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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안승 망명 1

오늘의 쉼터 2014. 11. 29. 13:31

제34장 안승 망명 1

 

 

 

한편 평양에서는 설인귀의 당군과 궁모성의 다물군 간에 패강(浿江)을 사이에 둔

일진일퇴의 공방이 근 두어 달이나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평양성에 고립된 설인귀는 북쪽이나 남쪽에서 원군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형편이었지만

고간의 군사들은 안시성에, 이근행의 말갈병은 오골성에 발이 묶여 좀처럼 압록수를 넘어서지 못했다.

압록수 부근에는 국내성과 의주 등지에서 몸을 일으킨 수천의 다물군이 전날 고구려 장수 고은우

(高恩優)와 대중상(大仲象:훗날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아버지)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궁모성의 고연무는 3천의 군사를 징발하여 평양 외곽의 우회로를 따라와 압록수에서

합류했다.

태대형을 지낸 고연무는 고은우와 대중상을 만나 그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이근행의 말갈병을

토벌하기 위해 오골성으로 향했다.

평양으로 출발한 설오유의 1만 신라군이 압록수에 도착한 것은 바로 이럴 무렵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신라군을 보자 고연무는 일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처음엔 당군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닐까 왈칵 두려운 생각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뱃전에는 적이 아님을 알리는 흰색 깃발이 펄럭였고,

배에서 내린 설오유가 삼한 백성은 모두 한식구라는 법민왕의 뜻을 전하며 협력할 뜻을 밝히자

고연무를 비롯한 다물군의 사기는 금세 하늘을 찌를 듯했다.

신라군들은 미리 준비한 고구려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다물군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고연무가 이끄는 선군은 압록수를 건너 오골성 성문 밖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이근행의 말갈병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싸움은 양쪽이 공히 말을 타고 나와 싸우는 기병전(騎兵戰)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마군(馬軍)들에게는 북방의 다른 기마족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무기들이 있었다.

비호처럼 달리는 날쌘 과하마(果下馬)와 인마를 모두 가린 철갑옷,

그리고 18자 길이의 장창과 예맥 지방의 작은 활 맥궁(貊弓)이었다.

압록수 이남의 평지에서는 이 마군 부대가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계곡과 절벽이 많은 요동의 산악 지대를 무대로 싸울 때면 어떤 군사들도 이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호태 대왕(광개토 대왕)이 천하 대륙을 경략한 것이나, 양광의 백만 군대가 번번이 참패한 것,

그리고 천하무적의 신군(神軍)이라 자처하던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에만 오면 맥을 추지 못했던 것도

과하마를 타고 장창과 맥궁으로 무장한 고구려 철기병(鐵騎兵)들을 당해내지 못한 때문이었다.

개돈양의 싸움 역시 그러했다. 기병을 앞세운 양측의 기습전과 단병접전에서 비록 숫자로는

말갈병이 우세했지만 그들은 다물군의 적수가 아니었다.

고구려의 오랜 번국이었던 말갈로선 고구려 기병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던 터였고,

당의 강압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로 출장한 군사들은 한두 번 교전에서 패하자

곧 전의마저 상실해 당초의 기세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소 10여 차례 싸움에서 대패한 이근행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고간에게 달려갔다.

이때까지도 안시성을 포위한 채 소득 없는 공방을 계속하던 고간은 개돈양에서 쫓겨 온

이근행을 보고 말했다.

“안시성은 하루 이틀에 공취할 성이 아니오.

그러나 오골성과 개돈양의 반란군들이 이곳으로 와서 안팎으로 성원상접 한다면

자칫 주필산(요동) 전역을 잃게 될 위험이 있으니 그곳부터 평정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겠소?”

말갈족 장수 이근행의 생각도 고간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개돈양에서 쫓겨 온 책임을 모조리 군사들에게 떠넘겼다.

“내가 패한 것은 순전히 시원찮은 말갈병 탓이지 저쪽 반란군들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오.

요동에서 싸운 경험이 많은 당군들이 간다면 그까짓 한 줌도 안 되는 망국의 오합지졸쯤이야

일거에 새떼처럼 흩어버릴 거외다.”

의기투합한 이근행과 고간은 안시성에 주둔한 6만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개돈양과 오골성으로 진격했다. 개돈양의 고연무는 처음에 이근행의 1만 선군을 상대로 다시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고간이 거느린

5만이나 되는 후군이 잇따라 나타나자 그만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제아무리 날쌔고 용감한 기병들이 있다고는 하나 기천의 군사로 6만이나 되는 적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연무는 눈물을 머금고 오골성으로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골성에는 설오유가 거느린 1만의 신라군이 대기하고 있었다.

