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멸망 4
승석 때가지나 검모잠이 강서향 온사문의 집에를 당도하여 주인을 찾으니
말쑥한 차림의 한 사내가 나와서,
“빙부께서는 마침 출타 중이시니 뉘 신지는 모르오나 다음에 오시지요.”
하고 말하는데 그 기색이 어딘지 심상찮고 얼굴에는 알지 못할 수심이 가득했다.
검모잠이 잠시 난감하여 섰다가,
“나는 수림성 사람으로 노장군을 가까이서 뫼시던 검모잠이라 하오.
마음이 하도 괴롭고 허전하여 어른을 뵈려고 왔는데 그만 허행을 하게 생겼구려.”
하며 자신의 신분과 용무를 밝힌 뒤에,
“날이 저물어 남경(평양)까지 돌아가기가 어려우니 노숙이나 면하게 해주오.
헛간이라도 무관 하외다.”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였다.
온사문의 사위라는 사내가 검모잠을 모르지 않는 듯 희미하게 반색을 하며,
“모잠 장군의 말씀은 빙부께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어찌 귀빈을 헛간에 뫼 시리까.”
하고는 비로소 안으로 맞아들여 사랑채로 데려갔다.
검모잠이 사내를 따라가며 동정을 엿보니
넓은 집에는 절간처럼 적막감이 감돌고 인적은 통 뵈지 아니하여
폐가를 찾은 듯 을씨년스럽고 괴괴한 느낌마저 일었다.
사내가 사랑채에 이르러 묵을 곳을 안내하고는 혼자 어디론가 갔다가
조금 후에 소찬이 차려진 밥상 하나를 손수 들고 나타났다.
검모잠이 급히 상귀를 마주잡아 앉고서,
“별배들은 다 어디를 가고 서랑께서 친히 상을 들여오시오?”
하며 묻자 사내가 문득 크게 한숨을 짓더니,
“장군은 한집 식구나 진배없으니 이런 말씀을 드려도 과히 허물이 없으리다.”
하고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위가 말하는 사연은 이랬다.
온사문은 슬하에 딸 하나 아들 셋을 두었는데,
개소문이 죽던 이듬해 막내가 강동의 이씨(李氏) 집 규수를 배필로 맞아들여
강서향 관아 옆으로 새살림을 났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자 강서향이 현(縣)으로 바뀌고 새로 부임한 현령은
당인 마소삼(馬巢三)이란 자였다.
그는 부임 첫날부터 상다리가 휘어지게 주연을 열고 온 고을에 말하여
여자들을 모조리 동원하라는 영을 내렸다.
그러나 고구려는 본래 여자가 귀하기로 이름난 곳이라
배필을 구하지 못하는 총각들이 부지기수였다.
처가에서 노역이나 군역을 몇 년씩 대신하는 예서(데릴사위) 자리도 얻기만 하면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판이니 관아의 주연에 불려나올 여자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 사정을 알 바 없던 호색한 마소삼은 동원할 여자들이 없다는
고구려 구실아치들의 얘기를 전해 듣자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화부터 냈다.
여자가 없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고구려 사람들의 반항이라고 여긴 마소삼은
본때를 보여주겠노라 공언한 뒤 군사들을 풀어 눈에 보이는 여자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과
노소의 구분 없이 모두 관아로 붙잡아오도록 지시했다.
이에 현의 많은 부녀자들이 끌려오게 되었는데,
길에 지나다니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처녀와 노파, 모녀와 고부, 심지어 안방에서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던 여자까지도 애를 품에 안은 채로 잡혀와 당하에 부복하였다.
“계집이 없다더니 많기만 하구나.”
마소삼은 흡족한 웃음을 머금으며 여자가 없다고 아뢴 고구려의 구실아치들을
모조리 옥에 가두어버렸다.
“감히 누구를 모만하려 드는가?
본래 천하에는 음양이 있고, 궐에는 궁녀가 있으며, 관에는 관기가 있고,
민가에는 처첩이 있는 법이다.
만일 너희가 아직도 이 같은 이치를 몰랐다면 이제라도 제도와 관습을 뜯어고쳐
상국의 예를 따를 일인즉, 우선 관기를 뽑아 관아의 면모를 일신할 터이니
지금부터 내가 지목하는 자는 관에서 기숙하며 오로지 정성을 다해 나를 섬기고
관인을 받들도록 하라.”
