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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멸망 10

오늘의 쉼터 2014. 11. 28. 16:40

제33장 멸망 10

 

 

 

무열왕과 김유신의 등장 이후 신라에서는 실로 무수한 가야국 후손들이 쏟아져 나와

국사를 보필하게 되었는데 강수 또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대가야) 출신으로, 골품은 5품이요,

한때 용화향도로 이름을 떨쳤던 내마 석체(昔諦)의 아들이었다.

하루는 석체의 처가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을 꿈에서 보고 임신하여

이듬해인 임진년(632년)에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묘하게도 뒷머리에 검은 사마귀와 불거진 뼈가 있어 꿈에서 본 사람의 뿔과 흡사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석체가 당시의 현자라고 알려진 사람을 찾아가서,

“이 아이의 두골이 어찌 이처럼 묘하게 생겼습니까?”

제가 낳은 아이를 남에게 물으니 현자라는 이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찬찬히 뜯어보고 나서,

“내가 듣건대 중국의 복희(伏羲)는 범의 상이요,

여와(女?:복희의 아내)는 뱀의 몸이며, 신농(神農)씨는 머리가 소처럼 생겼고,

고도(皐陶)의 입은 영락없이 말과 같았다고 하오.

이처럼 옛 성현들은 하나같이 생긴 것이 이상했다고 하니

외모가 수상쩍다고 기분 나빠할 건 아니외다.

그리고 지금 이 아이의 머리에 검은 사마귀가 있는데,

상법(相法)에 얼굴의 사마귀는 좋지 않고 머리의 사마귀는 나쁘지 않다고 했으니

어쩌면 이 다음에 기이한 인물이 될지 누가 알겠소?”

하므로 집에 돌아와 그 처를 보고,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닌 듯하니 잘 길러서 후에 반드시 국사(國士)로 만들어야겠소.”

하고 이름을 자두라고 지었다.

그런데 자두는 차츰 자랄수록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데가 있어 스스로 글을 읽을 줄 알고

문장의 뜻에 통달하니 하루는 석체가 그의 뜻을 알아보고자,

“너는 불도(佛道)를 따르겠느냐, 유가(儒家)에 들겠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자두가 대답하기를,

“소자가 듣건대 불법은 세속을 벗어난 가르침이라 하니

어리석은 사람이 불법을 배워 무엇에 쓰겠습니까?

저는 차라리 유자의 도리를 따르겠습니다.”

하므로 석체가,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라.”

하고 유학을 배우도록 허락하였다.

그 뒤로 자두는 산곡간의 수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효경(孝經), 곡례(曲禮), 이아(爾雅), 문선(文選) 등을 두루 섭렵하였는데,

배운 것은 비록 적고 얕아도 터득하여 깨달은 바는 심히 도저하여

드디어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진덕 여왕 말년에 벼슬길에 나서서 여러 관직을 거치고 태종 대왕 즉위 후에는

어전을 드나들며 임금의 총애를 받을 만큼 크게 출세했다.

자두가 일찍부터 부곡의 천민인 대장장이의 딸과 야합해 그 정분이 사뭇 각별했는데

이를 알지 못한 부모가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 고을의 양가에서 용모가 아름답고

품행이 단정한 규수를 골라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자두가 두 번 아내를 얻을 수 없다며

거절하고 마침내 대장장이의 딸과 야합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석체가 노하여,

“너는 세상에 이름이 나서 백성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하찮은 대장장이의 딸을

배필로 얻는다면 그 수치스러움을 어찌하겠느냐?”

하니 자두가 두 번 절하고 결연한 어조로 대답하기를,

“가난하고 천한 것은 수치가 아니옵고 학문을 배우고도 배운 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부끄러운 것입니다.

소자가 일찍 듣고 배운 바로 조강지처는 쫓아내지 않고 빈천할 때

사귄 벗은 잊지 않는다 하였으니 비록 천한 아내라도 차마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하므로 역시 사리분별이 명확하던 석체가 다시는 그 일을 재론하지 않았다.

태종무열 대왕이 즉위하였을 때 당에서 사신이 이르러 조서를 전하였는데,

그 가운데 판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왕이 자두를 불러 물으니

한 번 보고는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아무런 막힘이 없었다.

왕이 놀라고 기뻐하여 서로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하고는

그 본향이며 생일생시를 물은 뒤에,

“경의 두골을 보니 강수 선생(强首先生)이라 할 만하다.”

하고서 그로 하여금 당에 보낼 회서를 짓게 하였더니

그 글과 문장이 다시 놀라웠다.

