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7. 닥쳐오는 위기

오늘의 쉼터 2014. 11. 30. 14:30

◐ 닥쳐오는 위기 

 

 

 


화창한 오후였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학교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오함마는 정문 앞에 서서 여학생들이 올 때마다 목을 패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30분이나 기다리고 섰는데도 장민애는 보이지 많았다.

슬그머니 뒤쪽에 세워둔 차에다 시선을 주었다.

김원국은 차 안에 있었다.

혹시 형님이 약속시간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나왔으나 장민애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힐끗거렸으므로 기분이 언잖았다.


"함마야, 돌아가자."


어느 사이에 뒤로 다가온 김원국이 말했다.


"아니, 형님, 조금 더 기다려 보지요.

흑시 시간을 잘못 알고 계신 게 아닌가요?"


오함마는 미련이 남았으므로 냄큼 돌아서지 않았다.

한 달 넘게 김원국은 장민애를 만나지 않았다.

바빴으나 시간을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오함마는 잘 알고 있었다.


"아냐. 오늘은 그냥 와본 거다. "


"f1?"


오함마가 몸을 돌렸다.


"약속도 안 하셨단 말입니까?"


"응. "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벌써 끝났을 수도 있고 아직도 강의실에 있을지도 모른다.


"화요일은 오후 2시면 끝난다는 말을 들었길래 말이야."


"돌아가자."


"잠깐만요. 제가 학교 안에 들어갔다가 오겠습니다. "


오함마는 장민애에게 미련이 있었다.

어쩌면 애착이 가고 있다고 봐야 될 것이다.

그녀가 마음을 잡고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된 것을 흐웃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김원국과의 결합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더욱이 김원국은 며칠 전 차영화와 함께 호텔에서 만나 방까지 같이 올라갔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형님을 믿고 있는 장민애가 있지 않은가?

오함마는 속이 람다.


"그냥 돌아가자."


김원국이 돌아셨다.

오함마는 할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차에 올랐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른 거다. "


차가 혼잡한 학교 앞을 빠져나가자 김원국이 말했다.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겠지. 원래가 밝은 성격이니까."


나름대로 남자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것이다.

장민애를 만난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서너번의 전화만 오갔을 뿐 만날 약속도 없었다.
차 안에서 정문을 빠져나오는 장민애 또래의 남녀 학생들을 바라보던

김원국은 충동적으로 찾아온 자신을 나무랐다.

장민애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부담감을 주기는 싫었다.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한 그녀는 이제 다른 환경에서 제약없이 생활을 즐겨야 할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리뽑을 찾고,또한 새로운 이성을 찾는다면 슬그머니 물러나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녀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부담을 잊고 빛졌다는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생각을 일부러 지우려고 다른 여자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차영화는 고가품 판매에 뛰어난 사업가였다.

그녀는 돈 많고 허영심 강한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있었다.

또한 그녀의 허영심과 자기과시 욕망이 자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도

김원국은 잘 알고 있었다.

홍성철이나 제일유통의 담당자들이 차영화의 협조를 받아

움 베르토 알베르에서 제품의 진열과 판매에 대한 공부를 했다.
김원국은 창밖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앞자리에 앉은 오함마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칠성은 제일상사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조웅남에게 발견되었다.
조웅남의 직속부장인 오유철은 요즘 들어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조웅남은 반갑게 그를 사장실로 불러들였다.


"형님, 유철이는 요즘 바뽑니까?"


김칠성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응, 바매."


하지만 무슨 일로 바쁜지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하루종일 보이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조웅남은 말 상대가 없어서 온몸이 근지러울 지경이었다.

마침 김칠성이 잘 찾아온 것이다.

"야, 너는 기집애들 만 다룽게로 잘 알켰고만."


조웅남이 입을 열었다.


"너도 비디오를 많이 본各"
김칠성은 이야기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밀뚱히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비디오 많이 보잖여?"


다시 조웅남이 물었다.


"예, 많이 봐요. 그런데 외인"


"음. "


조웅남은 입을 다물었다.


"비디오 좋은 것 빌려 드려요? 형님은 홍콩무술 영화만 보신다면서요. " 


"인자 그런 거 안 본다. "


"패요?"


"그놈의 시키들 줄 달고 날어댕기는 것에 질려 벨졌다. "


"그럼 어떤 걸 보세요?"


"애정물."


김칠성은 어금니를 힘주어 다물었다.

콧구멍이 벨룩거렸다.


"야, 연애헐 때 말이다. "


"내가 며 칠전 개좇같은 비디오를 하나 보았는디."


조웅남은 김칠성을 힐끗 보았다.


"그래서요?"


"알어 먹지를 못허렀단 말여."


"폐요? 자막이 없어요?"


"이런 씨발놈."


조웅남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라 장면을 이해 못허겼단 말여. 영 점점허도 만."


"무슨 장면인티訓"


"거시기. 연애헐 때 웃는단 말여."


조웅남은 주의깊게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웃어인 아아, 그거야 뭐."


김칠성이 시답지않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첫이 어줬단 말여? 너도 알걱"


"그거 할 때 옷는 여자도 있고 그래요.

서양년들은 밑에 깔렸을 때 별짓을 다 하던데요,

월. 웃고, 울고, .고함치고, 난리예요, 난리. 그런 비디오 않아요."


