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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멸망 3

오늘의 쉼터 2014. 11. 26. 16:49

제33장 멸망 3

 

 

 

“게 섰지 못하겠느냐! 달아나면 화살을 쏠 것이다!”

군사를 이끌고 온 관리가 눈알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곧 두 패로 갈라져서 담벼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쏴라!”

관리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활을 든 궁사 하나가 번개같이 시위에 살을 먹여놓았고,

뒤이어 젊은이 하나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담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는 목덜미에 살을 맞고 사지를 부들부들 떨어댔다.

“에구, 저를 어째!”

“무슨 대역죄를 지었기에 저러나?”

“쏘자면 다리에나 대고 쏘지 우정 목에 살을 놓아 죽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려구?”

주막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술맛을 잃고 웅성거렸지만 궁사는 들은 척도 아니하고

다시 살을 먹였다.

보다 못한 검모잠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당군들 에게 달려가려 하자

맞은편의 젊은 사람이 황급히 옷자락을 붙잡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그대로 계시오. 나서면 일이 더 어려워집니다.”

젊은 사람은 검모잠을 향해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는데 이제까지와는 달리

그 모습에 사뭇 범상치 않은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쫓기던 일패는 무사히 담을 넘어 달아났지만 마지막으로 담장에 올라섰던

젊은이 하나가 다시 등에 화살을 맞았다.

관리는 허리에서 칼을 뽑아 들고 살을 맞은 두 청년에게 달려갔다.

“이놈! 격문을 지은 놈이 누구냐!”

관리가 바닥에 누워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살을 맞은 청년들은 대답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먼젓번의 청년은 이미 절명한 뒤였고, 뒤에 나동그라진 사람도 등에 맞은살이

앞가슴을 관통해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어서 불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구족을 찾아 멸할 것이다!”

관리가 험상궂은 얼굴로 다그쳤지만 비스듬히 누운 청년은

피 묻은 입술을 벌리고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 나라의 조의를 뭘 루 보느냐?

목숨 따위가 아까웠더라면 아예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산곡간의 바람소리로 격문을 짓고

잠든 영걸의 혼을 일깨워 너희가 내 땅에서 물러가는 순간까지 괴롭힐 것이니 그리 알라.”

말을 마치자 혀를 깨물어 그대로 자결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주막 안의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알아차린 관리는 잠시 어쩔 바를 몰라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군사들을 향해,

“윗 전에 알려야 하니 이 두 놈을 수레에 실어라.”

하고는 총총히 주막을 빠져나갔다.

당군들이 죽은 청년 둘을 개처럼 끌고 사라진 뒤에 검모잠의 맞은편에 앉았던 젊은 사람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자네는 어찌하여 나를 붙잡았는가?”

검모잠이 궁금히 여겨 묻자 옥골선풍의 젊은이는 크지 않은 소리로,

“보아하니 힘깨나 쓰시던 양반인 듯한데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나섰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찌하오?

이게 어디 단번의 욱기로 풀 일이오?

저 젊은이들이야 사정이 여의치 않아 화를 당했다지만 나리까지

사서 목숨을 잃을 건 없지 않소?”

하고서,

“대관절 무슨 격문을 지었는데 사람을 저리 만드는지 어디 구경이나 하러 갑시다.”

하였다. 젊은이에게 대단한 사연이라도 있을 줄 알았던 검모잠은 일순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자네가 나를 염려하여 오직 그 때문에 붙잡았더란 말인가?”

“그렇소.”

“예끼 이 사람, 이 검모잠이 아무리 맨손이라지만 그깟 당나라 졸개 몇 놈을 당하지 못하겠는가!”

그는 기가 찬다는 듯 제 가슴을 쿵쿵 쥐어박다가,

“이제 보니 자네야말로 여간 우스운 사람이 아닐세!

어쨌거나 뒤에 살을 맞은 불쌍한 청년은 자네가 죽인 것이나 매한가지니 그리 알게나!”

퉁명스레 쏘아붙이고는 다시 몇 사발의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랬거나 말거나 젊은이는 신발을 찾아 신고 평상을 내려섰다.

“격문 구경을 아니 가시겠소?”

“자네나 많이 가게. 나는 벌써 보고 왔네.”

“저 사람들이 지은 격문을 보았단 말씀이오?”

“누가 지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소경이 아닌 다음에야

장안에 빨래처럼 널린 격문을 보지 못할 턱이 있나?”

“무슨 특별한 내용이라도 있습디까?”

젊은이가 묻자 검모잠은 그제야 격문의 내용이 떠오른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한 구절이 하나 있긴 하였지.”

