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1장 발정기 2

오늘의 쉼터 2014. 11. 15. 06:26

제1장 발정기 2

 

 

 

기획실 차 실장의 손이 슬그머니 치마 안으로 들어왔다.

 

그 손이 거침없이 팬티 쪽으로 올라가려 할 때 채연이 손을 잡았다.

 

“성 채연이라고?”

 

“네.”

 

채연은 그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맞은 편엔 지원 과장과 진국 그리고 봉수가 앉아 있었고 그들 곁에 모델들이 앉아 있었다.

 

차 실장의 손은 집요하게 치마 속을 파고들었다.

채연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느라 무표정하게 그의 손길을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손은 허벅지를 비집고 들어오는 데 얼굴은 태평했다.

 

“이번에 속옷 착용감들은 어땠어?”

 

차 실장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깊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 땀이 나는지 미끈거렸다.

채연은 허벅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실장님, 최상이에요.”

 

과장 옆에 앉아 있던 다희가 애교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국과 봉수는 맥주잔을 들어 마시며 상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 들어온 신입이지?’

 

채연은 봉수를 바라보았다. 샤프한 맛은 없지만 착하고 우직해 보였다.

무엇보다 매끈하고 큰 코가 마음에 들었다.

진국은 능글맞아 보였다.

채연은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을 살피는 자신이 한심했다.

차 실장의 손은 이제 속옷을 뚫고 둔부 쪽으로 접근했다.

 

‘미친 척 하고 한번 주고 말아?’

 

채연은 잠시 과장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에 발린 소리들 말고,

이번 속옷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에 중요한 사활이 걸린 문제야.

그러니까 솔직한 느낌들을 말해줘야 한단 말야.”

 

손은 여자의 속옷 속에 집어넣고 입은 회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채연은 그가 역겨웠다.

그래도 그의 결정에 따라 모델이 정해진다는 생각에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손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채연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1차로 소주를 한잔 걸치긴 했지만 술 취한 정신으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채연은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아 빼내곤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차 실장은 모른 척했다.

능청스럽게 바지에 손가락을 쓱쓱 비볐다.

채연은 화장실 입구에 서서 차 실장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달려가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채연은 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담배를 꺼냈다.

잠시 후 다희가 들어왔다.

 

“너 아까부터 왜 그래?”

 

다희가 거울 속의 자신을 살피며 물었다.

 

“실장이 자꾸 추근대잖아.”

 

“한번 그냥 눈 감고 줘라. 생긴 건 껄떡대게 안 생겼는데 말야.”

 

다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올해 새로 들어온 신입 애들 귀엽지?”

 

다희는 채연의 고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울만 바라보았다.

 

“내 옆에 앉은 진국씨 말야.”

 

“느끼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진국이던데, 매너 좋지, 그만하면 잘 생겼지.”

 

“실장도 매너는 좋지.”

 

채연은 피식 웃으며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껐다.

 

“그러지 말고 한번 줘라.”

 

채연은 눈을 흘기며 다희를 노려봤다.


“봉다리, 우리도 3차 가자.”

 

진국은 봉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까지 봉다리라고 부를래?”

 

“봉다리를 보고 봉다리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 깜장 봉다리, 노란 봉다리….”

 

진국이 낄낄거렸다. 봉수는 슬그머니 진국의 팔을 잡아 내렸다.

 

“너는 어떨 때 보면 옛날 일본 샐러리맨 같아.

니가 그렇게 회사에 목숨 걸어도 우리 목숨은 10년이야.

삼팔선 되면 그땐 눈치 보여서 나가야 된다고.”

 

“그때까지라도 잘 버텨야지. 그래야 퇴직하믄 뭐든 할 거 아냐.”

 

“야, 야. 쉰 소리 마라.”

 

진국은 봉수를 이미 택시 안으로 구겨 넣었다.

 

“직장 생활 10년? 결혼하고 애새끼 생기고…

서울 바닥에서 아파트라도 살 수 있을 거 같아?

천만에. 돈 벌려면 부동산 쪽을 노려야 돼.

그래서 진작에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딴 거잖아.

설령 아파트 장만했다 치자.