"이런 씨발놈이."


조웅남이 김칠성을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침을 튀기고 지랄여,지랄이.야, 이 시키야누가 그것 할 때라고 했어?"


"아니 그럼 뭔데요?"


욕을 얻어먹자 김칠성도 기분이 상했다.

곱지 않게 물었다.


"키스헐라고 헐 때 말여."


"키스하려고 할 때‥‥‥ 말입니까?"


김칠성이 멍 한 얼굴이 되었다.


"그려. 남자가 여자한티 키스혀도 되겼냐고 물응게로」‥‥‥

여자가 막 옷어 버렀는디, 그것이."


"비디오에서 그래요?"


"1려 ."


"그러고 어떻게 되었는데요?"


"응? 첫이? 아, 그것으로 끝여."


"梁다같은 자식이구먼."


"응 "

 

조웅남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병신 같은 놈이 키스하려면 그저 붙잡고 책 하고 입을 맞춰 버릴거지 묻기는 뭘 물어요?

 병신 같으니까 여자가 웃었겠지요, 월."


"응 "


조웅남의 이마에 진땀이 배어 나왔다


"유치한 영화를 보셨구먼요.

내가 애들 시켜서 화끈한 것 몇 개 보내 드릴게요."


"온김에 형님한테 저녁이나 얻어먹고 갈까요?"


조웅남이 김칠성을 노려보았다.


"야, 너, 가봐라."


"f1?"


"이 새끼야, 난 바쁘단 말여."


김칠성도 부아가 났다.

언제는 곰살맞게 손바닥을 까불대며 들어오라고 하더니

이상한 비디오 이야기나 늘어놓다가 다짜고짜 나가라고 하는데 성질이 안 날 리가 없다.

 

"인제 날 부르지도 마쇼."


김칠성이 벌택 일어싫다.

조웅남이 그를 노려 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칠성은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갔다.
"지금은 말기현상입니다.

말씀드리기 거북합니다만 이젠 치료가 안됩니다.

환자를 편하게나 해주세요."


이제는 친해진 이병수 박사가 오유철에게 말했다.


"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고칠 수는 없을까요?

혹시 홍콩 같은 데서‥‥‥‥

이 박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머리를 저어 보였다.

반백의 머리였으나 얼굴은 평쟁하고 붉은 혈색이었다.

 

"이봐요 오 선생.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겠습니까?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라도 안 됩니다. 환자에게 고통만'줄 뿐이오."


"그렇다과‥‥‥‥


이제는 하루에 한 번씩 병원에 들르고 있었다.

김성회의 증세를 꼼꼼히 이야기하고 조그만 변화라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였다.
이 박사도 성의있게 그의 얘기를 들었다


"박사님, 병원에 다시 입원을 시켜 볼까요?"


오유철이 다시 매달리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왜?"


"혹시 차도가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렇게 해주십쇼. 돈이야 얼마가 들든지 상관없습니다. "


"글메, 그것이‥‥‥‥


"부탁합니다. 혹시나 압니까?"


오유철은 이마의 땀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다음 주에 봅시다. "


이 박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오유철은 그 말만으로도 얼굴에 기쁜 표정을 드런내었다.

어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다음 주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


이 박사는 쓸쓸하게 웃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이 박사넘."

 

오유철이 일어서려 하자 이 박사는 그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오 선생, 잠깐만."


오유철은 의자에 다시 맞았다.

이 박사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삼성종합병원의 암센터 책임자 였다.

그는 피로한 듯 눈을 감았다가 잠시후 띤다.

오유철은 긴장한 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 선생, 어차피 생명은 언젠가 끝나게 됩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거지요."


"우리는 어느 델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체념한다는 말이 아님니다.

자연의 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도록 해보세요.

반발하고 저항을 하면 양쪽 모두에게 고통을 줄 뿐입니다.

죽는 사람도 괴롭지만 산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겁니다. "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 준비를 해두세요.

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오 선생이나 부인깨서도 준비를 해두셔야 합니다. "


"내가 왜요?"


오유철이 거칠게 물었다.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려 들저 않았다.

이 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패 하필 불방한 성회가 죽어야 합니까?

걔는 나밖에 없는데요.

나도 성회밖에 없습니다. "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이건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해요. 너무한 것 아님니"


이 박사도 오유철과 김성회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천지에 혈연 한 점 없는 두 고아들이 결합하여 사랑하며 사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집어 코에 걸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선 오유철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김성회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 편일이 우리 성카"


오유철이 활짝 웃었다.

먹지 않는 줄 알면서도 오늘도 사과와 오렌지를 사왔다.


"아줌마는 일찍 가셨어?"


파출부 아줌마가 집에 돌아가는 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오늘은 일찍 돌아왔다.


"네, 집에 일이 있다구 해서."


"오늘은 편찰아?"


오유철은 그녀 옆에 않았다.

그러고보니 얼굴에도 讀으나마 화색이 돌았다.

팔을 돌려 그녀의 앙상한 어깨를 가습에 끌어안았다.

김성회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잠자코 있었다.

오유칠은 그녀의 흘러 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려 주었다.


"미안해요."


그녀가 가습속에서 말했다.


"뭘?"


"뭘 미안하다는 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했지?"


오유철이 언짢은 듯 말했다.


"두고 봐."


