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24장 장관의 사랑 [10]
(510) 24장 장관의 사랑 <19>
버튼을 누른 서동수가 호흡을 조정했다.
신호음이 울리고 있다.
깊게 마시고 길게 뱉기를 두 번, 그동안 신호음이 다섯 번 울렸다.
벽시계가 오후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저택으로 돌아와 바로 전화를 한 것이다.
그때 신호음이 끊기고 응답소리가 울렸다.
“웬일이세요?”
나오미의 웃음 띤 한국말,
발신자 확인 기능이 부착되고 나서 통화시간이 짧아졌다.
없었다면 아마도 모시모시 했겠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한 거요.”
서동수의 눈빛이 강해졌다.
“여긴 서울입니다.”
“저도 장관님 생각하면서 관사에서 혼자 술 마시고 있어요.”
나오미의 울림이 깊은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숨을 들이켠 서동수는 이 통화를 도청할 가능성이 있는 정보기관을 머릿속으로 열거했다.
CIA, 일본 정보부, 중국 정보국, 한국 국정원도 당연히 끼어있을 것이다.
그래야 열심히 일한 증거가 된다.
아마 나오미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겠지, 서동수가 말을 받았다.
“나오미 씨, 이건 사적 대담입니다.”
“저도 그래요, 장관님.”
“그럼 장관 호칭은 빼기로 합시다. 그런데 내가 몇 살 위더라?”
“오빠 소리 듣고 싶으세요?”
“장관보다는 낫네.”
“한국에서는 애인도 오빠, 남편한테도 오빠라고 부른다지요?”
“뭐, 룸살롱에서는 다….”
“술 드셨어요?”
“소주 두 병쯤.”
“여자하고?”
“오늘은 없었어요.”
“지금 숙소?”
“응, 응접실에 혼자 있어요.”
서동수의 가슴이 점점 벅차오르더니 마침내 얼굴이 붉어졌다.
사무치도록 그리워진 것이다.
옆에 앉아서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때 나오미가 말했다.
“보고싶어요.”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몸을 굳혔다.
눈을 치켜뜨고는 앞을 보았는데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는다.
나오미의 말이 이어졌다.
“같이 있고 싶어요, 오빠.”
“나오미.”
서동수가 갈라진 목소리로 불렀다.
“네 오빠.”
“조심해야 돼.”
그것은 서동수 자신에게도 한 말이다.
그때 나오미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빠도.”
핸드폰을 귀에서 뗀 서동수는 한동안 앞쪽을 보았다.
과연 이 관계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이것이 처음부터 일본 측이 만든 각본인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일어났다.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잘 호흡이 맞는 것을 보면 그렇다.
“흐흐흐.”
소파에 등을 붙이던 서동수의 입에서 문득 웃음이 터졌다.
어느덧 버릇이 되어있는 호사다마(好事多魔), 그리고 두 개 이상의 대비책,
이어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된다는 방어막이 쳐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여자는 처음이야.’
서동수의 머릿속에 그런 말이 솟구쳐 올라왔다.
소파에 머리를 기댄 서동수의 눈앞으로 돛단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흘러가는
나오미의 선조들이 떠올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따라왔던 나오미의 선조가 서동수의 선조를 몰래 살려주는 장면도 떠올랐다.
그렇게 얽히면서 살아온 것이 1천 수백 년이다.
그러자 서동수의 가슴이 편안해지면서 저절로 말이 나왔다.
“서둘 것 없어, 시간하고 같이 살아가니까.”
(511) 24장 장관의 사랑 <20>
다음날 오전 신의주로 날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안종관이 말했다.
“장관님, 나오미 씨는 조상이 백제계인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안종관이 파일을 서동수 앞에 놓았다.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라 있다.
“나오미 씨가 고등학교 때 쓴 글입니다.
고1 때 상을 받은 작문인데 보시지요.”
시선을 준 서동수에게 안종관이 말을 이었다.
“조상 이야기와 조국에 대한 생각을 썼습니다.
고1 때 작품이니까 꾸미지 않았겠지요.”
“….”
“그 동안 생각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완전한 일본인입니다.
일본에 대한 사랑과 긍지가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1000년 전에 바다를 건너와 조국에 정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파일을 응시하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내가 천천히 읽어보지요.”
안종관이 몸을 돌려 장관실을 나갔지만 서동수는 파일을 펴지 않았다.
읽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안종관은 나오미의 조국이 일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마도가 한국령이며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이야기 등은 립서비스일 뿐이다.
그런 말 100번을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나오미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서동수의 얼굴에 저절로 쓴웃음이 떠올랐다.
장치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장치를 내세워 모양을 만들었다면 일본은 나오미인가?
머리를 돌린 서동수가 창밖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에 비행기는 그냥 떠 있는 것 같다.
이제 이곳은 북한 땅이다.
문에서 가벼운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전영주가 들어섰으므로 서동수가 풀썩 웃었다.
방금 전영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영주가 앞에 인삼차 잔을 놓았을 때 서동수가 물었다.
“전영주 씨는 나에 대한 보고를 누구한테 하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전영주가 몸을 굳혔다.
전영주한테서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지난번 평양 초대소에서 전영주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서동수의 시선이 닿았을 때 성적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몸이 뜨거워졌으며 다리가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때 전영주가 말했다.
“네, 자치령 담당 비서 정오석 동지께 직보합니다.”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그건 내가 알면 안 되는 건가?”
“아닙니다.”
전영주가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비밀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요즘 나오미를 만나는 것 알지?”
“네, 장관님.”
“그것도 보고했나?”
“네, 했습니다.”
전영주가 눈도 깜박이지 않았지만 눈 밑이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서동수가 눈으로 옆쪽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래.”
잠자코 자리에 앉는 전영주를 보자 서동수는 심호흡을 했다.
아직도 탁자 위에는 나오미의 파일이 펴지도 않은 채 놓여져 있다.
“내가 나오미 만나는 거 어떻게 생각하나?”
서동수가 묻자 전영주는 이번에도 바로 대답했다.
“매력있는 여자더군요. 하지만 신의주 인민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9> 25장 격동의 한반도 [1] (0) | 2014.12.01 |
---|---|
<258> 24장 장관의 사랑 [11] (0) | 2014.11.26 |
<256> 24장 장관의 사랑 [9] (0) | 2014.11.22 |
<255> 24장 장관의 사랑 [8] (0) | 2014.11.18 |
<254> 24장 장관의 사랑 [7] (0) | 201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