고연무와 설오유는 서로 힘과 궁리를 다해 당군과 대치하며 열띤 접전을 벌였지만

끝내 중과부적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압록수 하류의 백성(白城)과 박작성(泊灼城)으로 후퇴하였다.

한편 고연무가 3천 군사를 이끌고 궁모성을 떠난 직후 서해에는 당군을 실은 2백여 척의 선박이

나타났다.

등주(산동반도)에서 건너온 설필 하력과 곽대봉의 군사들이었다.

설필 하력은 남살수(청천강) 이남 1백여 리쯤 되는 곳에 배를 대고 남으로 진격해 위급함에 빠진

평양성을 구원하였고, 곽대봉은 일패의 군사를 이끌고 패수 남쪽에 정박하여 육로를 따라 북진하였다.

궁모성 일대에서 차츰 세력을 넓혀가던 다물군은 남북으로 밀려오는 적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북과 남에서 수천의 군사들이 연거푸 무너져 사태가 궁박해지자

의기 하나로만 뭉쳤던 장수들 간에도 서서히 알력과 다툼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내가 무어라 하였소? 애당초 태대형이 3천이나 되는 군사를 빼내간 것부터가 잘못이오!

이제 우리는 아래위로 협공을 당해 개죽음을 면치 못하게 생겼으니 이 노릇을 대체 어찌한단 말이오?”

북쪽에서 죽을 고비를 겪고 도망쳐온 백포정의 불평을, 역시 남쪽에서 살아 돌아온 뇌독이 거들었다.

“이게 모두 손우지 장군의 어리석은 주장 때문이오.

주필산의 우리 군사들과 성원상접을 하더라도 평양을 수복한 뒤에나 할 일을 미리부터 서둘렀으니

선후가 뒤바뀐 전술로 싸움에서 이겼다는 말을 나는 아직 들은 바가 없소.

세상에 어떤 미친 자가 코앞에 적을 두고 엉뚱한 데로 군사를 빼돌린단 말이오?”

“이놈, 뇌독아! 네 감히 누구한테 구린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비난의 장본인이 된 손우지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지금 국토의 전역은 의로운 장정들의 봉기로 들끓고 있다! 요하뿐 아니라

압록수와 백산(백두산) 일대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연히 몸을 일으켜

당나라의 관리를 죽이고 고을을 점령했는지 모른다!

그 산지사방에 흩어진 작은 세력들을 하나로 모아 나라를 세우고 끊어진 사직을 잇는 것이야말로

왕자를 모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더냐?

처음에 요하의 세력을 내지로 끌어들여 고립무원에 처한 평양성을 되찾고

저 간악한 설인귀의 오장육부를 씹자고 할 때는 너도 분명히 찬동하였거늘,

이제 사정이 약간 불리해졌다고 나를 탓하느냐?

그러고도 네가 과연 불알을 찬 놈이더냐!”

뇌독도 성품이 불같기로는 손우지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10여 년 연상인 손우지의 꾸짖는 소리에 연방 붉으락푸르락 안색을 정하지 못하다가

급기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맞고함을 질렀다.

“듣자듣자 하니 주둥이가 그야말로 개차반이구나!

네 감히 누구한테 놈 자를 놓느냐?

설인귀보다도 네놈의 창자를 먼저 씹어야겠다!”

분기탱천한 뇌독은 안승이 보는 앞에서 칼까지 빼들고 목자를 부라렸다.

주위의 다른 장수들이 그런 뇌독을 황급히 만류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뇌독은 더욱 험악한 욕질을 해가며 눈에 불을 켜고 설쳐댔다.

광란하여 날뛰는 뇌독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안승은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네 이놈!”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며 일어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검모잠 이었다.

“어서 그 칼을 거두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뇌독은 이때껏 남쪽에서 같이 고생하던 검모잠 에게까지 칼끝을 겨누며 여전히

욕설과 고성으로 응수하였다.

“이 대장장이의 아들놈아, 너까지 감히 나를 능멸하느냐?”

하지만 그 소리는 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든 검모잠이 번개 같은 솜씨로 다짜고짜 뇌독의 몸을 두 동강이로

잘라버린 때문이었다.

실로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대들은 조정에서 임금을 모시던 벼슬아치들인데 그 소행이 어찌 이리도 무엄하고 불경스러운가?

이곳이 탑전임을 그대들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세상에 어떤 요망한 신하가 감히 지존이 계시는 탑전에서 언성을 높이고 하물며 칼까지 뽑아 든단

말인가!”

검모잠은 장수들을 둘러보며 준엄히 꾸짖은 뒤에 문득 음성을 차분히 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대형이 궁모성의 군사를 빼내어 북방으로 갈 적에 실은 나도 오늘과 같은 일을 당할까 염려하여

찬성하지 않았으나 지나간 일을 거론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씀이오?

