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도살성 9
당태종 이세민의 죽음은 장안에 숙위로 가 있던 복신을 통해 사비성에도 전해졌다.
의자왕은 이세민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사사건건 신라를 편들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던 당주가 죽었으니
이는 백제의 국운이 융성할 징후가 아니고 무엇이랴!”
의자는 당나라에 국상이 난 기회를 틈타 차제에 당은포로를 막아버리고
신라를 완전히 고립시키려고 마음먹었다.
세 번에 걸쳐 김유신에게 당한 남역의 패전으로 백제가 입은 타격은 매우 컸다.
4만이나 되는 막대한 군사를 잃었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전쟁에서 죽거나 신라로 붙잡혀간 사람들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장성한 아들을 둔 부모와 군역에 나간 이의 처자식들은 전란을 원망하고
시류를 한탄하는 단계를 지나 허구한 날 싸움을 일삼는 임금과 조정의 처사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민심이 이러니 임금과 조정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전쟁의 승패는 임금에게도 사활을 건 문제였다.
나라가 가난했을 때는 전쟁을 통해 오히려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적을 쳐서 이기기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지배층의 논리가
그런대로 민심에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백제 사정은 겨울에도 떡을 쪄먹을 만큼 넉넉하고 풍족했다.
여염의 아낙도 상선에 싣고 온 값비싼 노리개를 탐낼 정도였고,
남자들은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으며, 어린애들조차 단 음식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았다.
살면서 볼 재미를 거의 다 맛본 사람들이 새롭게 고생스러움을 견디기란 힘든 법이었다.
하물며 기름진 음식과 풍족한 살림살이를 그대로 두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전역에 동원된다는 것이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어떻게든 군역에서 빠지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들을 통해 이문을 보려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비리를 팔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선 은밀히 흥정이 벌어지고 재물이 오갔다.
권력자의 위엄을 등에 업고 군역에서 빠지려는 자도 적지 않았다.
백성들이 하급자를 1백 냥의 뇌물로 구워삶으면 수십 명의 백성들로부터 막대한 재물을 모은
하급자는 다시 상급자를 1천 냥의 재물로 구워삶았다.
왕권이 탄탄하고 조령(朝令)이 빈틈없이 섰을 때만 같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도처에서
공공연히 일어났다.
풍족함이 도리어 백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일국의 흥망성쇠는 달이 차고 기울 듯이 돌고 또 돈다고 했던가.
패전 뒤 왕권이 위축되고 민심이 급격히 떠나는 것을 누구보다 피부로 실감한 이는
바로 의자왕 자신이었다.
그는 팔족 대신들이 모여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이를 듣지 않고도 자신을 흉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남에게 지는 것을 극히 싫어했던 의자는 패전의 수모를 스스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세민의 죽음이 전해졌으니 활활 타는 단불에 끓는 기름을 부은 형국이었다.
“이번에 군사를 일으키면 반드시 신라의 입당로(入唐路)를 끊을 것이다!
그리고 필히 김유신의 목을 취해 작년에 죽은 우리 군사의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자는 입버릇처럼 말하며 여름 내내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8월이 되자 그는 관리와 장병들을 동원해 일찍 추수를 마친 뒤 조정 대신들을 탑전에 불러모으고
드디어 출정을 선포했다.
“이제 군사를 한번 내어볼 때가 되었다.
무릇 전쟁의 위중함을 논하건대 더하고 덜하고가 없지만 이번만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기필코 이겨야 한다.
선왕께서 살아 계실 때부터 우리는 수십 년에 걸쳐 신라와 싸워 한 번도 대패한 적이 없었는데,
근자에 와서 부쩍 기세가 꺾이고 분패하는 일이 잦아졌다.
신라군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신군들이 아닐진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사람들은 입만 열면 김유신을 높여 말하지만 이 또한 실은 거짓된 허명(虛名)에 불과하다.
짐이 보기에 김유신은 그저 군사나 좀 부릴 줄 알고 칼이나 약간 낫게 다루는 일개 평범한 장수일 뿐이다. 패전의 원인은 김유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있다.
장수는 출정에 앞서 목숨을 걸지 않고, 부대에는 진퇴의 기강이 없으며,
군사들은 나태함과 안일함에 빠져 힘을 다하지 않으니 이런 군대로 어찌 승리를 바랄 수 있겠는가?
국법이 바로 서야 강국이 되듯이 군율이 칼날같이 서지 않고는 강군이 될 수 없다.
지고 돌아와서 적장을 높이 말해 자신의 죄를 가리려는 것은 참으로 더러운 짓이다.”
의자는 대신들을 둘러보며 혹독하게 꾸짖었다.
남악에서 불려와 아직 패전의 문책을 당하지 않았던 윤충과 옥문곡에서 패한 좌평 의직은
가슴을 졸이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의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조정을 질타했다.
