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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안승 망명 8

오늘의 쉼터 2014. 11. 30. 19:49

제34장 안승 망명 8

 

 

 

법민은 한동안 고민에 잠겼다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유사에 명했다.

“중신과 흥원, 달관은 사영에서 함부로 퇴각하였으므로 그 죄가 사형에 마땅하나

용서하여 면직만 시키고 의관은 벼슬과 관직을 빼앗고 성주에서 폐하도록 하라!”

한 차례 신상필벌이 끝나자 법민은 새로 얻은 백제 땅에 관리와 물자를 보내

유민들을 진무하는 한편 한성에 머물던 안승 일행에게도 사신을 파견해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金馬渚:익산) 지역을 주어 따라온 백성들과 더불어 살게 하였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적극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천하의 인심을 얻고,

그로 말미암아 당이 차지한 영토 내에서 유민들의 반란과 봉기를 유도하려는 속셈이었지만,

대내적으로는 당대의 진보 개념인 삼한 일족(三韓一族)의 구현을 통해 장차 통일 국가의 밑바탕을

마련하겠노라는 깊고 원대한 뜻이 숨어 있었다.

안승에게 보낸 책명문(策命文)에는 그와 같은 법민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으므로

전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함형 원년(670년) 세차 경오(庚午) 추(秋) 8월 1일 신축(辛丑)에 신라왕은

고구려 사자 안승에게 명한다.

공의 태조 중모왕(中牟王:고구려 시조 주몽)은 일찍이 덕을 북산에 쌓고 남해에 공을 세워

그 위풍을 청구(靑丘:동방)에 떨치고 어진 교화는 현도(玄?)를 덮었으며,

자손이 서로 대를 이어 종손과 지손이 끊이지 아니하고, 천리의 땅을 개척하며 지내기를

8백 년이 가까웠는데, 마침내 남건과 남산 형제에 이르러 화근이 집안에 일고 불화가

골 육간에 생겨나서 집과 나라는 파멸하고 종묘와 사직은 인멸되니 살아 있는 백성들은

혼란하여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공은 이러한 위난을 산과 들에서 피하다가 외로운 몸을 이웃나라에 의탁하니

그 유랑의 고통은 진문공의 자취와 같고,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자 함은

위후(衛侯:위나라 宣公)의 일과 같다. 무릇 백성에게는 임금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하늘은 반드시 사람의 운명을 돌보아주시거니와, 선왕(보장왕)의 정사를 계승할 이는

오직 공이 있을 따름이요,

제사를 맡아볼 사람도 공이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이에 삼가 일길찬 김수미산(金須彌山) 등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책명문을 전하고

공을 고구려왕에 봉하니 공은 마땅히 유민들을 모아 잘 어루만지고 옛 왕업을 일으키며

우리와는 영원히 선린의 정을 나누고 형제와 같이 공경하며 지내야 할 것이다.

겸하여 갱미(멥쌀) 2천 석과 갑옷 입힌 말 1필, 비단 5필과 견직과 세포 각 10필,

무명 15칭(稱)을 보내니 왕은 이를 영수하라.

창졸간 신라의 습격으로 영토의 9할을 잃은 부여융은 황급히 낙양으로 사신을 파견해

사단을 낱낱이 고하고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안승이 망명한 뒤로도 고구려 전역에서는 크고 작은 다물군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당에서는 원군을 파병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날짜만 끌고 있는 사이 신라 조정에서도 약간의 변고가 일어났다.

일의 발단은 강수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일부 신하들이 왕의 매제인 의관의 집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관산성의 일로 문책을 당하고 관직에서 쫓겨난 의관은 이때 금성의 사저에 머물고 있었는데,

함께 쫓겨난 아우 달관과 흥원, 중신 등이 날마다 찾아와 강수의 소행을 성토하였다.

의관이 본래 성질이 무던하여 평상에는 화를 잘 내지 않던 사람이나 여러 사람한테서

관산성으로 흑치상지를 유인한 것도 강수요, 원군을 뒤늦게 보낸 것도 강수이며,

왕이 용서한 일을 굳이 캐고 들어 하루아침에 벼슬살이에서 쫓겨나게 한 것도 강수임을

들어 알게 되고 급기야는 강수가 극형을 주장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했다는

후일담까지 전해 듣자 홀연 등골이 서늘한 중에도,

“대관절 그놈이 나와 무슨 원수가 졌기에 사람 신세를 이처럼 오그랑망태로 만드나?

대갈통에 뿔난 그놈을 갈아 마시지 않고는 어찌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겠는가!”

하며 분을 삭이지 못해 이를 갈았다.

비록 관직에서 물러는 났어도 의관은 일국의 부마요,

왕의 매제인지라 세도는 여전했다.

