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장 안승 망명 10
의상을 만나본 법민은 대아찬 진공(眞功)을 옹포(甕浦:충남 부여)로 파견하여
당군의 뱃길을 막는 한편 장군 죽지와 흠돌에게 명하여 부성의 남쪽 요새인 가림성과 석성
(石城:서천)을 치게 했다.
웅진의 부성은 난공불락의 여러 성곽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단시일에 공취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법민은 당나라로 오가는 통로인 서쪽 해변을 봉쇄하여 부성을 고립시키려는 계책을 썼다.
죽지는 아찬 능신(能申)과 사찬 산세(山世)를 부장으로 삼아 가림성으로 진격하고,
흠돌은 일길찬 양신(良臣)과 급찬 당천(當千)을 데리고 석성의 공격을 맡았다.
웅진에서는 당연히 흑치상지가 나가려 했으나 부여융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장군은 부성을 비워서는 안 되오.
당나라 원군이 당도할 때까지는 꼼짝 말고 과인의 곁에 있으시오.”
하고서 곧 녜군이 말한 법총과 윤회를 불러 대책을 강구했다.
부여융은 자신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죽이려 한 법민만 떠올리면 아직도 오금이 저렸다.
“가림성과 석성을 잃으면 비중현(比衆縣:비인만)을 잃는 것이요,
비중현을 잃으면 서역의 바닷길을 봉쇄당하기 십상입니다.
신에게 약간의 군사만 주시면 사력을 다해 양성(兩城)을 막아보겠습니다.”
법총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윤회 또한 지지 않고 나섰다.
“어찌 법총 혼자서 양성을 무사히 지키겠습니까? 석성은 신이 수비해보겠습니다.”
부여융은 이들 두 사람을 믿고 각각 1천의 군사를 주어 위급함에 빠진 양성으로 급파했다.
법총은 가림군에 이르자 두려움에 떨던 군민들에게 말했다.
“이제 당나라 군대가 당도하면 신라의 사직은 파멸할 것이요,
오히려 우리가 신라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신라는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므로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창졸간 전세는 뒤바뀔 것이 틀림없다!
백제의 7백 년 사직이 오로지 이곳 가림성의 존망에 달렸으니
어찌 힘을 아끼고 궁리를 다하지 않을 것인가!”
법총의 늠름한 풍채와 자신에 찬 말투에 백성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크게 힘을 얻었다.
법총은 노인과 어린아이를 뺀 거의 모든 군민들을 동원하여 수레로 돌을 져서 나르게 하고,
징발한 장정과 군사들을 성루에 배치시켜 사활을 건 일전을 준비했다.
그는 가림성에 예로부터 이름난 목공이 많다는 것을 알고 여러 대의 쇠뇌와 석포(石砲)를 만들어
성루 곳곳에 횡렬로 세워두었다가 신라군이 나타나자 밤낮없이 시석을 날려댔다.
그 바람에 죽지가 이끄는 신라군은 좀처럼 성곽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성밖 4, 5리쯤 되는 곳에
주둔하며 속절없이 날짜만 보냈다.
윤회가 달려간 석성의 사정도 가림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회 또한 석성의 지형지세를 이용해 외성 밖에 방어진을 따로 구축하고 화포와 석포를 번갈아
날려대며 신라군의 접근을 막았다.
처음에 욱둥이 흠돌은 양신과 당천이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하다!”
하고는 스스로 마군 선발대를 이끌고 돌진하였다가 날아오는 돌덩이에 크게 낭패를 보자,
“대체 저놈들이 무얼 믿고 저토록 사생결단으로 나오는 것이냐?”
하며 투덜거렸다.
생각지도 않았던 법총과 윤회의 분전으로 신라군은 달반이 지나도록 아무 전과도 올리지 못했다.
전과는커녕 다른 길로 웅진성 남쪽을 파고들었던 군사당주 부과(夫果)의 1천 병력이
오히려 흑치상지가 세운 유인책에 말려들어 전군이 죽고 부과마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라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팽팽한 대치는 당장(唐將) 두의적(竇義積)이 이끄는 5천 원군이 옹포에 세워둔
진공의 방어선을 뚫고 백강을 통해 부성에 당도하면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부여융은 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두의적을 보자 처음에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으나
그 군사가 고작 5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는 홀연 시쁜 마음이 일었다.