누가 도와주지 않은 다음에야 평생 은행 융자 갚다가 인생 쫑나지.

난 그렇게 안 산다.”

 

봉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실장하고 사리진 채연의 얼굴만 떠올랐다.

 

택시는 성남의 한 성인나이트 클럽 앞에 멈추었다.

 

“또 여기냐?”

 

“돈 많이 안 들고 재수 좋으면 킹카들하고 부킹할 수 있고 말만 잘하면

그냥 한 코 먹을 수 있고 좋잖아.”

 

“유부녀들이잖아.”

 

“그러니 더 부담이 없지. 연애하자고 달라 붙어 봐라. 골치 아프다.”

 

진국은 봉수의 손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룸으로 들어갔다.

진국은 능숙하게 팁을 두둑이 건네고 부킹을 부탁했다.

양주 한잔 비울 무렵 두 여자가 들어왔다.

봉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국 역시 눈치가 별로였다.

 

“나중에 봅시다.”

 

그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여자들을 내몰았다.

봉수는 그의 그런 뻔뻔함이 가끔은 부러웠다.

다시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곁에 앉은 여자가 채연을 쏙 빼 닮은 때문이었다.

진국 역시 곁에 앉은 여자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아가씨처럼 보여도 유부녀들이었다.

 

“… 노 부자네 집에 빨리 가야 소작을 얻는데 이 동생 놈이 방에서 도무지 안 나오는 거야.

형이 화가 나서 방문을 와락 열어 젖혔는데 동생 놈이 지 마누라 배 위에 있는 게 아니겠어.

서로 멀쭘해졌지. 동생 왈, 형님 허셨소?

형님 왈, 허고 왔다. 언능 해라.”

 

진국은 입을 열었다 하면 음담패설이다.

여자들이 깔깔거렸다.

여자들이 웃으면 2차까지 무난했다.

진국의 손은 곁에 앉은 여자의 허벅지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봉수는 곁에 앉은 여자와 술잔만 부딪혔다.

 

진국과 반반씩 술값을 계산하고 나오니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국아, 나는 그냥 갈란다.”

 

“병신 같은 자식, 굴러온 떡을 걷어찬다고? 혹시 너 설마 아까 그 채연이 때문에?”

 

“아냐, 임마!”

 

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두 여자가 다가와 과감히 팔짱을 꼈다.

한 두 번 다녀본 솜씨가 아니었다. 봉수도 출렁이며 어깨에 다가든 여자의 살이 싫지 않았다.

 

나이트 클럽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위로 올라갔다.

그곳 6층이 모텔이었다.

진국이 방으로 들어가고 봉수 역시 여자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여자는 굶주렸다는 듯이 봉수에게 달려들며 바지춤으로 손을 넣었다.

봉수는 이런 여자가 질색이었다.

 

“어머, 자기 물건 대단한데…”

채연은 벌거벗은 몸으로 차 실장을 내려다 보았다.

이제 거칠 것도 없었다.

 

그가 채연의 손을 잡고 있었다.

채연의 새끈한 몸이 거울로 된 벽에 되비쳤다.

붉고 건강한 유두, 검실검실한 체모, 우유빛 살….

 

“그래, 한번 더 하자는 게 그렇게 싫으냐?”

 

차 실장 역시 벌거벗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채연의 눈길이 그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그의 남성이 축 늘어져 있었다.

 

“실장님, 몸만 달아오르게 해놓고 흐지부지 끝내려구요?”

 

“아냐, 나는 원래 한번 사정해야 정력이 왕성해져.”

 

그가 정색을 했다.

그가 치사해 보이기도 하고 비굴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직원들과 회식이 있어서 말야. 금방 들어 갈 거야.”

 

그의 부인인 듯했다.

이제 그의 성기는 번데기처럼 줄어들었다.

그래도 그는 채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채연이 마지못해 침대에 앉았다.

 

“그래, 나도 사랑해. 기다린다고? 알았어.”

 

채연은 그런 그를 보자 소름이 돋았다.

그가 휴대폰 퓰립을 닫았다.

 

“실장님, 저 까놓고 말할게요. 저 전속 시켜주실 수 있어요?”

