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2. 그림자와의 전쟁

오늘의 쉼터 2014. 12. 4. 01:00

   2. 그림자와의 전쟁

 

 

 

   (1)

 

 


바다는 잔잔한 물결 위에 햇살을 받아 유리 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빛을 반사해 내었다.
바다 위에 두 척의 고기잡이 배가 떠 있었는데 돛도 없는 기다랗기만 한 배였다.
두어 명의 원주민들이 배 안에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따스한 바람이 부드럽게 몸을 스쳐 지나자 바다 냄새가 났다.
짜고 비린 듯한 냄새였는데 한낮에는 열대의 나무향과 흙내음이 뒤섞인 조금은 매운 듯한 냄새가 섞여 풍겨 온다.
베란다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던 김원국이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세 살차리 그의 아들 태훈이 다가온 것이다.
반소매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태훈이 그의 다리 한쪽에 기대고 섰다.

"아빠, 고기 잡아?"

토실토실한 팔을 들어 바다 가운데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그를 을려다본다.

"그래, 고기 잡는다. "

며칠 전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태훈에게 고기를 잡아 주었다.
김원국은 태훈을 들어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순한 아이였다.
몸은 건강하여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는데 김원국을 닳았다.
하지만 얼굴 생김과 성품은 장민애를 닳은 모양이었다.
눈매 하나만 김원국과 비슷할 뿐 오똑한 콧날과도톰한 입술이 어머니를 닳았고,
아이가 온순해서 말썽을 피운다거나 를 쓰지도 않는다.

"아빠하고 고기 잡으러 가자."

바다를 바라보며 말하자 태훈이 머리를 끄덕였다.
앞으로 쭈욱 뻗은 두 발을 물장구를 치듯이 흔들고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빠, 배 타고."

"그래, 배 타고,"

장민애가 베란다로 나왔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참이라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긴 머리를 뒤쪽으로 둥글게 말아올려 놓아서 목덜미가 드러난 산뜻한 모숩이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 웃음을 띄고 있었다.

"태훈이가 또 배 타자고 그래요?"

"그래, 지난뻔에 재미있었던가 봐."

장민애가 옆쪽의 의자에 앉았다.
그들의 저택은 섬 한복판의 숲속에 세워져 있었으나 지대가 높아 모래사장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은회색의 모래사장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고 파도가 부드럽게 밀려와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물러났다

"서울에서 왜 큰 사건이 일어났어. 어젯밤에 강만철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김원국이 말했는데 가벼운 말투였다.

"곧 해결이 된다고 하지만 조금 꺼림칙해. 다른 때도 아니고 지금은 안정되어 가는 시기여서."

"당신이 가봐야 하나요?"

김원국의 무릎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태훈을 안으면서 장민애가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은 일년에 한번 정도 방문하듯이 들러 열흘쯤 묵다가 돌아오곤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한 지도 3년째가 되어서 이제 바다와 햇볕,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이곳은 그들의 안식처였고 태혼이가 태어난 곳이었다.
만탐섬은 둘레가 4킬로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조그만 섬이었고 원주민은 500명쯤 되었다.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성품이 따뜻하고 낙천적이어서 장민애는 금방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김원국은 그들에게 조그만 학교와 병원, 공회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 주었고

 어선도 두 척 사서 빌려 주었다.

"나는 이제 손을 뗀 사람이야."

김원국의 손이 햇볕에 그으른 장민애의 어깨를 감바 안았다.

"일이 잘 끝나기를 바래야지. 나도 이곳을 떠나기가 싫어, "

장민애가 목덜미에 놓여진 그의 손가락이 간지러운지 어깨를 치켜세웠다.
3년 동안 만탄이라는 이 섬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자카르타에서 100킬로미터쯤 떨어진 이 섬을 김원국이 사들였을 패 나뭇잎이 덮인 집에 사는
원주민들은 원시인이나 다름없었다.
다 해어진 선전용 셔츠를 입고 쭈그러진 뉴욕 양키스의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어부도 있었으나

문화 시설은 한군데도 없는 섬이었다.
김원국은 자재를 들여와 원주민들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고 이제는
인근에서 제일 아름답고 문화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섬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바쁘게 보낸 3년이었다.
 원주민들은 대형 어선 두 척에서 잡는 수산물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장민애가 손을 들어 어깨 위에 놓인 그의 손가락을 쥐었다.

"저녁에 마을에서 축제가 있어요. 참석하시겠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떠을랐다.
검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이쪽으로 향해져 있고 물기에 젖은 입술사이에서 가느다란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김원국은 그녀의 이마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뒤로 쓸어 넘겼다.

"물론 가야지, 신년 축제인데."

"올해는 작년보다도 더 요란할 거예요. 지난번 까로 폭죽까지 들여왔다고 해요."

"당신은 여왕이 되겠군, 오늘 밤에."

"당신은 왕이구요."

태훈이 뒤치락거리더니 엄마의 팔 안에서 벗어나나무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쪽은 잔디밭이다. 장민애는 태훈의 됫 모습에서 시선을 몌지 않았다.
계단은 20개가 넘었고 지난번에 태훈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다.

"내버려 둬. 지난번에 떨어졌던 경험이 있어서 저놈도 조심하고 있어 ."

태훈의 됫모습에 시선을 준 채 김원국이 말했다.
그녀의 어깨에 얹은 손에 가벼운 힘이 더해졌다.

"무서워하지 않고 다시 내려가고 있어. 저것 봐, 난간을 잡는군."

그의 손을 떨치면서 장민애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태훈은 반이상을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두 계단쯤을 남겨 놓았을 때 태훈이 난간을 잡고 고개를 돌려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웃음 뙨 얼굴로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장민애를 바라보았다.
장민애가 그를 향해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신 아들이에요."

김원국이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장민애가 그의 무릎 위로 쓰러지듯 앉았으므로 그녀의 젖가슴이 얼굴을 스쳤다.
향긋하고 익숙해진 살램새가 났다.
눈발이 짙게 내리는 늦은 오후였다.
중부 고속도로의 곤지암 톨게이트를 빠져 나온 검정색 대형 승용차가 횐 눈가루를 뒤쪽으로
흩날리며 이천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 있어서 도로 위에 쌓인 눈이 얼어붙기 시작하고 있었다.
눈발이 내리는 평일 오후여서 차량의 통행은 많지가 않다.
3차선 도로였으나 2차선과 3차선 위에 서너 대의 차량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뽄이다.
대형 승용차가 자욱한 눈보라를 휘몰고 달려갔으므로 옆쪽 차선을 달리던 차량들은

저도 모르게 속력을 떨어뜨렸다.
승용차의 됫좌석에 앉아 있던 이무섭이 팔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오후 4시 10달이었다.
 5시 약속이었으니 늦지는 않을 것이다.
 짙은 눈샙 밑의 눈을 들어 힐끗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쏘는 듯한 시선이었다.
검고 네모난 얼굴에 두툼한 입술이 꾸욱 닫혀졌고 넓은 어깨의 둥근 근육이 양복을

팽팽하게 부풀러고 있었다.

