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2장 감성기 4

오늘의 쉼터 2014. 11. 22. 21:54

제2장 감성기 4

 

 

 

‘남자는 시각적으로 먼저 자극을 받는다.’


강일환은 룸미러를 쳐다보며 얼마 전 읽은 잡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생극에 있는 공장엘 갔다 올 거야. 아무래도 좀 늦겠지. 거기서 저녁을 먹을 가능성이 커.”

 

“나도 오늘 화가들이랑 기념 파티가 있거든.”

 

강일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 됐네. 오늘은 저녁을 각자 알아서 처리하고 집에서 보자고.”

 

“자기야, 내가 더 늦을 지도 몰라.”

 

“어쩔 수 없지.”

 

강일환은 삐친 듯 말했다.

 

“미안해. 나 이해하지?”

 

“우리 와이프를 내가 아니면 누가 이해를 하겠습니까?”

 

아내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오히려 고마운 사람은 날세.’

 

강일환이 미소를 지으며 룸미러를 쳐다봤다.

 

신수정의 모습이 담겼다.

 

그녀는 엷은 분홍빛의 스커트에 자주 빛의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가디건과 가방이 들려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좀 기다렸지요.”

 

강일환이 히죽 웃었다. 신수정도 답이라도 하듯 활짝 웃어보였다.

 

강일환은 그녀가 차에 오르자 급히 시동을 걸었다.

 

강일환은 차를 남산터널 쪽으로 몰았다.

 

“어제는 정말 놀랬어요.”

 

“저도 사실 놀랬습니다.”

 

“아니, 전화를 한 본인이 왜 놀래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한테 그런 야성이 숨겨져 있다는 것 때문에 놀란 겁니다.

 

그런 경험 처음이거든요.”

 

“누군 두 번짼가요.”

 

두 사람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수정씨가 가고 싶은 곳.”

 

신수정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우리 부석사 가요.”

 

“부석사?”

 

“단양에 있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절 말이에요.”

 

강일환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란이는 절에 잘 안 가는 편이지,

 

그러면 미란이의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무래도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을텐데.’

 

강일환은 어떤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언젠가 송림과 함께 강릉을 갔다가 대관령 휴게소에서 아내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우연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좁은 땅덩어리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땐 강일환이 그들을 먼저 발견한 덕에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갔다.

 

“아니면 다른 데 가도 돼요.”

 

신수정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가죠.”

 

그렇게 말했지만 강일환은 조금 찜찜했다.

 

‘유명한 절치곤 그다지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네.’


강일환은 선글라스를 쓴 채 오가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신수정은 두어 발짝쯤 앞서 걸었다.

 

‘나를 위한 배려인가?’

 

신수정은 앞서 걸으며 가끔 뒤돌아볼 뿐 마치 남처럼 굴었다.

 

어쨌든 마음이 평온했다.

 

강일환은 신수정의 뒤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가까이 다가들었다 싶으면 오히려 신수정이 거리를 두고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무량수전 앞까지 이르렀다.

 

오래된 사찰답게 고즈넉하고 역사의 기품이 풍겼다.

 

강일환은 신수정이 하는 양만 지켜보았다.

 

그녀는 먼저 무량수전에 들어가 삼배를 했다.

 

곱고 조용한 절이었다.

 

절할 때 굽어진 그녀의 뒤태가 더없이 부드러워 보였다.

 

법당에서 나온 그녀는 뜬 돌을 구경하고 탑을 구경하고 약수터쪽으로 향했다.

 

강일환도 주인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강아지처럼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약수터 근처에 만들어 놓은 벤치에 앉았을 때 신수정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좋죠?”

 

강일환이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불두화예요.”

 

신수정이 사람의 머리처럼 두리뭉실한 보라색의 꽃을 가리켰다.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보죠?”

 

“맞아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주변을 예의주시했다.

 

“뭘 빌었어요?”

 

그녀는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

 

“미련 많았던 우리 신랑 다음 생에선 좋은 여자 만나서 잘 살라고 빌었죠.”

 

“사랑하지는 않았어도 정은 꽤 깊이 들었던 모양이지요?”

 

“그냥 불쌍해서요.”

 

그녀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계단을 따라 내려간 뒤 강일환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사과밭이 오른편에 펼쳐져 있었다.

 

신수정이 장난스럽게 나무에 달린 사과를 하나 땄다.

 

아직 제대로 영글지 않은 사과였다.

 

강일환은 그녀 대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괜히 덤탱이 쓰는 수가 있습니다.”

 

“너무 탐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

 

그녀는 사과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내 사과를 베어 물었다.

 

“떫고 텁텁하네요.”

