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쇄 피습
1995년 1월 초.
밤의 세계에서 일이 일어난다.
이제까지 부딪친 개 중에서는 제일 큰 놈이었다.
백동혁은 양쪽 어깨를 좁히듯 움찔거리면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1미터 70센티 미터의 신장에 70킬로그램에 가까운 체중이었으므로
다소 왜소한 체격이었고 두 눈 끝이 밑으로 처져 있어서 우스왐스러운 인상인
그의 표정도 이때에는 엄숙해졌다.
지름이 5미터쯤의 판자 울타리 위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상반신을 내놓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백동혁은 박달나무 목검을 앞으로 겨눈 채 미11러져
나가듯 왼발을 반걸음쯤 내뻗었다.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서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다.
그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은 누런 색의 송아지만한 도사견이었다
이놈은 지난주에 길가는 아이를 물어뜯어 참혹하게 만든 놈이다.
도사견이 머리를 조금 숙이더니 그를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늘어진 양쪽 볼의 근육과 두툼한 턱이 보기만 해도 흥폭한 짐승이었다.
백동혁이 쥐고 있던 몽둥이의 끝을 살짝 낮추면서 시선을 그곳에 주자 짐승은
양쪽 볼의 근육을 보일듯 말듯 올렸다.
누런 바탕에 검정색 반점이 나 있는 데다가 주름이 잡혀 있어서 얼핏 보아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목검은 폭이 3센티미터 정도에 길이는 대략 1미터쯤 되었지만
무게는 2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것으로서 검도 연습용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다.
짐승과의 거리는 이제 2미터 반쯤 되었는데 양쪽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두 앞발로 땅을 짚고 선 짐승은 머리를 조금 숙였으나 턱을 든 자세였고,
백동혁은 목검 끝 부분에 짐승의 눈을 올려놓은 듯이 앞으로 겨눈 채였다.
백동혁은 이제 아무 소리도, 조금 전까지 코를 찌르던 짐승의 배설물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다 오직 짐승의 두 눈만이 보일 뿐이다.
그때 갑자기 위쪽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소리쳤다.
"거기 조심하시오. 우린 책임 못 져."
그러자 짐승은 한 발자쿡 앞으로 나섰다.
사람의 소리에 다시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짐승의 볼 근육이 조금 위쪽으로 치켜 올라갔고 이제는 이가 드러났다.
새끼손가락 굵기만한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백동혁은 겨누고 있던 몽둥이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이제 상반신은 찌르기에 완전히 노출된 자세였으나
그가 즐겨 쓰는 방법이었고 이제까지 한번도 당해 본 적이 없다.
그러자 짐승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짐승이 노리는 곳은 이쪽의 목이었다. 2미터쯤의 거리였으니
짐승은 한번의 도약으로 백동혁의 목줄을 물어뜯을 수가 있는 것이다.
"어어!"
위쪽에서 여러 사람이 경악에 찬고함을 쳤다.
그러나백동혁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의 뱃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합을 입 끝에서 억제하면서
내려친 검의 끝부분에 육중한충격이 온 것을 느꼈을 뿐이다.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쥔 자세 그대로 서 있던 백동혁은 자신의 발 밑에 쓰러진 짐승을 보았다.
두개골이 반쯤 부서진 짐승은 네 다리를 떨고 있었다.
울타리 위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이구, 참혹하구만."
누군가가 뱉듯이 말하자 백동혁이 번들거리는 시선을들었다.
시선이 마주친 40대의 사내가 황급히 머리를 돌렸다.
울타리의 문이 바깥에서 열리더니 두어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고맙시다, 우리 일을 거들어 주썬서. 고기 좀 싸 드릴까?"
"아니, 그런데 또 있습니까? 저런 것?"
발밑의 짐승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백동혁이 묻자 사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똥개 몇 마리가 있는데, 아까 문 앞에 매어 놓은 놈들 말이오. 그런데 ‥‥‥‥
그러자 다른 사내가 나섰다.
"이렇게 피를 내면 안돼, 고기를 못 써 ."
쓴웃음을 지으며 백동혁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자 이강일이 다가왔다.
일부러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가 아주 지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백동혁은 알고 있었다.
"형님, 여기 계실 건가_3.?"
개를 잡아 주었으니 보신탕까지 먹고 갈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아니, 오늘은 그냥 회사로 들어가."
머리를 저은 백동혁은 휴지를 꺼내어 목검을 꼼꼼히 닦았다.
오늘은 개를 잡았지만 며칠 전에는 도살장에서 소를 때려 잡았던 검이다.
그리고 6년 전에는e집안에 들어왔던 도둑을 때려 잡았는데 불행히도
도둑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정당방위로도 적용이 안되어서 일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하게 만든 역사가 깊은 검인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검도를 배워 햇수로는 십년 가깝게 검도를 해왔으나
백동혁은 공인된 단수가 없다.
그것은 승급 심사를 할 때마다 번번이 실격패를 당했기 때문인데,
그의 말대로라면 이기고도 졌다는 것이다.
번번이 사타구니를 쳐 올리고 발로 상패방의 다리를 걸며 팔꿈치로 머리를 쳤기 때문인데
나중에는 8단도 더 되는 늙은 스승궤게 진검승부를 해보자고 대들다가 검도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백동혁은 진검승부로는 그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지금도 믿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나와 김칠성이 관리하는 업소에 취직이 되었던 백동혁은
곧 그의 심복이 되었다
맹하게 보이지만근성이 있다는 것을 김칠성이 금방 알아보았던 것이다.
백동혁이 리즈 호텔의 3충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1 시가 넘어 있었다.
리즈 호텔의 사장은 조웅남이었고 김칠성은 부사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에 30여 군데의 업체들을 관리하는 본부 사무실이 있다.
강만철은 그들과는 별도로 백화점에 본부를 둔 20여 개의 업체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그룹의 실제 경영권자인 것이다.
부사장실에 들어서려던 백동혁은 멈칫 몸을 세웠다.
안에서 문이 열리며 김칠성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김칠성이 무뚝뚝하게 묻자 백동혁이 머리를 숙였다.
"네, 개 잡고 옵니다, 형님."
입맛을 다신 김칠성이 스쳐 지나자 백동혁이 뒤를 따랐다.
복도를 걷던 김칠성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네놈한테서는 피냄새가 나, 언제나."
"fl, 형님."
고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었으나 감정이 섞여 있지는 않다.
오히려 호전적인 성격의 김칠성이 자신의 그런 분위기를 즐긴다는 것을
백동혁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개피나 소피라서 다항이다, 임마."
"네, 형님 , "
"난 사우나에 갈 거다. "
"Ifl, 형님 , "
김칠성은 조웅남 그룹의 제2인자로 그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업체가 열 개도 넘는다.
그런 막강한 보스에게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5년 만에 측근이 되었다는 A닌은 능력보다도
행운이 따른 것이라고 백동혁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는 것이 백동혁은 언제나 아러웠다.
