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3장 충돌기 2

오늘의 쉼터 2014. 11. 27. 17:22

제3장 충돌기 2

 

 

 처음엔 엷은 색의 속옷에서 갈수록 짙은 색의 속옷으로 모델들의 워킹이 이어졌다.

 

그 간격을 짧게 해서 마치 무지개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5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모델들의 워킹 간격을 짧게 만들어 두 번 무대를 돌게 만들었는데

두 번째는 짙은 색에서 엷은 색으로 워킹을 하도록 준비했다.


관람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실의에 빠져 있던 애란과 봉수는 위로를 받은 듯했다.

 

어설픈 게 있었다면 채연이었다.

그녀는 아직 국제적인 무대에 서기엔 부족했다.

워킹도 약간은 부자연스러웠고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 또한 외국의 모델들보다 모자랐다.

위축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몸매 하나만은 다른 모델들에 비해 훌륭했다.

 

“두 사람 모두 여기 들어와 있으면 어떡해?”

 

어느새 진국이 다가와 있었다.

 

“너는 어딜 가려고?”

 

“우리 시간 끝났으니까 상담 부스에 좀 나가 볼려고 그랬지.”

 

“글렀다.”

 

“무슨 소리야?”

 

“일단 나가 봐라.”

 

진국이 상담 코너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그는 잠시 후에 붉으락푸르락 해진 얼굴로 들어왔다.

 

“왜 우리 상담 부스만 저래?”

 

“우리가 받은 공문 내용대로 준비한 거야.”

 

“어쩐지 다른 회사들 부스가 크길래 현장에서 직접 옷을 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저 부스를 가지고 삼일을 더 버텨야 하는데 큰일이다.”

 

애란은 진국에게도 받은 공문에 대해 설명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겠습니까?

‘비라’는 빵빵하게 준비를 해놨는데 우리만 이게 뭡니까?”

 

“하소연 해봐야 소용없어.”

 

봉수는 체념한 듯 말했다.

 

“강 실장이 그랬을까?”

 

“회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애란이 강 실장을 변호하고 나섰다.

 

“맞아, 강 실장이 뭐하러 이런 자잘한 일에 그런 야비한 짓을 하겠냐.”

 

진국은 입을 크게 열었다가 그만 닫아버렸다.

 

“애란씨 지금이라도 우리 부스를 늘릴 수 있는 지 알아봅시다.”

 

“이미 끝난 상태라, 그리고 부스를 늘리려면 다시 공사를 해야할텐데.”

 

“알아나 봅시다.”

 

진국이 먼저 나서서 애란을 끌고 박람회 사무실로 향했다.

 

봉수는 두 사람이 괜히 힘만 빼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진국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쪽발이 새끼들! 말이 안 통해 말이.”

 

진국은 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 애란이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잖아요.”

 

“애란씨 모델은 더 구할 수 있겠어요?”

 

“모델이요? 지금 어디서 모델을 구해요?”

 

“너 무슨 생각하는데?”

 

“이대로 멍청하게 앉아 있을 순 없잖아. 우리가 뭐 속옷 구경이나 하러 여기 왔냐?”

 

두 시간동안 사라졌던 진국이 패션쇼 장에 나타났다.

 

첫날 공식 행사는 모두 끝난 뒤였다.

다른 상담 부스는 상담하는 사람들도 북적거렸지만 ‘코지’는 파리만 날렸다.

간간이 디자이너인 듯한 사람들이 지나가며 ‘좋았다’는 말만 툭 던지고 지나갔다.


“어디 갔다 온 거야?”

 

“노 선배 모델들은 준비가 될까요?”

 

“부스에 서 있을 모델들 말이죠?”

 

“네.”

 

채연도 상담 코너 쪽으로 나와 걱정스럽게 세 사람을 둘러보고 있었다.

통역들은 이미 돌아갔다.

 

“연락은 해보겠지만 쉽진 않을 거예요.”

 

진국은 혼자 생각에 잠긴 듯 눈에 초점이 없었다.

 

“무슨 생각해?”

 

“봉수야, 솔직하게 물을게. 송화랑 수영이랑 모델할 만한 몸매 되지 않냐?”

 

“송화랑 수영이?”

 

봉수는 적잖이 놀랬다. 안되는 일을 억지로 끌고 나가려고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삼일 내내 이렇게 초라한 몰골의 상담 부스를 지키고 있는 게 더 힘들 듯했다.

 

“키가 외국 애들에 비해 작긴 하지만 그래도 걔네들도 큰 편이지. 수영이야 내가 맨몸을 못봐서….”

