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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멸망 12

오늘의 쉼터 2014. 11. 28. 17:21

제33장 멸망 12

 

 

 

당이 항복한 흑치상지에게 웅진성 성주를 맡겨 내지에 그대로 머물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민들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백제인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수만 명 유진군의 몫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게 당조의 계산이었다.

그런 흑치상지에게 만일 딴마음이 있다면 당으로선 대경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네는 어서 이 장계의 내용을 위에 보이고 시급히 대비책을 강구하도록 진언하시게.

나는 예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네가 장계를 다시 가져다주면 삼년산성의 객관으로 돌아가

거짓 칭병으로 시일을 끌어보겠네.”

무수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장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에서 비록 민심 무마를 위해 흑치상지를 내지에 남겨두긴 했지만

혹시 그가 백제국의 재건을 도모할까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를 알던 장귀로선

잠시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장귀는 무수에게 미처 치사를 할 겨를도 없이 흑치상지에게 달려가 법민왕의 장계를 보였고,

흑치상지는 다시 부여융과 사마 녜군을 찾아가 대책을 강구했다.

장계를 읽고 난 융은 대번 사색이 되었다.

“이것이 황제와 무후에게 전해지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닌가!”

워낙이 잘 쓴 글이었다.

융의 말에 녜군도 크게 한숨을 토했다.

“아무래도 신이 금성을 다녀와야겠습니다.”

“저쪽에 무슨 흉계가 있으면 어찌하려구?”

융이 묻자 녜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흉계란 다른 게 아닙니다.

저들은 원군의 출병을 핑계 삼아 신과 흑치 장군을 청하여 볼모로 잡고

우리를 공격하려는 수작이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융은 더욱 놀라 반문했다.

“공은 저들의 수작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하려 하는가?

그대 두 사람이 없다면 웅진이 망하는 것은 필지의 일일세!”

융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만류하자 녜군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신에게도 다 계책이 있으니 전하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금성의 허실을 알아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금성에는 저 혼자 다녀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흑치상지를 돌아보았다.

“장군께서는 제가 성을 비운 뒤에 국경의 방비를 한층 강화하고

신라의 동태를 더욱 유심히 살피도록 하십시오.

신라인들 중에 장군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웅진에 장군이 계신 것은 마치 험곡에 범이 도사리고 있는 것과 같으니

뉘라서 감히 가벼이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혼자 간다면 저들은 십상팔구 딴마음을 품지 못할 것입니다만,

만일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엿보이거든 제 안부 따위는 개의치 말고 군사를 내어 응전하십시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먼저 군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하셔야 합니다.”

“공은 장차 나라와 사직을 되찾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보배 같은 분이외다.

어찌 그 안부를 소홀히 여길 수 있겠소? 신라의 사신이 지금 우리에게 있으니

차라리 그를 베고 우리가 먼저 북방으로 원군을 보낸다면 당의 의심을 사는 일은 없을 게 아니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흑치상지의 제안에 녜군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신라의 사신을 우리가 먼저 벤다면 이는 지난번 취리산의 맹약을 스스로 어기는 일이요,

그렇게 되면 신라가 우리를 마음 놓고 칠 수 있는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금서철권으로 만들어 금성에 보관 중인

바로 그 맹약문 때문이올시다.

우리가 먼저 군사를 내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만 만일 당에 입조하는

사신을 중로에서 죽여 신라가 이를 핑계 삼아 전군을 동원해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당에 하소연할 명분조차 잃게 되는 겁니다.

하물며 당은 고구려의 일에 온 정신이 팔려 있으니 지금은 신라에 그 어떤 빌미도 줘서는 안 됩니다.”

녜군은 흑치상지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신라군은 원군의 파병 로를 반드시 이 부근으로 잡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여차하는 순간에 행로를 돌려 우리를 치려 할 게 틀림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조금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시고 때를 기다리십시오.

장군이 먼저 군사를 내거나 또는 저들의 공격을 받고도 제 안부를 걱정해 응전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저들이 노리는 바이니 거듭 유념하십시오.”

녜군의 결연한 말투에 흑치상지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공의 말씀은 충분히 알겠소.

그러나 7백 년 사직의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이 오로지 공의 생사에 달렸다 해도

과한 말이 아니므로 아무래도 적지에 혼자 보낼 수는 없소.

나의 수하인 수미(首彌)와 장귀는 무예가 출중하고 용맹스러운 장수들이니

이들을 데려가도록 하오.”