"시간이 있다. 속력을 내려."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이무섭이 짧게 말하자 운전사가 어깨를 세 우면서

곧장 브레이크에 발을 대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윈도 브러시 사이로 보이는 시야는 50미터도 안될 것이다.
이무섭은 휘몰려 왔다가 차창에 부딪치는 눈발을 바라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비엔 호아의 전투에서도 총탄이 저렇게 쏟아져 내렸었다.
한국의 신문에는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1개 대대의 공격을 받은 소대원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세 명이었다

소대원이 전멸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무섭은 중위에서 대위로 특진이 되었고

화랑무공 훈장을 받았던 것이다.
베트콩의 전사자도 200명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세상물정을 몰랐던 때였다. 조국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던 시절이다.
이무섭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팔짱을 끼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세가 되어 있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과의 차이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대한민국은 책임 있는 통치자가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조국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만이 책임 있는 통치를 할 수가 있다.
승용차는 속력을 떨어뜨리더니 오른쪽의 샛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대령으로 예편한 지 일년째였다. 20년 동안의 군생활이었으나 그것은 이제까지의 전 일생을
군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고둥학교를 졸업하고 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fl산하면 24년이 넘는다.
군인 이외의 직업이나 군복을 벗은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감작스러운 예편은 충격이었다.
승용차는 하얗게 눈이 덮인 산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타이어에 깔리는 눈에서 빠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길가의 나뭇가지 위에는 횐 눈이 두툼하게 덮여 있었고 차 소리에 놀란 장끼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낮게 날아갔다.
앞쪽에 횐 눈에 덮여 있는 이층 양옥집이 보였다.
샛길의 끝을 자르듯이 육중한 철문이 닫혀져 있었는데 사내 두 명이 문 옆에 서 있었다.
승용차가 다가가자 사내 한 명이 안쪽으로 문을 열어 젖혔다.
문 가에 서 있던 사내가 그를 향해 절도 있는 군대식 경례를 해왔다.
이무섭은 머리를 돌렸다.
양복 차림의 군대식 경례는 어색했고 그것을 보면 언짢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신발에 묻은 눈을 털고 현관으로 들어서자 사내 한 명이 서 있다가 그의 코트를 받아 들었다.
넓은 응접실은 따뜻했고 한쪽 벽에 만들어 놓은 페치카에서 장작 불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응접실의 소파페서 일어나는 것은 정장 차림의 박용근이었다.
그의 옆에는 안재일이 얼굴 근육을 굳히고 서 있었다.

"박 사장, 일찍 오신 모양이군요.난 시간 맞추어 오느라고."

그들을 향해 머리를 끄덕여 보이면서 이무섭은 소파의 상석으로 다가가 앉았다.
박용근과 안재일이 그를 따라 앉자 이무섭이 박용근을 바라보았다.

"내일 계획은 차질이 없지요?"

"물론입니다. 차질 없습니다. "

박용근이 상체를 반듯하게 세웠다.

"저쪽이 지방에서까지 애들을 불러 모았지만 갈팡질팡 하고 있어서 .5_. "

"우선 내일 놈들에게 전화는 걸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놈들이 저 회들의 조건을 받아들일 리는 없습니다.
받아들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함정이지요."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는 이무섭을 향해 이번에는 안재일이 입을 열었다.

"경찰들이 놈들의 주변에 좌악 깔려 있어서요,
그것이 오히려 놈들체게 행동의 제약을 주고 있습니다. "

"몇 명이나 돼요?조웅남이나 강만철이가 끌어 모은 애들이?"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면서 이무섭이 물었다.

"부산, 대구, 광주,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모은 인원이 천 명쯤 됩니다. "

라이터를 손에 쥐었던 이무섭이 다른 손으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었다.

"사흘 동안에 천 명을 모으다니 대단하군,"

"변두리의 여관이 만원입니다. 그놈들 때문에요."

박용근이 그를 향해 운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곳에나 애들을 풀어 놓고 있어서요, 계획에는 차질이 없을 겁니다. "

이무섭이 뒤쪽에 서 있는 사내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걸 가져와라."

사내가 그들에게로 다가오는 동안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검정색의 묵직하게 보이는 비닐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사내가 말없이 물러갔다.

"이것, 준비된 자금이오."

턱으로 가방을 가리키면서 이무섭이 말했다.

"돈으로 부하들을 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
하지만 기반이 굳지 않은 조직이라 어쩔 수 없어."

그의 검은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고 말투는 잘라 던지듯 딱딱했다.

"하지만 배신하지는 못할 거요. 돈으로 끌어들였지만 일단 조직원이 되고 나면

박 사장이 장악하게 될테니까,
박 사장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박용근이 조그맣게 머리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우리 조직은 김원국의 조직보다도 더 단단하게 구성될 겁니다.
지금도‥‥‥‥

"됐습니다. "

그의 말을 자르듯이 이무섭이 머리를 들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 드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날 너무 믿지 마시고."

이무섭이 팔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눈치를 차린 박용근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안재일이 가방을 쥐었다.
강만철은 신문을 들고는 있었으나 활자를 읽는 것은 아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어서 네모난 턱의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진 데다가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웅남은 아내인 김경지의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밤 9시가 넘었지만 오늘은 아무도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조직은 비상에 걸려 있는 것이다.
김칠성은 부하들과 함께 밖에 나가 있었다.
천 명이 넘는 부하들이 소집되어 있었지만 중요한 유흥업소나 음식점, 호텔 둥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다.
조웅남이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입맛을 다셨다.

"여편네가 정신을이 얘기만 허고 내 얘기는 들어야 말이지.소릴 지르은 울기부터 허니
참말로 답답허고만,"

힐끗 그를 바라본 강만철이 시선을 내렸다.

"옛날에는 안 그렸는디 말여. 시집오고 나서 달러졌당게."

강만철이 신문을 접어 옆쪽으로 던졌다.

"여편네 타령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우린 놈들한테 당하게 되어 있다. "

조웅남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놈들, 이것이 조직간의 갈둥이라구?
 어느 누가 갈등을 일으킨단 말이 야?"

"야, 언성 높이지 마라. 혈압 오른다. "

눈을 치켜뜬 조응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리가 언지부터 경찰을 믿고 있었느냔 말이여?
어린애처림 무신일 나은 경찰헌티 신고허고 도와달라고 허다니."

강만철이 어금니를 물었다.
경찰에게 업체들의 보호를 요청한 것은 강만철의 지시였다.
그러나 경찰측은 각 해당 경찰서에 경계 지침만 내렸을 뿐 특별하게

순찰이나 경비를 강화시키지 않았다.
그들도 조직 내부의 싸움으로 믿는 모양이어서 오히려 이쪽의 움직임에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씨발놈들, 오는 거여? 안 오는 거여?"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조웅남이 투덜거렸다.
시계는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대체 우리를 만나서 어쩌겠다는 거여? 건방진 놈의 시키,"

"우리가 그 동안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어.나사가 풀려 있었단 말이다. "

낮은 목소리로 강만철이 말했다.

"애들도 눈알에 힘이 들어 있지가 않아."

"지기미, 상대방이 어떤 놈인지나 알어야 눈깔을 똑바로 뜨거나 말거나 하지."