마소삼은 근 10여 명에 이르는 여인들을 간선하여 집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 인물이 곱기로 소문난 온사문의 며느리 이씨가 첫 번째로 지목을 당해
당장 수청을 들라는 명을 받았다.
이씨는 이미 지아비가 있는 몸이라고 읍소했지만 그런 말이 통할 리 만무했다.
그런데 마침 이씨의 몸에 경도가 있었으므로 이를 핑계 삼아 며칠간의 말미를 얻게 되었다.
비보를 들은 온사문은 그 길로 자식을 앞세우고 강동의 이씨 친정을 찾아갔다.
이씨의 일가붙이 중에는 전날 고추대가 밑에서 나라의 접빈객 사무를 보던 이가 있었는데,
당나라 관리들과 교분이 두터운 그에게 부탁하면 무사히 일을 해결하지 싶어서였다.
온사문을 만나 비로소 사단을 알아차린 이씨의 친정에서도 부랴부랴 사람을 보내
일가붙이를 청해 왔더니 그가 마소삼은 잘 모르지만 신임 황주(黃州:황해도) 자사와는
친분이 있다 하고,
“강서현이 황주의 속현이니 황주자사에게 말하면 현령이 그 말을 듣지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 일가붙이가 온사문의 집에서 싸준 적잖은 재물을 들고 황주자사를 찾아가 손을 써서
며느리는 곧 풀려났다.
그러나 이미 이씨의 미색에 반한 마소삼이 강동현 현령에게 말해 이씨 친정의 남자들에게
일제히 군역을 부과하고 일변으론 가세가 적빈하던 친정을 재물로써 구워삶으니
사람이 신신치 못하던 이씨의 친정아버지가 하루는 온사문을 찾아와,
“우리가 전에는 사돈의 지위가 높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데릴사위 노릇도 시키지 않고
귀한 딸을 그냥 주었으나 지금 내가 육순을 넘긴 나이로 군역에 나가게 생겼으니
전날 안 시킨 데릴사위 노릇을 지금 시켜야겠소.”
하고 말하였다. 온사문이 일견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처가의 부모도 부몬데 부모가 늙어 군역에 나가지 못할 형편이면
그 자식이 대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어찌 사돈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소?”
쾌히 대답하고 당석에서 아들을 불러 군역을 대신 나가게 했다.
그러나 내심 짚이는 바가 있어 혼자 남은 며느리를 본가로 들이고 사랑채를 내줘 같이 지냈다.
친정에 수작을 부려 이씨를 차지해보려던 마소삼이 뜻을 이루기 어렵게 되자
이번에는 온사문의 뒤를 샅샅이 적간했다.
그랬더니 온사문이 개소문의 총애를 받던 고구려의 유명한 장수요,
한때는 남건을 도와 대형의 벼슬에까지 오른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거 순 역적 놈의 집안이 아닌가!”
마소삼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는 황주자사에게 온사문의 행적을 적은 상신을 올려 윗 전의 분부를 물었고,
황주자사는 일이 너무도 엄청나므로 혼자 독단하지 못하고 다시 도호부의 품의를 기다렸더니,
온사문이 장수였던 것은 망국민의 전죄를 묻지 않겠다는 황제의 칙령에 따라
크게 죄가 될 것이 없으나 그가 역적 남건을 도운 일만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이라 하고,
자사나 현령이 친히 문초하여 그 진심을 알아본 후 만일 당에 복종할 뜻이 있거든
관대히 처분하지만 그렇지 않거든 일족을 멸하라는 설인귀의 친필 교시가 내려왔다.
자사가 설인귀의 뜻을 현령에게 그대로 전하자 마소삼은 드디어 고구려의 절색을 품어보게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잠시도 지체 없이 군사를 풀어 온사문의 식솔들과 구종별배들까지 모조리 결박해
관아로 끌고 갔다.
그것이 벌써 이레 전의 일인데, 소문에 듣자니 매일같이 고문과 문초를 거듭해 있는 죄에 없는
죄까지 만들어서, 그 죄상을 열거한 책이 족히 한 권 분량은 될 것이라 하고,
온사문과 두 아들은 조만간 참수하고, 여자와 종들은 관비로 박고, 재산은 몰수하여
관아에 귀속시킨다는 풍설이 고을에 자자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내외도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가 붙잡혀가서 이틀 밤을 관아의 옥사에서 보냈는데,
저의 가친께서 임금을 수행해 낙양에 머물고 계신 것이 알려져 혼자만 방면되었습니다.”