그런 의관의 집으로 평소 강수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조정 중신들이 다투어 모여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는 아찬 대토가 골이 잔뜩 나서 찾아와 푸념하기를,

“아무래도 강수놈이 들어 나라를 망치게 생겼소!”

하고 운을 뗀 뒤에,

“도무지 억장이 무너져 못살겠소.

대감들도 생각을 해보오.

우리가 수백 년간 양적(고구려와 백제)에게 시달리며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드디어 그 시호와 같은 것들을 쳐부순 것이 모두 누구 덕이오?

뭐니 뭐니 해도 당나라 덕분이 아니오?

모름지기 당을 섬기면 흥하고 당과 척을 지면 망하는 것은 지금 세상의 이치요 법도외다.

이를 알았기 때문에 붕어하신 태종 대왕께서도 당을 우리 편으로 만들려고

생전에 그토록 애를 쓰셨던 게 아니겠소?

그런데 이제 근본도 알 수 없는 해괴한 놈이 나타나서 하는 꼴을 좀 보시오.

대왕을 현혹시켜 고구려 반란군을 돕지 않나, 잔꾀를 부려 함부로 백제 땅을 집어삼키지 않나,

이거야말로 당최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등골이 오싹해서 보고 있지를 못하겠소.

요사이 강수놈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양적의 백성들은 우리 편이요,

우리 편이던 당은 철천지원수처럼 대하니 시운으로 보나 사람의 도리로 보나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이오?

강수놈은 고구려가 새로 융성하고 백제가 사직을 일으켜

우리가 전날처럼 허구한 날 양적의 시달림을 받아야 직성이 풀릴 놈이오.

대저 사람이건 국가건 의리를 저버리고 잘됐다는 소리를 나는 전고에 들어본 바가 없소이다.

지금이야 당이 북방의 일에 정신이 팔려 가만히 있지만 만일 요동을 평정하고 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나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오!”

하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의관이 그 소리를 묵묵히 듣고 앉았다가,

“왜 또 무슨 일이 있었나?”

하자 대토가 제 가슴을 쿵쿵 쥐어박으며,

“오늘 강수놈이 그 모난 대가리를 어전에 들이밀고 시급히 웅진을 아울러야 한다고 진언 합디다!”

하고서,

“이제 웅진까지 강제로 아울러보오.

장안에서 국학에 다니는 대감의 자제들이 그 길로 모조리 목이 달아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만 당군을 태운 배가 개미 떼처럼 서해를 뒤덮을 게 불을 보듯 뻔하오.

이래 가지고야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겠소?”

하였다. 의관의 집에 모여 있던 사람 중에 성질 급한 흥원은,

“자객이라도 냅시다!”

하며 씩씩거리고 중신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우리 자식들뿐 아니라 대각간 인수까지 낙양에 있는데

설마 형제간 우애가 자별하신 대왕께서 강수놈 얘기를 그대로 따르기야 하겠소?”

하니 잠자코 있던 달관이,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강수놈 말을 듣고 국서(國壻)인 우리 형님을 칼로 무 자르듯 하는 걸 보소.”

하고는,

“근본 대책이 있어야지 이래 한탄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오.

지금 조정에 당과 싸우는 것을 반대하는 중신들이 만만찮으니

우선 그들을 규합해 세력을 형성하는 일이 시급하오.”

하는 안을 내었다. 의관이 한참 만에 말하기를,

“중시 지경은 처남들 중에서도 나와 사이가 각별하니

일간 그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봐야겠소.”

하고는 그날 회합을 파하였는데,

바로 뒷날 이번에는 잡찬 수세(藪世)가 안색이 벌개서 대토와 더불어 의관을 찾아왔다.

수세의 말인즉 자신이 한산주 총관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한성(漢城)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강수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이라 하고는,

“나의 두 아들이 장안에서 학문을 배우고 있는데

굳이 날 보고 한성의 총관이 되어 웅진을 치는 일에 앞장을 서라 하니

내가 본정신을 갖고 도저히 못할 일이 바로 이 일이오!”

하며 격분하였다.

더는 미루지 못할 일이라 여긴 의관이 그날로 중시 지경을 방문하여

그간 마음에 품고 있던 소리들을 후련하게 털어놓으니

지경 또한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관의 말에 공감을 표하고는,

“나도 여기저기서 온갖 말을 다 듣는데 한 가지 명백한 일은 강수가 나타난 뒤로

조정 대신들 간에 이견이 분분하고 반목이 심하여 그러잖아도 걱정을 하던 중이오.”

하고서,

“매부가 나서면 앙갚음이란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 내게 맡기시오.

내가 대왕께 가서 매부의 말씀을 매부 말씀이라 아니하고 그대로 전하리다.”

