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회 ◑
낮에 오유철의 장례를 다시 치렀다.
그의 아내 김성회의 유골과 합장하기 위해서였다.
조웅남이 웃통을 벗고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흔자서 하다시피 해내었다.
무덤 속에 그들을 함께 묻고 나서 오함마는
오유철이 남긴 편지를 소리내어 읽고 불에 태줬다.
조웅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장례가 끝나고 한 시간이 넘게 그를 찾았으나 못 찾고 돌아왔다.
김원국이 앉아 있는 사무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강만철이 들어 왔다.
그는 앞자리에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됐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김칠성이 들어왔다.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이 잔뜩 배어 있었다.
"형님, 웅남 형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애들을 풀어야했습니다. "
김원국이 강만철을 돌아보았다.
"놔둬라, 무슨 일 없을 거다. "
강만철이 말했다.
"왜요?"
김칠성은 불만스런 얼굴이 되었다.
"걔는 할일이 있으니까 그래."
김칠성은 눈을 꿈덕 거렸다.
"걱정말고 너희들이나 쉬어라."
김원국의 말에 김칠성의 얼굴이 풀어졌다.
조웅남을 심부름이나 시킨 줄 아는 모양이었다.
"구영산이하고 천재용이 찾으러 갔겠지요?"
강만철이 말했다.
"아마 형구를 데리고 갔을 것 같구나. 말생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텐데."
"형님, 유철이는 생각할수록 불쌍합니다. 그 유철이 처두요."
강만철이 불쑥 말했다.
"아이구, 어서 오십시오."
백광남이 문 앞에서 김원국을 맞았다.
백성재가 그 옆에 서 있다가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폐를 끼치는 것 아넘니까?"
김원국이 미안해 하며 물었다.
그는 강만철과 오함마, 김칠성을 데리고 온 것이다.
"원 천만의 말씀을, 들어가십시다. "
현관에는 백광남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순박하게 생긴 부인이 었다.
그녀도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를 반겼다.
점점 김원국은 거북해졌다.
오유철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백광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원국은 그를 만나볼 작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저녁 초대를 사앙하지 않았다.
그들은 응접실에 앉았다.
"그 사람, 오유철 씨가 불행한 일을 당한 것을 가승 아프게 생각합니다. "
백광남이 앉은 채로 상체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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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식놈뿐만이 아니라 식구들에게도 그 사람은 은인입니다. "
김원국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백광남은 경계심 많고 바늘로 델러도 피 한방울 나을 것 같지 않은 사내였다.
그러나 온 가승을 열어 놓고 말하고 있는 그를 보자 원국도 마음이 가라앉아 갔다.
"제가 어떻게 신세를 갚으면 될지 그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백광님의 말에 김원국이 머리를 저았다.
"사실은 부탁드릴 게 있었는데‥‥‥ 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아니, 왜?"
백광남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유철이 말씀을 하셔서요.
유철이가 무얼 바라고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유철이에 대한 사장님의 호의만 받기로 하지요."
김원국은 머리를 돌려 구석에 앉아 있는 백성재를 바라보았다.
"자넨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지?"
"f1?"
깜짝 놀란 백성재는 얼굴이 빨개졌다.
고생없이 자랐기 때문에 절제하지 못하는 성품이었으나 착해 보였다.
백광남이 입맛을 다시며 얼굴을 돌렸다.
"자네 우리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나?"
"일하겠습니다. 시켜 주세요."
백성재가 의외로 불쑥대답했다.
김원국이 싱긋 웃었다.
"아니 이 자식이, 제까짓 게 무슨 일을 한다고?"
백광남이 필적 뛰었으나 그의 얼굴도 풀어져 있었다.
"사내가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지. 그렇지 券"
김원국이 말했다.
"예."
백성재가 머리를 숙였다.
"우선 단단한 남자가 되어야 해.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갑자기 김원국은 말을 멈줬다.
눈을 치켜뜨고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오유철 생각이 났던 것이다. 단단한 녀석이었다.
벌거벗겨 엄동에 내雲 아도 살아갈 놈이었던 것이다.
