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도살성 18
진주는 그 길로 말을 몰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는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며 혼자서만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고 장수 1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백제군의 기세는 갈수록 힘을 잃었고 신라군의 사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은상이 죽은 뒤 백제 장수 정중은 김유신과 맞섰으나 이내 생포되었고,
달솔 자견도 죽지와 흠돌의 협공에 목숨을 잃었다.
부여군과 상영은 흠순과 맞섰는데 부여군이 미처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흠순의 칼에 맞아 죽자
상영은 혼자 달아났고, 윤충도 신라군 10여 명을 벤 뒤 문충과 만나 100여 합이 넘도록
자웅을 겨뤘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부하들이 목숨을 잃자 윤충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다가 다시 앞을 가로막는
진주와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곧 한덩어리가 되어 어울렸지만 이미 기운이 빠질 대로 빠진 윤충은 진주의 적수가 아니었다. 잠깐 칼질에 구슬픈 비명을 토하며 말에서 떨어져 죽으니 이때 윤충의 나이 서른아홉,
아까운 나이가 아닐 수 없었다.
의직은 석토성 입구에 몰려든 신라군과 사투를 벌이다가 정무의 도움을 받고야 퇴로를 얻어 달아났고,
진춘의 군대와 맞붙은 무수와 계백도 한동안은 호각세를 이루며 분전했지만 사방에서 밀려드는 적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은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참담한 패배였다.
백제는 도살성 싸움에서 좌평 은상을 비롯 달솔 자견, 윤충 등
이름난 장수 10여 명과 군사 8,980명을 잃고 말 1만 필과 갑옷 1,800벌,
그밖에 숱한 병장기를 빼앗겼다.
또한 달솔 정중을 위시해 1백 명의 편장과 군사가 생포당했으니
살아서 돌아간 이는 3만 5천 대병 가운데 불과 1천 명 남짓이었다.
신라군은 잃었던 석토성을 되찾고 전란으로 황폐해진 주변을 평정한 뒤
죽은 군사의 시신을 앞세우고 요란하게 승전고를 울리며 금성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직 도살성 동쪽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양난곡경에 빠진 군사가 있었으니
바로 정복의 군대였다.
정복은 앞서 은상이 시급히 군사를 이끌고 합류하라는 명을 받자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돌아가자니 필경은 문책이 따를 것이요,
그대로 있자니 마음이 불안해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심부름을 다녀온 전령에게,
“병관좌평의 심기가 어떠하더냐?”
“표정은 어떻고 말투는 어떻더냐?”
“혹시 나를 문죄하려고 부르는 것 같지는 않더냐?”
꼬치꼬치 사정을 캐어물었지만 전령의 얼뜨고 군색한 대답만으로는 아무것도 명확한 것이 없었다.
순전히 억견으로만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부여나가 말했다.
“지금 좌평께서 염려하시는 것은 두 가집니다.
첫째는 은상 장군이 우리를 처벌하려고 부르는 경웁니다.
본래 은상 장군은 성정이 불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전령의 말을 들어보면 아군의 희생도 만만찮은 모양이니
만일 이럴 때 우리가 나타나면 그는 칼을 뽑아 들고 모든 분풀이를 우리한테 해댈 공산이 큽니다.
그렇다면 일찍 가서 좋을 게 없습니다.
둘째로 전령의 말처럼 우리 군사가 정말 필요해서 부르는 경웁니다.
이를테면 고작 1천 군사가 절실할 정도로 3만이 넘는 대병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신라에선 다시 2만이나 되는 원군이 당도할 예정이라니
그 뻔하디 뻔한 사지를 왜 제 발로 걸어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경우 모두 가면 손해만 봅니다.
차라리 며칠 시일을 끌었다가 도살성의 결전을 지켜본 뒤 처신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정복은 부여나의 충고가 옳다고 판단했다.
“본진의 대병이 이미 풍비박산이 났다면 이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공연히 합류하여 저들의 죄를 덮어쓸 까닭이 없다.”
그는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백제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는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도망치는 군사를 통해 비보에 접하자
한동안 군막의 장대에 기대 서서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병관좌평이 죽었단다.
윤충도 죽고 자견도 죽었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단 말이냐……”
전쟁에서 어찌 패할 경우를 상정해보지 않았으랴만 그 패배가 워낙 처참하니 기가 막혔다.
그토록 철저하게 무너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정복이었다.
충격을 받기는 부여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3만이 넘는 대병이 몰살을 당하리라곤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천탈기백, 서로 얼굴만 바라본 채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는가……”
정복의 뇌리를 줄곧 괴롭힌 것은 떠나올 때 본 임금의 격노한 얼굴이었다.
하물며 그는 편전에서 의직을 한껏 조롱하여 그 덕으로 위사좌평에까지 오른 처지가 아니던가.
“돌아가면 죽습니다.”
한참 만에 부여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이럴 줄 알았다면 말미에 군사를 데려가서 거드는 척이라도 할 걸 그랬습니다.
그럼 돌아가도 변명할 거리나 만들었지,
이젠 꼼짝없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생겼습니다.”
“자네가 꾀를 냈지 내가 냈는가?”
정복이 원망하듯 말하자 부여나도 일순 기분이 상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랬습니까?”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우왕좌왕하기는 군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본진의 3만 대군이 흔적 없이 박멸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대부분 정복의 휘하에 배속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사비로 돌아가는 것은 두려워했다.
한동안의 공론 끝에 부여나는 정복에게 이렇게 건의했다.
“돌아가지 못할 바엔 차라리 김유신을 찾아가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항복을 하라고?”
정복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이번 싸움에서 신라군의 희생도 만만찮다고 들었네.
항복을 하더라도 김유신이 우리를 살려준다는 보장이 있는가?”
“김유신은 성정이 대범하고 의리를 아는 인물입니다.
작년에는 오래전에 죽은 대야성 성주의 유골을 돌려받고
우리 장수 여덟 명을 살려보낸 일도 있었지 않습니까?
항복을 한다면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어 부여나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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