이윽고 그들은 아래충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박만기는 스물아흠 살로 신장이 183센티미터에 체중이 90킬로그랠이 나가는 체격인었다.
그는 체육대학 출신으로 유도가 공인 4단에다가 태권도,TA 2단을 따놓았는데
몸이 날렵해서 사람을 치는 데는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넓은 어깨를 펴고 턱을 든 자세로 박만기는 호텔의 현관을 나와 옆쪽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를 김형문이 따르고 있다. 찬바 람이 드러낸 피부를 날카롭게 스치는 1월 초의
저녁이었으나 그들은 조금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주차장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차량들의 몸체가 옆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불빛을 받아 차가운
윤기를 내었고 인적은 없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두 사람의 발자국·소리만 삭막하게 들려을 뿐이다.
박만기가 주차장 안쪽에 세워 놓은 자신의 승용차에 거의 다가갔을 때 앞쪽에서 어른거리는
기척에 머리를 들었다.
검정색 코트를 입은 두 사 내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는 박만기 앞에서 사내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박만기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박만기가 몸을 굳히고는 사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위쪽에 서 있던 김형문이 한걸음 다가와 그의 옆에 섰다.
사내들은 3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이었으나 박만기에 비하면 작다.
추위에 굳어진 듯 두 어깨를 구부리고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뭡니까?"
박만기가 그들을 둘러보자 사내 한 명이 ÷1를 향해 반걸음쯤 다가와 섰다.
"통보해 줄 것이 있어서."
가벼운 말투였고 사내의 네모난 얼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추운데 간단히 말하지. 우리는 신조직이야.
이제까지 너희들이 장악해 온 이곳을 우리가 접수하겠어. 그래서 ‥
‥‥‥
"잠간. "
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자른 박만기가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차장에 다른 인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촬영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몸뚱이가 얼어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때 맞으면 크게 다친다. "
사내가 눈을 깜박이며 박만기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이런 것들이 아직도 있나?"
박만기가 턱을 들어 사내들을 가리키고는 김형문을 향해 웃었다.
"너희들 장난하는 거야?보아하니 나잇살 좀 먹은 것 같은데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팔 다궈 한착씩 분질러 놓겠어."
"이번달부터 리즈 호텔에서 매월 500씩을 내놓도록 해 이 말을 너희 사장에게 전해라."
사내의 말투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므로 박만기는 두 발에 힘을 주었다.
그의 예민한육감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긴 것이다.
놈들은 미친 놈들이 아니다. 박만기의 시선 안에 사내들이
두 손을 찔러 넣은 코트 주머니가 들어왔다.
"너희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하는 소리Tf지?"
이제 박만기읜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고 김형문은 발을 옆으로 비비듯이 움직여
반발짝쯤 벌려 섰다.
"알고 있어, 샅샅이."
네모진 얼굴의 사내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는데 옆쪽에 선 입술이 얇은 사내는
아직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리즈 호텔뿐만이 아냐. 옆의 콘티넨털 호텔도 마찬가지고 국제
백화점, 그리고 영동의 유흥업소들도 포함이 돼."
추운 듯 어깨를 웅크리며 사내가 말하자 박만기가 머리를 끄덕였다.
"한국말이니까 잘 알아는 들었다. 그렇다면 마치 옛날의 밤세계로 아간다는 이야긴데,
우리가 유흥업소에서 수금 같은 걸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물론 알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할 것이다. "
"신나는 세상이 되TR군. 그렇지, 신조직이라니까 말이 된다. "
박만기는 두 발을 벌리고 서 있었으나 이미 중심은 한쪽 다리에 옮겨 놓고 있었다.
"매월 500만 원이라구? 그것이 세금이란 말이지?"
이제 더이상묻고 답하기에 지겨워진 박만기는 우선 놈들을 때려 잡고는 호텔로 끌고 들어가
캐어 보기로 작정을 했다.
이러한 육감은 김형문에게도 전해지고 있어서 그의 상체도 조금 앞으로 숙여졌다.
"그렇게 된다면 곧 부자가 되겠는데."
말을 마치자마자 박만기의 오른쪽 발이 곧장 위쪽으로 치솟아 을라 사내의 사타구니를 찼다.
김형문이 앞에 선 사내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박만기는 자신의 발길이 허공으로 뻗쳐 올라간 것을 금방 느끼고는 상체를 숙였다.
서둘러 중심을 잡으면서 주먹으로 칠 생각이었다.
그러자 껑충 뛰어 한걸음을 물러난 사내의 손이 코트 호주머니에서 빠져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손에 쥔 묵직하고 검은 물체가 식별되자 박만기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희고 붉은 불길이 이쪽으로 뿜어지면서 모래주머니를 몽둥이로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깨에 선뜻한 물체가 쑤셔 들어오는 느낌이 왔고 곧 타는 듯한 통중으로 바뀌었다.
충격으로 세워진 승용차에 둥을 부딪친 박만기가 한 손으로 어깨를 쥐었다.
눈을 부릅뜬 얼굴이었다.
"이 새끼들 "
옆쪽의 김형문은 사내에게 배를 얻어맞고는 마악 한쪽 무릎을 꿇는 참이었다.
"너 이 새끼, 비겁하게."
으르렁거리듯 박만기의 말소리가 잇사이로 흘러나왔다.
둔탁한 소리가 옆쪽에서 들리면서 억눌린 신음 소리와 함께 김형문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채인 것이다.
"널 살려는 주마, 네 보스에게 보고를 해야 할테니까, "
이쪽으로 총구를 겨눈 채 사내가 말했다.
"매월 15일이 수금일이다. 오늘이 10일이니까 5일 남았어.
내가 참고삼아 말하지만‥‥‥‥
사내가 두 손을 늘어뜨리며 박만기를 바 어깨를 감싸안
은 손바닥이 뜨거운 액체에 젖어 가고 있었고 한쪽 팔은 길게 늘어져 있었으므로
박만기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다음번에는 죽인다. 가차없이 죽일 것이다. "
번쩍 손을 들어올린 사내가 박만기의 다른 쪽 어깨를 향해 하얗고 짧은 불길을 내쏘았다.
신음 소리를 입안으로 삼킨 박만기가 온 얼굴로 땀을 쏟으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제 두 팔을 늘어뜨리고 승용차에 기대어 선 모습이 되었다.
두 다리가 떨려 왔으나 기를 쓰고 땅을 밟고는 있다.
"이 새끼, 다음에는 여기를 쏘아라."
손을 들 수가 없었으므로 턱을 치켜든 박만기가 가슴을 내밀자
사내가 얼굴을 옆쪽으로 비끼면서 웃어 보였다.
김칠성이 사우나탕 안으로 들어가자 백동혁은 휴게실의 구석에 놓인 나무 평상에 앉았다.
김칠성이 사우나탕에 묵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으므로 그 시간 동안 잠이나 자둘 생각이었다.
나무 평상 위에 두 다리를 길게 뻗으며 드러눕던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저고리와 바지를 벗었다.