그놈은 책임감과 김성희의 죽음으로 인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죽으러 뛰어들었다.
그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아침에 백광남이 회사로 김원국을 찾아왔다.
김원국이 그를 반겨 맞았다.
"아침에 웬일이십니까?"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어제 김 사장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지나다들렀습니다. "
"원, 계가 찾아 뵈어야 될 일인데
"그거야 상관 있습니까?"
백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백 사장, 제 모든 사업체를 담보로 제공할 테니까
100억을 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김원국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좋숩니다. 빌려 드리지요. 언제까지 필요하십니까?"
너무 선선히 승낙하여 김원국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
"내일까지 준비해 드리지요."
"담보서류는 모두 준비해 놓았습니다. "
백광남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이자는 얼마로 계산하면 되됐습니까?"
"이자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원금도 생기는 대로 갚아 주세요. "
"아니, 백 사장, 패 이러십니까?"
김원국이 놀라 물었다.
백광남이 普쓸하게 웃었다.
"그저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게만 알아두세요."
"그렇지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
"말씀하세요."
"제 자식놈이 사장넘 밑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성화입니다.
그놈에게 맞는 일이 있겠습니까? 사람 좀 만들어 주십시오."
김원국이 팅그레 옷었다.
"보내세요. 제일실업의 김칠성이나 강만철에게 보내시면 잘 보살펴 줄 겁니다. "
백광남은 자신의 빌딩관리일을 맡겨도 싫증을 내는 성재가 거칠고
복잡하게 보이는 김원국의 회사일을 감당해 낼까 걱정인 모양이었다.
백광남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최갑태와 원명구가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반가움에 상기되어 있었다.
최갑태는 유통의 관리 책임자였다.
"건강하셔서 반갑습니다. "
원명구가 웃으며 말했다.
"고생들 많았지요?"
"우리야 무슨 고생이 있었겠습니까."
최갑태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었다.
"생산은 잘 됩니까?"
원명구에게 묻자 그는 시선을 내리 깔았다.
"죄송합니다. 이번 달부터는 적자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차질이 생겼습니다. "
"잘 되겠지요."
원명구가 얼굴을 들었다.
"실은 이번에 영화상사에서 약속대로 오다만 주었어도 적자를 안 냈을 것입니다.
차 사장이 그런 여자인 줄은 몰랐습니다. "
그의 얼굴이 벌곁게 달아올랐다.
"사장넘이 그렇게 되시니까 원단까지 준비한 오다를 모두 취소시켜 버렸어요.
견본작업까지 한 오다들도 모두 다른 데로 돌려 버렸습니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
"교환에게 지시를 했는지 제일유통이나 계일섬유라고만 하면 안 계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습니다. "
김원국은 씀쓸하게 웃었다.
"차 사장만 그러했습니까?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화를 낼수록 우리만 손햅니다. "
그령게 말하는 김원국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저희들 유통의 일은 지장이 없습니다. 매출액이 신장하고 있습니다. "
최갑태가 가방을 열고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매달 10퍼센트 가량 매출신장이 되었습니다.
다음달부터는 목표액을 달성할 것 같습니다. "
그는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해 나갖다.
조웅남은 이형구를 앞세우고 3일째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구영산은 일단 제쳐놓고 천재용을 찾는 것이다.
그놈은 본래부터 떠돌이여서 확실한 연고지도 없었다.
대전에도 있었다가 광주에도 1, 2년 살았고 인천에서도 놀았었기 예문에
이형구는 3일동안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그러나 조웅남은 조금도 지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이형구를 앞장세우고 대전에서 광주로, 인천으로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형구는 본사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가
잔뜩 눈을 흘기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들은 인천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천재용은 어디로 잠적했는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웅남은 김세덕이 운전하는 차의 됫자리에 論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찾는 것에 오유철을 따라갈 놈이 없었다.
그놈은 어느 누구 건 삼활선 안에서는 사흘 안에 찾아 낼 수 있다고 장담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찾아 내었다.