“장군께서 그렇게까지 염려해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공론을 끝마친 녜군이 융을 향해 큰절로 하직 인사를 올리자

융은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급기야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만일 그대에게 무슨 변이 생기면 과인은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하오?”

녜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신이 비록 못나고 용렬한 사람이나 어찌 계림의 족속들에게 변을 입으오리까.

하오나 급히 상의할 일이 있거든 법총(法聰)과 윤회(允淮)를 부르십시오.

그 두 사람이라면 능히 지략을 구할 만합니다.”

융과 작별한 녜군이 수미와 장귀, 두 장수의 호위를 받으며 금성에 당도하자

법민은 즉시 강수를 불러 물었다.

“일이 대개 경의 말한 대로 되었으나 다만 흑치상지가 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소?

녜군이야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흑치는 일기당천의 맹장이라

그를 웅진에 두고서 어찌 함부로 군사를 낼 수 있겠소?”

그러자 강수가 대답했다.

“녜군이 혼자 온 것은 벌써 이쪽의 계책을 속으로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는 그를 불러 출병 문제를 의논하십시오.

그는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쌍방의 관리로써 볼모 교질(交質)을 하자고 말할 게 뻔합니다.

그러면 이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셨다가 흑치상지의 출병 여부를 확인해 만일

그가 출병을 하지 않는다면 볼모로 보내달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출병을 한다면 일은 간단합니다.

우리 장수와 흑치상지를 함께 북방으로 보낸 후에 웅진을 치면 그만이올시다.”

법민은 반신반의하며 녜군을 편전으로 불러들였다.

녜군이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국궁재배한 뒤에,

“신 사마 녜군, 신라 대왕의 부르심에 따라 하명을 받고자 왔습니다.”

하였다.

법민이 시치미를 떼고 몇 마디를 물었다.

“전에 사람을 보내어 청하였을 때는 오지 않다가 어찌하여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던가?”

“신은 오로지 뫼시는 주군의 뜻에 따를 뿐이올시다.

그때는 주군의 뜻이 그러하였지만 다시 하명하시기를 마땅히 찾아뵙는 것이 도리라 하므로

이렇게 왔습니다.”

“하면 그대의 주군은 조변석개를 예사로 하는 천하에 믿지 못할 사람이 아닌가?”

“처음에 도리를 모르다가 뒤에 깨우쳐 시정하는 것이 어찌 반드시 나무라기만 할 일이겠습니까?”

“도리를 깨우친 사람이 시정을 하려면 제대로 하지 왜 절반만 하는가?

일전에 사신을 보냈을 때 분명히 그대와 또 한 사람, 흑치상지를 함께 청하였거늘?”

“흑치 장군은 비록 오지 않았으나 신과 동행한 두 장수는 능히 그에 필적할 용장들이올시다.

또한 신이 비록 용렬하오나 출병을 의논하는 일 정도는 혼자서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니

대왕께선 조금도 심려치 마십시오.”

녜군의 대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법민은 그가 과연 소문에 듣던 대로라고

여기면서 비로소 본론을 끄집어냈다.

우선 양쪽 진영에서 보기병 1만씩을 파견하되 웅진에서는 선박을 이용하고 신라에서는

육로로 한산주를 거쳐 파병하자는 것이 법민의 제안이었다.

하기야 웅진에서 고구려로 파병하자면 수로밖엔 다른 파병로가 있을 수 없으니

일견 당연한 얘기였지만 군사들이 1만 명씩이나 빠져나갔을 때 육로의 신라군들이

돌연 말머리를 돌려 웅진을 친다면 이는 상상만 해도 섬뜩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속사정을 밝히는 것 같아 말은 하지 않았으나 웅진의 1만 군사란

거의 전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자코 얘기를 듣고 난 녜군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대붕은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는 법이 없으나 홍곡(기러기)은 우레소리에도 피할 곳을 찾고,

황작(참새)과 같은 미물은 한낱 바람소리에도 놀라 달아납니다.

이렇듯이 약자는 털끝만한 일에도 의심하고 놀라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양측에서 군사를 일으킨 후에는 피차 서로 의심할 여지가 있으니

원군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양쪽의 관리 몇 사람을 볼모로 교환해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왕께서는 고금에 좀처럼 뵙기 힘든 성군이요 명군이시니 사직을 잃고 방황하는 약자들의 형편을

모쪼록 깊이 헤아려주사이다.

웅진에서 1만 군사를 내는 것은 신라의 10만 군대보다도 오히려 많은 숫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강수가 말한 대로였다.