그러자 노3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부하 한 명이 들어 서더니 문 옆으로 비껴 섰다.

"사장님, 경찰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시오."

어느새 찌푸린 얼굴을 편 조웅남이 커다랗게 말하면서 일어섰다.
이정환과 유혁근이 들어서고 있었다.

"밤늦게 고생허시는구만, 잉."

그들과는 구면인지라 조웅남이 넓적한 손을 내밀었고 이정환과 유혁근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떠올랐다.

"퇴근들도 못하시고 계시는군요."

이정환이 강만철과 조웅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인사를 마친 그들은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본부에서 긴장하고 있어요.천 명이 넘는 어깨들이 몰려와서 말 입니다. "

두툼한 턱을 들어올린 이정환이 앞쪽에 앉은 조웅남과 강만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회 분위기 문제로 고위층에 보고되면 시끄러워집니다, 조 사장님."

"사회 분위기가 어쩐다고요?"

조웅남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우리는 피해자여. 우리 몸을 보호헐라고 이러는 것인디,
누가 어쩐다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그렇게 끌어 모으면 됩니까?우리도 난처하단 말입니다 "

이정환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경찰이 그놈들을 잡어 준다면 당장에 돌려 보낼 거여.
허지만 당신들은 우리애들 뒤만 졸졸 따러 댕기고 있어 "

"조 사장님, 우리가 놀고 있는 줄 아십니까? 우리도 알아볼 것은 알아보았습니다. "

이번에는 유혁근이 나섰다. 눈을 반짝이며 똑바로 조웅남을 쏘아보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조 사장님 조직에서 제금을 걷으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어허, 이런, 지기미 ."

눈을 치켜뜨교 입술을 반쯤 비틀어 연 얼굴로 조웅남이 유혁근을 쏘아보았다.
"경찰에서도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직 내부에서 일으킨 일이라고 믿숩니까?"

강만철이 상체를 그들 쪽으로 굽히면서 부드럽게 묻자 유혁근이 힐끗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이정환이 입맛을 다시고는 입을 열었다.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윗선에서는 우리하고 생각이 다른 모양입니다. "

"어떻게 말입니까?"

"댁의 조직에서 다시 밤의 세계를 휘어잡겠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요."

"우리가 그러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저 말 몇 마디만 해도 될 일이었어요.
그렇게 사건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나나 여기 조사장이 관리하는 업체들을 상대로 해요?"

"그리고 그것을 핑계로 우리가 애들을 모아서 쿠데타라도 일으킨다고 합니까?"

"어허, 심한 말씀."

이정환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리며 강만철을 향해 몸을 돌렸다.

"현실적으로 보아서 지금은 상대가 없는 상태요.
 당신들에게 그런 짓을 할 만한 세력도 없고. 그러니 위에서 생각하는 것은 뻔해요.
당신들 내부의 갈둥이거나, 또는‥‥‥‥

"또는? 또는 뭐여?"

이제 조웅남도 불쑥거리는 말투가 아니다.
검은 얼굴을 굳히면서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쇼를 헌단 말이여?"

"물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 사장님."

유혁근이 말을 받았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도 그런 상황을 설명해 드리려고 온 것인데
그쪽에서 대뜸 반발하시니 이야기가 어색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어쩌건간에 곧 놈들이 나타날 거여."

조웅남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놈들이 나타나은 잡어 줘이기 전에 댁들헌티 먼저 안면을 뵈여
줄텡게. 그러은 그 윗분인가 윗놈인가도 알게 되겄지."

이정환과 유혁근이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오덕호가
어깨를 치켜올리며 김영수를 바라보았다.

"개자식들, 여기 와서 윌 하겠다고.
그눔들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뭘 좀 뜯으러 온 것 아니야?"

"저 앞에 가는 비계는 솔찬히 높은 놈이야. 경찰청의 과장이라고 하던데."

김영수가 아는 체를 했다.
하품을 하고 난 오덕호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벌써 10시가넘었어 교대 시간이 두시간밖에 안남았는데 잠을 좀 자두어야지 ."

호텔의 로비에 서 있던 그들은 안쪽으로 다가갔다.
빈방을 찾아 잠시라도 잠을 자둘 생각이었다.
그들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가는데 충계를 내려오던 이상석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오덕호, 거기 좀 있어."

머리를 돌린 그들은 이상석의 뒤쪽에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이목구비가 뚜켠한 얼굴에 단정한 신사복 차림의 고태석이었다.
자신들의 직속 형님은 아니지만 강만철의 직속 부하인 고태석을 이곳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고태석이 층계를 내려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을 소리쳐 부른 이상석은 도로 층계를 을라가 보이지 않았다.

"네가 오덕호냐?"

고태석이 얼굴에 웃음을 띄며 물었다.

"네, 형님."

이제까지 고태석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오덕호는 와락 긴장이 되었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번 사건과 관계된 일인지도 몰랐다.
옆에 서 있던 김영수도 주춤거리며 고태석을 바라보았다.
고태석이 그것을 눈치챘는지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너, 여기 흥보실의 김선주씨 경호를 맡고 있다면서?"

"f1? 01, 형님."

오덕호가 옆의 김영수를 바라보았다.

"여기 얘하고 한팀입니다. 두 팀이 열두 시간씩 교대로 경비를 합니다. "

"그건 알고 있어,"

고태석이 그들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너희들이 백동혁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웃음 띈 얼굴로 고태석이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입장이 난처해서 그러는데, 왜냐하면 내가 김선주하고 친한 사이라서 말이다. "

"아4l네, 형님 ."

김영수가 먼저 머리를 커다랗게 8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형님."

"선주가 나한테 부탁을 하는데 동혁이 그놈은 빡빡해서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체면 못 차리고 너희들한테 왔는데‥‥‥‥

"잘 알겠습니다, 형님."

다시 김영수가 말했다.

"저희들이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회사 업무를 볼 때는 괜찮다 선주도 사생활이 있을 것 아니냐?
남자 친구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까놓고 말하지만 내가 선주하고 그런 사이는 아니다. "

"네, 형님."

"그러니까 걔가 지금은 사적인 일이라고 말했을 때는 비켜 주란 말이다. 간단한 일이야."

"잘 알겠습니다, 형님."

맡아 놓고 대답하는 것은 김영수였고 오덕호는 잠자코 그를 바라 보고만 있다.

"내가 너희들 신세는 잊지 쟈겠다. "

고태석이 두 손을 들어 오덕호와 김영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잘줬어, 잠을 실컷 잘 수 있게 되었어. 우리 순서 때에는 어디 사우나나 갔다 와야겠다. "

김영수가 밝아진 얼굴로 말하자오덕호는 몸을 돌렸다.

"야, 너 어디 가는 거야?"



계단 쪽으로 향하는 오덕호에게 김영수가 소리쳐 물었다.

"동혁 형님 찾으러."

"왜?"

계싼에 발을 디딘 오덕호가 그를 바라보았다.

"씨발놈아 보고히러 간다,왜?이 간신 같은 놈."

"너까지 싸잡아서 보고하기 전에 냉큼 따라와, 이 새끼야."