 

채연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전속? 그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채연은 다시 스르르 몸을 눕혔다.

곁에 그가 같이 누웠다.

 

“좀 세워줘야 하지 않겠니?”

 

차 실장이 채연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채연이 손으로 그의 물건을 만지려하자 그는 가는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채연은 표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반듯하게 누웠다.

채연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갈 때 다시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뭐라고? 그, 그래. 알았어.”

 

그가 거칠게 휴대폰을 닫았다.

 

“염병할, 중요한 순간에 일이 터질 게 뭐야?”

 

그가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쿠지’를 거쳐간 선배 모델들에게서 기획 차 실장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쿠지’의 실질적인 권력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전속을 빌미로 모델들과 꼭 잠자리를 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추근대지 않았다.

1년 전속이지만 한번 잔 모델과는 꼭 약속을 지키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채연도 마지못해 따라 나선 것이다.

서교동에 있는 전세집의 보증금을 올려줘야 할 판이었다.

전속이 되고 계약금이라도 받으면 얼마쯤은 도움이 되려니 싶었던 것이다.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현실의 문제들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이젠 채연이 아쉬웠다.

 

“장모가 죽었단다. 그런 전화를 받고 어떻게 오입을 하냐?”

 

그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나 먼저 간다. 나오려거든 한참 있다가 나와라. 차비 해라.”

 

그가 십 만원 짜리 두 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바삐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진 현관을 보자 채연은 허탈했다.

거울 속에 담긴 나신이 껍데기 같기만 했다.

채연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남자들이 탐내는 몸이 담겼다.

배꼽 아래의 점과 허리 부근의 점만 빼면 나무랄 데 없는 몸매였다.

 

채연은 오랜만에 자신의 나신을 오랫동안 눈 여겨 살폈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몸이 백지처럼 밝게 빛났다.

그런데 왠지 서글펐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다희였다.

 

“다희야, 우리 호빠 갈까?”

송림은 한의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여성전문 한의원이었다.

 

응접실을 둘러보니 모두 여자들이었다.

송림은 접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여자들을 살폈다.

정수기 쪽에 앉아 있는 두 여자는 ‘나가요’처럼 보였다.

짧은 치마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몸을 비틀 때마다 브래지어가 보였다.

 

직업 때문인지 그녀의 브래지어가 눈에 들어왔다.

 

‘꼴에 우리 회사 제품을 쓰네.’

 

‘코지’의 속옷은 젊은 사장이 취임한 뒤 고급화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회사 중역들은 경기불황의 장기화를 들어 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젊은 사장의 예상대로였다.

 

‘고스득층은 불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지난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100만불 이상의 자산으로

새로 진입한 부자들이 3만 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 졸부들과 전문직종의 종사자들이 우리 타깃입니다.

그들의 지갑을 열지 못하면 앞으로도 열지 못합니다.’

 

젊은 사장은 잘 생기고 매력 있고 도전적이었다.

그래서 젊은 사원들에겐 인기가 높았다.

송림도 그의 지론에 동의했다.

그리고 여느 여직원들처럼 그를 흠모했다.

그와 결혼한 여자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송림씨!”

 

송림은 생각을 접고 발딱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의사는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매력은 없지만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남자들에게 인기는 없어도 환자들에겐 인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저 성교통이 심해서…”

 

송림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산부인과는 다녀오셨어요?”

 

“네, 아무 이상이 없다고 그랬어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성교통이 심하다. 결혼 안 했죠? 생리는?”

 

“정상적으로…”

 

송림은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송림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맥이 거친데 생리가 있을 때 생리혈도 덩어리로 나오고 생리통도 심하지 않았나요?”

 

송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자세히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질벽이 얇아졌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얇았다거나,

그게 아니면 분비물 양이 현저하게 줄어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남자분이 아주 성급하게 밀고 들어오면 그러기도 하구요.”

 

그녀는 아주 명쾌하게 말했다.

순간 송림은 잊고 싶은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호텔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송림을 덮치곤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와의 섹스엔 늘 성교통이 뒤따랐다.

 

‘마누라가 눈치 챘어. 우리 이쯤에서 헤어져도 문제 없지?’

