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멸망 1
유인원의 주선으로 법민과 부여융이 화친을 서약한 이듬해(666년), 고구려에선 연개소문이 죽었다.
그의 나이 예순넷, 거대강국 당을 상대로 여러 차례 대전을 치르며 창칼과 시석이 난무하는
숱한 격전장을 떠돌았지만 천수(天壽)를 다한 죽음이었다.
본래 겉이 강하면 안이 약하다고 했던가.
순서로 치면 정변으로 막리지가 된 후 25년 동안 함께 국정을 이끌었던 을지유자가 먼저 죽었다.
그 역시 천수를 누린 끝에 사가의 안방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죽음이었다.
유자는 죽을 때 개소문의 손을 잡고,
“이제 자네 혼자 매우 바쁘게 생겼네. 먼저 가서 미안 하이, 정말 미안 하이……”
하며 근심을 떨치지 못하였다.
개소문이 당나라 군사들과 싸워 백전필승의 무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수훈의 절반이 유자에게 있었다.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유자가 내정을 도맡아 빈틈없는 안살림을 꾸려준 덕택에 마음 놓고 싸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유자를 여의고 나자 범 같은 개소문의 기세도 급격히 꺾이고 무너졌다.
일생의 반려자를 잃은 그로선 어쩌면 당연한 충격이었다.
개소문이 만일 10년만 더 살았어도 그 뒤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자를 잃은 뒤부터 그는 자주 술을 마셨고, 한번 술을 입에 대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았다. 요동의 산천초목도 개소문 앞에서는 가지를 굽힌다는 말이 나돌았으나 기실 그는 먼저 간 벗을
뒤따라갈 만큼 속정이 깊고 심약한 면이 있던 사람이었다.
당대를 희롱하며 수십만 당군을 어린애 다루듯 가지고 놀던 고구려의 영웅 개소문이 죽자
고구려 조정은 사공을 잃은 나룻배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다.
남생(男生)과 남건(男建), 남산(男産)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통곡하였고,
망자를 어버이처럼 믿고 의지하던 왕은 스스로 조복을 입고 나와 슬피 울며 나랏일을 근심하였다.
문무백관들과 경향 각지의 백성들도 저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부모를 잃은 어린 자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5년 독재의 공백이 남긴 당연한 혼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마냥 슬픔과 탄식에만 빠져 지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개소문의 죽음이 밖으로 알려진 뒤 요하 접경에선 당장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임술년(662년) 정월, 당나라 장수 방효태(龐孝泰)가 13만의 수륙군을 이끌고
개소문과 사수(蛇水)에서 싸워 자신은 물론 아들 13명과 전군이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당하는
참변을 겪은 후에 당주 이치(李治:당고종)는 백관들을 불러 말하기를,
“우리는 근년에 거의 해마다 군사를 내었지만 단 한 번도 이겼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전에 선제(당태종 이세민)께서는 개소문이 있는 한 요동 정벌은 불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는데, 더구나 그때는 태공(강태공)과 손자를 능가한다는 이정(李靖)과 같은
명장이 살았을 때가 아니냐?
선제께서 위국공(이정)을 내고도 이루지 못한 일을 뉘라서 감히 할 수 있겠느냐?
차후 다시는 요동의 일을 논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는 바꿔 말해 개소문이 없다면 언제든지 또 군사를 내겠다는 소리였다.
여러 해 아버지 개소문을 따라다니며 당군과 싸워온 장자 남생이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개소문에 이어 막리지에 올라 국정을 돌보게 된 남생은 곧 당군의 침략이 있을 것을 알고
압록수 북방의 여러 성을 순시하면서 그 아우 남건과 남산으로 하여금 도성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남생이 떠나고 나자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일부 노신들이 남건과 남산을 찾아와 말했다.
“원덕(元德:남생의 字)은 두 아우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 근심하고 있으므로 북방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죽이려고 들 게 뻔합니다.
앉아서 당하지 말고 먼저 계책을 세워 일을 도모하십시오.”
두 아우는 처음만 해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겠소?
형님은 그럴 분이 아니지만 선친께서도 종효하는 자리에서 우리 형제들이 서로 우애하기를
물처럼 하라고 신신당부하셨소.
아직 선친의 능에 흙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찌 골육상쟁으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겠소.”
