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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도살성 11

오늘의 쉼터 2014. 11. 14. 13:11

제29장 도살성 11 

 

 

 

웅진성에서 전략을 세운 백제군은 곧 몇 갈래로 길을 나누어 신라로 진격해 들어갔다.

제일 먼저 석토성에 당도한 장수는 무수와 계백이었다.

이들은 군령에 따라 마군 1천 기를 거느리고 석토성 남문에 도착해 싸움을 걸었다.

석토성 성주인 급찬 도만(稻晩)은 곧 성군들을 동원해 반격에 나섰다.

성이 입당로에 접한 철산의 요지인 만큼 도만에게는 잘 훈련된 성군이 7천이나 있었다.

그는 성루에서 적군의 숫자가 고작 1천에 불과한 것을 보자,

“저것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하고는 봉화를 올려 구원을 요청하지도 않고 스스로 남문의 군사 2천여 명을 이끌고

맹렬히 말을 달려나왔다.

성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기세를 올리던 무수와 계백은 도만의 군사를 맞아

몇 차례 싸우는 시늉을 하다가 곧 등을 돌려 달아났다.

도만의 마군들은 달아나는 백제군을 쫓아 국경을 넘었다.

백제 영내로 들어오자 뒤에 달아나던 계백이 말머리를 돌려 도만을 상대했다.

더 이상 쫓아오는 것을 허용한다면 자칫 대군이 이동하는 광경을 들킬 수도 있었다.

“이곳은 우리 국경이다. 더 깊이 추격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이놈아, 그러는 넌 어찌하여 우리 국경을 넘었느냐?”

이어 두 장수는 고함을 지르며 어울려 칼솜씨를 겨뤘다.

도만은 한때 우두주(牛頭州:춘천)에서 군사들을 가르쳤던 뛰어난 장수였다.

그가 예리한 검법으로 계백을 공략하고 들어오자

계백 또한 물러서지 않고 도만의 칼날을 상대했다.

10여 합쯤 싸우면서 보니 상대는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장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먼저 달아났던 무수까지 무리를 거느리고 달려오자 도만도 슬그머니 겁이 났다.

“다시 한번 국경을 넘는다면 그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도만은 짐짓 큰 소리로 호통을 친 뒤 군사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성으로 돌아간 도만은 각 성루에 순라군을 늘려 경계를 강화시키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백성들이 추수하는 것도 당분간 미루도록 지시했다.

이튿날이 되자 성의 남문에 또다시 전날 그 군사들이 나타나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

도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오늘은 기필코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

그는 거침없이 남문을 열어제쳤다.

“모두 나가서 신라군의 용맹을 유감없이 보여주어라!”

도만의 고함소리에 2천 군사가 한껏 기세를 올리며 달려나갔다.

석토성 남문에선 곧 양측 군사가 어지럽게 뒤엉키며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전날과는 달리 백제군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싸움이 점심때까지 이어졌다.

피차 부상자가 생기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점점 밀리기 시작한 쪽은 백제군들이었다.

“안 되겠다! 잠깐 물러갔다가 기회를 보아 다시 오자!”

백제 진중에서 퇴각을 알리는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게 섰거라! 오늘만은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겠다!”

화가 치민 도만은 급히 마군들을 끌어모아 달아나는 적을 맹렬히 추격했다.

이번엔 국경을 넘어서도 한참을 더 쫓아갔다.

기필코 요절을 내겠다고 잔뜩 벼르고 달려갔지만

적지가 깊어질수록 불안감이 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혹시 이것이 적의 유인계가 아닐까 싶었다.

“돌아가자. 성이 걱정스럽구나.”

석토성으로 돌아오자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별일이 없었다.

도만은 비로소 의심을 거두고 웃으며 말했다.

“이는 공을 세울 욕심에 사로잡힌 적장 몇 명이 저희들끼리 저지르는 가소로운 수작이다.

다시 쳐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성의 서문과 동문에 배치한 군사들을 1천여 기만 남겨두고 모두 남문으로 집결시켰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큰일났습니다, 장군! 지금 우리 성 서문에 적군이 개미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남문에서 경계를 강화하고 있던 도만에게 서문의 전령이 와서 급보를 전했다.

도만은 크게 놀랐다.

“적군의 숫자가 얼마쯤 되느냐?”

“날이 어두워서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수천 명의 함성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만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그렇다면 이건 한두 놈이 작당해서 일으키는 짓이 아니다. 어서 봉수대로 가서 구원군을 요청해라!”

그는 비로소 봉화를 올리도록 지시한 뒤 남문에 끌어모은 군사들을 데리고 서문으로 달려갔다.

과연 서문에서는 수천 명의 적군들이 요란하게 북소리를 울려대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불을 밝혀라, 불을!”

도만의 재촉으로 성루에 횃불이 촘촘하게 밝혀지자 곧 성벽에 달라붙은 수천의 백제군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성군들은 황급히 서문 성루로 시석을 옮겨 돌을 굴리고 화살을 퍼부었다.

시석을 퍼붓자 성벽에 붙었던 백제군들은 얼마 뒤 모두 사라졌지만 도만을 위시한 신라군은

언제 또 그들이 쳐들어올지 몰라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난 이튿날, 동편 하늘에 해가 얼마만큼 떠올랐을 때였다.

“장군! 이번엔 동문에 적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답니다! 성이 사면초가에 빠졌나이다!”

그렇게 전한 사람은 도만의 수하인 길사 종수(宗樹)였다.

“뭐야? 동문에 적이 나타났다면 자성이 벌써 떨어졌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성에선 어찌하여 봉화가 오르지 않았는가?”

“글쎄올시다. 어제 동쪽 들판에 불이 났다더니 봉화가 들불 연기에 묻혀버린 모양입니다!”

“아, 큰일났구나! 동문에 나타난 적은 얼마나 된다더냐?”

“수천 명이라고 합니다.”

“근년에 보기 힘든 대병이구나! 대체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이냐?”

그제야 사태를 알아차린 도만은 잠 한숨 자지 못한 서문의 장병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동문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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