그런데 자신은 사흘 동안 천재용의 그림자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놈이 하루에도 및 시간씩 행방불명이 되고 퇴근하면 일적 집에 들어간 것도
죽어가는 마누라를 간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멍청한 자신이 모른 채 그놈을 구박하고 나무라기만 한 것을 생각하면
머리를 어디에다 박아 버리고 싶었다.
"야, 여그서 세워라."
조웅남의 말에 김세덕이 브레이크를 많아 차를 세웠다.
세우고 보니 차는 시내로 들어가는 강변도로 입구 근처에 멈춰져 있었다.
"느그덜은 회사로 돌아가. 나는 어디 좀 갔다가 회사에 갈팅게."
조웅남은 문을 열고 내렸다.
"어딜 가시는티인"
김세덕과 이형구가 따라 내리며 물었다.
"응?저그."
조웅남이 턱으로·가리키는 곳은 한강이었다.
"oll?"
12.재 회 277
김세덕이 한강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하였다.
"형님, 차를 가지고 가시죠."
이형구가 말했다.
"아녀, 귀찰여."
조웅남은 휘적 거리며 걸었다.
"형님, 큰형님한테 회사에 언제 돌아오신다고 전할까요?"
뒤에 대고 이형구가 소리쳤다.
"이따가."
그는 길을 알고 걷는 것인지 어편지 그들 앞에서 곧장 길목을 돌더니 사라겼다.
"이거 야단났는데."
김세덕이 뒤늦게 중얼거렀다.
회사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물어볼 것이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면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따라붙을 수도 없었다.
둘이는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누굴 찾으세요?"
종업원인 듯싶은 여자가 현관에서 기웃거리는 조웅남에게 물었다.
"거시기."
그러다가 조웅남은 혀를 참다.
여관 앞에는 '백운 철학관'이라고 큼지막한 간판이 붙어 있었으나안으로 들어서자
이건 델정한 여관인 것이다.
"점쟁이가 어디 있는 거여?"
조웅남이 거칠게 물었다.
종업원은 그의 생김새에 불안해 하다가 그의 말을 듣고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저기, 1點호실이오."
조웅남은 그녀를 흘겨보고는 좁은 마루를 건딘다.
차를 타고 오다가 점쟁이가 귀신 같이 알아맞힌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던 것이다.
및 년 전에 '블루스타'의 민 사장인가 누군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됐든 아무 점쟁이나 찾아본다고 마포의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가 여관 앞에 붙은
간판을 본 것이다.
문은 열려 있었다.
현관이 지척이어서 조웅남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임에도 점쟁이는 밥상을 앞에 놓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어음."
못마땅한 듯 목청을 울리며 조웅남은 그의 앞에 털씩 주저앉았다.
점쟁이가 눈을 줬다.
40대 초반의 누런 얼굴의 사내였다.
롯날이 매부리코에다가 눈 사이가 좁았다.
그는 놀란 듯 눈을 한껄 크게 뜨고는 정신없이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월 그렇게 보는 거여?"
조웅남이 거칠게 묻자
그는 그제야 벌린 입을 다물었다.
"저, 무슨 일로‥‥‥‥
그가 고쳐 앉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
조웅남의 얼굴이 피푸려졌다.
"네, 무슨 일이신지, "
"점치러 온 거여, 당신이 점쟁이여?"
"네?네, 제가 사주, 관‥‥‥‥
그는 평정을 잃고 있었다.
"사주네 그런 것 말고, 내가 사람을 찾는디, 도대치 어디 있는가 알라고 왔어."
"OtOl, fl ."
점쟁이는 허리를 졌다.
그러고는 그윽한 눈빛이 되어 조웅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어, 요즘 고난을 당하됐군요."
"장군의 상입니다. 수백 명을 거느리게 될 귀한 상입니다. "
"나말고, 내가 아니란런"
조응남이 얼굴을 찌푸렸다.
"허어, 여난이시군요."
점쟁이는 혀를 對다.
"여자를 찾고 계시는군요.