김성회가 얼굴을 들었다.

두 볼이 음게 물들어 있었다.

열기가 있는 듯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만 안 두겠어."


오유철이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여보."


오유철은 문득 머리를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뭘 말예요?"

 

그녀가 불안한 듯 물었다.


"아냐, 딴 일이야."


오유철은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겨 다시 가습에 안았다.
그는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김성회가 그린 그림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렸다는 그림으로 앞에 개울이 있고 양쪽에 조그만

산이 있는 가운데에 조그만 집이 그려져 있었다.

개가 마당에 서 있었다.

남자가 개울에서 낚시를 하고 그 옆에서 여자가 딸래를 하고 있었다.
김성회가 오유철을 생각하고 그린 그림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가晋 방에 찾아와 사탕이나 초콜릿을 쥐어 주던 오유철을 잊지 못했다.
아파 누워 있을 때 손으로 머리를 짚어 주던 때도 있었다.
김성회가 국민학교 5학년이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유철은

고아원을 도망쳐 나가 소식이 끊겼다.

그녀는 며칠 동안 울었으며, 아무도 어척지를 못했다.

그때는 오빠나 의지할 친척을 잃어버린 것 같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성숙해 가면서 그녀는 오유철을 이성으로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패부터 그를 찾아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다.
고아원을 나와 취직을 하고 나서 매달 한번씩 고아원을 찾아간 것도 행여나

오유철의 소식을 알게 될까 해서였다.
오유철은 딸래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밝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 보며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낚싯대를 들고 웃고 있었는데 오유철처럼 갸름한 얼굴형이었다.

오유철은 힘주어 김성희를 껴안았다.

숨이 막힌 듯 그녀가 몸을 뒤치락거렸다.


"쥐 먹고 싶은 것 없니?"


버롯이 된 말이 저절로 입에서 정겨 나왔다.

 머리를 든 그녀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힘들게 웃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 줄 수가 있게 되었고 입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사줄 수도 있게 되었다.

의지할 곳 없는 두 고아가 서로 모여 이제 한가정을 이루었다.
오유철은 그녀의 앙상한 어깨를 쓰다듬었다.

성희는 그렇듯 나를 그리다가 이렇게 만나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두고봐, 이 자식들아."


그가 다시 중얼거렀다.


"당신 이상해요."


김성희가 그의 가습에서 얼굴을 들고 말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질투하는 놈이 있는 모양이야."


오유철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김성희를 내려다보고는 표정을 바꾸었다.


"야, 이놈의 샌끼야, 너는 어디를 그렇게 싸댕기는 거여?

느그 집구석의 전화는 고장난 거여? 아니먼 재미보느라고 안 받는 거여?"


오유철이 사장실에 들어서자 조웅남이 소리쳤다.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불려 들어간 것이다.


"너 어저께 밤에 어디 갔었어? 집에 아무도 없었던 거여?"


"네, 어첫밤엔 집에 없었습니다. "


어첫밤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전에 다시 김성희를 병원에 입원시켰으므로 매일 밤 병원에서 자는 것이다.

오후 7시면 무슨 일이 있던 제쳐 놓고 병원으로 가 그녀 옆에 있었다.


"어첫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조웅남은 오유철을 흘겨보면서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화가 난 듯 보였다.

상대가 오유철이었기망정이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불문곡직하고 두들기고 榮을 것이다.

 

"어저께 밤에 김도식이가 잽혀갔다. "


조웅남이 정그린 얼굴로 말했다.


"김도식이가요? 패요?"


김도식은 오유철의 직계동생으로 영동 지역의 주류 공급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유철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놈의 새끼가 아편을 팔어먹은 모양여. 홍콩에서 중국놈이 가지고 오먼

그걸 맡어가꼬 이놈저놈한터 팔어먹다 잽혀갔다. "


오유철은 머리를 숙였다.

이것은 그가 동생들 관리를 소흘히 한 탓인 것이다.

마약은 몇 십 배가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김원국의 원칙이 있었으므로

마약 사업은 제일그룹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놈의 새끼가 마약을 뿌리다가 꼬리를 밟힌 모양여.

지금 경찰에서 조사허는디 내일이먼 신문에 대문짝만허게 나을 거다. "


조웅남은 울화통이 터지는 듯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 씨발놈이 우리 제일그룹 이름을 먹칠혔단 말여.

아침에 형님한티 보고 혔는디 형님은 기가 멕히능 것 같더라.

암말도 안 허더랑게."


"너는 이 씨발놈아, 애들 관리를 어뜨케 허는 거여?

맨날 저녁 때 7시만 딱 되면 집구석으로 가는 거여,

아니먼 딴 구멍파러 가는 거여?"


오유철은 시선을돌렸다.

그러고 보니 김도식이 행동이 석연치 않았었다.

가끔 행선지를 알 수 없을 때도 있었고 거래처에 가겠다는 핑계를 대고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거 야단났는디."


오유철을 붙잡고 밖달해 보아도 소용없는 일이고 더욱이 당사자가
말대꾸라도 해야 속시원하게 퍼부어 댈 것인데 오유철은 기가죽어 있었다.

싱거워진 조웅남은 혀를 랐다


"제가 경찰서에 다녀오겠습니다. "


오유철이 일어서자 조웅남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이 크게 벌어지도록 하면 안 됩니다.

