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감성기 7
“저희들이 당연히 오사카에 갈 줄 알았습니다.”
중경이 차갑게 굳은 강일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 앞에는 싱싱하고 붉은 참치 회가 놓여져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진국이나 봉수가 뭐 오성 회장의 손자라도 된답니까?”
“농담하나?”
강일환은 자기 술잔을 들었다.
“사장님께서 자기 세력을 만드시려는 모양이지요?”
“그런 애송이들을 뭐에 쓰게.”
강일환은 샤케 잔을 들어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사장님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항간에는 어느 날 갑자기 오성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왔다고 하던데요.”
중경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갈라졌다.
“왜? 낙하산이 기분 나쁜가? 그것도 자기 능력이야.”
“그게 어떻게 능력입니까?”
“모르는 소리. 오성에서 우리가 떨어져 나올 때 주요 간부사원들은 대부분 A급이었어.
그리고 오성, 그렇게 호락호락한 회사가 아냐. 거기 늙은 호랑이는 말야.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함부로 회사 맡기고 그런 사람 아니거든.”
“어쨌든 낙하산은 낙하산이죠.”
“허긴….”
중경이 고개를 돌려 술잔을 비웠다. 강일환이 잔에 술을 따랐다.
“저희 사장님은 오성 회장님의 몇 쨉니까?”
“몇 째 냐니? 큰손자야.”
“언론에 나오시는 거 보면 젊어 보이시던데 손자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나랑 동갑이야.”
강일환은 참치 머리 살을 집어 와사비 간장에 찍었다.
회에 와사비 덩어리가 묻었는지 눈물이 나도록 매웠다.
‘와사비 같은 놈!’
강일환은 사장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런 말을 되뇌였다.
“사원들 몇 명이 수시 입사한다는 말이 있던데요.”
“우리도 신입사원 뽑는 체제가 이제 바뀌었어. 오성을 따라가고 있지.”
“혹시 오성이 망하면 우리도 망하는 겁니까?”
중경의 말에 강일환이 껄껄댔다.
“자넨 오성이 망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나라의 최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그 오성을 나라가 망하도록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해?”
강일환이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나라가 망한다면 없어질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오성은 그 규모가 훨씬 커.
우리는 거기에 숨겨진 문어발이고.
나조차도 오성의 진짜 계열사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까.”
강일환의 눈이 빛났다.
중경은 그의 눈빛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나송림은?”
“가이아에 납품 할 속옷 디자인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번 일 정말 수고했어. 나중에 따로 사장이 특별보너스 지급할 거야.”
“신입 애들은 어떤 애들입니까?”
“아무튼 쟁쟁한 놈들이야. 자네들도 바짝 긴장해야돼.”
“이젠 입사 기수고 뭐고 없네요. 사원들이 수시로 입사하니 말입니다.”
중경은 입에 털어 넣은 술맛이 달다고 느꼈다.
“말 달리자, 말 달리자~~~”
중경이 마이크를 잡고 악을 썼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한 터라 기어이 18번을 불렀다.
곁에는 야들야들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탬버린을 들고 박자를 맞추었다.
강일환은 곁에 앉은 여자와 속닥거리며 웃고 있었다.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좀 고만 타라!”
강일환이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중경을 자리로 불러들였다.
중경은 얼마나 악을 썼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중경이 자리에 앉자 여자가 착 달라붙었다.
술에 취한 때문인지 실장 앞인데도 중경은 별로 껄끄럽지 않았다.
“좀 무드 있는 노래 부르면 안 되냐?”
“형님도 참, 이런 데 왔으면 신나게 놀아야죠.”
중경은 기어이 강일환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취한 강일환도 그런가 보다 했다.
“얘네들이 심심해 하잖아.”
강일환이 곁에 앉은 여자의 치마를 들추었다.
“실장님!”
여자들도 적당히 취해 있었다.
여자는 치마 속에 아무 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곰슬곰슬한 체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여자가 치마를 쓸어 내렸다.
강일환이 깔깔거렸다.
“형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왠지 깍두기 분위기네.”
중경 곁의 앉은 여자가 포크로 메론을 찍어 건네며 말했다.
“잡화 기획실 차 실장님 말입니다.”
“실장은 무슨 실장, 실장 대우지.”
강일환은 입을 삐죽거렸다.
“어쨌든 차 실장님 말입니다.
실장님 귀국하신 뒤론 완전히 꼬리 내리고 다니시는데 형님한테 책 잡힌 거 있습니까?”