김영수가 정신없이 두 손을 휘저으며 계단 쪽으로 다가와 따라붙었다.

"지가 뭔데 동혁 형님이 지시한 것을 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오덕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김영수를 노려보았다.

"엄연히 우리는 소속이 다르단 말이야. 우리는 개백정 소속이라구"

김영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침을 삼켰다.
리즈 호텔의 로비에 들어선 이재영은 온몸을 부르르 떨고는 뻣뻣해진 어깨를 폈다.
밤 10시가지난시간이어서 로비는서너 명의 외국인이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한산했다.
벽 쪽에 붙여져 있는 대기용 의자에 두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시선이 마주치자
일제히 머리를 돌린다.
호텔의 직원같이 보였다.
이재영은 어깨에 맨 커다란 가방을 한번 추스르고는 곧장 프런트로 다가갔다.
자신의 구두가 대리석의 바닥에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이 듣기 좋았다.
어깨가 넓은, 회색 바탕에 검정 무의가 있는 긴 모직 코트를 걸치고 검정색 바지 차림이었다.
긴 머리는 물결 모양의 웨이브를 해서 어깨 위에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사람의 시선을 끌 만한
차림이고 미모였다.
프런트 당번은 두 명이었다.
그들은 이재영이 로비의 중간쯤에 왔을 때부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가선 이재영이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맑은 눈이 생기있게 반짝이고 진홍빛 려스틱를 바른 입술 사이로 횐 이가 드러났다.

"방 있지요? 아까 저녁때 예약을 했는데, 이재영이라구요."

"이재영씨시라구요?"

둥근 얼굴의 담당 직원이 나전다.
 그는 예약 노트를 펼쳐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되어 있군요. 더블 침대로 하실까요? 아니면 트윈으로?"

"더블로 해주세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아래충이면 좋겠는데.
전 될 수 있으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지 않아요."

"좋숩니다. 4충에 방이 일는데‥‥‥ 3층까지는 사무실이어서요
괜찮으십니까?"

"고마워요." -

이재영의 운음에 만족한 듯 담당 직원은 숙박 카드를 내밀며 얼굴을 폈다.
머리를 숙이고 숙박 카드를 써 내려가는 이재영의 얼굴을 바라보던 직원은
그녀가 머리를 들자 시선을 비꼈다.
이재영은 열쇠를 받아 들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됫모습을 바라보던 둥근 얼굴의 직원에게 옆쪽에 서 있던 직원이 다가왔다.

"며 칠간이o 오늘밤만인가?"

"아니, 일주일이야."

"저런,손가방 한 개만 덜렁 가지고 와서 일주일을 묵는단 말이야?"

"글쎄‥‥‥‥

"사업하는 것 같구만 그래 ."

"그렬게 뵈지는 않아, 분위기가."

그러자 턱이 긴 얼굴의 직원이 웃었다.

"이제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게 뵈는 여자가 그런단 말이야, 이 친fof. "

벽 쪽에 앉아 있던 사내 한 명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둥근 얼굴의 직원이 잠자코 이재영의 숙박 카드를 그에게로 건네 주었다.

"이재영, 스물여섯, 직업 없고, 주소가 은평구 신사동이라."

사내가 중얼거리며 숙박 카드를 읽더니 머리를 들었다. 짧은 머리에 눈이 매섭다.

"서울 사는 년이 이런 일급 호텔에 일주일이나 묵어? 더구나 흔자서 말이야."

"글쎄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등근 얼굴이 눈을 깜박이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장난기는 사라졌다.

"방으로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여자들이 간혹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왜 4층을 주었어?"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다고 하더군요."

짧은 머리가 찬찬히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 손님어어서요. 그리고 다른 충은 거의 다 차 있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둥근 얼굴의 직원은 이리저리 머리를 돌렸다.
팎은 머리의 사내는 잠자코 몸을 돌렸다.
벽 쪽에 앉아 있던 다른 한 사내가 이쪽을 보고 서 있었다.

목욕탕은 일급 호델답게 장식도 훌릉했지만 넓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재영은 만족한 얼굴로 욕조의 더운물 스위치를 누르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옆의 의자에 앉은 그녀는 발을 흔들어 구두를 벗어 던졌다.
스타킹에 싸인 갸름한 발이 드러났다.
발가락을 꼬물거려 발의 피로를 풀던 그녀는 손을 뻗어 전화기를 쥐었다.
다이얼을 누르자 곧 신호가 갔다.
한쪽 어깨를 올리면서 이채영은 한 손으로 코트를 벗었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엄마, 나야."

"그래, 지금 어디냐?"

"나, 리즈 호텔에 있어. 41쓰신."

"아니, 거긴 뭐하러? 나, 도대체‥‥‥‥

"엄마는 참."

이재영이 어깨를 들썩이며 입술 끝으로 웃었다.

"나,취재하러 온 거야.부장한테 일을받았어, 이번조직사회 건을 특집기사로 내려고."

"그런데 거기는 왜?"

이재영이 이번에는 눈샙 끝을 좁혔다.

"여기가 그 사람들의 본거지란 말이야, 본부 알겠어?"

"난 모르겠다. "

"조웅남이란 거물이 바로 아래충인 3층에 있어.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거든? 엄마도 신문 보았지?"

"그래서 네가 어쩌겠다는 거냐?"

"이곳에서 취재할 거야. 경비는 모두 신문사에서 지불하니까 걱정할 것 없어."

"언제 집에 들어와?"

"예정은 일주일쯤인데, 모르겠어. 여기서 신문사를 다닐테니까.
내일쯤 집에 들러서 옷가지를 가져올테야."

"에이구 난 모르겠다. "

"걱정 마, 엄마."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재영은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서둘러 벗었다.

옷가지를 방안에 어지럽게 흐트려 놓은 이재영은 화장실로 들어섰다.
화장실 전면에 붙여진 커다란 거울에 자신의 알몸이 비치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둥근 어깨와 쭈욱 뻗은 팔의 곡선과 알맞게 솟은 젖가슴이 보였다.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은 부드러웠고 단단하고 건강한 허벅지 안쪽에는 짙은 숲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랑스런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기있는 검은 눈과 오똑한 콧날 밑의 약간 얇은 듯한 입술은 굳게 닫혀져 있다.
바야흐로부장인 안청준에게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그녀의 꿈은 사회부 기자였다.
그러나 문화부에서 2년을 지내다가 두 달 전에 시힉부의 증원으로 행운을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직사회의 내막을 캐어 보라는 안청준의 오더를 받게 되었다

만족한 듯 어깨를 내려뜨리면서 길게 숨을 내쉰 이재영은 욕조로 다가갔다.
물은 알맞게 따뜻했으므로 그녀는 욕준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기대고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조웅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그 주변의 사람들도 조사할 것이다.
데스크에서는 모든 협조를 해줄 것이다.
콘티넨털 호텔의 오정문 사장이 탄 차가 논현동의 주택가로 들어섰을 때는 새벽 2시가 되어 있었다.
4☞대 후반으로 마른 몸매의 오정문을 호텔 관리만 20년 가깝게 해온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골목의 끝 쪽에 있는 자신의 이충 양옥집이 보이자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는 하품을 했다.