“그게 무엇입디까?”

“나라 사람으로 망국의 울분을 가진 자는 삼월 삼짇날

궁성의 신묘(神廟:시조 대왕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모자를 모신 곳) 제사에 참례하라는

소리가 있더군 그래.

그런데 제사는 궁성에서도 있지만 신묘가 어찌 궁성에 있는가?

그것도 수상한 일이거니와 날짜와 장소를 만천하에 공시하면 설령 뜻이 있다 한들 뉘라서 가겠나?

당군이 먼저 가서 오라를 들고 기다릴 게 뻔한데.”

검모잠의 얘기에 젊은이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목멱산(木覓山)으로 모이라는 얘기올시다.”

“목멱산?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그러자 젊은이는 검모잠 가까이 다가와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방금 나리의 말씀처럼 격문을 쓴 자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집결할 장소를

버젓이 공시할 까닭이 있소?

그러니 그 속에는 반드시 숨은 뜻이 있을 터인데,

고래로 삼월 삼짇날은 우리네 명절이요,

그날 군신들이 모여 사냥을 하고 제사를 올린 곳은 낙랑의 언덕이니

패수(대동강) 북방은 아닌 게요.

게다가 목멱산에는 전날 국강상왕(고국원왕)때 궁성으로 쓰던 동황성(東黃城)이 있으니

궁성의 신묘라면 목멱산의 신묘를 일컫는 게 틀림없소.”

젊은이의 설명을 듣고 나자 검모잠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신통하구먼. 나는 눈으로 보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자네는 어찌 남의 말만 듣고도

그처럼 훤히 아는가?”

검모잠은 은근히 탄복하며 새삼스럽게 젊은이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나라가 망한 뒤에 여러 사람이 흰색으로 조복을 지어 입고 남녀노소 모두

거의 치장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것만 가지고야 특별하달 수는 없었지만

단아한 이목구비며 헌칠하고 건장한 체구,

어딘지 모르게 기품과 위엄이 서린 듯한 몸가짐 따위가 예사로운 여염의 자제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검모잠이 막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순간 청년은 주모를 불러 술값을 치르고,

“하면 천천히 오시오. 나는 이만 바쁜 일이 있어 가봐야겠소.”

하며 작별 인사를 건네더니,

“나리의 존함이 검모잠이라 하셨지요?

나중 삼짇날에 짬이 나거든 목멱산으로 와보오.

보아하니 나리도 당의 처사에 어지간히 격분한 모양인데

혼자서 나대다간 제아무리 항우장사라도 개죽음만 당할 뿐이오.”

제 할말을 마치자 미처 붙잡을 겨를도 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검모잠은 청년이 가고 나서도 얼마간을 더 주막에 머물며 차고앉은 말술을 모두 비웠지만

술이 들어가면 갈수록 정신은 맑아지고 속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눈에서는 방금 전에 살에 맞아 죽던 두 고구려 젊은이의 처참한 최후가 어른거리고,

그 위로 수백의 근위병에 둘러싸여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성내를 순시하던

설인귀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곤 했다.

그가 설인귀를 만난 것은 꼭 10년 전이었다.

그때 그는 온사문(溫沙門) 장군의 부장이 되어 싸움에 나갔다가 당시 우령군 중랑장이던

설인귀의 군사들과 횡산서 맞닥뜨렸다.

설인귀는 한 해 전에도 영주도독 정명진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쳐들어왔다가

개소문의 귀신같은 책략에 휘말려 소득 없이 돌아간 일이 있었다.

검모잠은 설인귀의 군사들을 횡산 협곡 속에 몰아넣고 미리 설치한 복병을 내어 크게 무찔렀다.

혼비백산한 설인귀가 부하의 옷을 빌려 입고 허겁지겁 내빼는 것을 미리 퇴로를 지키고 섰던

검모잠이 한 패의 군사를 이끌고 가로막았다.

“네 이놈, 인귀야! 변복을 하고 도망가는 몰골이 실로 가관이구나!

그러고 달아나면 누가 모를 줄 알았느냐?”

그는 마상에서 안색이 이미 하얗게 변한 설인귀를 향해 준절히 꾸짖었다.

“너는 과히 좁지 않은 네 나라를 두고 어찌하여 번번이 남의 땅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며

소란을 피우는가!

천제(天帝) 해모수의 후예 검모잠이 여기서 쥐덫을 놓고 기다린 지 오래다!

말에서 내려 항복을 하든가, 굳이 도망을 가려거든 목을 두고 가라!”

궁지에 몰린 설인귀는 대꾸할 형편조차 되지 못했다.