“그 친구 여자나 밝힐 줄 알았지. 실력이 없잖아. 실력이.”
“그런데 요즘처럼 살벌한 때에 어떻게 살아 남았죠?”
강일환이 빈 잔을 들자 여자가 재빠르게 양주를 채웠다.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털어 넣자 여자가 육포를 찢어 강일환의 입에 넣어주었다.
강일환은 제법이라는 듯 그녀의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다.
“오성에서 왔으니까. 오성 회장 성이 뭔가?”
“회장님요? 차일도니까…… 차 실장님도 그러니까…….”
“먼 친척이야. 어쩔 수 없이 이리로 보낸 사람인데 머잖아 떨어져 나갈 거야.”
“그래도 내부에서는 힘께나 쓰시지 않습니까?”
“모델들 뽑을 때나 그렇지. 그래도 차 실장이 여자 보는 눈은 있거든.
단지 여자 보는 눈만 말야.”
강일환이 소리 높여 웃으며 곁에 앉은 여자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여자가 몸을 비틀었다.
“니들 2차 갈까?”
“어머, 실장님. 큰일 날 소리하시네.
걸렸다 하면 실장님도 벌금이 2백만원이에요.”
“그래요, 저희도 2차 나가야 돈 좀 만지는 데 그게 아주 사람 밥줄을 막아 놨다니까요.”
여자들이 새로 만들어진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성토를 했다.
“다 방법이 있지?”
“있죠.”
중경의 곁에 앉은 여자가 혀를 날름 내밀었다.
강일환은 룸에 딸려 있는 화장실로 여자와 함께 들어가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빠, 그나마 이게 싸고 나은 거야. 밖으로 나갔다 하면 일단 위험을 감수해야 하거든.”
화장실에서 여자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냥 안 하면 되지.”
“오빠두 참, 우린 테이블 티씨 만으로 못 살아.”
여자가 중경에게 더 바짝 다가들었다.
그녀는 중경의 손을 잡아 자신의 사타구니 안으로 끌어들였다.
문득 해수와 나송림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 우리 오빤 보수맨인가 봐?”
“보수맨?”
“그래, 보수적이라고.”
중경은 피식 웃고 말았다.
화장실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신음소리가 거칠게 흘러나왔다.
술에 취했던 중경은 강일환이 화장실로 들어간 뒤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나라에서 막는다고 방법이 없을까.”
“하긴 뭐든 다 방법은 있게 마련이지.”
“이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예요.”
여자가 가슴을 들썩거리더니 브래지어 속에서 콘돔을 꺼내 보였다.
술 마신 자리에서 즉석 섹스를 한다, 현찰만 받는다.
단속을 강화해도 들춰낼 방법이 없을 터였다.
아예 전국에 널려 있는 룸싸롱이나 단란주점을 모두 없애버리지 않은 다음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설령 전국의 홍등가를 없애고 룸싸롱을 없앤다고 해도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중경은 인류가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안 사라지지.”
“너도 그렇게 생각 하냐?”
“그럼, 남자들이 세상을 뭔 낙으로 사는데.”
“그런 거 없이도 잘 사는 남자들 있어. 하고 싶으면 마누라 있잖아.”
“오빠는 정말 보수맨이야.
나 같아도 한 남자랑 평생 섹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의 신음이 한없이 올라갔다.
그녀의 감창 소리가 룸 안을 가득 메웠다. 중경은 출입문 쪽을 돌아다보았다.
“오빠 걱정하지마. 여긴 방음 캡이야.”
중경은 차가운 물을 찾았다.
여자는 룸 안에 있는 소형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물 잔에 담고 물을 따랐다.
차가운 물을 들이켜자 술기운이 모두 달아나는 듯했다.
강일환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의 볼이 약간 상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와 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던 여자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소파로 와서 앉았다.
두 사람이 걸을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오빠, 뭐해!”
중경 곁에 앉은 여자가 팔을 잡아끌었다.
강일환은 모른 척 곁의 여자와 술잔을 기울였다.
‘여자 밝히긴 실장님도 차 실장님 못지 않습니다.’
중경은 여자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뭐해? 얼른 벗어!”
여자는 세면대를 잡고 치마를 들춘 후 엉덩이를 내보였다.
“그냥 했다고 하자.”
“실장님한테 찍힐 걸.”
여자가 눈을 흘기며 중경을 허리춤을 잡았다.
