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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안승 망명 7

오늘의 쉼터 2014. 11. 30. 19:35

제34장 안승 망명 7

 

 

 

부여융은 녜군이 어떤 경우에도 먼저 군사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도 잊고 흑치상지에게 말했다.

“백사를 제하고 우선 녜군부터 구하고 봐야 하지 않겠소?”

흑치상지 또한 부여융과 생각이 같았다.

“사마공이 옥에 갇혀 고초를 겪고 있다니 신은 치가 떨려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신이 금일 밤중에 날랜 군사 1천여 기를 징발해

기필코 의관을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녜군의 생사가 오로지 장군의 손에 달렸소.”

융의 허락을 얻은 흑치상지는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성중의 보기병 1천기를 선발해

관산성으로 달려갔다.

5년 전, 당나라의 감독 아래 백마를 잡고 화친을 맹약하여 그 문서를 금서철권으로까지 만들어

보존해오던 약조가 대외적으로 풍비박산이 나는 순간이었다.

관산성 성주 의관은 흑치상지의 습격을 받고 급히 군사들을 성루에 배치하여 시석을 퍼부었지만

워낙 불시에 당한 일이라 일사불란한 방비를 하지 못했다.

노련한 흑치상지는 금세 이를 간파하고 날아오는 시석의 기세가 수그러들 때쯤 허술한 북문을

집중 공략했다.

북문이 무너지자 관산성은 이내 백중세의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양측의 군사가 서로 뒤엉켜 죽고 죽이는 치열한 단병접전이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의관은 나오라! 성주 의관은 어디로 갔느냐!”

흑치상지는 홀로 장창을 그러쥐고 무인지경 성안을 헤집으며 혈안이 되어 의관의 행방을 좇았다.

그가 탄 담가라는 전날 계백이 몰던 명마 중의 명마였다.

담가라의 잔등에 우뚝 올라탄 흑치상지가 사정없이 휘둘러대는 창날에 멋모르고 달려들던

신라군들의 머리며 팔다리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휘날렸다.

담가라의 거무스름한 털은 어느덧 붉은 피로 물들어 더욱 검게 변했고,

나중에는 그 씩씩거리는 시커먼 주둥이만 보면 신라군들은 장졸 할 것 없이 줄행랑을 놓기에 바빴다.

성주 의관은 흑치상지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찾는다는 소문을 듣자 크게 당황했다.

“내 흑치상지와 특별히 원수진 일이 없거늘 어찌하여 그가 나를 혈안이 되어 찾는단 말인가?”

“어쨌거나 우선 몸부터 피하고 볼 일입니다!”

성을 지키던 장수들이 다급하게 재촉했다.

의관은 적장이 흑치상지라는 말에 이미 싸울 의욕을 상실한 터였다.

그는 급히 수레를 마련해 왕의 누이인 처와 아들딸을 태운 뒤 후문을 통해 동쪽으로 달아났다.

금성에서 보낸 원군이 당도한 것은 의관 일행이 10리쯤 도망쳐 왔을 때였다.

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장수는 대아찬 천품(天品)이었다.

“부마께서는 어디로 가시오?”

형인 각간 천존과 더불어 계림의 명장으로 이름 높은 천품을 보자 의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마차가 미처 멈추기도 전에 수레에서 뛰어내리며 대뜸,

“이제 살았다!”

하고서 흑치상지의 습격을 받은 관산성의 위급한 사정을 바쁜 말투로 털어놓았다.

그러다가 문득 수상한 기분이 들어,

“해가 뜨고 나서 봉화를 올렸는데 어찌 이토록 빨리 오셨소?”

하고 물었더니 천품은 더욱 모를 소리로 대답하기를,

“봉화를 보고 오는 게 아니라 대왕께서 관산성이 습격을 당할 거라고 하여 어제 출발하였소.”

하고서,

“하면 천천히 뒤에 오시오.”

말을 마치고는 거세게 말을 몰아 관산성으로 달려갔다.

천품의 원군이 합세하자 패색이 짙어가던 신라군들의 기세는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천품은 장창을 휘두르며 종횡무진 성안을 누비고 다니는 흑치상지를 보자

곧바로 말배를 걷어차고 달려 나가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 이놈 흑치야, 어찌하여 너는 번번이 말썽만 피우느냐?

오늘은 반드시 너의 목을 취하여 계림의 오랜 근심을 없앨 것이다!”

감히 누가 자신을 알아보고도 겁 없이 덤비는가 싶어 소리 나는 곳을 보니

맹렬히 말을 몰아 나오는 장수가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양인은 전날 흑치상지가 아직 당에 항복하지 않았을 때 임존성에서 자웅을 겨룬 적이 있었다.