법민은 짐짓 마뜩찮은 얼굴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못 이기는 척 말하기를,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우정 그래야 한다면 도리가 있는가.”

하고서 연하여 누구를 볼모로 삼을지를 의논하게 되었다.

법민은 강수의 말대로 대뜸 흑치상지가 출병할 것인지를 묻고 나왔다.

그러자 녜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금세 이렇게 응수했다.

“흑치 장군의 출병 여부는 신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딱히 뭐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만일 그를 볼모로 삼는다면 대왕께서는 그에 필적할 인물을 우리에게 주셔야 합니다.”

“누구를 주면되겠는가?”

“송구하오나 김유신 장군이나 흠순 장군은 내어주셔야 할 것입니다.”

녜군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법민의 안색이 일순 벌겋게 달아올랐다.

“듣자듣자 하니 너의 말이 어찌 그토록 무례한가?

그 두 장군이 짐의 외숙임을 알고 하는 소리렷다?”

법민이 흥분하여 옥음을 높이자

녜군은 스스로도 자신의 요구가 다소 무리했다고 느꼈던지,
“흑치상지는 웅진에서 제일가는 장숩니다.

계림에는 나라의 3보 보다 귀중한 9장수가 있다고 들었사온데 백 보를 양보하더라도

그 중의 한 사람은 내어주셔야 격이 맞지 않겠나이까?”

하며 한발 물러섰다.

녜군이 말한 9장수란 본래 무열왕이 진흥왕조에 빗대어 일컬은 장수들로 유신과 흠순 말고도

천존, 죽지, 진주, 품일, 문충, 천품, 흠돌 등을 가리켰다.

그러나 진주와 진흠 형제가 일족과 함께 처형되었으므로 진복(眞福)이 진주의 빈자리를 대신해

전조와 금조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백제 정벌의 주역이 무열왕의 9장수였다면 고구려와 싸운 으뜸 공은 법민왕의 9장수에게 있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볼모로 달라는 말을 듣자 법민은 더욱 분기를 추스르지 못했다.

“흑치는 기껏 일개 성주에 불과하지만 네가 말한 9장군은 상국과 우리나라에 두루 대공을 세우고

지금은 하나같이 나라의 재상이 된 사람들이다! 하물며 상국에 불복했던 대역의 전죄까지 있는

흑치가 아닌가? 네가 과연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신은 다만 양쪽의 형편을 가감 없이 아뢰었을 따름입니다.”

녜군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원군을 파견하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볼모 교질은 서로 적당한 선에서 해두고 시급히 출병부터 서두르는 것이 어떨는지요?”

하지만 법민이 녜군의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기왕에 너와 내가 합의한 일이다.

흑치의 격에 맞는 우리 성주 한두 사람을 내어줄 것이니

너는 이러한 사실을 부여융 에게 글로 알려 반드시 흑치를 금성으로 보내도록 하라.”

“하면 신이 돌아가서 의논을 하여 처리하겠나이다.”

“그럴 여유가 어디 있느냐? 너 또한 원군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니라!”

법민이 단호하게 말하자

녜군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면 흑치 장군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역시 결연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네 정녕코 나의 뜻을 거역하려느냐!”

법민은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도리가 없는 일이올시다.”

“보아하니 너는 목숨이 도리어 귀찮은 모양이로구나?”

법민이 싸늘한 표정으로 빈정거리자

녜군은 흡사 살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더욱 의연하게 응수했다.

“사람은 어차피 한 번은 죽게 마련이올시다.

신이 목숨 따위를 아깝게 여겼다면 어찌 이곳에 왔겠습니까?”

“닥쳐라, 이놈! 내 너를 잡아두었다가 훗날 우리 군사들이 출병할 때

목을 쳐서 악귀를 쫓고 군문의 사기를 높이는 데 쓸 것이니라!”

법민은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벼락같이 고함을 질러

녜군을 궐옥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당나라 칙사 법안이 다시 금성에 온 것은 녜군이 아직 옥에 갇혀 있을 때였다.

법안이 찾아온 용무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원군 파병을 재촉하는 당주의 칙명을 전하는 일이었고,

둘째는 신라에서 활을 만들 목재를 얻어가기 위함이었다.

법민은 강수가 말한 화전양책(和戰兩策)을 염두에 두고 애써 부드러운 낯으로 법안을 영접했다.