휴게실 안은 훈훈했고 늦은 시간이 어서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팬티 차림이 된 백동혁은 벽에 걸려 있는가운을 걸쳐 입었다 생각난 김에
사우나탕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보스와 함께 땀을 뺄 수는 없다
그는 나무 평상에 길게 드러누웠다.
목욕탕 안에서 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려 왔다.
김칠성 혼자 있는 모양이었다.
딱딱한 나무에 머리를 받치고 천정을 바라보자 은몸에 나른한 피로가 몰려 왔다.
지금까지 김칠성의 심복 부하가 되어서 조직 세계에 발을 디딘 것에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요즘처럼
보람을 느끼는 나날도 없다.
눈을 껌벅이며 천정을 바라보던 백동혁은 이윽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옆쪽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뜬 백동혁은 들어서는 세 명의 사내들을 보았다.
현관 바깥 쪽의 입구에 카운터가있지만 미스 오는 퇴근했을 터였다.
누운 채로 비스듬한 시선을 던지던 백동혁이 숨을 멈추었다.
사내들의 몸놀림이 굳어져 있는 것을 느긴 것이다.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내들은 그냥 구듯발인 채로였다
사내들과의 거리는 이제 4미터쯤 되었다. 앞장선 사내는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고
나머지 두 명은 사우나탕의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앞장선 사내와 백동혁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직 누운 채였으므로 사래의 신장이 커다랗게 보였다.
얼굴이 크고 팔이 긴 체격이었다.
사내가 웃는 것처럼 입술 끝을 슬쩍 비틀었는데 백동혁은 사내의 한쪽 손이 뒤쪽으로
돌려졌다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손에는 날이 횐 식칼이 들려져 있었다.
사내들이 현관으로 들어서서 지금까지 5초도 안되는 동안이었다.
백동혁은 몸을 굴려 나무 평상 밑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리고는 다시 한번 구르면서 손을 뻗쳐 벽에 세워 놓은 걸레 자루를 움켜쥐었다.
곧고 단단한 나무였고 길이는 1미터 50센티미터쯤 된다.
그 사이에 사내는 식칼을 번뜩이며 평상 위로 뛰어올랐고
곧바로 이쪽으로 뛰어내릴 순간이었다.
백동혁은 두 손으로 자루의 끝 부분을 움켜쥐는 순간에 곧장 사내를 향해 치켜올렸다.
"허억!"
자루의 끝 부분으로 가슴 한복판의 명치를 찍힌 사내가 휘청 상반신을 뒤로 젖히면서
멈추어 섰다.
두 다리를 오무렸던 백동혁이 다리를 펴는 반동으로 뛰어오르면서 두 손에 움켜쥔
자루로 다시 사내의 목을 곧장 피었다.
"커억!"
정통으로 목을 찔린 사내가 입을 쩌억 벌리면서 평상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사우나탕의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사내 두 면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세 걸음 정도의 거리였고 뛰는 걸음이면 두 걸음이다.
백동혁은 껑충 한걸음을 옆으로 비껴 서면서 달려드는 사내 한 명의 머리끝을
내려쳤다.
'따악!'
소리와 함께 걸레 자루의 중간 부분이 비스듬하게 부러져 나갔다.
머리끝을 얻어맞은 사내는 휘청 하면서 한쪽으로 몸을 기울 였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멈추어 섰다.
걸레 자루를 내던진 백동혁이 발을 들어 사내의 다리 사이를 올려찼다.
"어응. "
폐 속의 공기를 뱉으면서 얼굴이 하얗게 된 사래가 두 다리를 X자 형태로 만들며 허리를 숙였다.
사내 한 명이 식칼을 휘저으며 귀신 같은 얼굴로 달려들었다.
그가 옆으로 휘저은 칼을 허리를 틀어 비끼 면서 백동혁은 옆쪽으로 한쪽손을 뻗었다.
잡히는 것이 있었다.
단단하고 부드럽고 적당히 무거운 물체였다.
이제는 칼을 세워 들고 곧장 달려드는 사내를 향해 힘껏 집어 던지자
2미터도 안되는 거리였다.
정통으로 콧잔등에 로션병이 부딪쳤고 사내가 눈을 흡뜬 채 멈춰섰다.
머리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가자!"
명치끝을 찍혀 굴었던 사내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더니 버럭 소리를 쳤다.
얼굴에 땀을 흘리며 다리를 꼬고 있던 사내가 몸을 돌렸고 코 부분이 피범벅이 된 사내도
껑충 뛰어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모두 손에 든 식칼은 놓지 않는다. 눈을 부릅뜬 백동혁이
옆쪽으로 몸을 매내어 옷장의 끝 부분에 놓여진 우산을 세 걸음 만에 움켜쥐었다.
다행히 구식의 철제 양산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내들은 현관 쪽으로 내닫고 있었다.
현관의 유리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가 마지막으로 몸을 뺀 사내의 엉덩이를 두들기듯 닫히더니
이윽고 조그맣게 흔들거렸다.
우산을 움켜쥔 백동혁은 현관문으로 달려나가 흔들거리는 문을 밀고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는 마지막 사내의 됫로습이 보였다.
어깨를 늘어뜨린 백동혈은 입구의 구내 전화를 들었다.
다이얼을 누르면서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여보세요."
이강일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애들 데리고 당장 사우나실로 와!"
수화기를 내려놓고 몸을 돌린 백동혁은 다시 목욕탕의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자루의 조각과 부서진 로션병이 넓은 휴게실에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목욕탕 안에서 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칠성이 사우나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클럽의 현관으로 들어서던 안만덕이 몸을 돌렸다.
사내 두 명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시선이 마주치자 앞장선 사내의 얼굴에
웃음이 떠을랐다.
저녁 1시 10분전이어서 클럽에 손님이 오는시간치고는조금 이른 편이다.
밀고 들어서던 유리문 한쪽을 그들을 위해 잡고 서자 앞장선 사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시능을 했다.
"안만덕 부장이시지요?"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묻자 안만덕이 얼굴을 폈다.
"네, 제가. 그런데 조금 일찍 오셨습니다. 아직 애들도 나오지 않은 모양인데."
클럽 안쪽의 바에서 유리잔을 닦고 있던 미스터 진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방으로 들어갔으면 좋TR는데. 부징림께 말씀 드릴 것도 있고 ."
그제야 안만덕은 앞에 선 사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20대 후반으로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깔끔한 차림의 사내였다.
몸에 딱 맞는 모직 정장을 차려 입고 있었는데 와이셔츠와 넥타이의 색깔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클럽의 일을 3년이 넘게 하다 보니까 이제는 옷차림만 보아도 상대방의
신분이나 주머니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안만덕이었다.
그의 눈에 앞에 선 두 사내는 대기업의 엘리트 사원이거나 금응기관의 직
원이었다.
그러다가 자신과 할 이야기가 있다는 소리에 그들은 비자 카드 회사 사람 아니면
새로 나온 숙취용 드링크제를 선전하는 제약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보였다.