하였다. 본래 그런 일은 중시의 소관 업무여서 지경이 뒷날 곧바로 법민을 찾아가

강수의 일을 걱정스레 말하였다.

이에 법민도 생각한 바가 있었던지,

“조정에 반목이 생겨서야 안 될 말이지.

나도 근자 강수의 뜻은 다 알지 못하니 기왕 말이 난 김에 그를 불러 물어보아야겠다.”

하고 사람을 보내 강수를 들라 하였다.

강수가 왕명을 받고 편전에 이르니

왕이 혼자 있지 아니하고 지경과 술상을 놓고 앉아 형제간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지라,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두 형제분께서 정담을 나누시는 모습이 실로 아름답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였다. 법민이 자리 한쪽을 내어주며,

“임생은 어려워하지 말고 이리로 오시오.”

하여 강수가 두어 번 사양 끝에 마지못해 무릎을 꿇고 앉으니 친히 어주를 하사한 다음에,

“공의 계책은 늘 탄복하는 바가 있지만 이번에 의관을 비롯한 몇몇 중신들의 일은

아무래도 그 진의를 깨우치지 못하겠소.

공은 수고스럽겠지만 과인의 궁금한 바를 풀어주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강수가 왕과 지경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잠깐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슨 소리를 할 듯 말 듯 주저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대답하기를,

“사영에서 퇴각한 자를 벌하는 일은 국가의 기강과 군대의 기율을 칼날같이 세우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찌 일말의 사사로움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하물며 의관공으로 말하면 공주의 부군이자 일국의 국서이므로

더욱 국법의 지엄함을 진언하였을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하며 원칙만을 말하였다. 법민이 강수의 대답에 사뭇 실망하여,

“그것은 그렇지만 의관으로 하여금 곡경을 겪게 한 것은

공의 계책 탓이므로 의관 당자로 봐서는 억울한 점이 어찌 없겠소?”

하며 재차 시말을 따지듯 반문하니 강수가 웃으며,

“신이 비록 계책을 써서 관산성으로 적군을 유인한 것은 사실이오나

본래 적이 군사를 내어 쳐들어오는 것은 예고가 없는 법입니다.

의관공이 성을 버리고 도망한 것을 어찌 반드시 신의 계책 탓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역시 원칙만을 말할 뿐이었다.

이에 잠자코 있던 지경이 안색을 붉히며,

“지금 만조에 공 하나가 들어 뜻이 갈리고 패가 나뉘었으니

대개 신하들이 서로 반목하는 나라치고 융성한 선례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네.

우리가 백제를 멸하고 고구려를 아우른 것은 신하들이 한마음이 되어 조정의 뜻에 따랐기 때문인데

이제 그것이 무너지게 생겼으니 어찌 앞날이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대놓고 책망하였다.

법민이 강수의 대답을 기다리자 강수가 한참 만에 힘없이 이르기를,

“고구려를 아울렀다고는 하나 전날 잃어버린 우리 땅조차 수복하지 못하였고,

백제를 멸하였다고는 하나 그 영토의 일부가 이제야 겨우 수중에 들어왔을 뿐이올시다.

신은 다만 대왕의 뜻을 받들어 삼한에서 당을 몰아내고 영토와 백성을 되찾는 계책을 내었을 뿐,

신하들이 서로 반목하는 까닭은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고서 그 후로 다시 말을 보태지 않았다.

법민이 강수를 보고 그만 물러가라 하니

강수가 두 번 절하고 사라지므로 지경이 혀를 찼다.

“그는 한낱 원리 원칙에만 밝은 백면서생일 뿐입니다.

변화무쌍한 천하의 일과 복잡다단한 국가 대사를 어찌 강수와 같은 자에게 맡기겠습니까?

이제쯤 당과 다시금 화친을 도모하심이 가한 줄 아룁니다.”

지경이 돌아간 뒤에 법민 또한 마음이 흔들려 잠을 못 이루고 궁정을 거닐다가

마침 태자궁에 불이 훤히 켜져 있어 행차를 그쪽으로 놓았다.

그때까지 등촉을 밝힌 채 글을 읽던 태자 정명이 황급히 임금을 맞아 예를 표하고서,

“무슨 근심이라도 계신지요?”

하고 물으니 법민이 강수와 신하들의 일을 대강 말하고는,

“네 뜻은 어떠한가?”

하였다.

이에 정명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기를,

“이는 대왕께서 강수를 편애하신 데서 생긴 일입니다.

강수가 비록 지모가 있다 하나 앞으로 아바마마께서는 그를 조금 멀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므로 법민이 그 말을 옳게 여기고 뒷날부터 매일 대하던 강수를 좀처럼 찾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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