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1장 발정기 3

오늘의 쉼터 2014. 11. 15. 20:19

제1장 발정기 3

 

 

 

“짜식 그럴 듯한데…”

 

김중경은 봉수의 책상 앞에 앉아 그의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주변의 전등은 모두 꺼진 상태였다.

봉수의 책상 모니터에서 발산하는 빛이 섬처럼 떠 있었다.

 

“20대 초반 여성의 속옷 선호도라…”

 

중경은 수치를 표로 만들어 놓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페이지를 넘기자 여자들에게서 인터뷰한 내용들을 취재해 날짜별로 모아 놓은 화면이 나타났다.

다음으로 색깔 선호도, 형태 선호도, 속옷 재질의 선호도….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지.’

 

중경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졌다.

중경이 보기에 봉수는 허술하고 둔했다.

그런데 의류사업부로 배속된 15명의 신입사원들 중에 가장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경은 봉수가 작업해 놓은 내용들을 자신의 홈피로 전송했다.

봉수 컴퓨터를 끈 뒤 의자에서 일어서려는데 사무실 불이 갑자기 켜졌다.

중경이 놀라 사무실 입구 쪽을 바라보니 송림이 서 있었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송림이 클리어 파일을 손에 들고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중경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선배 요즘 힘든 일이 있나 봐요?”

 

중경은 인사치레로 물었다.

그 말에 송림이 흠칫 놀라 잠깐 머뭇거렸다.

 

“요즘 일이 많잖아요.

봉수 씨랑 진국 씨는 의류 연구팀 신입들하고 술 마시러 나가던데 안 가신 모양예요.”

 

송림이 자신의 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그녀 자리는 봉수 자리에서 대각선 방향이었다.

 

“정식 회식 자리도 아닌데요,

뭘. 그리고 술 마실 시간이면 외국 잡지책 한 권을 더 보겠습니다.”

 

중경은 가방을 어깨에 걸며 송림을 바라보았다.

형광등 불빛에 그녀의 쇄골이 하얗게 빛났다.

빛은 쇄골을 따라 가슴 쪽으로 흘러내렸다.

빛은 다시 가슴 골을 파고들었다.

중경은 얼른 눈을 떼었다.

 

“중경씨, 범생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 봐요?”

 

“범생은 무슨 범생입니까. 전 다만 열심히 할 뿐입니다.”

 

“수석 입사에다가 3개 외국어 실력이면 범생이 아닙니까?”

 

송림이 중경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중경은 무표정했다.

 

“그래야, 똑같은 병아립니다.”

 

중경은 사무실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송림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 말은 입사 동기들 모두 똑같이 시작하는 거라는 말이죠.”

 

중경은 자신의 말투가 차가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변명하듯 말했다.

 

“게다가 전 봉수나 진국이보다 창의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중경은 고개만 돌리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송림은 디자인 팀장이다.

그녀도 인사고과에 평점을 매긴다는 말이었다.

 

“중경씬 솔직하군요.”

 

송림이 중경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와 탄력 있는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밤새 지치지 않을 정력의 표상으로 보였다.

 

“전 솔직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럼…”

 

중경이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송림이 엘리베이터 홀 쪽으로 걸어가는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중경이 엘리베이터를 탈 무렵 그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저씨, 쌍핀데 술 좀 사 줄래? 여기 교보 스넥바야.’


송림은 샤워 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뒤돌아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의 나신을 들여다 보았다.

차가운 물이 목을 지나 가슴을 타고 사타구니로 흘러 들었다.

전 같으면 찬물로 샤워조차 하지 못했을 텐데 한약을 먹은 뒤로 차가운 물로만 샤워를 하고 싶었다.

확실히 몸이 뜨거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송림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사타구니로 향했다.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땐 모르겠는데 혼자 남겨지면 온통 남자의 몸이 생각났다.

회사에서도 잠시 쉴 때면 남자들에게만 눈길이 갔다.

느닷없이 남자들의 알몸이 떠올라 화장실엘 가보면 전에 없이 분비물도 많이 나왔다.

 

확실히 한약을 복용한 뒤부터 몸이 변했다.

 

송림은 사타구니 깊숙이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차가운 물이 흘러드는 데도 몸은 좀체 식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교통이 있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로 몸 속은 분비물로 흥건했다.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나와 거울을 바라보았다.

유두가 건강하고 단단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송림은 머리에만 수건을 두른 채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폭신한 의자의 감촉이 전신에 느껴졌다.

 

컴퓨터의 모니터가 밝아지며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얼굴.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헤어지자고 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송림은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의 얼굴도 지워버리고 여름 풍경이 그려진 사진으로 스크린 세이버를 바꿀 생각이었다.

그녀는 우선 남자의 메일 주소를 찾아냈다.

영원히 삭제하기 전에 이유를 묻고 싶었다.

마지막 메일을 썼다.

 

‘마지막으로 물을 게. 도대체 이유가 뭐야?’

 

메일을 보내고 남자의 얼굴을 삭제하고 바다가 있는 풍경으로

스크린 세이버를 바꾸었을 때 문자 메시지가 떴다.