힐튼 글럽은 룸이 여섯 개 있었지만 룸 하나는 여종업원들의 대기실 겸
탈의실로 쓰여서 안만덕은 그들을 끝 쪽의 방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거기 앉으시지요, 안 부장님."
사내가 붉은 입술을 벌려 웃어 보이며 앞자리를 가리켰다.
사내 한 명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 옆의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십니까?"
자리에 앉은 안만덕이 묻자 사내의 얼굴에서 천천히 운음기가 사
라ill다.
"다름 아니라 이번달부터 수금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입니까?"
어리둥절해진 안만덕이 되묻자 사내가 답담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
셨다.
"앞으로는 달마다 100만 원씩 걷숨니다.
날차는 매월 15일. 보호세라고나 할까요?"
"보호세라니요?"
세무서가 아닌가 하고 얼핏 생각이 들었다가 안만덕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의 시선이 곧장 사내의 얼굴에 쏘아졌다. 그러자 화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사내가 나와 문 앞에 섰다.
"너희들 뭐ot?"
안만덕이 어깨를 세우면서 물었다.
그러자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이 새끼들이 시방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바쁜 사람 불러 놓고 말이야."
"장난이 아니야,안 부장. 길 건너의 파라다이스도,아래쪽의 준 클럽도
마찬가지야,보호세를 내는 건."
너무나 태연한 태도였고 대답이어서 입을 따악 벌렸던 안만덕이
이윽고 입을 다물고는 침을 삼켰다
"너희들 어디서 왔는데?"
"서울이지, 어디서 오긴."
사내가 다시 웃었고 안만덕이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씨팔놈들이 개나발을 불고 있네. 당장 분질러 놓기 전에 너 일어서."
"15일이야, 안 부장."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사내가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오늘은 약간 손만 대지만, 15일에 보호세를 내지 않으면
그때는 땅속으로 가게 돼."
"이 새끼가!"
마악 탁자 건너편의 사내에게로 상체를 굽히던 안만덕은 옆쪽의
사내가 한걸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우선 머리만을 그쪽으로 돌린 안만덕은 사내의 횐 얼굴을 보았고
그 다음 손에 쥔 회끗한 것을 보았다.
"으윽. "
다음 순간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힌 안만덕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에 선뜻한 것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이 칼이라는 것을 느끼자 머리끝이
찌르르 울리며 곤두섰다.
"으으윽."
칼날이 빠져 나가자 그때에는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왔다.
다리의 힘이 풀린 안만덕은 한 손으로 탁자를 짚고는 다른 한 손으로 배를 움켜 쥐었다.
머리를 들자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다. 다음에는 죽인다. 15일을 잊지 마라. "
그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문이 닫혔다.
안만덕은 입을 따악 벌렸다.
그러나 목구멍을 타고 앓는 소리만 뱉어질 뿐이다.
허리를 숙이고 문 쪽으로 한 걸음을 몌자 배가 갈갈이 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네 걸음째에야 그는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비틀어 열었다.
몸이 문에 기대어 바깥으로 비스듬히 쓰러지는 것을 느끼면서 안만덕은
의식을 잃었다.
리즈 호텔의 사장실은 왜 넓었으나 빈 공간이 많았다.
소파와 탁자 사이도 넓어서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집으려면
길게 손을 뻗어야만 했다.
조웅남의 체격 때문일 것이다.
커피잔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김칠성이 머리를 들었다.
"나도 어제 동혁이가 없었다면 목욕탕 안에서 당했을지도 모르지요.
형님들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
"흥,깨벗고 칼침 맞은 꼴 보기 좋았겠구만 "
조웅남이 입술을 부풀리며 웃는 모양을 만들었는데 강만철이 상체
를 세웠다.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었다.
"농담할 때가 아니다. 어젯밤에 습격당한 업체는 이쪽이 여덟 군데,
내쪽이 일곱 군데인데, 놈들의 인원을 보면 40명이 넘어.
그만한 인원을 한꺼번에 동원한 것을 보면 이건 계획된 것이고,
그것도 잘 훈련된 조직이야."
"더욱이 두 군데서는 권총을 썼습니다.
놈들은 우리에게 정면으로 도전을 한 것이오."
김칠성이 말을 받았다.
"놈들은 우리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요.실무자들인 중간
보스급만을 골라내어 쳤습니다. "
"너도 중간 보스여?그건 71들이 잘못 알었는갑다. 실수혔고만. "
조웅남의 말에 김칠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강만철을 바라보았다.
"15일까지 보호세를 받아야겠다고 했는데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
습니까?"
"뭐? 무신 준비?"
눈을 치켜뜬 조웅남이 부스럭거리며 상체를 세웠다.
"무신 준비를 헌단 말이냐?"
"어쨌든 놈들이 15일에는 다시 나타날 것 아닙니까?"
"아이고 그렇다은 문 열어 놓고 기달려야지 몇 년 동안 책상에만
앉어 있었더니 허리가 부실혀졌는디."
"너희 애들은 어떠냐?"
회의의 분위기를 자르는 조웅남을 젖혀 두자는 듯이 강만철이 김
칠성 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오전 9시밖에 되지 않았으나 아침 일찔부터 서둘러 달려온 강만철과 함께
어젯밤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다행히 박만기하고 안만덕이 중태지만 죽은 애들은 없어요,
하지만 모두들 중상이라 4, 5개월씩은 병원에 있어야 해요."
"우리도 그렇다. 하지만 경찰이 알면 시끄러워질텐데.
특히 총에 맞은 애들 말이다. "
"언론을 타면 시끄럽기만 할테니까 몇 군데씩만 신고를 합시다
총맞은 애들은 빼구요."
"무신 소리를 허는 거여 다시 조웅남이 나섰다.
"우리가 무신 잘못이 있다고 신고를 안혀?
모두 혀라.나중에 알게 되은 더 시끄러워질뎅게로."
강만철과 김칠성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네 말이 맞다. "
강만철이 조웅남을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찰은 틀림없이 폭력조직간의 싸움이라고 할 것인데
우리는 상대를 모르고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놈들이 없단 말이다. "
"그러은 귀신이 그렸단 말여?
콘티넨털의 김영식이는 한 놈 머리 카락을 한 주먹 뽑았다는디,
그 시키들을 찾어야 할 것 아녀?"
"경찰보다 우리가 이쪽 사회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르는데 그들이 알 리가 있습니까?"
김칠성이 나섰다.
"우선 몇 건만 신고합시다.
어차피 경찰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한꺼번에 신고하면
금방 언론을 타고 손해 보는 것은 우리밖에 없어요."
"그 동안에 우리가 찾아내는 거다. 찾아서 요절을 내는 거지, 경찰보다 먼저 "
강만철의 말이 마음에 맞았는지 조웅남이 조그맣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은 나한티 맬겨라. 내가 모가지를 딱딱 분질러 줄텡게로.
나는 결재허는 것보담 그것이 성격에 맞어."
