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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멸망 6

오늘의 쉼터 2014. 11. 27. 15:44

제33장 멸망 6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한동안 정답게 우어하며 그간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무는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 왕자를 모시고 거사를 도모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자네야말로 고구려의 둘도 없는 충신이네!”

검모잠은 그런 연무를 크게 치하하다 말고 갑자기 불쑥 궁금증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디서 신통 술을 배웠던가?

내가 여기에 올 것을 어찌 알고 기다리고 있었나?”

“낸들 어찌 알았겠나. 왕자께서 자네가 올 것을 미리 말씀 하셨다네.”

연무가 점점 모를 소리만 하니 검모잠 으로서는 더욱 기가 찰 노릇이었다.

“수상한 일이구먼. 안승 왕자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계셨으나 설인귀를 만나신 뒤에 궁모성(窮牟城)으로 거처를 옮기셨네.”

“설인귀를 만나셨다면 당에서도 왕자가 이곳에 계신 줄을 알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지.”

“하면 어찌 거사를 하려구?”

“오히려 거사를 위해 그리 하셨네.”

연무는 궁금해 하는 검모잠 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소상히 설명했다.

“거사를 도모하려면 어차피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는데 만일 왕자께서 목멱산에 계셨다가

차후에 발각이라도 난다면 어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왕자께서 스스로 도호부를 찾아가 당에 복종하는 흉내를 내고,

이곳에선 따로 군사들을 모집해 거사를 준비한다면 비록 사전에 발각이 나도 왕자께서

화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네.

다행히 설인귀는 왕자께서 자진하여 찾아간 것을 크게 환영하여 아무런 의심 없이

패수 남단의 궁모성을 맡겼으니 성곽 하나를 공으로 얻은 셈이 되었네.

우리는 이제 여기서 차근차근 거사를 도모하였다가 날짜를 정해 도호부를 치고

일이 성사되면 왕자를 뫼 셔와 임금으로 받들면 그만일세.”

“안승 왕자는 과연 임금의 재목인가?”

검모잠이 묻자 연무는 대답을 미루고 대신 인사를 시켜줄 사람들이 있다며

그를 동황성 안의 옛 궁궐로 데려갔다.

그곳에선 고하(高河), 뇌독(惱督), 백포정(白布精), 손우지(孫右志), 다식(多式)과 같은

알 만한 장수들이 모여 있다가 검모잠을 보자

한결같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와 어깨를 얼싸안았다.

고하는 동부욕살을 지낸 노장이요,

뇌음신(惱音信)의 아들 뇌독과 손 우지는 검모잠과 함께 북방을 누비던 장수들이었고,

다식이며 백포정 등은 당과 화친을 주장하던 장수들이었다.

가히 노소도 없고, 알력과 파벌도 없고, 오로지 사직의 재건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재회의 반가움이 가시고 나자 연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처럼 한뜻으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안승 왕자의 인품과 자질에 감복하여

그분을 따르고 섬기기로 마음을 정한 때문일세.”

하나같이 걸출한 옛 동료들을 만난 검모잠은 끓어오르는 혈기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 비록 왕자를 친히 뵙지는 못하였으나 더 이상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오로지 국가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잇는 일에 초개와 같이 한 목숨을 바칠 따름일세!”

이리하여 검모잠은 목멱산 산채에 합류해 멸망한 국가의 재건을 도모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들은 소집한 군사들을 폐궁에서 훈련시켜 거사에 대비하는 한편 설인귀가 거느린 당군 2만과

대적할 계책에 골몰하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의기와 혈기가 충천한들 기껏 기백의 군사로 2만이나 되는 당군을 물리치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무렵 당주 이치는 도호부에 칙령을 내려 내지의 3만 8,300호, 물경 20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요하 동쪽의 험지 여러 주에 강제로 이주시키고 그 중의 일부는 당으로 끌고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주민들을 분산시킴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를 반란의 움직임을 사전에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당나라 조정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살던 곳을 떠나게 된 백성들은 하늘을 우러러 당의 처사를 원망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바람에 거사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도탄에 빠져 있던 목멱산 산채에서 하루는 책사 백포정이 의견을 내었다.