강일환은 부하직원 앞에서 거리낌없이 행동했다.
중경이 여자를 마다하면 그건 벽을 쌓는 일이었다.
중경은 어쩔 수 없이 혁대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여자는 콘돔을 씌우기 위해 손으로 중경의 물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강일환의 사무실 문이 와락 열렸다. 차 실장이었다.
차 실장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서가 커피 두 잔을 내왔다.
강일환이 서류를 접었다.
“귀하신 몸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강 실장님, 이거 이래도 되는 겁니까?”
강일환은 적잖이 놀랬다.
‘강 실장님이라?’
평소 차 실장은 강일환을 그냥 실장이라고만 불러온 탓이었다.
“디자인 팀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우리 디자인 팀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어떻게 하와이안 시리즈 광고 모델을 결정하는 일에 제가 빠질 수 있는 겁니까?”
강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에 사장님하고 미팅이 있을 겁니다.
그때 부르려고 그랬지요.”
“그래도 그렇지. 지금 누가 내정 됐습니까?”
“홍라라라고 아시죠?”
강일환이 자신의 자리에서 나와 차 실장 앞 소파에 앉았다.
“홍라라라? 아, ‘건드려 주세요’라는 화장품 광고에 나왔던 애 말이죠?”
“맞습니다.”
차 실장의 눈이 빛났다.
“그래, 언제쯤 미팅이 있을 예정입니까?”
“오후에 미팅이 있습니다.”
“걔도 옵니까?”
“내일 저녁에 일정이 잡혀 있는데요.”
“강 실장님, 아니 강 부장님.
사실 직함이야 실장이지만 부장님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뭐 우리 회사야 전무가 없으니 전무라고 불러도 되겠구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강일환은 차 실장이 아직 자신에게 할 말이 남았다는 걸 느꼈다.
“어쨌든 말입니다.
가이아 납품하면서 사이버 쇼핑몰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홈쇼핑에도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설 거라고 하던데, 뭐 아는 것 좀 없습니까?”
사이버 쇼핑몰의 대대적인 보수는 이미 논의되어 왔던 문제였다.
보다 자극적으로 만들어 여성보다는 남성이 들르는 사이버 쇼핑몰로 운영하자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었다.
여성의 속옷을 남성이 사주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내자는 계산이었다.
그 일은 이미 진행이 되었고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홈쇼핑에 공격적으로 판매에 나서기로 했다는 건 사장과 강일환만이 아는 이야기였다.
만약 차 실장이 알고 있다면 사장의 입을 통해 누군가 알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차 실장이 들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비밀일 이유도 없었다.
“아, 아무래도 우리도 이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강 실장님,
아니 강 부장님이 저 좀 홈쇼핑 담당으로 천거 좀 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강일환은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어쨌든 실장님도 알다시피 제가 누구보다 여자 보는 눈이 있잖습니까.
아, 우리 속옷을 입을 얘들도 아무나 쓰면 되겠습니까?
요즘 러시아 애들 쭉쭉빵빵한 거 아시죠?
그래도 우리 회사 옷에 맞는 애들은 따로 있습니다.
아무래도 실장님이 천거를 해주시면 모양새가 좋지 않겠습니까?”
그가 원한다면 그런 자리쯤은 충분히 꿰찰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건 회사로 보면 허드렛일이었다.
강일환은 그가 갓 들어온 신입사원들보다 한심해 보였다.
“어쭈, 전속이라고 함부로 지각해도 되는 거야?”
징글징글 박 과장이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옷걸이로 채연에게 삿대질을 했다.
진국은 박 과장과 채연을 번갈아 보았다.
“죄송합니다. 지하철이 고장나는 바람에.”
그 자리엔 봉수와 노애란도 함께 있었다.
오사카에 가져갈 속옷들을 선별하고 고르고 연구하기 위한 자리였다.
“계약직이다, 그거지.”
박 과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열을 올렸다.
한번쯤 반항을 해볼 법도 한데 채연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채연은 그가 그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한번 만나 주었다면
그가 이렇게 매몰차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정적으로 돈이 나오는 이 자리를 때려치울 수도 없었다.
“야, 이거 우리 출발부터 삐그덕거리는 거 아니냐?”
진국이 봉수에게 귓엣말을 했다.
“야, 좆진국!”
“네?”
박 과장이 진국의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진국이 봉수와 애란을 쳐다봤다.