저런, 가까운 데 있으면서도 서로 못 만나고 있으니 이렇게 안타까울 군‥‥‥‥
"음. "
조웅남이 않는 소리를 냈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못 만니고 있군요.
서로 '철책.'
조웅남의 커다란 손바닥에 귀향을 얻어맞은 점쟁이는 밥상과 함께 .
방구석에 나◎굴었다.
조웅남은 자리에서 일어셨다.
"지기미 씨발놈 같으니. 내가 지지배 찾어 댕기는 줄 알어, 이노무시키야!"
조웅남이 으르렁거리자 점쟁이는 엎어진 채 기어서 방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고는 볼을 두 손바닥으로 싸쥐고 올려다보았다.
"자, 말혀. 천재용인가 허는 놈을 찾는디, 동쪽여? 서쪽 서울여?부산여? 얼릉 말혀 봐!"
점쟁이의 눈동자가 이러저리 굴렀다.
"랄리 말혀 이 새끼야!"
"천, 천재용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려 !"
"그런데 왜 손찌검을‥‥‥‥
"니가 틀렸응께 그려."
"아니, 여자가 분명히‥‥‥‥
"시끄러 이 새끼야!"
조웅남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무슨 여자가 있어, 이 새끼야!"
그러다가 문득 김경지 생각이 났고 더욱 화가 솟구쳤다.
"택도 없는 소리 말어!"
주저앉으면서 주먹으로 밥상을 내려치자 밥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어딘어? 그놈의 시카"
"잠, 잠깐만요."
그는 부서진 밥상 앞에서 눈을 감으려 하였으나 이내 눈을 였다.
그러다가 조웅남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참지 못한 듯 눈을 띤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딘다.
"뭐 여?"
조웅남의 물음에 그는 소스라쳐 몸을 세웠다.
"변, 변소에 잠깔‥‥‥‥
회사 앞에서 조웅남은 택시를 세웠다.
밤 9시가 되어 있었으나 사무실에는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김윈국과 강만철 등 모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천재용이도 잡지 못한 지금 그들 앞에 얼굴을 내밀 염치가 없었다.
오유철이는 나에게 편지를 써남겼다.
내가 친형이나 다름없으므로 나에게만 편지를 남기고 부탁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나는 유철이의 아내가 위독한지 어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이
조웅남을 괴롭히고 있었다.
점쟁이는 변소간다고 하고는 도망쳐서 돌아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회사 앞까지 왔으나 조웅남은 망설이고 있었다.
홍성철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앞에 앉은 김일두와 시선이 마주쳤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형님, 뭐라고 하십니까?"
참다못한 김일두가 물었다.
"음, 유철이 장례식을 끝내고 정리하실 것들이 있다‥‥‥‥
"언제 오신다는 말은 없었어요?"
홍성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김일두는 홍성철이 홍콩의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철이가 안됐다. "
홍성철이 한숨과 함째 말을 텔었다.
"그놈, 재미있게 사는 것 같더니만‥‥‥‥
김일두가 머리를 들었다.
"저두 그 형님 딘에 있었습니다. 그 형님은 멋지게 돌아가신 겁니다. "
"남자라면 그렇게 이름을 날려 보고 죽어야지요. 그렇지만 형님 "
"조용히 해라."
김일두는 입을 다물었다.
홍성철은 억누른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도 해리슨 조직의 형주량이 보낸 사내들이 호텔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행패를 부렸다.
그들과 치고받는 싸움 끝에 2명이 다친 것이다.
경찰이 진술서를 받고 부하들을 풀어 주었으나 애꿎은 이쪽만 귀찰을 뿐이었지
해리슨의 부하들은 한놈도 잡히지 않았다.
호텔 근처의 병원에는 벌써 5명의 부하들이 입원해 있었다.
더욱이 홍성철을 더욱 열세에 몰아넣은 것은 히로시의 철수였다.
김원국이 수감된 진 한 달쯤 되었을 때 히로시는 부하들과 함께 일본으로 철수했다.