리즈 호텔의 조웅남은 호텔에서 밤을 새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쪽은 조웅남과는 입장이 다르다.
콘티넨털 호텔의 실 소유주는 김원국이었다.
조웅남도 10퍼셀트쯤의 지분을 갖고 있었으니 그도 소유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정문은 무거운 눈꺼풀을 손등으로 비비면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승용차는 속력을 한껏 떨어뜨리고는 좁은 길을 지나고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오정문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직세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책임을 맡은 것은 콘티넨털 호텔의 경영이었고 호텔은 2년째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누구가 되었건 자신의 입장은 떳떳했고 관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으므로 오정문은
부담을 떨어버릴 수가 있었다.
승용차가 멈추자 앞자리에 타고 있던 사내가 내렸다.
어둠 속에서 두어 명의 사내가 다가오더니 앞자리에 탔던 사내와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모두 조웅남의 부하들이었다.

"사장님, 내리시지요."

밖에서 사내가 문을 열자 새벽의 찬바람이 와락 밀려 들어왔다.

"춥겠구만, 저 사람들."

차에서 내린 오정문이 문 옆에 서 있는 사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은 영하의 추위에 밖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다.

"이럴 것 없이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지."

차의 앞쪽에 앉아 있던 사내가 우두머리 같았으므로 그를 향해 말하자

사내가 어둠 속에서 머리를 저었다.

"안됩니다, 저희들은 여기에서‥‥‥‥

입맛을 다신 오정문이 몸을 돌렸다.
기분이 언짢았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끄가 마악 문 위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발자쿡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럿이 달리는 소리였고 그것은 골목의 입구 쪽에서 이쪽으로 향해 오고 있다.

"뭐야?"

키가 큰 우두머리가 짧게 소리쳤고 다른 사내들이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오정문은 머리만을 돌린 채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사래들의 윤곽이 보였다.
7, 8명의 사래들이었다.
 이쪽보다 서너 명이 많다.

"놈들이다,준비해라,"

키즌 사내가 한 손으로 오정문을 와락 뒤쪽으로 밀어 젖히면서 앞으로 나섰다.
어느 사이에 손에는 짧은 단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것의 횐 날이 어둠 속에서 선뜻하게 보였다.
 달려든 사내들은 조금도 망설이지도,그렬다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좁은 골목이어서 벌려 설 수는 없었으나서너 명 짝을 지어 일제히 달려들었다.
1들의 손에 쥐어진 기다란 무기를 보자 오정문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목을 움츠리고 문기둥에 둥을 붙인 채로 호흡도 멈췄다.
사내들의 휘두르는 몽둥이에서 바람 소리가 났고 퍽석거리며 무엇엔가 부딪치는 소리도 났다.
억눌린 듯한 신음 소리도 들렸는데 그것이 어느 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크게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오정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번득이고 희끗대는 몸체들뿐이다.
시선의 초점이 잡히지 않은 탓이다.
 퍽석 하는 소리와 챌강 하는 소리, 무거운 것이 던져지는 소리들로 가득 찼던

골목 안이 이윽고 고요해졌다.
오정문의 』에 땅이 울리는 듯한 여겆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렸다.
눈을 깜박여 초점을 잡은 오정문의 눈에 두어 명의 사내가 다가 왔다.
 이제 눈앞에 다가선 사내들의 얼굴이 보였다. 조웅남의 부하들이 아니었다.

"여, 여보쇼, 나는‥‥‥‥

온몸을 떨면서 오정문이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하고‥‥‥‥

말없이 다가선 사내 한 명이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것을 치켜들었다.
무겁게 보이는 그것은 쇠몽둥이 같았다.

"아, 이, 이것‥‥‥‥

그 순간에 쇠몽둥이가 그의 어깨를 부수었다.
길게 비명을 지르면서 오정문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내는 다시 쇠몽둥이를 치켜들었다.
  

 

 

(2)

 

"사람 살려!"


골목길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지르던 오정문은 다시 내려쳐진 몽둥이에

다른 쪽 어깨뼈를 맞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공포와 고통으죠 두눈을 부릅뜬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다.


 

"저놈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똑똑히 얼굴을 보아 두었거든요."


 

말끝을 떨면서 진영서가 얼굴을 뻣뻣하게 굳히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두 놈이 들어왔었거든요. 저놈이 그중 한 놈입니다. "


사내는 단단하게 생긴 체격이었다.

오락기의 의자에 앉아 눈앞의 그림판을 쏘아보면서 레버를 부드럽게 아재쪽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백동혁은 머리를 들리고 레버를 힘있게 잡아당겼다.

눈앞의 그림에서 같은 그림이 나란히 세워진 것 같았는데 철거덕거리면서 아래 쪽에서

동전이 쏟아져 내렸다.
힐튼 클럽의 종업원인 진영서는 빠정꼬에 빠져들어서 동료들에게 빌린 돈도 많았고

월급을 달마다 가불해 가는 바람에 안만덕쉐게 야단도 맞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영서는 우연히 들른 천호동의 반달 호텔의 빠정꼬에서 안만덕을 습격했던

사내 한 명을 발견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진영서는 당장에 백동혁에게 연락을 했고 30결도 안되어서 백동혁이 달려왔다.

지금 반달 호텔의 주변은 50명이 넘는 사내들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백동혁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2시 반이었고 30잔 후면 빠정꼬는 영업을 끝낼 것이다.

 기계는 20여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사내와의 사이에는 기계가 열 대쯤 놓여 있다.

사내는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손놀림으로 끊임없이 레버를 잡아당기고 있다.

정신을 집중한 듯 머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가자."


아직 스물 몇 번을 더 잡아당길 코인이 있었으나 백동혁은 밑에 쌓인 코인을 쓸어 담고

카운터로 나왔다.

진영서가 얼굴을 한쪽으로 틀고는 그를 따랐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앞쪽 주차장과 빠찡꼬와 붙은 건물인 호텔의 현관에서

어른거리던 사래들이 긴장한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동혁은 잠자코 주차장의 입구 쪽에 세워 둔 자신의 승용차로 다가갔다.

그놈이 날카가는 재주가 있더라도 이제는 빠져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승용차의 됫좌석에 오른 백동혁은 그에게로 몸을 돌리는 이강일에게 말했다.

"놈은 빠정꼬 안에 있다. 나오면 잡을테니까 애들 준비시켜 "


이강일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진영서와 함께 호텔 쪽으로 다가갔다.
백동'혁은 앞쪽에 있는 카폰을 집어 들고는 다이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칠성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형님, 접니다. "


"그래, 어떻게 되었어?"


김칠성이 다그치듯 물었다.


"지금 놈은 빠정꼬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곧 끝날테니까 밖으로 나오면 잡겠습니다. " 

"놈은 확실해?"

"진영서하고 제가 들어가서 확인했어요. 놈은 혼자 온 것 같습니다. "

"놓치지 마라."

"네, 형님."

"난 호텔로 돌아갈테니까 그쪽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

스위치를 끈 백동혁은 앞쪽을 쏘아보았다.

