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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전란 12

오늘의 쉼터 2014. 11. 11. 15:41

제28장 전란 12

 

 

 

유신과 헤어진 춘추 일행은 무사히 당항성에 도착해 성주 진춘의 영접을 받고

곧장 관선으로 갈아타려 했다. 춘추는 당연히 온군해(溫君解)를 찾았다.

그는 지난번에 두두리 거사와 함께 춘추를 태우고 당을 다녀온 뒤로 사신과

조공사의 뱃길은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춘추 일행이 당항성에 도착했을 때 온군 해는 마침 복통을 심하게 앓은 뒤끝이라

눈이 퀭하고 안색이 핼쑥했다.

잔칫집에서 얻어먹은 복국의 독 때문이었다.

춘추가 오랜만에 만난 온군 해를 보고는,

“얼굴이 반쪽일세. 그래 가지고 만 리 뱃길을 열겠는가?”

하며 걱정하니 군해가 겸연쩍게 웃으며,

“그래도 오늘 오셨기 망정이지 하루 이틀 전에 뵈었으면 정말 뫼시지 못할 뻔했습니다요.

복 한 마리에 백 사람을 죽일 독이 들었다더니

생때같은 장정 일곱이 한솥 국을 먹고 저 하나 살았습니다.”

하고서,

“왜 저 혼자 살았나 했더니 이내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말을 마치자 물가에 나가서 수부를 뽑고 관선을 손질하는데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하고 아직 상태가 시원찮아 보였다.

춘추가 군해의 마음이야 알았지만 몸이 어떤지를 몰라,

“정말 괜찮겠나?”

“이 사람아, 부치거든 그냥 쉬게.”

몇 번이나 묻고 또 권하니 군해가 사뭇 정색을 하며,

“나리께선 제가 모는 배를 안 타고 싶으십니까?”

하였다.

춘추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야. 나는 자네 배를 타고 싶지.

일전에도 내 뱃길은 모두 자네가 맡기로 하지 않았던가?”

하자 군해가 꺼칠한 입술로 환히 웃고서,

“그럼 됐습니다요. 걱정 말고 타십시오.”

하며 입을 막았다.

그런데 배에 오르기 전에 수부들이 밥을 먹는데 군해가 돌아앉아 죽을 떠먹으니

춘추가 어깨너머로 죽 그릇을 보고는,

“밥 먹거든 가세.”

하고 출항을 뒷날로 미루었다.

군해가 죽을 입가에 허옇게 묻혀서 칠색 팔색을 하며,

“위중한 국사를 제가 들어 망칠 순 없습니다요, 나리!”

“죽 먹고도 밥 먹은 만큼 기운을 쓸 테니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저 하나 때문에 나랏일을 그르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요!”

하는 것을 춘추가 단호히 고개를 젓고서,

“제아무리 나랏일이 위중해도 사람이 살아야지.

멀쩡한 속으로도 나중에 창자가 뒤틀리는 게 뱃길이고 물길일세.

하여간 자네 밥 먹거든 가세나.”

하니 군해가 너무 미안했던지,

“그럼 선장을 바꿔 가십시오. 이번만은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급기야 뜻을 바꿀 궁리까지 하였다.

그래도 춘추가 말을 바꾸지 않고,

“나는 자네 배를 타네. 그리고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 밥 먹거든 가세.”

하고는 그 길로 관사에 돌아가 꾸려놓은 짐을 다시 풀었다.

이튿날 군해가 아침부터 밥솥을 들고 나타나 하는 소리가,

“나리, 제가 엊저녁부터 밥을 먹습니다. 보십시오.”

하고는 춘추가 보는 앞에서 밥을 반솥이나 퍼먹는데

일부러 보라고 하는 시늉도 없지는 않았으나

전날보다는 숟가락질에 힘도 실리고 얼굴에 생기도 돌았다.

“정말 괜찮겠나?”

“그러믄입쇼. 거뜬합니다요!”

그제야 춘추도 다시 짐을 꾸리고 일행과 함께 갯가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타고 갈 배가 마음에 걸렸다.

“배가 작으면 요동이 심할 테니 큰 배로 바꾸게.”

“저 배는 지난번에 타고 가셨던 바로 그 뱁니다.

손질까지 마쳤으니 그냥 타십시오.”

“바꾸게.”

“괜찮습니다요 나리! 저는 이제 황소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기운이 납니다!”

“황소를 때려잡든 암소를 때려잡든 그거야 자네 알아서 할 일이지만

우리가 가진 관선 중에 제일 큰 배를 내게나.”

“그럼 돛도 새로 달고 노를 저을 수부도 더 있어야 하고 일이 여간 복잡하지 않습니다.”

“돛도 달고 수부도 더 뽑게. 저녁에 가면 될 게 아닌가?”

군해는 아무리 통사정을 했지만 도저히 춘추의 고집을 당할 수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춘추 일행은 갑판에 마상이(통나무를 파서 만든 작은 거룻배)가

여럿 실린 대선을 타고 저녁나절에야 바다로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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