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34장 안승 망명 6

오늘의 쉼터 2014. 11. 30. 19:20

제34장 안승 망명 6

 

 

 

“지금 고구려는 엊그제 이곳을 떠난 당나라 칙사 법안이 비명횡사를 할 만치 사정이 어지럽고 급박하오. 이럴 때 백제의 구토를 토벌하고 그 유민을 거두지 않는다면 다시 언제 삼한 백성이 모두 들어가 살

큰 집을 지을 수 있겠소?”

안승의 망명을 통해 북방의 전세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한 것을 실감한 법민은 서둘러 백제 구토에서

당나라 도독부 세력을 몰아내기로 결심했다.

법민의 제안에 재상 진순(陳純)이 입을 열었다.

“당은 백제땅 전역에 웅진 말고도 마한, 동명, 금련, 덕안의 다섯 도독부를 설치하고

직접 관리와 군사를 파견해 다스려왔으나 대왕께서 온갖 수모를 참으시고 부여융과 백마를 잡아

맹약한 이래로 부성 일대를 제외한 지방의 당군들은 거의 빠져나가고 관리 또한 각부의 수장 외에는

거의 백제인들이 맡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날 백제의 5부를 다스리던 추장과 군장(郡長)들을 도독부의 자사로 삼아 당인 도독의 하명을

받도록 하였사온데, 이들 가운데는 차츰 당에 불만하고 불복하는 자들이 늘어나 도독과 자사 사이에

알력이 극심하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오라 백제와 당은 애당초 문물과 풍속이 다르고 전통과 예법이 어긋나서 구토에 사는

백성들도 차라리 우리나라에 귀화하기를 원하는 이가 열에 예닐곱은 된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한 때 만일 우리가 도탄에 빠진 유민들을 구하고 오로지 당인 관리들만을 죽이기 위해

대군을 일으킨다면 뉘라서 창칼을 들고 대적을 하려 들겠습니까?”

진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왕제 개원이 말했다.

“부성을 제외한 나머지 땅을 쳐서 수중에 넣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올해는 그런대로 곡식이 잘되어 백성들의 궁핍한 사정 또한 작년보다 한결 나아졌습니다.

우리가 두렵게 여기는 것은 백제의 구토를 아우른 뒤에 당이 총력을 기울여 공격해올 일이지

우선 백제 땅을 쳐서 얻는 것은 별로 걱정할 게 없습니다.

후일에 대한 대비만 명확히 해둔다면 마땅히 군사를 내어 남역 평정을 도모할 때인 줄 압니다.”

그러나 모든 중신들이 이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당의 오만한 처사에 분통을 터뜨리던 자들도 막상 군사를 내어 당나라 도독부를 치려고 들자

안색이 변해 만류하는 자가 꽤 여럿이었다.

제일 먼저 유신의 부장 출신인 아찬 대토(大吐)가 근심 어린 얼굴로 운을 뗐다.

“비록 당군이 북방의 일에 정신이 팔려 지금 당장은 백제를 구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만간 고구려의 일이 평정되고 나면 전후와 시말을 따져 우리를 책망하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백제 유민을 함부로 거뒀다고 노발대발해 우리 사신 김양도까지 옥사를 시킨 당인데

근년에 전하께서는 당나라 관리들과 칙사 법안을 죽이고 우리에게 도망 온 안승의 무리까지

거두셨나이다.

당나라 수도 낙양에는 대각간(김인문)을 비롯한 조정의 여러 중신들이 유숙하는 중 이옵고,

옛 서울 장안에는 우리 고관의 자식들과 이름난 승려들이 학문과 도를 구하고자 유학하고 있으니

그 숫자만도 언뜻 헤아려 수백 명에 이릅니다.

황도(黃圖:중국)의 막강 대군과 창칼을 마주하고 싸우는 일은 계림의 천년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극히 위험하고 부당한 일입니다.

삼한 가운데 백제와 고구려가 당에 대항하다 이미 천년 사직을 그르쳤사옵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오직 우리 계림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천하의 일을 논하건대 팔방의 무수한 나라치고 당과 대적하다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부디 앞날을 성찰하시어 과욕을 삼가심이 마땅한 줄 아옵니다.”

대토의 의견에 수세(藪世), 흥원(興元), 달관(達官) 등 만만찮은 장수 출신 중신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특히 인문을 수행하여 여러 차례 당을 들락거린 수세와 흥원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일의 부당함을

극간했다.

“원군을 내어 고구려 다물군을 돕는 것과 대왕께서 친히 당의 도호부를 치는 것은 격이 다른 일이옵니다. 선덕 대왕 이후 지난 30여 년간 우리나라의 중신들치고 그 자식 한둘을 장안의 국학에 입학시키지

않은 이가 드뭅니다.