 

“조금 더 있어야죠.”

 

그녀는 사과를 냅다 과수원 쪽으로 내던졌다.

 

그 모든 모습이 강일환의 눈에는 장면장면 각인이 되었다.

 

‘송림이랑 만날 때도 이랬었나?’

 

강일환은 송림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신수정의 얼굴만 어른거렸다.

 

두 사람은 어느새 주차장까지 다다랐다.

 

워낙 늦게 출발한 터라 주변이 서서히 석양에 물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에 기대 서서 해가 지는 걸 보았다.

 

“해 지는 걸 보고 있으면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수정은 자연스럽게 강일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감상에 빠져들던 강일환은 신수정이 눈치채지 못하게 주변을 살폈다.

 

“사모님이 기다리시잖아요.”


신수정이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오늘 화가들하고 파티가 있어 새벽 늦게나 들어올 겁니다.”

 

강일환은 가슴을 가린 신수정의 오른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나머지 한 손은 여전히 가슴 위에서 얹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강일환은 점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차 실내에 흐르는 끈적한 재즈가 강일환의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수정씨 제가 오죽하면 그 시간에 마누라가 자고 있는 데도 전화를 했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다르잖아요.”

 

신수정이 차창 밖을 내다봤다. 사방이 어둠뿐이었다.

 

간간이 자가용이 어둠을 핥고 지나갔다.

 

“차 안이 불편해요?”

 

“강 실장님하고는 좋은 추억으로 남고 싶어요.”

 

강일환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좋은 추억, 저는 몸으로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러면 우리 관계가 엉망이 될 거예요.”

 

강일환은 힘이 빠졌다.

 

부석사에서 나와 근처 식당에서 동동주 한 병을 마신 터라 속이 후끈거렸다.

 

그 뒤 차를 몰고 가까운 갓길에 세우곤 30분 남짓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겠죠.”

 

강일환이 그녀의 손을 놓았다.

 

밀고 당기기. 강일환은 이제 신수정이 조금씩 다가올 것이라고 계산했다.

 

“어쨌든 술 냄새나 지우고 가야겠습니다. 누워서 좀 쉬죠.”

 

강일환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신수정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누워요. 불편하게 안 할게요.”

 

신수정이 조용히 의자를 뒤로 젖혔다. 강일환이 썬루프를 열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밤하늘의 별이 총총했다.

 

“이런 별 정말 오랜만에 구경하네요.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수정이 잠깐 강일환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이런 별을 보고 지낼 시간도 없어요.”

 

“그러게요.‘

 

두 사람은 박자를 맞추듯 말을 이어나갔다.

 

강일환은 그녀 쪽으로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먼저 남편분 안됐지만 행복했겠어요.”

 

“왜요?”

 

“이렇게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와 살았으니 말입니다.”

 

신수정이 어둠을 뚫고 빤히 강일환을 바라보았다.

 

“당신과 함께 살고 있는 여자도 행복할 거예요.”

 

신수정이 답을 했다.

 

“왜요?”

 

“이렇게 부드럽고 멋있고 매력적인 남자와 사니까요.”

 

강일환이 몸을 옆으로 돌리곤 서서히 신수정에게 다가갔다.

 

처음 머뭇거리던 그녀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고 강일환의 입술을 반겼다.

 

‘밀었다가 멀어진 후 다시 적당히 당기기. 그럼 넘어오지.’

 

강일환은 그녀의 옷섶을 헤치고 가슴 안쪽으로 부드럽고 천천히 손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손이 잠깐 그의 손을 제지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막지 않았다.

 

부석사에서완 달리 서울은 비가 내렸다.


“이렇게 흥분될 줄 몰랐어요.”

 

신수정의 목소리가 차 안에 가득 찼다.

 

부석사 근처에서 그녀는 결국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아파트에 도착한 후 미적거리며 내리지 않았다.

 

그녀도 섹스를 원한다고 판단한 강일환이 차를 주차장의 구석진 자리에 파킹했다.

 

하늘이 돕는 것인지 비가 내려 지붕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밖으로 안 나갈까요?”

 

신수정은 흥흥거리며 몸을 위 아래로 움직였다.

 

그녀의 신음 소리와 열기로 차안은 후끈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릴 겁니다.”

 

강일환은 그녀의 몸 쪽으로 아랫도리를 더욱 강하게 밀착시켰다.

 

그녀는 팬티를 벗기 전부터 이미 달아올라 푹 젖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섹스가 시작되자 강일환보다 더 격정적으로 변했다.

 

“나 몰라요.”

 

그녀가 강일환의 몸 위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머리를 쥐어짰다.

 

강일환도 온 몸이 상쾌하게 떨기 시작했다.

