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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전란 16

오늘의 쉼터 2014. 11. 11. 16:28

제28장 전란 16

 

 

 

“총명한지고. 열일곱에 벌써 묻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할 줄 알다니 과연 아우님의 자제답소.

문왕이 장자입니까?”

이세민이 나란히 앉은 춘추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셋째올시다.

큰놈도 데리고 왔으나 갑자기 배탈이 나서 객관에 두었나이다.”

“저런, 내일 어의를 보내리다.”

“괜찮을 겁니다.

저도 처음 장안에 와서는 자주 배탈이 났었지요.

물이 바뀌면 그런 수가 있으니 과히 심려할 일이 아니옵니다.”

“하긴 나도 요동에 가서 배탈이 날 때가 많았지.

그런데 아우님은 자제가 슬하에 몇이나 되오?”

“아들 일곱을 두었습니다.”

“든든하겠구려. 일곱이면 든든하지. 모두 문왕처럼 영특합니까?”

이세민이 춘추의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춘추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형님께 소청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원컨대 문왕을 형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숙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게 진심이오?”

“진심입니다.”

“아우님의 자제가 내 곁에 있다면 나도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이세민은 당석에서 춘추의 청을 가납한 뒤 문왕에게 물었다.

“네가 내 곁에서 숙위하겠느냐?”

“그럴 수만 있다면 천하에 다시없는 영광이겠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폐하를 알현하겠나이다.

감히 청하옵건대 아버지처럼 폐하를 섬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허허허. 오냐 오냐, 내 어찌 너의 청을 거절하겠느냐!”

문왕의 부사지(父事之) 청으로 이세민의 기쁨은 극에 달했다.

그는 내친김에 오래전부터 벼르던 얘기를 입에 담았다.

“그런데, 아우님!”

“네.”

“이번에도 계림에선 여자 임금이 들어섰다고 하던데 번번이 그래 가지고 나라가 되오?”

춘추가 잠시 말문이 막히자 이세민이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고 덧붙였다.

“옛날 우리 중국에도 여와씨(女?氏)가 있었지만 그는 바로 천자는 아니고,

복희(伏羲:고대 전설상의 제왕)를 보좌해 구주(九州)를 다스렸소.

또 여치(呂雉:漢高祖의 비 呂后의 이름) 같은 이도 유약한 혜제(惠帝)를 도와 조정에서

정령(政令)을 내긴 했지만 왕이라 아니하고 다만 고황후 여씨(高皇后呂氏)라고만 썼소.

여자가 임금이 되면 난세가 그치지 않는 것은 천리로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니

차제에 그냥 여주를 물러나게 하고 아우님이 보위를 잇는 건 어떠하오?

만일 그럴 의사만 있다면 내가 요동으로 내려 했던 대군 30만을 아우님 귀국하는 편에 딸려 보내겠소.”

그러자 춘추는 쥐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릴 정도로 크게 놀랐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일국의 신하된 처지로 어찌 그런 불충한 마음을 품겠나이까?

형님께서 저를 생각하시는 뜻은 고마우나 이는 천추만대에 역신의 오명을 남기는 위험한 일이올시다.

감히 따를 수 없습니다!”

춘추가 워낙 정색을 하고 나오자 말을 꺼낸 이세민도 돌연 머쓱해졌다.

“그렇게 놀랄 일이 무에 있소.

나는 그저 계림의 사직을 걱정해서 한 말일 뿐이오.

사직을 위해 대의멸친(大義滅親)을 말한 것은 20년 전의 그대가 아니오?”

이세민은 현무문의 일을 거론했다.

춘추도 그제야 자신이 펄쩍 뛴 게 이세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형님과 저는 경우가 다릅니다.

저와 같은 견양지질(犬羊之質)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연개소문이도 비록 임금은 아니지만 제가 국사를 전제하니 왕이나 다를 바 없소.

아무려면 아우님이 연개소문보다 못하겠소?”

춘추는 그제야 마음속에 품고 온 긴한 얘기를 나눌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지금 신라의 임금이 누가 되느냐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춘추가 이세민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잠시 자리를 옮겨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만.”

“무슨 소회가 있는 게로구려?”

이세민은 한창 주흥이 무르익은 별전의 연회를 그대로 계속하게 지시한 뒤

가만히 춘추의 손을 붙잡고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 별채로 갔다.

등촉을 밝힌 내관마저 물리치고 나자 춘추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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