만일 당과 일전을 벌인다면 우리나라 고관의 자식들이 모조리 볼모로 잡히는 형국이 될 터인데

어떤 자가 그 안부를 걱정하지 않을 것이오며, 자식의 생사를 걱정하는 장수가 어찌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이까?”

“그러하옵니다. 대왕께서는 인지상정을 살피시어 그동안 공을 세운 우리나라의 많은 신하들이

혈족을 잃고 비탄에 잠기는 일이 없도록 부디 통촉하사이다.”

법민은 중신들의 공론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않자 그날 밤에 가만히 강수를 불렀다.

“당은 고구려의 일이 해결되면 조만간 또 사신을 보내와서 백제의 구토를 모조리 돌려주라고 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백제 땅을 되찾아야 할 것이나 중신들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으니

과인이 잠을 이루지 못하겠소.

밤이 늦은 줄은 알지만 임생을 만나면 필경 특별한 방책이 있지 싶어 이렇게 들라 하였소.”

강수를 대하는 법민의 태도는 이찬 이상의 연로한 중신들을 대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정성스러웠다.

“전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강수가 대답에 앞서 반문하였다.

“실은 과인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소.”

법민은 무거운 어조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선왕께서 일으키신 삼한일통의 위업을 계승하고 그 강토와 백성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야

몽매간에도 잊지 못할 과인의 일념이지만 중신들의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하니

삼한에서 당을 몰아낸다는 것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 일일지 적이 의문스럽소.

당장 과인의 경우만 하더라도 당에 머물고 있는 인문의 생사를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미루어 짐작하면 반대하는 중신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소?

당과 계림은 이미 둘로 나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버린 게 아닐는지,

고요히 살펴보면 그런 느낌까지 드오.”

그러자 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전에 전하께서는 녜군의 계교에 속아 화를 내시고 그를 옥에 가두셨습니다.

녜군은 이미 자신이 돌아가지 못할 것을 깨닫고 일부러 대왕을 노하게 하여 웅진성과 흑치상지를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흑치상지를 계림으로 유인하는 일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녜군이 없는 웅진은 성충이나 흥수가 없는 백제와 같고,

개소문이 없는 고구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백제의 구토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지난날의 맹약문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부여융이 먼저 우리를 공격해 오도록 만든다면 회맹을 먼저 위반한 쪽은 백제이므로

우리가 이를 징벌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부여융이 과연 먼저 군사를 내어 우리를 치려고 하겠소?”

“녜군이 웅진에 있다면 어려운 일이나 그는 지금 우리의 궐옥에 갇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거듭 흑치상지를 청하고 당을 원조하기에 앞서

녜군이 말한 볼모 교질을 의논하자고 하십시오.

소상한 계책은 사신이 정해지는 대로 신이 다시 아뢰겠습니다.”


법민은 강수에게 계책이 있는 줄을 알았지만

녜군까지 붙잡고 있는 마당에 누가 사지나 다를 바 없는 웅진으로 사신이 되어 가려고 할지 궁금했다.

이에 강수가 천거한 사람은 대아찬 김유돈(金儒敦)이었다.

“유돈은 구변이 좋고 담력과 기지가 남다른 인물입니다.

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들어가려는 이를 좀체 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법민은 강수의 의견을 좇기로 하고 이튿날 날이 밝자 곧 유돈을 불러 대강의 일을 설명하였다.

“과인이 녜군을 옥에 가두었으므로 그대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쩌면 생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강수의 천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을 맡아 해보겠는가?”

그러자 유돈이 당석에서 쾌히 웃으며 답했다.

“신은 일찍부터 강수를 잘 알고 있사온데 그가 낸 계책이라면 의심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설령 강수가 알몸으로 범굴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고 오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수는 무궁무진한 지략을 가지고 있는 당대의 기재입니다.

신을 사지로 내몰면서 설마 살아나올 방책을 주지 않겠습니까.”

진골인 유돈은 5두품인 강수와 글공부를 같이 하며 자란 사이로, 어려서부터 신분의 격차를 넘어

서로 벗이 되어 지냈다.

유돈의 진골 친구들은 늘 이를 못 마땅히 여겨,

“자네는 어찌하여 비천한 자와 죽자 살자 붙어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허교까지 하는가?”

하고 책망하니 유돈이 웃으며 말하기를,

“귀하고 천한 구분은 오직 의복에 있을 뿐 어찌 사람 가운데 있겠는가.

자네들은 금불(金佛)만 부처로 섬기고 석불(石佛)은 부처로 여기지 않는가?