 

“얼마나 됐어요?”

 

“뭐가요?”

 

그녀의 몸이 춤추듯 흔들렸다.

 

“남자랑…”

 

“정말 짓궂네요.”

 

“말 해봐요.”

 

“우리 남편 그렇게 간 뒤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얼마 만이에요?”

 

“한 2년?”

 

신수정의 몸이 요동쳤다.

 

그때 희미하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잠깐!”

 

강일환이 흔들리는 신수정의 몸을 잡았다.

 

신수정도 강일환의 몸 위에 납작 엎드려 숨소리를 죽였다.

 

그래도 차안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이 있나?”

 

후레쉬 불빛이 차안을 후볐다.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순찰을 도는 모양이었다.

 

강일환은 더욱 숨을 죽였다.

 

“어이 장씨, 빨리 와. 라면 불것어!”

 

멀리서 빗소리에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경비원이 경비실 쪽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강일환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 우리 들켰을까요?”

 

“아닐 겁니다.

 

비도 온데다 후레쉬 불빛으로 안을 비춰도 잘 안 보여요.

 

이중 썬팅을 한 차라 빛이 되반사 됩니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에 반해 강일환의 물건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집 근처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이리라.

 

“제 몸만 뜨겁게 만들어 놓고 이러시면 어떡해요.”

 

신수정이 코맹맹한 소리를 냈다.

 

그리곤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강일환이 물건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강일환의 몸 위에서 떨어진 후 그의 물건을 찾아 쥐었다.

 

미끈거렸다.

 

그녀는 좁은 공간을 뒤돌아 앉았다.

 

그리곤 강일환의 물건을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강 실장님 책임져요.”

 

신수정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거리며 강일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 사람 강 실장이지?”


해수가 중경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며칠 뒤면 가이아 백화점의 속옷매장 메인 자리를 어느 회사가 차지하는지 결정이 날 것이었다.

 

중경은 착잡한 심경을 달래지 못해 해수를 불러냈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 드라이브 삼아 강릉 가는 길에 대관령 휴게소에서 강일환을 보았던 것이다.

 

“분명히 강 실장이야.”

 

해수는 단언하듯 말했다.

 

“아닐 거야. 우리 실장님 얼마나 애처간데. 회사에 소문이 자자해.”

 

중경은 강 실장을 보았지만 강 실장은 중경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한 상상은 하기 싫었다.

 

“모르시는 말씀.”

 

해수가 작은 맥주병을 들고 중경의 앞에 놓여져 있는 병에 살짝 부딪혔다.

 

맑은 소리가 났다.

 

“원래 와이프한테 잘하는 사람들이 더 바람을 은밀하게 잘 피는 거 모르지?”

 

“너는 그러니까 우리 실장님이 바람이라도 피고 있다는 말이네.”

 

“누가 봐도 그렇잖아.

 

젊은 여자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서로를 뜨겁게 쳐다보고 있는데 누가 아니라고 하겠어.”

 

“너는 강 실장님 사모님도 못 봤잖아.”

 

“무슨 소리, 아트 화랑 큐레이터잖아.”

 

중경은 괜히 가슴이 뜨끔했다.

 

“일 때문인지도 모르고,”

 

“순진하긴, 중경이 너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순진한 구석이 있다.”

 

해수가 술병을 놓고 담배를 꺼내들었다.

 

“나 신입 때 강 실장님 우리 백화점에 자주 다녔어. 사실 그때 나도 실장님 좋아했거든.”

 

해수가 눈을 찡긋했다.

 

“결혼했을 때?”

 

“그땐 결혼하기 전이었지.”

 

중경은 강 실장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게 불편했다.

 

“어쨌든 너랑 상관없잖아.

 

나는 다만 그렇게 집안에 충실하고 와이프한테 진짜 잘한다는 그런 남자들이

 

은근히 더 바람을 잘 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경험에서 나오는 말 같다.”

 

순간 해수가 담배 연기가 사례에 걸려 콜록거렸다.

 

“맞아, 경험자지. 내 전 남편이 그랬으니까.”

 

해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중경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여자 누구야?”

 

“몰라.”

 

“어쨌든 강 실장이 바람 핀다는 건 인정하는 거네.”

 

해수가 그 말을 하고 낄낄거렸다.

 

“하긴 요즘 유부남들이 애인 없으면 바보 취급당한다고 하더라. 남자들은 왜 그러나 몰라.”

 

“여자들도 마찬가지잖아.”

 

중경은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이런 이야기나 나누려고 해수를 만난 건 아니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강 실장을 본 뒤로 해수는 오로지 남자와 여자, 연애와 바람 이야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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