그러나 신하들 가운데는 그간 개소문의 정책에 은근히 불만을 품은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십 수년간 개소문의 위세에 눌려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했던 그들로선 이때야말로
남생을 제거하고 자신들이 국사의 주도권을 장악할 다시없는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러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돌아가신 어른께서는 원덕과 오랫동안 싸움터를 돌아다닌 터라
그의 생각과 인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런 분이 종신하는 자리에서 하필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소?
이는 두 아우를 보고 하신 유언이 아니라 원덕에게 하신 말씀이셨소.”
노신들의 말에 남건과 남산 형제가 마음이 뒤숭숭하던 무렵 남생의 주변에서도
그와 유사한 주장을 펴는 자들이 있었다.
“남건과 남산에게 도성을 맡겨두고 오신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소문에 듣자니 두 아우는 형님이 돌아와 자신들의 권세를 뺏을까 두려워하여
도성의 문을 닫아걸고 길을 막은 지 오래라 합니다.”
물론 남생도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유언하시기를 화살은 합치면 강하지만 나누면 쉬 부러지는 법이라고 하셨다.
내 아우들이 비록 명석하진 않지만 어찌 선친의 유언을 배반하겠느냐?
그리하면 천하의 빈축을 사게 된다는 것을 저희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몰래 사람을 보내 도성의 동정을 엿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일 돌아가셨다가 예상치도 못한 봉변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여러 차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도성을 떠나 국내성에 머물고 있던 남생 으로서는 은근히 불안한 느낌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은밀히 도성의 동정을 살피도록 하였는데,
그 믿을만한 자가 장안성을 지나가다 곧 남건의 수하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남건은 그제야 형의 저의를 의심하게 되었다.
“우리를 해칠 마음이 없다면 어째서 첩자를 보내어 뒤를 살피게 하였으랴.
이는 막리지가 꼬투리를 잡아 너와 나를 죽이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남건의 말에 남산도 맞장구를 쳤다.
“원덕은 본래 욕심이 많고 성질이 포악하여 능히 그럴 수 있는 인물이오.
당장 임금에게 말해 그를 도성으로 부릅시다.
그가 의심 없이 온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지만 만일 오지 않는다면 뒤로 꿍꿍이가 있는 것이 뻔하니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합니다.”
두 형제는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는 보장왕에게 말하여 시급히 남생을 도성으로 불러들이도록 했다.
왕명을 받은 남생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무슨 일인데 급히 입궐을 하라는 것이냐?”
남생이 자꾸만 다그치자 왕명을 전하러 온 자는 할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는 막리지의 두 분 아우님들께서 청한 일이지 임금의 뜻은 아닙니다.”
남생도 비로소 두 아우에게 딴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크게 격분했다.
“내 이놈들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남생은 이를 갈며 큰소리를 쳤지만 그렇다고 대책도 없이 도성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헌충(獻忠)을 찾아가 화급을 다투어 도성을 떠나라고 전하라.” 남생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헌충이요 차자는 헌성(獻誠)이었다. 그는 도성을 떠나며 헌성 하나만을 데려왔기 때문에 무엇보다 큰아들 헌충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도성으로 돌아온 사신은 남생이 시킨 대로 말하고 은밀히 헌충을 찾아가려 했다. 그러나 먼저 선수를 친 쪽은 남건과 남산이었다. “이제 더는 의심할 것이 없다. 남생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왕명까지 거역하며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가 떳떳하지 못한 때문이다. 남생은 우리를 죽이려고 흉계를 꾸미는 게 뻔하다. 그렇다면 어찌 앉아서 당하기만 할 것인가? 선친의 유언과 형제간의 우애를 먼저 저버린 쪽은 남생이다. 그 아들 헌충이 도성에 있으니 마땅히 그를 죽여 천벌을 대신하리라!” 남건은 당석에서 군사를 풀어 조카 헌충을 잡아 죽이고 왕을 협박해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그리고 군사를 일으켜 국내성으로 향하니 소식을 전해들은 남생은 황급히 안시성(安市城)으로 달아나 몸을 의탁했다가 하는 수 없이 차남 헌성을 당나라로 보내 구원을 청하게 되었다. 