"우린 오야마 형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20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끊임없이 부딪쳐 오는 저놈들을 상대하기엔 너무 백찹니다. "
히로시의 말이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김원국은 몇 년 동안 감옥생활을 할 것 같이 보였고
홍콩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홍성철을 동반자로 삼기에는 미흡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매달 부상자가 속출하여 본국에서 보충을 받아왔으나 이제는 50명 정도였던
인원이 20명 정도로 줄어들어 있어서 사기도 델어져 있었다.
"그럼 업체들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현지 중국인 고용자들이 있고 명색이나마 합작법인이니까요.
우리가 떠나면 주가가 폭락해서 해리슨이 인수하기가 쉽겠지요."
"오야마 형님 말씀으로는 일본으로 같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만, 어떻습니까?"
"우리가 일본으로요?"
홍성철이 웃어 보였다.
"형님이 감옥에 들어가 계신데 일본으로 피신하란 말입니까?
여기 있겠습니다. 여기서 죽지요, 월."
"그럼 안 가시렵니까?"
히로시는 확인하듯 물었다.
"안 갑니다. "
홍성철은 내심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이 홍콩에 발을 딛게 된 것도 일본측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직이 외국으로 델어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일본측의 협조요청으로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측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부랴부랴 철수해 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에 같이 가자고는 했지만 사지에 남겨 두고 그들이 도망쳐 나가는 모습이 된 것이다.
홍성철은 오기가 생겼다.
"가실 바엔 여기서 죽어 드릴 테니까 업체들 몇 개를 더 관리하게 해주시죠.
우리가 인수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
히로시는 홍성철을 한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오야마 형님께 말씀드려 보지요. 그래 주신다면 더 좋습니다.
어차피 우리 손에서 떠날 것이라서요."
그들은 헐값으로라도 업체들을 정리하려고 결정한·모양이었다.
며칠 후에 홍성철은 1년 후부터 분할상환하는 조건으로 호텔 하나와 백화점
두 곳의 인수계약서에 김원국을 대신해서 서명했다.
이제 제일그룹에서 관리하게 편 홍콩의 업체들은 호텔이 두 곳,
백화점과 나이트 클럽이 각각 세 군데였다.
히로시는 일행들을 이끌고 떠났다.
그것이 15일 전이었다.
"형님,형주량이가 犯명 가량을 데리고 파라마운트로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
김일두가 입을 열었다.
"그놈이 갑자기 부하들을 끌고 해리슨에게 간 것이 꺼림칙합니다. "
"지금 호델 안에는 14명밖에 없습니다. "
홍성철은 힐끗 김일두를 바라보았다.
짜증이 났으나 그의 충혈된 눈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며칠 동안 김일두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에도 호텔 앞에서 칼부림이 일어났었고 이틀 전에는
이번에 새로 인수한 백화점에서 싸움이 일어났었다.
그때마다 그가 부하들을 이끌고 물아단딘던 것이다.
김일두는 홍성철이 이곳의 급박한 상황을 김원국에게 알려 주기를 바람다.
그러나 홍성철은 김원국에게 별일 없다고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김원국이 석방된 지 닷새째였다.
"일두야, 며칠만 더 버티고 나서 형님한테 보고하도록 하자."
홍성철이 말했다. 김일두는 머리를 끄덕였다.
"형님이 큰형님 걱정 안 시켜 드리려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저쪽이 심상치 않아서 말씀드리는 것이니까요."
형주량이 부하들을 이끌고 본부로 들어갔다면 해리슨과 무슨 일을 꾸미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흥성칠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형주량은 오리엔트 호텔의 현관에 들어졌다.
그의 주위에는 20여 명의 부하들이 따르고 있었다.
프런트에 있던 호델 직원들이 긴장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로비에는 원삼기가 부하들을 이끌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아직 홍성철측과는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들 피신 했을 것이다.
오후 5시에 이렇게 밀고 들어왔으니 놀랄 것이 당연했다.
해리슨은 오늘로써 홍성철을 홍콩에서 밀어 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형주량은 로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부하들밖에 없었다.
로비를 장악하고 나자 계획대로 원삼기가 앞장을 서서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나머지는 우르르 비상구로 뛰어갔다.
