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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전란 19

오늘의 쉼터 2014. 11. 11. 17:05

제28장 전란 19

 

 

 

신이 듣자오니 싸움에서 가장 나쁜 것은 쉬지 못하는 것이고 무공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싸움을 멈출 수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성상께서 펼친 덕화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오랜 옛날에는 신속(臣屬)하지 않았던 이들도 지금은 모두 신하가 되었으며,

전에는 지배하지 못했던 나라들도 모두 폐하의 발 아래 복속하게 되었습니다.

고금의 역사를 상고하건대 중국에 끼친 재앙으로 말하면 돌궐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황궁에 계시면서도 신묘한 책략을 운용하고,

궁전을 나오지 않고도 크고 작은 가한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항복하게 만들어

오늘날에는 그들이 대궐의 경호를 맡거나, 창을 들고 군대의 대열 속에 있습니다.

이후 설연타(薛延陀)가 제법 맹위를 떨쳤으나 그 또한 얼마 아니 가서 평정되었습니다.

철륵(鐵勒:바이칼호 남쪽 음산산맥 북쪽에 있던 터키 부족)은 폐하의 치세를 흠모하여

스스로 그 나라를 중국의 주현으로 만들어줄 것을 청했습니다.

사막 북편은 만리에 걸쳐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창(高昌)이 멀리서 배반하고 토혼(吐渾:토곡혼)이

적석산(積石山:청해 남쪽 경계에 있는 산 이름)에서 쥐새끼처럼 머리를 내밀고 살필 때도

약간의 군대로 이들을 전부 박멸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만은 역대로 토벌을 꺼려했으니 이는 누구도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폐하께서는 그들의 반역과 군주를 죽인 역란(逆亂)을 꾸짖으려고

친히 6군(六軍)을 거느리고 요하와 갈석에까지 나아가 죄를 물었습니다.

열흘도 되기 전에 요동을 취하시고 수십만의 포로를 사로잡았으며 이들을 각 지방으로 분산시켜

어느 한 곳도 포로로 가득 차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과거 수나라의 묵은 치욕을 씻어내고 그때 죽은 장사들의 골편을 거두어 땅에 묻었습니다.

이와 같은 공덕은 전대 제왕에 비하면 능히 만 배는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도 모두 알고 계시는 일이니 소신이 어찌 감히 더 말씀드리겠나이까.

폐하의 인자하신 풍모는 천하를 뒤덮고 그 효와 덕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오랑캐가 날뛰는 것을 보면 그 망할 것을 미리 아시고, 장수에게 명령하실 때는

만리 밖의 일까지 헤아려 싸울 방법을 결정하십니다.

그러고서도 손꼽아 날짜를 세고 말의 그림자를 보며 전장에서 도착할 사신과 편지를 기다리십니다.

일을 예측하시고 그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가히 신(神)과 같고,

한번 내신 책략은 조금도 틀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우수한 장수를 뽑으시고 범용(凡庸)한 자 가운데 선비를 선발하시며,

변방 오랑캐가 보낸 사신이라도 한 번 보고 나면 잊는 법이 없습니다.

신분이 제아무리 낮은 자라도 그 이름을 두 번 묻는 경우가 없었나이다.

쏘시는 화살은 7겹의 갑옷을 꿰뚫고 쓰시는 활은 6균(1鈞은 30근)의 무게에 달합니다.

마음은 늘 고전에 두시고 뜻은 항상 시가와 문장을 다듬으시는데,

필법은 종요(鍾繇:위나라 명필)와 장지(張芝:후한의 명필)를 뛰어넘고

문장은 조식(曹植:위나라 조조의 아들)과 사마상여(司馬相如:한나라 문인)보다 낫습니다.

문장에 힘이 넘치면 음률이 고르게 되고 붓을 경쾌하게 놀리면 마치 아름다운 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듯합니다.

만백성을 자애로써 어루만지시고 신하들을 예로 대우하시며 작은 선행도 반드시 칭찬하시고

법망도 관대히 풀어놓으시니 폐하의 인자하심을 모르는 백성은 아무도 없습니다.

귀에 거슬리는 간언도 기꺼이 들으시고 간사한 자의 말은 거절하시며,

생명을 아끼시는 마음으로 강이나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것도 금하셨습니다.

살생을 싫어하시는 인덕은 시정에서 칼을 휘둘러 짐승을 도축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셨습니다.

물오리와 학도 벼와 조를 먹게 하고 개와 말까지도 장막과 덮개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존귀하신 몸으로 어가에서 내려와 부상한 이사마(李思摩)의 피고름을 친히 빨아내셨고,

위징이 죽었을 때는 망자의 영구 앞에 가서 절하고 구슬피 통곡하셨으며,

전쟁에서 죽은 군사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곡을 했을 때는 그 슬픈 곡소리가 6군을 감동시켜

따라 울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요동에서는 또 군사들과 함께 친히 나뭇단을 짊어지고 구덩이를 메워

그 정성이 천지를 감동시킨 바 있었나이다.