우선 김도식이나 담당 수사관들을 만나 봐야겠어요."

 

"나도 여코서 이곳 저곳에다가 연락헐고 있을 텡게 빨랑 가봐."


찌푸린 얼굴로 조웅남이 말했다.
김도식은 30살로 서울 태생이다.

체격이 좋았고 용모도 미끈해서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떠돌아다딘다.

배우모집이나 탤런트 공채에 매놓지 않고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이윽고 그는 배우되는 것을 포기하고 주먹에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연줄을 통하여 한강상사에 입사했다.

이철주가 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한강상사에서 김도식은 어느 정도 꿈을 이루었다.

탤런트 빰칠 정도로 예뿐 아가씨들을 관리하는 것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 회전도 빨랐고 관리 능력도 인정을 받았으므로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김도식은 적응력이 빨랐고 쉽게 타협하는 성격이었다.

이철주가 몰락하자

그는 자진해서 강만철과 김칠성의 수하에 들어갖다.

그러다가 제일실업의 오유철에 게 배속된 것이다.
어첫밤 수사관들에게 잡혀와 밤새도록 조사를 받고 유치장에 들어 온 김도식은

벽에 둥을 기대고 주저않았다.

아침 5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어 명의 사내가 쇠창살 앞에 梁그리고 앉아 초조한 듯 밖을 내다
보고 있는 것이 누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너덧 명의 사내들은 모로 쓰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

방안 가득히 술냄새와 발냄새가 번져 있어서 머리가 아파왔다.

어첫밤 현장에서 같이 체포된 고필상은 다른 방에 있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재수없군."


김도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제 끝장이 났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조직에서는 도와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머리에 오유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조웅남의 얼굴도 보였다.

김도식은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다시 김원국의 모습이 보였다.
김도식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김도식이 중국인 장규를 만난 것은 4개월 전이었다.

동대문의 조그만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후매는 장규가 마약상인인 것을 알아보았다.


"형님, 큰놈이오. 이곳저곳에다 연락하고 사람을 찾는 것 같소."


후배는 제일그룹 소속이 아니었다.

그는 김원국미 마약을 관계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 것도 모르는 처지였다.


"한국이 처음이라 거래할 사람을 찾는 모양이오."


그냥 넘겨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밤 김도식은 동대문의 호텔에 들어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장규와 김도식은 손발이 맞았다.
그리고 김도식은 얼마든지 고객을 늘려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김도식은 창살 근처에서 다투는 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하찰은 일로 두 사내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형을 살고 밖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조직은 나를 처벌할 것이다.

오유철의 끈질기고 용서하지 않는 표독한 성격을 알고 있었다.

조웅남의 잔혹한 성질도 보아왔다.

이제 나는 끝난 잣이다.
김원국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빌딩의 유리창이 오후의 렛살을 받아 하얗게 및났다.

방안에는 조웅남과 강만철, 오유철, 김칠성, 오함마 등이 않아 있었다.

모두들 굳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새끼를 잡으먼 죽여 버릴 거여."


조웅남이 불쑥 입을 열어 말했다.

김도식을 말하는 것이다.


"애당초 이철주한티서 물이 들어떤진 놈이었어.

그런디 칠성이가 골치 아픈 게 우리한티 보낸 거여."


김칠성이 혀를 참으나 대꾸하지는 않았다.

전에는 일 잘한다고 칭찬 했던 조웅남이었다.
오유철은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준 채 김원국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유철은 강동 경찰서에 찾아가 3시간 동안 김도식올 면회하려고 애를 썼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안면도 많았됐다 면회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유치장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눈치로는 경찰소관이 아닌 것 같았다.

 안면이 있는 수사관에게 매달려 보았으나 그는 머리를 저었다.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듣기로는 이번 마약 물량이 5킬로그램이 넘는다는군."


모두들 경악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은 팔기에 따라서 및 십억 원이 되는 물량이었다.


"장규인가 하는 녀석은 김도식이 우리 조직의 일원인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써 김도식을 믿게 되었을 거야.

 장규는 우리조직이 마약사업을 하는 줄로 생각했겠지.

아니면 김도식이가 우리 조직이 마약 사업을 하겠다고 떠벌렸든가."


"지금 장규도 잡혀 있는데 그놈이 어떻게 입을 열지 그것이 걱정되는군,"


"김도식이도 위험합니다. "


오유철이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그놈은 형을 살고 나와도 우리가 용서해 주지 않을 걸 알 겁니다.
자포자기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


"그게 무슨 말이여? 김도식이가 우릴 물고늘어진단 말여?"


조웅남이 버럭 언성을 높이며 오유철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어. 우리가 시켰다면 형량도 가벼워질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어차피 막판이니까 이판사판으로 물고늘어질 확률도 있어."


강만철이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그놈은 대가 약합니다.

오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


그는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그거, 쥑여 버립시다. 면회를 가서 모가지를 뚝 뿐지르고 옵시다. "


조웅남이 나딘다.


"이렇게 이야기해 왔자여. 그 씨발놈의 새끼를 쥑여 떤지먼 되장 여."


김칠성과 오함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웅남의 단순한 방법이 어쩌면 제일 속편하고 규을을 어긴 김도식을 응징하는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유철은 머리를 들었다.


"형님, 제가 다시 한번 가보겠습니다. "


어줬든 김도식은 그의 직속부하였다.