 

봉수가 뒤엣말은 진국의 귀 가까이 대고 말했다.

 

“그럼, 됐다. 송화랑 수영이 당장에 일본에 건너오라고 하고 내가 아는 누나가 하나 있는데

그 누나한테 도움 좀 받고. 그러면 부스 늘리는 일하고 사용료를 추가로 내는 일이 남았네.”

 

“아는 누나?”

 

“있어.”

 

“수영이란 송화 비행기 삯이며 방 값은?”

 

“일단 우리 돈 쓰고 나중에 회사에 청구하면 나 몰라라 안하겠지.”

 

“그, 그래.”

 

봉수는 그때까지도 진국이 정말 일을 벌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다혈질이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라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꺾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걔네들이 할까?”

 

“얘들이 보통 끼가 아니잖아.”

 

“허긴.”

 

애란과 채연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멍하니 서서 듣기만 했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진국은 휴대폰을 챙기고 부리나케 엘리베이터 홀 쪽으로 뛰어갔다.

 

“어디 가는 거예요?”

 

채연이 진국에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봉수도 어리둥절했다.

 

세 사람은 썰렁해진 상담 부스에 앉아 진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달리 뭔가를 해볼 방도가 없었다.

 

자정 무렵 진국이 다섯 사람을 끌고 나타났다.

한 사람은 목에 명찰을 걸고 있었는데 박람회 관계자였다.

 

“봉수야, 우리 부스를 어떻게 꾸미면 좋겠냐? 그건 니 전문이잖아.”

 

진국의 말에 세 사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국을 바라보았다.

 

“송화랑 수영인?”


“이제 막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밤새 상담 부스를 꾸리느라 봉수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진국아, 그건 그거고 하나만 묻자.”

 

진국은 옷을 갈아입고 수영이와 송화를 마중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가면서 얘기해.”

 

봉수도 대충 얼굴만 씻고 진국을 따라 나섰다.

 

“채연씨랑 애란씨는 자지?”

 

“그럴 걸.”

 

진국은 호텔 앞에서 익숙한 길을 다니듯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올라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봉수는 한동안 진국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너 정말 여기 처음 오는 거 맞아?”

 

“처음이야.”

 

진국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진지해보였다.

 

“그런 네가 인부들은 어디서 구해 온 거야?”

 

“아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그 사람들 실력 A급이라는 거 알아?

가져오는 재료들도 그렇고 장비들도.

나도 미대에서 설치 작업할 때 장비들 다뤄봐서 아는데 장비들 전부 A급이었다고.

그런 장비를 네가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당연히 A급을 써야지. 그래서 A급을 부른 거고.”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네가 전화한 사람은 누군데?”

 

“내가 말한 누나.”

 

“정말로 그냥 아는 누나야?”

 

진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오해하지 마.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야.

도톤보리에서 재법 규모있는 술집을 하는데 그 누나한테 전화해서 부탁한 거야.”

 

“그런데도 처음이라고?”

 

“그래.”

 

봉수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봉수는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믿지 못할 법도 없었다.

오사카에 아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 경비는?”

 

“회사에서 나오겠지.”

 

“안 나오면?”

 

“그럼 뭐, 우리 월급으로 해결해야지.”

 

엉뚱하고 무댓뽀적인 성격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굳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진국에 대해 봉수가 전부다 알 수는 없었다.

진국이 오사카에 친한 누나가 있다는 걸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키는 걸 보면 진국의 뒤에 남다른 배경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누나는 언제 와?”

 

“음, 리허설 시작하기 전에.”

 

이번 박람회는 매일 저녁 속옷 패션쇼가 있었다.

매일 그 내용이 달랐고 그에 따라 매번 리허설을 해야만 했다.

봉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봉수도 고향인 고성에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진국이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하듯 자신도 모르는 일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송화는 봉수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안겼다.

남들 눈 따위는 의식하지 않았다.

수영도 진국에게 달려갔다.

 

“대충 말만 들었는데 진짜야?”

 

송화가 물었다. 네 사람은 오사카 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 올라탔다.

 

“그래, 해 줄 수 있겠어?”

 

봉수가 수영과 송화를 번갈아 보았다.

 

“그럼. 그러려고 왔지.”

 

송화는 신이 났다. 수영의 얼굴도 밝았다.

 

“학교는?”

 

“까짓 거 일주일 빠진다고 빵꾸야 나겠어. 안 되면 몸으로…”

 

송화가 가슴을 앞으로 쭈욱 내밀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수영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을 그렇게 해?”