 

그는 차갑고 매몰찼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

육감이지만 그는 송림에게 더 이상 애정이 없었다.

그의 부인이 눈치를 챘다는 건 거짓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를 사랑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1년 동안 그를 만나면 무엇을 꿈꾸었나 싶었다.

 

송림은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나송림씨, 앞으론 섹스할 때 남자에게 끌려 다니지 마세요.

성교통을 막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해요.

충분히 젖은 후에 하란 말이죠. 아셨죠?”

 

‘섹스, 지겨워!’

 

송림은 마음으로 진저리를 쳤다.

봉수는 편의점에서 던힐 담배와 맥주 하나를 샀다.

 

편의점에서 나와 파라솔 아래에 앉아 캔 뚜껑을 땄다.

길 건너편 아이스크림 가게인 베스킨라빈스를 건너다보았다.

크림과 아이스 둘 다 보였다. 봉수가 붙인 이름이었다.

크림은 저녁 시간대에 알바를 하는 여학생이고 아이스는 남학생이다.

크림은 갓 대학교 신입생 같은 냄새를 풍겼고 아이스는 군대 정도는 다녀온 듯했다.

 

맥주를 다 비우고 의자에서 일어날 즈음 휴대폰이 울렸다.

창을 보니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그 여자다.

봉수는 게 눈 감추듯 일을 치르고 도망치듯 모텔을 빠져 나왔다.

 

아이를 둘 나은 미시였는데 이혼했다고 했다.

하지만 몸매는 잘 익은 복숭아처럼 농염했다.

물 가득 담긴 풍선처럼 단단하고 탄력 있던 가슴과 팽팽한 엉덩이,

일반 사람들처럼 꼬불꼬불하지 않고 생머리처럼 직모였던 둔부의 털.

하루종일 그 여자의 몸매가 아른거렸다.

진국과 입사 동기가 된 뒤로 여러 번 성인 나이트를 찾아가긴 했지만

부킹해서 만난 여자와 모텔까지 올라가기는 처음이었다.

그 여자를 보며 속옷으로 서 있던 채연의 모습이 떠오른 때문이었다.

 

“우리 한번 더 만나야 되는 거 아냐?”

 

여자가 코맹맹한 소리로 말했다.

 

“바빠서….”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 명동에 오면 우리 가게 들려, 알았지?”

 

그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연인처럼 말했다.

그녀는 명동과 을지로에 두 개의 보석 가게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진국은 그 말을 듣고 ‘봉’이라고 말했다.

 

‘한 1년 봉사하고 가게 하나 달라고 해.’

 

봉수는 진국의 말이 어이가 없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진국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봉수는 길을 건너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구석에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자르며 박수를 쳤다.

 

“블루베리 중간 컵으로 주세요.”

 

봉수는 크림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채연과 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농염하고 섹시하다면 크림은 맑고 귀엽고 달콤했다.

 

“아저씨도 아이스크림 좋아 하나 봐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치아가 희게 빛났다.

봉수가 미소를 지었다.

 

“나 총각입니다.”

 

“죄송해요.”

 

크림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죄송하면 커피나 한잔 사.”

 

봉수는 아이스크림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며 능청을 떨었다.

 

“네?”

 

“미안하면 커피 한잔 사라고 그랬어.”

 

예전 같으면 우물쭈물 말을 흘려버리고 말았을 터였다.

그러나 진국을 만난 뒤부터 알게 모르게 변한 듯했다.

사실 그의 능청스러움이나 넉살을 부러워했다.

 

“그, 그러세요.”

 

농담이었는데 크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가 싫지 않다? 진작에 말이나 걸어보는 건데…’

 

두 걸음 쯤 떨어져서 손님에게 아이스크림을 퍼주던 아이스가 곁눈질을 했다.

 

“언제 끝나?”

 

“10시.”

 

크림이 봉수와 아이스를 번갈아 보았다.

봉수는 아이스를 슬쩍 훔쳐봤다.

못 먹을 감이지만 남 주긴 싫은 심술이 볼에 잔뜩 묻어 있었다.

 

봉수는 계산을 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가게를 나왔다.

문을 나서기 전에 잠깐 크림을 바라봤다.

크림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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