자신이 책임을 저야 한다고 오유철은 생각했다.

김원국은 머리를 저었다.


"그럴 필요없다. "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석주 비서관이 '응접실에 들어갔을 때 고인호 의원은 마악 신문을 내려놓는 참이었다.

신문에는 다가오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정가의 동향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음, 그래. 무슨 일이야?"


3선의 고 의원은 여당의 총무로서 이번에 당선되면 4선이 된다.

 그는 말이나 태도에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른 얼굴을 들어 김석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긴밀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


김석주는 앞자리에 조심스럽게 營았다.

초선 때부터 모시고 있으니 10년이 넘은 셈이다.

어느덧 긴밀한 이야기의 의논상대가 되어 딘었다.


"자금 문제인데요."

김석주가 운을 떼었다.

고 의원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이철주 씨라고 총무님꼐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철주?"


고 의원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김석주를 바라보았다.


"글째, 기억이 안 나는데. 누구야

"영동의 유흥업계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지요.

전번 선거 때에도 지원금을 받았습니다만."


"아아, 기억이 난다. "


고 의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1천만 원인가 받았지 아마? 그 친구가 날 찾아왔었지?"


"네, 그렇습니다. "


"그런데 쇄?"


"제가 그 사람을 오늘 만났습니다. "


"그 사람은 지금 사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고 의원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김원국에게 사업체를 모두 매앗겼다고 말하더군요."


"김원국?"


고 의원이 김석주에게 물었다.

김원국이라면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의 유흥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보스라고 했다.


"네, 그에게 밀려난 모양입니다. "


"그 이철주가 저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마약을 팔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신문에 났습니다만."


"음, 그래. 본 것 같아."


"그놈이 김원국의 부하더군요. 지금 조사중입니다. "


고 의원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얼른 용건을 말하라는 것 같았다·.


"이철주의 말로는 김원국이도 마약에 연관이 있다는 겁니다. "


"김원국이?"


"네. 부하가 마약을 거래하다가 잡혔으니까요.

조직의 생태로 봐도 김원국의 승낙없이는 안 편다는 겁니다. "


고 의원은 보일듯 말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김석주가 자금 이야기를 꺼띤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이철주가 말하는 요지는 뭐야


"이철주는 김원국이에게 딘긴 사업체들을 찾아야했답니다.

김원국이는 당연히 마약거래의 주모자로 잡혀가야 한다는 거죠."


"그거야 수사기관에서 알아서 랄 것 아니겠어?"


고 의원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20억을 내겠답니다. "


고 의원이 김석주를 노려보았다.


"정황으로 보아 김원국이를 잡아 넣을 수 있지 않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신은 템긴 사업체를 다시 인수할 수 있답니다.

그 대가로 20억을 내했다고 했습니다. "


"제가 알아보니까 제일상사와 제일실업이라는 두 업체가 주류 유통과 인력 수급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두 업체를 인수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이철주 앞으로 명의 이전만 어떻게 해준다면 20억을 내겠단 얘깁니다. "


고 의원은 담및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나 불은 붙이지 않았다.

그가 생각에 잠길 때 하는 버릇이었다.


"그 외에 김원국 조직의 비리나 비행에 대한 모든 증거 자료가 있다고 합니다.

하긴 그런 조직들은 숨겨진 일들이 많을 테니까요."

김석주를 내보내고 난 고 의원은 소파에 앉아 한동안 생각해 보았다.

이제 곧 밑도끝도 없이 선거자금이 들어갈 참이었다.

당에서 주는 보조금과 기업들에게서 얻어쓰는 지원금만 가지고는 자금이 모자랐다.
더욱이 원내총무인 그로서는 몇 명의 소속의원들을 지원해 줘야 할 책임도 있었다.


"김원국이 라‥‥‥‥


고 의원은 혼갖말로 중얼거렸다.
문득 그가 재수없는 사내라는 생각이 떠을랐다.

선거 전에 부정과 사회악을 척결하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몇 번 써먹어 보았지만 정부의 힘찬 모습을 보여 주면 국민들은 두려움과 함꼐 감동을 한다.

더욱이 그의 부하가 마약매매를 하다가 검거되었으니 얼마든지 혐석를 참을 수가 있을 것이다.
고 의원은 김원국도 마약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자 가승이 가벼워지고 김석주가 때마침 큰 건을 잘 물어 왔다고 생각했다.

뒤탈은 없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으나 김 비서관의 얘기대로 이철주란 작자가

증거자료를 충분히 제공한다면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고 의원은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그 일의 앞뒤를 이리저리 맞춰 보았다.
김중오는 수프 그롯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힐끗 고인호 의원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상어지느러미 수프를 떠먹기에 열중한 듯 보였다.
여의도의 중국 요릿집이었다.

밀실에 자리를 잡은 근들은 차래로 나오는 요리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대검의 중수부장인 김중오는 고인호 의원으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자 당황하면서도 반가웠다.

그는 정계의 실력자였고 승진을 하려면 그의 영향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 의원과는 같은 향우회 소속이었다.

정계와 관계의 고위급에 있는 사람만이 그 향우회에 가입할 수 있었고

고인호가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어떤가? 자네 요즘 바쁘지?"


수프 그룻을 옆으로 치우면서 고 의원이 입을 열었다.


