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발정기 6
“여기선 도저히 안 되겠어요.”
크림이 1인용의 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봉수는 헉헉 숨만 몰아쉰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반바지를 입고 웃옷을 끌어내렸다.
“죄송해요.”
그녀가 먼저 후다닥 영화방에서 빠져나갔다.
봉수는 한동안 스크린과 1인용 의자들을 번갈아 보았다.
“괜히 좋다가 말았죠?”
영화방에서 나오니 크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있었다.
달아오른 몸을 식히라는 모양이다.
“괜찮아. 첫 경험이라는 게 원래 힘들어.”
“힘든 게 아니라 보다 근사한 데서 주고 싶었어요.”
화장을 하지 않은 크림의 얼굴. 땀이 흐른 뒤 더 맑아졌다.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들과는 달랐다.
크림은 아직 소녀 티가 역력했다.
봉수는 아이스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달아올랐던 속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래도 만지는 건 돼요.”
크림이 홍조 띈 얼굴로 봉수를 올려다보았다.
“됐어.”
“삐쳤어요?”
그녀가 봉수의 팔짱을 꼈다.
그리곤 천천히 에스키모방이라는 곳으로 유도했다.
“오늘 여기 있는 방들 모두 다녀볼거야?”
“저기가 열 식히는 데 짱이거든요.”
두 사람은 에스키모 방으로 들어섰다.
벽면 전체에 설원 풍경을 담은 사진이 벽지를 대신하고 있었고
한쪽 벽면 전체에서 에어컨 바람이 추울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 자주 왔어?”
“동대문에 올 때 가끔.”
그녀가 주저앉았다. 봉수가 곁에 앉자마자 그녀는 봉수의 손을 찾아 쥐곤 다리 사이로 끼었다.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열기가 식어버렸는데도 그녀의 다리 사이는 여전히 따스했다.
봉수는 슬그머니 그녀의 웃옷 속으로 다른 한 손을 밀어 넣었다.
차가움 때문인지 그녀의 유두가 딱딱하게 돌기되어 있었다.
“너 혼자 여기 다닌 거 아니지?”
“물론이죠.”
봉수는 두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유두는 더 딱딱해졌다.
다리 사이도 황토방이나 영화방에 있을 때보다 더 뜨거워졌다.
추위 때문인가?
크림이 앉은 그대로 다리를 쫙 벌렸다.
봉수는 허벅지와 반바지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다.
그녀의 중심이 미끈거렸다.
“여기가 근사한 데야?”
“몰라요.”
지금까지 망설였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난 여기가 좋아요.”
그녀의 감은 눈이 떨렸다. 마치 지난 날을 추억해 보는 눈이었다.
“남자랑 다녔어?”
“고등학교 때 자주 왔어요.
그래도 나를 이렇게 많이 허락하는 건 오빠가 처음이에요.”
봉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녀의 반바지를 벗기고 자신도 반바지를 벗어버렸다.
몸의 외부는 차가운데 속은 뜨거웠다.
크림은 찜질방으로 들어온 뒤 계속 유혹하다가 이제야 몸을 열고 봉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봉수의 중심이 미끈거리며 크림의 몸으로 들어갔다.
크림의 몸은 좁고 깊었다.
봉수의 중심이 들어갈 때 크림은 이를 악물었다.
‘이게 현실인가?’
봉수는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섹스를 하고 있는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아파요.”
크림이 봉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러면서도 봉수에게 더욱 밀착했다.
봉수는 비밀로 가득한 여자의 몸을 헤집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섹스를 하기까지는 적어도 서로에 대해 절반쯤은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수가 허리를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봉수에게 더더욱 가깝게 달라붙었다.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만 할까?”
“아뇨.”
봉수도 강한 압박을 느꼈다.
만약 그녀가 순결한 여자라는 게 사실이라면 처녀와의 섹스는 봉수도 처음이었다.
그런 기분 때문이었을까.
