다.
마읍성에는 초지가 많아 말 기르는 목장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주변 성현에서 군마를 요청하면 대개 성주나 현령의 서신 한 장으로 내어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원천은 시득의 요청을 번번이 묵살하고 태수의 인장을 얻어 오라며 골탕을 먹였고,
또 말을 주더라도 제일 하치만을 골라 주었으며,
그조차도 수령을 할 때는 성주를 직접 오라고 하니 시득이 말을 얻으려고 여러 차례 다리품을 팔곤 했다.
그런데 마읍성이 당군의 공격을 받고 불과 반나절 만에 떨어져 원천은 하는 수 없이 백수성으로
도망가서 시득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원천의 마음 같으면 시득이 맡은 백수성도 단번에 요절이 났어야 좋겠는데 시득은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게 대처했다.
우선 성안의 장정들을 동원해 중단한 해자 공역을 금세 끝마치는가 하면,
성루에 수백 개의 깃발을 촘촘히 늘여 세우고 성민들에게 현란한 옷을 입힌 뒤
열을 지어 성루를 거닐게 하니 당군은 백수성에 군사가 구름같이 운집한 것으로 믿어
좀체 해자를 건너오지 못했다.
시득이 그렇게 시일을 끄는 사이 각지의 원군들이 차례로 당도하여 결국에는
백수성이 초반의 대승을 거두는 데 본영(本營)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되자
원천으로서는 스스로의 죄가 더욱 커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시득은 당군과 싸우는 내내 많은 계책을 내어 번번이 공을 세웠고,
직접 말을 타고 나가 원군들도 놀랄 만큼 용맹을 떨치므로 급기야는 여러 장수들로부터,
“자네 같은 인물이 어찌 고작 변방 성주의 자리에 있었더란 말인가?”
하는 찬사까지 들었다.
이에 원천은 불안감과 시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평소 친분이 있던 아찬 대토를 찾아갔다.
죽지의 휘하에서 기병을 인솔하던 대토는 이때 백수성 동쪽에 따로 병영을 설치하고 있었다.
원천은 대토에게 만일 당군을 전멸시킬 것 같으면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성주의 걱정하는 바를 내 어찌 모르겠소.”
달관의 처족이요 흥원의 사위인 원천을 대토는 깍듯이 대접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세가 당과 사생결단을 내자는 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어찌하겠소.”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던 봉변을 겪는 까닭은 북방의 고구려 반란군들이 당군에게 쫓긴 나머지
우리에게로 투항해왔기 때문이오. 하나 장군도 알다시피 고구려는 누대에 걸친 계림의 원수요,
당나라는 우리의 우방이며 혈맹인데, 당에 불복한 고구려 여중을 우리가 거둔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소.
당군이 반란군을 쫓아 우리 땅으로 들어온 것은 신발을 물고 달아나는 개를 쫓아
이웃집의 울을 침범한 것과 무엇이 다르오?
그런데 신발을 문 개는 숨겨주고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을 박멸시켜 버린다면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대체 우리의 우방인 당군을 석문과 못 골에서 전멸시키자는 계책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오?”
“백수성 성주가 꾀를 냈다고 들었소만.”
“내 진작에 그럴 줄 알었소!”
원천은 안색이 벌겋게 달아올라 한동안 시득을 칡 씹듯이 씹고 나서,
“지금까지의 전과만 가지고도 앞날이 꽤나 걱정스러울 판인데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를 졌다고 퇴각하는 군사를 쫓아가 전멸까지 시킨단 말씀이오?
그랬다가 당나라가 총력을 기울여 공격이라도 해오는 날엔 하찮은 시득 따위가
무엇을 어찌할 수 있겠소?
싸우는 것도 용기지만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둘 줄 아는 것이 참된 용기외다!
새털같이 작은 시빗거리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국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천하의 판세를 읽지 못하는 소인배들의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대토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한참을 앉았다가,
“무슨 좋은 방법이 있거든 공이 나서서 한번 막아보오.”
하였는데, 그 소리에 힘을 얻은 원천이 밤새 궁리를 하다가 옳거니,
무릎을 치고 생각해낸 것이 시득의 계책을 넌지시 당에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는 사로잡힌 당군 포로 한 사람을 가만히 풀어주며,
“우리 계림에는 당과 화친하여 지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나 상국을 업신여기는 무리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예전과 같은 양국의 선린을 도모하고 군사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아보고자 군령을 위반하고 충절을 바치는 것이니
너는 이러한 나의 뜻을 윗 전에 알려 하찮은 반란군의 일로 양국의 오랜 우애가
더 이상 금이 가는 것을 막도록 하라.”
하고는 고간에게 전하는 서신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정작 계책을 반출하고 나서도 그는 사태가 그 지경에까지 이를 줄은 미처 몰랐다.
도망가기에 급급한 당군들이 감히 장계취계(將計就計)로 역공을 감행하리라곤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저 꼴사나운 시득이 영웅이 되는 것과 당군이 전멸하는 사태만은 막아보자는
단순한 뜻에서 벌인 일이었는데, 결과가 너무도 엄청나게 나타나자
원천은 스스로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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