사위의 말을 듣는 동안 시초에는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고 분통을 터뜨리던
검모잠도 마침내는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져 방바닥이 꺼지도록 한숨만 토했다.
이런 것이 바로 사직을 잃은 망국의 설움이지 싶으면서도 평소 아버지처럼 따르던
온사문의 얼굴을 떠올리자 피가 거꾸로 끓어올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골똘한 생각에 잠겼던 검모잠이 한참 만에 사위를 보며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혹시 어른께서 쓰시던 갑옷과 칼이 있소?”
“네. 안방에 걸려 있습니다만.”
“서랑은 무기를 쓸 줄 아시오?”
“능란하지는 못하지만 흉내는 좀 낼 줄 압니다.”
“관아의 졸개들은 대략 얼마쯤 되오?”
“2백 남짓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2백이라…… 그 중에 야간 번을 서는 자는 몇이나 되더이까?”
“옥사를 지키는 당번은 3, 4명에 불과하지만 순라병과 앞문 뒷문의 졸고 있는 자들까지
모두 합친다면 아무리 야밤이라도 4, 50명쯤은 너끈하지 싶습니다. ……
어떻게 하시려구요?”
대답을 하던 사위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일문이 이렇게 결딴나는 것을 보고만 있겠소?”
“하지만 당나라 관리들이 부임한 곳에서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민란을 우려해
관아의 방비가 밤낮 구분 없이 철통과 같습니다.
어찌 장군 혼자 몸으로 4, 50이나 되는 군사를 상대하겠으며,
설사 식솔들을 구해낸다 하더라도 천하가 이미 당의 것인데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공연히 장군까지 화를 입는다면 이는 빙부께서도 바라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위의 만류하는 말에 검모잠은 어금니를 깨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라는 망했어도 사람까지 망할 수는 없는 법이오.
백성은 새와 같고 나라와 사직은 둥지와 같으니 백성들이 있는 한
나라는 다시 짓고 무너진 사직도 일으켜 세우면 되는 것이오.
내지에 온 당인들이 백성들을 함부로 짓밟는 것은 그와 같은 이치를 알기 때문이외다.”
사위가 종시 내키지 않는 듯 미적거리자 검모잠이 단호하게 말했다.
“천년을 바라보던 사직이외다.
더구나 망국지민이 되어 이처럼 수모를 당하고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지 않겠소?
서랑은 어른께서 쓰시던 갑옷과 칼을 가져다주고 관아까지만 인도하오.
현령이 묵는 곳과 옥사의 위치를 일러주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 하리다.”
검모잠이 온사문의 집을 나선 것은 그날 밤 2경 무렵이었다.
그는 사위의 안내를 받아 관아의 후문까지 몰래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서랑께서는 여기서 말을 대기하고 기다렸다가 식솔들이 나오거든 구월산 쪽으로 달아나시오.
그곳 암자에 아는 중이 있으니 구월산까지만 무사히 당도하면 당분간은 몸을 의탁하여
지낼 수 있을 거외다.”
그러자 사위가 말했다.
“구월산까지는 길이 너무 멀어 그 사이에 어떤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해포에 저와 친한 벗이 한 사람 살고 있으니
차라리 그곳으로 가서 의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랑의 벗이 화를 입으면 어찌하오?”
“그는 전날 조의선인 출신으로 기운이 좋고 용맹이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해포에서 수군을 훈련시키는 무장의 일을 보았는데,
나라가 망한 후에 수군이 해체되고 해포의 진지까지 봉쇄되었다며 한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잠 장군께서 찾아가시면 그는 도리어 반가워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검모잠은 잠깐 생각한 끝에,
“좋소. 그리 합시다.”
하고서 한 차례 사방을 살핀 뒤 날렵하게 관아의 담을 넘었다.
그는 담벼락을 끼고 소리 없이 관아의 내부로 침입하여 현령이 기거하는 내당 가까이 이르렀다.
내당 입구에선 군사 서넛이 양쪽으로 나란히 앉아 약속이나 한 듯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잠들어 있었다.
검모잠은 이들을 해칠 마음이 없었지만 닫아놓은 문을 열자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곧 칼을 뽑아 달려들어 번개같이 양쪽으로 칼질을 하자 잠들었던 졸개들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초병들을 처치한 검모잠은 피를 뒤집어쓴 채 내당으로 치달아 등촉이 아직 꺼지지 않은 안방을 급습했다. 하지만 문을 열어 제 쳤을 때 안방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