“당과 대적하기란 갈수록 힘들게 되었소.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도성을 지키는 1만 당군을 상대하기에도 군사와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오.

그런데 풍문에 듣자니 신라왕 법민은 의표가 단아하고 지략이 있으며 인품 또한 후덕하여,

비록 멸망한 나라의 백성일지라도 제 나라 신민들과 차별 없이 대하고, 창칼을 마주하고

싸운 적국일지라도 그 사직이 끊어지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고 합디다.

그는 우리보다 원한이 깊은 백제가 망하였을 때도 군사를 내어 유민을 보살폈을 뿐 아니라,

지난 병인년(666년)에 개소문의 아우 정토(淵淨土)가 조카 남생에게 쫓겨 12성, 7백 호, 3,500명을

거느리고 24명의 종사관과 더불어 투항했을 때도 의복과 양식은 물론 원하는 곳에 집과 땅을 하사하고

군사까지 파견하여 그들을 지켜주었다고 들었소.”

천하가 바뀌니 사람 또한 그러한가.

백포정은 온사문, 다식과 더불어 세상이 알아주던 남진파 신하였다.

그의 입에서 신라를 두둔하는 말이 나온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니 차제에 신라왕 법민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소.”

백포정의 의견에 다식마저 공감을 표시했다.

“나 또한 백장군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소.

당인들은 전장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철천지원수처럼 무자비하게 죽였을 뿐만 아니라

잡아간 포로들도 마소보다 더 함부로 취급하였지만 신라에서는 삼한이 일가(一家)라며

모두 은전을 내려 농사를 짓고 살게 하였다니 아무래도 당나라 족속들보다는 신라가

우리를 대우하는 것이 한결 윗길이오.

속설에 살년(殺年)이 들어야 인심을 알고 궁해봐야 참 벗을 얻는다 하더니

나라가 망하고서야 당과 신라의 차이를 알게 된 셈이외다.

이제 삼한 가운데 백제와 우리는 망하고 홀로 신라가 남았으니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한다면 아주 묵살하지는 않을 것이오.”

두 사람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 이는 국내성에서 망국지변을 당한 장수 손우지 였다.

 

이때까지도 압록수 북방의 11개 성 들은 함락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손우지는

그들과 손을 잡고 사직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우리를 망하게 한 원흉인데 어찌 그곳에다 도움을 청하겠으며,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양국이 짝자꿍이가 되어 지내는 것이 마치 순치보거(脣齒輔車)와 같고,

오래 살을 맞대고 산 내외와 같은데 당을 배신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줄 리가 만무하오.

공연한 짓이니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연무가 그런 손우지를 보며 말했다.

“손공의 우려하는 바도 일리는 있으나 지금 신라와 당의 사이는 겉과 속이 같지 않소.

백제가 망한 직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그들의 동맹은 우리나라가 망하고 나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

당은 이제 신라까지 병탄해 삼한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 하니

이를 알아차린 신라가 어찌 가만히 있겠소?

우리가 당에 대적하려고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무슨 좋은 소식이 있지 싶소.”

그러자 노장 고하가 입을 열었다.

“나당 양국은 아직 혈전을 벌일 만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으므로 설사 신라의 도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1만 당군을 상대로 남경(평양)을 되찾기란 어려울 게요.

그러니 만일 신라가 도움을 준다면 우선 안승 왕자를 임금으로 옹립하고 무너진 사직부터

일으켜 세우는 것이 어떻겠소?

도성이야 어딘들 어떠하오?

7백 년 사직이 흘러오는 동안에도 도성은 여러 번 바뀌었으니

절해고도를 가더라도 군장을 잇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 하외다.”

제장들은 대충 고하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들은 우선 왕자 안승이 가 있는 궁모성에 집결한 뒤 패수 남쪽을 공략하여 수중에 넣기로 하고,

일변으론 사람을 금성에 파견해 군사와 물자를 청하며 신라의 의향을 떠보기로 하였다.

이에 처음에는 백포정이 신라로 갈 뜻을 밝혔으나 그는 군사를 부리는 데 중요한 사람이라

한동안 격론 끝에 공평하게 제비를 뽑기로 하였더니,

당첨된 이가 다름 아닌 고하였다.