특히 글을 취하고 행간을 나누는데 왕의 심정을 너무도 환히 꿰뚫고 있어

그를 귀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이후 무열왕은 붕어하는 날까지 자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공석에서는

강수라 하고 사석에서는 그가 태어난 해를 빗대어 임생(任生:임진년에 태어났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처럼 선왕으로부터 강수 혹은 임생으로 불리게 된 자두는 벼슬길에 나선 뒤에도 가세가

물로 씻은 듯 적빈하였다.

그 바람에 끼니를 때우기도 어렵게 되자 한번은 이를 안 무열왕이 유사에 명하여 거둬들인

국세 가운데 조 1백 섬을 따로 하사한 일도 있었다.

법민은 흠순의 설명을 듣자 당석에서 태자 정명에게 말했다.

“대장군께서 강수 선생을 그처럼 높이 말씀하셨다면 그는 문장뿐 아니라

지략으로도 능히 일국의 정사를 보필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너는 지금 당장 강수 선생을 찾아 제자가 스승을 섬기듯 공손히 뫼셔 오도록 하라.”

강수가 태자를 따라 사량궁에 이르렀다.

법민이 보니 그는 마흔이 채 안 된 젊은 사람으로 관복은 남루하고 인물과 체격은

실로 볼품이 없는데 소문대로 뒷머리가 눈에 띄게 불거져서 머리에 쓴 견포 복두가

한 뼘이나 위로 치솟아 위태로운 형국을 하고 있었다.

만일 유신의 천거와 흠순의 설명 없이 만났더라면 기피했을지도 모를 외모였지만

법민은 그런 강수의 손을 친히 맞잡아 환대하였다.

“과인이 과문하여 그대와 같은 영걸이 계림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니

이를 딱하게 여긴 태대각간께서 와병 중임에도 특별히 경을 천거하여 과인의 어두운 귀를 열어주셨소.

강수 선생은 부디 천하를 움직일 대략을 내어 과인의 흉중에 든 심병을 고쳐주오.”

법민은 강수가 비록 젊었을망정 선왕에게 배운 대로 인걸을 대하는 예를 등한히 하지 않았다.

 

왕의 간곡한 말에 강수가 두 번 절하고 국궁하여 아뢰는데,

흉한 외양과는 달리 그 음성은 쟁반 위를 굴러가는 옥구슬 소리처럼 티 없이 높고 청아하였다.

“신이 보기에 근래 당의 소행이 나날이 오만불손하고 방약 무도하여 대왕께서 도저히 묵과하지 못할

형편이나 일변 나라의 사정이 아직 당을 상대로 결전을 벌일 수 없으니

대왕의 심병은 바로 거기서 연유한 것이 아닐는지요?”

“그러하오. 심지어 당은 우리가 차지한 백제의 영토마저 모조리 부여융 에게 돌려주라 하고

조만간 새로운 경계선을 획정하겠다니 내 어찌 저들의 뜻에 따를 수 있겠소?

간밤에도 나는 당나라 군대와 싸우는 꿈을 꾸었소. 하나 아침에 일어나면 없던 용기가 생기다가도

저녁에 생각하면 산곡간의 피폐한 형편과 지친 백성들의 모습이 시야를 가려 조석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그만 심사를 해쳐 몸이 이 지경이 되었소.

대체 어찌하면 삼한에 들어온 당군 들을 몰아내고 계림의 만년 사직을 지킬 수가 있겠소?”

법민의 애절한 물음에 강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은 대국이라서 웅진과 평양에 주둔한 양쪽 세력을 일거에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후를 가려 어느 한쪽을 먼저 토벌한다면 지금이라도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강수의 말에 법민은 왈칵 무릎을 당겨 앉았다.

“좀 소상히 말씀해보시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리는 당의 도움을 받아 백제를 멸하였으나 그 영토를 얻지 못하였고,

당을 도와 고구려를 멸하였으나 역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모두 속토로 삼은 뒤에 우리마저 노리고 있으니

오히려 소적을 치기 위해 대적을 끌어들인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을 상대로 처음부터 전쟁을 다시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웅진과 평양이 서로 떨어져 있는 데다

당주가 있는 낙양은 더욱 멀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을 때 흔히 쓸 수 있는 계책으로는 화전(和戰) 양책이 있습니다.

낙양의 당주는 더욱 극진히 섬기는 척하면서 일변으론 웅진과 평양을 차례로 공격하여

저쪽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종의 술계(術計)입니다.

전하께서는 만일 선후를 정하여 어느 한쪽을 먼저 멸한다면 어떤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질문을 받은 법민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그거야 마땅히 웅진을 먼저 토벌하여 남역을 완전히 평정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겠소?”