“그러잖아도 북방의 형세가 여의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웅진의 부여융과 원군의 파병 문제를

의논하던 중인데 저쪽에서 차일피일 시일을 끄는 바람에 일이 그만 늦어졌소.”

“의논을 할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황제와 무후께서는 계림에 파병을 명하였지 웅진과 논의하라는 말은 없었으니

대왕께서는 오늘이라도 당장 군사를 내셔야 할 줄 압니다.

소승은 이번에 파병하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갈 것이오.”

무후가 총애하는 승려답게 법안은 점점 더 안하무인으로 설쳐댔다.

“어찌 오늘 당장이야 군사를 내겠소? 시급히 준비를 하여 조만간 파병을 하리다.”

“오늘이 어려우면 사흘 말미를 드릴 테니 그사이에 원군을 내시오.

소승은 목재나 구하며 기다리겠소.”

법안이 활 만드는 목재를 구하러 온 것은 낙양으로 끌고 간 명공 구진천 때문이다.

구진천은 낙양에 가자 곧 당주의 명령으로 활을 만들게 되었는데,

1천보를 날아간다던 활이 쏘아보니 고작 30보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에 당주가 그 까닭을 묻자 구진천이 중국의 자재가 좋지 못한 것을 말하며,

“만일 본국에서 자재를 가져온다면 잘 만들 수 있겠습니다.”

하였고, 그 말을 믿은 당주는 법안을 보내 신라의 나무를 실어오도록 한 거였다.

법민은 그 말을 전해 듣자 구진천의 속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겉으로는 토목과 영선의 사무를 맡은 예작부(例作府)에 명하여 자재를 넉넉히 구하도록 일렀다.

그리고 웅진을 치려는 계획이 탄로날 것을 우려하여 왕궁에서 술과 고기로 법안을 극진히 환대하며

말하기를,

“과인은 일편단심 상국을 섬기고 황제께 충절을 다하기로 천지신명을 두고 맹세한 사람이외다.

어찌 칙명을 받고도 행하지 않을 것이며, 그 시행에 촌각의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있을 수 있겠소?

파병도 그렇고 목재를 실어 나르는 것도 모다 과인이 알아서 할 터이니

대사는 타관서 공연히 고생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오.”

하며 몇 번이나 좋은 말로 꾀었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못 이기는 척 돌아갈 법도 하련만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소승 걱정은 마십시오.

예서 파병하는 것과 목재를 실은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 소승은 평양으로 가서

설인귀 장군을 만날 것입니다.”

하고 법안은 고집을 부렸다. 법민은 무엇보다도 궐옥에 갇힌 사마 녜군의 일이

법안의 귀에 들어가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그것은 금서철권으로 만들어 종묘에 보관 중인 맹약문의 내용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었고,

당에서 이를 알면 웅진에서 철수시킨 당군을 다시 보강하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차제에 반드시 웅진을 아울러 남역 평정을 이루기로 작심한 법민 으로선 여간 애가 타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법안이 끝내 자신의 말을 거역하자 야심한 시각에 강수를 불러 가만히 법안을 죽이는 문제를

의논했다.

“저들이 이미 우리 사신 양도를 죽였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소?

법안이란 자는 비록 불문에 귀의한 승려라고는 하나 주육과 재물을 탐하고 색을 밝히며

아첨과 비행을 일삼는 것이 여느 속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소.

게다가 걸핏하면 우리나라를 제 집 곳간 들락거리듯 하여 하나를 보고도 열을 짐작하니

저런 자를 살려두었다가는 반드시 뒷날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오.”

우스꽝스럽게 치켜 들린 복두 아래로 시종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앉았던 강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법안 따위를 살리고 죽이는 일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오나 문제는 북방의 일입니다.

당은 고구려의 다물군을 평정하고 나면 틀림없이 관심을 우리나라로 돌려 백제와

국경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들 것입니다.

그런데 소문에 듣자오니 당장(唐將) 고간이 이근행과 말갈병 까지 동원하여

압록수 북방의 다물군을 연일 크게 격퇴시키고 있다 합니다.

만일 우리가 미처 웅진을 토벌하기도 전에 당이 먼저 북방을 평정해버린다면

오늘과 같은 호기는 좀체 다시 맞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강수는 사뭇 음성을 낮추어 아뢰었다.

“법안이 와서 파병을 독촉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있습니다.

먼 곳을 돕고 가까운 곳을 치는 것과 서쪽을 얻기 위해 일부러 동쪽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병법에 매양 있는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법안이 보는 데서 원군을 보내십시오.

