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전란 8
그들은 조정의 분위기와 백제의 동향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춘추는 일부러 앞뒤의 행렬을 멀찌감치 떼어놓고 그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모조리 말한 뒤,
“선왕 때와는 달리 당나라 책봉사가 급히 다녀간 것을 보면 그쪽 사정도 많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하긴 30만 대병을 일으키고도 연개소문에게 혼쭐만 났으니 천하의 이세민이가 화병이 도질 만도 하지요. 이럴 때 동맹을 맺자고 하면 당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하니 김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다가,
“군사를 빌려주되 백제 땅을 취한 뒤 이를 가르자고 하면 어찌하시렵니까?”
하고 사뭇 정색을 하며 물었다.
“실은 나도 그게 걱정입니다.”
춘추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동맹군이 힘을 합쳐 한 나라를 쳐서 그 강역과 백성들을 나누는 것은 병가와 외교의 상례입니다.
나는 차라리 당주가 그렇게 말하면 속이 편할 것 같으나 무상으로 군사를 빌려준 뒤
훗날 돌아가지 않고 주둔하면서 급기야 우리까지 넘볼까봐 그것이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춘추의 말을 들은 김유신이 한 가지 묘책을 내었다.
“백제와 고구려를 같이 치자고 하십시오.”
“고구려를요? 그건 당주가 친정에까지 나섰다가 실패한 일이 아닙니까?”
“당이 노리는 것은 고구려요, 우리가 치려는 것은 백제입니다.
사냥꾼 둘이 토끼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씩 나눠 갖자는 데는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어 김유신은 그즈음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수나라 때도 그랬지만 중국에서 고구려를 치려면 군사를 수륙 양쪽으로 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육로로 내는 군사는 위협이 될 뿐 실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만일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당은 백 번 군사를 내어도 백 번 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동은 스스로 망하기 전에는 누구도 취할 수 없는 땅입니다.
양광이 백만 군대로도 실패한 땅을 당주가 30만으로 취하려 했다는 게 무슨 배짱에서 나온
계책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이 정말 고구려를 치려면 수군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예로부터 육로의 마군도 강하지만 해역의 수군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나라 장수 내호아(來護兒)가 바다를 뒤덮을 만큼 많은 선단을 거느리고 갔다가
한순간에 대패한 것이나, 이번에 장량의 군대가 평양 쪽으로는 접근도 하지 못한 채
비사성으로 뱃머리를 돌린 것은 모두 고구려의 수군이 강하고 용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나라로선 실로 낭패가 아닙니까?
당주의 병이 깊어진 것도 필경은 그 때문일 겁니다.”
“내주에서 수군을 내되 고구려 해역으로 가지 말고 백제로 내려오면 됩니다.
그런 다음 우리와 힘을 합쳐 백제를 치고, 그 군사를 그대로 돌려 함께 고구려를 치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는 당의 흑심을 경계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고, 당나라는 당나라대로
요동과 해역의 난관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계책을 말한다면 병석의 당주가 벌떡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유신의 그와 같은 제안은 그동안의 모든 논의와 계책들을 일거에 뛰어넘는 놀라운 것이었다.
춘추도 별별 방법을 다 떠올려봤으나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터였다.
춘추가 몹시 놀라는 것을 보고 유신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이 방법을 쓸 때는 반드시 전제할 조건이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백제를 치고 곧바로 고구려를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나운 개를 풀어 짐승을 잡을 때는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몰아쳐야 하는 법입니다.
만일 잠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개는 주인을 물지도 모릅니다.”
“형님!”
춘추는 말 걸음을 멈추고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유신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춘추가 오늘에야 만 시름이 걷힙니다!
형님 덕분에 이제 기쁜 마음으로 장안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소를 시집보낸 이후 좀처럼 쓰지 않던 형님 호칭까지 써가며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가던 사신의 행렬이 뒤에 처진 두 사람을 기다리다 못해 재촉을 해댔지만 춘추는
유신의 팔을 놓지 않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백제를 치기 위해 당군을 얻어온다면 항상 그 뒤가 걱정이었던 춘추였다.
“매사엔 다 때가 있는 모양이라더니 이번에 당군이 요동 정벌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런 궁리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신이 웃으며 말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법민과 문왕이 행렬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두 어른께서 무슨 긴한 말씀을 나누시는지 궁금합니다.”
법민이 먼저 천천히 다가와 말을 건네자 춘추는 그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너희 큰 외숙께서 방금 전에 나의 오랜 심병(心病)을 치료해주셨구나!”
춘추가 미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소리치니 법민이 조용히 웃음을 짓고,
“아버지의 존안을 뵈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고서 이내 유신을 향하여,
“큰 외숙께서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국병(國病)도 홀로 치료하시더니 이젠 저희 아버지까지 치료해주시니
천하의 명의가 바로 큰 외숙이십니다.”
하며 제법 점잖은 농을 하였다. 유신이 조카의 말에 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존망지추(存亡之秋)를 당해보면 누구나 명의가 되는 법이지.
자네도 장안에 가면 온갖 곡경에 처할 터인데 어려운 것을 너무 겁내지 말고
자꾸 대들어서 인생의 묘책들을 많이 깨우쳐 오게.
그럼 훗날 틀림없이 명의 소리를 듣게 될 게야.”
농에 섞어 당부하니 법민이 사뭇 정색을 하면서,
“명심하겠나이다.”
다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유신이 압량주 서쪽 경계까지 따라왔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즘은 백제군이 쥐새끼처럼 기어 들어와서 곧잘 아무데서나 출몰합니다.
우술군과 요거 성을 뺏긴 뒤로는 당은 포로도 안심을 할 수 없으니 길동군(吉同郡:영동)이
끝나는 데까지 동행하겠습니다.”
하였다.
춘추는 유신의 뜻이 고맙긴 했으나 일변 그가 임지를 벗어나는 게 마음에 걸려,
“중악(팔공산)을 돌아가는 길이 험난하니
그럼 팔거리현(八居里縣:성주, 칠곡)까지만 같이 가십시다.
나라에 변고가 나면 제일 먼저 장군부터 찾을 텐데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차피 그곳에선 하룻밤을 묵어야 하니 밤새 회포를 풀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헤어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여 유신도 좋다 하고 팔거리현으로 향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사신의 행렬이 감문국(김천) 관사에서 묵어야 했으나
백제가 대야주(합천)와 거열군(거창)에 이어 북쪽의 우술군과 요거 성을 치면서
길동군까지 위협하고 나오자 신라에선 일선주(선산)로 우회하는 새 길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마저 길에서 워낙 시간을 지체한 탓에 중악 아랫길을 돌아 나왔을 때 그만 해를 잃고 말았다.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산자락 밑의 민가를 찾아가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고 방물을 실은 수레와
사신의 호위 군사들을 먼저 일선주로 보낸 뒤 적당한 집을 골라 대문을 두드렸다.