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32장 장수 9

오늘의 쉼터 2014. 11. 25. 10:14

 

32장 장수 9

 

 

 

당나라 군사들로부터 갑옷과 식량뿐 아니라 무기까지 공급받은 흑치상지는 우선 허기에 지친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다음 사타상여와 함께 군사를 두 패로 나눠 임존성으로 향했다.

연일 당군과 싸우며 기세를 올리던 지수신의 군사들은 같은 복장을 한 흑치상지의 군대가 나타나자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성문 가까이 이른 흑치상지는 화살에 서찰을 매달아 성안으로 쏘았다.

과거의 태자 부여융이 웅진도독으로 부임한 소식을 알리고 함께 투항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글을 읽은 지수신은 흑치상지의 예상대로 크게 격분했다.

“내 저를 벗으로 삼아 평생토록 생사고락을 함께하려 했거늘

어찌 이따위 무례한 글로 변절을 권한단 말인가! 벗도 우정도 덧없다,

장부에겐 오로지 구국의 일념이 있을 뿐이다!”

진노한 그는 성중의 군사들에게 결전할 것을 명령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하던 흑치상지는 성벽 밖으로 시석이 날아오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지수신이다. 투항을 권유한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하면 싸우지 않으시렵니까?”

별부장 장귀가 묻자 흑치상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와 나는 이미 오래전에 생사를 넘어 벗이 되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의 충절을 만대에 전하겠는가?

그가 나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나 내가 그를 치려는 뜻이 결국은 한가지다.”

장귀로선 흑치상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교전을 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흑치상지의 명을 받들어 군사들에게 성을 치도록 재촉했다.

임존성에선 이내 양측 군사들 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싸움은 연 나흘간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일이 흐를수록 수세에 몰린 쪽은 지수신 이었다.

나당 연합군과 교전한 것까지 합치면 근 40일을 싸움만 한 셈이었다.

피곤한 것도 피곤한 것이었지만 고립된 성에 식량도 떨어지고 화살과 돌도 바닥이 났다.

임존성의 기세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자

흑치상지는 군사들을 동원해 성벽을 타고 오르도록 지시했다.

화살과 돌이 바닥난 것을 알아차렸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성벽을 기어오른 군사들과 이를 막는 군사들 간에 다시금 피를 뿌리는 단병접전이 계속됐다.

제일 먼저 임존성에 입성한 것은 사타상여의 군사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 수미의 군대가 동문을 장악했다.

지수신은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밟고 서서 사타상여와 마주쳤다.

“네 이놈, 감히 누구한테 칼을 겨눈단 말인가!”

지수신이 눈에 불을 켜고 꾸짖자 사타상여는 사뭇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의병이 궐기한 뒤 정무와 복신의 휘하에 있을 때부터 한솥밥을 먹던 그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장군……”

사타상여가 주눅 든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흑치 장군을 모시는 몸입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장군께서 이해하십시오.”

“흑치는 왜 갑자기 변절을 하겠다는 건가?”

“변절이 아닌 줄 압니다. 다만 장군과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복신과 부여풍도 처음에는 복국을 말하고 사직의 재건을 맹세했었다.

그러나 끝은 어떠하던가?

부여융인들 그 뜻이 영원할 거라고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들은 말하고 우리는 믿을 따름입니다.

뒤에 변하는 것은 그들이지 우리의 믿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맹세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믿고 또 믿을 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상지의 뜻도 너와 같은가?”

“그렇습니다.”

지수신은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기색이었으나 곧 번민을 떨치려는 듯 크게 고함을 질렀다.

“칼을 똑바로 들어라!”

“네?”

“서로 생각이 다르니 결전이 불가피하다.”

이어 두 사람은 칼날을 맞대고 4, 5합쯤 자리를 옮겨가며 싸웠다.

맑은 쇳소리가 갱연히 울리는 가운데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거장들의 승부가 펼쳐졌다.

옆에는 어느새 양측 군사들 몇몇이 모여들었으나 누구도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칼 솜씨에 우열이 없을 수 없었다.

사타상여가 비록 흑치상지의 별부장 가운데는 으뜸이었어도 지수신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사타상여의 목이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구경하던 지수신의 부하들은 환호를 질렀다.

그 여세를 몰아 임존성의 잔병들은 마지막 사력을 다해 사타상여의 부하들을 성문 밖으로 내쫓았다.

“멈춰라!”

그때 무너진 성문 근처에서 가라말을 탄 장수가 지수신의 군대를 가로막았다.

고함소리에 놀란 군사들이 보니 흑치상지가 장창 한 자루를 비껴 든 채 무서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았다.

지수신도 비로소 흑치상지를 대면했다.

“내가 상여를 죽였네.”

지수신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 자네도 죽일 참일세.”

“……꼭 이래야만 하는가?”