“과장님, 흥분하지 마세요. 과장님 말씀이 백 번 옳다고 그랬으니까요.”
노애란이 나서서 대신 대답을 했다.
진국은 멀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진국은 그 순간에도 그녀가 조금만 날씬해도 남자들에게 인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요?”
박 과장이 채연에게 자리를 가리켰다.
그녀가 앉는 자리는 무대처럼 동떨어져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박 과장은 괜한 고집을 부렸다.
“으이, 저 꼴통.”
진국은 다시 낮게 중얼거렸다.
“들어 임마!”
봉수가 그의 옆구리를 쳤다.
“야, 봉다리! 넌 또 뭐가 불만이야?”
박 과장이 이번엔 봉수를 걸고 넘어졌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얼른 시작했으면 좋겠다구요.”
2년 이내에 제작된 속옷의 선별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 오사카에 출품할 속옷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다.
채연은 수없이 속옷을 갈아입고 무대 위에 섰다.
박 과장은 옷걸이를 들고 그녀에게 방향 지시를 했다.
그때마다 채연은 말없이 뒤로 돌았다가 옆으로 서기도 했다.
박 과장은 물론 노애란과 봉수, 진국도 꼼꼼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봉수와 진국이 입사하기 전에 만든 옷들도 있었다.
오전 내내 3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졌다.
박 과장의 외골수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창조적인 감각은 없지만 옷을 보는 눈은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그와 단짝인 차 실장이 나설 법도 한데, 차 실장은 직접적인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점심 먹고 나서 오후에 계속 하지.”
박 과장이 팜플랫을 들고 나갔다.
무대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채연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채연씨, 그러려니 해요. 박 과장님이 그래도 사람은 좋으니까.”
나애란은 속옷을 입고 풀이 죽어 서있는 채연이 어깨를 어루만졌다.
“정말 때려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채연이 소주잔을 테이블 위에 부술 듯 내려놓았다.
“채연씨, 나도 한동안 매일 사표 들고 다녔어요.
차 실장하고 박 과장 같은 사람들 여사원들 쳐다보는 눈길이 얼마나 징그럽다구요.”
노애란이 술병을 들고 채연의 잔에 따랐다.
“아니, 노 선배를 그렇게 본 적도 있었나요?”
진국이 약간 장난기 섞인 말로 물었다.
“진국씨 지금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이렇게 살이 좀 쪘지만 신입 땐 날씬했어요.”
의외로 농담을 가볍게 받아넘겼다.
노애란의 털털한 성격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깔끔한 면도 엿보이고…. 그러면서 의지도 강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봉수의 마음이 끌렸다.
송화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애란에 비하면 송화는 그야말로 병아리였다.
“진국씨가 몰라서 그래요. 애란씨가 얼마나 날씬했다구요.”
채연이 거들고 나왔다.
“그래요?”
“애란씨가 처음 입사했을 때 남자 직원들이 애란씨 쳐다보느라고 일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진국은 채연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안 믿어지죠?”
“채연씨가 그렇게 말하면 믿어야죠.”
“두 사람은 모를 거예요. 애란씨가 직접 속옷 모델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허 참, 그런 말을 뭐 하러 해요.”
애란이 멋쩍은 듯 웃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때 모델들을 태우고 오던 에이전시 차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노애란씨가 속옷을 입었죠.
외국 바이어들이 있는 자리였거든요.
그때 바이어들이 노애란씨 때문에 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니까요.”
진국은 그녀의 몸매를 곁눈질로 다시 한번 훔쳐보았다.
“과거는 과거고 자, 자. 건배나 합시다.”
애란이 잔을 들었다.
진국과 봉수도 같이 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부딪혔다.
“혹시 소문 못 들었어요?”
잔을 내려놓는 채연의 얼굴은 그런 대로 많이 밝아져 있었다.
“무슨 소문?”
“우리 회사에 오성 그룹 막내아들이 있다는 말 말이에요.”
“차 실장은 아니겠죠?”
“그 사람은 먼 친척이구요.”
“회사가 아주 족벌 판이구만.”
진국이 투덜댔다.
“사장하고 차 실장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입니까?”
봉수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냥 소문이에요. 누군지 알기만 하면 그냥 몸으로 대쉬를 하는 건데.”
채연이 가슴을 쭉 내밀었다. 그리곤 낄낄거렸다.
“내가 미쳤지, 회장 아들이 나 같은 년 거들떠보기나 하겠어요.”
그녀는 금방 풀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