나는 주위를 통틀어 자두만한 인물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그를 벗으로 사귄 것은 오히려 나의 행운이며 홍복일세.”
하고는 두 번 다시 귀천을 논하지 말라며 말끝을 여물렀다.

아니나 다를까. 유돈이 사신으로 책봉되어 어전을 물러나오자

강수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은밀히 계교를 주었다.

“자네를 웅진에 보내는 이유는 두 가지네.

첫째는 부여융으로 하여금 먼저 군사를 일으키게 하여 우리가 백제를 칠 명분을 얻기 위함일세.

자네는 부여융과 흑치상지를 만나거든 녜군이 감옥에 갇힌 일을 스스로 털어놓아 환심을 사게.

볼모 교질을 의논하러 홀로 적진에 오게 된 것을 심하게 불평한다면 저들은 자네를

과히 의심하지 않을 걸세.

그런 다음 관산성(옥천 일대) 성주 김의관(金義官)이 대왕의 매부임을 들어 군사를 내도록 부추긴다면

어리석은 부여융은 녜군을 살리려고 틀림없이 군대를 동원해 의관을 사로잡으려 들 것이네.”

“또 한 가지는 무언가?”

“그곳에 유하면서 부성 주변의 군사 배치와 자성(子城)들의 허실을 눈여겨 살펴두게나.

현자는 궁벽한 곳에서 도를 구하고, 죽을 곳에 이르면 비로소 일생의 기회를 얻는다고 하였네.

이번에 웅진을 다녀오면 머잖아 대공을 세울 기회가 반드시 있을 걸세.”

강수의 말에 유돈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봤더니 자네가 나를 사지로 모는 까닭이 필경은 나의 문벌을 높여주려는 뜻일세.

이 유돈이 어찌 자네의 그 같은 호의를 저버리겠는가.”

유돈이 떠나려 하자 강수가 급히 유돈의 팔을 붙들었다.

“성질도 급하이. 나는 아직 자네가 생환할 방책을 말하지 않았네.”

“아참, 그런가?”

“녜군을 따라온 수미와 장귀를 풀어줄 테니 데리고 가게.

그 중에서 장귀는 우리나라에 귀화한 무수, 인수 형제와 막역지간으로 훗날 웅진이 위태로워지면

반드시 투항하려 할 것일세.

지금부터 그와 교분을 착실히 쌓아둔다면 자네의 생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싶네.”

강수는 유돈과 헤어지자 영객부에 묵고 있던 수미와 장귀를 찾아갔다.

그는 녜군이 옥에 갇힌 것이 흑치상지가 함께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볼모 교질은 이미 그대들의 상전과 합의를 했으니

어서 흑치 장군을 데려와 고생하는 사람을 구해야 하지 않겠소?

가서 사마공이 옥고를 겪고 있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말은 안하는 것이 이로울 거외다.

사마공의 살고 죽는 것은 순전히 두 사람의 손에 달렸으니 알아서들 하시오.”

하며 몇 번이나 오금을 박은 뒤 드디어 유돈과 더불어 웅진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들 두 장수는 본래 흑치상지의 심복들이었다.

웅진으로 돌아가자마자 곧 모든 사실을 윗 전에 낱낱이 고하며,

“사마공은 궐 옥에 갇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집니다.

장군께서는 절대로 저들의 간악한 수작에 응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이어 강수가 녜군의 목숨을 담보로 옥에 갇힌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소리까지 전하였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뿐 아니라 신라의 사신으로 온 유돈이란 자까지도 같은 말을 하자

흑치상지는 혹시 무슨 흉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여 하루 이틀 지켜보며

유돈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유돈이 시종 불쾌한 낯으로 투덜거리며,

“사마공을 청하여 옥에 가둬놓고 날더러 웅진으로 가라면

결국은 가서 죽으라는 얘기나 무엇이 다르오?

이는 근자에 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강수란 놈의 뿔처럼 생긴 수상한 대가리에서 나온 술책이오.

강수란 놈은 계산이 빠르고 얄팍한 잔꾀에 능란한 자로 옛날부터 나보다 출세가 늦은 것을

늘 시기하고 질투해왔는데 이번에 나를 이곳에 보내어 아예 죽이려는 수작이 틀림없소.

장군께서는 절대로 강수놈의 계책에 속지 마시오.”

하고 불평하는데 그 기색이 사뭇 뜨겁고도 진지하여 도저히 거짓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세 사람의 말이 모두 일치하자 부여융과 흑치상지는 유돈에게 딴마음이 있는 줄을 알고

그를 슬슬 구슬려보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마공을 어떻게 구할 수가 있겠소?”

부여융이 묻자 유돈은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한 뒤에,

“관산성 성주 의관은 왕의 손아래 매제올시다.

장군께서 만일 그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사마공은 당장이라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외다.”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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