"저야 매일 그런 일 아님니까?"


김중오가 고인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무엇인가 고인호가 할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조금 긴장이 되었다.


"마약 밀매 자를 잡았다면서?"


고인호가 수건으로 입을 랄으며 물었다.

 붉은 얼굴에서 눈이 번들거렸다.


"아아, 네."


"그것 큰 건 아닌가?"


"글째요,,아직 수사중이라서요."


김중오는 언뜻 말을 뱉기가 어중간했다.

김도식이라는 마약 밀매자를 잡은 것은 이미 보고를 받았다.

근리고 근가 김원국의 부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폭력과 범죄행위 추방이라는 정부의 시책에 맞추어 자기가 나서서

김원국이라는 거물을 깬다면 그가까라는 승진도 이루어질 것 같았다.
그꼭나 어설프게 대가리만 크게 잡고 나팔을 불었다가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을 때는

 차라리 안 한 것 보다 못한 것이다.

또 사건들을 캐다 보면 감자뿌리가 뽑혀 나오듯이 줄줄이 정부기관의 비리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고위충에게 격려 전화까지 받았다가 사건이 끝나고 나서 좌천을 당한

예도 있었던 것이다.


"그놈이 김원국이 부하라면서?"


"예, 그렇습니다. "


"그것 큰 건이군."


씨리를 끄덕이며 고인호가 단정을 짓듯 말했다.

김중오의 가습이 두근거렸다.

"큰 건이야."


고인호가 다시 강조하듯 말하자 김중오가 그 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이봐, 월 망설이나? 부하가 마약거래하다가 잡했는데 김원국이가 관계가 있을 것 아닌가?

밀고 나가게. 놈들에게 뜨거운 맛도 보여 주고 국민들에게도 정부의 의지를 보여 주게."


김중오는 눈을 점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정계에서 이렇게 밀어 준다면 아예 김원국의 호주머니에 마약이라도 집어 넣고 싶었다.


"자네도 승진할 때가 되었지? 내가 밀어 줄 테니까,

이 건으로 정부와 우리 당에 얼굴을 세워 보게."


김중오는 머리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 고인호가 그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줬건 그건으로 도와 주겠다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하지만 고인호의 성격으로 봐서 뭔가 바라는 바가 있을 것 같았다.


"잘 알겠습니다만‥‥‥‥


김중오가 말끝을 흐리자 서둘러 고인호가 말했다.


"아,뭐 깊이 생각할 거 없네. 죄지은놈 잡아들이는 게 뭐가나뿐가.
특히 김원국이 그놈은 혼이 즘 나야 돼.

내 조만간에 비서관을 보낼 테니까 그 친구 얘길 들어 보도록 해.

자네도 납득이 갈 거야."

김중오는 뭔지는 모르지만 고인호 의원이 김원국에 대해 불쾌한 기얼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번 운이 좋은 사람이야."


고인호가 젓가락을 들어 돼지고기 뽁음을 집었다.


"이렇게 때 맞추어 기회가 오는 일도 드물다네. 다 있는 법이야."


관운이라는 것이 김종오는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모두가 의원님 덕분입니다. "


"이 사람아, 인사치레하지 말고 높은 자리 오르거든 괄세나 하지 말라 ,"


고인호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김중오 부장검사를 만나 봐요.

의원께서 이야기를 해주셨고 만나서 얘길 해두었으니까

그 사람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김석주가 말하자 이철주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눈이 반짝였다.
"그 분 이름은 들었습니다.

그럼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가야죠.

비서관님, 신경 많이 쓰셨습니다. "


"원, 천만에요.

죄지은 사람은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님니까?

의원넘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럼요. 당연하죠."


이철주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약거래 외에 다른 범법 행위들도 적발될 수가 있겠지요?"


"그건 염려 마십시오.

잘 아시다시피 그런 계통의 사업은 법하고 숨바꼭질을 하는 겁니다.

맡겨 주십시오."


김석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석주는 이철주를 바라보았다.
"전번 말씀하신 건 말인데, 30억은 만들어 주셔야겠습니다. "


이철주는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조사해 보니까 제일상사와 제일실업의 매출액이 연 3,4백 억은 되더군요.

그리고 때가 때니만치 30억이 필요합니다. "


"0101,141 "


이철주는 침을 삼켰다.


"저는 그것을 당에다 내는 기업의 지원금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어때요? 하실 수 있겠지요?"


김석주가 다른 말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얼굴을 들이했다.

"예."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이철주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기서 우물주물하다가는 모처럼 닥쳐온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네, 하겠숩니다. "


"그걸 빠른 시일내에 만드셔야 할 겁니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


이철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제일상사와 제일실업을 놓치기 싫었다.


다음날 10시 정각에 이철주는 김중오 부장검사의 사무실에 들렀다.
1침 9시에 전화를 해서 10시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김중오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들어서는 이철주를 臺어보았다.

만만치 않게 보였다.

험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의 분위기가 금방 풍겼다.

그들은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으로 가 마주 앉았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김원국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중거 자료를 준비해 주시겠다구요?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중오가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도와 드리다니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억울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고발하려는 거지요."


김중오는 머리를 끄덕였다.

고인호나 김석주에게서 대충은 이야기를 들은 눈치였다.