빠정꼬 안에 들어가 있던 부하가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백동혁이 앉아 있는 곳에서 빠정꼬의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의 호텔과

오른쪽 호텔의 사우나가 한눈에 바라보였다.

부하들이 일제히 움직였는데 호텔 쪽에 tO여 명, 사우나 쪽에서도 10여 명이 진을

듯 서 있고 정면으로는 2란십여 명이 둘러서 있다.
이쪽 주차장에도 10여 명이 서서 그쪽을 지켜보고 있으니만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라도 잡아챌 것이다.
사내 두 명이 오락장을 나서다가 놀란 듯 주춤거리더니

부하들 사이로 몸을 빼고는 도망치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번쩍 머리를 들고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부하들이 와락 그에게로 몰려가는 것이 보였고 한동안

사내의 몸은 부하들에게 가려 보이지가 않았다.

 미식 축구에서 무더기로 태클을 당한 형태가 되어 둥그렇게 사람의 몸뚱이들이 쌓여 있더니

하나씩 위쪽에서부터 부하들이 떨어져 나왔다.
백동혁은 잠자코 앞쪽을 쏘아보았다.

떨어져 나오는 부하들 사이로 바닥에 누워 몸부림을 치는 사내가 보였다.

아직 서너 명의 부하 들이 놈의 팔다리를 움켜쥐고 주먹질을 하고 있다.

서 있던 부하 두어 명이 사내에게 발길질을 하자 몸놀림이 조금 둔해졌다
오락장의 문은 바깥 쪽에서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안쪽의 손님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소동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이윽고 부하들이 사내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아직도 위아래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으나 팔 다리가 묶이고 입에는 횐 수건이 물려져 있다.
백동혁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처음으로 상대방의 실체를 보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드러나리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놈들을 처음 잡았다는 사실에 그의 가슴은 뛰었다.

어쨌든 진영서는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이다.
김칠성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앞에 꿇어앉은 사내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사내는 20대 후반으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흐트러져 내려온 머리칼 사이로 이쪽을 쏘아보는 눈빛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아니다.

금니를 물어 볼의 근육을 판단하게 굳힌 얼굴은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어리를 돌린 김칠성이 옆에 서 있는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하는 일 없이 놀던 놈입니다. 전과도 없구요.

제대한 지 2년 되었더군요. 하사로 제대했습니다. "


백동혁의 말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봉천동에 전세집을 얻어서 살고 있는데 처와 세 살 난 아이가 있습니다. "

 

머리를 끄덕인 김칠성이 사내를 내려보았다.

"최한성, 네가 얼마나 의리 있는 놈인가 어디 나한테 보여 봐라."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김칠성을 올려다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칠성이 머리를 들었다.


"이놈 처자식을 잡아와라.

계집년은 너희들이 돌리다가 못쓰게 되

바닷속에다 넣고 애새끼는 지방 고아원 앞에다 던져 놔."


"알았습니다, 형님."


백동혁이 몸을 돌렸다.


"이 새끼야, 이런 생활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


사내를 향해 김칠성이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처자식이 있다면 그들의 목숨도 함께 걸어 놓아야 하는 생활이다.

네 여편네는 걸레가 되어서 사흘쯤 견디다가 죽겠지만

네 새끼를 살려 준다는 것에는 고맙다고 생각해라."


사내가 백동혁이 나간문 쪽으로 힐끗 시선을 주었다.

문이 열리더니 이강일과 두 명의 부하가 댜가와 김칠성의 뒤쪽에 섰다.

"자, 그럼, 네 몸을 하나씩 븐해하겠다. 괄과 다리의 관절과 근육을 끊을 거야.

사지는 그대로 두고 병신을 만드는 작업이지. 왜 아플 거다. "


팔짱을 끼고 앉은 김칠성이 표정 없는 얼굴로 처한성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네 시체는 여편네와 함께 바닷속에 넣어 주마.

죽기 전에 대한 독립 만세라도 몇 번 불러 보아라."


이강일과 부하들이 다가와 최한성의 어깨를 눌렀다.

이강일의 손에는 커다란 쇠집게가 쥐어져 있었는데

둥근 집게의 머리 부분은 치 이를 악문 공룡의 이빨 같았다.

집게의 벌어진 부분은사람의 괄목 한 개가 들어갈 수 있도록 넓었다.
두 팔이 뒤로 묶여 있었으므로 최한성은 어깨를 굳히면서 머리를 들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적셨다.

김칠성과 시선이 마주치자 최한성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쓸데없는 말 지껄일 것 없다.

네까짓 놈의 정보에 영향을 받을 것도 없고,

그저 잡히면 잡히는 대로 일가족을 몰살시킬 뿐이야."


입술 끝으로 웃으면서 김칠성이 뒤쪽에 있는 이강일을 바라보았다.


"우선 팔부터 하나씩 관절과 힘줄을 잡아 봅아라,천천히 "


최한성은 한쪽 팔에 집게가 물려지는 것을 느졌다.

눈을 부릅뜬 그의 귀에 다시 김칠성의 말소리가 들려왈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야. 될 수 있는 한 오래 들리도록 해라."


찌르는 듯한 아픔이 왔으므로 최한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론찢어지고 갈라지는 듯한 고통으-로 바뀌었다.

집게의 날이 팔의 중간 부분을 죄면서 옆으로 비틀려지고 있는 것이다

집게의 날이 넓었으므로 물린 부분의 고통이 그만큼 넓었고 한쪽으로

비틀리기 시작한 팔은 묶여 있는 안쪽으로 곧 부러질 것이다.

최한성의 얼굴은 물을 뒤집어 쓴 것처림 땀으로 덮였다.

이윽고 그는 입을 딱 벌렸다.
두 눈을 부릅뜬 그가 떠나갈 듯한 비명을 지르자 앞에 앉은 김칠성이 빙그레 웃었다.

그것이 시선에 들어오자 최한성의 머리끝이 전기가 닿은 것처럼 쭈뼛거렸다.


"으아아악!"


이강일이 잠간 힘을 늦추었다가 다시 힘을 주었으므로 최한성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양쪽 어깨를 사래들이 누르고 있어서 어깨를 펼 수도 없다.

최한성이 머리를 겨우 들고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악!"


다시 비명을 지르던 최한성은 김칠성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팔목에서 뚝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뼛조각이 팔 안의 조직 한 부분을 찔렀고

팔이 부러졌다는 것을 의식한 최한성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김칠성이 머리를 』I덕였다.


"하나씩, 하나씩,괄과 다리가 끝나면 목을 부러뜨려 죽여라."


김칠성이 몸을 돌리자 최한성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저, 말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하겠습니다. "


김칠성은 들은 것 같지도 않았다.

방을 가로질러 방문 고리를 잡은 김칠성에게 그가 다시 외쳤다.


"살려추십시오! 내 처자식이라도! 제발!"


머리만 돌린 김칠성이 표정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뒤쪽의 사내가 집게를 다른 쪽 팔에 물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쪽 팔은 이미 늘어져 있었는데 기역자로 부러져서 뼛조각이 근육을 찌르고 있다.


"죽기 전에 말해라.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으니까.

쓸모있는 말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지 너희들이 들어라."