봉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정하고 말았다.
여자와의 섹스에서 먼저 사정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끝난 건가요?”
봉수의 움직임이 없자 크림이 봉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상하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봉수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때 두런두런 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후다닥 반바지를 입었다.
봉수는 그 와중에도 바닥을 살폈다.
처녀의 상징이라는 피가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 두 사람은 봉수와 크림을 보고 머뭇거렸다.
그때 봉수가 크림의 손을 잡고 나왔다.
“오빠 내가 처년지 아닌지 의심했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처녀랑은 처음이거든.”
“남자들은 어떨 때보면 완전히 애라니까.
처녀막이라는 거 보통 생활하면서 다 터져요.
자위하다가도 터지고….”
“자위도 해?”
“안 하는 애도 있나요?”
그녀가 눈을 흘겼다.
“이제 가야죠.”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3시가 가까웠다.
두 사람은 각자 목욕탕으로 헤어졌다.
욕탕으로 들어온 뒤에야 봉수는 걱정이 됐다.
그 동안 여자의 몸 안에서 사정을 한 적이 없었다.
임신 가능한 날이라고 귀뜸해 주면 콘돔을 썼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사정을 하고 말았다.
몸 안과 몸 밖의 온도 차이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거 돈 한푼 못 벌었는데 코 꿰어서 애 아빠 되는 거 아냐? 물어보고 하는 건데….’
봉수는 마음이 뒤숭숭했다.
찜질방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아요.”
“뭘?”
“나 지금 가장 안전한 때니까요.”
크림은 그 말을 해놓고 깔깔거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다.
‘가스나’의 주인은 젊은 여자였다.
귀걸이를 양 귓볼에 네 개씩 했고 아랫입술에도 피어싱을 해 구슬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찾으셨다구요?”
그녀는 머리를 가닥가닥 볶아 일일이 늘어뜨려 마치 털실이 매달려 있는 듯했다.
후텁지근해 보였다.
봉수가 명함을 내밀었다.
“코지 속옷 디자인 개발 팀?”
그녀가 명함과 봉수를 번갈아 보았다.
크림은 매장에 걸린 속옷을 구경했다.
“그런데요?”
“도움을 청할까 해서 왔습니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봉수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방문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 잠깐만…”
크림이 느닷없이 봉수와 그녀 사이에 끼어 들었다.
크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매장 안쪽 탈의실로 들어갔다.
봉수가 크림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탈의실 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탈의실은 속옷이 빽빽이 진열된 벽 뒤였다.
봉수는 멀뚱하니 서서 벽 뒤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쇼핑을 나온 여자들이 가게 앞에서 팬티를 둘러보다
봉수를 보곤 이내 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광폭 밴드 없어요?”
몸매가 글래머인 한 여자가 매장 직원에게 물었다.
독한 향기가 물씬 풍겼다.
처음엔 그 향기 때문에 머리가 다 어지러울 정도였는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묘하게 여자와 향기에 끌렸다.
“광폭 밴드 색이 이게 단가요?”
봉수는 그제야 그녀가 손에 들어 있는 팬티를 보았다.
허리라인이 혁대를 두른 것처럼 굵었는데 아랫부분만 아니었다면
반바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여섯 가지가 더 있습니다.”
봉수는 광폭 밴드라는 말을 마음에 담았다.
그 매장에서 만든 광폭밴드 팬티는 허리라인의 색이 모두 6가지였다.
다양하다는 건 품이 많이 든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 매장에서도 꽤 다양하네.’
“색깔별로 네 장씩 주세요. 싸이즈는 95로 주시구요.”
그녀는 팬티만 24장을 샀다.
모두 4만 4천원. 한 장에 2천원 꼴이다.
원단 값에다가 디자인 비용, 봉제비, 인건비, 운송비도 맞추기 힘든 값 같았다.
크림과 매장의 주인 여자가 탈의실에서 나왔다.