"저는 몇 십 년 피땀흘려 일으켜 놓은 업체를 김원국이한테

억울하게 강탈당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


"호오, 그렇습니까?"


김중오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뿐었다.


"지금 현재 김원국이 장악하고 있는 제일상사나 제일실업의 원소유주는 접니다.

직원들도 대부분 제 직원이었구요."


"제일상사도 그렇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제일상사는 김원국이 처음부터 시작했던 것으로 압니다만."
이철주는 머리를 저었다.


"제일상사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그곳에서 관리하는 유홍 업체들이 중요합니다.

제가 장악했던 업체들이 모두 제일상사의 손 아귀에 들어가 있습니다.

강제에 의해서 업체를 정리해야 했지요.

그러니까 제일상사도 저와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습니다. "


"이제 김원국의 마약매매 사실까지 드러난 이상 그 업체들이

저에게 돌아오는 것이 사필귀정이 아니됐습니까?"


김중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 회사들은 조웅남이나 강만철이 같은 김원국의 부하들 이름으로 명의가 되어 있습니다.

이놈들도 모두 김원국이와 한통속이지요. 악랄한 놈들입니다. "


"저기, 말씀을 들으셨지요?"


이철주가 문득 물었다.

김중오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명의 이전건에 대해서 말씀입니다. "


"아아, 초‥‥‥‥


김중오는 말끝을 흐렸다.

김석주 비서관에게서 얘기를 들었다.

원주인인 이철주에게 회사의 명의 이전을 하는 데 도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김원국이나 그의 수하들이 검거되면 회사들이 풍비박산될 것이므로 명의 이전이니

뭐니 할 필요가 없을 텐데도 그런 이야기를 듣자 거북했다.
그것은 다른 사안이었던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소송을 걸든지 해야 했다.

그것이 고인호가 자기를 도와 준 대가로 바라는 반대급부라면 ‥‥‥‥

그러나 김중오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기도 했다.


"그걸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야제가 딸리 사업을 명실공히 인수받을가 있습니다. "


"그리고, 아시겠지만, 김원국이에게는 제 이야기나 명의 이전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이러는 걸 알면 모든 것을 감추려 들 겁니다.

그놈의 약점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 자니까요."


김중오는 머리를 끄덕였다.

다소 꺼림칙하였으나 그의 말에 신템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자료가준비되는 대로 넘겨 주시지요.

그리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십시오."


김중오가 말했다.

이철주가 머리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그는 자리에서 일어졌다.


"그리 고 사례 하겠습니다. "


"아니, 무슨 말씀을,"


김중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단순한 의례입니다.

아무리 랫긴 것을 찾는다고 해서 이 이철주가 그냥 있을 사람이 아넘니다. "


"허어."


김중오는 입을 다물었다.

이철주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발걸음도 가법게 이철주는 복도로 걸어 나왔다.

이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파트 안은 어딘지 모르게 샐렁한 분위기였다.

탁자 위에는 사기 채떨이와 라이터가 놓여 있었다.

재떨이에는 담배 중초가 수북히 쌓였다.

응접실 소파에 맞아 있던 구영산이 입을 열었다.

 

"6개월 동안 병원에서 씩은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려요."


이철푸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누워 있는 것이 속이 더 편했을 지도 모른다.

사지가 멀정한 자신이 일년이 넘도록 절치부심하고 기다려온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바닥은 같다고 하더라도 떨어진 곳의 높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것의 차이도 있지 않은가?
구영산과 이철주는 5개월 전부터 계획을 세워 나값다.

구영산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는 갈 곳이 없기도 했지만 조웅남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복수를 해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놈은 나를 죽이려고 했다.

사람의 머리를 라디에이터에다 던지는 천하에 무도한 놈이었다.


"재용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니?"


이칠주의 말에 구영산은 머리를 들었다.


"7시경에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


이철주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저벽 6시 30분이었다.
수원에 얻어놓은 48평짜리 아파트에 이철주와 구영산,천채용 셋이서 생활하고 있었다.
천재용은 이철주가 요즘 들어 심복으로 끌어들인 대전출신 주먹이 었다.

나이는 34살에 어렸을 적부터 폭력전과를 붙이기 시작해서 이제까지 별을 7개 달고

10년을 교도소의 밝은 물을 마셨다.

나이 들고 의지할 데 없는 그를 이철주가 거둬들인 것이다.

우연하게 연줄을 타고 만나게 되었으나 이철주가 보기엔 진국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 하나가 흠이 었지만 의리 있고 입이 무거웠다.
이철주는 구영산과 천채용을 정점으로 은밀하게 조직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다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드러나는 행동은 하지 않고 부하들을 단련시켜 온 것이다.


"어제 만나신 일은 잘 되었습니까?"


구영산이 몰었다.

 

"음. "


이철주는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구영산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정부의 관리들을 만나고 있는 것을 구영산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한배를 탄 입장이었다.
벨이 울리자 구영산이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우람한 체격의 사내가들어셨다.

신장이 1미터 85센티미터 정도에 체중이 90킬로 그램은 되어 보였다.

부리부리한 눈을 들어 구영산을 힐끗 보더니 잠자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또 책주 사온 거냐


구영산이 그가 들고 있는 비닐 봉지를 보면서 물었다.

천재용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이철주를 보고 꾸핵 머리를 숙이고는 소파에 앉았다.