 

수영이 진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국의 얼굴도 점점 밝아졌다.

 

“그러게 말이다. 회사 놈들 중에 누군가 우리 골탕 먹일려고

일본에서 온 공문 중에 중요한 부분을 빠트리고 해석한 거야.

아니면 해석하고 살짝 빼먹었거나.”

 

“정말 치사하다.”

 

“암투지.”

 

“암투?. 그런데 오빠들이 휘말렸구나.”

 

봉수는 휘말렸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경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저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시간이나 흘려 보내고

적당히 아이디어 내는 그런 회사 생활은 매력이 없었다.

 

“누군데?”

 

“몰라.”

 

“그래, 그럼 더 흥미진진한 걸.”

 

수영이 진국의 팔짱을 꼭 꼈다.

 

“호텔에 가선 이러지 마.”

 

“왜?”

 

“우리 회사 여직원 둘이 질투하니까.”

 

진국이 수영의 코를 잡아 쥐었다가 놓았다. 수영이 눈을 흘겼다.

 

“그럼 우리 둘이 자는 거야?”

 

수영이 송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도 아쉽지만 어쩌겠냐.”

 

“아, 모처럼의 휴가를 망치다니.”

 

“그러게, 연인의 품을 곁에 두고도 다가갈 수 없다니. 줄리엣이 따로 없네.”

 

송화도 과장스럽게 말했다.

 

“너희들 오사카 첨이지?”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면 매일 맛있는 거 사줄게.”

 

“오사카는 첨인데 도쿄에도 한번 갔었고 히로시마에도 한번 갔었지.”

 

“나보다 낫네.”

 

봉수가 입맛을 다셨다.

 

“요즘 대학생들 알바 해서 다들 외국 다녀. 오빤 외국 여행 안 다녀 봤어?”

 

“우린 오사카가 첨이다.”

 

봉수가 잠시 진국을 바라보았다.

 

리허설까진 1시간이 남아 있었다.


“얼른!”

 

송화는 몸을 가리고 있던 타월을 떨어트렸다.

 

“오빠 뭐해? 두 시에 나가야 한다며.”

 

봉수는 송화의 알몸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수영은 진국과 거리 구경을 나가고 없었다.

 

“오빠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송화가 봉수에게 다가들었다. 그리곤 바지 혁대를 풀었다.

 

“우, 우리 오랜만이지.”

 

“오빠 변한 거 같아? 따른 여자 생겼어?”

 

송화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봉수의 바지 벗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하긴 오빠처럼 멋있는 남자를 여자들이 가만히 놔두는 게 이상하지.”

 

“아냐. 여자는 무슨 여자.”

 

“오빠 걱정하지 마. 나 질투같은 거 안해.”

 

봉수는 오랜만에 편안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래도 옆방에 채연과 애란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적잖이 걱정이 일었다.

 

“언니들 때문에 그래?”

 

“아, 아냐.”

 

송화의 손에 의해 봉수는 금방 알몸이 되었다.

창으로 밀려드는 햇살에 두 사람의 알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오빠가 얼마나 그리웠는데.”

 

송화는 봉수는 벽에 밀어붙이고 키스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처음 망설이던 봉수도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몸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너는 꼭 이 짓 하려고 여기까지 온 사람 같다.”

 

“그럼 오빠를 만났고 모처럼 둘만의 시간이 생겼는데 가만히 있으란 말야?”

 

송화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너무 솔직한 게 맘에 걸려서 그렇지.”

 

“오빠 난 내숭 떠는 여자나 남자들 딱 질색이거든.

그리고 오빤 내숭 안 떨잖아.

그리고 오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야.

만약에 사랑만 했다면 나 이렇게 행동 안해.”

 

“그럼 존경만 하고 사랑은 안 하는 거니?”

 

송화가 봉수의 허리에 다리를 두르고 올라탔다.

저절로 봉수의 물건이 미끈, 송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존경하는 건 확실한데 사랑은 아직 잘 모르겠어.”

 

송화가 머리를 봉수의 어깨에 묻었다.

봉수는 오랜만에 송화를 안아 그런지 몸 전체가 떨렸다.

 

벨이 울렸다.

 

“모시모시?”

 

“송화씨 나 노애란인데요.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송화는 그때까지도 봉수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분 있다가 제가 그 방으로 갈게요.”

 

“어디 아파요?”

 

“아니에요. 아무튼 10분 있다가 갈게요.”

 

송화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일본어 할 줄 알아?”

 

“기본.”

 

송화는 절정에 이르렀는지 봉수의 몸 위에서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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