홍성철이 7층인 715호실에 묵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형주량은 1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로비를 경계했다.
홍성철의 부하들은 이제 10여 명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두 달 가깝도록 그들은 인원 보충을 받지 못했다.
항복을 하든지 도망을 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원괌기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수 표시인 아라비아숫자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호텔의 입구에서부터 충돌을 예상하고 있었던지라 어편지 꺼림칙했다.
로비에는 한놈도 얼씬거리지 않았던 것이다.
"범춰라."
원삼기가 갑자기 소리치자 부하 한 명이 급하게 단추를 눌렀다.
숫자는 6에서 멈춰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앗. "
몇 명의 부하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와 함꼐 무슨 액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쓸아졌다.
원삼기는 순간 휘발유 법새를 맡았다.
"문 닫아!"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문이 안에서 닫혔다.
부하가 내려가는 단추를 눌렀는지 엘리베이터는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휘발유 냄새가 자욱하게 풍겼다.
원삼기의 머리와 저고리에도 휘발유가 묻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습니다.
밖으로나갈수가 없었습니다. "
앞쪽에 선 부하가몸을 반쯤 돌리고 말했다.
안쪽에 서 있던 원삼기는 그것을 보지 못했었다.
"지독한 놈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들이 불붙인 성냥 한 개비라도 던졌으면 원삼기와 7, 8명의 부하들은
모두 바비큐가 되었을 것이다.
원삼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놈들은 준비하고 있었다.
긴장과 공포가 뒤섞인 엘리베이터 안은조용했다.
1충에 내려와 문이 열리자밝은 공기가 폐에 들어왔다.
그들이 로비로 나오자 비상구로 올라갔던 부하들이 내려왔다.
그들의 옷에서 아직도 횐 연기가났다 그들도 물겨 내려온 것이다.
한 명은 소화액을 뒤집어 써서 온몸이 횐색 거품투성이였다.
머리카락 타는 법새가 로비를 가득 채줬다.
형주량이 원삼기에게 다가왔다.
"원형, 놈들이 7층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소.
휘발유를 끼및고 불을 내던지는 모양이오."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집니다. "
원삼기가 혀를 차며 말했다.
"놈들이 비상구와 내부계단, 엘리베이터에 모두 장애물을 걸쳐 놓은 모양입니다.
비상구는 부수지 못하고 내부레단으로 들어가려다가 쫓겨 내려왔소."
휘발유와 함깨 불이 내던져진 것이다. 형주량은로비를 돌아보았다.
손넘은 보이지 않았다.
프런트에 직원들이 겁에 질려 서 있었으나 그들은 경찰에 신고한다 든가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환실에도 이미 부하들이 들어가 있었다.
호텔의 바깥에도 부하들이 입구를 가로막고 손넘을 사절하고 있었다.
"이봐, 숙박객들에게 방을 비우라고 해. 숙박비는 받지 않는다고 말이 야."
형주량이 부하에게 지시했다.
"그럼 원형, 할 수 없소,
원형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놈들을 잡는 수밖에."
원삼기가 머리를 끄덕였다.
"비상구나 엘리베이터는 우리측에서도 봉쇄합시다.
호텔의 모든 전화나 전기공급을 끊도록 하시오."
원삼기가 그의 앞을 떠났다.
형주량은 로비의 의자에 않았다.
흥성철이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해두었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놈들을 이렇게 가둬 툴는 한 이쪽 지역은 이제 자신들의 세력권이 되는 것이다.
김일두가 들어왔다. 손에 야구 배트를 쥐고 있었다.
부하들을 배치 시켜놓고 오는 것이다.
비상구와 내부계단, 엘리베이터 앞에는 산더미 같은 냉장고와 텔레비전 등을 괌아 놓아서
그것들을 헤치고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음식물과 음료수는 충분히 비축을 해놓았다.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대비해 놓은 것이니만치 견딜 만은 했다.
탁자 위에는 두 자루의 姿불이 켜져 있었다.
에어컨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창문을 열어 놓았으나 후텁지근한 여름의 밤공기는
온몸을 금방 땀으로 적셨다.