폐하께서 얼마나 백성들의 생명을 중히 여기시고 아울러 형벌을 신중히 하시는지는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신은 병이 깊어져서 뜻과 마음이 다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어찌 이 자리에서 폐하의 높은 공덕과 미덕을 다 말할 수 있겠나이까.

폐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신 분입니다.

미신(微臣)은 그저 폐하의 공덕을 사랑하며 마음속에 보배로 간직할 따름입니다.
주역에서 말하기를, ‘나아갈 줄 알고 물러날 줄은 모르며, 생존은 알지만 멸망은 모르고,

얻는 것은 알아도 잃는 것은 모르니,

이 이치를 알고 바르게 행하는 이는 곧 성인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근거하여 아뢰면 나아감에는 물러남의 뜻이 함께 있고,

생존에는 멸망의 계기가 함께 있으며,

얻는 일에는 잃어버리는 이치가 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노신의 애석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자가 말하기를, ‘족한 줄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나이다.

신은 폐하의 위엄과 공덕이 이미 만족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토를 넓히고 변방을 개척하는 일 역시 마찬가집니다.

고구려는 변방의 오랑캐요 천한 종족입니다. 인의로써 대우할 가치도 없고

일상의 예절로 문책할 까닭도 없습니다.

예로부터 물고기나 자라처럼 다루었던 자들입니다.

마땅히 너그럽게 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종족을 멸하시려 한다면 깊은 산중까지 쫓긴 사나운 짐승이

도리어 돌아서서 반격을 해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폐하께서는 사형수를 판결하실 때도 반드시 세 번을 심사하시고 다섯 번 상주할 기회를 주시며

집행하는 날은 고기 반찬을 금하시고 음악을 듣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인명을 그처럼 소중히 여기시는 폐하가 아니옵니까?

하물며 지금 우리나라 군사들은 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유 없이 무고한 그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서 창칼 아래 내몰아

간과 뇌가 땅에서 흙과 뒤섞이게 하고, 억울한 혼백은 돌아올 곳이 없게 만들고,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 과부가 된 처와 인자한 어머니로 하여금 관을 실은 수레를 바라보며

그 말라버린 뼈를 가슴에 안고 통곡하게 한다면 백성들의 수많은 슬픔으로

음양의 변동이 일어나서 기후는 순조롭지 못할 것이며,

천지의 화기(和氣)가 상하여 재난이 잇따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천하를 뒤집는 원성과 통한이 되는 것입니다.

병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위험한 일입니다.

따라서 부득이 그것을 써야 할 때만 가려 써야 하는 법입니다.

고구려가 신하로서 예절을 갖추지 않았다면 폐하께서는 이를 치셔도 무방합니다.

우리나라 백성을 괴롭히고 국토를 침구하여 어지럽게 만들었다 해도 이를 멸하는 것은 가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중국에 우환거리가 되었다면 항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해당되면 하루에 만 명을 죽이는 전쟁을 하더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 가지 가운데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안으로는 고구려 구왕(舊王)의 원한을 갚고 밖으로는 신라가 당한 침략을 대신 보복한다니

이런 이유로 중국을 수고롭게 한다면 어찌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많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폐하께서는 황조1)이신 노자의 말씀을 상기하시고 그가 말한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가르침을 지키옵소서.

그리하여 만대의 위대한 명성을 보전하시고 폐하의 은혜가 폭우처럼 쏟아지게 관대한 조서를 내리소서. 양춘의 햇볕 같은 은혜를 베풀어 고구려를 용서하고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신은 폐하께서 바다에 띄워놓은 전선을 불사르고 징발한 군사들을 파산시키기를 간곡히 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중국과 오랑캐가 다 같이 폐하를 즐겁게 의지하며 따를 것이고,

먼 나라도 공손해질 뿐 아니라 가까운 곳도 자연히 편안해질 것입니다.

신은 늙고 병든 몸으로 아침에 죽을지 저녁에 죽을지 모릅니다.

남은 소원이라곤 티끌이나 이슬 같은 신의 미미한 힘이 태산과 바다같이 위대한 폐하의 덕에

마지막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삼가 아직 죽지 않은 정신과 떨어지지 않은 숨을 다해 결초(結草)의 정성으로

이 글을 씁니다.

만일 임종의 슬픈 울음 대신 죽기 전의 이 몇 마디가 폐하께 받아들여지는 은혜를 입는다면

신은 죽더라도 그 몸은 영구히 썩지 않을 것입니다.

노신은 그렇게 장문의 표문을 지어 아들을 통해 황제께 올렸다.

조정 중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방현령의 간곡한 상소문이 낭독되자

황제는 물론 만조의 중신들도 한결같이 뜨겁게 눈시울을 붉혔다.

“참으로 충신이로다! 내 어찌 삼공이 위독한 지경에서 올린 간언을 거절하겠는가!”

당조의 으뜸 재상 방현령의 표문은 그 하나만으로도 황제가 뜻을 돌리기에 충분한 명분이었다.

더구나 방현령이 표문을 올린 사실이 알려진 뒤로 전쟁에 반대했던 중신들의 상소와 간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세민은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며 전쟁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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