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9장 도살성 6

오늘의 쉼터 2014. 11. 12. 16:10

제29장 도살성 6 

 

 

 

관사 안으로 들어가자 오랜만에 보는 지소가 반색을 하며 춘추를 맞았다.

지소는 유신에게 시집온 뒤로 큰아들 삼광(三光)과 둘째아들 원술(元述)을 낳고

이때는 다시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 있었다.

“일전엔 법민과 문왕까지 데리고 코앞을 그냥 지나치시는 바람에 제 마음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요. 아무리 공무가 급하고 막중하기로 예까지 오셔서 어쩌면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는지요?”

지소가 보자마자 타박부터 하고 나오니 춘추는 무색하여 허허 웃기만 했다.

그는 삼광과 원술을 팔에 하나씩 안은 채로 지소의 시선을 부러 피하며,

“너희 어머니가 먼길 다녀온 할애비한테는 절도 안하고 대뜸 꾸중부터 하시는구나.

내 다음부턴 아무리 바빠도 안 그럴 테니 너희가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 그만 노여움을 푸시라고 해라.”

딸한테 할 소리를 외손들에게 하니 아직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원술은 눈만 깜빡이는데 삼광은

아장아장 지소에게 걸어가서,

“절부터 하세요, 어머니. 절부터 하세요.”

제법 뜻을 전하는 품새가 야무졌다.

쉰도 되기 전에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된 춘추는 손자들 재롱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워서,

“허허, 곤석이……”

하며 연신 입맛을 다셨다. 지소가 삼광한테,

“어머니도 절을 하고 싶다만 배가 불러 절이 어려우니

대신 맛있는 저녁상을 보아 올리면 안 되겠느냐고 여쭈어라.”

하니 삼광이 다시 아장아장 춘추에게 걸어와 손을 이끌며 밥 먹는 시늉을 하였다.

아이 덕에 한바탕 웃고 놀던 춘추가 저녁밥을 먹고 나서,

“지금은 금성에 돌아가도 입궐하기가 어려운 시각이므로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식전에 가야겠습니다.”

하고는 곧 자리를 옮겨 유신과 단둘이 앉았다.

그 자리에서 춘추는 비로소 이세민의 혈인이 찍힌 동맹문을 품에서 꺼내 보이며

당나라에 갔던 일을 희색이 만면해 털어놓았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유신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군 20만이 원조한다면 백제를 멸하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정말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정작 큰일을 하신 건 형님입니다.

저야 당주한테 형님의 계책을 그대로 전한 것밖에 한 일이 있습니까?

과연 당주는 그 말을 듣자 뛸 듯이 기뻐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형님 이름을 직접 입에 담으며 당조에는 어찌하여 김유신과 같은 장수가 없느냐고 탄식하는

소리까지 듣고 왔습니다.”

“출병 시기는 언제쯤으로 합의가 되었습니까?”

“군기는 아직 명확히 합의하지 않았습니다.

당이야 기왕 전쟁을 일으키려고 오호도에 비축한 것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지만

우리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원군 20만을 먹일 식량만 해도 엄청나겠지요.”

“내년 봄으로 군기를 정하면 당에서 비축한 식량도 같이 싣고 오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럼 시일을 끌 까닭이 있습니까?

전국의 무고(武庫)를 헐어 병장기를 끌어모으고 궁방(弓房)을 독려해 활과 화살을 만들기만 하면

내년 봄에 출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조정에 들어가 의논을 해봐야겠지만 제 생각으론 3월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나고

귀에 익은 소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춘추 나리께서 오셨다니 정말입니까?”

“소문 한번 재네. 저녁은 자셨소?”

“네. 별 뜨는 거 보느라고 좀 전에야 먹었습니다.”

“별 구경 그만 하고 안사람 얼굴이나 자주 좀 보오. 아이 엄마가 불만이 심합디다.”

“사람 얼굴이야 늘 그게 그건데 어디 자주 볼 거나 있습니까?

천변만화하는 천문 구경이 한결 재미나지요.”

“천문에 오늘은 무슨 소식이 났소?”

“그것 보고 이렇게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나리께 인사나 드리려구요!”

“원, 허풍도……”

지소와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던 소천이 사랑채 앞에서 기척을 냈다.

유신이 춘추를 보고,

“참, 소천이를 불러 때를 한번 물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는 군사를 움직일 때마다 저 아이의 도움을 받는데 제법 신통한 구석이 있습니다.”

하자 이미 소천의 재주를 알고 있던 춘추도,

“그게 좋겠습니다.”

하며 반색했다.

유신이 사랑채 문을 열고,

“명일관, 이리로 좀 들어오게.”

점잖게 말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타난 소천이 춘추의 기색을 이리저리 살핀 뒤에야

비로소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꾸벅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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