"형님, 아래층 로비에 切명 가량이 있습니다. "
김일두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놈들이 오늘 쳐들어을 줄은 몰랐어요."
홍성철에게는 그 말이 몇 시간 전에 김원국에게 전화할 때 상황을
알려 주지 않았느냐고 불평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놈들은 아예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
"비상구에는 몇 명을 배치했니?"
"2명입니다. "
흥성칠은 잠시 생각에 잠기듯 눈을 깜박였다.
호텔에는 내부 계단과 비상구와 엘리베이터의 세 가지 통로가 있다.
내부 계단엔 따로 문이 없었으므로 계단 입구에 산더미 같은 장애물을 쌓아 놓았다.
철제문에도 장애물을 설치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엘리베이터 앞에도
장애물과 함께 경비를 매치했다.
홍성철은 김일두와 함꼐 복도로 나왔다. 어두운 복도는 조용했다.
복도의 끝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형님?"
문득 옆에서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에 홍성철이 흠칫 머리를 돌렸다.
벽에 붙어 서 있는 2명의 부하가 어습푸례하게 보였다.
"너회들이냐
홍성철이 물었다.
"네 , "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서 뭘 하고 었는 거야?"
"저회들은 복도 감시예요."
홍성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불빛을 향해 다가왔다.
"형님,우리야도망갈 데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갇혀 있으니까 애들 사기가 문제예요."
옆에서 걷던 김일두가 나직하게 말했다.
복도 끝에 오자 몇 개의 姿불이 밝혀져 있었다.
벽에 붙은 유리창가에 세워진 姿불이 흔들리자 방아 놓은
어수선한 바리케이드의 그림자도 따라서 흔들렸다.
벽에 붙어 앉아 있던 4명의 부하가 일어셨다.
"기운들 내라, 기죽으면 안 돼."
홍성철이 딸하자 그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 횐 이를 드러내어 보이는 사내도 있었다.
사흘 동안 홍성철은 해리슨측에 의해서 호텔에 감금당하고 있었다.
김원국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아침 홍콩에 있는 제일그룹 업체 직원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
당장에 그를 구출해 내고 싶었으나 처리 해야 할 일들이 않았다.
홍성철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신호가 가는 데도 전화는 곧 끊어지곤 했다.
한여름에 접어든 바활날씨는 온몸이 축 처질 정도로 더웠다.
템빛이 내리책는 인도에는 한낮인데도 사람들의 통행이 드물었다.
김원국은 창에서 몸을돌려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에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칠성이 들어오면서 문을 안에서 닫았다.
석방된 지 10일째였다.
7월도 며 칠 남지 않았다.
"웅남이는 아직 소식 없냐
김원국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강한 울림이 있었으므로 모두들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오후에 한강 근처에서 흔자 내려서 마포 쪽으로 간다는데요. "
강만철이 말했다.
"그놈 미친놈 아니냐
김원국이 역정을 냈다.
"조직생활을 하는 놈이 그렇게 제및대로 돌아다니기만 하면
동생들이 어떻게 믿고 따른단 말이냐."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쁜 자식 같으니."
"형님, 웅남이는 유철이 때문에‥‥‥‥
천재용인가를 찾으려고‥‥‥‥
강만철이 말했다.
"죽은 다음에 그러떤 무슨소용이 있어?
제 동생 안사람이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있었던 놈이,
뒤늦게 원수 갚는다고 유철이가 살아 나오 닌"
김원국은 화가 풀리지 않는 듯 벽을 노려보았다.
"지금 성철이가 홍콩업계들을 지키다가 위급하게 되었다.
어서 성철이나 일두 등을 구해 내야 한다.
이런 때에 뒤늦게 원수 찾아 혜매고 있어?"
"형님,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
강만철이 다시 말했다.
"필요없다. 우린 내일 출발한다.
나하고 만철이, 칠성이가 가고 함마하고 응남이는 서울에 남아 있도록 하겠다.
인원은 각자가 추려서 만철이가 오늘밤까지 선발하도록 해라.