곧 검모잠을 향해 칼날을 세워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이에 양국 군사들 간에는 피를 튀기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검모잠은 설인귀를 상대로 족히 20여 합을 겨루었으나 쉽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설인귀를 따라온 당군 수십 명이 검모잠의 군사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위급함에 빠진 설인귀가 애원하듯 말했다.

“요동은 예로부터 군자의 나라라 하였는데 장군은 어찌하여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적을 무참히 박멸하려 하시오?

나는 황제의 뜻에 따라 마지못해 군사를 이끌고 왔을 뿐 애초에 귀국을 적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부디 자비를 베푸시오.

살아서 돌아가면 황제께 아뢰어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소.”

잘못과 패배를 시인한 설인귀의 간청에 검모잠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이 섬기던 온사문과 마찬가지로 개소문의 북진 정책에

은근히 반감을 가지고 있던 장수였다.

개소문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건무왕(영류왕)과 남진파들의 수작을 사전에 알아차리고

먼저 도성 남쪽 열병장에 대신들을 청하여 모조리 죽여 버린 뒤 고구려에서는

누구도 감히 개소문의 북진책을 반대하지 못했으나, 속으로는 당과 우호 하여 지낼 것을

바라는 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세민과 이치 부자가 대를 이어 끊임없이 군사를 내자 처음에는

개소문의 정책에 찬성하던 사람들까지도 군역에 시달리고 싸움에 지친 나머지

해가 갈수록 당과 화친을 바라게 되었다.

이들은 배후에서 당을 조종하는 것이 신라라고 믿고 오히려 신라에 대해

더 깊은 원한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적잖은 사람들의 이 같은 생각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리지 개소문의 위엄에 짓눌려

좀체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장수가 목숨을 구걸하다니 구차하기 짝이 없구나.

차라리 일신을 던져 의연함과 기개를 지키는 편이 명예롭지 않겠는가?”

다소 누그러진 검모잠의 말투에 설인귀는 한층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매달렸다.

“내 한 몸을 바쳐 양국의 화평을 도모할 수만 있다면 어찌 죽기를 망설이겠소?

장군의 말씀대로 나는 기왕 횡산서 죽은 목숨이니 황제께 돌아가면 생사를 초월해 바른말을 아뢰겠소.

우리는 피차 원한을 산 바가 없거니와, 양국이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면 더불어 술잔도 기울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오? 모쪼록 현찰하시오.”

꼭 그 말을 믿어서는 아니었지만 결국 검모잠은 퇴로를 슬그머니 열어주었고,

설인귀는 재빨리 잔병들을 거두어 협곡을 빠져나가면서 마상에서 허리를 굽혀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렇게 도망갔던 적장은 불과 10년 만에 고구려 전역을 다스리는 제왕이 되어 거드름을 피우는데,

자신은 그가 지배하는 땅에 이름 없는 촌부가 되어 7백 년 사직의 허무한 종말을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하였으니,

망국지한에 개인의 영욕마저 겹쳐 그 감회가 남달리 절통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울분을 씹던 검모잠이 마음을 달래려고 찾아간 곳은 도성 남쪽으로 1백여 리쯤 떨어진

강서향(江西鄕:패강 서쪽)이었다.

그곳에는 검모잠이 평생 아버지처럼 섬겨온 노장 온사문이 살고 있었다.

온사문으로 말하면 평강왕의 국서(國壻)였던 온달의 후손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단성에서

신라 장수 이리벌이 쏜 화살을 맞고 전사한 할아버지 온달 장군의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다.

그런 그가 신라에 대해 원한을 품고 남진파와 뜻을 함께하게 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온사문이 벼슬을 얻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조정의 남진파는 모조리 궤멸된 뒤였고,

천하는 오로지 막리지 개소문의 것이었다.

게다가 개소문이 온사문을 유독 총애하여 당과 싸움이 있을 때마다 중책을 맡기니

그 또한 고구려의 많은 장수들처럼 본심을 숨긴 채 견마의 도리를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사문이 마침내 왕권을 강화하는 일에 나선 것은 개소문이 죽고 난 뒤부터다.

그는 5부 욕살들과 중신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왕의 권세를 능가하는 신하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잠시 남건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소문의 막강한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은 남생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지,

다른 야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남생을 제거하고 나면 곧바로 남건과 남산을 없애고

실추된 보장왕의 권위를 되찾아주려는 것이 싸움터에서 수발이 황락한 온사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장군의 그와 같은 충절은 남생이 당으로 망명하는 순간 빗나가기 시작했고,

사직이 망하고 안동도호부가 들어서면서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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