“재주를 아끼고 수고로움을 기피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지 않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풍족함과 넉넉함, 사치와 향락은 군신이 일체가 되어 외적(外敵)을 막고 내정(內政)을 잘 다스렸을 때
그 보답으로 오는 것인데,
바깥에선 구적이 날뛰어도 서로 눈치만 보며 나서지 않고 오로지 편안함만을 갈구하니
이는 남의 손으로 농사를 지어 그 알곡과 열매만을 따먹으려는 도적놈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선왕의 치하에선 군기만 정해지면 다투어 팔을 흔들고 발을 밟으며 나서지 못해 서로 아우성이었으나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당최 볼 수가 없다. 짐에게 선왕과 같은 위엄이 없어서 그런가?
그대들이 제아무리 벼슬과 문벌이 높다 해도 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를 빼앗아 하루아침에
개도 깔보게 만들 수 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만일 내가 위엄을 갖추기로 들면 그대들 가운데 무사할 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알기나 하느냐?”
패전의 수모 뒤에 참고 참았던 울분이 폭발하자
중신들은 서릿발 같은 제왕의 냉갈령에 압도되어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목을 움츠렸다.
편전에는 한껏 드높아진 임금의 옥음만 쩌렁쩌렁 울렸을 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지고 돌아올 자는 아예 나서지 말라.
적이 두렵고 김유신이 무서운 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지고 돌아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니
기어코 이기고 돌아올 사람만 나서서 필승의 전략으로 용병을 논하라.
만일 패장이 되면 목을 쳐도 좋다는 군령장을 미리 받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 이가 과연 누구인가?”
그러자 제일 먼저 상석에서 한 신하가 나섰다.
“신 병관좌평 은상 아뢰옵니다.
신은 전조에 세운 새털만한 공으로 나라의 병권을 맡은 지 10년 가까이 되었으나
마음속에 항상 벼슬과 관직이 과분하여 심신이 두루 편치 않았나이다.
오늘 대왕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모두가 신과 관련된 일인 듯하여 더욱 부끄럽고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패전의 책임을 논하건대 누가 신의 윗자리에 오를 수 있겠나이까?”
은상의 목소리는 비장함으로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망극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대왕께 청하옵니다.
신이 군령장을 써놓고 대병을 인솔해 나가겠사오니
부디 신에게 장공속죄의 기회를 주옵소서.
반드시 적의 입당로를 차단하고 김유신의 목을 베어다 전하께 바치겠나이다!”
은상의 말이 끝나자마자 좌평 의직이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병관좌평의 말씀도 타당하오나 신에게도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만일 군사를 이끌기 어렵다면 대군의 한쪽 옆에서 시석이라도 나르며 종군하겠나이다!”
그러자 달솔 정복(正福)이 사뭇 언성을 높여 의직을 반박했다.
“공은 이제 나서지 마시오.
그래도 윤충공은 대야성을 공취하기나 했지,
공의 재주가 대체 무어요?
감물성에서도 옥문곡에서도 거푸 패하고 왔으니
공의 재주란 아무리 보아도 혼자 살아오는 재주뿐이오.
근년에 우리가 당한 패전의 책임은 대부분이 공에게 있는데
이제 다시 무슨 낯짝을 들고 대왕의 심기를 어지럽히시오?
마땅히 뒷전으로 물러나 일이 여기까지 이른 데 대해 사죄하고 자숙해야 옳지 않겠소?”
정복은 서동 대왕이 친히 주관한 무관 시험에서 의직에 이어 두번째로 발탁된 장수였다.
의직을 신랄히 비판한 정복이 임금에게 말했다.
“신이 나서서 위사좌평이 망친 일을 다시 바로잡아보겠나이다.
신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십시오.”
무안을 당한 의직은 고개를 떨군 채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짓씹을 뿐 말이 없었다.
그때 의직과 친분이 두터운 정중(正仲)이 목청을 높여 정복을 꾸짖었다.
“그대는 말을 삼가라.
위사좌평은 작년에 신라의 서변을 공격해 요거성 등 10성을 공취하고 돌아왔다.
비록 옥문곡에서 패해 군사를 많이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공이 없다고만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역시 의직과 친한 달솔 자견(自堅)도 가만있지 않고 의직을 두호했다.
“자신은 나서지 않고 뒤에서 공과를 논하는 것은 입만 달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싸움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한두 번의 실수로 그렇게 무안을 준다면
누가 싸움터에 나서서 마음놓고 싸우겠는가?”
정중과 자견은 곧 자신들도 의직과 함께 출정하게 해달라고 임금에게 간청했다.
이들의 설왕설래를 유심히 지켜보던 의자는 중신들간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신하들의 경쟁 심리를 이용해 공을 다투게 하려고 정복과 의직의 싸움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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