“너는 천존의 아우 천품이 아닌가?”

흑치상지는 약간 주춤하여 두어 걸음 물러서서는 사뭇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천품이 그런 흑치상지를 향해 다시 호통을 쳤다.

“우리 대왕께서 너희를 불쌍히 여겨 구토의 한 귀퉁이에서 제사를 받들며

유민들을 위로하게 하였으면 오로지 그 은혜를 고맙게 여기고 두려워해야 마땅할 일이거늘,

이제 스스로 회맹(會盟)한 바를 어기고 군사를 내어 공격하니 이것이 어찌 자멸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짓이 아니랴!

너희는 주제와 분수도 알지 못하고 화를 자초한 것이니 죽어 저승에 가서도 우리를 원망하지 말라!”

천품이 맹약한 일을 들먹이며 준절히 꾸짖자 흑치상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응수했다.

“참으로 뻔뻔스럽구나! 화친의 서약을 먼저 깨뜨린 쪽은 너희다!

파병을 의논하자고 청해 간 우리 사마공을 옥에 가두어 고문하는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그따위 소리를 입에 담는단 말이냐?”

“닥쳐라, 이놈!”

천품은 더 참지 못하고 역시 장창을 휘두르며 비호같이 달려들었다.

흑치상지가 황급히 천품의 예봉을 피하였다가 빈틈을 보고 재빨리 창끝을 쑤셔 박으니

천품은 어느 틈에 말머리를 뒤로 잡아채고는 다시 창날을 곧추세워 덤벼들었다.

양인이 말머리를 어우르며 신출귀몰한 솜씨로 창을 휘두를 때마다 날과 날에선 불꽃이 일고

숲을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소리와 창날 부딪치는 쇳소리가 갱연했다.

흑치상지가 바른쪽으로 돌며 유리한 위치에 섰다 싶으면 천품이 이내 담가라의 눈앞을

창날로 위협하여 공격의 맥을 끊었다.

승부를 떠나 실로 절륜한 무예였고 막상막하의 빈틈없는 창술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번에야말로 자웅을 가리겠다며 결의가 대단했지만 맞겨룬 지

물경 3백여 합이 지나도록 승부는 나지 않았다.

천품이 탄 말이 지쳐 몸놀림이 둔해질 때쯤 새벽부터 뛰어다닌 담가라도 기운이 다했는지

씩씩거리며 자주 주둥이를 털었다.

“말을 갈아타는 것이 어떻겠는가?”

기운 빠진 말 때문에 허공을 가르던 풍뢰소리의 간격이 뜸해지자

천품이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천품의 제안에 흑치상지도 동의했다.

두 장수는 말을 바꾸려고 각자 자신의 진영으로 되돌아갔으나 그새 북문 근처로 내몰린 백제군은

당초의 성성하던 기세가 많이 꺾여 있었다.

밤부터 먹지도 못하고 싸운 백제군들이었다.

성안의 군사들을 상대로 마지막 힘을 짜내던 백제군은 천품의 원군이 당도하면서부터

급격히 사기를 잃어 싸움마다 밀리고 있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것을 알아차린 흑치상지는 이번에도 천품과 승부를 포기하고

진중에 퇴각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백제군이 북문을 빠져나와 관산성 서편에 진채를 만들고 시급히 밥을 짓는 사이에

부여융이 사람을 보냈다는 전갈이 왔다.

흑치상지가 무슨 일인가 싶어 만나보니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법총 이었다.

“무슨 일이시오?”

흑치상지가 깜짝 놀라 묻자 법총이 다급한 소리로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장군! 지금 부성을 제외한 남역의 모든 접경에서 신라군이 쳐들어와

나라 전체가 쑥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전하께서 시급히 장군을 모셔 오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흑치상지는 그제야 녜군이 금성으로 떠나며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군사를 먼저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일을 떠올렸다.

“아, 내가 저들의 수작에 말려들었구나!”

흑치상지는 크게 탄식하였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그는 짓던 밥과 밥솥을 그대로 버려둔 채 군사들을 이끌고 황급히 웅진성으로 되돌아갔다.

관산성의 일은 명분을 얻기 위한 강수의 허계였다.

강수는 유돈이 부성으로 떠난 직후 법민에게 말하여 즉시 장수들의 직제를 전시 체제로 전환한 뒤

관산성이 습격을 받자 곧바로 군사를 여러 갈래로 내어 남역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이때 신라의 기습은 부성 일대를 제외한 백제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졌다.

품일과 문충은 3천 군사를 동원하여 지리산 서쪽의 고룡군(남원 일대)으로 나가고 천품과 중신은

무주(광주)를 친 뒤 품일의 군사와 합류해 불과 사나흘 만에 양주에서만 63성을 공취했다.