그러나 육로로 파병하지 말고 당항성에서 배를 내어 요동의 고구려 다물군과 내응하게 한다면

두 가지 시름을 한꺼번에 덜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은밀히 고구려 다물군을 도와 당을 곤경에 빠뜨리자는 것이었다.

강수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아서 법민은 크게 무릎을 쳤다.

“과연 강수 선생이로다! 내 어찌 그 생각을 못했더란 말인가!”

이튿날 날이 밝자 법민은 칙사 법안이 지켜보는 앞에서 파병을 선포하고

곧 사찬 설오유(薛烏儒)를 장수로 삼아 군사 1만을 내어주며 이르기를,

“패수 이남은 반란군이 장악해 육로를 얻기가 쉽지 않다.

오유는 군사를 이끌고 당항성을 출발하여 해로를 따라 평양으로 가서

안동도호 설인귀의 절도를 받으라. 상국과 우리나라의 명운이 너와 원군의 손에 달렸다.

부디 대공을 세우고 돌아와 황제와 과인을 두루 기쁘게 하라!”

하니 오유가 두 번 절하고,

“삼가 대왕전하의 명을 받들어 반란군의 씨를 말리고 오겠습니다.”

하였다. 이리하여 설오유가 보병 1만을 인솔하여 금성을 떠났는데,

사전에 따로 이야기가 있었음은 다시 말할 것이 없었다.

백관들과 당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원군들이 북을 울리며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법안은 돌연 눈을 설만하게 치켜뜨고 퉁명스런 어조로 중시 지경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대왕께서 시급히 원군을 보낸 일은 고맙고 가상하나 그 장수가 소승은 아직 한 번도

이름을 듣지 못한 생면부지의 인물이니 수상하오.

계림은 비록 소국이지만 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기인과 명장들이 수두룩한데

어찌하여 그런 장수는 한 사람도 뵈지 않소? 혹시 정성과 힘을 아끼는 것이 아니오?”

“대사께서 아시는 계림의 장수가 과연 얼마나 되오?”

지경이 웃으며 반문하니 신라 사정에 정통하고 해박한 법안이 유신은 제쳐두고

천존과 흠순의 이름을 제일 먼저 꼽고 죽지, 품일, 문충, 문영 등을 차례로 말하였다.

웃던 지경이 문득 정색을 하며,

“흠순 외숙께서는 옥고를 치르시고 돌아와 그 후유증이 깊어 출입도 제대로 못하십니다.”
하고서,

“대사께서 아는 우리 장수들은 거의가 육순, 칠순에 이른 노장들이오.

게다가 그분들은 양도 장군이 옥사한 소식을 듣고 한결같이 마음이 상하여 상국에 대한 충심이

전과 같지 않으니 우리 대왕께서 이를 아시고 젊은 장수를 뽑아 보내신 거외다.”

은근히 말 속에 뼈를 박아 응수했다.

법안도 그제야 염치가 있었던지,

“허, 그러셨소.”

겸연쩍게 웃으며 어물쩍 받아넘긴 뒤에,

“하긴 대왕께서 어련히 알아 하셨겠소.

소승은 다만 아는 장수들이 뵈지 않으니 궁금하여 물어봤을 뿐이오.”

하고는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당초에 법안은 목재를 구하는 일까지 마저 보고 금성을 떠나고자 했다.

원군이 출발한 뒤에 법민이 다시 그를 편전으로 불러,

“나무를 베어서 다듬고 배에까지 싣자면 하루 이틀 공역이 아닐 뿐더러

지금은 여름이라 목질이 수분을 많이 머금어 활을 만들기에도 적합치 않소.

우정 그 일까지 다 마치고 가겠다면 겨울이나 돼야 할 것인데

그래도 좋다면 뜻대로 하오 마는 대사가 여기 있으나 없으나

나무배가 가는 데는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소.”

하며 떠날 것을 종용했을 때만 하더라도 법안의 대답은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법민이 더는 칙사 대접도 안 해주고 돌보기를 소홀히 하자

영객부 대신들에게 틈만 나면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더니

열흘쯤 지나자 별안간 태도를 바꾸어,

“하면 소승은 이만 가볼까 하오니 대왕께서는 벌목할 때가 되면 차질이 없이 목재를 보내주시오.”

마치 제 물건을 맡겨놓은 사람처럼 말하고는 설인귀를 만나 상의할 일이 있다며

부랴부랴 육로를 따라 북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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