머리를 든 김칠성이 눈을 껌벅이며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왜?"
퉁명스럽게 조웅남이 묻자 김칠성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오, 그냥 "
사장실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백동혁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돌렸다.
고태석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복도에 몰려 서 있던 부하들이 그를 향해 머리를 숙이는 사이를 고태석이 바쁘게 헤쳐 오고 있었다.
옆쪽에 서 있던 이강일이 힐끗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고태석은 백동혁과 동급의 형님인 것이다.
언제나 단정한 신사복 차림의 그는 후줄근한 바바리 차림의 백동혁과 대조가 되었다.
"어이 사무라이, 어제 저녁에 한바탕 했다면서?"
고태석이 빙글거리며 다가오더니 백동혁의 옆구리를 보고는눈을 치켜떴다.
"이젠 정말로 사무라이가 되었구만 그래. 아예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군."
"주둥아리 닥치지 않으면 개 잡듯이 때려 죽일테여."
처진 눈시울을 치켜올리면서 백동혁이 허리띠에 찌른 목검의 손잡이를 쥐자 고태석이 한걸
음 물러섰다.
그러나 겁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강만철의 직속 부하로 예비역 대위 출신이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용모에 머리 회전이 빠르고 몸이 날렵했는데 조직에 발을 딛게 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백동혁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문 안쪽의 방에서는 지금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조웅남과 강만철, 김칠성이 회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라이, 내가 보고할 것이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
고태석이 웃음을 거둔 얼굴로 물었으나 백동혁은 힐끗 시선을 주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무라이란 말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것을 놈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개백정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안다.
언젠가는 손을 봐저야겠다고 마음먹은 놈이다.
"이봐, 사무라이 ."
고태석이 다시 한걸음 다가오자 백동혁은 검의 손잡이를 천천히 쥐었다.
그의 시선은 언제부터인가 고태석의 이마 한복판을 향해져 있다.
어제 오후에 도사견을 보던 시선이었다
"이런 젠장, 급한 일이라는데. "
주춤 멈추어 선 고태석이 몸을 굳혔다.
"놈들이 업체들한테 전화를 해온단 말이야.
보호세를 받아야겠다는 거야. 우리 조직의 업체뿐만이 아냐.
신고를 해온 곳이 벌써 50개가 넘는단 말이야."
"빌어먹을 자식아, 그건 내가 보고하겠다. 이곳은 내 구역이야.
네가 들어갈 곳이 못돼."
"마음대로 해라, 개백정놈아."
한걸음 물러서면서 고태석이 이를 드러내었다.
"네놈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큰일을 망칠 놈이다, 역적 같은 놈."
주변의 부하들은 아까부터 긴장으로 온몸을 굳히고 있는 중이었다.
복도 저쪽의 부하들도 이쪽을 흘낏거리고 있다 원체 소문난 개 와 고양이 사이였지만
서로 특별한 원한이나 인과관계는 없다.
개성이 강한 성격들인 데다가 경쟁심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때 마침 부하들을 혜치고 백동혁의 부하인 임일제가 다가왔다
"형님, 사무실로·신고 전화가 여러 통 걸려 옵니다.
모두 업체들인데 보호세를 내라는 전화를 받았답니다. "
다가선 임일제가 상기된 얼굴로 말하자 백동혁의 시선이 고타석을 스쳤다.
"좋아, 같이 들어가서 보고하자."
몸을 돌린 백동혁이 고태석을 향해 말하고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어 번 두드렸다.
고태석이 다가와 옆에 서더니 헛기침을 하고 넥타이의 매듭을 을린 다음 저고리의 깃을 움켜쥐고는 한번 들었다 놓았다.
방안은 따뜻했으나 환풍이 잘 되지 않아서 담배 연기로 눈이 매웠다.
유혁근 경감은손둥으로 눈을 비비면서 앞쪽에 앉은 이정환총경을 바라보았다.
턱의 군살이 늘어진 이정환이 두툼한 입술을 버릇처럼 내밀며 서류를 읽고 있었다.
50대 후반이어서 시력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눈에서 서류를 멀리 몌었다가 다시 눈살을 좁히며 얼굴을 가져다 대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윽고 이정환 총경은 서류를 덮고 앞쪽에 앉은 유혁근 경감을 바라보았다.
"조웅남, 강만철이가 부하들을 모으고 있어.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상황인데 덩달아서 밤거리도 술렁거려 ."
"경계를 하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것 참‥‥‥‥
손가락 끝으로 턱을 쓸면서 이정환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보고하기에도 애매하구만. 가해자의 윤곽이라도 보여야 대책을
세울 수가 있을텐데 말이야."
"혹시 외국에서 들어온 놈들이 아닌가 하고 입국자 명단들을 점검
해 보았습니다만, 그것도 도무지‥‥‥‥
유혁근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멈추었다.
부하들을 시켜서 전과 기 록이 있는 수백 명의 재입국자들을 점검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성과는 없다.
"김원국의 조직에 정면으로 도전할 세력이 나타난 것은 아니겠 f1?"
"그건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유혁근이 풀색 웃었다.
"그런 세력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김덕수는 지금 형을 살고 있고,고한동이는 대관령에서 목장을 하고 있지요.
박영수는 LA에서 슈퍼마켓을 하고 있고."
그러던 유혈근이 머리를 들었다.
긴 얼굴이나 40대 초반의 나이 답지 않게 생기 있는 시선을 가진 사내였다.
"서창규가 중국에 있다가 근래에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지만 이런 일을 일으킬 놈이 아닙니다. "
"간부급 주먹들이 열일곱 명이나 같은 시기에 습격을 받았어.
저쪽 놈들도 조직으로 움직이고 있단 말이야.
내 생각엔 김원국의 조직 내부에서 알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언론은 그렇게 보던데."
이정환끼 물끄러미 유혁근을 바라보았다.
"부산의 최충식이가 조직을 장악하려고 한다든지."
유혁근이 입술끝을 치켜올리며 머리를 저었으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조웅남이와 강만철이가 세력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닐까?"
"과장림,제3의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저희들이 전혀 감지해낼 수 없는 조직 말입니다. "
정색을 한 유혁근의 시선을 받은 이정환이 입맛을 다셨다.
가능성은 그쪽이 더 있었지만 도무지 오리무중이어서 차라리 눈에 보이는 놈들을 훌어 가는 것이 덜 답답했던 것이다.
"김원국은 지금도 인도네시아에 있나?"
이정환이 묻자 유혁근이 머리를 」1덕였다.
"네, 섬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직 움직이지 않
고 있습니다. "
"연락을 안했는지도 모르지. 김원국에게까지 보고할 사건이 아니
라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일어선 이정환이 서류철을들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
라보았다.
"10시에 보고야. 그 빌어먹을 신문들이 먼저 때려 놓아서 신문 기
사를 그대로 읽어 줘 버리는 게 낫겠구만."
