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도살성 12
연 사흘간 석토성은 잠시도 쉴 수 없는 살벌한 전란에 휩싸였다.
급한 대로 인근 만노군과 도살군에서 원병 4천여 명이 달려와 가세했지만 동문과 서문을
격일로 두들겨대는 백제군의 집요한 공격을 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성군들은 연일 동서로 뻔질나게 몰려다니며 싸우느라 기진맥진해버렸고,
드디어는 성벽에 달라붙는 적을 두 눈으로 뻔히 보고도 바위를 들어 굴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나흘째 되는 날 동문과 서문에서 백제군이 동시에 협공으로 나오고 다시 남문에서도
수천 명이 나타나 밀고 들어오자 그만 더 버티지 못하고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성주 도만은 남문에서 싸우다가 적이 쏜 화살에 맞아 성루에서 떨어져 죽었고,
종수는 세력이 다한 것을 알자 남은 성군들을 이끌고 도살성으로 도망가 목숨을 부지했다.
도살성은 본래 고구려가 축조한 성이었으나 백제 성왕이 이를 쳐서 빼앗았다가 신라에 넘겨준 것이었다. 상주행군대총관 김유신이 석토성에 봉화 오른 소식을 접하고 왕명을 받아 도살군에 이르렀을 때는
석토성과 나머지 여섯 개의 자성들이 모두 함락된 뒤였다.
이때 유신은 압량주와 상주의 군사들말고도 천존(天存)과 죽지(竹旨)가 도성에서 데려온 1만여
병부 군사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신라로선 군사를 동원할 여력이 백제에 비해
훨씬 불리했다.
그가 1만 5천의 원군을 이끌고 도살군에 도착하자
한산주 군주로 승차한 진춘(陳春)도 직접 3천 원군을 거느리고 석토성을 구원하러 와 있었다.
“백제가 마침내 발악을 하는구나.”
유신은 진춘과 석토성에서 도망쳐온 종수로부터 적군의 규모를 대충 듣고 나자
오히려 얼굴에 기쁜 빛을 띠며 말했다.
“이번에 백제를 쳐서 이긴다면 당분간 서쪽은 조용할 것이다.
저들이 사활을 걸었다면 우리 또한 그럴 수밖에.”
그는 휘하의 장수들과 의논을 마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번 싸움에선 계략이고 용병이고가 따로 없다.
궁지에 몰린 백제가 사생결단으로 나오니 우리로서도 맞서 싸우는 수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적병의 숫자가 우리의 갑절이나 되므로 우리 군사 한 사람이
적군 두세 명은 베어야 승산이 있다.”
석토성을 취한 백제군은 은상의 명령에 따라 모조리 도살성 쪽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적의 숫자는 과연 엄청났다.
하지만 유신은 새까맣게 몰려오는 적을 보고도 군사를 총동원해 도살성 성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도살성 성문 밑에 진영을 구축한 뒤 군사를 3군(軍)으로 나누고 다섯 갈래로 진군시켜
백제군에 맞섰다.
석토성과 도살성 사이의 들판에선 곧 양측 군사들 간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 싸움은 그로부터 근 열흘 가량 계속되었다.
과연 김유신의 말대로 특별한 계략도 없고 용병도 없는 싸움이었다.
아침에 나가면 해가 질 때까지 서로 피를 튀기며 싸우고 또 싸울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신라에서는 진주와 흠순, 문충과 흠돌 등이 와서 가세했고,
백제에서도 좌평 흥수와 사택지적이 5천 군사를 더 데리고 은상 군에 합류했다.
싸움은 근고에 유례가 없는 난전의 양상으로 치달았다.
연일 죽어나가는 자가 수백, 수천이었다.
사람과 말의 시체가 들판에 가득 차고 흐르는 피가 다듬이 방망이와 절굿공이를 띄울 지경이었다.
양측 모두 과반의 군사들이 희생됐지만 싸움은 좀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말을 타고 나간 군사가 저녁이면 말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어제까지 군막에서 한이불을 덮고 자던 동료의 시체가 처참하게 들판에 나뒹굴어도
달려드는 적과 싸우느라 그 주검을 거두지 못했다.