“기껏 5천으로 누구를 상대하겠단 게요?”
부여융이 코 방귀를 뀌며 묻자 신라와는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던 두의적은
요동의 사정이 긴박한 것을 설명하고서,
“도독은 어찌 그리도 섭섭한 말씀을 하시오?
우리는 천자의 명을 받은 일기당천의 신군들이오.
강하기로 이름난 고구려의 군사들도 우리의 고함소리 한 번에 새떼같이 흩어졌는데
아무려면 계림의 오합지졸 따위를 당하지 못할까봐 걱정이시오?
5천의 군사로도 신라군 따위는 능히 10만을 대적할 것이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오!”
하며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
그는 자신의 호언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뱃멀미로 지친 군사들을 쉬게 하지도 않고
어서 위급한 곳으로 향도(嚮導:길안내)부터 하라며 재촉했다.
흑치상지가 부여융을 보고,
“차라리 황군(황제의 군사, 곧 당군)들에게 이곳을 맡겨두고 신이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자 부여융은 부성의 일이 아무래도 불안하여,
“장군은 여기 있으시오.”
하고서 사람을 시켜 두의적을 석성으로 인도하라고 말했다.
두의적이 피곤함에 지친 5천 당군을 이끌고 석성에 이르자 하루하루 사력을 다해 성을 방어하며
원군이 당도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윤회도 기가 막혔다.
“도대체 싸우자고 온 군사들이오, 광을 내자고 온 군사들이오?”
기대가 실망으로 무너진 윤회가 분통을 참지 못하고 노려보자 두의적도 그만 눈알이 뒤집혔다.
“이놈아, 우리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예까지 왔다!
고맙다는 소리는 못할망정 네 감히 누구한테 목자를 부라리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네가 천자의 군사를 모만하고도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더냐?”
온갖 고초를 겪고 도우러 왔음에도 환대는커녕 거푸 무시를 당하자
두의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칼을 빼들고 윤회의 목을 치려고 덤볐다.
주위 사람들이 그런 두의적을 황급히 만류하여 간신히 불상사는 막았지만
윤회와 석성의 군사들은 기운을 잃었고, 두의적은 두의적대로 돕고 싶은 마음이 반감되었다.
윤회를 향해 씩씩거리던 두의적이 대뜸 석성 망루로 뛰어올라
적진의 형세를 쓱 훑어보고는,
“병신 같은 놈들, 그래 저따위 규율도 없고 대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를 겁내어
성문을 철통같이 걸고 막는 데만 급급했더란 말이냐?
이놈아 잘 보아라,
황제의 군사들이 어떻게 싸우는가를!”
말을 마치자 즉시 성문을 열어 제치고 군사를 세 패로 나눠 적진을 급습했다.
석성 성루에는 당군의 깃발이 오르고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요란하였다.
오랜 대치전에 지쳐 방심하고 있던 신라군들은 불시에 습격을 당하게 되자
한동안 놀라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갈팡질팡한 신라군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자
기세가 오른 당군들은 창칼을 앞세워 도망가는 군사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흠돌도 시초에는 말머리를 돌리고 달아났으나 얼마만큼 와서 뒤쫓는 자들을 바라보고는
황급히 양신과 당천을 불러 말했다.
“저들은 아무래도 이제 막 도착한 당나라 원군이 틀림없다.
우선 승기를 잡자고 급습을 하는 모양인데 너희는 우리 군사의 달아나는 방향을
설림군(舌林郡:서천) 숲길로 유도하라.
지리에 어두운 당군들 이라면 반드시 쫓아올 것이다.”
흠돌은 일패의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석성 서쪽의 설림군 골짜기로 달려가
숲속에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양신과 당천이 각기 적진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달아나는 군사들을 설림군 방향으로 유도하자
추격하던 당군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두의적 역시 추격군의 선봉에 서서 한창 기세를 올리며 말을 달렸을 때였다.