이들이 평정한 남역은 당군들이 거의 빠져나간 곳이었고 유민들도 대개는 신라에 호감을 가진 터라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파죽지세로 성을 장악한 장수들은 자사나 현령 가운데 당인들만 가려 죽이거나 사로잡고 백제인들은

비록 당의 녹봉을 받는 관리라 하더라도 죄를 묻지 않으니 유민들은 더욱 신라의 처사를 칭찬하였다.

이에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라로 옮겨 살도록 하였더니

가솔을 이끌고 따라나서는 이가 수천 호에 달했다.

하지만 부성에서 가까운 북쪽으로 갈수록 당인과 유민들의 저항이 거셌고 따라서 당연히 희생도 컸다.

천존과 죽지가 각기 1천 군사로 공격한 덕유산 서쪽 완산(전주) 지역에서는 7성을 빼앗는 동안

죽인 자가 2천 명이나 되었고, 군관과 문영이 합세한 금산벌과 계룡산 남쪽에서는 12성을 얻으며

참살한 당나라 유진군과 백제군이 물경 7천 명을 헤아렸다.

회맹식을 감독한 유인궤가 부여융에게 웅진도독 자리를 내어주고 당나라로 환국한 뒤

백제 땅에 설치한 도독부 휘하의 잔류 당군들을 지휘하던 책임자는 요동도 부총관 학처준의 아우

학처만(郝處萬)이었다.

학처만은 백제 멸망 직후 유인원이 맡고 있던 유진낭장(留鎭郎將)의 직책을 물려받아 5천여 유진군을

통솔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완산에서 그만 천존과 죽지에게 붙잡혀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학처만의 몰락과 함께 부성 외곽의 당나라 군사들은 이때 거의 전멸하였고,

지방 현을 다스리던 당인 관리들 역시 항복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다.

불시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기습으로 신라는 군사를 일으킨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백제의 구토를 대부분 장악하는 기대 이상의 전과를 올렸다.

법민은 개선한 장수들을 공에 따라 포상하였는데, 이때 중신, 흥원, 달관과 관산성 성주 의관이

사영에서 퇴각한 죄가 함께 거론되었다.

법민이 대승을 거둔 기쁨과 장수들의 사기를 감안하여,

“비록 그들에게 작은 허물이 있다고는 하나 뜻한 바를 모두 이루었으니 그만이다.

대풍이 들 적에도 군데군데 작황이 좋지 못한 곳은 있게 마련이다.

하늘의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 전부 고를 수야 있겠는가?

더구나 그들의 죄가 군령을 어긴 것도 아니며, 중신과 흥원은 퇴각한 뒤에 다시 공을 세웠고,

달관의 경우에는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으며, 의관 역시 그러하다.”

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군말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강수가 나서서,

“공과를 따지는 것은 국법의 바탕이요,

나라의 벼리를 세우는 일이라 어떤 경우에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허물이 있는 자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어찌 공을 세운 이가 빛이 나겠습니까?

대풍이 드는 것은 하늘의 일이나 작황이 좋지 못한 곳을 손보는 것은 또한 사람의 일입니다.

만일 작은 허물을 가려 극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훗날 큰 허물을 당하여 후회해도

때는 늦을 것입니다.”

하며 놀랍게도 참형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법민은 강수의 본심을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신과 흥원, 달관에게 무리하다 싶을 만치 험한 곳을 맡긴이도 다름 아닌 강수였고,

흑치상지로 하여금 관산성을 치도록 유도한 것도 강수의 머리에서 나온 계략이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이들의 허물을 감싸고 나와야 할 강수가 아니던가.

특히 의관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법민은 유돈이 수미, 장귀와 함께 부성으로 떠나자 시급히 관산성으로 원군을 보내고자 했다.

그런데 그때 강수가 느긋한 얼굴로 말하기를,

“서두를 게 없습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원군을 보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는,

“공연히 미리부터 원군을 내었다가 저쪽에서 유인책임을 알아차리게 되면

우리 사신 유돈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하는 소리까지 덧붙여 시간을 지체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굳이 따지자면 의관이 곤경에 빠졌던 것은 강수의 허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민의 이 같은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강수가 전에 없이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장수는 사영을 물러설 수 없고, 성주는 성을 포기할 수 없으며,

군주는 나라를 버릴 수 없는 것이 만고불변의 이치입니다.

만일 이 이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강성한 국가라도

어찌 내일 저녁의 일을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보위에 오르신 직후 선왕을 따라 대공을 세운 천하 명장 진주와 진흠 형제를 목 베고

그 일족을 멸하신 일을 벌써 잊으셨나이까?”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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