나머지 장수들이 고하가 연로한 것을 들어,

“제비를 다시 뽑도록 합시다.”

하니 고하가 웃으며,

“그러면 애당초 제비는 무엇 하러 뽑았소?”

하고서,

“지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더 중하고 덜 중한 사람이 없으니 정한 대로 하는 것이 상책이오.

더구나 나는 비록 촌수는 멀지만 왕실의 먼 예손이라 하늘의 뜻이 나로 하여금

소임을 맡게 한 것이 틀림없소.”

말을 마치자 그날로 한 필 말에 올라 금성을 향해 남향하였다.

고하가 떠난 후 목멱산 장수들은 전국 각지에서 소집한 7백여 명의 군사를 궁모성에

다시 모이도록 하고 자신들도 말을 달려 왕자 안승을 찾아갔다.

설인귀에게 궁모성 성주 자리를 얻어 성안의 3천여 호를 다스리며 기회를 보고 있던 안승은

목멱산에서 달려온 장수들을 보자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크게 반가워하였다.

그는 특히 검모잠 앞에 이르러,

“모잠 장군께서는 그간 무양하셨소?”

하고 안부를 물었는데, 검모잠이 시초에는 화려한 채색 옷에 흰 비단으로 관을 만들어 쓰고,

금테를 두른 가죽 요대를 찬 왕자의 늠름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한참만에야

그가 전날 도성의 주막에서 만났던 젊은이임을 깨닫고,

“어이쿠, 이게 대관절 어찌 된 영문입니까?”

다짜고짜 넙죽 맨땅에 엎드렸다.

“신이 어리석고 아둔하여 존귀하신 왕자를 알아 뵙지 못하였으니 그 죄를 무엇으로 갚으리까!”

검모잠이 전날 함부로 굴었던 일을 사죄하자 안승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내가 백면서생으로 그대를 만났으니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당연한 일이지 무슨 허물이 있겠소?

장군은 너무 괘념치 마시오.”

안승은 친히 검모잠을 일으켜 손등을 어루만졌다.

“내게 비록 덕은 없으나 시조 대왕의 음덕과 천지신명의 보살핌으로 그대와 같은 장수를 얻었으니

과연 무엇을 주저하며 누구를 두려워하겠소?

나는 이제 혼신의 힘을 다해 사직의 재건을 도모하려 하거니와,

장군은 부디 나를 도와 요동에서 당군을 몰아내고 천년의 거룩한 역사를 다시 이 땅에 잇도록 해주오.”

안승이 사뭇 정색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하자 감격한 검모잠은 홀연 눈물을 글썽이며,

“신이 비록 불초하고 용렬하오나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될 때까지 견마의 도리를 다하겠나이다.”

하고 굳게 맹세했다.

안승은 성주의 거처로 자리를 옮겨 장수들로부터 사정 얘기를 전해 듣자,

“패수 남단은 도성에 비해 당군의 방비가 허술한 편이니

신라가 원군을 보내 우리를 돕기만 한다면 능히 수복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런데 신라왕 법민은 계산이 빠르고 워낙 빈틈이 없는 사람인 데다

아직은 당과 우호 하여 지내기를 원할 테니 과연 군사를 내어 우리를 도우려고 할지 의문이오.

내가 짐작컨대 나당의 사이가 비록 금이 가서 예전과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신라는 당을 상대로 먼저 군사를 내지 않을 것이오.”

하며 난감해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당나라의 처사를 말하며,

“앞으로 갈수록 거사를 도모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라 시일을 더 미룰 수가 없습니다.”

하자

안승이 말하기를,

“이곳 궁모성에 3천 호가 살고 있는데 내가 성주로 와서 은밀히 알아보았더니

대부분 당의 처사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 동원령만 내리면 적잖은 장정들을 끌어 모을 수 있지 싶소.

이제 고하 장군이 신라에서 오거든 얘기를 들어보고 만일 사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거사를 일으킵시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가 당에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정작 사직의 재건을 천하에 공포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올지 알 수가 없소.”

하여 장수들이 모두 안승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금성에 간 고하가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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