팔에 물린 집게에 다시 힘이 들어가자 최한성은 번쩍 머리를 들고 말했다.

 

"내 보스는 이철우입니다.

그는 군에 있을 때 내 직속 상관이었습니다.

중대장이었지요."


김칠성이 문을 열고 나가자 더욱 다급해진 최한성이 소리를 높였다.

성한 다른 팔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의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나와 내 동료들에게 자금을 대주었지요.

우리는 모두 특공대 출신입니다!"


머리를 돌려 이강일을 바라보며 그가소리쳤리- 얼굴의 땀이 피를 씻어내고 있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눈은 부릅뜨고 있었으나 먼곳을 바라보듯 초점을 잃었고 어깨를 누르고 있던

내들은 그가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당분간 집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넥타이를 매면서 김칠성이 한세라를 돌아보았다.


"당신도 신문 봐서 알지? 회사가 시끄러워 "


"그런다고 집에 안 들어와요?"


한세라가 한걸음 다가와 섰으므로 김칠성이 상체를 조금 젖혔다.
그녀가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집에서 호텔까지 40랄 거리밖에 안돼. 전철 타면 20분이야.

집에 안 들어온다고 일이 잘돼?"


"이게 정말."


두 눈을 부라리며 그녀를 내런다보았으나

그것으로 꺾일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김칠성도 잘 알고 있었다.

부드럽다가도 날카로운 가시가 돋치고,

잘 울면서도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드는 여자였다.

"어떤 놈들이 우리 애들을 어떻게 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놈들은 "


"회사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던데 뭐."


"시』1러!"


넥타이를 매다 말고 옷장에서 저고리를 꺼내 들자 한세라가

그의 손에서 저고리를 빼앗아 쥐었다.


"맨날 새벽에 어와 새벽같이 나가더니만 이제는 집에 안 들어온 다구?

난 이렇게 못 살아."


그녀의 얼굴에서 쉽은 화장품 냄새가 났고 어깨는 눈에 뜨이게 오르내리고 있다.

본래 가무잡잡했던 얼굴색이 더 짙어진 데다가 눈을 한껏 치켜뜨고 어금니를 꽈악 물어서

양쪽 볼의 근육이 단단해져 있었다.

 

"너,내가 놀고 다니는 줄 알아?"


마침내 김칠성도 버럭 소리를 쳤다.


"이게 아침부터 웬 잔소리야. 이걸 =1냥."


"집에 안 들어을 바에는 이 집 문을 닫자구 "


한세라가 맞받아 소리를 쳤는데 안방에서 영옥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살바기 딸이었다.


"여관문을 닫잔 말이야!손님 안 들어온다니까."


몸을 돌려 안방으로 향하던 한세라가 저고리를 응접실의 구석으로 내동댕이쳤다.

저고리가 쓰레기통 위에 걸쳐졌다.


"저 망할 년이 "


어깨를 치켜올리면서 김칠성이 두 주먹을 움켜쥐었으나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아이의 울음 소리가 그치자 다시 안방에서 한세라가 소리쳤다.

"나도 나갈테야! 나도 영옥이 데리고 엄마한테 갈테야!"


"갈테면 가! 이 망할 년아!"


쓰레기통 위에 걸쳐진 저고리를 집어 들면서 김칠성이 소리쳤다.

 

"누가 말릴 것 같아?

그래 남편이 일 때문에 밖에서 집에 못 들어온다니까 집을 나간다구?"


소리를 지르다 보니까 무럭무럭 화가 치밀어 을랐으므로 김칠성은
발길을 돌려 안방으로 다가가 와락 문을 열었다.

영옥이를 안고 선 한세라가 그를 노려보았다.


"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그녀에게 다가가 소리치듯 묻자 한세라의 눈이 두어 번 깜박였다.
영옥이가 엄마의 목을 두 팔로 감은 채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누군 나가 있고 싶어서 나가는 줄 알아? 나도 집에 있고 싶단 말1다. "


"그럼 집에 있어."


한세라의 말투는 냉랭했다.


"흔자 일 다하는 거야? 회사에 다른 사람은 없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집에 안 들어가?"


"망할 년."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 김칠성의 부륭뜬 시선에 영옥이의 얼굴이 잡혔고

어깨의 힘을 뺀 그가 몸을 돌렸다.
상황이 어떻고,내일이 15일인데 놈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을

시시콜콜 늘어놓을 수도 얼으려니와 그럴 만큼 자상한 김칠성도 아니다.

"어쨌든 며칠간 못 들어온다. "


방문을 나서면서 그가 내뱉듯이 말하자 한세라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나도 오늘 집에 갈테야.그런 줄 알고나 있어."


어금니를 문 김칠성은 거칠게 현관문을 밀었다.
김칠성이 호텔의 3충에 있는 조웅남의 방에 들어서자 강만철과 조웅남이 머리를 들었다.

조웅남은 셔츠 차림이었는데 윗단추 서너 개를 풀어 놓아서 웃통이 드러나 있었다.


"놈들의 보스는 이철우라는 예비역 소령이오.

나이는 서른여섯, 작년 초에 제대를 했고 주소는 관악구 봉천동이오."


김칠성이 그들의 앞자궈에 앉으며 서두르듯 말하자 조웅남이 머리를 저었다.


"그런 조무래기가 대장일 리가 없다. 그 윗놈이 있을 거여, "


강만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인원이 50명이 넘는데 한 사람당 활동비를 백만 원씩만주었어 EA 5천이다.

그놈은 얼마를 받았다구?"


"세 번에 걸쳐서 350을 받았답니다. "


"소령으로 예편한 놈이 그만한 자금이 있을 리가 없다.

우리 조직을 상대로 일을 일으킬 이유도 없고. 위에 무엇인가 있다.

애들은 보H냐?"


김칠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상대방의 이름만 알면 경찰청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금방 주소와 가족관계까지도

알아낼 수가 있다.

경찰과 검찰의 자료실과 통하는 선이 있는 것이다.

 

"소용없을 거야, 최가인가 그놈이 우리에게 잡힌 것을 놈들이 알았을 것이고,

한가하게 집구석에 박혀 있을 놈들이 아니다. "


강만철의 말에 김칠성이 입술끝을 올려 웃었다.


"없으면 처자식이라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처자식이 없을 때에는 시흥에 그놈 에미가 살고 있더구만요.

시흥의 강덕배한테도 연락을 해놓았습니다. "


"아니 이 시키가."


조웅남이 눈샙을 치켜올렸다.

오전 10시였으나 잠을 자는둥 마는 둥 해서 잔뜩 짜증이 나 있는 참이었다.


 

"얀마, 할망구를 데려와서 어쩔라구 그러는 거여?"


버럭 소리를 치자 김칠성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할망구도 여자는 여자니까요."


입을 와자 벌렸던 조웅남이 그 얼굴 그대로 옆에 앉은 강만철을 바라보았다.
강만철이 허리를 끄덕였다.


"좋다. 하지만 데려왔을 때에는 내가 책임을 진다. 무슨 말인지 알겠f?"


"그건 알겠는데요, 형님. 저도 제가 하는 일에 책임을 질 만한 위치 아닙니까?"