피가 뜨겁고 용맹한 군사들일수록 더 빨리 죽었다.
처음에는 겁을 내던 심약한 군사들도 갈수록 용병과 맹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피를 덮어쓰고 한참 정신없이 칼과 창을 휘두르다 보면 피아의 구분도 생사의 경계도 아련하고
모호해졌다.
삶과 죽음이 단 한 번의 칼질로 갈리는 전란의 참화 속에서 군사들은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적이 있고 돌아보면 적이 있었다. 아귀처럼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적을 향해
본능적으로 칼을 휘두르긴 했으나 적이 먼저 죽을지 내가 먼저 죽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생사는 늘 간발과 촌각의 차이로 엇갈렸다.
삶이 아니면 죽음일 터인데, 삶과 죽음이 한가지요 이승과 저승이 둘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달려드는 적을 보고 분명히 먼저 칼을 휘두른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적은 등을 돌려 사라지고 갑자기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보게, 날세!”
동료에게 말을 건네도 동료는 싸움이 바빠서인지 돌아보지 못했다.
죽어서도 웃는 사람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다.
“자네 뒤에 적이 있어!”
들판에 돌을 베고 누워서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자는 동료를 걱정하느라
죽어서도 쉴새없이 말을 몰고 다니며 창칼을 휘둘렀다.
그래서 말 배를 걷어차느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팔이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키는 것인가 보았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 남은 사람은 불과 4천여 명, 김유신은 생환한 군사들의 점고를 마친 뒤 침통한 얼굴로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기름 먹인 싸리 홰가 불을 밝힌 들판에는 2만 구가 훨씬 넘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초저녁에 떠오른 8월 상달의 만월은 하늘에서 홀로 휘영청 밝았다.
날은 아직도 무더워 시신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먹은 것을 토해낼 정도였으나
싸움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병영 사이로 흐르는 두렁의 냇물은 밤이 되어도 붉었고 무심한 달빛은
그 위에도 내려앉아 부하를 잃은 장수의 심란함을 더하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누구를 위해 이런 끝도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가……”
유신으로선 싸움터에 나온 이래로 가장 희생이 큰 전투였다.
일생에서 제일 어려운 때를 만난 셈이었다.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본 다른 장수들이 유신의 주위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내가 덕이 없고 재주가 모자라서 자식 같은 군사들을 모두 저 꼴로 만들었네.
계림의 장정들을 끌고 나와 모두 죽인다면 무슨 수로 백제를 멸할 수 있으며,
설혹 그렇게 하더라도 누가 기뻐할 것인가?”
“고정하십시오, 장군.
우리 군사의 희생이 큰 것은 적이 무도한 탓이지 어찌 장군의 재주와 덕이 모자라기 때문이겠습니까?”
죽지가 유신을 위로했지만 그의 탄식은 그치지 않았다.
“들판에 가로누운 부하들의 시신을 거두지도 못한 채 내일 해가 뜨면 다시 군막의 군사들을 데려나가
저 꼴로 만들어야 하니 내 어찌 참담하지 않겠는가!
이 밤이 여기서 멈춰 영원히 이대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네.”
유신은 소천에게 말해 싸움에 이기면 쓰려고 들고 온 술을 가져오도록 했다.
하긴 술 없이 견디기 힘든 밤이었다. 하물며 신라에서는 최고의 명절로 치는 8월 가배절,
궁중에서는 한창 길쌈 겨루기가 열리고 집집마다 흥겨운 잔치가 벌어질 터였다.
남편과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하늘과 조상에 제사지낼
죽은 군사의 식구들을 생각하자 유신의 가슴은 더욱 무거웠다.
그는 장수들에게도 술을 권하고 자신도 몇 잔을 거푸 들이켰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9장 도살성 14 (0) | 2014.11.14 |
---|---|
제29장 도살성 13 (0) | 2014.11.14 |
제29장 도살성 11 (0) | 2014.11.14 |
제29장 도살성 10 (0) | 2014.11.13 |
제29장 도살성 9 (0) | 201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