"별일 없는 거냐?"


"네 . "


탁한 목청이었다.

그는 눈을 꿈백이며 이철주를 바라보았다.

이철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의 무뚝뚝함이 눈에 거슬렸다.

이철주는 사근사근한 성격을 좋아했다.

그러나 쓰라린 경험을 쌓고 나서는 매끈한 말이 얼마나 쓸데없었던가 깨우치게 되었다.

말보다 몸으로 때워 줄 부하가 없었고 지금 그가 찾는 것은 그런 부하였다.
천재용은 수원 변두리에 있는 부하들의 합숙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20명 가량의 부하들이 3개월 전부터 변두리의 2를 양옥집에서 기거하고 었었다.

전과자가 대부분인 그들은 천재용이가 끌어 모았다.

"준비 단단히 해둬라. 이젠 우리가 뛰어들 차례가 온 것 같다. "


구영산과 천재용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철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이 사장,둘이서 이야기 하시오."


그를 수사과의 안쪽에 있는 조그만 방으로 안내한 박 수사관이 말했다.

 

"그놈은 바로 이리 보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그는 문을 닫고 나갔다.

이철주는 검찰에서 파견된 박 수사관과 함께 김도식이를 수사하고 있는

시경 특수대에 들어온 것이다.

이철주는 방 한복판에 놓인 철제 의자에 앉았다.

방안의 가구래야 서랍도 없는 길쪽한 탁자와 의자 2개밖에 없었다.

창문이 없어서 습기와 묵은 공기 냄새에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잠시 후 노크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김도식이 불안한 듯 안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서 그의 코 밑에는 거웃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

"여어, 도식이냐 ?"


한강상사에 있을 때 말단인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얼굴은 기억이 났다.


"아니?"


김도식은 금방 이철주를 알아보았다.

놀라서 눈을 크게 였다.


"어서 들어와. 놀랄 것 없다. "


이철주가 부드럽게 말하자

그는 주춤대며 맞은편에 가서 싫다.

"앉아라. 내가 임마, 널 도와 주러 온 거야. 마음 놓아라."


"어떻게 여길 오셨습니까?"


김도식이 의자에 앉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제일상사측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찾아을 리가 없는 것이다. 김도식은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 오히려 겁이 났다.

그러자 믿을 곳이 아무 곳도 없었고 차층 쟈포자기 상태로 되어가는 중이었다.

 

"네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고 해서 말이야. 손을 써가지고 찾아온 거다. "


이철주가 담배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냄큼 받아들고 머리를 숙이면서 이철주가 켜준 라이터에 담및불을 붙였다.

"너 지금 네 입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알겠지?"


김도식은 길게 담배연기를 내템었다.

어지러운지 눈을 감은 김도식이 머리를 끄덕였다.


"마약은 너 혼자 했지? 조직과는 관계가 없었지?"


이철주는 김원국이 마약에 촌을 대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지시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도식은 눈을 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한레는 제일 큰 문제다. 그걸 내가 잘 알지."


"네가 흔자 했다고 해도 수사기관에서는 믿어 주지도 않을 거다.

제일그룹의 엄격한 규을을 그들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검찰은 김원국이가 지시한 것으로 보는 모양이더라."

"그건 저 혼자 한 겁니다. "


김도식이 내벨듯 말했다.


"글째 안다니까."


이칠주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네가 그런다고 수사기관에서 오, 그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야.

어차피 수사는 그쪽으로 확대되게 되어 있어.

네가 의리를 지킨다고 해도 결과는 편하다는 이야기다.

네가 그 중국놈한테 마약을 넘겨 받으면서 지불한 돈이 누구 것이었니?

제일상사 돈이 아니냐 ."

 

"그리고 제일상사에서 너를 내버려 둘 성 싶으냐? 놈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너도 잘 알지?"


김도식은 정하게 서린 눈으로 이철주를 바라보았다.


"너는 본래 내 식구였다.

네가 지금부터 나를 의지하면 너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내가 여길 찾아온 것을 봐라. 배경이 든든하다는 말이야.

김원국이나 그 누구도 너를 건드릴 수가 없고 너는 형식적으로 몇 달만 살고 나오면 돼.

그리고 나와 함꼐 다시 일하는 거다. "


김도식은 침을 삼켰다.

물어질 듯이 이철주를 바라보았으나 조금 전의 눈빛이 아니었다.

눈동자가 어러럽게 흔들렸으나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너도 이놈아, 남자야. 남자는 어됐든 승부를 한번 걸어야 한다.

네가 몇 달 후에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제일그룹은 없어졌을 거다.

김원국도, 조웅남도 없다.

이것은 극비사항인데 정부와 내가 같이 움직이고 있는 거다. "


"너는 내가 시킨 대로만 해라.

그놈들이 너를 죽이려고 하는데 남자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니다. "


이철주는그의 표정을 보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김도식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눈이 똑바로 이철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말이냐

"정부하고 같이 움직인다는 말 이철주가 웃었다.


"내가 빈말하러 여기 온 것 같으냐


김도식은 눈을 네리 깔았다.
오늘이 5월 25일이다 열흘이 지났으므로 구속기간을 연장시킨 것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초조했고 절망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철주의 말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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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습  (0) 2014.11.30
4. 살기 위해 뛴다  (0) 201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