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24장 장관의 사랑 [7]
(504) 24장 장관의 사랑 <13>
“어서 오세요.”
자리에서 일어선 나오미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동수를 맞는다.
오후 7시 정각인데 나오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경각의 밀실, 전에 서동수가 가끔 출입했던 곳이지만 다행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원탁에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종업원이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나오미가 주문을 맡겨서 서동수는 돼지고기와 생선, 소간 요리까지 나누어서 적당히 시켰고
술은 50도짜리 백주로 정했다.
중식 요리는 다양하다.
잘 시키면 한국인 입맛에도 딱 맞아서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종업원이 나가고 둘이 되었을 때 서동수가 나오미를 보았다.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 명화를 감상하는 시늉을 하면 대부분의 여자는 기뻐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의이기도 하다. 모양을 내고 나온 자신을 정중하고 은근하게
봐주기를 바라지 않는 여성은 없다.
나오미는 부드럽게 빛에 반사되는 진주색 투피스를 입었다.
어깨선이 부드럽고 허리가 파여서 몸의 곡선이 드러났는데 흰색 실크 셔츠 깃과 소매 끝에
레이스가 달렸다.
보기 좋은 귓불에서 진주 귀걸이가 흔들렸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걸치고 있다.
이윽고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름답군, 나오미 씨. 눈이 부시도록.”
“감사합니다. 장관님.”
나오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고 눈이 가늘어졌다.
매력적인 모습이다.
큰 눈, 우뚝 선 콧날, 조금 가는 것 같은 눈, 귀여운 콧등,
얇은 듯하지만 단정한 입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자꾸 보고 싶어지는 얼굴이다.
그때 종업원들이 요리를 가져왔다.
먼저 돼지고기 볶음, 먹음직스럽다.
“자,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접시가 놓인 원탁을 돌리면 요리가 제 앞으로 돌아온다.
백주를 잔에 따라 나오미 앞으로 돌려준 서동수가 술잔을 들었다.
“내 비밀 하나를 알려 드리지. 난 참을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여자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여자들한테 원한을 산 적이 없는 것 같아.”
“하하하.”
나오미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 내어 웃었다.
맑고 울림이 강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한 모금에 백주를 삼킨 서동수도 웃음 띤 얼굴로 나오미를 보았다.
“자, 절반쯤 공적이고 나머지는 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제 뒷조사는 다하셨지요?”
되물은 나오미가 백주를 한 모금 삼키더니 진저리를 쳤다.
그러고는 지그시 서동수를 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다.
“아니, 내가 왜 나오미 씨 뒷조사를?”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나오미 씨 경력은 알지요. 뒷조사라니? 재산이나 부채관계 말인가요?”
“제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것 아시지요? 모두 다섯 번을 했는데.”
술을 들이켠 서동수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둘은 아직 고기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나오미가 서동수의 표정을 보더니 이번엔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저 봐, 알고 계시는 것 같네.”
“나오미 씨.”
호흡을 가다듬은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 용건을 들읍시다. 내가 참을성이 많다고 했더니 시험하시려는 것 같군.”
“제 조상이 백제계예요. 백제 아시지요?”
숨을 멈춘 서동수를 향해 이제는 정색한 나오미가 말을 이었다.
“대마도에 정착했다가 본토인이 되었죠. 그건 우리 가문에서만 아는 비밀입니다.”
(505) 24장 장관의 사랑 <14>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나오미를 보았다.
백제계라니? 대마도? 조센징으로 불린 한국계와 다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때 나오미가 다시 물었다.
“놀라셨어요?”
“당연히.”
진정시키려고 술잔을 들었던 서동수가 마시는 것을 단념하고 내려놓았다.
그때 일본 천황이 백제계라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 관계인가?
인간은 단 몇 초 동안에도 글로 쓰면 몇 페이지가 될 분량의 생각을 한다.
화면으로 처리하면 수십 장의 장면이 된다.
서동수가 숨을 내뿜고 나서 물었다.
“나오미 씨, 그 이야기를 하려고 날 만나자고 한 거요?”
“그래요.”
그 순간 서동수가 다시 숨을 멈췄다. 나오미가 한국어를 했기 때문이다.
잘못 들은 것처럼 눈만 껌벅이는 서동수를 향해 나오미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대대로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요.
아마 천 년도 더 되었을 것 같네요.
물론 결혼도 일본계하고 할 때도 있었지만 곧 동화가 되었지요.”
“…….”
“한국어를 잊은 가문도 많아요.
우리 진(眞)씨 가문처럼 여자들도 결혼 전까지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 가문은 드물 걸요?
언제부터인가 비밀로 했기 때문이에요.”
서동수는 말 내용보다 나오미의 한국어 자체에 홀린 상태다.
그래서 내용은 나중에 머릿속에 박힌다.
나오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제 아버지는 지금도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믿고 계세요.
제8대 선조가 대마도에서 규슈로 옮기셨는데 그때에도 대마도는 조선령이었다고 하세요.”
“그런데.”
그제야 서동수가 끼어들었다.
그 사이에 종업원들이 요리를 놓고 갔지만 둘은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요리접시는 한 번도 돌지 않아서 처음 놓인 그대로다.
“일본 정부는 그 사실을, 그러니까 나오미 씨가 백제계, 조선인, 아니 한국계라는 걸 압니까?”
“알겠죠.”
“한국어를 한국 사람처럼 하는 것도 알겠군요?”
“그럼요.”
“그 전에 왜 우리한테 숨겼습니까?”
“숨기다뇨?”
나오미가 정색했다.
“숨긴 적 없습니다.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이런 기회를 만들지 않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지만 찜찜한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나오미 면전에서 한국어로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가다듬은 서동수가 혼잣말부터 했다.
“하긴 한국인이라고 해도 이완용 같은 인간도 있으니까.”
“야스쿠니 신사에 제 할아버지가 계세요.
할아버지 형제 한 분하고 친척까지 세 분이.”
“애국자 집안이군.”
“정부에서도 그런 것을 고려해서 저를 신의주로 보낸 것 같습니다.”
서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일본 천황이 백제계인데 더 말할 것이 없다.
아마 백제 시대부터 계산해도 수십만 명이 풍랑을 만나 대마도로,
본토로 흘러갔을 것이고 이주도 했었겠지.
그래서 일본인이 된 것이다.
혈통으로 따진다면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7년 동안 왜군이 뿌린 씨만 해도
한반도에 얼마나 퍼져 있을 것인가?
감동할 것 없다.
그때 나오미가 말했다.
“저는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6> 24장 장관의 사랑 [9] (0) | 2014.11.22 |
---|---|
<255> 24장 장관의 사랑 [8] (0) | 2014.11.18 |
<253> 24장 장관의 사랑 [6] (0) | 2014.11.13 |
<252> 24장 장관의 사랑 [5] (0) | 2014.11.13 |
<251> 24장 장관의 사랑 [4] (0) | 2014.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