그러자 강수가 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삼한이 천년 사직을 바라볼 만치 유구한 세월을 이웃하여 내려온 까닭은

그 형세가 안전한 솥발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정족지세(鼎足之勢)로는 국력을 어느 한쪽으로만 치중할 수 없어 계책을 내고

병법을 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침 고구려 구토에선 다물군이 맹위를 떨치며 설인귀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이 기회를 틈타 웅진을 토벌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지난 을축년(665년) 가을 취리산 맹약식 이후에 당은 우리가 딴마음을

품지 않을 것으로 믿고 웅진에 주둔시킨 군사들을 해마다 수천 명씩 감축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당의 관리 몇 사람이 부성(府城)에 남아 있을 정돕니다.

이 기회를 틈타 먼저 웅진을 공취하고 나면 차후로는 남북으로 대치한 양국전의 형세가 되니

대왕께서 꿈꾸시는 삼한일통의 대업을 한결 수월히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이까?”

“그렇긴 하오만 어떻게 하면 웅진을 토벌할 수 있겠소?

그곳에는 소수의 당인들도 있지만 특히 부여융의 심복인 녜군과 흑치상지는 지략과 용맹이

꽤나 출중한 자들이라 쉽게 볼 일이 아니오.”

“녜군이 비록 약간의 지략이 있고 흑치상지가 용맹스럽다고는 하나 그들을 사로잡을 계책은

이미 신의 흉중에 있으니 대왕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강수는 궁금해 하는 왕에게 몇 마디 말을 더 아뢰었다.

얘기를 듣고 난 법민은 홀연 손뼉을 치며 뛸 듯이 기뻐했다.

“경이야말로 과인의 병을 단숨에 고쳐준 명의 중의 명의로다!

아아, 내 어찌 경의 말을 따르지 않겠는가? 여봐라,

당장 어가를 준비하라! 과인은 천하의 강수 선생과 더불어 다시 대궁으로 돌아가리라!”

태자 정명과 사량궁의 나인들은 오랜만에 왕의 우렁찬 옥음을 다시 들었다.

법민은 촌각도 지체하지 않고 환궁을 서둘렀는데,

그 태도며 안색이 언제 아팠냐는 듯 생기와 활기로 충만하였다.

대궁에 돌아온 왕은 강수의 벼슬을 대내마로 높여 군사(軍師)의 일을 맡게 한 뒤

이내 문무  백관들을 소집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돌이켜보면 당과 우리는 오랫동안 사지를 넘나들며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혈맹의 관계로

그 돈독한 우애나 아끼고 섬기는 마음은 한배에서 난 형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비록 근년에 약간의 오해와 불만이 있었다고 하나 어찌 동맹의 크고 굳은 결의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교롭게도 그간 과인이 병중에 있어 바깥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태자에게 들으니

북방의 고구려가 모반하여 당의 관리들을 모조리 살해하였다 하므로 우리는 마땅히 동맹국의 결의를

되살려 이를 정벌해야 할 것이다.”

당나라의 무도한 처사에 격분해 병까지 얻었던 법민 이었다.

신라의 중신들은 그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돌연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대아찬 강수가 앞으로 나섰다.

“고구려의 반란군은 그 기세가 매우 날카롭고 인육을 씹을 만치 흉포할 뿐 아니라

고토의 전역에서 수백 혹은 수천의 무리가 우후죽순처럼 발호하여 우리 군사만 가지고는

위급함에 빠진 당군을 시급히 구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웅진은 당나라의 고을로 그곳에서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게 뻔하므로

사람을 청하여 함께 구원책을 의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법민은 강수의 진언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누구를 청하여 함께 의논하는 것이 좋겠는가?”

“부여융이 온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나 그는 함부로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게 틀림없습니다.

녜군과 흑치상지가 오더라도 출병을 의논하고 계책을 세우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강수의 대답이 끝나자 법민은 중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제신들 가운데 누가 부성으로 가서 녜군과 흑치를 청해보겠는가?”

“신이 웅진의 부성을 다녀오겠습니다.”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은 이찬 예원이었다.

그러나 예원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찬 대토가 말했다.

“한낱 패전국의 관리를 청하는 일에 어찌 이찬 대신을 보내오리까? 신을 보내주십시오.”

그러자 예원도 지지 않고 대토의 말을 공박했다.

“부여융은 의심이 많은 인물이라 자네가 가면 따로 무슨 흉계가 있을 것을 의심하여

녜군과 흑치상지를 보내지 않을지도 모르네.

그들이야말로 부여융이 하늘같이 믿고 의지하는, 웅진에서 제일가는 충신들이 아니던가?”

법민은 두 사람의 다투는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예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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