김칠성의 시선이 똑바로 강만철의 시선과 부딪쳤다.


"형님들은 이제 옛날과 다릅니다.

앉아서 모양을 만들어 주시면 움직이는 것은 접니다.

책임도 제가 질 것이고."


"웃기지 말어, 이 시키야."


조웅남이 버릭 소리를 치며 상체를 세웠다.


 

"앉혀 놓고 빙신 만들지 말란 말여,이놈의 시키야.

나이 사십도 안된 나를 늙은이 취급 허는 거여?"


"형님은 그룹을 관리하는 대표자요.

형님이 움직여서 현행범으로 걸리고 싶단 말이오?

그러면 회사들은 어떻게 됩니까?"


김칠성이 얼굴을 붉히면서 따라서 소리를 치자 강만철이 손을 들어 마악 일어서려는

조웅남의 어깨를 눌렀다.

그리고는 김칠성을 돌아보았다.


 

"네 말은 맞다. 하지만 그 어머니까지 손을 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 거야."


"어머니가 없는 놈은 아뻐지라도,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끌어다가 족칠 려니다. "


김칠성이 펏발선 눈으로 강만철과 조웅남을 쏘아보았다.


"어젯밤만 해도 콘티넨털의 오 사장하고 맨해튼 클럽의 임 상무가 당했어요.

놈들은 이제 조건이고 뭐고가 없습니다.

무조건 우리 조직을 말살시키려고 하는 져니다. "


조웅남이 그를 삼킬 듯이 노려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최한성을 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김칠성이 말을 이었다.


"우리도 부하를 쓸 적에는 월급과 의료보험, 퇴직적금을 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부하가 아니라 우리 사업체들의 직원이란 말이오.

놈들은 보수가 많은츤이면 언제든지 옳겨 갑니다. "


‥‥‥‥ 41


"그리고 예전처럼 주먹 대 주먹, 칼 대 칼이 아니란 말입니다.

루에서 찌르더라도 이긴 놈이 존중을 받는 세상이 되었어요.

놈들은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힘들고 어려운 것도 싫어합니다.

총 한방이면 제아무리 날고 뛰는 놈이라도 골로 보낼 수 있으니까요."


조웅남이 소파의 팔걸이를 움켜쥔 채 그를 노려보았으나 김칠성이 말을 이었다.


 

"형님, 그런 놈들한테는 간이 떨어질 정도로 거칠게 닥쳐 가야 합니다.

제 에미의 젖통을 도려내어 보여 주어야 한단 말입니다. "


"이 씨발놈이 미쳤구만."


혼잣소리처럼 조웅남이 말했다.


"그러고 나를 빙신 만들라고 작정을 허고 있고만.

뭐? 내가 대표자니께 움직이은 안된다고?

야, 니가 혀라, 내가 니 일 허께."


"네가 우리집하고 웅남이 집에 애들을 보냈냐?"


강만철이 문득 물었으므로 김칠성이 머리를 돌렸다.

그의 부드러운 그들의 시선과 마주친 김칠성이 잠자코 머리를 」I덕였다.
파카의 후드를 올려 머리를 덮은 한세라는 아파트의 현관을 나와
오른쪽에 있는 슈퍼마켓 쪽으로 걸음을 옳겼다.
하루종일 눈발이 뿌리는 날이어서 저녁때가 되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는

둥그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의 어깨와 머리에 눈송이가 하얗게 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슈퍼마켓의 입구에 붙여진 네온 사인이 깜빡였고 주차장 복판에 세워 놓은 보안둥도

눈발 속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깨를 움츠리고 슈퍼마켓의 입구로 다가가던 한세라가 머리를 들었다.

두 명의 사래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이쪽으로 향해져 있다.

 

"저 사모님, 저회들이 모시러 왔습니다만."


사내 한 명이 얼굴에 웃음을 띄며 말했다.


』부시장님의 심부름을 왔습니다. "


한세라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어깨 위에 덮인 눈가루를 털었다.


"난 안 가요.가서 그렇게 전하세요."


"시딜님."


이번에는 다른 사내가 그녀에게로 한걸음 다가섰다.


"부사장님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저희들하고 같이 가시지 않으면 저희들이 곤란해집니다. "


"댁들 책임이 아녜요.

날 안 데려왔다고 댁들을 나무란다면 자기 얼굴에 흙칠하는 일이라는 것쯤은 알 거예요."


한세라는 그들 사이로 한걸음을 내디다.

당연히 그들이 한쪽으로 몸을 비껴 자신이 빠져 나갈 틈을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세라는 어깨를 한 사내의 가슴에 부딪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머리를 든 1녀의 얼굴이 사납게 찌푸려져 있었다.


"이봐요, 비켜 서요."


그녀의 쨍쨍한 목소리에 지나치던 사람들이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비켜 서지 못할 거야?"


사내들은 멋쪄은 웃음을 띌 뿐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아침에 김칠성과 다투고 나서 바로 친정집인 수유리로 영옥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사내들은 김칠성의 명령으로 자신을 집으로 데려갈 작정이 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비켜 서요. 난 애에게 우유 먹여야 하니까."


한세라가 눈꼬리를 치켜세운 채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에게 소리를 칠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한테 가서 말해요. 집에 돌아오면 나도 가겠다고."


"사모님이 말씀하시지요.

차 안에 카폰으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사내 한 명이 주차장 한쪽의 승용차를 가리켜 보미며 말했다.


"시딘님께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고 계시는데요."


한세라가 머리를 돌려 승용차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그쪽으로 걸음을 톄었다.

김칠성에게 확인해 볼 작정이었다.
사내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앞장을 서서 승용차로 다가갔다.

시 후드를 머리 위로 눌러 쓴 한세라가 그의 뒤를 따랐다.

승용차로 다가간 사내가 뒤쪽 문을 열고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주차장의 차량들은 눈을 하얗게 덮어 쓰고 있었는데 두어 대의 차량이

입구로 들어서고 있을 뿐 한가했다.
승용차로 다가간 한세라가 뒤쪽의 좌석으로 들어서려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안쭐에 사내 한 명이 그녀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시오."


그가 굵은 음성으로 말하며 웃는 순간 한세라는 와락 차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사내 한 명이 그녀를 밀어 넣으면서 뒤따라 탔고 다른 사내는 운전석 옆자리에 탔다.

시동을 걸어 놓고 있던 차였다.
운전사는 익숙한 솜씨로 주차장의 입구를 향해 차를 움직였다.


"이것 봐요! 당신들!"


눈을 치켜뜬 한세라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옆쪽에 앉은 팝은 머리의 사내가 빙그레 웃자 그 느낌은 더욱 굳어졌다.


"입닥치고 있는 것이 좋아. 아예 몇 대 쳐서 기절시켜 놓기 전에."


또박또박 짧게 끊어지는 사내의 말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이봐요, 왜 이러는 거야? 내려 줘!"


그 순간 관자놀이에 번쩍이는 충격이 왔고 머리속에 불꽃이 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한세라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승용차는 천천히 아파트의 입구를 빠져 나오더니 대로로 들어서고는 곧장 속력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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