“당나라 졸개들은 어서 오라,
신라의 명장 흠돌이 이곳에 너희의 무덤을 파놓고 기다린 지 오래다!”
돌연 시야가 어지러워지더니 난데없이 말을 탄 장수 하나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고 외쳤다.
그와 동시에 좁은 산길의 양쪽에서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군사들이 활을 든 상체를 드러내자
두의적은 마침내 계략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복병이다! 왔던 길로 서둘러 빠져나가라!”
그러나 두의적이 미처 퇴각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양쪽에선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무기를 든 군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고 추격하던 당군들은 장졸 할 것 없이 곤경에 빠져 허둥댔다.
더구나 그들은 반나절도 쉬지 못하고 싸움에 동원된 터였다.
“당나라 놈들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주살하라!”
흠돌은 장광도를 휘두르며 앞장서서 당군을 무찔렀다.
달아나던 신라군이 가세한 것은 물론이었다.
조용하던 설림군 진입로는 금세 귀관이 출몰하는 생사의 격전장으로 돌변하였다.
두의적은 제 목숨 하나를 지키기에도 바빠 부하들을 돌볼 경황이 없었다.
아귀같이 달려드는 신라군을 정신없이 베어 넘어뜨리고 사력을 다해 퇴로를 열어나갔다.
천신만고 끝에 빈틈을 얻은 두의적은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생지옥에서
가까스로 몸을 빼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석성을 향해 달아났다.
시쁘게만 여겼던 신라군들에게 보기 좋게 일격을 당한 두의적은 석성에 도착하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군사들을 점검했다.
어림잡아 5, 6백은 돌아오지 못한 성싶었다.
그는 성문을 닫아걸고 윤회를 불렀다.
“이기고 지는 것은 싸움터에 매양 있는 일이다.
비록 약간의 군사를 잃긴 했지만 우리가 벤 숫자도 족히 2, 3백은 되니
그쯤 하면 적도 함부로 우리를 공격하진 못할 게 아니냐?”
큰소리를 탕탕 치고 나갔다가 사색이 되어 쫓겨 왔으니
무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미 요동 정벌에서 대공을 세운 이 안하무인의
당나라 장수는 그따위 일로 연연해하지 않았다.
“나는 신라에 김유신과 천존이란 명장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흠돌이란 자는 또 어떤 인물인가?”
두의적의 물음에 윤회가 대답했다.
“그 역시 신라가 꼽는 9장수 가운데 하나외다.
흠돌은 특히 신라왕 법민의 사돈이요,
태자 정명의 장인이오.”
“그럼 왜 진작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는가?”
“언제 그런저런 얘기를 할 틈이나 있었소?”
두의적의 손에 죽을 뻔했던 윤회가 여전히 마뜩치 못한 어투로 대꾸하자
두의적은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너희는 이 싸움이 마치 우리나라의 일이라고 여기는 모양이구나?”
“당연하지요. 이곳은 당의 도독부가 차지한 당나라 영토가 아니오?”
윤회의 야무진 대꾸에 두의적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부근의 지도를 가져오라.
너희가 하도 지랄을 떨어대는 바람에 내가 지형과 지세도 알아보지 않고
성급하게 군사를 냈던 게 화근이다.”
두의적은 윤회가 가져온 지도를 펴놓고 한동안 궁리에 빠졌다.
그가 한참 만에 생각해낸 건 석성 동편의 사비내를 이용한 수공(水攻)이었다.
사비내는 너비가 30보쯤 되는 백마강의 한 지류로 평소에는 말을 타고 건 널 만큼
강물이 얕았으나 비가 오면 사정은 달라졌다.
경사가 급하고 굴곡이 많아 냇물이 금세 불어났으므로 수공을 쓰기에는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두의적은 윤회에게 말해 지리에 밝은 성안의 장정들과 백제군을 징발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비내 상류에 모래 자루를 설치는 물막이 공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때는 바야흐로 6월 한여름, 비가 흔한 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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