30명 정도면 되겠다. "
모두들 긴장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는 다른 일을 해야 만 한다. "
김원국이 입을 다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양성화된 외국의 사업체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및떳하게 살아갈 수 있고 지난 번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
김원국이 딘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세워라."
김원국이 말하자 오함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장민애의 집까지는 2脚미터도 더 남아 있는 것이다.
차가 멈추자 김원국이 문을 열고 내렸다.
"너회들은 여기서 기다려."
김원국은 장민애의 아파트로 향했다.
초저녁이었으므로 아파트 입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일적 귀가하는 남편들,
늦게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서는 분인들로 활기 차 보였다.
차즘 김원국의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이윽고 그는 아파트 입구에 멈춰 딘다.
30대의 사내가 비닐 주머니를 들고 그의 결을 지났다.
비닐 주머니에는 포도가 잔뜩 담겨져 었었다.
그는 바뿐 듯이 아파트의 현관으로 들어서더니 보이지 않았다.
깔깔대고 웃는 소리에 김원국은 정신이 들었다.
머리를 돌리자 예닐곱 살쯤 된 계집아이가 뛰어왔다.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었다.
그의 뒤를 鈴대의 여자가 따라왔다.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김원국의 곁을 지났다.
김원국은 장민애의 마파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집은 8층이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활래가 보였다.
가습 깊은 곳에 묻어둔 그리움처럼 그 사소한 풍경이 눈물겹게 다가왔다.
아파트 문을 들어서며 아내와 가볍게 입맞추고도란도란 식탁에 마주 않는 생활‥‥‥‥
김원국은 생각을 범추었다
구치소로 송치될 때 계단 아래 모통이에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그 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원국의 가습이 내려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 어떤 것을 대가로 지불해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김원국은 시선을 내리고 몸을 돌렀다.
내일이면 홍콩으로 떠나야 했다.
조직 때문에, 일 때문에‥‥‥‥ 아니었다.
미련을 만들지 않으려는 절제. 장민애는 미련인가.
'못난 놈‥‥‥‥ 김원국은 속으로 중얼거렀다. '
나야말로 얼마나 못난 놈인가‥‥‥‥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100미터종 떨어진 곳에 멈춰서 있는 자신의 숭용차가 보였다.
가게 앞에 멈춰 서 있었으므로 오함마가 가게 앞에 서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원국은 다시 걸음을 멈줬다.
그는 어금니를 물고는 몸을 돌려 공중전화를 향해 다가갔다.
장민애는 아파트 현관으로 달려나왔다.
횐색 반팔 터셔츠에 남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녀는 놀이터 앞의 벤치에 앉아 있는 김원국을 발견했다.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김원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서 읏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장민애는 세차게 그의 가습에 부딪히며 그를 껴안았다.
김원국이 주춤 한걸음 뒤로 밀렸다.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처렁 보이기도 했다.
주변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 자신의 얼굴도 그럴 것이다.
"왜 이제 오했어요?"
벤치에 앉자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김원국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기다렸니?"
"미워요."
"미 안하구나."
장민애가 손가락을들어 김원국의 입술에 했다.
그러고는 얼굴을 그의 가습에 묻으며 말했다.
"난 이렇게 될 줄 알았다구 "
"월?"
장민애의 눈샙이 치켜 올라갔다.
"죄도 없는 사람을 그러면 되는 거예요?"
김원국은 입술을 깨물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녀의 성난 얼굴을 보자 우스웠고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기했다.
"나쁜 자석들."
이제는 목멘 소리였다.
아이가 역성을 들어 주는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오랫동안 듣고 싶었다.
김원국은 그녀의 손을 잡고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아파트에는 모두 불이 켜져 있었다.
아이들과 부인들도 모두 집에 들어간 듯 놀이터 앞 공터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귀가하는 남자들이 서둘러 지나갈 뿐이었다.
김원국은 장민애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이 반확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 안에 있는 어느 여자들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였다.
웃고 있는 지금의 얼굴도 그랬다.
김원국은 그녀를 깊이깊이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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