흑치상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뜻이 다르니 어찌하는가?”

“누구의 뜻이 옳은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니던가?”

“옳고 그름이야 우리 손을 떠난 지 이미 오래가 아닌가. 다르니 싸울 수밖에.”

말을 마치자 지수신이 먼저 칼날을 세워 달려들었다.

 

숨 가쁘게 가해 오는 지수신의 공격을 흑치상지는 창끝으로 몇 차례 막아냈다.

하지만 그는 막아내기만 할 뿐 먼저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이를 알아차린 지수신이 불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놈 흑치야! 네 정녕 일생의 벗을 이따위로 대접할 게냐?”

격노한 지수신이 꾸짖는 말에 흑치상지는 깊은 한숨을 토했다.

“마지막으로 부여융을 한 번만 더 믿어보세.

그마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그땐 나도 자네와 뜻을 같이하겠네!”

“……이미 정한 마음이다. 자꾸 흔들지 말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둘도 없는 벗이 아니었나?

내게 먼저 기회를 한 번만 달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다시는 이런 소릴랑 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내 뜻에 따라주시게.”

흑치상지의 음성은 거의 애원하는 투였다.

누구의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던 지수신의 강직한 태도가 그제야 약간 누그러지는 듯했다.

“……날더러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나하고 같이 부여융의 밑으로 들어 가세나.”

“그건 싫네.”

지수신이 말을 분질렀다.

“기대하고 실망하기도 지겨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지수신은 이윽고 결심한 듯 칼을 거두며 말했다.

“임존성의 내 부하들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흑치상지는 기쁨에 겨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부가 있겠나, 염려하지 말게!”

“식솔들도 다 여기 있어.”

“알았네!”

한동안 말 잔등에 앉은 채로 흑치상지와 눈빛을 맞추던

지수신이 갑자기 말고삐를 잡아채며 뒤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흑치상지가 황급히 말을 달려 따라가며,

“이봐, 어디로 가? 가는 곳이라도 일러줘야지!”

하고 묻자 지수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팔을 휘저으며 더욱 빨리 말을 몰았다.

그가 달아난 곳은 임존성 북문, 뒷날 사람들은 방향으로 짐작해

고구려로 갔다고 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주류성에서 도망간 부여풍과 두솔성 에서 사라진 좌평 정무처럼 지수신도

그 이후 두 번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백제의 잔병이 토벌되고 난 뒤 손 인사는 군사를 거느리고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유인궤와 유인원은 그대로 웅진부성에 남았다.

당주 이치는 특히 유인궤에게 별도의 군사들을 맡기고 부여융을 도와

백제 전역을 진수하라고 명령했다.

참혹한 병화(兵火) 끝에 집들이 조잔(凋殘)하고 산천은 황폐하며 시체가 들판에 초개같이 깔려 있었다.

웅진도독부를 맡은 부여융과 진수사 유인궤는 당나라 군대와 투항한 의병들을 동원해

백제 전역에 대대적인 복구 작업을 일으켰다.

먼저 해골을 거두어 묻게 하고, 호구를 살펴 촌락을 다시 일구고, 관수를 임명해

유민들을 다스리게 하고, 도로와 교량을 다시 만들고, 제방과 연못을 재건하고,

농잠을 권하고, 빈민을 구제하고, 늙은이와 고아들을 양육하고,

당나라 사직을 세워 정삭과 묘휘를 널리 퍼뜨렸다.

백제는 지고 당의 변방이 새로 선 셈이었다.

의자왕을 따라 당나라로 끌려갔던 사람들도 다시 본국으로 돌아왔다.

전란에 지친 대부분의 백성들은 사직이야 누구의 것이든 우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며

좋아하고 기뻐했다.

사람 죽는 것만 보지 않아도 그것이 어딘가.

백성들은 바뀐 제도와 문물 아래에서 시름을 털고 다시금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신라였다.

당이 노골적으로 백제 강토를 탐하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삼아 귀국시킨 처사에 신라의 군신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부여융의 등장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이변이요 전혀 새로운 국면이었다.

불시에 허를 찔린 신라 조정에선 연일 어전회의가 열렸지만 뾰족한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갑자년(664년) 정월에는 상신 김유신이 풍병(風病)에 걸렸다는 비보가 대궐로 날아들었다.

법민은 편전에서 정사를 돌보다가 그대로 말을 타고 유신의 사저로 달려갔다.

임금은 말에서 뛰고 내관과 중신들은 뒤에서 허겁지겁 따라가는 웃지 못 할 풍경이 벌어졌다.

다행히 유신이 맞은 풍은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곧 어의들이 달려오고 금성의 이름난 의원들까지 벌 떼처럼 가세해 침과 약으로 병을 다스리긴 했으나

의원들은 당분간 바깥출입을 금하라고 입을 모았다.

유신은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기를 청했지만 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궤장을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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