"할수없지요. 우선은 기사가 난 방향으로 수사해 가고 있다고 말
씀하시는 것이 낫겠어요."
유혁근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정환이 쓴웃음을 띄었다.
"강만철측은 이번 사건을 덮어 두려고 하더군요. 협조적이지가 않습니다. "
복도를 걸으면서 유혁근이 말했다.
"물론 그들의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낸 사건입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터뜨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한두 건만 알고 넘어갈 뻔했습니
다. "
"그것도 찜찜하단 말이야."
이정환이 걸음을 늦추면서 유혁근을 돌아보았다.
"강만철측이나 조웅남이 경찰에 신고한 것은 다섯 건밖에 없는데,
신문은 열다섯 건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었어 놈들이 일을 저지르고
신문사에 알려 준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아?"
"그럴 확률이 많습니다.
놈들은 대한일보와 국제신문에 집중적으로 정보를 준 것 같더군요."
"계획적이란 말이야, 누가 일으켰건."
생각에 잠긴 이정환은 하급자의 경례도 받지 않고 지나쳤다.
"대가리들은 이런 것 좋아하지 알아.
아마 고위충에 올라가기 전에 어느 선에서 주물러질 거야, 옛날처럼."
흔잣말처럼 이정환이 말했으나 유혁근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리고 실무자급 몇 명의 목이 잘릴 것이다.
"참,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었숨니다.
제가 말씀을 못 드렸는데 ‥‥‥‥
유혁근의 말에 이정환이 계단을 오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계단의 난간 쪽으로 붙어 섰다.
"뭐 야?"
짜증난 듯 이정환이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김칠성이 리즈 호델 사우나에서 습격을 당한 사건이지요.
세 놈인가 네 놈이 쳐들어왔는데‥‥‥‥
"가만, 김칠성이는 멀정하던데?"
"예, 그 부하로 백동혁이라는 괴물이 있어요.
심심하면 도살장에 가서 개나 소를 죽이는 놈인데,
그놈이 습격한 놈들을 쳐서 쫓았다는 군요. "
"병신, 한두 놈 잡아 둘 것이지."
"예, 저도 소문을 듣고 백동혁에게 물어 보았어요.
놈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시치미를 례었지만 한 놈쯤 잡지 그랬냐고 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입맛을 다신 이정환이 발을 몌었고 유혁근이 그를 따라 계단을 을랐다.
백동혈이 한 놈쯤 잡아 놓았다면 이렇게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둘의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사람을 본 백동혁은 얼른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옆쪽에 앉은 직원이 입을벌리고 멍한 얼굴이 되어 들어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제까지 관리부에 그녀가 들어온 적은 백동혁의 기억으로는 없먼다.
그리고 김선주는 백동혁과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여자였다.
스치는 눈빛으로 김선주가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백동혈의 앞으로 김선주가 다가왔다.
검정색 투피스가 몸에 어울렸고 쭉 뻗은 몸매는 구찌 클럽의 댄서들 못지 않은 데다가 윤각이 뚜편한 얼굴이다.
호텔의 흥보 업무를 할고 있는 김선주는 외국어 실력도 뛰어나서 조웅남이 아끼는 직원이었다.
"백동혁씨, 부탁이 있어요."
백동혁의 책상 앞에 선 김선주가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러
나 부탁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백동
혁이 늘어진 눈시울을 들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주위의 직원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요? 오늘부터 사랍들을 어 주세요.
부탁이에요."
김선주의 목소리가 시무실을 울렸다. 입맛을 다신 백동혁이 주위
를 둘러보자 직원들은 제각기 전화기를 집어 들거나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이제 김선주는 두 손을 백동혁의 책상에 짚고 그를 내려다보
았다.
"이건 사생활 침해예요.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난 회사 그
만두젠어요."
백동혁이 다시 입맛을 다셨다. 테러 사건이 일어난후부터 업체의
간부급 직원에게 경호원을 붙여 놓았다. 김선주도 리즈 호텔의 홍보
실 간부였으므로 24시간 두 명의 경호원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말씀해 주세요. 난 요즘 일어난 일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요. 날 보호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견딜 수가 없다구요.내가 꼭 경호
원을 데리고 다닐 처지라면 회사 그만두겠어요."
그녀의 말소리가 다시 사무실을 울렸다.
"안돼 . "
눈시울을 들어올리며 백동혁이 입을 열었다.
"둘 다 안돼. 경호원을 뗄 수도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어."
사무실 안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김선주는 그를 노려본 채 입
을 열지 않았고 직원들도 소리내는 것을 조심하는 눈치였다.
"좋아_3_. 그렇다떤 부사장님이나 사장님을 만나서 말씀 드리겠어
_e-. "
이윽고 김선주가 허리를 세우며 말했다. 입술 끝 쪽이 보일듯 말
듯 위쪽으로 치켜져 있는 것이 백동혁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그것도 안돼. 이 일은 내가 맡았고, 내가 책임자니까."
백동혁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놈의 사생활인지 지랄인지는 떠들어 대지 말라구. 그저 잠자코
있어."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문 김선주가 그를 노려보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쓸데없이 멀리 돌아다니지 말어. 서울 근처에도 얼마든지
좋은 곳이 많은데,"
그러자 김선주는 몸을 돌렸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문 쪽으로 걸
었으나 그녀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이 닫
히자 옆쪽에서 이강일이 다가왔다.
"형님, 어제는 수원의 남수원 호텔에서 두 시간 동안 뭉겠다고 하
니다. 저 여자는 색골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언젠가는 미국놈하고
같이 다닌다고 소문이 났다니까요."
상반신을 숙인 이강일이 소근거리듯 말했다. 그에게서 ㅁ1늘 냄새
가 났다.
"오입질을 제대로 못하니까 짜증이 난 겁니다. "
44 밤의 대통령 제2부 - I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떠밀면서 백동혁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휘청거리고 한걸음 물러선 이강일이 그를 바라보았다.
"형님이 떠나실 시간 되었다. 준이해라."
"예, 형님 ."
이강일이 찌푸린 얼굴로 돌아섰다. 오후 』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김칠성이 부듯가에 있는 수산물 도매 센터 앞에서 차를 내렸을 때
는오후 5시가 되어 있었다 금방눈이라도뿌릴 것 같은 흐린 날씨
였다. 얼음끝 같은 바닷바람이 정면에서 부딪쳐 오자 깅칠성은 머리
를 돌렸다. 그의 옆쪽에서 걷는 백동혁의 바바리 코트가 펄럭이며 바
람을 탔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고 긴 몽둥이가 보였다. 전에는 가지
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개 잡는 몽둥이였다.
수산물 도매 센터는 5층의 회색 시멘트 건물이었으나 바닷바람에
시달린 탓띤지 칠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많은 데다가 아래층 벽은 검
게 변해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1층의 커다란 철제 셔터는 굳게 내
려졌고 셔터 위에 매달린 두 개의 백열 전구가 흔들거리면서 희미한
빛을 내었다.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마당에는 부서진 생선 상자들이 흩어져
있다. 그들은 옆쪽의 사무실로 다가갔다. 바닷바람이 코트 자락을 앞
쪽으로 날렸다.