 

‘버디, 강. 비밀번호 1234’

 

버디에 접속해 강이라는 방으로 들어오라는 그의 메시지였다.

송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헤어지자는 말을 한 뒤로 송림이 보내는 메일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그였다.

메일을 보내자 마자 바로 반응을 보인 그의 속내가 궁금했다.

 

‘정말 이유가 알고 싶어?’

 

그가 ‘강’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넌 늘 둔했어. 넌 내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재미없었어.’

 

송림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에게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자신이 미웠다.

 

‘넌 섹스할 때 밋밋해. 마치 나무토막 같지. 잘 생각해 봐.’

 

그가 그 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갔다.

송림 혼자 바다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를 맞이할 때마다 반듯하게 누워만 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게 이별의 이유란 말인가.

송림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갈증이 일었다.

냉장고 문을 거칠게 열었다.

텅텅 비어 있었다.

 

송림은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맨몸에 원피스를 걸치고 오피스텔을 나와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캔 맥주 다섯 개를 카운터로 가져갔다.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송림의 젖은 모습과 옷 밖으로 돋아난 유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팀장님!”

 

놀란 목소리의 주인공은 채연이었다.

그녀도 송림의 옷매무새와 카운터 위의 맥주를 번갈아 보았다.

 

“이, 이 동네 사셨어요?”

 

채연의 질문에 송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한번도 못 만났죠?”

 

송림은 갑자기 채연이 가까운 친구처럼 여겨졌다.

 

“같이 한잔해요.”

 

송림은 기어이 채연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끌어들였다.


“나, 여관 같은 데 싫어.”

 

중경은 조수석에 앉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중경은 소녀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소녀 역시 말하지 않았다.

잘 해야 열 여덞쯤 먹었을 나이다.

그저 쌍피라는 아이디로만 알고 있다.

 

“나 인생 망치기 싫다.”

 

“내숭 안 떨어도 돼. 아저씨 같은 사람들 많이 만났으니까.”

 

소녀는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소녀의 볼에 젖살이 남아 뽀얗다.

중경은 피식 웃는다.

 

“그냥 차에서 해도 돼.”

 

소녀의 손이 중경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어린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능숙했다.

 

“치워!”

 

중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웃긴 아저씨네. 그럼 그 동안 나 만날 때 준 돈은 뭐야?”

 

소녀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

맞고를 치다 소녀가 먼저 술을 사달라고 했고

자정 무렵 홍대 앞이나 신촌에서 만나 몇 번 술을 마시긴 했다.

소녀는 헤어질 때마다 얼마씩의 돈을 빌려갔다.

중경은 돈을 돌려 받지 않았고 소녀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녀의 손이 거침없이 중경의 물건을 잡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중경이 소녀의 손을 떼어냈다.

 

“아저씨, 나 유난 떠는 거 싫거든.

그냥 쿨하게 한번 해.

죄책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어.

나중에 볼 것도 아니잖아.”

 

“쌍피, 남자들이라고 해서 전부 그런 거 아냐.”

 

“그럼, 아저씨 게이야?”

 

중경이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님 내가 편해?”

 

소녀가 중경 쪽으로 몸을 돌려 가깝게 다가들며 물었다.

소녀의 말을 들으니 수긍이 갔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편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두 세 시간 내내 소녀의 이야기만 들을 때도 있었다.

 

“늙은 아저씨들이 가끔 그런 소리를 하긴 하는데… 혹시 변태?”

 

소녀가 입을 막고 키득거렸다.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다 해 줄게. 대신 여관은 안돼.”

 

소녀가 중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입으로 해줄까?”

 

중경이 눈을 부라렸다.

 

“그럼 도대체 뭐야?

그냥 날 동정한 거야?

전에도 말했지?

나 그런 거 싫다고.

그러니까 뭐든 요구해.

요구할 게 없으면 이제 그만 만나.”

 

소녀가 화를 냈다.

당당하기도 했다.

소녀는 반팔 니트 티를 훌러덩 벗어버렸다.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소녀의 앞가슴을 핥고 지나갔다.

소녀는 치마도 벗어버렸다.

우유냄새가 났다.

 

“자 가져!”

 

소녀가 브래지어 호크를 풀렀다.

제법 풍성한 가슴이 출렁 쏟아져 나왔다.

소녀는 중경을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샴푸냄새가 차안에 가득 찼다.

 

“쌍피야, 보는 걸 더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야.”

 

말해놓고 보니 자신은 그런 성적 취향인 듯했다.

 

“웃기는 소리. 꼰대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늘 헛소리더라.”


크림은 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봉수도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았다.

 

“저, 서울 야경을 보는 거 처음이에요.”

 

크림이 신이 난 듯 말했다.

말할 때마다 한길로 묶은 머리가 출렁거리며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

 

“나도 이런 스카이라운지는 처음이야.”

 

40층 높이의 호텔 스카이라운지였다.

그녀가 일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와 무작정 걷다가 이곳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서울에 사니까 오히려 지방에 사는 사람들보다 못 가본 데가 더 많아요.

유람선도 못 타봤고, 63빌딩에도 한번도 못 가 봤어요.