연무 장군이 떠난 지 벌써 달 반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걸로 미루어

북방의 사정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게 틀림없소.

성이 사방으로 포위되기 전에 우선 우리끼리라도 살길을 찾아봅시다.”

그러자 손우지가 입을 열었다.

“궁모성은 더 이상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소.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장군들은 전하를 모시고 서둘러 살길을 도모하오.

서해로 나가는 배편만 얻을 수 있다면 주필산의 항복하지 않은 성으로 가서

한동안 몸을 의탁하며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인데 그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소.”

검모잠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해포의 음직을 떠올렸다. 그때 노장 고하가 말했다.

“요하로 가자면 비사성에 배를 대야 하는데 비사성은 적의 수중에 떨어진 지 이미 오래요,

또한 요하의 장성 일대는 한창 전란에 휩싸여 형세가 매우 어지러울 게 뻔하므로

그곳으로 간다 해서 반드시 후사를 도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오.

 배만 얻는다면 차라리 남쪽으로 가서 신라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 어떻소?

일전에 신라왕 법민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더니

그는 소문처럼 사람이 신실하고 우리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였소.”

백포정이 그런 고하의 의견에 동조했다.

“요하에서 길을 잃는다면 우리에겐 죽음밖에 바라볼 게 없소.

그러나 신라에 몸을 의탁하면 적어도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게 아니오?”

“전하의 의향은 어떠하십니까?”

검모잠이 안승을 향해 공손히 물었다.

“어차피 궁모성을 떠나야 할 형편이라면 나 또한 요동보다는 신라에 의지하는 것이 나을 성싶소.

그러나 내가 이곳을 떠나면 궁모성의 3천 호 백성들은 설인귀의 손에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게 뻔하오.

이를 아는 내가 어찌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을 가겠소?

가치 있고 떳떳한 일을 논하기로 들면 성의 백성들과 생사를 함께하는 것이 상지상책일 것이오.”

젊은 군주 안승의 의연한 대답에 살길을 찾던 장수들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한참 만에 검모잠이 안승에게 말했다.

“백성들을 애호하시는 전하의 숭고한 뜻을 어찌 신 등이 모르겠습니까.

하오나 전하께서는 이 나라 천년 사직을 이어갈 막중한 책무를 지닌 분이십니다.

만승의 존귀한 옥체를 어찌 3천 호 백성들의 목숨과 견주오리까?”

“사직도 백성이 있고서야 사직이요, 천하 만물 가운데 백성들의 목숨보다 귀중한 것은 없소.

그대들의 충절은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백성들을 사지에 버려두고서는 반 보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

그리들 아오!”

안승의 대답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검모잠이 이윽고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하오면 전하의 성지를 받들어 성민들을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검모잠의 말이 떨어지자 안승과 장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3천 호나 되는 백성들을 무슨 수로 데려간단 말씀이오?”

장수들을 대표하여 백포정이 물었다.

“장군들이 힘을 모아 해포까지만 길을 연다면 내게 방법이 있소.

그곳에 아는 사람 하나가 폐선 1백여 척을 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궂은 날만 피하여 배를 띄운다면 신라영 까지는 어렵게나마 갈 수가 있을 거외다.”

안승과 장수들은 그제야 의문을 풀었지만 궁모성에서 해포까지 1백 리가 훨씬 넘는 길을

3천 호의 백성들까지 데려간다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었다.

우선 해포까지 가자면 서쪽으로 강동향과 황주와 강서향을 차례로 지나쳐야 했다.

강동향의 일부는 아직 다물군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황주와 강서향은 적의 수중에 있었고,

어쩌면 패수를 건너온 설인귀의 군대가 이미 해포를 장악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장수들은 성의 백성들 가운데 혹시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여 방을 써 붙이고

의향을 확인해보았더니 짐을 싸지 않는 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소. 일은 저지르고 보랬다고, 우선 부닥뜨리고 봅시다.”

장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론에 몰두하고 있을 때 늘 조용하고 말수가 적던 다식이

모처럼 말문을 열었다.

“백성들을 모두 인솔하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패수 이남의 사람치고 궁모성이 환난에 빠진 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므로

 백성들이 이를 피해 피난을 간다고 하면 뉘라서 감히 의심을 하겠습니까?

환난을 피해 살던 곳을 버리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는 것은 고금에 흔한 일입니다.

그렇게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백성들이 해포에 다시 모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요,

설사 중도에 당군을 만나더라도 우리와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한결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장수들은 물론 그 말을 전해들은 안승도 다식의 꾀를 신통히 여겨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성민들은 저마다 짐을 꾸려 뿔뿔이 흩어졌다가 해포에서 다시 모일 것을 약속한 뒤

서둘러 궁모성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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