앞장서 가던 부하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비켜 서자 그들은 안으로
들어섰다. 세 명의 사내가 책상 건너편에 서 있다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사무실의 한복판에 석유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훈
연쇄 피습 45
훈한 열기가 그들의 피부에 닿았다.
"어디에 있어?"
그들을 향해 백동혁이 묻자 앞쪽에 선 사내가 한걸음 다가섰다.
"옆방에 있습니다, 형님."
그들은 사내의 안내를 받아 옆방으로 들어섰다. 방 한복판의 비어
있는 공간에 의자 한 개가 놓여져 있었고 앉아 있던 사내가 놀란 듯
일어섰다.
40대 초반의 작달막한 체구의 사내였다.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잡혀
져 있는 데다가 가는 눈을 한껏 치켜뜨고 있었다.
"아니 칠성이, 그렇다면 네가 나를?"
창고로 쓰이는 빈방에 난로도 없이 떨고 있었던 모양으로 얼굴이
파랗게 굳어 있었다.
"이게 오랜만에 만나는 인사냐?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가 소리치듯 말하자 김칠성은 옆에 선 백동혁과 부하들을 돌아
보았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 ."
옆쪽의 부하들에게 김칠성이 말하자 그들은 잠자코 방을 나갔다.
방에는 이제 김칠성과 백동혁, 서창규 세 명이 남게 되었다.
서창규는 건달 세계의 서열로 따지면 김칠성의 선배뻘이 된다. 아
마 두어 단계 위의 형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칠성은 일찌감치 박
종무와 손을 끊고는 김원국의 휘하에 들었는데 서창규는 박종무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서창규는 김칠성의 얼굴을 대하게 되자 와락 부아가 솟구쳐 오르
는 모양이었다. 자신을 잡아 끌고 온 것이 김칠성의 부하들이라는 것
46 밤의 대통령 제2부 - I
을 몰랐던 것이다.
"칠성이, 너‥‥‥‥
그가 턱을 치져들고 다시 한걸음 나섰을 때 백동혁이 그의 앞으로
나섰다.
"앉아라, 의자에 ."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백동혁이 말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입닥쳐."
"아니 . "
멈칫하면서 입을 벌렸던 서창규는 소스라치듯 놀라 머리를 뒤로
젖혔다. 어느 사이엔가 백동혁이 빼어 든 검은 몽둥이의 끝이 그의
입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둥이의 끝은 칼처림 다듬어져 있어
서 금방이라도 입안으로 쑤시고 들어을 것 같았으므로 저도 모르게
서창규는 입을 닫았다.
"앉아, 이 새끼야."
백동혁의 몽둥이 끝이 앞으로 다가왔고 서창규는 두 걸음쯤 됫걸
음질을 하다가 의자에 걸려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김칠성이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3년 동안 무얼 하고 있다가 요즘 인천에 나타났는지 말해."
표정 없는 얼굴로 김칠성이 묻자 서창규가 눈을 부릅떴다. 악문
입술 사이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한가하게 소시적 서열 찾을 시간이 없어. 말하지 않으면 바
닷속에 집어 넣을테니까."
김칠성이 다그치듯 말했으나 서창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모르는군. 좋
연쇄 피습 47
아, 그렇다면 내 동생한테 맡겨 두고 갈테니까‥‥‥‥
김칠성이 자세를 허물자 서창규가 머리를 들었다. 눈동자는 흔들
리지 않는다.
"네 동생한테도 말할 것이 없다. 너도 내가 독한 놈인지는 알고 있
을테니까."
"할수없군. 그럼, 맞아 죽는 수밖에."
"설마 나를 이번의 너희 업체들 습격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헛다리를 짚은 셈인데."
김칠성과 백동혁이 얼굴을 마주 보았다.
"영광이구만. 날 그런 놈으로 보았다니."
턱을 들어올리며 서창규가 입을 벌리고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비치 호텔의 커피숍에서 우리가 당할 때가
되었다고 한 이유는 뭐냐?"
백동혁이 두 손으로 검을 겨누며 물었다.
"어젯밤에는 어디에 있었어?"
서창규의 시선이 검 끝에서 백동혁의 눈으로 옮겨졌다. 둘의 시선
이 마주쳤고 이윽고 서창규가 두 번 눈을 깜박였다.
"말해라 어서. 난 형님한테서 널 맡은 몸이야. 너는 내 몫이란 말
이다 "
"마악 죽일 것 같은 인상이군."
서창규가 흔잣소리처럼 말했다.
"끔찍한 놈을 동생으로 두었구나, 칠성이 너는.
"당신보다는 사람 보는 눈이 높지."
김칠성이 말을 받았을 때 '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검정색의 목검
48 밤의 대통령 제2부 - I
이 허공을 가르고는 서창규의 이마 위로 내려쳐졌다. 저도 토르게 김
칠성이 턱을 들었고 서창규는 목을 움츠리면서 눈을 치켜떴다. 이마
위에 목검의 날이 내려와 있었다. 있는 힘껏 내려친 검날이 이마위
에 담배 두께만큼의 사이를 두고 정지된 것이다. 서창규가 목을 세우
자 차가운 검낱이 이마에 닿았다.
"말해라, 어서."
백동혁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가 잇사이로 말하자 서창
규가 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난 중국에 가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아편을 모으려고. 그 장사가
잰찮거든."
김칠성을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숨을 몰아쉬면서 백동혁
이 한걸음 물러섰다.
"한국에 오지는 않았지만 이쪽 사정은 훤했어.왜냐하면 아편을
들여오려면 이쪽 정보에 귀를 열어 놓아야 하니까. 경찰, 기관, 그리
고 모든 수사기관들도 말이야."
서창규는 팔을 들어 점퍼의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말하는
도중에 땀이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었다. 너희 조직을 부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그렇지만 어떤 조직인지는 나도 모른다. 알려고 왜 노력도 해보았지
마"
말을 그친 서창규가 숨을 들이마시더니 어깨에 힘을 주었다 시선
1 곧장 김칠성의 눈과 부딪쳤다. 서창규가 말을 이었다.
"왕년의 한국의 조직치고 너희들에게 원한이 없는 사람이 없다.
네놈들은 너희 실속만 차리고는 경찰에 몸을 괄았어. 밀고자가 되었
연쇄 피습 49
단 말이다. 그런 너희들에게 좋은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런 거다. "
"별소리를 다 듣는구만."
김칠성이 입술을 찌그러뜨리며 웃었다.
"우리가 확인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좋다, 얼마든지. 그리고 여기에다 난로하고 소주 몇 병을 들여놓
아라."
잠자코 서창규를 바라보던 김칠성이 몸을 돌리자 백동혁이 그 뒤
를 따랐다.
"잠깐. "
부르는 소리에 그들은 머리를 돌렸다. 서창규의 시선이 백동혁에
게로 향해져 있다.