서울랜드도 못 가봤구요.”

 

“나는 촌놈인데도 못 가봤어.”

 

“촌 어디요?”

 

“강원도 고성. 휴전선하고 가까운 동해 바다.”

 

“바다…”

 

크림이 신음하듯 봉수의 말을 받았다.

봉수가 그녀를 달콤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특히 주문을 받고 그 주문을 반복해서 말할 때 힘없이 미끄러지는 말투가 봉수의 가슴을 흔들곤 했다.

채연에게선 느끼지 못할 매력이었다.

 

“언제 바다에 한번 가요.”

 

그녀가 말해 놓고 얼굴을 붉혔다.

 

“이름도 모르는데?”

 

“전에도 말했는데… 송화예요.”

 

봉수는 그녀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

 

“왜요, 지난 번에 그 일 있었을 때 제가 알바 하는 가게랑 이름 말씀드렸었잖아요.”

 

그 일? 봉수는 크림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지 못했다.

 

“두 남자가… 저를… 행운슈퍼 앞 길에서 말이에요.”

 

행운슈퍼라면 봉수의 집 앞 슈퍼였다.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많이 취하셨는데 그래도 어떻게 그런 일이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때 그 남자들이랑 싸우는 바람에 휴대폰이 깨졌잖아요.”

 

그 말에 봉수는 비로소 그 일이 떠올랐다.

신입사원 환영 파티를 했던 날이었다.

그날 형편없이 취해 집으로 가다가 객기로 어떤 남자들과 싸웠던 기억이 났고

여자가 곁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던 장면도 가물가물 떠올랐다.

 

“이제 기억 나세요?”

 

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데이트를 쉽게 받아들인 이유가 분명했다.

그녀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었다.

봉수는 기분이 괜히 센티해졌다.

송화와 만난 게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크림이라는 그만의 이름이 그녀에겐 더 어울렸다.

 

“난 코지 신입사원이야.”

 

“속옷으로 유명한 회사잖아요. 거기 옷 꼭 입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느 회사 거야?”

 

“그냥 동대문에서 산 거예요.”

 

“그냥 잡표?”

 

“그런 거죠. 그래도 꽤 편해요.”

 

“뭔지 궁금하네.”

 

“보여 드릴까요?”

 

그녀가 느닷없는 제안을 했다. 봉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하세요?”

 

봉수는 문 잠금쇠가 단단히 걸렸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의 제안이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매우 진지했다.

봉수는 속옷을 보여주겠다는 그녀 때문에 당황했다.

농담으로 건넸는데 그녀는 진지하게 반응했다.

 

“어떡할까요?”

 

봉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자 화장실 안이었다.

호텔 화장실이라 봉수의 자취방보다 으리으리했다.

 

봉수의 농담에 그녀가 먼저 화장실을 가리켰고 얼떨결에 여자 화장실까지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

좁은 공간이라 그녀의 향기가 봉수의 코를 찔렀다.

갑자기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봉수는 깜짝 놀라 변기를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그냥 저절로 물이 내려지는 모양이네.”

 

봉수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여자 화장실에 여자와 둘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남자 화장실은 안 그래요?”

 

“소변기 앞에 서면 물이 나오긴 하는데…”

 

“여자 화장실도 마찬가지에요.”

 

“남자 화장실이야 소변을 보고 그걸 씻어내는 거지만…”

 

“오줌 누는 소리 안 들리게 해주는 거죠.”

 

봉수는 변기 뒤쪽에 센서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벗을까요?”

 

그제야 봉수가 크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있었다.

봉수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니, 나는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건데…”

 

봉수는 목까지 낮추고 속삭이듯 말했다.

봉수는 그녀에게서 얼른 눈을 뗐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왔죠.”

 

크림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단추를 끄르고 팔을 빼내고 바지의 호크를 풀고 다리를 빼내는 사각거림이

봉수의 귀에 낱낱이 들려왔다.

 

“보세요.”

 

당돌하다. 처음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남자 앞에서,

그것도 공공화장실에서 옷을 벗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봉수가 머뭇거리자 크림이 봉수의 팔을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봉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한 팔 거리에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두 명의 여자가 화장실로 들어왔다가 화장을 고치는 지 한동안 수다를 떨다가 나갔다.

 

봉수는 그 동안 천천히 그녀의 속옷을, 몸을, 눈을, 머리를 마음에 새기듯 바라봤다.

그녀가 모델처럼 뒤돌아 섰다.

팬티는 T자형이었는데 엉덩이를 감싼 부분이 ‘코지’에서 생산하고 있는 형태보다 넓었다.

라인을 따라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고 그 수놓은 무늬가 사타구니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흰 엉덩이가 손톱에 금방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은 싱싱했다.

 

“전혀 싸구려 같지 않은데…”

 

“싼 거예요. 한 벌에 8천 원인가…”

 

여자 속옷이라곤 ‘코지’에서 생산한 걸 본 게 전부였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여자들의 속옷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섹스를 할 때에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크림이 입고 있는 연한 핑크 빛의 속옷은

몇 만원 대의 ‘코지’ 속옷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만져봐도 돼?”

 

“만져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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