이에 당주 이치는 남생과 크게 싸운 적이 있던 장군 설필 하력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맞게 하니 남생은 적장의 도움을 받고 몸을 빼내 무사히 당나라로 도망하였다. 남생의 망명으로 고구려의 허실을 손바닥 보듯 알게 된 당으로선 더 이상 요동 정벌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치는 남생에게 특진(特進) 요동도독(遼東都督) 겸 평양도안무대사(平壤道安撫大使)를 제수하고 현도군공 으로 봉한 뒤 백전노장 이적(李勣)을 딸려 요동 공략에 나섰다. 팔순의 이적이 말을 타고 출장한 것부터가 결전에 임하는 당나라의 의지와 각오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적의 휘하에는 학처준(郝處俊), 방동선(龐同善), 설필 하력, 두의적(竇義積), 독고경운(獨孤卿雲), 곽대봉(郭待封), 고간(高侃) 등의 장수를 배정하였고, 따로 설인귀(薛仁貴)를 좌무위장군으로 삼아 대병의 뒤를 돕도록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하복(河北) 지역의 조세는 모조리 요동으로 보내 군용에 쓰도록 하니 이때 당군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가리고 땅을 뒤덮을 만하였다. 요수를 건넌 이적은 군사를 이끌고 동진하며 요하 동쪽의 16성을 차례로 함락시켜 길을 얻고 단숨에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안시성을 비롯한 장성변(천리장성)의 11개 성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지만 당군은 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무진년(668년) 정월, 당주 이치는 백제에서 돌아온 유인궤를 우상(右相)에 봉해 부대총관으로 삼고, 당에 숙위하던 신라 왕제 김인문을 부총관으로 삼아 신라에서 군사를 징발해 이적을 돕도록 했다. 2월에 설인귀는 선봉이 되어 고구려 내지의 부여성(扶餘城)을 함락시키고 부여천(扶餘川) 변의 40여 성을 모두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교란하였는데, 그 내용은 ‘고구려비기(秘記)에 이르기를 나라를 세운 지 9백 년이 되기 전에 여든 된 장수가 이를 멸망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적의 나이가 여든인 점을 이용한 민심 교란용 술책이었다. 연남건(淵南建)은 군사 5만 명을 보내 부여성을 구원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패하여 3만이나 되는 사상자를 내고 패주하였다. 남건이나 남산은 일국을 경략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이적의 당군은 승승장구를 거듭해 3월에는 구련성(九連城)을 얻고, 4월에는 압록책(鴨淥柵)을 격파하고, 다시금 2백 리를 거침없이 진격해 6월에는 욕이성(辱夷城)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평양성 밑에 이르렀으나 성이 워낙 높고 견고하여 달포나 성곽을 포위한 채 시간을 보냈다. 이 무렵 신라에서도 당연히 군사를 일으켰다. 신라왕 법민은 아우 김인문이 와서 당이 거병한 소식을 전하자 곧 흠순과 인문을 대장군으로 삼아 친히 군사를 이끌고 평양 정벌에 나섰다. “만일 대각간과 함께 가지 않으면 후회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출병을 앞두고 흠순이 임금에게 말했다. 평소에는 김유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던 흠순 이었지만 싸움이 벌어져 거병 얘기만 나오면 태도가 돌변하는 그였다. 번번이 그런 줄을 누구보다 잘 알던 법민이 웃으며 물었다. “저는 그만두고 바다 건너 당나라 천자까지도 높이 말하는 큰 외숙의 공을 유독 인정하지 않으시던 분이 작은 외숙이 아닙니까? 이번엔 과인도 작은 외숙의 덕을 좀 보려 합니다.” 그러자 흠순이 사뭇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것은 신이 자칫 형이 교만해질 것을 경계해 하는 말이지 실상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형의 몸이 대충 다 나았으니 데려갔으면 합니다.” 법민은 한참을 껄껄대고 웃었다. 그런데 인문도 은근히 김유신과 같이 갈 것을 말하자 법민은 정색을 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두 분 외숙과 아우는 계림의 보배다. 이제 모두가 전장으로 나갔을 때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 곧장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국사는 어찌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대각간을 금성에 머무르게 하여 나라를 지키게 하려는 것이다. 대각간이 금성에 계시면 뒤를 염려할 일은 없지 않겠는가?” 임금의 뜻을 알아차린 흠순과 인문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편전을 물러나오고도 흠순은 형과 같이 가지 못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너는 대궐로 돌아가서 내가 아직 돌아가지 못할 형편이라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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