"너,그 작대기로 사람 죽여 보았지?"
백동혁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으나 김칠성이 얼굴을 펴고 웃음을
띄었다
"그래, 거의 매일 피를 묻히는 놈이야, 이놈은."
서창규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다시 몸을 돌렸다.
강남 전철역 근처에 있는제일 빌딩은 2딘츰짜리 흑갈색 건물이었
다. 유리와 대리석으로 표면을 장식한 데다가 도로에서 조금 올라간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서 금방 눈에 띄는 빌딩이다.
대일 경비 용역은 빌딩의 12층에서부터 1즘가지 3개 충을 사용 하는 규로가 큰 회사였고
직원들의 숫자만 해도 400명이 넘었다.
경 비와 안전 설비를 전담하는 회사인데 요즘은 어지간한 개인 주택이나 아파트에도
경비 시스템을 설치해 놓고 경비를 용역 회사에 맡기는 실정이어서 사세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었다.
아파트나 빌딩의 경비원들이 나이든 사람으로 채워지는 반면에 경비 용역 회사는 기동력과 함께 무술에 능한 젊은이를 필요로 했는데
실제로 경찰을 대신해서 강도와 도둑을 잡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금전만능 시대여서 경찰에 의지하지 않고 돈으로 경비를 사는 것이 가진 자에게는 더 믿음직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2시경에 빌딩의 14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자양깔린 복도에 먼저 내려선 것은 대 일 경비 용역의 사장인 박용근이었다.
그의 뒤를 따라 안재일 상무와사장의 상담역인 이철우가 내렸다.
박용근은 1미터 70센티미터 정도의 신장이었으나 몸이 비대해서 드럼통에 옷을 입혀 놓은 것 같았다
둥근 얼굴에 눈두덩이 두툼하게 솟아오른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굴려 끊임없이 사방을 둘러보며 복도를 걸어나갔다. 지나치는 사원들이 옆쪽으로 비껴 서거나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뒤를 따르는 안재일과 이철우는 모두 30대 후반으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들은 복도 끝에 있는 비서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20평쯤 되어 보이는 방이었는데 깨끗했고 서너 명의 사내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일제히 일어섰다.
"연락 온 곳 있나?"
안쪽의 사장실로 다가가며 박용근이 묻자
사내 한 명이 메모지를 들고 따라왔다.
그들은 사장실로 들어섰다.
"대한 전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입찰 서류를 가지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
"흥, 그래. 안 상무, 자네가 그것은 가보도록 하고."
안재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보안기가 문제가 아니지요. 애프터 서비스를 어떻게 해주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소파에 앉은 박용근이 튕겨 나갈 것 같은 저고리의 단추를 풀면서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대한 전기의 보안 시스템은 20억이 넘는 공사인 것이다.
"다른 일은 없나?"
박용근이 메모지를 든 채 서 있는 비서를 바라보았다.
"없습니다, 사장린."
"그럼 나가 있어,"
비서가 방을 나가자 박용근은 앞에 앉은 안재일과 이철우를 번갈 아 바라보았다.
"강만철이하고 조웅남이가 미친 놈들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군.
놈들이 갈피를 못 잡는 모양이야."
"부하들을 소집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유흥업소나 밤거리에 건달들이 득실거립니다. "
안재일이 입가에 웃음을 띄며 말했다.
긴 얼굴이었으나 눈이 컸고 눈동자가 짙었다.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이 있는 인물이었다.
"기관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
"그럴at지 ."
박용근이 머리를 』I덕였다.
"놈들끼리의 주도권 싸움인 줄로 알 거야. 너무 오랫동안 잠잠했 거든. "
"천호동의 소피아 호텔에는 부산에서 올라온 건달들이 백 명 가깝게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경찰청에서 내일 사진을 받아 볼 겁니다. "
머리를 끄덕이던 박용근이 문득 이철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까지 입을 열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다친 애들은 괜찮나?"
"01. "
팎게 대답한 이철우가 상체를 세웠다.
검게 그으른 얼굴에 다부진 턱을 가진 사내였다.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계획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김원국의 직영 업체만 해도 50군데가 넘어 거기에서 새끼를 친 업체까지 합하면
150개 가깜게 되고. 그리고 나머지도 모두 그의 영향력 안에 있단 말이야."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안재일과 이철우는 잠자코 박용근을 바라보았다.
"김원국이 나눠 주어 조웅남이나 강만철이, 김칠성이가 장악하고 있는 업체들만
우리 소유로 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려 . 나머지는 자연히 따라오게 돼."
박용근은 눈을 부릅떠 =1들을 둘러보았다.
"어차피 그놈들도 맨주먹으로 남의 것을 가로채어 만들어 놓은 업체들이다.
힘이 있는 자가소유하게 되는 것이 밤세계 헌법의 전문(옷)이야."
"물론입니다, 사장님. 더욱이 지금은 시기가 좋습니다.
사장님이 선택을 잘 하신 거지요."
안재일이 맞장구를 쳤다.
십년 가감게 박용근과 함깨 지내 온 안재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용근의 심복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철우는 상담역으로 들어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작전을 위하여 파견된 형식이어서 박용근도 이철우한테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안재일은 이철우가 특공대 출신의 예비역 소령이라는 것만 알 뿐으로
그에 대해서 더이상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이번의 테러를 직접 지휘했는데 인원도 용역 회사의 직원들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박용근은 알 것이었다.
박용근이 대위로 제대한 뒤 10여 년간 군납업을 하다가 용역 회사
를 차린 것은 3년 전이었다. 안재일이 알기로는 군의 친구들이 도와 준 것이었는데
회사 성격상 대일 경비 용역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직업 군인 출신들로 채워져 있었다.
안재일은 박용근의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일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고 그리고 배후의 지원세력이 막강한 것이다.
박용근이 밤의 세계를 장악하게 되면 그에게는 거대한 부와 함께 명예가 안겨질 것이고
자신은 지금의 조웅남이나 강만철, 김칠 성과 같은 보스가 된다.
이철우가 머리를 들었으므로 안재일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업체들에게 보호세를 내라는 전화를 했습니다.
날짜는 편의에 따라 15일에서부터 간격을 두었지요.
놈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심어 주고 있습니다. "
"조웅남이나 강만철이가 의지할 대상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겠 fl . "
"머지 않아 보호세를 내게 됩니다. "
"그때는 새로운 지배자가 나타나는 거지. 김원국의 기업들은 뼈만 남게 된다.
그때 휴지값으로 인수하면 돼."
박용근이 소파에 등을 기대면서 그들을 향해 웃었다.
'소설방 > 밤의 대통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조웅남이 두 손으로 (0) | 2014.12.04 |
---|---|
2. 그림자와의 전쟁 (0) | 2014.12.04 |
밤의 대통령 제 2부 -1권 (0) | 2014.12.04 |
작가의 말 (0) | 2014.12.01 |
14. 찬란한 햇살 (0) | 2014.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