매장 주인 여자가 씩씩거렸다.
“잡놈의 새끼들이야!”
그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봉수는 크림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당신보고 그런 거 아니에요.”
매장 여자가 봉수를 보고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뭘 도와 드려요?”
그녀가 의외이다 싶을 정도로 순순히 대답했다.
봉수는 그저 의아했다. 크림이 곁으로 다가와 섰다.
“실은 내가 입은 거 언니한테 보여 줬거든요.”
봉수는 그제야 매장 여자의 행동을 이해했다.
“얘가 입은 건 사실 ‘비라’에서 최초로 출시된 게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첫 번째고 ‘비라’가 두 번째죠.
그런데 디자인은 내거랑 똑같아요. 보여드릴게요.”
그녀가 앞서고 크림과 봉수가 뒤를 따랐다.
“저깁니다.”
‘가스나’의 매장 여자가 봉수와 크림을 데리고 간 곳은 평화시장 건물 꼭대기였다.
옥상 문을 열고 나가자 맞은 편에 제법 큰 규모의 가건물이 보였다.
큰 옥탑방인 셈이었다.
‘가스나’의 매장 주인이 두 사람을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가스나’의 작업실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겉보기와 달리 시원했다.
봉수는 내부가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미싱 소리와 먼지로 가득할 거라고 상상했다.
실내엔 젊은 여자들이 가위로 원단을 재단하고 있었다.
구석 쪽에 재봉실이라고 있었지만 조용했다.
‘가스나’의 여주인이 두 사람을 먼저 디자인실이라는 명패가 붙은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공장은 작지만 여러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디자인실로 들어가자
벽면 가득 빽빽이 속옷 디자인이 걸려 있었다.
그 맞은편에 컴퓨터가 놓여져 있었고 중앙에 작업대가 있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로 저 작품입니다.”
그녀가 벽을 가리켰다.
그건 크림이 입고 있는 속옷의 색깔과 달랐지만 디자인 그대로였다.
“원단은 뭘 사용하시는 거죠?”
“햄 원단이에요.”
“햄 원단이면 가격이 꽤 나가죠?”
“일반 원단보다 나일론이 많이 함유되어 조직이 치밀하고 탄력적이긴 하지만 사실 별 차이가 없어요.
그리고 이 원단의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커팅해서 쓸 수 있어서 봉제 없이 원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옷 밖으로 팬티라인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봉수는 열심히 메모했다. 속옷에 대해 공부하려면 원단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봉수는 원단 공장의 위치와 담당자들에 대해서도 메모를 했다.
작업 과정도 보았고 속옷 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아이디어도 여럿 메모할 수 있었다.
그 중 팬티의 뒷 라인을 아래로 내려 여성이 배꼽티나 골반 바지를 입었을 때 팬티의 뒷 라인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법과 그녀만 사용한 밴드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하면 손해잖아요.”
“손해는 손해죠. 혹시 아나요? 코지에서 하청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요즘 워낙 불경기라…”
봉수는 그제야 그녀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어차피 내가 ‘비라’랑 싸워선 승부가 나질 않아요.
그나마 어렵게 꾸려나가는 이 공장마저 문닫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코지’라면 가능할까 싶어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꼭 내 대신 복수를 해 줘야 해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런 성격이었다.
‘원단가를 낮추고 색상과 팬티 밴드의 폭을 조금 더 늘리면 비라보다 나은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겠다.’
봉수는 크림과 그녀의 공장을 나오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어요?”
“그런대로…. 고마워.”
“고맙긴요.
내가 한 게 뭐 있어야죠.
저 여자 성질 달아오르게 박박 긁어놓은 게 전분데. 우리 집으로 갈래요?
어차피 내일 쉬잖아요?”
“그, 그래.”
“걱정하지 마세요. 난 남자 구속하는 거 질색이니까.
나 역시 구속 받는 거 싫어요.”
크림이 봉수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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